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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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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흥국(金興國)
출생 1959년 4월 11일, 서울특별시
가족 배우자 윤태영, 아들 김동현, 딸 김주현
소속사 cncmedia
학력 동국대학교 대학원
데뷔 1985년 노래 '호랑나비'
종교 불교

Contents

1. 소개
1.1. 가수
1.2. 어록
1.3. 예능감
1.4. 인맥
1.5. 축빠
2. 정치색
3. 라디오 하차 논란
4. 기타


1. 소개

한국의 가수이자, 예능인. 1959년 4월 11일 출생.

1.1.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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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수따위를 나가지않은건 이미 가수여서 이다
한국의 제임스 브라운(?)

서울 종로 낙원상가에서 하루하루 벌어먹는 무일푼 밴드에서 시작했다. 당시 밴드 이름은 '오대장성'으로 김흥국의 포지션은 드럼이었다. 그래서 그의 초창기 때 가끔 드럼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예능이나 라디오에서 이 시절 이야기로 가끔 개그를 친다. 1988년 MBC의 간시대라는 실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불치병에 걸린 소녀의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작곡가인 그 소녀의 아버지와 친분있는 무명가수로 처음 TV를 탔다. 김흥국은 그 에피소드에서 그 소녀를 격려하기 위해 "정아"라는 노래를 자작해 불렀다. 그 이후 이것 덕분인지 TV에 신인 가수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상당히 조용한 분위기의 발라드로 김흥국은 항상 무대에서 담담한 표정에 분위기 잡고 통기타치면서 불렀다. 안타깝게도 그 소녀는 앨범 나온 직후 세상을 떠났다고.

이런 사연으로 방송을 타게 되었지만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것은 상당히 컬트적인 느낌의 댄스곡 "호랑나비"이다. 호랑나비라는 노래 하나로 인해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골든컵을 수상했으며, 질리도록 말하던 ‘10대 가수’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후 어린이 영화 반달가면으로 심형래와 함께 어린이계의 아이돌 자리에도 당당히 오르기도 했다. 라디오 방송을 계기로 본인이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예능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떨리쉽니까??? 초코맛 독무대도 즐겨주세요 화장을 얼마나 했는지 아시안 프린스 냄새가 물씬 난다
'호랑나비'와 같은 앨범에 수록된 후속곡으로 '흔들흔들'도 나름대로 히트를 치는데 이게 김흥국의 몇 안되는 CF 출연의 결정적 소재가 된다. 바로 삼립식품에서 런칭한 흔들흔들바(...) 게다가 자매품으로 나온 제품 이름은 독무대다(...)[1] 망조의 기운이 느껴진다(...)

호랑나비에 관련한 후일담이 있는데 원래 이 노래는 그를 위하여 작곡된 노래가 아니다. 원래 김홍경이란 가수가 1987년에 발표한 노래이다. 하지만 알려지지 못하고 묻혀졌던 걸 김흥국이 리메이크하여 알려진 것이다.참고로 김홍경은 90년 초반 신문에서 밤무대 가수로 활동중이라고 나왔었다.


희귀한 콧수염+턱수염+머리숱 버젼 김흥국
이후 다음 앨범에서 '59년 왕십리'를 발표했는데 호랑나비와는 달리 제법 세련되고 지극히 정상적인 컨셉의(...) 명곡이어서 꽤 호평을 받았다. 어느정도냐면 이 노래를 처음 접하는 사람 중에는 김흥국 노래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정말 김흥국이 부른게 맞냐?"는 반응도 있을 정도다. 물론 김흥국답지 못한(...) 노래라고 까는(...) 취향 한번 괴랄한 컬티스트들도 존재한다.

59년 왕십리에 이어서 1993년 김흥국은 또 멀쩡한 노래이자 몇 안되는 히트곡인 '내게 사랑이 오면'을 발표한다. 골든앨범을 제외하면 4집 타이틀곡이지만, 트로트이자 멀쩡한 노래라서 인터넷 사용층에게는 인지도가 떨어진다[2].

이렇게 정상적인 노래들로 다시 한 번 히트를 치고 베스트 앨범까지 만들던 1993년까지 가수인생 최절정기를 달리던 도중, 1994년 김건모의 레게곡 '핑계'가 큰 인기를 끌자[3] 나도 레게곡으로 한 번 떠보자며 성인들을 위한 레게 음악을 모토로 타이틀곡으로 '레게 파티'를 내세운 앨범인 Last Reggae를 1994년에 내놓게 되지만 결과는 망했어요.

