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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모리 아키나

last modified: 2015-04-15 01:24:35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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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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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름 中森明菜 (나카모리 아키나) [2]
출생 1965년 7월 13일, 도쿄
국적 일본
신장/혈액형 160cm, A형
특기 발레
학력 '메이지 대학 부속 나카노 고교' 중퇴
소속 사무소 FAITH [3]
레이블 유니버설 뮤직 재팬 [4][5]
데뷔 1982년 5월 1일 싱글 'スローモーション'
링크 공식 홈페이지
레이블(유니버설) / 레이블(워너)

80년대를 대표하는 가희 [6]

8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아이돌 [7]

쇼와를 대표하는 가희의 한 사람 [8]


마츠다 세이코와 함께 80년대 일본 가요계를 양분하여 대표하는 전설적인 아이돌이자 아티스트. 싱글과 앨범을 합산한 총 판매량 2,537만장[9]으로, 일본 역대 가수 중 16위, 아이돌 중 3위를 기록.[10] 2014년 현재, 가수별 연간 매상 총합(오리콘 연간 랭킹) 최다 1위 기록(4회)을 가지고 있다.[11] 2010년 이후, 건강 악화로 활동을 무기한 정지하였으나, 2015년 1월 신규 싱글과 커버 앨범으로 복귀가 결정되었다.


Contents

1. 출생과 성장
2. 데뷔와 활동 초반
3. 아티스트로 노선 변경, 그리고 전성기를 맞이하다
4. 희대의 자살미수 사건과 활동 정지
5. 복귀와 이후 행적
6. 최근 근황
7. 음악 활동
7.1. 음반 목록
7.1.1. 한국 노래방 수록 현황
7.2. 음악성
7.3. 각종 음악상 수상
8. 연기 활동
8.1. 드라마 출연
8.2. 영화 출연
9. 에피소드
9.1. 마츠다 세이코와의 라이벌 구도
9.2. 야마구치 모모에와의 관계
9.3. 기타


1. 출생과 성장

도쿄도 키요세(淸瀨) 시 출신. 오오타(大田) 구에서 태어났지만 키요세시에서 자랐다. 6명의 형제 중 5번째, 3녀로 태어나[12] 어릴 적엔 발레 학원을 다녔다. 그래서인지 공식 프로필의 특기 또한 발레. 이 무렵의 사진이 일러스트화되어, 2006년 싱글 <꽃이여 춤춰라>의 자켓으로 사용되었다. 키요세 중학교와 다이토 학원고교를 거쳐, 최종학력은 이지대학 부속 나카노 고등학교 정시제[13] 중퇴. 데뷔 무렵에 이곳으로 전학했지만 연예계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휴학을 거쳐 자퇴했다고 한다.

2. 데뷔와 활동 초반

데뷔는 82년 '스타 탄생'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어릴 적부터 가수의 꿈을 키우고[14] 3번의 오디션에 도전하여[15] 방송 사상 최고점을 맡고 합격을 하였다. 이때 그녀를 캐스팅하겠다고 밝힌 관련 소속사가 11개사였다. 이중 연예사무소는 켄온(硏音), 음반 레이블은 너 파이오니아와 계약을 체결.[16]

1982년 5월 1일 <슬로우 모션>으로 데뷔했다. <슬로우 모션>의 성적은 다소 부진했지만[17], 데뷔 후 2개월 뒤 노선을 급선회해 '불량소녀'를 컨셉으로 잡은 두번째 싱글 <소녀A>로 히트, 인기 아이돌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 해 겨울에 발매한 3번째 싱글 <세컨드 러브>에서는 다시 청순가련 노선을 택해 오리콘 싱글차트 통산 6주 1위를 기록, 83년을 대표하는 대히트곡으로 자리잡아 톱 아이돌의 자리에 올랐다.
같은 해 7월 발매한 첫 정규앨범 《프롤로그 ~서막~》은 <슬로우 모션>이 30위를 기록한 것과 달리, 앨범차트 7위로 등장해 5위까지 올라가며 TOP5에 성공. <소녀A>가 수록된 후속 앨범 《베리에이션 ~변주곡~》이 7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앨범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승승장구하였다.

