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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

last modified: 2015-04-13 20:13:44 by Contributors




KIA 타이거즈 No.16
김주찬(金周燦)
생년월일 1981년 3월 25일
신체 183cm, 85kg
출신지 경기도 수원시
학력 충암초-충암중-충암고
포지션 외야수(좌익수(2011~), 중견수(2008~2010), 우익수(2007))
내야수(1루수, 3루수(2001), 유격수, 2루수(2015)[2])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삼성 라이온즈 2차 1순위 지명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2000)
롯데 자이언츠(2001~2012)
KIA 타이거즈(2013~ )
등장음악 MC 스나이퍼 - Better than Yesterday
응원가[3] FIVE - Everybody Get Up[4]
Mary Hopkin - Those were the days[5][6]
João Lucas e Marcelo - Tchu Tcha Tcha


보유 기록
10경기 연속 멀티히트 | 2014년 7월 5일 넥센 히어로즈
역대 최소경기 (62G) 100안타 | 2014년 7월 29일 NC 다이노스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0번
김기태 (1999) 김주찬 (2000) 김승권 (200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2번
강성우 (1992~2000) 김주찬 (2001~2012) 김민하 (2013~)
KIA 타이거즈 등번호 16번
김희걸 (2011~2012)
조영훈 (2012)
김주찬 (2013~ ) 현역

Contents

1. 개요
2. 프로 입단 후
2.1. 삼성 라이온즈 시절
2.2. 롯데 자이언츠 시절
2.2.1. 2008 시즌
2.2.2. 2009 시즌
2.2.3. 2010 시즌
2.2.4. 2011 시즌
2.2.5. 2012 시즌
2.3. FA
2.4. KIA 타이거즈 시절
2.4.1. 2013 시즌
2.4.2. 2014 시즌
2.4.3. 2015 시즌
3. 연도별 주요 성적
4. 플레이 스타일
5. 별명
6. 여담


1. 개요


충암고 시절에 이종범의 뒤를 이을만한 대형 5툴 유격수 자원으로 각광받았다.[8] 참고로 함께 비교되던 81년생 3대 유격수는 박기혁, 박준서. 그리고 그들은 롯데 자이언츠에서 만나게 되는데...

마해영 vs 김주찬 트레이드로 인해 어떤팀이 이득봤냐.. 했을때 둘다 윈윈이었다. 마해영은 중심타자로 삼성의 V2를 견인하였고, 김주찬은 초반 몇년에는 안 터지다가 이후 터지면서 1번타자 역할을 톡톡히 한것.. 프로야구 역사상 이런 윈윈도 없다.

2. 프로 입단 후

2.1. 삼성 라이온즈 시절

(출처 : 포토로)
삼성에서 등번호 10번을 달았던 양준혁은 당시 LG에 뛰고 있었고 김기태가 1999년에는 10번을 달다가 느닷없이 11번으로 번호를 교체해서 등번호 10번을 김주찬이 달고 뛰었다. 삼성에서 백업 내야수로 데뷔한 후에 괜찮은 컨택 능력과 빠른 발로 가능성을 엿보였다. 하지만 2000년 7월 16일 마산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 관중석 송구라는 대형사고를 쳐서 끝내기 실책을 허용하고 말았다.[9] 처음부터 롯데의 스파이?? 결국 이듬해, 외야수 이계성과 함께 선수협 파동으로 인해 롯데 구단의 미움을 받게 된 마해영과 2:1 트레이드되어 롯데로 이적하게 되었다.

2.2. 롯데 자이언츠 시절

기사제목 : 공보다 빠른남자!

롯데로 트레이드 된 직후, 2001 시즌에는 주로 3루수로 출전하며 3할대의 정교한 컨택과 15연속 도루 성공 등으로 김태균, 박한이 등과 함께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2002 시즌에는 부진하였지만 소포모어 징크스로 보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는게 중론. 하지만 이 해 후반 백인천 감독이 부임하면서 그는 어둠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었다.

내야수임에도 관중석이나 덕아웃으로 송구를 하는 블래스 신드롬 증세를 나타냈기 때문에 외야수로 전향시킨 것까지는 좋았다.[10] 하지만 백인천 감독은 빠른 발과 좋은 컨택을 가진 김주찬을 "제2의 이승엽으로 만들겠다."라든가, "30-30도 충분히 가능한 선수"라면서 타격 개조에 들어갔다. 그 결과 김주찬은 이전까지의 맞추는 재능조차 모두 까먹은 채 선풍기 스윙만 해댔다. 장타력이 증가하긴커녕 타율만 2할대 초반으로 수직낙하한 채 고정되어 버렸다[11].

2004 시즌에는 도루 2위를 기록할 정도로 발은 살아있었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그 후에 터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태로 인해 군복무에 들어가서 2007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제대했다.

2007 시즌에는 강병철 감독의 무한 신뢰 하에 외야수로 출전, 찬스마다 삼진과 범타를 일삼으며 '강병철의 양아들'이라고 무한대로 까이며 주찬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가루가 될 때까지 까였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어느 정도 기량을 회복한 모습을 보이며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12]

2.2.1. 2008 시즌

2008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에서는 그를 잘 모르는 다른 나라 투수들에 의해 이러한 약점이 노출되지 않아서 좋은 활약(무려 7할대의 타율)을 펼쳤다. 2008 시즌에 들어서는 롯데에서 1, 2번으로 번갈아 기용되며 초반기 맹활약을 펼쳤지만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외야 플라이를 잡으려다 펜스와 충돌하면서 부상을 당해 이탈하였다. 그 후로 한 동안 꾸준하게 삽질을 하며 시즌 초반 로이스터가 '내가 아는 김주찬은 2할 6푼 2리의 타자다'라는 예상이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가 싶었지만, 7월에 올림픽 대표 선발 즈음 돼서 이탈한 정수근을 대신한 이인구에 밀려 1루수로 이동하면서 다시 폭발하였다. 그렇게 시즌 중반까지 3할 넘게 타율을 끌어올리며 맹활약하였다. 김주찬, 이인구의 테이블 세터가 꼬박꼬박 출루해주는 것이 롯데 상승세의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되었으며, 결국 롯데는 3위의 성적으로 패넌트레이스를 끝낼 수 있었다.