당시 앨범 재킷에 터번을 쓰고 춤을 추는 사진을 걸어 향후 무식개그로 라디오 진행의 한 획을 그을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 레게는 자메이카의 음악인데... 거기에 축구공도 나오고
참고로 이 '레게파티'에서 랩 파트를 피쳐링한 사람은 다름아닌 그룹 룰라의 리더 이상민이다. 물론 이때는 듣보잡 신인시절인지라 앨범에 피쳐링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

가수라고 하는데 히트곡 중에서 59년 왕십리와 내게 사랑이 오면를 제외한 노래는 괴이하다 못해 전파송에 가깝다. 자작곡 '정아'나 본인의 자전적 경험담이 담긴 '59년 왕십리'를 보면 1절과 2절이 똑같다고(...) 까일지언정 그렇게 까지 음악적 능력이 없는 가수는 아니다. 첫 히트곡 호랑나비가 워낙에 괴랄한 노래다 보니 이미지가 그쪽으로 굳어졌고 이후 발표한 곡들이 호랑나비 만큼 히트를 치지 못하자 계속 B급 감성의 코믹댄스로 밀다가 망가진 경우다[4]. 사실 레게파티 이후로도 김흥국은 월드컵용 싱글과 기존 대표곡에 신곡 한 두곡을 추가하는 형태일지언정 앨범을 꾸준히 내고 있으니까 현역 가수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몇몇 트로트 곡들이 중장년층에게 인지도가 살짝 있는 것을 제외하면, 김흥국의 노래는 월드컵 시즌에도 반향을 못 일으키는 것이 현실일 뿐. 뭐 가수로서는 망가졌으나 아래 서술할 예능부분을 보면 예능쪽에서 성공했으니 다행일지도 모른다. 꼭 가수의 길에서 계속 인정받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 나훈아싫어합니다.
무엇보다 가수로서의 보컬능력은 기존 히트곡을 들어서도 알수있지만 의외로 꽤나 상당하다! 에릭 클랩튼의 명곡 Wonderful tonight을 예능프로 라디오스타에 나와 부른적이 있었는데 그 영상을 통해 확인할수있다. [5]

독도로 날아간 호랑나비

1.2. 어록

터보의 노래 'Cyber Lover'를 씨버 러버라고 하거나, 이게 다 대모음추이 때문이다. UCLA 대학을 우크라 대학이라고 발언한 것 등이 유명하다. 이에 대해 본인은 내가 모르는 노래나 가수가 나오는데, 그냥 소리나는대로 읽었을 뿐이며, 실수가 있어야 재밌다며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레전드급 방송 실수담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방송에 나와서 '대본에 써있는 대로 읽었다'라고 하는데 이 사람의 행적을 보면 그런 말실수가 위에서 말한 코믹가수 컨셉과 마찬가지로 예능 진출을 염두해서 실수를 가장한 의도적인 발언이 아니냐는 의혹(?)도 존재한다. 사실 관련 책자에도 김흥국은 원고가 없어서 나온 사고[6]나, 원고를 대충 봐서 나온 사고[7]가 대부분으로 적혀 있다. 대본을 건성으로 훑어보는데다 노안이 심각해서 벌어진 일이 많은 듯하다. 무식 탄로는 말할 것도 없으니까 넘어가고

