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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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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No.86
김한수(金翰秀)
생년월일 1971년 10월 30일
국적 한국
출신지 서울특별시[1]
학력 강남초-신월중-광영고-중앙대학교
포지션 3루수, 1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2차지명 1라운드(전체 8번)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1994~2007)
응원가 실로암[2]
지도자 경력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2008)
삼성 라이온즈 2군 수비코치(2010)
삼성 라이온즈 1군 타격코치(2011~현재)

1998 ~ 1999년 한국프로야구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홍현우(해태 타이거즈) 김한수(삼성 라이온즈) 김동주(두산 베어스)

2001 ~ 2004년 한국프로야구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동주(두산 베어스) 김한수(삼성 라이온즈) 이범호(한화 이글스)

2002년 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상
박진만(현대 유니콘스) 김한수(삼성 라이온즈) 최기문(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0번
박철수(1992~1993) 김한수(1994~1995) 박근영(199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5번
김종국(1993~1995) 김한수(1996) 양용모(1997~1998)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번
김성래(1984~1996) 김한수(1997~2008) 조동찬(2009~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6번
한대화(2004~2009) 김한수(2010~ )

삼성 라이온즈 역대 주장
김태균 김한수(2002 ~ 2003) 진갑용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4. 여담
5. 연도별 성적

1. 소개

소리없는 강자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1994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2007년에 은퇴할 때까지 줄곧 삼성 라이온즈에서 뛴 프랜차이즈 선수다. 주 포지션은 3루수. 2008년 4월 30일 은퇴식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2008년에는 2군 코치로 활동했다. 등번호는 50번-25번-5번 순이며 코치시절에도 5번을 달았지만[3],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코치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2010 시즌에는 86번으로 등번호를 바꾸게 된다.

현재 삼성 라이온즈의 1군 타격코치로 활동 중.

2. 선수 시절

초등학교 5학년 때에 야구를 시작했으며 장종훈을 존경했다고 한다. 또한 양준혁과 마찬가지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할 뻔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또 아버지 김영복 씨(작고)가 1950년대 실업야구를 주름잡았던 명 3루수 출신의 야구인이시다. 대를 이어 야구를 하고 있는 셈. 덧붙여 아버지의 현역시절 등번호도 아들과 같은 5번...

핫코너의 본좌, 김성래 - 김한수라는 삼성의 5번라인 중 한명. 한때 김종훈과 함께 삼성의 가을야구의 쌍두마차로 역임을 했다. OB 베어스 - 두산 베어스안경현 - 장원진에 뒤쳐지지 않는 최강의 쌍두마차로 꼽히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95 유니폼의 전성 시대를 이끌었던 3김 타자 중 한명(나머지는 김종훈, 김재걸) 단 나이로 보나 커리어로 보나 인지도로 보나 이쪽이 한 수위.

주전 3루수였던 김용국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 되자 우용득 감독은 3루수 후보로 그를 낙점시켰다. 1995년과 1996년 사이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하게 되여 반쪽자리 선수가 되었고[4], 부상으로 시즌을 통째로 쉬기도 했다. 방위병에서 소집이 해제 된 이후에는 1997년부터 본격적인 두각을 나타나는데 당시 이승엽-정경배-김태균-김한수로 이어지는 삼성의 철벽 내야진 라인업으로 종횡무진 맹활약 하기 시작한다.

2000년 시즌 종료 후 만약 홍현우(현재 은퇴)가 삼성으로 갔었으면 김한수는 벤치워머 신세 내지는 자동적으로 팀 이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지만 삼성 프런트진들은 김한수를 믿고 홍현우를 포기했다는 일설이 있다.[5] 물론 이건 반 농담이고 삼성도 홍현우를 영입하려 했지만 금액에 부담이 커 영입을 철회했다. 이후에는 롯데와 KIA에 요청으로 트레이드 될 뻔했던 일화도 있었다. 하지만 김한수의 경우 의리와 정이 있었는지 은퇴할 때 까지 삼성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남았다. [6]

