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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촌

last modified: 2015-03-02 18:00:44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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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로완 닮았다 최규석도 닮았다. 내귀에 캔디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1]와 함께 언론에 3대 패밀리로 불리던 폭력조직 서방파의 두목. 이라고 쓰고 전국을 양념바다로 만드는 김교촌이라고 읽는다

김성모의 조폭만화에서는 김고촌으로 패러디된다. 김고촌의 외모는 살집이 있어서 실제 김태촌과는 꽤 많이 다르다. 그렇다! 내가 바로 고촌·치킨이었다![2][3]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태어났으며 광산군 서방면[4]에서 자랐다.[5] 20살도 되기 전에 3차례나 소년원을 들락날락거렸다.

어린 시절 개신교를 믿어 신앙심이 깊고 행상을 하던 어머니가 아무 잘못도 없이 깡패들에게 행패를 당하고, 무릎을 꿇고 비는 것을 보고 아무 힘도 없는 신에 대한 실망감에 교회의 유리창을 깨부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김태촌은 운동을 시작했으며 아이들을 모아 어머니를 괴롭힌 깡패들에게 복수를 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세번이나 소년원을 들락거린걸 보면 자신이 조폭이 된 것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한 거짓말일수도 있고, 실질적으론 깡패들과 서로 보복전을 계속한 듯.

소년원을 들락날락 거리면서 같은 전남 출신인 조양은과 만나기도 했다. 김태촌이 조양은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데, 서울로 진출했을 때는 둘 다 20살을 조금 넘긴 약관의 나이였다(…).

둘 사이에는 미묘한 갈등이 있었는데, 나이로는 김태촌이 조금 더 많지만 조양은이 더 빨리 상경해서 전국구 조폭이 되었으며, 특히 신상사파와의 항쟁으로 조양은이 세력도 커지고 적도 많아지면서 조폭계의 핫 아이콘(...)이 되자 김태촌은 신상사 및 호남계 선배들의 힘을 업고 조양은을 치게 된다. 여기에 김태촌을 견제하기 위해 불러들인 이동재가 끼어들면서 80년대를 주름잡게 되는 이들은 김태촌파, 양은이파, OB파로 소위 호남계 3대 조폭의 항쟁이 시작된다. 한참 후의 각자의 회고담도 웃긴데, 조양은은 자기가 주도해서 김태촌, 이동재와 만나서 자기가 큰 형, 이동재가 둘째, 김태촌이 막내가 되기로 하고 항쟁을 끝내자고 했으나 김태촌의 배신으로 계속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태촌은 자기가 나이가 가장 많고 이동재는 한참 어린데 무슨 큰 형이 조양은이었냐면서 그때의 만남은 호남 조폭 선배가 불러서 얼굴 한 번 봤을 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시대의 조폭들은 김태촌, 조양은에 대해서 '한때 반짝한 퇴물들' 이상의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1970년대에 서울에 상경해서 그보다 먼저 서울에 자리잡고 있던 조양은의 양은이파와 극심한 대립과 항쟁을 벌였다. 결국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 사건[6]으로 체포되면서 항쟁은 막을 내린다. 한편 김태촌과 선배 조폭을 모두 제거한 조양은은 전성기를 누리다가 1980년 조직의 부두목을 습격해서 체포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95년 만기출소. 하지만 감옥에서 고래회를 먹는 등 호화생활을 했고 부하들은 내세워 전국의 휘하 조직을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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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김태촌의 부하들이 신민당 당사를 공격하는 당시 사진.

이처럼 정당의 당권 투쟁에 조직폭력배가 개입한 사례는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독재정권은 정보기관을 동원하고 돈과 조직폭력배를 이용해서 야당 내분을 조장하고 친정부적인사 일명 꾸라를 야당 주류로 만들려고 했다. 독재정권입장에선 설사 실패해도 돈과 조폭때문에 엉망진창이 되는 야당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일수 있으니 일석이조인셈...1986년 용팔이 사건이 대표적.

