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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민주당

last modified: 2014-09-14 17:43:36 by Contributors

Contents

1. 통일민주당 일부 의원을 중심으로 1990년 창당한 "민주당"의 속칭
2. 민주당(1991년)에 잔류한 비DJ세력이 1995년 재창당한 "통합민주당"의 속칭
3. 2004년 꼬마 정당으로 전락한 새천년민주당의 별칭

1. 통일민주당 일부 의원을 중심으로 1990년 창당한 "민주당"의 속칭

노무현, 정길, 기택, 김광일, 석화 의원 등 민주자유당으로의 3당합당을 반대한 통일민주당 정치인들이 탈당하여 1990년 6월 15일 창당한 정당. , 박찬종 등 무소속 의원들[1]이 합류하고 1990년 4월 진천,음성 보궐선거에서 후보가 당선되어 국회 의석 수는 8석이었다.

통일민주당의 직계를 자처하며 민주당으로 불러달라고 강조했다. 반년 후인 1991년 지방선거에서 득표 14.3%, 양당의 세가 강했던 호남, 대구직할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광역의원 21명을 당선시키며 나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13대 총선 당시 통일민주당의 지지도(23.8%)의 절반 이상이었다.[2] 최동원도 이때 부산 시의원으로 출마했다. 다만 낙선.

이후 평화민주당이 이름을 바꾼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여 민주당(1991년)으로 등장했다.

1년도 안 되는 독자 정당 시기와 도로 민주당 밑으로 들어간 약력, 활동 당시 약한 당세로 꼬마 민주당으로 불렸다.

2. 민주당(1991년)에 잔류한 비DJ세력이 1995년 재창당한 "통합민주당"의 속칭

하지만 민주당의 동교동계가 DJ의 정계 복귀에 따라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기 위해 탈당하면서, 잔류한 과거 꼬마민주당 의원들의 대부분이 통합민주당(1995년)으로 이어진다. 꼬마민주당 시즌 2 항목 참조.

이 당은 노력과 선전에도 불구하고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의 참패(15석, 11.2% 득표) 후 둘로 나뉘었다. 노무현을 포함한 상당수는 국민회의로, 제정구를 포함한 나머지는 신한국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을 이룬다. 가끔씩 꼬마민주당과 통합민주당(1995년)을 햇갈려 꼬마민주당이라고 하는 경우도 많으나, 일반적으로 후자의 약칭, 별칭은 "민주당'이고 꼬마민주당으로 부르는 것은 앞의 경우 뿐이다. 새천년민주당 잔당 역시 마찬가지.

3. 2004년 꼬마 정당으로 전락한 새천년민주당의 별칭


새천년민주당 참조. 몰락한 당세를 1에 비유한 이름이다.

노무현계 세력이 탈당한 직후에는 한나라당에 이어 제2정당으로 열린우리당보다 의석이 많았지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자초하고 역풍으로 몰락하여 호남지역의 9석에 그치게 되었다. [3]

미애씨처럼 선전한 후보도 있었고, 명색이 2당이었고 네임드 정치인이 많아서 여러 지역에 후보를 냈는데, 열린우리당, 새천년민주당, 한나라당의 3자 구도로 치러지면서 한나라당에 의석을 넘긴 지역도 많았다.

2005년 로고를 바꾸고 "민주당"으로 개칭했으며, 2006년 지방선거에서 전라남도광주에서 열린우리당을 앞지르며 승기를 올렸다. 2007년 재보궐선거로 의원직을 늘려가다가 열린우리당의 분당 과정에서 창당된 김한길파와 합당, 도통합민주당이 되면서 의원직 30명으로 내교섭단체를 구성한다. 그러나 다시 탈당하면서 원래 있던 사람까지 빠져나가면서, 합당 이전보다 더 쪼그라들었다. 게다가 인제가 습격을 해와서(...)

결국 2007년 17대 대선이 끝나고 대통합민주신당과 함께 통합민주당(민주당의 전신)으로 합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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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이 분열될 당시 야권의 통합을 주장하며 무소속을 택한 이들이었다. 흔히 꼬마민주당 의원 8명을 가리킬때, 허탁 의원 대신에 홍사덕 의원을 끼워넣는 경우가 많은데, 홍사덕 의원은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강남을 선거구에서 낙선해 현역 의원이 아니었다. 홍사덕, 박찬종의 리즈시절
  • [2] 무소속이 22.4%를 득표했고, 김대중의 신민주연합당이 불과 21.9%(총선 당시 19.3%)를 득표한 것을 감안하면 이는 결코 적은 득표가 아니다. 여당인 민자당은 40.6%로 34.6%에서 불과 6% 증가했다. (이는 전체 정당 득표의 52.3%에 달한다.)
  • [3] 당시 네임드 여류 정치인이었던 추미애를 비롯하여 다른 지방에 출마한 후보들은 모두 낙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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