데뷔 이듬해인 83년, 연초에 활동한 <세컨드 러브>를 필두로 하여, <소녀A>와 같은 불량소녀 노선의 <1/2의 신화>가 오리콘 6주 연속 1위를 차지하였고, <세컨드 러브>와 같은 노선의 <트와일라이트 ~석양의 편지~>가 2위, 역시 불량소녀 노선의 <금구>가 1위(오리콘 통산 6주)를 기록하며 히트. 오리콘에서 선정하는 '일본 레코드 세일즈 대상'(지금의 '오리콘 연간 랭킹')에서 생애 첫 아티스트 토탈 세일즈 1위[18]를 차지하며 정상급 가수로서 자리매김하였다. <금구>의 작곡가인 소노 하루오미가, 이 당시 마츠다 세이코의 <유리의 사과>도 작곡한 것을 계기로, '세이코파'와 '아키나파'의 양분이 심화되었다.

1984년에는 새해 첫날, 7번째 싱글 <북쪽 날개>를 발매했다. 이 <북쪽 날개>는 사실, 지금까지의 싱글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 아티스트로 가는 시작점에 있다고도 보여진다. 이 때 '북쪽 날개'라는 제목을 직접 결정했고 작곡가 하야시 츠요시 또한 본인이 지명.[19]
<북쪽 날개>의 후속 싱글로, 여름 분위기의 <서던 윈드>가 채택. 안전지대의 타마키 코지 작곡의 이 곡으로, '일본유선대상'과 '메가로폴리스 가요제'에서 생애 첫 대상을 수상.
직후의 <십계(1984)>는 <금구>에서 이어진 불량소녀 노선의 결정판으로 평가받으며, 오리콘 주간/월간 1위를 차지, '전일본가요음악제', '니혼TV음악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 해, <북쪽 날개>가 연간 9위, <서던 윈드>가 연간 10위, <십계>가 연간 6위에 랭크되었고, 아티스트 토탈 세일즈에서는 2위에 올랐다. (1위는 마츠다 세이코)

데뷔 초의 캐치 프레이즈는 '조금 성숙(H)한 미신인 아가씨(美新人娘)'[20]. 이 캐치 프레이즈에 들어간 H라는 의미때문에 "아키나씨는 야한가요?"라는 질문을 받거나 호기심의 눈으로 비치는 일이 잦아 곤란을 겪었다고 얘기했다. 여기서의 H검열삭제적인 의미가 아니라 어른스럽고 성숙한 느낌을 내기 위해 나타낸 의미라고 소속사에서 밝혔다. 터무니없는 드립이다
<소녀A>에서 시작해 <1/2의 신화>, <금구>를 거쳐 <십계(1984)>에서 마무리되는, 통칭 불량소녀[21] 노선은 대성공을 거둬 초창기 그녀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정작 본인은 이 경향의 곡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

80년대 아이돌 인기의 바로미터였던 브로마이드 매상 랭킹에서는 82년에 5위, 83년 1위, 84년 1위, 85년 2위, 86년 1위를 기록.

3. 아티스트로 노선 변경, 그리고 전성기를 맞이하다

데뷔 당시부터 메이크업, 스타일, 댄스와 음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오던 아키나는 84년 <십계(1984)>를 마지막으로 아이돌 노선에 마무리를 짓고, 거물 싱어송라이터 이노우에 요스이에게 받은 <장식이 아니야, 눈물은>를 발매하며 평범한 아이돌과 차별화된 진정한 아티스트의 길로 전환하는 시기를 맞는다. 더불어, 그녀의 특기로도 유명한 아키나 비브라토를 시전하며 일취월장한 가창력을 갈고 닦는다. 이 시기의 그녀는 아이돌이라 부를 수 없는 도전적이고 강렬한 음악과 무대로 찬사를 받았다.