  • "남편분은 뭐하시죠?" - "(청취자)사별했어요" - "성격 차이였나요?" ('결별'과 혼동함)
  • ('철없는 아내'란 곡을 소개하며) "이번 곡은 '없는 아내'입니다."
  • "안녕하세요 조PD(가수)입니다" - "으아, 반가워요. 내 노래 좀 많이 틀어줘요" (본인 해명에 의하면 라디오 PD인줄 알았다고)
  • (국악을 하는 세쌍둥이 자매를 소개하면서) "그런데 몇 살 터울이냐?"
  • (인간문화재 이은관을 초빙해서 소리도 듣고 대담도 하는 자리에서) "재미있고 멋지신데, 아 시간이 아깝네요."(시간이 부족하네요, 내지는 시간이 부족해서 아쉽네요를 잘못말한 것)
  • (박미선 "노래 한 곡 듣고 가죠. 장윤정이 부릅니다.")"머니? ... 어머 ... 어머... 어머..."
  • "샴쌍둥이분리수거가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리수술을 잘 못 말함)
  • "오늘은 10월 1일, 광복절입니다."[8]
  • (가수 거미의 노래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자, 다음 노래는 친구가 부릅니다. 거미라도 될 걸 그랬어
  • (네덜란드에는 손가락 하나로 나라를 지킨 소년이 있었다라는 이야기를 진행하는 와중에, 박미선이 "우리나라에도 그런 소년이 있지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으아~ 이승만 어린이!!" (이승복 어린이를 잘못 말한 것)
  • (외국물자 수입과 관련해서) 박미선 - "우리나라에도 붓통에 목화씨를 들여온 사람 있잖아요") "으아~ 문익환~!"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어느 시인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박미선, "그게 누군지 아시나요?") "그, 저~ 프킨 아닌가요?" (러시아의 시인 알레산드르 푸시킨을 착각한 것)
  • (방송국에서 길을 걷다가 만나서 먼저 인사를 한 쥬얼리자두에게) "쥬얼리양", "자두양"이라고 불렀다[9]
  • "오늘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장애인 여러분 축하합니다."[10]
  • "독도는 우리 땅! 마라도도 우리땅!"[11]
  • (음치 여자가 노래교정을 받는 코너인데 노래를 너무 못하자) "으아~ 날씨가 나빠요~ 날씨탓으로 돌리고 싶네요~ 반주는 나가고 있죠?"
  • (앙드레 김을 만난 자리에서) "김봉남씨!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12]
  • (출산 시에는 왕절개보다는 자연분만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던중) "그럼 박미선 씨도 자연유산이에요?"
  • (선희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가 신곡을 들려 달라고 하자)"으아, 아직 가사를 다 못 외웠어요"[13]
  • 라디오스타에서 윤종신이 "호랑나비진보적인 음악이에요"라고 하자, "난 진보 아닌데, 보수인데?"
  • (EXO[14] 으르렁을 듣고, "무슨 호랑이가 나타났냐. 노래 제목이 '으르렁'이냐. 무슨 동물 노래냐"
    • (출연자들이 으르렁을 다함께 부르기 시작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 (뮤지를 만난 자리에서 뮤지가 자기소개를 한 뒤에) "이름이 묘지야?(...)"[15]

1.3. 예능감

결정적으로 김흥국은 코미디프로그램 갤러리에서 흥궈신, 예능치트키라 불리우며 추앙받고 있는 예능인이다. 아프리카의 코갤세력인 코프리카에서 김구라와 함께 까이지 않는 몇 안되는 인물. 인터넷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도 평가가 매우 높으며 고정 게스트로는 A급 대우를 받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김태원편과 김경진,경식과 함께나온편. 본의아니게김태원을 예능계로 이끈 김흥국에 대해 김태원은 그를 예능계의 초능력자라고 평했다. 강호동조차 "30년동안 으아~ 하나만 했는데도 안 질려요."라며 대단함을 인정했을 정도.

독특한 개그 방식 때문인데 특히 라디오 스타에서 포텐셜을 폭발시켰다.

어지간히 리액션을 안하는 김구라도 숨도 못쉴정도로 웃어대는걸 볼수있다. 김구라가 말하길 "제가 방송에서 돌아이라고 하면 칭찬이에요 방송하는 사람이면 그 정도는 돼야죠 제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최고 돌아이는 김흥국씨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할정도

1.4. 인맥

호랑나비, 해병대, 그리고 축구[16] 세가지 부분에서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서, 이쪽으로 인맥이 많다.

특히 열혈축빠로 월드컵 응원단을 하면서 대한축구협회장이었던 정몽준과 친분을 쌓게 되었다. 이때문에 정몽준의 각종 정치활동에도 따라다니면서 보수성향이 알려지게 된다.

해병대의 경우, 그냥 당시 육군보다 기간이 짧아서 그냥 별 생각 없이 갔다온 거라는둥 하면서 마치 지원해서 입대한 것처럼 인터뷰 등에선 말하지만.. 실제론 지원한 게 아니라 해병대로 무작위 징집당해서 간거였다. 김흥국의 깃수인 401기가 해병대 서울 지역 징집기수다. 예전 해병대는 지원자가 많지 않아서, 홀수/짝수 기수별로 번갈아서 징집기수와 지원기수로 나눠져 있었다.