롯데가 죽을 쑨 2008 준플레이오프에서도 이인구하고 김주찬 만큼은 꾸준히 출루를 해줬다. 특히, 준플 3차전에서는 악착같이 출루를 했다. 하지만 조성환을 비롯한 이대호, 카림 가르시아 클린업 트리오들의 부진으로 계속 점수가 안 나오자 나중에는 그냥 테이블 세터 둘이서 점수를 올리면서 자기들 끼리 해먹는 황당하면서도 대단한 활약을 했다. 8년의 긴 시간이 지난 이후에 드디어 포텐셜이 터진 것이다. 주멘

2008 시즌 성적은 타율 0.313(리그 10위), 홈런 1, 타점 42, 도루 32(리그 5위[13]), OPS 0.752로 데뷔 후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하였다.

2.2.2. 2009 시즌

2009 시즌 시작 후, 처음에는 맹타를 휘두르며 번트안타도 몇 개 치는 등 2008 시즌의 상승세를 그대로 이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5월에 가까워지면서 타율은 다시 2할 후반대로 추락했다. 무엇보다도 그나마 쉬운편에 속하는 1루수 수비가 그렇게 안정적이지 못했다. 거기다 김주찬의 블래스 신드롬 증상으로 내야에서의 포지션 변경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대호를 싫으나 좋으나 3루수로 기용하게 됨으로써 사실상 박기혁이 혼자 내야 수비를 하는 형세를 갖추게 되었다. 조성환의 부상 이후, 백업으로 들어온 김민성의 맹활약으로 내야가 그나마 나아진 상황.

6월 27일, 대 한화전에서 도루중에 송광민의 스파이크에 발이 밟혀 탈골되면서 한달동안 결장했다.

7월 25일 올스타전에서 1루수 부문에 뽑혔지만 선발 출전하지 못하고 9회말 대주자로 출전하였다. 허나 '마구마구 온라인 홈런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해 상금 200만원을 받았다.

9월 13일, 데뷔 첫 홈스틸을 기록하였다.

2009 시즌은 타율 0.310(리그 9위), 홈런 7, 타점 51, 도루 34(리그 5위에 성공률도 83%로 상당히 좋아졌다), 출루율 0.356, 장타율 0.451, OPS 0.806로 2008 시즌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2.2.3. 2010 시즌

시즌 초에는 출발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박종윤 선수의 각성 때문에 1루수보다 중견수로 더 많이 출장하고 있기 때문인지 전년도보다 낮은 타율에 특히 톱타자감으로는 낙제점인 출루율을 보여주었다. 수비는 원래 좋지 않은 선수였지만 더욱 더 불안한 중견수 수비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5년 연속 두 자리 수 도루를 기록했다. 그 와중에 코뼈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전반기 막판에 벌어진 황재균김민성, 김수화 트레이드로 인하여 이대호가 1루수로 수비위치를 이동하게 됨으로서 좌익수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홍성흔의 부상으로 이대호가 지명타자로 이동함에 따라 8월 이후에는 다시 1루수로 많이 출장했다.

8월 28일, 2연속 도루에 성공하면서 이대형을 제치고 도루 1위에 올랐다. 생애 첫 도루왕? 이후 함께 출루율 꼴찌를 다투고 있는 이대형과 한동안 엎치락뒤치락했다.

드디어 9월 18일, 도루 2개를 추가하며 60도루를 돌파했다. 주루뇌가 잘 돌아가나? 하지만 이대형이 9월 26일에 도루 1개를 추가하면서 결국 도루왕을 놓쳤다.

2010년 페넌트레이스 기록은 타율 0.276, 출루율 0.324[14], 홈런 9, 타점 40, 도루 65(리그 2위[15]), OPS 0.710.

김주찬과 이대형의 도루 스타일은 서로 다른 게, 도루에 있어서 세가지 요소인 3S(스피드, 스타트, 슬라이딩) 중에서 김주찬은 스피드 및 가속력이 이대형보다 낫고, 이대형은 스타트, 슬라이딩이 낫다는 평. 물론 두 선수 모두 나머지 요소들 모두 평범한 주자보다 훨씬 월등한 것은 말할 필요 없는 사실이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 전 경기에서 선발 1루수 겸 1번타자로 출장하여 20타수 9안타 2볼넷 1몸에 맞는 공 1타점 6득점, 타율&장타율 .450, 출루율 .522로 좋은 활약을 했지만, 팀은 2연승 3연패로 탈락했다.

2.2.4. 2011 시즌

시즌 초부터 타격 능력이 많이 침체되었다. 개막전부터 1번 타자로 기용되다가 4월 중후반부터 전준우에게 톱타자 자리를 내주고 9번 타자로 밀려났다.

4월 23일 SK전에서 상대 선발 매그레인의 공에 손목을 맞았다. 처음에는 단순 타박상인줄 알았으나 재검사 결과 미세골절로 밝혀져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6월 중에 복귀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훈련에 들어갔었으나 병원에서 검사 결과 아직 뼈가 아물지 않아 좀더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밝혀졌다.

6월 21일 두산전에서부터 복귀하였다. 복귀 후, 스탯을 상당히 끌어올린 점이 고무적이다.

부상 중이던 2달 동안 뭘 했는지 그 전에 비해 살이 좀 붙었고, 주루스피드 자체가 이전에 비해서 다소 줄었다. 대신 7월을 기점으로 수비가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김주찬의 수비를 아는 사람이라면 경악할 정도로 겨우내 3루 수비 연습을 해 외야 수비 감각이 떨어진 전준우의 수비범위를 야금야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가장 큰 원인은 조원우 외야 수비 코치 덕분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초구를 참는 습관도 생겨서 홈런보다 보기 힘들다는(…) 볼넷도 자주 얻어내었다. 이건 우리가 알던 김주찬이 아니야 나의 김주찬을 돌려줘

2011 시즌 페넌트레이스 최종 성적은 타율 0.312, 출루율 0.360, 장타율 0.423, OPS 0.783, 6홈런, 40타점, 25도루. 부상 때문에 규정타석은 채우지 못했으나 시즌 막판의 무서운 상승세로 100안타를 채우며 6년 연속 100안타를 기록하였다.