1985년, 전성기의 화려한 막이 오른다. 3월에 내놓은 싱글 <미 아모레>(ミ・アモーレ)가 63만장의 판매고를 올려 오리콘 연간싱글 2위를 기록하며 대히트. 이 <미 아모레>는 라틴 리듬을 기반으로 한 이국적 컨셉의 곡으로, 후속곡인 <SAND BEIGE -사막으로->를 비롯해 86년의 <집시 퀸>, 87년의 <TANGO NOIR> 등은 물론, 현재까지도 비슷한 계열의 곡들이 이어지고 있다. <SAND BEIGE>의 후속곡으로는 그녀가 직접 선정한 도시적인 분위기의 <SOLITUDE>가 결정.
<장식이 아니야, 눈물은>이 연간싱글 6위, <SAND BEIGE>가 연간싱글 7위, 정규앨범 《BITTER AND SWEET》와 《D404ME》가 각각 연간앨범 9위와 7위를 차지하며, 그야말로 커리어의 정점기에 돌입. 연간매상 누계 62억엔으로 두 번째의 아티스트 토탈 세일즈 1위를 차지. 결국, 당시의 아이돌로서는 이례적으로 일본 최고의 음악상 일본 레코드 대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의 정상에 올랐다. 아이돌의 대상 수상은 78년의 핑크 레이디 이후 7년만.

이듬해인 86년. 이 해가 자타가 공인하는 그녀의 최고 전성기. 그녀가 아티스트로서의 재능을 한껏 쏟아부은[22] 히트곡 <DESIRE -정열->일본 레코드 대상 2연패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2년 연속 수상은 소카와 타카시에 이은 역대 2번째로, 여성 가수로서는 최초이다. FNS가요제에서도 <미 아모레>에 이어 2년 연속 그랑프리(대상)를 달성. 뿐만 아니라, '전일본유선방송대상'(상반기), '니혼TV음악제'에서도 대상을 수상. <DESIRE> 다음 싱글인 <집시 퀸>은 메갈로폴리스 가요제에세 대상을, <Fin>은 '일본가요대상'과 '전일본가요음악제'에서 대상을 수상.상복이 터졌다
직접 프로듀싱한 9번째 정규앨범 《불가사의》(不思議)가 평단에서 좋은 평을 이끌어내며, 오리콘 앨범차트 3주 연속 1위를 차지. 카세트판 특별 싱글 <논픽션 엑스터시>도 출시하여 차트 1위에 올랐다. 4월에는 <SOLITUDE>까지의 싱글 A면을 엮은 두번째 베스트 앨범인 《BEST》가 출시. 판매량 77만장으로, 연간앨범 6위에 랭크. 이 해에 세 번째의 아티스트 토탈 세일즈 1위를 기록. 아티스트 토탈 세일즈 3회는 당시 최고 기록이었다.

87년에는 마츠토야 유미, BOØWY, 하마사키 아유미, 우타다 히카루 등 현 시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여럿 수상한 '일본 골드 디스크 대상'의 최고상 Artist Of The Year[23]의 첫번째 수상자가 되었고, 싱글 <TANGO NOIR>, <BLONDE>, <난파선>이 오리콘 연간 싱글 Top 10에 모두 들어 있었다. 86년 겨울에 발매한 앨범 《CRIMSON》이 60만장 이상 팔리며 87년 연간 앨범 3위에 랭크. 그리고 마침내 지난 83년, 85년, 86년에 이어 다시 한번 아티스트 토탈 세일즈(아티스트별 연간 매상 총합) 1위를 차지했다.(연간매상 48억엔) 총 4회라는, 이 사상 최다 기록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깨어지지 않고 있다.[24] 연속 3회(85~87) 또한 아직 아무도 이뤄내지 못하였다.[25]

이어 88년에 당시의 인기 음악 방송 '더 베스트텐'에서 역대 최다인 69주 1위와, 또 역대 최다인 1위 획득 곡수(17곡)로 베스트 텐의 여왕이라 불리는 등 수많은 기록과 수상을 하며, 평론가들은 물론 동세대 여성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사상 최다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면 지는 거다. 더불어, 89년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26]에서 'The Best 5 Artist of the year'에 선정. 그녀의 기타 수상 기록은 아래의 문단 참조.