이후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김흥국과 친해진 가수 이정이 김흥국의 영향을 받아 해병대에 입대하여 군 복무를 마쳤다.

1.5. 축빠

엄청난 축빠로 연예인으로 인기를 얻고 나서부터 월드컵 때마다 항상 연예인 응원단을 조직해서 원정 응원을 해왔다. 연예인으로 인기를 얻은게 89년이고, 그 다음해인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때부터 자비로 원정응원단을 조직해 월드컵 원정경기에 꽹과리 치면서 응원을 주도했다. 시기로 치면 붉은 악마보다도 먼저 활동한 셈. 그리고 월드컵 송을 발표하는 것도 김흥국이 최초라서, 1995년에 이미 2002 월드컵 코리아라는 싱글을 발표했다. 이후에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지만 매년 월드컵마다 월드컵 송을 발표하고 있다.

다만, 그 성격이나 원조축빠라는 부심때문인지 올드 축구팬과 현재 붉은 악마와는 매우 사이가 안좋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연예인 축구단인 "회오리"가 국대 경기 응원의 중심에 서야한다며 붉은 악마 지도부와 충돌하기도 했고, 이때 폭언과 폭행을 했다는 설도 있었다. 붉은 악마 초창기인 1997년당시 해외에서까지 붉은 악마 지도부와 충돌했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 때 예선전부터 응원단인 붉은 악마들을 정몽준과의 커넥션을 이용해서 홀대를 하기도 했다. 이유는 붉은 악마측에서 리딩을 맡긴다고 했었는데도, 자신을 중심에 놓지 않고 무슨 응원을 하냐고. 하여튼 이런 일로 하얀 천사라는 응원단을 따로 만들기도 했으나 철저하게 망했, 아니 알려지지도 않았다. 검색하면 특정 종교 응원단 관련만 나온다.

또한 축빠답게 야구팬의 적이기도 한데 97년 LG 트윈스 홈구장으로 기획되었던 뚝섬돔을 적극적으로 반대한 바 있다. 삭발투쟁까지 하며 축구를 죽일거냐는 피켓을 들고 시위까지 했었으니 야구팬그리고 허구연에게는 철천지 원수일수밖에 없다.[17] 결국 1997년 외환위기(IMF사태)와 여러 사정으로 끝내 무산되었다. 아직도 이게 축빠,김흥국도 같이 탓으로 아는 이들도 있긴 하다.

6월 12일 대한민국그리스의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예선 경기를 현지에서 관람하다 응원용 부부젤라불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의외로 부부젤라를 제대로 불려면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극비리에 숙소에서 특훈 (??)까지 해서 응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0년 06월 26일 16강 진출 기념 & 8강 진출 기원으로 수염을 깎았다! 누구냐!? 하지만 16강에서 바로 좌절되었으므로 이번 월드컵의 최대의 피해자중 한명이라면 한명이라 할수있겠다. 엄밀히 말하면 면도기회사에서 돈 받고 깎은 것이니 피해자는 아니지만 부부젤라 나발 부는 모습이 저렇게 애절할 수가 없다

축구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축구 실력도 상당히 뛰어나서 기축구계의 지단이라 불릴 정도의 실력이 있다고 한다.

김흥국의 자선축구에 초청된 팔카오 선수가 김흥국에게 농락당하고 있다.
는 뻥이고 유소년 여자 국가대표선수라고 한다. 위 장면을 김흥국의 왕십리턴이라 부른다.
또한 만원의 행복 출연당시 일본 연예인 대표팀과 친선 축구경기가 있었는데 돌발미션으로 미드필더 포지션인 김흥국에게 1골 1어시를 주문했는데 미션 클리어 하면서 500원을 획득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민망한 세레머니

결국 피파 온라인 3에 만우절 이벤트로 등장 확정.(...) 티저 이미지에 굉장히 짜리몽땅한 실루엣이 나오자 유저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김흥국의 실루엣이라는 걸 발견해냈다. 선수 실루엣 이미지 쓸게 없어서 아무거나 쓴 거 아니냐는 걱정도 잠시, 티저 동영상이 발표되자 59번을 달고 왕십리턴을 하는 김흥국의 모습이 공개되며 유저들의 환호성과 넥슨이 무슨 약 빨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터져나왔다. 금카도 있는 듯하며, 3일간 선수팩으로 지급된다고 한다.참고 영상

