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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범

last modified: 2015-01-10 22:45:24 by Contributors




전주 KCC 이지스 No.34
김효범
생년월일 1983년 11월 10일
국적 캐나다
출신학교 뱅가드대학교
포지션 가드
신체 조건 191cm, 90kg
프로입단 2005년 드래프트 2번(울산 모비스 피버스)
소속팀 울산 모비스 피버스(2005~2010)
서울 SK 나이츠(2010~2012)
전주 KCC 이지스(2012~ )

2010~2011 한국프로농구 올스타전 MVP
이승준(서울 삼성 썬더스) 김효범(서울 SK 나이츠) 문태영(창원 LG 세이커스)

Contents

1. 개요
2. 행적
3. 플레이 스타일


1. 개요

한국프로농구에서 뛰는 가드. 여러가지로 한국 프로농구의 뜨거운 감자. DC 농갤에서는 그의 캐나다 이름에서 파생된 브랄킴, 부랄킴(...) 등으로 불린다.

2. 행적

잠원초등학교를 나오고, 중학교 때 가족 전체가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캐나다에서 농구를 배웠고, 뱅가드 대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를 보내면서 자연히 캐나다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뭐 흔하지는 않아도 종종 있는 일이다. 그래서 캐나다에서의 그의 정식 이름은 브라이언 킴(Brian Kim).

캐나다 밴쿠버 옆에있는 랭리라는 도시에서 살았다.[1] 월넛 그로브 세컨더리스쿨을 졸업했는데 졸업할 당시 평균득점이 24점이 넘을정도로 캐나다 고교농구의 실력자였다. 원래 포틀랜드 대학으로 진학했지만 뱅가드대학으로 옮기게 되었다.

NAIA 소속의 뱅가드대학교 주전 가드로 활약했는데, 3점슛 성공률이 괜찮은 편이다. NCAA는 아니지만, 미국 하부 리그에서 주전으로 뛰었던 선수. 그리고 덩크슛 편집 영상이 한국에서 알려지면서 일약 유명 인사가 되었다. 여기에 그가 KBL 진출을 타진하고, 신인 드래프트에 신청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교포들 사이에 떠돌던 플레이 영상 일부가 한국에도 퍼지면서 2005년 드래프트에서 일약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2]

문제는 KBL의 규정. KBL 규정에는 부모나 조부모중 한 명만 한국인이면 신청자격이 주어진다고만 나왔고, 선수의 국적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규정이 없었다. 사실 김효범의 부모는 모두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 외국에서 농구를 배웠다고 해도 일반인 자격으로 드래프트에 신청하면 되기 때문에 상관 없다. 그런데 그의 국적은 한국이 아니었다. 드래프트 당시부터 과연 그가 드래프트 신청 자격이 있느냐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고, 급기야 드래프트 참가자 30명이 집단으로 거부하는 파행이 일어났다. 하필이면, 그가 한국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이 더 큰 문제. 뽑히지라도 않았으면 논란도 없었겠지만, 전체 2번이라는 높은 순번으로 뽑힌 것이 파장을 키웠다. 그것도 유재학 감독은 편집된 CD 한 장을 보고 뽑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입국 기자회견에서 김효범은 한국 대표로도 뛰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리고 이 소망을 밝힌 것이 그의 안티를 낳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국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캐나다 시민권을 포기해야 했는데, 한국 국적이 회복되는 순간 신체 건강한 김효범은 군대를 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인지 국적 회복 및 대표 발탁은 그 뒤로도 어물쩍 넘어갔고, 이를 기억하는 농구팬들은 그를 계속 까고 있다. 후에 귀화혼혈 선수로 KBL에 들어온 전태풍, 이승준, 문태영, 문태종이 불합리한 제도[3]의 희생양이 되는 것과 대비되어 더욱 까였다.