88년 발매한 통산 22번째 싱글 <I MISSED “THE SHOCK”>싱글 누적 판매량 1000만장을 돌파. 하지만 이 곡의 차트 상 최고 기록은 3위로, 그간 이어오던 오리콘 연속 1위 기록이 깨져버리고 말았다. 이듬해의 후속 싱글 <LIAR>에서는 다시 1위를 기록한다.

4. 희대의 자살미수 사건과 활동 정지

1989년 2월, 당시 교제하고 있던 80년대 남성 아이돌 콘도 마사히코마츠다 세이코(당시 유부녀)가 미국에서 바람을 피운 것이 파파라치 잡지에 발각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잦은 다툼과 스트레스로 인해 아키나의 체중이 36kg까지 떨어졌었다고 한다.(사실 그전부터 콘도 마사히코의 여자관계, 빚 등으로 인해 둘 사이가 그닥이었다는 소문도 많다.) 자신이 믿었던 콘도 마사히코와의 갈등이 깊어지다가 7월 11일, 결국 그의 맨션에서 자살 미수를 일으키는 사건이 터지고야 만다. '손목을 그었다'고 자주 언급되지만, 사실 손목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팔주사(정맥주사)를 맞는 그 부위였다. 팔을 지나가는 세 종류의 신경 중 하나인 정중신경을 절단해버려 깊이 2cm, 길이 8cm의 큰 상처가 났고 6시간의 대 수술을 하였다. 아키나는 이 후유증으로 왼쪽 손의 새끼손가락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콘도 마사히코가 먼저 발견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먼저 발견한 사람은 아키나의 친구인 '요코'이다. 요코가 먼저 발견한 후 콘도 마사히코를 불러 구급차를 부르게한 것.

다만, 당시 그녀의 심리 상태가 가족들과의 금전적 불화[27] 나 소속사와의 트러블 등으로 인해 매우 좋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그리고 사건이 난 해가 바뀌기전 12월 31일에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연인 콘도 마사히코와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 유투브 영상

어쨌든, 이 사건으로 아키나 본인은 물론 사건의 주범(...)인 2명에게도 엄청난 타격을 주는 듯했으나, 콘도 마사히코는 94년에 결혼까지 해서 잘먹고 잘 사는 중이며[28] 세이코는 여유만만하게 미국 진출.실패했지만

활동을 쉬는 와중에도 앨범 《CRUISE》를 발표해 오리콘 앨범차트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4월에 있었던 라이브 콘서트를 담은 앨범과 그 영상 비디오《AKINA EAST LIVE INDEX-XXIII》도 출시해 'Video of the year'에서 최우수 뮤직비디오상을 수상하는 등 조금씩 활동을 이어나가며 악재 속에서도 아직 가수로서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5. 복귀와 이후 행적

이 사건이 있고 나서 1년 무렵 뒤인 1990년, 데뷔 때부터의 소속사인 켄온을 떠나 새 소속사 '콜렉션'을 창립하여 들어갔고,[29] 싱글 <Dear Friend>를 발표해 오리콘 통산 2주 1위, 당해 6위를 차지하는 등 대히트,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후속작 <물에 꽂은 꽃>도 오리콘 1위를 차지하며, 싱글 1위 획득수 역대 10위/여성 3위[30]의 기록을 가지게 된다.

이듬해인 91년, 데뷔 10년차를 맞아 새 싱글 <후타리시즈카>(二人静)를 발표했고, 89년 <EAST LIVE> 이후 오랜만에 콘서트 <夢 '91 Akina Nakamori Special Live>를 개최했다. 이 콘서트는 마쿠하리 멧세에서 열렸으며, 후지TV에 방영까지 되었다.[31] 이 때, 사무소를 '콜렉션'에서 '컨티뉴'(역시 개인사무소)로 이적.

92년에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 '素顔のままで(솔직한 그대로)'가 30%가 넘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며 배우로써도 인정을 받게 된다. 메데타시 메데타시. 데뷔 때부터 그녀의 음반 제작 등을 담당하고 있던 레코드 회사 '워너 파이오니아'(지금의 워너 뮤직 재팬)과는 이 때 결별.