우리동네 예체능에 출연하여 자신이 왜 흥켈메라 불리는 지 증명하였다. 참고 영상

2. 정치색

정몽준과의 친분과 보수성향으로도 유명하다. 라스에서도 본인이 보수라고 언급하기도했고

그래서 한나라당의 절대우세가 예상되던 2008년 총선때 정몽준을 등에 업고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을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출마의사를 밝히자 인터넷 각 사이트마다 이를 조소하는 여론이 돌았고, 이는 김흥국의 후견인정도로 알려진 정몽준에게 해가 될수도 있었기 때문에[18], 정몽준이 주저앉힌듯 하다. 그때 자신이 출마하지 못한 이유로 대표적인 친노 연예인인 계남을 탓하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국회의원 출마를 개그로 승화시키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김흥국 본인은 국회의원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스스로는 모든 프로그램을 쉬어야 한다는 이유로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

그 뒤에도 2011년 오세훈 시장의 무상 급식찬반 주민투표에 나와서 박상원과 함께 투표를 호소하기도 했고 4.27 재보선에서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가 출마한 경기도 성남 분당을 선거구에 정몽준과 함께 유세현장에 나오기도 했다.

한편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정몽준에게 노무현 지지 철회를 강하게 밀어붙인게 김흥국이였다. 이를 두고 정봉주 前 의원은 '나는꼼수다'에서 김흥국을 '전략가'로 표현했다(...) 그 날 밤새 같이 있었다고. 그 뒤에 정몽준의 인생사는(...) 그래서 관계가 예전같진 않고 정몽준이 그다지 크게 밀어주진 않는 듯...이라지만 어디까지나 김흥국 본인의 주장일뿐이다.

약간의 부연설명을 하면 16대 대선 하루 전날인 2002년 12월 18일 저녁 9시 정몽준이 전격적으로 노무현 지지철회를 선언하고 자택으로 들어가버렸을때 같이 따라 들어간 극소수의 최측근에 김흥국도 포함되있었다. 다른 측근인사들과 함께 밤새도록 정몽준과 같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긴 하다. 당시 김흥국은 문화예술특별보좌관이란 직함을 달고 선거기간 내내 정몽준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정몽준의 결정에 누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여태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공식적으로 내가 주장했다고 이야기한건 김흥국이 유일하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인물들은 대부분 침묵하고 있다.

3. 라디오 하차 논란

2011년 6월, 1년 전부터 경식과 함께 털과 제리 콤비를 이루며 재밌게 진행했던 MBC 표준FM '2시 만세'에서 하차했다.[19] 근데 이 하차를 한 스토리가 참으로 버라이어티하다. 김흥국의 하차 이전에 MBC는 정치적 외압으로 인해 시사프로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진행하던 김미화를 내쫓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어왔다.

그러나 김미화의 하차에 대한 외압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으며, 오히려 10여년간 친분이 있던 이현숙작가는 김미화에게 명예훼손을 이유로 소를 제기하겠다고 하였으나 친분을 고려해 소를 진행하지 않았다. 다만 이후에 총리실 민간인 사찰 대상이 이후에 추가로 밝혀졌을 때,김미화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소위 블랙리스트 건에 대해서는 그 이후에도 말이 있긴 하지만.

이 때문에 화가 날 대로 나 있던 MBC 언론노조는 김흥국이 4.27 재보선 당시 격전지였던 경기도 성남 분당을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를 위한 유세운동을 펼친 정몽준 의원과 함께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문제가 커진다. 실제 노조가 저걸 내세운건 김미화와 시사평론가 김종배에 대한 복귀를 요구하기 위해 내세운 것이었다지만 야당편향이라면서 김미화를 잘랐다면서 왜 여당 선거운동한 김흥국은 안 자르냐로 아는 이들도 많고 결국 MBC는 형평성 명분으로 김흥국을 6월 12일자로 내칠 수 밖에 없었다.