현역으로 뛰던 당시 국내 최고의 3루수였으며[7] 언제나 안정된 수비로 박진만, 김재걸과 더불어 삼성의 철벽 내야진 구축에 일조했다. 그의 폭풍간지 같은 수비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일품이다.[8]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 경쟁에선 두산 베어스김동주조차 그를 당해내지 못했다.[9][10]

팀의 가을야구 진출, 2002년, 2005년, 2006년 한국시리즈의 우승주역으로 활동했으며 2002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 할 때에는 팀의 주장으로도 활약했다.
별명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봤자 별명제조기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소리없이 강한 남자, 한수옹, 찬물옹찬물이란 별명은 현재 박용택이 이어받았다. 뭔가 다른 이유로 (...)[11] 등등 여려별명이 있었다. 특히 현역 시절 크게 눈에 띄지 않는것 같은데 찬스에선 유감없이 클러치 능력을 보여주었고 수비에서도 공헌도가 높아 팬들은 김한수를 소리없이 강한 남자 라고 입을 모아 칭송하기도.

등번호인 5번과 '달려라 김한수~'와 '날려라 김한수~'로 시작하는 응원가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12][13][14] 그의 등번호는 조동찬이 물려받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코치 연수를 받기도 했다. 사진으로 보자면 안경을 쓰고 있는데 혹시 동일인물이 아닐까 싶을 정도. 현역 시절 사진도 안경을 쓰는 사진이 보이는데 일상 생활 때는 안경을 쓰는 듯 하다.

선해 보이는 외모에 걸맞게 대인배로 유명하며, 성실함과 인성을 모두 갖춘 선수로도 알려져있다. 방위복무때 원정 때면 경산에서 찾아가 연습을 할 정도. 특히 요미우리 코치로 연수 중이던 도중에 일본 코치와 이야기를 나눠주기도 한다. 같은 팀의 김태균 코치와 친한 사이라고 한다.[15][16]

등번호 5번의 전 주인인 김성래의 기를 이어받았는지 몰라도 알게 모르게 굉장한 커리어 스탯을 지니고 있다. 통산 1497경기 출장[17]에 통산타율 0.289 149홈런, 1514안타, 782타점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 6회수상 최다 사구 2위, 최다 끝내기 안타 1위. 한 시즌 최다 병살타(2004년 23개). 괜히 소리 없이 강한 남자 겠는가?

특히 초구에 강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김한수의 타격론으로는 경기 말 찬스 상황에서는 투수가 수세에 설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던지려고 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구를 집중적으로 노리는게 타자 입장에서는 유리하다고.

3. 지도자 시절

2010년 시즌 후 1군 코치로 승격했다. 기존 1군 타격코치였던 타네다 히토시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로 옮겼다.대신 같은 등번호를 달았던 내야수 선배가 들어왔다.

팬들 가운데에서는 김태한[18], 김재걸과 함께 3金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물론 아주아주 안 좋은 의미로. 2011년에 류중일 감독이 공격야구를 시도하려 했으나 정작 원래 잘하던 최형우와 각성한 배영섭, 김상수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타자들이 전년대비 성적이 폭락했고,[19] 이렇게 침체된 타자들에게 김한수가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바람에 류중일 감독이 할 수 없이 기존의 공격야구를 하겠다는 계획을 전면 수정해 출루와 도루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야만 했다. 2012년김성래 타격코치가 수석코치로 승격했지만 타코도 겸임한 건 이 때문인 듯. 2012년에는 타격감이 올라오긴 했으나 코치진의 효과가 아닌 이승엽 효과 덕분이라는게 중론. 거기에 타격 스탯에서 최상위권을 찍었던 2012년에도 타선이 롤러코스터를 탈때 극복에 도움을 별로 주지 못했으며, 이 문제는 고질병이 되어 2013년에도 삼성이 선두 싸움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거기에 배영섭, 조동찬, 이승엽, 박한이, 박석민 등이 부진할 때 이를 전혀 극복하지 못하면서 김한수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졌다. 다만 2014년 팀 타율 3할을 달성하는 등 팀 타격이 상승된 점을 들어 김태한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사실 비교하는게 실례다. 이쪽은 성과라도 제대로 있지.[20]