수많은 음반사의 러브콜 중, 93년, 'MCA빅터'(후의 MCA레코드)를 택해 옮겨갔다. 이 때, MCA측에서 이적료로 제시한 3억 5천만엔을 둘러싸고 컨티뉴 측과 아키나 본인 사이에 트러블이 생겨 아키나가 소속사를 떠나버렸다. 당연히 컨티뉴 측도 제대로 굴러가지 못해, 결국 96년경 파산했다. 아키나 쪽은 당분간 MCA 쪽에서 매니지먼트까지 같이 담당해주었다고. 이 당시 발매한 《UNBALANCE+BALANCE》 앨범 중 수록곡 <애무>(愛撫)가 대히트해, 유선차트 3위까지 올랐고, 그녀의 90년대 대표곡으로 자리잡았다. 인기에 힘입어, 글컷까지 되었다. 덧붙여 이 곡은 90년대를 풍미한 제작자 코무로 테츠야가 작곡했다.[32]

소속사와의 트러블 와중에도 드라마의 출연은 계속 하며 연기자로써의 활동을 넓혀갔고, 94년엔 70년대의 히트곡을 커버한 앨범 《歌姫》(우타히메)가 히트. 커버곡 붐이 시초가 된 앨범이며 후에도 시리즈화되어 발매되었다.
더불어, 가족들과의 금전적 트러블 또한 지속된 듯. 결국, 95년에 모친인 나카모리 치에코가 별세했을 때, 장례식을 기점으로 가족들과는 말그대로 연을 끊었다. 그녀가 건강악화로 활동을 정지한 2010년 이후, 특히 아버지인 나카모리 아키오가 그녀의 현황을 다루는 매스컴에 자주 노출되지만, 이 아버지도 알 길이 만무. 지금까지 전화 한통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이러한 가족들과의 의절 상황이 보도되기도 했으며, 아버지가 팔순을 앞둔 고령이라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뜻을 계속해서 비추고 있다고.

90년대 초중반에는 당시 소속사 트러블 등이 끊이지 않고 있었고, 스캔들까지 함께 터져 꽤 불우한 시간이 지속되었다. 혹자는 89년의 사건 때보다 이 당시가 더 암흑기라고 말한다. 한 예로, 당시 한 주간지의 말도 안 되는 제보로, 대마초 소지 혐의로 가택수사까지 받았지만, 결과는 사실무근.(...) 그 외에 지인의 폭로집 발간과 그에 얽힌 재판, 어머니의 죽음 등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역경에 굴하지 않고 싱글/앨범을 계속해서 출시하였으며, 배우로서의 활동도 왕성히 이어나갔다.

그러던 2000년, 소속사를 옮기면서 개인 사무실 'FAITH'와 공식 팬클럽 'FAITHWAY'를 발촉.

2002년에 소속사로부터 모든 매니지먼트 업무를 'FAITH'로 이전하고, 유니버설 뮤직 재팬과 음반 계약을 체결하며 왕성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전작 <It's brand new day>로부터 1년만인 새 싱글 <The Heat ~musica fiesta~>와, 전작 《will》로부터 3년만인 정규앨범 《Resonancia》를 발매. MCA 시절 발매했던 세 개의 정규음반 《UNBALANCE+BALANCE》, 《la alteracion》, 《SHAKER》가 리뉴얼을 거쳐 재발매 되었고, 94년 《歌姫》 이후 오랜만에 발매하는 커버 앨범 《ZERO album-歌姫2》는 당시 커버곡 붐을 이끌며 히트하였다. 특히 마츠다 세이코의 <瑠璃色の地球>(유리색 지구)와 본인이 존경하는 야마구치 모모에의 <秋桜>(코스모스)를 커버하여 화제가 되었다. 80년대의 히트곡들을 새롭게 편곡하여 녹음한 새 베스트 앨범 《Akina Nakamori~歌姫ダブル・ディケイド》 또한 오리콘 주간 8위에 올랐다. 이 베스트 버전의 <장식이 아니야, 눈물은>으로 88년 이후 14년만에 홍백가합전에 출장했다.

