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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

last modified: 2015-04-04 21:56:59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그맨 김진철
1.1. 개요
1.2. 폭행 사건
1.3. 사건 이후의 행적
2. 야구인 김진철

1. 개그맨 김진철



그의 젊은날의 과오 어째 오성과 한음에서 입는 옷이 떠오른다. 자학개그?
개그계의 대표적인 답이 없는 놈들
빠따맨
대한민국코미디언이라 쓰고 양아치라 읽는다. KBS 공채 십팔?18기.


1.1. 개요

1979년 3월 27일생. 1남 2녀 중 셋째.

2005년에 있었던 후배 기합/폭행 사건으로 말미암아 개그계의 흑역사이자 그 이후 세간에 천하의 개쌍놈 수준으로 낙인찍힌 쓰레기 개그맨이다. 또한 그간 개그계에서 '군기'라는 미명하에 암암리에 자행된 지저분한 관행들을 표면화시킨 산 증인이기도 하다.

1.2. 폭행 사건

  • 이 항목부터는 예의상 읽는 사람들의 안구가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김진철의 이름은 모두 취소선 처리 되어있습니다.

흑역사. 개그콘서트에서 빚어졌던 수많은 흑역사 가운데서도 단연 최악의 이슈를 일으킨 주인공 되겠다.

그는 데뷔 직후인 2004년까지만 해도 당시 26세의 나이로 개그 콘서트 봉숭아 학당 코너의 깜빡이, A YO!의 MC 깜빡, 깜빡 홈쇼핑 코너의 김깜빡, 폭소클럽해병대 교관 등으로 출세하여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5년 5월 후배 개그맨[1]인 김지환을 각목으로 허리를 폭행한 사실이 까발려져 구속되어 수감되었다. 게다가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었고, 이미 그보다 1개월 전인 4월 초에 분장실에서 김지환의 동기 9명이 보는 가운데 "선배 대접이 건방지다!" 며 각목으로 5회 폭행했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김진철에게 맞아 중태에 빠진 김지환은 김진철의 가족들에게 위자료는 물론 치료비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2] 김진철 가족의 간곡한 설득으로 치료비만 받기로 했다는 대인배적인 풍모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방송에 나와서 눈물을 흘리며 공개적으로 김지환에게 사과를 하는 찌질한 모습을 보였다. 찐따같은 색기

합의서 전문.

갑 김지환 을 김진철 위 갑은 을로부터 전치 6주 상당의 폭행을 당했으나, 갑이 을의 가족으로부터 백배의 사죄를 받고 을이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본인도 공인으로서 일정 부분의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일체의 위자료 없이 을의 처벌을 원치 않아 본 합의서를 작성합니다. 2005년 5월 12일 김지환

참고로 이 과정에서 2005년 5월 4일 녹화가 끝난 직후 KBS 개그맨 공채 20기[3] 중 14명을 연구동 옥상으로 불러내 원산폭격을 시켰다는 진술도 확보했는데 # 이 공채 20기는 구옥분, 김선하, 김재욱, 김지환, 김진, 노우진, 박휘순, 변승윤, 신고은, 신봉선, 유민상, 이동윤, 이상구, 정경미, 조지훈 등 전부 15명이며 이들 중 단 1명인 신봉선[4]을 빼고, 그것도 방금 막 방청객들 앞에서 공연을 끝낸 직후에 김진철의 명령으로 바닥에 머리를 박고 엎드려뻗쳐를 했다는 얘기가 된다. 흠좀무. 게다가 밖으로 드러난 것만 이 정도이니 실상에 대해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5] 이러면서 타인에게 웃음을 파는 개그맨이라니 이건 뭐(...)

그가 일으킨 후배 폭행 사건은, 유난히 현실은 시궁창 사례가 많은 개그콘서트 개그맨들 중에서도 단연 역대급으로 최악의 병크였다고 손꼽을 만하다. 이런 와중에 "나도 선배한테 맞으면서 컸다." 는 변명 아닌 변명을 했으니(...)[6] 여기에 대한 '개그계의 군기 관행' 내용은 군기 항목을 참조하자.

이 사건 당시, 대선배 심현섭도 나서서 후배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개그맨 특유의 끈끈한 유대관계가 허물어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일침을 놓았다. 실제로 심현섭은 가장 군기를 잡지 않는 개그맨에 속했고 이미 심현섭 세대만 해도 이런 똥군기는 오래 전 1980년대의 선배들의 무용담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로 구세대의 악습 정도로 치부되는 상황이었다는 것. 여기에 따르면 김진철은 이미 사그러져가던 악습을 되살리고 몸소 주도했다는 것이 된다. 물론, 실제로 그 전에 똥군기가 사라졌었는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 시절을 몸소 경험한 심현섭조차 김진철에게 경악할 정도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지환이 합의를 받아들임으로써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풀려나긴 했지만, 이후 방송가에서는 사실상 매장되었고, 웃기지도 않은 인간이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KBS 개그콘서트 게시판에 가보면 김진철의 개그가 웃기다는 반응은 눈을 씻어도 찾기 어렵다. 오히려 아직도 저런 인간 쓰레기가 왜 나오냐는 반응도 있다.