그 외에 2012년에 크게 삽질하던 채태인을 그 다음 시즌에 부활시켰다거나, 그 시즌에 부진하던 이승엽을 그 다음 시즌에 3할-30홈런-100타점 타자로 만들었다거나 하는 데에는 김한수의 역할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4. 여담

덧붙여 前 LG 트윈스 선수인 최동수, 前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한화 이글스 선수인 권준헌과는 광영고등학교 동기이며, 최동수와는 대학도 동기다.#

은퇴 이후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에 와인바를 열었으며#, 2010년까지는 영업을 한 것으로 추정되나 이후엔 별다른 소식이 없다.

자신의 팬카페를 통해 매년 야구용품 자선경매를 열고 있다. 야구용품은 주변 동료코치나 선수들에게 기증받는듯.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출루율
1994삼성 라이온즈 103 279 .272 76 13 2 10 31 41 6 .441 .313
1995 34 92 .304 28 4 0 2 13 17 3 .413 .330
1996 30 54 .185 10 0 0 0 1 7 1 .185 .241
1997 124 466 .292 136 27 1 9 68 57 9 .412 .350
1998 126 463 .300 139 24 1 15 80 65 5 .454 .332
1999 128 497 .340
(4위)
169
(4위)
36
(3위)
1 18 88 87 7 .525 .391
2000 126 464 .263 122 26 1 7 57 54 8 .369 .322
2001 117 427 .311 133 29 2 13 61 59 3 .480 .366
2002 127 486 .311 151
(5위)
23 1 17 76 69 4 .467 .371
2003 131 478 .295 141 23 1 17 70 67 5 .454 .354
2004 133 498 .271 135 30
(3위)
1 16 84 60 1 .432 .335
2005 114 406 .293 119 18 0 15 73 55 1 .448 .372
2006 103 343 .254 87 15 0 7 54 41 6 .359 .340
2007 101 289 .235 68 11 1 3 26 25 0 .319 .283
통산 1497 5242 .289 1514 279 12 149 782 704 59 .432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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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선수 활동 시절에도 대구 출신으로 오해받곤 했다. 데뷔 초 선수시절에는 삼성의 나이 많은 팬분에게 "니는 경고(경북고) 아가? 상고(당시 대구상고, 지금의 상원고) 아가?" 라는 소리를 그렇게 많이 들었다고 한다(...).
  • [2] 날려라~ 김한수 날려라~ 김한수 날려라~날려라~ 김한수
  • [3] 김한수는 2004시즌 이후 4년 간 총액 최고 28억(계약금 10억, 연봉 4년간 4억 총액 16억, (플러스-마이너스)옵션 4년간 5천 총액 2억)의 FA 계약을 맺은 상황이었으며 2007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하긴 했지만 정확하게 따지자면 2008년에는 플레잉 코치 신분이었기 때문에 등번호 및 연봉(마이너스 옵션 5천만원이 깎인 3억 5천만원)을 그대로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후 (선수 생활이였으면 정상적으로 끝났을)4년간의 FA 계약이 끝나자마자 바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코치 연수를 갔으며, 등번호 5번은 조동찬으로 이어지게 된다.
  • [4] 그 시기에 이동수가 신인왕을 탔고 홍현우가 3루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 [5] 결국 2000년대 들어서 삼성에 남아있던 김한수는 포텐이 완전 폭발. 반면 LG로 간 홍현우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6] 일례로 2000년대 초반 삼성에서 두산에서 연봉 문제로 갈등이 있던 골든 글러브 경쟁자 김동주를 김한수와 맞트레이드로 영입하려는 시도를 실제로 했었지만, 두산에서 추가금을 요구하는 바람에 그냥 트레이드 안 하고 넘어갔다는 비화도 기사로 나온 바가 있다.