김흥국도 자신의 퇴출 사건을 애꿎은 정치적 희생양으로 간주하면서 적잖이 화가 난 모양이다. 13일부터 5일간 매일 오전 10시부터 1시까지 MBC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고, 마지막날인 17일 정오에는 삭발시위까지 했다. 이에 정몽준 의원도 급히 방문까지 했다고. 작년엔 삭털 올해는 삭발 이 때 은근히 해병대 전우회의 조력을 호소했는데, 평소라면 그냥 김흥국식 인맥발언 정도로 넘어가고 나름의 결과가 있었을 지 모르나 곧이어 터진 2011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 사건 때문에 해병대 전우회 측에선 신경 쓸 정신이 없어져 버렸다. 우리 코가 석자야

4. 기타

  • 본의 아니게 대한민국 코메디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웠는데, 바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이경규몰래카메라 최초 희생자가 바로 김흥국. 엄밀히 말하자면 처음 방영한 몰래카메라는 인터넷에 흔히 보이는 서양몰카처럼 어떤 깜짝 놀랄만한 상황을 세팅해 놓고 출연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지켜보는 형식이였다. 그러다 한 사람을 목표로 정하고 속이는 형식으로 바뀌었고 김흥국편이 방송되면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 1997년 5월 16일에 음주운전뺑소니 범죄를 저질렀다.#답이 없다

  • 방송에서 '노인들에게 발언권을 더 줘야한다 (수정바람)'라는 발언으로 방송정지를 먹은 적이 있다(…).

  • 나이가 들어 탈모가 생겨 가발을 착용하고 다닌다.#

  • 이 사람이 방송에선 가벼워 보여도, 알고 보면 기러기 아빠. 아들의 애칭은 자신의 고향인 서울 번동과 아내의 고향인 경북 칠곡의 지명을 따 번칠이다.

  • 과거의 숨겨진 특촬물인 반달가면에도 주연으로 출연했다.[20]

  • KOF의 클론 제로의 등장으로 2000년 당시 논란이 있었다.

  • 신분을 숨기고 격투기 선수로 활동한다는 루머도 있었다.

  • 여담으로 이분 덕분에 본의아니게 피해(?)를 입고 계신분이 있다.

  •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인에게 센터(...)를 공격당한 적이 있다.

  •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1989년 당시에 인기에 편승하여 영화<앗싸! 호랑나비>라는 영화를 찍었는데 흑역사가 되었다..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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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관객이[21] 130명이었다는 이야기까지 있는 그 영화.이런 영화가 VHS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참고로 티비에서 방영까지 했다.!!

  •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부른 적도 있다.
    바로 꿈돌이... 그런데 이름은 김흥국만 나와있는데, 아무리 들어도 여성보컬이 메인이고 김흥국은 코러스 같다.

  • 여담인데 로또 2등에 당첨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넌 이미 돈많은데 그 돈 나 줘라'하는 괴전화에 시달린 나머지(전화번호를 바꿔도 어찌 알아내서 계속 전화하기에) 열불나서 그냥 기부해버렸다고 한다. 나중에 걸린 전화에 야,그 돈 너같은 XX 주느니 기부하여 불우이웃을 돕는게 낫길래 기부했다고하자 마구 욕하면서 끊어버렸다고... 오오

  • 2012년 여름과 겨울, 2013년 초에는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 미국으로 공부갔던 딸과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그 결과 새로운 구멍 가족으로 결정이 되었다.[22] 사실 아버지 쪽에서 문제가 많은 것과, 롤코 기질이 심했던 거다.

  • 2013년 10월 11일 새벽 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음주 단속 중이던 경찰에 또 음주운전이 적발돼 100일간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다. 경찰 조사에서 귀가 중 음주를 했다며 음주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소속사를 통해 "음주운전으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 있는 딸과 술을 안마시기로 약속했는데, 딸에게도 미안하다"고 전했다. 기사 이로 인해 대전/충남/세종지역 방송에 4년전부터 지금까지 방송되고 있는 대리운전 광고가 재평가받고 있다(...).

  • 2005년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6화에 까메오로 출연해 이런 짤방을 남겼다.

  • 피파온라인3 4월 패치에 만우절 이벤트로 선수로 추가될 예정이다.