2004년에는 유니버셜 뮤직 산하에 개인 사설 레이블 '가희 레코즈'[33]를 설립하기에 이르러, 43번째 싱글 <붉은 꽃>(赤い花)[34]부터는 '가희 레코즈' 명의로 발매되었다.
최근 싱글 매상은 낮은 편이지만, 의외로 수입이 꽤 되는 듯. 일본의 관련 매체는 유니버설의 숨겨진 금고[35]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아래의 건강 상의 문제로 취소된 디너쇼의 티켓값은 4만 5천엔 정도로 마츠다 세이코와 함께 여성 가수중에선 최고 클래스로 판매되기도 하였다.

6. 최근 근황

2010년 디지털 음원곡인 <Crazy Love>을 발매. 그러나 이 해 10월, 건강 악화로 무기한 활동중단을 발표. 정확한 병명은 아니나 대상포진에 걸려있다는 얘기가 돌면서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원인은 과로로 인한 피로 누적이라고 추정. 활동중단 초기에는 소속사에서는 은퇴를 권고했을 만큼 상태가 심각했었던 모양이나 요즈음에는 요양을 통해 다소 상태가 좋아진 모양. 자택에서 허브를 재배하여 요리를 만드는 등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보기와는 다르게 술을 좋아하며[36] 담배도 많이 피워댔을 뿐더러[37], 타바스코 같이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여[38] 왕년의 고음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었지만 그런 생활을 개선하여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여담으로 데뷔 초에는 58kg의 통통한 체격과 볼살이었으나 성년으로 접어들면서 급격히 살이 빠져갔고, 80년대 말 즈음에는 가녀린 체격이 되었다. 2000년대 부근 들어서 더 살이 빠졌다. 현재 몸무게는 47kg. 팬들은 살좀 찌라고 성화지만...

2011년과 2012년에 걸쳐, 80년대 그녀가 자주 출연했던 인기 음악 프로그램 <밤의 히트 스튜디오>(후지TV)와 <더 베스트텐>(TBS)의 출연 영상을 담은 DVD가 차례차례 발매되었다. 가격은 상당히 센 축에 속한다. (밤의 히트가 2만 6천엔, 베스트텐 쪽은 3만엔 정도.)

2012년 5월 1일, 데뷔 30주년을 맞이했다. 여전히 복귀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대신, 7월 11일(그녀의 생일 이틀 전)에 베스트 앨범을 발매. 제목은 《베스트 콜렉션 ~러브 송스&팝 송스》(ベスト・コレクション ~ラブ・ソングス&ポップ・ソングス~). 정(靜)과 동(動)의 두 컨셉에 따라 곡을 구분해 CD 두장으로 발매, 총 34곡이 수록되었다.

2013년 11월 현재는 자택 맨션에서 10년 전부터 함께 일한 매니저와 한 지붕 아래 동거중이라고 하며, 둘은 연인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여름부터 근력 트레이닝이나 보이스 트레이닝에 주력하면서 내년 신곡으로 복귀예정도 있다고 간여성에서 슬쩍 흘리고 있다. 복귀하고 싶은 열망이 가장 강한 것은 아키나 본인이지만, 컨디션이 받쳐줄지는 아직 미지수. 2013년 12월 31일에는 도쿄도 내 한 신사신관과의 결혼설이 보도. 본인이 공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켜봐야 할 듯 하다.

2014년 3월, 팬클럽 회보지에 자필 인사를 남겨 화제. 지금까지 소식을 전하지 못해 미안하게 생각하며, 꼭 복귀해서 팬들을 기쁘게 해줄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정도의 내용이다.

6월에는, 전 음반사인 워너 뮤직에서 소속 당시의 싱글을 모은 박스세트와 미니 앨범 박스세트, 여름을 테마로 한 베스트 앨범 《Burning Love》가 발매. 《Burning Love》는 공개와 동시에 레코쵸쿠 앨범차트 2위를 차지했고, 수록곡들도 차트 상위권에서 줄세우기에 들어갔다. 6/18~6/24부 레코초쿠 주간 앨범랭킹에서 86년의 《BEST》가 2위, 《Burning Love》가 12위를 차지하는 등 선전하고 있다. 사실 《BEST》의 경우에는 그녀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이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여전히 나카모리 아키나의 인기가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결과.