2011년 10월 16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1회말 상대 선발 투수김광현으로부터 선두 타자 홈런을 쳤다. 이날 김주찬은 5타수 3안타, 1홈런, 1볼넷, 1도루, 2타점, 2득점으로 맹활약했지만 팀은 연장 10회 접전 끝에 7:6으로 패배하였다. 원흉은 손아섭

김주찬은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21타수 10안타, 1홈런, 1볼넷, 1사구(死球), 2타점, 4득점, 타율 0.476, 장타율 0.762, 출루율 0.522로 맹활약했지만, 팀은 SK에게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8888577-03-13-23-23

2.2.5. 2012 시즌

시즌 초에는 햄스트링 부상 등 잔부상이 많아 많이 출전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매년 그랬듯이 부상에서 복귀한 뒤 6월부터 롯데 타선에서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며 Show me the money 타율 0.294, 32도루(3위), 장타율 0.405, 출루율 0.346을 기록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은 선발 좌익수 겸 2번타자, 2, 3, 4차전은 선발 좌익수 겸 1번타자로 출장하여 18타수 5안타(2루타 한 개 포함), 2타점 2볼넷, 타율 0.278, 장타율 0.333, 출루율 0.35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 전 경기에서 선발 좌익수 겸 1번타자로 출장하여 22타수 7안타 1볼넷 1몸에 맞는 공 2도루 1타점 3득점, 타율 .318, 장타율 .409, 출루율 .375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김주찬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40타수 12안타 3볼넷 1몸에 맞는 공 3타점 3득점, 타율 .300, 장타율 .375, 출루율 .364를 기록했다.

2.3. FA

2010년대의 FA 희대의 거품 시발점.

2012 시즌 종료 후, 생애 첫 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었다. 일찌감치 FA 시장의 최대어로 꼽혔는데 이유는 2013 시즌으로 첫 1군 진입을 하는 NC 다이노스의 존재, 그리고 한화 이글스류현진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280억이라는 실탄을 획득했고, 또 다른 주요 타자매물인 LG 트윈스정성훈, 이진영이 시장에 나오지도 않고 원소속팀에 잔류함등을 들수있다 일찍이 50억 대박설이 나돌았고, 한화의 김응용 감독도 50억 원의 가치가 있다라고 평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원소속팀 우선협상기간의 마지막 날인 11월 16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최종협상을 가졌으나 결렬되었다. 롯데는 4년 44억(옵션 4억)을 제시했으나, 선수 본인은 4년 48억(옵션 8억)으로 옵션 4억을 더 요구했다고 한다. 세간의 평은 "44억도 오버페이다", "롯데 프런트도 할만큼 했다"라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웬만한 조건이면 롯데에 남고 싶다고 립서비스말했던 김주찬이었기에 보장금액도 아닌 옵션 4억에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에 배신감을 느낀 롯데팬도 적지 않았다. 역시 주캇 보라스 이쯤 되면 모 나라 모 리그모 선수가 떠오른다.

롯데가 협상 막판엔 49억까지 제시했다는 기사가 떴다. 사실이라면 그걸 거절한 김주찬이 여러 의미로 대단하긴 한데, 기사 쓴 기자가 박동희..


그리고 11월 17일, 뜬금없이 KIA 타이거즈와의 접촉을 통해 입단을 결정하였다. 계약조건은 4년 계약에 계약금 26억, 연봉 5억에 옵션 4억으로 총액 50억. 김응용의 50억 발언이 현실이 된 셈. KIA팬들은 헛돈만 쓴 게 아니냐면서도 일단 사왔으니 제대로 써 보자는 반응을 보였다. 그 와중에 헐값에 계약한 김원섭 지못미

롯데의 49억 제의는 다른 기자에 의해서도 언급되었던 것으로 보아 사실임이 확실해보인다. 아마 KIA가 세부 계약내역[16]에서 더 좋았지 않겠냐는 것이 이 기사의 추정. 이후 롯데에서는 FA 보상선수로 홍성민을 지명하였다.

KIA에서 받은 등번호는 조영훈이 NC로 옮기게 되면서 결번이 된 16번.


2.4.1. 2013 시즌

김주찬/2013년 항목으로.

2.4.2. 2014 시즌

비 더 레전드의 구세주이자 상금 분배기[17]

본래 테이블 세터로 호흡을 맞췄던 이용규한화 이글스로 간 대신 새로운 콤비로 FA로 KIA에 온 이대형과 테이블 세터를 이루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2010 시즌 도루왕 타이틀을 놓고 서로 겨뤘던 사이.

3월 30일에 좌익수를 보면서 나사빠진 수비를 보여주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 팀에 합류한 이대형과 테이블 세터를 이루면서 여전한 법력으로상대의 실책을 이끌어내어 테이블세터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좋지 않았던 타격감도 경기를 거듭하면서 살아나는 모습을 보일 정도.

하지만 16일에 김상훈과 함께 말소되었다. 경미한 부상탓에 말소 며칠 전부터 지명타자로만 출장했었는데 아예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대신 올라온 선수는 김원섭백용환.

5월 4일 1군에 복귀하였으며, 10회말 끝내기 안타를 쳤다.

5월 11일 한화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도루 도중 슬라이딩을 시도하다 베이스에 손가락을 접지르는 부상을 당했다. 당분간 결장이 불가피할 듯. 특유의 허슬 플레이에 KIA 종특인 부상병동까지 겹치면서 안 좋은 의미로 시너지 효과를 냈다.(...)

계속 시즌이 진행되고있지만, 기대치에 한참 떨어지는 성적을 내고있어 지금 KBO판 칼 크로포드가 강림한것 같다며 기아팬들의 억장을 무너뜨리고 있다.