당시 이철승은 반독재투쟁에 회의적이었고, 오히려 '참여하의 개혁'이란 명분으로 독재에 협력하던 인물이다. 결국 1979년 5월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김영삼에게 패배한 이후로 배신자로 낙인찍혀 정치적으로 몰락한다.[7] 참고로 이철승은 경제적으론 그다지 몰락하지 않고 수꼴급 인맥 지원으로 되려 호강하며 살고 있다. 서울평화상을 시상하여 이 상의 존재의미에 대하여 반발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참고로 임화수 미화에 노골적으로 나서고 있으나 안될거야. 이철승 대표의 딸인 이양희 교수는 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여하튼 이 사건으로 김태촌은 신민당 노동국 차장이 되었으며 국회의원 공천 약속까지 받아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때 김태촌의 나이 고작 25세. 아무튼 이것으로 김태촌은 정계진출까지 꿈꾸게 된다.

80년에 폭력혐의로 구속되어 86년에 출소한 뒤 김태촌은 민중민주당[8] 전당대회에 참가하여 총재로 선출된 유한열[9] 의원의 측근이 되었으며, 김대중-김영삼 세력이 합작하여 창설한 주화추진협의회의 의장권한대행김상현을 도왔다. 김태촌은 김상현을 고향 선배로 깍듯이 모셨으며 공천 비용으로 진 빚을 해결하는데 힘을 써주는 등의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상현이 정권의 표적이 되자 남산에 끌려가서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3박 4일동안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야당인사와의 관계 때문인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조폭들이 자신의 경력을 미화하기 위해서 야당인사 연계설, 민주화 투쟁 운운 하는건 쉽게 찾아볼수 있다. 특히 호남조폭들의 회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막강한 공권력을 감안해봤을때 특히 군사정권 시절에는 폭력조직 하나 박살내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1980년대 조폭의 전성기는 모두 공권력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대형조직들은 공권력의 묵인하에 여/야 모두에 줄을 대는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김상현이 의장권한대행이었다는 사실관계도 틀린데, 민주화추진협의회가 창설하던 1984년 당시에는 김대중은 미국 망명중, 김영삼은 가택연금중이라 김상현이 대리로 활동했다. 하지만 1985년에는 김대중도 귀국했고, 김영삼도 가택연금이 풀려서 두 사람 모두 신한민주당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던 때다. 김태촌-김상현 관계에 대해서 정확한 사실확인 필요하다.

1986년, 상기에 언급됐다시피 6년의 형기끝에 출소한 김태촌, 그러나 바로 또다시 일을 치고 만다.
당시 유명했던 인천 뉴송도 호텔 사장 황익수씨 피습사건을 저지르고 지명수배되어 체포되었다.[10] 이 사건이 파문을 일으킨 이유는 공권력과 조직폭력배의 야합이 일부나마 표면에 드러났기 때문으로 문제의 박남용 검사[11]는 김태촌이 저지른 범죄현장에 경찰히 출동하면 압력을 넣어 출동명령 취소조치를 내리는 식으로 시시때때로 김태촌을 비호해 주었다.* 2004/04/09 SBS 그것이 알고싶다

2004.09월 14일 법원에 보호감호취소 신청을 했으나 기각된 김태촌은 수기를 쓰고 방송에 나온 이유에 대해 "의리는 없다. 조직폭력배에 대한 영화나 소설속의 이야기는 현실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나 소설이 미화하는 것은 믿지말라. 폭력배의 말로는 비참하다. 청소년들에게 이것을 말하기위해 수기를 쓰고 방송에 임한 것이다"고 말했다.


여러 차례 징역살이를 해 모두 합쳐 33년을 감옥신셀 졌음에도 불구하고 탤런트 권상우의 집을 피바다로 만든다는 협박을 하거나 하는 등 조양은처럼 갱생못하고 살아가는 인생 중 하나다.

위에 폭력배의 말로는 비참하다며 했던 TV출연에선 자신의 인생을 더러 "권력 하수인" 이었다고 칭했는데 개심해서 그 하수인 인생을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난 권력에 이용당했다! 나쁜건 내가 아니다!"는 상황.