막상 입국해서 치룬 첫 시즌과 두 번째 시즌에서의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돌파력이나 외곽슛은 그럭저럭 있다고 해도 수비력이 뒷받침이 되지 않았던 것. 또, 모비스의 유재학 감독 특유의 조직력에 전혀 녹아들어가지 못했다. 그래도 기량은 있다는 것을 세 번째 시즌은 2007-08 시즌부터 보여주기 시작해서 평균 두 자리 수 득점도 기록하는 등, 활약을 보여줬다. 그리고 올스타전에서는 정말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덩크 콘테스트에서 두 차례 우승. 3점슛 콘테스트에서도 우승. 끼를 보여주는 자리에서는 확실하게 그런 모습을 연출했다.

이 때부터 또 논쟁이 벌어지는데, 과연 유재학 체제의 모비스의 조직 농구 때문에 김효범의 개인 기량이 죽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김효범의 실력은 애당초 과장된 것이었고, 이를 유재학 체제에서 키워낸 것인가였다. 어쨌든 모비스에서 김효범의 롤은 돌파를 주무기로 하는 슬래셔보다는 외곽에서 3점슛을 노리는 양궁부대의 그것에 가까웠고, 화제가 된 동영상에서 보여준 돌파나 덩크슛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개성을 죽이는 것 아닌가부터 유재학 감독과의 불화까지 별별 이야기가 많았다.

여하튼, 김효범은 모비스에서 두 차례의 우승 반지를 끼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2009-10 시즌 우승과 함께 FA로 풀렸고, 그를 노린 것은 전력 보강을 위해 혈안이 된 서울 SK 나이츠. 그리고 충격적인 발표가 이어지는데, 그의 연봉은 놀랍게도 5억 1300만원이었다. 이는 김주성에 이은 KBL 두 번째 고액 연봉이었다. 과연 김효범이 그럴 가치가 있는 선수인가부터 어마어마한 논란이 또 다시 벌어졌다. 직전 시즌 성적인 평균 11.1점이었던 선수가 5억원 선수가 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 것.

정답은 이거 애매합니다잉. SK에서의 첫 시즌인 2010-11 시즌에 김효범은 생애 최다인 평균 15.2점을 집어넣고, 3점슛 부분 1위에 오르며 방성윤이 부상으로 은퇴하고, 주희정이 무너진 SK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덤으로 그 해 올스타전 MVP까지. 근데 팀 성적은 시궁창 중의 시궁창. 여기에 고액의 연봉에 팀 플레이가 안 된다는 비난까지 겹치면서 돈값을 못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기록만 놓고 보면, 돈 값을 한 편인데, 팀 성적과 동료와의 시너지를 놓고 보면 아니올씨다라는 의견도 적지 않은 것.

그리고 팀 성적 부진을 이유로 SK는 연봉 삭감을 시도했는데, 여기서 또 충돌이 빚어졌다. 사실 개인 성적만 놓고 보면 삭감할 이유는 없었는데, 주희정과 김효범이 모두 5억씩 받으면 샐러리캡이 다 차는 관계로 무리한 삭감을 시도한 것. 이에 반발한 김효범이 연봉조정을 신청하면서 충돌하는 과정에서 KBL 연봉 체계가 개판이라는 것이 또 다시 드러났다. 다년 계약이 아니라 FA 선수에게 높은 금액을 부르는 쪽이 이기는 입찰제 방식의 한계가 나타난 것. 정작 못하면 바로 삭감 크리(...) 어쨌든 연봉은 3억 6천만원으로 깎였다. 2011-12 시즌에는 부상으로 드러눕기도 하고, 그러는 사이 에이스 롤은 김선형에게 넘어가고, 부상에서 돌아와서는 난사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팀의 추락에 일익을 담당(...) 여러가지로 왕창 까이는 중.