5월 말 부터 복귀 했으며 복귀 후 며칠 동안은 타격감이 떨어졌다. 6월 부터 부상을 당한 브렛 필을 대신해 1루수로 나왔다가 수비가 안 좋아서 다시 외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깝거찬 피꺼솟 이후 미칠듯한 맹타를 휘두르며 규정타석에는 모자라지만 7월 5일 기준 3할 9푼대의 타율을 기록 중이다. 게섯거라 이재원 7월 4일 넥센이 반대로 뇌거깝을 시전했으나, 이대형의 안타 후 이범호의 만리런홈런으로 응징당했다. 7월 10일에도 SK가 뇌거깝을 시전했지만 결과는 이대형의 스트레이트 볼넷 뒤 이범호 적시타-나지완 삼진-안치홍 적시타. 다만 올해 초부터 생긴 만성 족지근막염으로 6월 말부터 계속 지명타자로 나오고 있다.

7월 5일 넥센 히어로즈 전에서 10경기 연속 2안타 이상을 기록하며 신기록을 세웠다.[18]

7월 6일 넥센 히어로즈 전에서 잘 맞은 타구가 모두 잡히며 9회까지 무안타로 침묵하며 여러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9회초에 손승락 에게 안타를 뽑아내며 이후 터진 이범호의 2타점 적시타의 발판이 되었다. 거기에 대략 80명에 가까운 비 더 레전드 상위 콤보 보유자들을 구원하였다(...) 7월 10일에도 9회까지 무안타로 침묵하여 여러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9회초에 여건욱에게 마수걸이 포를 뽑아내 선발 전원안타와 함께 서른 명에 가까운 비 더 레전드 상위 콤보 보유자들을 구원하였다.

7월 12일에는 다른 선발타자들이 1할 타자포함 4회 안에 죄다 안타를 치는 와중에 혼자서 9회까지 안타를 치지 못하였으나, 팀이 대첩을 찍으면서 연장을 가게 되어 10회 말에 드디어 안타를 쳐 선발 전원 안타를 만들었고, 개인 연속 경기 안타 기록을 19경기로 늘리면서 또 수많은 비 더 레전드 상위 콤보 보유자들을 구원하였다. 하지만 정작 안타치고 출루 한 다음 신인시절 이후 9년만에 포수를 본 최준석에게 도루 저지(...)를 당했다.
어째 요즘 마지막 타석에서 구원하는 경우가 늘고있다 게다가 이번엔 연장 못 갔으면 실패였다
그리고 안타를 못 치면 법력을 통해 팀을 연장전에 보내서 타격 기회를 만든 뒤 안타를 친다는 법력 드립이 흥하고 있다

7월까지 타율은 274타수 106안타, 0.386으로 그야말로 미쳐 날뛰는 모습을 보였지만, 8월엔 58타수 13안타, 타율 0.220으로 큰 부진에 빠졌다. 시즌 타율 역시 0.358로 3푼이 깎여나갔고, 수위 타자 경쟁에서도 8위로 밀려나 버렸다. 3할 5푼이 타격 8위인 2014 크보 타신투병 클라스

최종 성적은 100경기 399타수 138안타 9홈런 46타점 타율 .346, 출루율 .397, 장타율 .514로 타율 6위에 랭크되었다. 출루율이 타율에 비해 별 차이가 없는게(...) 흠이지만 그래도 높은 수준. 아무튼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팬들은 잔부상이 없기를 매우 바라고 있다.

2.4.3. 2015 시즌

2015년 1월 16일 기사에서 2루수 겸업을 공식 선언했다. 본인의 의지도 있었고 김기태 감독의 구상이 맞아떨어져서 본격적으로 시도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미 전훈때도 내야수용 글러브까지 새로 마련하고 갔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의 반응은 박경태 20승 하는 소리라며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2루는 포수, 유격수와 함께 수비부담이 가장 큰 자리인데, 정작 김주찬은 롯데 시절에도 가장 수비부담이 적다는 1루에서도 수비로 죽을 쒔다. 물론 김주찬 본인이 운동신경이 좋은만큼 본인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냐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지겠지만, 또 다른 문제는 그놈의 유리몸.

3월 28일 홈개막전에서 3타수 1안타 1타점 1도루를 성공하여 비교적 첫스타트는 좋았다.

3월 29일 경기직전에 발표가 있었는데.. 28일 경기직후 유리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2루로 도루를 성공하고 나서 장딴지통증이 와 김기태감독은 선수보호로 선발제외를 하였다. 이날 9회말 대타로 출전하여 1볼넷을 얻었고 뒤이어 브렛 필의 2점 끝내기홈런으로 팀 승리에 기여하였다.

4월 7일 김주찬 부상에 관한 기사 하나가 났다. KIA 감독 "김주찬 몸 상태 80%, 대타 가능"이라는 기사로 지금 현재 김주찬의 몸상태가 80%까지 올라왔다 하는데 생각보다 더딘 회복력을 보이고 있다..나지완의 수비를 보고있자면 김주찬의 수비가 그리워진다..

3.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삼성 라이온즈 60 48 .313 15 3 2 0 5 22 7 4 .458 .365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롯데 자이언츠 86 300 .313 94 21 4
(4위)
4 31 57 29
(3위)
26 .450 .363
2002 84 264 .220 58 13 4
(4위)
7 25 25 9 19 .379 .271
2003 55 125 .160 20 5 1 3 3 12 7 5 .288 .192
2004 120 450 .242 109 20 5
(2위)
7 42 53 44
(2위)
45 .356 .310
2005 병역비리 사건 연루 및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
2006
2007 113 387 .261 101 17 1 5 30 49 22 21 .349 .298
2008 104 412 .313 129 16 7
(1위)
1 42 75 32
(5위)
32 .393 .359
2009 109 435 .310 135 30 5
(4위)
7 51 77 34
(5위)
34 .451 .356
2010 118 485 .276 134 18 4
(4위)
9 40 89
(2위)
65
(2위)
36 .386 .324
2011 86 321 .312 100 12 3 6 40 58 25 34 .424 .373
2012 118 435 .294 128 27 3 5 39 62 32
(3위)
37 .405 .346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3 KIA 타이거즈 47 168 .304 51 9 4 0 28 24 23 19 .405 .372
2014 100 399 .346 138 32 4 9 46 72 22 35 .514 .397
통산(13시즌) 1200 4229 .287 1212 223 47 63 422 675 351 347 .406 .338


