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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

last modified: 2015-03-26 12:46:59 by Contributors

Contents

1. 한국의 군인, 전 정치인
2. 한국의 전 정치인
3. 울산자매살인사건의 범죄자

1. 한국의 군인, 전 정치인


金弘壹
1898.9.23~1980.8.8

1898년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출생하였다.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8.15 광복 이후 대한민국 육군 창군에 참가했고, 6.25 전쟁 초반기에도 공로를 세웠다.

중일전쟁 당시 중국 국민당 소속의 국민혁명군에서 중장까지 진급했고, 1932년 이봉창, 윤봉길의 거사에 필요한 폭탄을 지원하였다.[1]

해방 후 대한민국 육군 창군에 주역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고 전선이 붕괴되는 와중에 김홍일 중장은 제1군단군단장에 임명되어 빈사에 빠진 잔여병력을 수습해 한강 방어선, 낙동강 방어선에서 활약했다. 전쟁 초기 한강 방어선 구축을 먼저 건의했으나 당시 육군총참모장 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이었던 채병덕이 거부하여 한강 방어선 구축이 늦어졌다.

북한군의 진격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일, 김홍일 중장은 1군단장에서 해임되어 육군종합학교장으로 부임하였다. 한국군에서 군단급 제대로 운용해본 유일한 경험자이며 중일전쟁을 거친 야전 지휘관이 갑자기 한직으로 밀려난 이 사건에 대해 전쟁초기 수도사단을 지휘했던 김석원 준장은 자서전인 《노병의 한》에서 '아연실색했다'고 표현했다.

결국 더 이상 야전 경험을 살릴 수 없었던 김홍일은 1951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고, 전후 중국(대만) 대사가 되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군정 기간 동안 외무부 장관으로 재임했다. 그러나 박정희가 군에 복귀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출마하자 박정희와 결별했고, 이 후 신민당에 입당해 두 차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던 중 유진산의 지도노선에 반발하여 1973년 양일동 등과 신민당을 탈당하여 민주통일당(약칭 통일당)을 창당하여 활동하였다.

중국군에서 중장, 한국군에서 중장까지 진급한 기록 때문에 합해서 '오성'장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한국군에서 임관할 당시 계급이 준장이었다.

2. 한국의 전 정치인

살아 있는 정치인은 원칙적으로는 작성제한 대상이나 동명이인으로 기본적인 사항은 작성합니다.


金弘一

1948년 1월 21일 전라남도 목포부에서 김대중과 차용애[2]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 15대, 16대, 17대 국회의원(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민주당)을 역임하였다.

군사정권 때 고문당한 후유증으로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별세할 때는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 울산자매살인사건의 범죄자


1986년생으로 2015년 현재 만 29세. 한국의 살인자.

2012년 7월 20일 울산광역시에서 일어난 자매 살인사건의 가해자로 원래 두 자매의 부모가 운영하는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인물이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자매 중 언니와 사귀는 관계였으나 일방적으로 실연을 당하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자매가 묵고 있는 숙소로 쳐들어가서 거기서 자고 있는 두 자매를 살해했다고 한다. 살해과정은 일단 동생부터 습격해 죽였는데 처음에는 이 여자가 언니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그 직후 현장을 빠져나갔다가 언니가 지르는 비명을 듣고 죽이기 위해 다시 쳐들어갔고, 신고를 하고 있던 언니를 말 그대로 참혹하게 죽였다. 마지막 목에 한 칼질은 13번을 찌른 후 영화에서 상대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 전에 멘트하듯이 가라, 한 마디를 하고 했다고 진술했다. 그 후 잠적을 감추었는데. 무려 50여일 동안 숨어서 지내는 바람에 수배서가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잡히지 않았으나. 2012년 9월 13일 한 야산에서 마대깔고 자고 있는 그를 목격자가 발견하고 신고한 끝에 검거되었다.

구치소에서 아주 즐겁게 살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20년 후쯤에 나올 것 같다면서 구치소 내에서 다른 사람과 얘기하는데 출소 후엔 여자도 다시 만날 거고 그땐 어떤 스마트폰이 나올지 궁금해했다고 한다. 밥도 잘먹고 잘 지낸다는 것이 같이 생활했던 사람의 증언.

그러나 죽을 때까지 사회로 나오긴 불가능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12년 12월 22일 검찰이 살인죄로 사형을 구형했고 1심도 2013년 1월 25일 검찰의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2013년 5월 15일, 2심에서 모든 기소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양형부당을 이유로 무기징역으로 감형. 사형 선고를 원하던 검사와 희생자 가족들이 상고했으나 대법원이 사형, 무기 혹은 징역 10년이상의 처벌에 대한 양형부당을 이유로 이뤄지는 검사의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음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출처필요] 2013년 7월 26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일베저장소에서 범행직후 hikim85 라는 닉네임을 쓰며, 자신은 김홍일의 친구이며 김홍일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논쟁을 벌이던 유저가 있엇는데, hikim의 뜻이 김홍일의 이니셜이며, 85는 김홍일의 출생년도여서[4] 김홍일 본인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었다. 하지만 조사결과 해당 유저는 다른 닉네임을 사용하여 활동하다 사건이 일어난 뒤에서야 hikim85라는 닉네임으로 바꾸어 활동하였고 출생년도로 추정되는 닉네임의 숫자도 김홍일의 실제 출생년도와 일치하지 않는점을 들어 관심을 끌기 위한 한 네티즌의 자작극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점은 논란이 일어난 후에, TV조선에서 이 사건을 심층 탐구하며 사실 확인도 안하며 온갖 소설을 만들어냈었는데, [5] 자작극으로 밝혀지면서, TV조선의 대삽질이 되고 말았다. 안습 [6]

현재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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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백범일지에 등장하는 왕웅이란 양반이 바로 이 양반이다. 왕웅은 김홍일이 중국에서 사용한 이름이었다.
  • [2] 김대중의 첫번재 부인
  • [출처필요] 조두순 사건 이후로 이 원칙은 폐기되었다고 알고 있음.
  • [4] 김홍일은 86년생이다. 사건 당시(2012년) 뉴스에 나이가 27이라고 나왔는데 한국이 만 나이와 동아시아식 나이를 섞어 쓰다 보니 만 나이로 보고 쓴 모양이다. 참고로 언니 쪽도 86년생이었다.
  • [5] 김홍일은 자신을 영화배트맨조커라고 생각하고 있을것이다, 라는 주장을 펼쳤다(...)
  • [6] 솔직히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상황에서 자신의 신분이 밝혀질 수 있는 아이디를 이용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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