8월 6일, 80년대 워너 시절의 음원[39]과 이후 싱글곡의 음원을 엮은 《올타임 베스트 -오리지널-》과, 커버 앨범 시리즈인 <가희>의 베스트 앨범격인 《올타임 베스트 -가희(커버)-》가 출시되었다.[40] 8/18부 차트에서 싱글 베스트가 주간 3위, 가희 베스트가 주간 7위를 기록. 두 작품 모두 TOP10 진입에 성공했다. TOP3 진입은 91년 싱글 <후타리시즈카>(3위) 이후 23년만이고, 앨범 차트 TOP3로서는 89년 《CRUISE》(1위) 이후 25년만에 이룬 쾌거이다. 2작품 동시 TOP10 진입은 89년 《EAST LIVE INDEX-XXⅢ》과 같은 앨범의 GOLD반(각각 6위와 10위) 이후 역시 25년만. 8/25부 주간차트에서는 《-오리지널-》이 3위, 《-가희(커버)-》가 10위를 기록하며, 2주 연속 2작품 동시 TOP10 진입에 성공. 이는 83년의 《Seventeen》과 《베리에이션 <변주곡>》 이후 처음이며, 본인 통산 31년만의 기록 갱신이다. 또, 2주 연속 TOP3 진입 역시 89년 《CRUISE》 이후 25년만. 8월 월간차트에서는 각각 5위와 11위를 기록.
2012년에 워너 뮤직에서 발매한 본인 비공인 베스트 《베스트 콜렉션 ~러브 송스&팝 송스》 역시, '오리지널'과 '가희' 발매 이후, 상승 효과로 판매가 지속되어 167위를 기록했다가 8/25부 차트에서 92위에 오르며 선전, 결국 3만장을 돌파하였다.

'일본 레코드 협회'에서 발표한 2014년 9월 골드디스크 인정 작품에 그녀의 《올타임 베스트 -오리지널-》이 출하량 10만장을 나타내는 '골드' 등급으로 인정. 이는 2007년의 《艶華 -Enka-》 이래 약 7년만이다.

12월 3일에 전 음반 소속사 중 한 곳인 '토쿠마 재팬'(과거의 '가우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앨범 《SPOON》과 《will》이 재발매. 이 날에는 《올타임 베스트》 시리즈의 성공에 힘입어, 《-오리지널- Special Edition》과 《-오리지널-&-가희(커버)- Special Edition》[41] 또한 출시. 이 두 스페셜 에디션은 12월까지의 한정판매 상품이라고 하며, '오리지널 스페셜 에디션'에는 초회판에 수록되었던 '中森明菜2000「21世紀への旅立ち」' 라이브의 완전판이 수록된다.유니버설 사이트의 공식 발표

2015년 1월에 아사쿠라 다이스케가 작곡한 5년여만의 새 싱글 <Rojo -Tierra->와 커버 앨범 시리즈 《가희》의 신작 《歌姫4 -My Eggs Benedict-》로 복귀하는 것이 유니버설 뮤직을 통해 알려졌다. 1월 21일에 발매되는 <Rojo -Tierra->[42]는 아프리카풍의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이라고 하며, 커버앨범 《가희4》의 경우, 1월 28일 발매로 '러브 송'을 컨셉으로 하여 70년대부터 00년대 곡까지 폭넓게 커버될 예정이라고 한다.

2014년 12월 31일,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NHK 홍백가합전에 특별 게스트로 출연, 신곡 <Rojo -Tierra->를 미국 뉴욕에서 생중계로 공연하였다. 2010년 활동정지 이후 최초로 대중 앞에 모습을 보였는데, 건강을 많이 회복한 모습을 보여 팬들을 기쁘게 했다. 가수별 시청률은 관동 지역 기준 42.9%, 관서 지역 기준 44.7%.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었기 때문에 신곡을 부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2014년 오리콘 연간 랭킹 '아티스트 토탈 세일즈'에서는 7억 6천만엔을 벌어들여 52위에 랭크.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 없이 높은 수익을 올렸다.