  • [7] 단 05시즌 부터는 1루로 전향한다.
  • [8] 그러나 99년 한 시즌 무실책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99년 김한수의 실책은 12개.
  • [9] 한국 프로야구 3루수 골든 글러브의 계보는 한대화-홍현우-김한수-이범호-김동주로 볼 수 있다. 김동주 입장에선 좀 억울할만도 한게 98-04시즌 가운데 김동주가 골글을 차지한건 00년 한해 뿐이었으며 나머지 6시즌 중 김동주가 김한수에게 타율이 뒤진 해는 한해 뿐이며 홈런은 모든 시즌에서 우위에 있었다. 타격성적만으로 골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 [10] 근데 수비 하나로 눌렀다기에는 논란이 많은 수상기록이다. 물론 수비실력이야 김한수가 우위였어도 대부분 타격성적이 김동주가 넘사벽이였며, 수비에서도 김동주는 국대에서 3루수를 볼만큼 돌글러브도 아니다. 삼성의 호성적과 김동주가 사생활 문제와 구설수로 논란을 일으키면서 김한수가 혜택을 받았다는 게 정설. 또 김동주의 경우 2000대 초반에 부상으로 지명타자로 나오기도 했었다.
  • [11] ...라지만 사실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7년에선 정말로 찬스때마다 찬물을 끼얹곤 했다. 다만 2007년 삼성의 타선이 김한수 뿐만 아니라 조평신브라더스, 김대익, 김종훈 등등 여러 선수들이 단체로 삽질을 하던 때인지라 상대적으로 덜 언급이 되는 편이지만......
  • [12] 그전 주인은 김성래.
  • [13] 논산훈련소 기독교 종교행사의 공식 주제곡(...) 실로암을 따왔다.
  • [14] 대구구장 장내 아나운서 경력의 김제동의 증언에 따르면 어째선지 이 노래가 경기장을 한바퀴 돌고나면 '달려라 이만수~'로 변질되었던 적도 있었댄다.
  • [15] 같은 중앙대학교 출신에, 1994년에 삼성에 입단한 동기에, 비슷한 시기에 군복무를 마치고 백골프의 총애를 받아 주전 3루수와 주전 유격수로 자리잡은 것, 그리고 각각 김성래강기웅의 등번호를 물러 받은 것 까지 둘의 공통점은 많은 편이다. 사실 위에 언급된 김종훈보다는 오히려 이 쪽이 쌍두마차의 성격이 더 강한 편이었다. 비록 김태균이 2002년 시즌 초 롯데로 이적하고, 그 이후에 삼성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여러번 하기 시작하면서 묻혀지게 되었지만 말이다.
  • [16] 참고로 김한수-김태균의 관계는 2002년 입단 동기인 조동찬-손주인이 2009년 이후에 이어받게 된다(조동찬은 2009년에 5번을, 손주인은 2010년에 6번을 달게 된다는 점, 그리고 둘 다 주전으로서의 활약을 상대적으로 못 보여줬다는 것(물론 조동찬은 2010년 군대로이드로 인해 각성하게 되지만)등이 김한수-김태균 관계와는 다른 편이긴 하다). 물론 이 쪽도 2012년 시즌 후 손주인이 LG로 이적함에 따라 지금은 깨진 상태이다. 역시 2호기1호기랑 붙어야 제맛. 근데 이쪽도 이미 깨진 상태인건 마찬가지
  • [17] 본인은 1500경기 출장 못한 게 아쉽다고..
  • [18] 김태한 대신 김성래를 넣는 사람도 있다.
  • [19] 특히 박석민은 2009년부터 20홈런 아니면 3할 둘중 하나는 무조건 기록했는데 2011년엔 둘 다 못했다.
  • [20] 과거에 이 항목에는 김한수 코치가 하는 일은 없는 무능한 코치라는듯이 쓰여 있는데, 삼성의 타격은 김한수 코치 부임 후 최강은 아니지만 뛰어난 타선이라는 평가가 주류이다. 그게 코치덕이 아니라면 코치가 왜 필요한가? 거기에 2014년 팀타격 1위의 원동력이 갓 프로 코치로 복귀한 신동주 덕분이라는 논리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논리.안티가 작성한듯. 팀타율 6위를 기록했던 2011 시즌은 그렇다 치더라도 2012 시즌 이후 팀타율 121을 찍는 팀의 1군 코치가 무능하면 대체 어느팀의 코치가 유능한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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