1.3. 사건 이후의 행적

사건 1년 뒤인 2006년 4월에 '뻐꾸기 위원회' 라는 코너에서 김아롱 장관이라는 캐릭터를 들고 컴백했지만 함께 개그한 박휘순윤형빈까지 뻘쭘하게 만들며 시망했고(...) 그 해 말 봉숭아 학당에 나사빠진 캐릭터로 복귀했으나[7] 몇 회 되지 않아서 새로운 PD가 봉숭아 학당 코너를 폐지해버리면서 자연히 소리소문 없이 묻혔다. 그러다 봉숭아 학당이 부활한 2008년 4월에 다시 나사 풀린 캐릭터를 들고 돌아왔는데, 역시나 반응이 없어서 도태되었다.

이 처지를 반영해서인지 코미디쇼 희희낙락의 '스피드 고고' 라는 코너 속 코너인 '작전타임' 과 '24초' 에서는 대놓고 무시를 당하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자신 나름대로 죄책감 표현의 일환이었는지도? 하지만, 여기서도 별로 웃기지 못했다[8]. 아이디어를 누가 짰는지와는 별개로 개그 형식이 츳코미 타입으로 틀에 박힌 것과 과거 '스피드 고고' 때 저평가를 받은 것에서 보이듯 '중추적 역할' 을 맡으면서도 코너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은 실드를 쳐주기 어렵다.[9]

2010년에는 슈퍼스타 KBS 코너에서 박진영 캐릭터를 들고 다시 컴백. 하지만 박진영과의 싱크로를 제외하면 그저 심사위원석에 앉아있을 뿐인 코너에 존재할 이유가 없는 병풍 역할이었다. 본인도 그걸 인지했는지, 전신 비닐옷이라든가 을 좋아하는 기믹으로 갔다. 결국 해당 코너에서 오래 못 버티지 못하고 스리슬쩍 사라졌다.

이후 신 코너 엑스트라에서 PD 캐릭터를 맡았지만, 레디 액션과 엑스트라들에게 짜증내는 거 말고는 하는 거 별로 없었다. 게다가 그건 전술한 코미디쇼 희희낙락의 '작전타임' 에서 맡았던 농구단 코치를 그대로 가져온 기믹이며 토요일 밤 방영하는 개그스타에서도 PD에서 교사, 그리고 매니저로 배역만 바뀌었을 뿐 하는 개그가 발전하는 것도 없이 진짜 똑같다. 이젠 아예 정체성이 되어버린 것 같다(...).

2010년 9월 4일에는 4년 연하의 커플매니저 김현정과 결혼. 2009년 10월에 MC로 참여한 행사장에서 눈이 맞은 것이 인연이 되었다고... 후배들한테 한 짓을 보면 심히 아내가 걱정된다.

여러모로 폭행을 저질러서 영구제명된 성우와 비슷한 인물.

그런데 개그 콘서트 공식 홈페이지의 개그맨 명단에서는 여전히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해당 링크. 복귀 이후 개그콘서트 코너인 '엑스트라', '슈퍼스타 KBS' 에 출연할 당시에도 이 링크 명단에 없었다. 27기 공채 업데이트 이후 명단 부진 탓을 할 수도 있겠으나, 사건 직후부터 27기 공채 시점까지 계속 무대에 얼굴을 내보이는 동안에도 이 명단에서는 쭉 제명당해 있었다. 즉 방송사 입장에서도 그의 존재는 잠정적인 흑역사.

개그 콘서트 쪽엔 거의 얼굴도 못 내밀었고, KBS 2TV에서 토요일 밤에 하는 아마추어 개그[10] 프로그램 개그스타 시즌 2에서 이봉원 홀의 도개걸스에서 여장남자 발레리노들의 매니저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여기에서도 기존의 역할에서 전혀 발전이 없이 멤버들에게 짜증만 내는 츳코미 역할만 계속 밀어붙이고 있었다.

2011년 7월 10일자로 개그콘서트 601회자에 코너 앗싸스쿨에 선생님 역으로 복귀하였으나, 그 다음주 방영분부터 나오지 않았다. 이 사람하고 코너를 진행하면 1주만에 잘리는 징크스라도 생긴 모양(...)이다.

2012년 1월 8일자 팀명 징크스의 감독 역으로 복귀했다. 그런데 징크스라니?! 다행히도 1주만에 짤리는 것은 피했지만 한 달은 넘기지 못하고 끝났다(...).

설 특집 프로그램인 '개그 월드컵' 의 16강전에서 후배 3명과 함께 참전했지만, 매우 더러운 개그{인간 분수(...)}를 선보여 경고를 맞고 이후 이어진 상대편 공격에 넉다운. 근데 이때에 분명히 한 때 전성기였던 '깜빡이' 캐릭터를 언급했는데 기억을 못하는 모습을 보여 진짜 깜빡이가 되어버렸다(...). 안습.