4.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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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퍼의 만행 중 하나

적당한 타격 능력과 100m를 11초대에 끊는 수준급의 다리를 갖췄기 때문에 포텐셜 자체는 높다고 평가받았으나, 백인천 감독의 교정에 의해 비교적 간결하던 스윙폭 자체가 매우 커졌다. 전형적인 장타를 노리는 풀스윙이 된 것. 우리나라 선수들 자체가 떨어지는 공에 약한 편이기는 하지만 김주찬 같은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해서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공에는 냅다 방망이가 돌아가며 그것이 헛스윙이 되고 말았다. 약점이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나는 탓에 2스트라이크가 되기 전에 결과를 보지 못하면 대부분 삼진. 그래서 삼진 대 볼넷 비율이 아주 나쁜 선수이기도 하다.[19] 야구센스보다는 터미네이터 급으로 우수한 신체능력과 본능으로 야구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유형의 선수.[20] 다시 말하자면 우수한 신체능력으로 공격력은 좋으나, 미세한 부분이 부족하여 주루 플레이가 거칠고, 수비가 매끈하지 못하다. 그래서 팬들은 타격하는 뇌, 주루하는 뇌, 수비하는 뇌가 따로 있어, 뇌가 탈착식이라고 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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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낙구?

수비 능력은 경험을 쌓으면서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초기에는 주전 외야수, 특히 중견수로서는 리그 최하위를 다투기도 했다.[21] 송구에 대한 트라우마 덕분에 다른 내야수 포지션은 보지 못하고 1루수로 출장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1루수로서도 그다지 좋은 수비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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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그의 수비[22]

하지만 불안불안한 수비에 비해 타격 능력은 상당히 좋은 선수. 이를 두고 수비 때랑 공격 때랑 뇌를 갈아끼운다고 표현한다. 단, 선구안이 꽤 떨어지는 편이라 높은 타율에 비해 출루율은 좀 떨어지는 편.[23] 팀 내에 마땅한 톱타자감이 없어 2009 시즌부터는 1번 타자로 출장하고 있지만, 2번 타자가 더 적절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2011 시즌에 접어들면서 비록 88경기 출장이긴 해도 371타석 328타수동안 BB/K 비율이 0.71(!)로 상당히 향상되었다.[24] 그러나 배드볼 히터라 볼넷과 삼진이 모두 적은 타입으로, 어디까지나 이전보다 선구안이 나아졌다는 것이지 볼넷을 골라 출루하는 타입의 리드오프는 아니다. 장타 생산력은 아주 뛰어나지는 않으나 톱타자치고는 좋은 편으로, 출루율이 높은 선수가 아님에도 벡골프가 망가뜨린 시기를 제외하면꾸준히 4할 전후의 장타율을 기록했다. 적절히 뜬금포를 쏘아주고 빠른 발로 2루타, 3루타 갯수를 늘려 장타율을 유지하지만 꼭 한두달 부상으로 휴업해서 누적 스탯은 별로다(...)

수비 역시 2011년을 거치면서 사람이 바뀐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좋아졌다. 특히, 타구 판단력이 좋아져 이전의 빠른 발만 가지고 수비를 하던 모습이 많이 줄어들었으며, 상대 팀의 타구가 펜스로 가면 팬들이 "아, 2루타구나" 하고 먼저 생각하게 했던 깝깝한 펜스플레이 역시 많이 보완되었는데, 전적으로 조원우 전 외야 수비 코치의 역할이 큰 듯. 그래서 앞에 써놓은 어이없는 수비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송구 역시 평균급은 되는지라 2012 시즌 기준 56경기를 좌익수로 출전해 보살 3개를 기록하였고, 2008년부터 쭉 매년 3~5개 가량은 기록하고 있다. 2012 시즌 전준우, 손아섭과 함께 보살 4위 안에 롯데 선수가 3명이 포함되는 위엄을 달성. 오히려 좌익수로서는 수비력이 상당히 준수한 선수가 되었다. 그래도 준수한 어깨에 비해 송구가 아주 정확한 것도 아니고, 빠른 발에 비해서는 여전히 수비범위가 충분히 넓지 않은 등 기아 이적 후 중견수를 보기에는 수비력이 조금 모자라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잦은 부상도 풀타임 중견수를 맡기기에 신뢰를 주지 못했고 결국 이는 이용규를 놓친 2014시즌 이대형 영입으로 이어지게 된다.

주루플레이에서 그의 최대의 강점은 폭발적인 가속력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김경문 감독이 당시 팀내에서조차 주구장창 팬들에게 욕을 먹던 김주찬을 선발하여 의문을 자아내었는데, 김경문 감독이 밝힌 선발 이유가 "안타가 나왔을 때 1루에서 3루까지 가장 빨리 도달할 수 있는 주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김주찬은 최종예선에서 7할을 쳤다 투 베이스 이상 주루에서는 김주찬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게 중론.

현역 야구 선수 중에서 가장 도루 센스가 좋다고 평가받는다. 스타트나 순발력뿐만 아니라 슬라이딩을 할 때 속도를 줄이지 않고 연결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하다는 평.

좋은 신체조건에 비해 야구센스가 부족해 이리저리 까였지만, 2011년 이후로 이 문제가 많이 보완되면서 리그 톱급 외야수로 발돋움하였다. 그 결과 2012 시즌 종료 후, FA 시장에서 외야수 최대어로 떠올랐고 50억 대박을 터뜨리면서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였다.