2012-13 시즌 2라운드 현재에는 출전 시간이 확 줄은데다 그나마 출전할 때도 오픈샷을 연신 놓쳐대는 등 안 좋은 모습이다. 슛 밸런스가 문제일지 짧은 시간에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조바심이 문제일지 2.1점에 그치는 평균 득점에 수비도 안 좋으니 심각한 모습. 문경은 감독은 2라운드가 끝나고 열리는 프로-아마추어간 컵 대회에 김효범을 활용해 경기 감각을 찾게 할 계획이라고 한다.

결국 문경은 감독도 김효범을 계속 끌고 가는 것을 포기하고, KCC의 코트니 심스를 영입하기 위한 카드로 사용하면서 1:2 트레이드를 통해 크리스 알렉산더와 함께 KCC로 이적했다.

그러나, KCC로 이적한 이후 완전히 다른사람이 되며 주포가 없던 KCC의 주포로 활약했다. 좋은 중장거리 슛을 보여주며 평균 13.8득점을 올리며 활약했고, KCC가 어느정도 후반기에 승수를 쌓는데 좋은 활약을 했다.

2013-2014시즌에는 팀의 에이스인 강병현, 2순위 포인트가드 김민구, 박경상등에 밀려서 출전 기회 자체가 줄어들었다.

한국 무대 데뷔 과정에서 워낙 안티를 많이 모아서 저평가받는 선수이기도 하다. 그러나 애당초 본인이 자초한 것이기도 하니 누구를 탓할 것은 없지만.

유명 연예인 줄리엔 강과는 고교시절에 농구를 같이 하던 사이라고 한다.

김민구가 음주운전 사고로 시즌아웃이 되면서 출전기회가 생겼다. 애초에 김태술 - 김민구 라인업으로 구성했던 KCC지만 김민구가 아웃되면서 김효범이 해줘야할 역할이 커졌다. 애초에 기량이 없는 선수가 아니라 KCC팬들도 나름 김효범의 활약에 대해서 기대하는 중이다. 실제 위에서 언급했던거와 같이 김효범은 KCC에 이적해서 준수한 활약을 해줬다.

3. 플레이 스타일

주 포지션은 슈팅가드로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득점원. 더불어 외국에서 농구를 해서 그런지 드리블 실력도 상당하며 숄더페이크, 크로스오버 등의 기술을 실전에서 사용하는 몇 안되는 가드이다. 전성기때는 탄력까지 엄청나서 덩크도 자유자제로 했지만 허리디스크 이후 스피드와 점프력이 급격하게 낮아져서 좀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인다.[4] 1대1능력은 뛰어나나 한국농구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유재학 감독에게 많이 까였지만 그 시간동안 디펜스가 좋아지고 팀농구가 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때 조성민, 강병현과 함께 탑수준의 슈팅가드로 평가 받았으나 SK에서 점점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수준급의 슈팅을 자랑하는 조성민과 점점 격차가 벌어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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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밴쿠버에서 자동차로 약 40분정도 떨어져 있는 도시이다.
  • [2] 이 해 김효범의 다음 순번에서 지명되었으나 정작 그 때문에 묻혔던 선수가 한상웅이다. 당초 명지대로 갈 예정이었던 한상웅은 방향을 바꿔 드래프트에 응했고 전체 3순위로 SK에 지명된다. 그러나 한상웅은 초반 두 시즌 동안 고작 22경기 출전에 그쳤고 이후 줄곧 2군에 박혀있다가 2009 - 2010시즌 도중 조용히 퇴단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2011년 2군 드래프트에 다시 나타났으나 지명받지 못했다. 2012년 이 시점까지 역대 최악의 로터리픽 지명자.
  • [3] 이들은 현 소속팀과 재계약이 안 되고, 3년이 지나면 무조건 드래프트 대상이 되어 다시 뽑힌다. 반대로 귀화를 안 한 김효범은 KBL 드래프트 출신이라 그런 거 없다.
  • [4] 그래도 여전히 덩크는 어렵지 않게 한다. 다만 리즈시절엔 그야말로 림이 거의 머리에 닿는 수준으로 점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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