  • 2014년 2월, EBS어린이 드라마 플루토 비밀결사대 1화에 수사반장역으로 특별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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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poison stage가 아니고 '아, 응예에요~'와 함께 김흥국이 나름 유행어로 밀던 '으~아~ 나으 독무대에요'의 그 독무대로 한자로는 '홀로'라는 뜻의 독(獨)이 쓰인다. 영어로 직역하면 Solo Stage
  • [2] 그럼 59년 왕십리는 뭐냐고 할 수도 있는데, 저 노래는 김흥국이 호랑나비로 터진 다음에 바로 나온 노래라서 인지도가 낮을 수가 없는 노래였다.
  • [3] 이 때 가수들이 레게곡을 많이 냈던 시기로, 레게 그룹을 표방했던 룰라도 이 때 데뷔했다.
  • [4] 레게파티와 1995년에 나온 후속 앨범 '2002 월드컵 코리아' 이후에 '무정'이라는 트로트 앨범을 다시 내긴 했는데 워낙에 이미지가 훅 가버려서 돌이킬 수가 없었다.
  • [5] 유튜브에서도 방영분 편집본을 뒤지다보면 찾아볼수있다.
  • [6] 으아~나 응애에요~, 들이대~ 나의 독무대에요 같은 것은 원고가 없이 진행된 결과 나왔다.
  • [7] 거의 절대 다수가 박미선과 함께 진행하던 라디오에서 나왔다. 박미선은 대체 무슨 죄야
  • [8] 대부분은 6월 25일로 알려져 있지만, 김흥국이 직접낸 책 '김흥국의 우끼는 어록'에서 10월 1일 국군의 날에 한 이야기라고 수록하고 있다.
  • [9] 쥬얼리는 이해를 해도 자두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이 시기 자두는 자두와 강두의 2인조 혼성듀오였다. 양쪽이 모두 그룹이름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
  • [10] 방송 시작 멘트를 저걸로 한 바람에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장애인들의 항의가 빗발쳐서 방송 도중에 사과를 해야 했다.
  • [11] 원래 원고에는 대마도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도 대마도 우리땅 드립보다는 낫다
  • [12] 앙드레 김은 자신의 본명으로 불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옷로비 사건의 증인으로 청문회에 출두했을 때 처음에 자기 이름을 앙드레 김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 물론 국회의원의 지적에 바로 본명을 말해야 했다
  • [13] 자기 노래 가사를 다 못 외운 것도 이상하지만, 대부분 라디오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PD가 앨범을 튼다.
  • [14] 사실 김흥국이 이 그룹 이름을 처음 들었을때도 "엑소? 그거 술 아냐?" 그랬다. 코냑의 등급 XO(Extra Old, 최상급 코냑)와 헷갈린 것.
  • [15] 뮤지가 두시탈출 컬투쇼 2015년 3월 2일 동네형들 코너에서 직접 밝힌 경험담이다. 이를 들은 김태균은 한 술 더 떠서 추임새를 넣기를 "어머니가 거기(묘지)서 낳으셨나?"(...)
  • [16] 과거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회식자리 상황을 두고 그 상황에서 취해야 할 태도를 출연자들이 연기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글라스 위에 젓가락을 올리고 스트레이트 잔을 세팅한 폭탄주를 발로 차며 당당하게 '난 축구선수니까' 라고 말했다. 이는 예능프로그램인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고 충분히 그 사상을 엿볼 수 있다.
  • [17] 이는 야구vs축구를 이야기할때 누가 먼저 잘못했나를 가리는 근거로 종종 설명되기도 한다.
  • [18] 정몽준은 한나라당 주류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데 취약할 수밖에 없다.
  • [19] 후임으로는 가수 원미연
  • [20] 과거 MBC의 일요일 예능 프로그램 '브레인 서바이버'에서 나이 어린 출연자에게 내가 주인공으로 나온 반달가면과 앗싸 호랑나비를 본 적 있냐는 멘트를 날린 적이 있다. 본인이 80년대 특촬물의 주연이었던 점을 방송에서 직접 어필한 것. 참고로 저 질문을 들은 출연자는 모른다고 대답. 작품이 나온 시간대를 따지면 70년대 출생이 아니고선 쉽게 알 만한 작품이 아니기에(...)
  • [21] 당시에는 지금처럼 전국 관객의 수를 측정할 수 없어서 서울 관객의 수가 곧 흥행 척도였다.
  • [22] 어찌 보면 딸이 한국에 있은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이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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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30 00: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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