FA 후에는 프야매의 멘토링을 현실에서 실천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2013시즌 그의 기아 이적 후 비슷한 유형의 타자인 신종길이 타격에 눈을 떴고, 2014시즌에는 김용달도 김무관도 포기했고 팬들도 포기했던 기적의 FA이대형이 고향에 돌아와 몸야구 트리오를 결성하더니 갑자기 컨택 능력을 회복하며 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물론 실제로 도움 줬다는 얘기는 없으니 믿으면 골룸(...)멘토링이 실존한다면 이승화는 대체 뭐냐

5. 별명

초구를 너무 사랑해서 초구찬이라는 별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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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구를 사랑한 사나이

김주찬이 불교 신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부터는 주처님으로 불린다. 이후, 그가 안타를 칠 때는 법력으로 친 법타라 불리운다. 가끔 수비 시에 뜬금없는 플레이를 보여줘서 뇌가 없다는 이유로 뇌주찬 또는 뇌(腦)제라고도 부른다.[25] 못 하는 날에는 뇌주찬이라고 까이고, 잘 하는 날에는 주처님으로 불리운다. 그가 타석에 있을 때나 루상에 있을 때 상대 선수가 실책을 하거나 하면 주처님이 법력을 사용해서 상대 선수의 실책을 유발했다는 말이 뒤따르며, 그가 덕아웃에 들어간 뒤에도 실책이 일어나면 덕아웃에서 법력을 썼다는 말이 나온다. 불교를 믿는 다른 선수(특히 박준서)들과 관련된 상대 실책이 나올 경우 보급형 법력을 가지고 있다는 우스개소리가 나오곤 한다.

발이 워낙 빨라서인지 한화 경기 중 선두 타자로 나와서 출루, 그리고 희생 번트 기회를 살려서 1루에서 3루까지 순식간에 가버려(물론, 1루수가 방심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무사 1루 상황에서 바로 1사 3루 상황을 만든적이 있었다. 이러한 빠른 스피드 때문에 붙여진 별명은 주사인볼트. 하지만 너무 빠르게 달리다보니 뇌를 떨어트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힘들게 도루 성공하고도 어이없는 주루 플레이를 하다가 아웃 당하는 모습은 안타깝게 보인다.

오오 주사인볼트 오오

프로야구매니저 한정, 고영민과 함께 코레기라는 별명이 있다. 2009년도 김주찬 카드의 너무나도 끔찍한엄청난 효율 대비 스텟 덕분. 하지만 6월 라이브카드가 나오면서 프야매 최강의 타자라는 칭호 또한 얻게 되었는데, 6월 라이브카드가 10코스트인건 물론, 전체적인 능력치가 5툴 플레이어의 끝을 달리기 때문에(심지어 번트도 높다!) 그렇게 되었다.

서인영과의 스캔들을 즈음하여 나온 꼴데툰을 계기로 야모순바라는 별명이 생겼다. 뜻은 '야구 밖에 모르는 순진한 바보'.

2010 시즌 종료 후, 이대호의 연봉협상이 야구계 최대 이슈로 떠오르자 김주찬의 연봉협상에 대한 귀신같은 재능이 재조명받으며 협상왕, 주캇 보라스라는 별명도 생겼다. 뇌주찬이 아니라 KBO의 진정한 천재 김경문 감독님 덕분에 FA도 보장된 행운의 협상왕 주처

2011 시즌이 끝난 뒤엔 구단에서 그의 협상능력을 이해한 것인지 정말 심플하게 연봉협상을 끝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구단 : 1장 더 줄께
김주찬 : (존나 띠껍게) 1000만 원 입니까?
구단 : 아니 1억
김주찬 : (배시시 웃으며 말없이 사인)

기아에 온 이후, 잦은 부상과 이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팬들에게 존재감이 아직 부족한 듯 하다. 갸갤에서 모 갤러가 응원단장 김주일과 김주찬을 헷갈려한 글이 올라온 이후 공식 별명이 김미미(...)로 굳어진 모양새. ? 기아팬 : 그런 미미한 선수는 잘 알지 못한다 성지순례하자이것도 있다

6. 여담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의 닉네임 '정카스'라는 유저는 김주찬에 대해 애증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는데, 그의 비유와 표현이 어찌나 주옥같은지 시인이라 불릴 정도였다.주옥 같은 정카스의 어록.

2010 시즌 이대형과 도루왕 경쟁을 펼칠 때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이대호가 발목염좌로 팀의 주전에서 빠지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 날,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김주찬이 다치면 안된다고 김주찬에게 목동 경기 가지 말고 부산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김주찬은 도루왕 경쟁 때문에 목동 경기를 뛰어야 하는 상황. 그러나 로이스터 감독 스타일상 개인기록 때문에 경기 뛰겠다고 하면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김주찬은 머리를 짜내서 짜낼 뇌가 있었어!! 로이스터 감독의 약점을 공략했는데..

"감독님, 저 서울에서 선보기로 해서.."(물론 거짓말)

그리고 로이스터 감독의 대답은 예상대로

"오 그래? 그런일이라면 인생에 중요한 일이니 서울에 가야지"

라고 말하면서 김주찬을 부산으로 보내려던 계획을 바꿔서 목동에 데려갔다. 하지만 폭우가 쏟아져 목동 경기가 취소되면서 김주찬은 결국 도루왕을 놓치고 말았다. 저 잔머리를 초구공략하는데 썼으면 분명히 도루왕은 따논 당상이었을텐데..

몇년간 거의 막차로 연봉협상을 해서인지 같은 팀 선수들에 비해 연봉이 후하다.

그리고 홍성흔을 롯데로 불러온 진정한 흑막(?). 자세한 사항은 홍성흔 항목 참고.그러나 홍성흔은 롯데에서 친목을 쌓더니 친정팀으로 돌아가 환경운동가를 데려갔다 생각해보니 김주찬도 롯데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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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김주찬의 뇌주루는 고등학교 때부터 싹이 보였다.

2011 시즌까지 커리어에서 3할을 기록한 시즌이 다섯 시즌이었는데, 5번 모두 3할 1푼대의 타율을 기록했다. 이를 두고 김주찬의 귀신같은 3할 1푼 본능이라 하기도.