사건과 관련해 그가 전화로 남겼다는 피바다 발언("나 김태촌인데, 내가 지금 너희 집을 피바다로 만들어도 상관 없다 이거지?")은 인터넷 공간에 오르면서 수많은 패러디를 낳아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유인촌, 믹키유천 등이 본의 아니게 이 패러디의 희생자가 된다.[12] 자세한 것은 나 ○○○인데 항목 참조.

당시 김태촌은 진주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였고 교도소 내에서 교도관에게 뇌물을 증여하고 그 대가로 휴대전화 불법사용을 허용받았고, 그 전화로 권상우에게 전화를 걸어서 일본에서 팬미팅을 할 것을 요구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검찰은 팬미팅 요구에 대해서는 강요미수죄를 적용하고, 뇌물증여는 증뢰죄를 적용해서 공소를 제기하였는데, 대법원에 가서 강요미수는 무죄가 나오고 증뢰죄만 유죄확정 되었다. 강요죄는 의무없는 일을 행하게 하는 것인데, 권상우가 고급 시계를 받았기 때문에 팬미팅에 대한 대가로 볼 수 있어서 김태촌이 의무없는 일을 강요하고자 하는 고의가 없다고 하여서 고의가 조각되어 무죄가 나온 것이다. 이 때 휠체어를 탄 채로 경찰조사를 받고 나오며 권상우에게 전화를 한 사실에 관해 기자들이 질문하자 김씨가 하는 말이.

"팬의 한명으로서 전화했습니다." 라고.

활동할 때에는 국제적 활동도 왕성했는데 1990년에도 야쿠자와 연계하고, 2006년에도 연계하는 기사가 뜨는 걸보면 야쿠자와도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다.

건강면으론 평생 폐건강이 좋지 않았다. 1989년에는 폐암 진단을 받았고 1990년에는 폐암을 호소했으나 당시 원자력 병원에서는 폐암설을 부정 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5년 기사에는 폐암 말기판정을 받았는데 전이 없이 폐 절제 수술이 성공해 결국 2013년까지 생존했다. 왜??

이 때 한쪽 폐를 적출했기 때문에 직접 인터뷰했던 시사in 주진우 기자가 나는 꼼수다에서 묘사하기로는 목소리 톤이 보통사람보다 두 옥타브나 높아서 실제 들어보면 상당히 웃기다고 한다. '어떻게 나한테 그럴수 있어?', '그런가? 차~암 건방지네' 등의 성대모사가 빵 터지는 바람에 나 ○○○인데처럼 살짝 희화화 되기도 하였다.


2013년 1월 5일 오전 0시42분에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숨이 넘어갔다.# 생전 그의 부하 조직폭력배 500여명이 그의 장례식에 문상을 왔다.# 이에 만약의 사태를 우려한 경찰은 장례식장에 집중감시병력을 대폭 증가시켰으나 다행히 김태촌의 장례식은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야구 해설가 하일성, 조용기목사, 가수설운도등 유명인들의 화환이 장례식에서 보이기도 했다. 뭔가 있어

그렇게 김태촌은 죽어버렸다.