그러던 중 1대 100 개그콘서트 특집에 출연했다. 방송이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방송에서 보인 바로는 개그맨들과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듯하다. 서수민 PD가 온 뒤로부터는 오랫동안 놀아서 걸어다니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책도 읽으며 많이 유식해졌다면서 서수민 PD의 자식들이 개그맨을 하고 싶다고 하니까 김진철은 본인 자식은 PD를 시킬 거라고... 퍽이나... 이후 김진철갑을컴퍼니라는 코너로 복귀했다. # 그리고 타 코너들과는 달리 마지막 회였던 2013년 3월 10일까지 쭉 갔다.

그리고 2013년 5월 12일에 이혜석, 곽범과 함께 오성과 한음이라는 코너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전까지 주구장창 보여줬던 잔소리만하는 캐릭이 아닌 찌질한 백수 역할로 변신을 시도함으로써 데뷔 후 거의 9년만에야 그나마 다른 역할을 맡게 되었다. 두 명의 힘없는 백수의 대화 & 끝없는 캐치볼이 주 내용이다. 다만 츳코미 요소만 없앴다 뿐이지, 찌질이라는 컨셉 자체는 이전에도 자주 내보인 바 있는 본인 속성을 잘 살린 컨셉이다. 이 코너 역시 갑을컴퍼니만큼 제법 장수했으며, 2013년 11월 24일까지 6개월이나 갔다.

2013년 9월 8일부터 2013년 10월 27일까지는 세명 중 이혜석과 함께 엔젤스로도 오성과 한음 것과 똑같은 복장으로 활동 중이었다.

세월이 약인지 망각이 독인지, 재미없다고 욕은 먹을지언정 후배들 기합 폭행 거론은 줄어든 편이다. 물론 동시에 그의 전성시절 개그(김깜빡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로 거의 잊혀졌지만... 이렇듯 워낙 존재감이 희미해지다보니 요즘 시청자들은 "저 듣보잡은 뭥미?" 라며 갓 입성한 신인 개그맨 취급하는 경우도 많을 정도다. 워낙 재기하려 노력을 많이 하다가 거의 10년만에 신인개그맨 취급을 받으며 복귀를 했으니, 어느 정도의 죄값은 치른 셈이다. 그리고 다른 개그맨들과 그럭저럭 지내고 있는 점도 한 몫. 인기가 식어감에 따라 2015년 들어서 다시 개콘에서 활약하는 모습은 없어져버렸지만...
반성의 여부는 앞으로의 행적 및 소식을 통해서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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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하지만 나이는 김지환이 3살 위였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보면 동갑으로 나온다. 응?
  • [2] 합의 자체를 거부했다는 것을 보면, 심하게 화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 [3] 20기 특채인 변기수, 윤형빈, 이종훈 제외.
  • [4] 신봉선은 당시 병을 앓고 있어서 김진철이 얼차려에서 열외를 시켰다.
  • [5] 참고로 이 20기 멤버들은 2005년에 확정되었으며 김진철은 2003년 뽑힌 18기.
  • [6] 사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굳이 배경을 설명하자면 개그계는 상하간의 규율이 군대와 체대에 버금가게 엄격해서 조금만 트집이 잡혀도 단체로 나가서 구르고 맞는 일이 많긴 했었다고... 이후로는 많이 줄어든 듯. 하지만 설령 그런 사실을 참작하더라도 악습을 개선하려고 하기는 커녕, 오히려 거기에 제대로 일조했다는 점에서 결코 용납이 될 문제는 아니다.
  • [7] 이 때에도 안상태의 후광을 빌려 필사적인 김깜빡 기믹으로 처절하게 굴었다.
  • [8] 코미디쇼 희희낙락은 게스트 개그맨들이 저마다의 코너를 평가하는 제도가 있었다. 여기서 김진철의 코너는 늘 하위권(...).
  • [9] 박성호 항목의 각주에서 보이다시피 개그맨은 크게 네 종류가 있다. 개그맨 구실을 하려면 아이디어고 살리는 능력이고 하나는 필요하다는 소리다.
  • [10] 일부 선배급을 제외하면 공채 개그맨들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추어 맞다. 애초에 이 프로그램의 취지가 아마추어 속 숨은 진주의 선발.

2. 야구인 김진철

한국프로야구의 전 선수, 스카우터, 프런트. 선수시절 포지션은 포수이다.
인천고인하대를 졸업하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원년 멤버로 입단하였다. 프로야구 출범 원년인 1982년 타율 0.130을 기록한 이후에 사실상 은퇴하였다. 선수 은퇴 후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에서 프런트로 근무하였다. 1989년부터 스카우터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팀이 현대 유니콘스로 바뀐 1996년부터는 스카우트 팀장으로 신인지명을 도맡아 하였다. 이중에서 박재홍, 김수경, 조용준, 이동학, 오재영까지 5명의 신인왕이 배출되었다.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된 이후 2008년 KIA 타이거즈 수도권 지역 스카우터로 부임했다가, 2009년 LG 트윈스의 스카우트 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시기에 역시 태평양, 현대 출신인 염경엽 운영팀장과 엮여서 파벌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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