은근히 유리몸 선수 중 하나이다(대부분 야구 선수들이 부상을 달고 살기는 하지만..). 당장 이 항목에서 '부상'으로 검색해보면 매년 부상으로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간 결장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것도 대부분 한 시즌 중 가장 활약이 두드러질 때 부상을 입어서 팬들을 어이없게 만들곤 했다.

롯데 시절에는 타격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응원가를 틀지 않았다. 원래는 타석에 나와서 10초 만에 초구 치고 달리는데 필요가 없긴 하지만 응원가가 있었다. 과거 WestlifeUptown Girl, 또 지금의 전준우 응원가[26]가 김주찬의 응원가였는데, 김주찬이 타격 시 혼란스럽다고 응원가를 정중히 거절하고 그럼 출루라도 잘 하든가 대신 안타를 쳤을 때 위에서 설명한 그 노래를 틀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김주찬이 KIA로 이적한 후, 김주일 KIA 응원단장은 응원가에 멜로디를 상당히 배제한 노래를 채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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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모습도 보여준다.

롯데 우승의 주역 하라는 야구 우승은 안하고

취미는 스타크래프트. 프로야구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대회에서의 사진.[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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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에 2위를 차지했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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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도 그의 뇌주루(…)는 여전해서 마인에 드라군이 폭사하는 명짤을 남기기도 했다. 김주찬 뇌주루, 뇌라군 등으로 가끔씩 커뮤니티에 올라와 빵빵 터뜨리는 중.


게임덕후 김주찬

2009 올스타전에서 마구마구 레이스에서 우승해 100만원 상금을 탔다. 게임을 상당히 좋아하는 듯 싶다. 그깟 공놀이
참고로, 이 때 김주찬은 처음으로 마구마구를 접해보았다고. 뭐야 이거 몰라 무서워

이렇게 잡기에 능한 모습 덕분에 야구계의 정형돈이라고도 불린다.


기자의 개드립에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인터뷰를 할 때 말은 술술 잘 하는 편인데 발음이 굉장히 어눌해서 알아듣기 힘들다.[29][30]전설의 지꾸여꾸여 영상 또한, 오승환 만큼은 아니라도 잘 웃지 않는 선수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초반에는 순진남 or 그를 뛰어넘어 백치(…) 이미지가 생겼다. '야모순바' 별명이 생기게 된 이유. 하지만,

팬들 앞에서는 이런 모습이지만 여러 썰에 의해 밝혀진 바로는 실제로는 뒤에서는 놀거 다 놀고 챙길거 다 챙긴다는게 밝혀지면서 충공깽을 안겨주었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연봉협상은 말할 것도 없고 일상에서도 짠돌이 끼가 보이는 에피소드가 많아 돈에 환장했다고 놀림당하고 있는 판.[31] 괜히 협상왕이 아니다 이 때문에 하라구로 기믹까지 생겨났으며 이제는 팬들 사이에선 순진남 그런거 없고 4차원으로 통한다. 어느 상황에서든지 마이페이스를 유지하기로 유명하며 그의 행동은 기행으로까지 꼽히기도 한다. 그의 기행에 대한 소문 모음


특유의 무표정 때문인지 이런 짤방도 나왔다.

하지만 2012 시즌에 들어오면서 웃는 모습이 많이 잡혀 혹시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돌았다. 정대현의 복귀 후, 정대현과 웃으며 장난치는 사진이 퍼져서 잠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9년에 서인영과 열애중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당사자들도 그냥 밥만 같이 몇번 먹었다며 극구 부인하고 있다. 김주찬 선수 본인은 서인영의 전화번호도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9년 라디오 스타에서 서인영은 밥을 몇번 먹었다고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 열애설이 터졌다고 밝혔다. 서인영의 표현으로는 사람의 앞날은 모르니까 열애설 안터지고서 좀 더 만났더라면 어쩌면 인연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투로 말하기도 했다. 정황을 보면 사귀기 전단계 수준에서 몇번 만난 정도였던것 같다.[32]

홍성흔, 박종윤, 이승화 등과 더불어서 트위터를 하지 않는다.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 한정으로 크보얼짱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33]