그의 후임으로 서방파 두목이 되었다고 알려진 나모씨는 2013년 2월 12일에 청담사거리에서 호남 최대의 폭력조직에 의해 납치당했다가 감시가 소흘한 틈을 타서 도주 후 경찰에 신고했다.#뭐야? 누가 어디에 신고했다고?[13] 이 희한한 납치사건에 대한 분석이 2013년 4월 27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다루어졌다. 그런데 이 방영분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정작 피해자(?)인 나모씨는 서방파 두목같은 거창한(?) 타이틀인 사람도 아닌 그냥 단순한 이해관계의 사업자 일반인이었다. 다만 한때 김태촌의 밑에서 있었던 적은 있었다고한다. "나더러 조폭후계자라 하는것은 언론들이 오보한것이다" 주장하고, 그를 납치한 조모씨(앞서 말한 그 납치한 폭력조직의 수장)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앉아있다 조씨측에서는 "김태촌의 양아들인 김모씨가 김태촌 조직의 현 실세다" 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취재진에서 취재한 결과 김모씨는 김태촌 조직의 실체라고 하기에는 블러핑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정확한 진실은 오리무중이나 엉뚱하게도 이 납치사건이 한 중견 기업을 주가조작한 사건에 얽힌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이 기업을 주가조작한 세력 일부가 위 납치사건과 관련된 조직들의 소행이라는 심증이 있다는 것이다. 1990년 후반부터 조폭들은 단순히 폭력조직에서 벗어나서 합법적인 기업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폭하면 흔히 떠올리는 유흥업소와 주류유통은 물론 건설업에 대금업과 주식거래, 벤처캐피털 등 합법적인 금융업까지 손대고 있다. 물론 제버릇 개못준다고 여기서도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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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정확히는 OB동재파로 보스는 이동재. OB파는 반란, 분열, 해체, 재건 등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계보가 매우 복잡하다. 이동재는 1980년대 후반 양은이파 조직원들에게 습격당해 장애인이 되었으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부두목급들이 여러 방계 조직을 만들었다.
  • [2] 놀랍게도 고촌·치킨은 조직폭력배 출신 경찰관이다. 그것도 일반 순경이 아닌 경찰서 반장으로 이쯤되면 계급도 경감이다.
  • [3] 패러디 내용은 교촌치킨 + 김태촌인데 그래서 등짝에 닭 문신(…)이 있다.
  • [4] 현재의 광주광역시 북구 일대에 해당된다.
  • [5] 그래서 조직 이름도 서방파. 'XX파' 식의 단체 이름은 조직 스스로 짓는 게 아니라, 검·경에서 수사 및 관리 편의를 위해서 붙이는 것이다. 조직 스스로 단체 이름을 짓는 것은 폭력단체 결성을 스스로 인증하는 꼴이기 때문이며, 실제로 조직폭력배들은 기업으로 위장하거나 특정한 이름 없이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보스 이름이나(ex.양은이파, OB동재파), 거점이 되는 유흥업소 이름(ex.부산21세기파, 전주월드컵파), 혹은 지역 이름용산 빽시디파을 사용한다.
  • [6] 당시 반독재 투쟁에 관심이 없고 참여 하의 개혁이라는 슬로건 아래 그저 권력획득에만 눈이 멀어있던 이철승 국회의원이 조직폭력배를 이용해서 당권을 장악하려고 한 민주당계 정당 역사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다.
  • [7] 이때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은 자신의 측근들에게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김영삼을 지원해서 이철승을 무너뜨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 [8] 1985년 신한민주당 내에서 당시 민정당이 주장하던 의원 내각제 개헌 수용을 주장하던 유한열 국회의원 등 12명이 '신보수회'라는 당내 서클을 만든 다음 이듬해인 1986년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만들었던 정당이다. 1987년 다시 신한민주당과 합당하였다. 그러나 대표인 유한열을 위시해서 대부분이 다시 민주정의당, 한나라당으로 들어갔다.
  • [9] 1950년대부터 야당의 거물이던 유진산의 아들. 충남 금산을 정치적 기반으로 여러차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1990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다.
  • [10] 여담으로 황익수씨 2004/04/09 그것이 알고싶다 분량에 반신불수 상태로 침대에 누워 출연했는데 '나도 김태촌도 다 피해자'라고 하였다
  • [11]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초라하게 살고 있었다.
  • [12] 예를 들면 "나 유인촌인데 너네 집 TV에 역사스페셜만 나와도 상관없다 이거지?" 또는 "나 미끼유촌인데 하루만 니 방의 침대가 되어도 상관없다 이거지?" 등 다양한 버전으로 패러디됐다.
  • [13] 그런데 실제로 조폭들은 법과 경찰을 교묘히, 그리고 일반인들보다 훨씬 많이 이용하고 그 수혜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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