개그맨 김기리를 닮은 외모로도 유명하다. 또한 EXO카이를 닮았다는 주장도 있다(매우매우 정말닮았다.(...)덕분에 카이의 별명은 주처돌이 됐다 야갤에서 하도 놀려대서 엑소갤에선 김주찬이 금지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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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협상왕이라는 단어가 김주찬때문에 만들어지긴 했어도 실제로 김주찬 이전에도 협상왕들은 많았다. 예를 들면 장호연이나 신명철..
  • [2] 2015 시즌부터 겸업 확정
  • [3] 롯데 자이언츠 시절에는 타석에 설 때 응원가를 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본인이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응원가를 안타 혹은 출루, 혹은 도루 시 틀었었다. 그 전에 응원가 부를 시간이나 달라고 이 양반아
  • [4] (빰빰 빰빠바밤) 기! 아! 김주찬! (빰빰 빰빠바밤) 기! 아 ! 김주찬! Everybody Say 기~아~ (김주찬! 김주찬!) x 4
  • [5] 기아의 김주찬 기아의 김주찬 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 허우 허우 기아의 김주찬 김주찬 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 (x 2) 한때 '장송곡'이라는 비아냥 받으며 까인 응원가였지만, 의외로 중독성이 있어서 많이 불리고 있다(...)
  • [6] 한때 서재응의 응원가와 동일한 곡인 I can't stop loving you를 롯데시절에 썼다만, 기아로 오면서 동일한 곡을 서재응이 쓰고있는지라, 응원가가 바뀌었다. 그 응원가는 송승준이 현재 쓰고있다.
  • [7]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노래는 Steppin' To The Bad Side로 김주찬의 등장곡이다.
  • [8] 훗날 김주찬이 KIA로 이적하게 되었을 때, 어떤 기사에서는 이종범의 공백이었던 우익수 자리를 메워줄 선수라고 평가받았다.
  • [9] 이 경기 전까지 삼성은 13연승을 달리고 있었고, 더불어 이 경기에서 9회까지 1:2로 삼성이 지고 있었으나 주장 김기태가 극적으로 솔로홈런을 치면서 동점까지 따라갔다.
  • [10] 충암고 시절엔 유격수였다. 그의 내야 송구가 엉망이 된 이유에는 고교 시절 몇 차례 투수로 등판했다가 송구 폼이 변해서라는 설이 있다.
  • [11] 하지만 백인천 감독을 비난할 수만은 없는 것이, 김주찬이 갖춘 툴을 감안해 보면 30-30 같은 것이 완전히 가능성이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백인천 감독의 무리한 장타 교정과 김주찬 개인의 불성실함이 낳은 하모니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 [12] 하루가 멀다하고 삽질을 거듭하며 까이다 보니 현란한 언어솜씨로 김주찬을 까는데 도가 튼 한 야갤러가 명성을 얻는 일까지 생겼다. 어록
  • [13] 단 성공률은 64%로 그리 높지 않다.
  • [14]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 중 뒤에서 2등.
  • [15] 도루만 놓고 보자면 커리어 하이.
  • [16] KIA와의 계약 내용에서 옵션 4억에 계약금 26억원이라는 내용을 참고. 성적 및 기타 고과사항에 따라 달라지는 옵션과 4년 연봉 20억을 제외한 26억원은 심정수에 이어 총액으로 역대 2위(이택근과 공동)이며, 작년 넥센 히어로즈와 계약을 맺었던 이택근의 계약금 16억보다도 무려 10억이 더 많은 금액이다. 과감한 혹은 무리한 배팅이었다는 것이 중론. 그러나 막상 시범경기와 개막전에서의 모습은 50억이 아깝지 않다는 반응.
  • [17] 김주찬의 계속 된 안타로 점점 40연속 안타가 늘어나면서 수령액이 줄어들고 있다
  • [18] 이전 기록 이종도(1983), 민병헌(2014)
  • [19] 그러나 부활한 후로는 볼넷이 매우 적지만 삼진도 많지는 않은 전형적인 성공한 배드볼 히터이다. 메이저리그로 치면 천조국의 김주찬칼 크로포드일억리(...) 선생, 혹은 게선생과 유사한 수준. 사실 멀리 미국 갈 거 없이 전성기 라뱅만 해도 볼삼비가 막장이 아니다.
  • [20] 김주찬 외에 두산 민병헌, 장민석과 KIA 신종길, kt 이대형 등이 이 유형에 속한다. 한국에선 상당히 드문 타입인지라 제대로 된 노하우가 없어 코칭스태프들이 육성하는데 애를 먹는다. 그나마 이 계열에서 성공한 선수라면 대표적인 "몸야구"로 손꼽히는 LG의 이병규(라뱅) 정도. 다만 이병규의 경우에는 센스도 탑재하고 있다.
  • [21] 2007 시즌 막판에는 그 보기 어렵다는 글러브 토스 홈런을 만들어 준 일도 있었다.(…) 2008 시즌에는 부상 전까지 준수하게 수비하다가도, 부상 이후는 OME급 수비를 보여주었다.
  • [22] 이 때, 실제로 유재웅의 머리를 직격하는 송구를 해서 그 공이 관중석까지 튀겨 날라갔다. 충공깽
  • [23] 2010년 8월을 기준으로 BB/K 비율이 0.35로 풍기라고 불리는 가르시아보다도 낮다.
  • [24] 이 정도의 비율은 BB/K 비율이 높기 마련인 각 팀의 1번 타자들과 비교해도 중간은 되는 정도. 롯데에서 2011 시즌 1번을 맡은 전준우보다는 훨씬 나은(비록 풀타임 출장이 아니긴 하지만..) 비율이다.
  • [25] 타격과 수비 시에 뇌를 갈아 끼운다는 농담까지 있다.(...)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실제로 갈아끼운다! 19금
  • [26] 김주찬 응원가로 쓰일 때만 해도 똥망한 응원가 취급을 받았는데, 전준우 응원가로 바뀌고 나서는 타팀팬들도 극찬하는 응원가로 재탄생되었다. 김주찬이 쓰던 시절의 응원가는 찬.찬.찬.찬 쎄리라 쎄리라 롯데 김주찬.
  • [27] 위 사진의 좌측 하단에 강영식도 보인다. 좌측 상단부터 SK 윤길현, 한화 김수연, LG 류택현, 당시 두산 소속이었던 나주환, 당시 KIA 소속이었던 김경언, 김주찬. 좌측 하단부터 당시 삼성 소속이었던 강영식, 당시 현대 소속이었던 이상열.
  • [28] 참고로 우승은 한화 김수연이 했다. 2010 시즌에 이 사진이 다시 회자되었는데, 삼성의 강영식은 롯데로, 현대의 이상열은 LG로, 두산의 나주환은 SK로, KIA의 김경언은 한화로 이적했다. 전구단 이름이 한번씩 나왔네
  • [29]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선 김주찬 인터뷰를 번역(…)해주는 갤러까지 있다.
  • [30] 특히 '직구였고요'를 대략 지꾸여꾸여 라고 발음하는 바람에 이 말은 김주찬의 발음을 놀리는 대표적인 단어가 되었다.
  • [31] 롯갤에서 충암고 출신 친구를 둔 모 갤러가 푼 썰에 따르면 김주찬은 팀 선배 조성환과 함께충암고출신인데 조성환은 주기적으로 야구용품을 싸들고 모교를 방문해 후배들을 독려하는데 반해 김주찬은 한번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 [32] 사실 김주찬과 서인영의 주선도 자칭 한국스포츠의 에이전트를 자처하는 어느 분이 주도했다고 한다.
  • [33] 닉네임 '정석'이라는 야갤 유저가 크보 최고의 얼짱이라는 제목과 함께 포토샵이 진하게 된 김주찬 사진에 크보얼짱 주처찡이라는 꾸준글을 올리면서 생겼다. 프로야구매니저 유저라고 밝혔으며 아이디는 꼴레발은죄악이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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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3 20: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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