2015년 1월 9일에는 NHK에서 2014년 10월부터의 근황과 인터뷰, 신 커버 앨범의 수록곡을 선보이는 SONGS 특집 프로그램 '나카모리 아키나 가희 부활'이 방영되었다. 이 날 아키나의 인터뷰를 통해 오리지널 앨범이 제작되고 있는 사실도 알려졌다.

1월 21일, 싱글 <Rojo -Tierra->가 출시. 주간매상 1.4만장으로, 오리콘 주간 싱글차트에서 8위를 기록. 싱글차트 TOP10은 1994년 싱글 <월화> 이래, 20여년만이다. 이것으로 통산 29개의 작품이 싱글 TOP10에 진입하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3월 2일 발표된, 제29회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에서 '베스트 엔카/가요곡 아티스트'에 선정. 2008년에 같은 상을 수상한지 약 7년 만이다.

7. 음악 활동

7.1. 음반 목록

나카모리 아키나/음반 목록 참조. (편의상 DVD도 음반 목록에 함께 작성)

7.1.1. 한국 노래방 수록 현황

아래 표의 곡 제목은 싱글 발매 순번이 빠른 것부터 나열.

곡 제목 금영 태진 SM 브라보 비고
소녀A 40808
금구 080337
북쪽 날개 26552
미 아모레 080481
DESIRE -정열- 42247 26551
TANGO NOIR 080741
난파선 6709 080224
AL-MAUJ 080827
애무 26300
Tokyo Rose 6704

7.2. 음악성

어린 시절에는 마츠토야 유미자와 에이키치의 음악을 좋아했었으나 영향을 받은 건 오빠가 자주 듣던 디스코 뮤직이나 소울 뮤직이라고 한다. 자신의 작품에는 베이스이스 드럼등의 중저음을 활용했다고 한다. 곡 자체도 장조보다는 단조 계열의 묵직하거나 어두운 노래가 많은 편.

가창력에 있어서는 전성기에 한해,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그녀의 특기로 일컬어지는 아키나 비브라토. 직접 들어보면 금방 알 수 있지만 굳이 말로 설명하자면, 폐활량 문제로 보통 아이돌 가수들이 짧은 호흡으로 끊어가는 부분을 나카모리 아키나는 한 호흡으로 불렀다. 그런데 한 음이 길게 이어질 경우 숨이 떨리며 음이 흐트러지기 쉬운데, 나카모리는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 (호흡을 바꾸지 않고) 한단계 힘을 더 넣으며 낮으면서도 강한 비브라토로 부른다. <미 아모레>나 <DESIRE -情熱->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DESIRE>에서는 아예 도입부인 'Get up, Get up, Get up, Get up, burning love'부터 아키나 비브라토를 시전한다. 나카모리의 창법이 안에서부터 굵게 뽑하내는 중후한 음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볍고 날카로운 음색을 가진 가수들에 비해 비브라토가 상당히 무게감 있게 들린다.

89년의 그 사건과 90년대 초반의 각종 루머나 사건사고 이후, 술과 담배 등에 의지한 것이 원인인지 90년대 후반 이후에는 목이 상당히 안 좋아진듯. 전성기 시절 노래를 소화하기가 살짝 버거운 듯한 모습. 돌고래 같은 고음을 뽑아내기 보다는 풍부한 중저음을 바탕으로 한 감정표현에 능한 가수이다. 전성기 시절부터 이어진 특유의 감정표현에 대해, NHK SONGS에서는 3분간의 드라마를 여배우 같이 연기하면서 노래하는 싱어 액트리스라며 절찬.
더불어 시기별로 창법이 상당부분 차이가 있어 목소리만 듣고 대략 어느 시기인지 파악할 수 있을 정도. 초창기 때는 맑으면서도 살짝 무겁고 허스키한 목소리(대표적인 예가 데뷔 싱글 <슬로우 모션>과 그 다음의 <소녀A>). 전성기 때는 특유의 시원시원한 아키나 비브라토를 바탕으로 한 댄스곡(DESIRE)과 차분하고 우울한 발라드곡(난파선)을 모두 아우르며 많은 인기를 누렸다. 비브라토를 지를 때와, 앨범곡에서 자주 선보이는 읊조리는 듯 차분히 내리깐 목소리가 상당히 대조적이다. 전자는 앨범 《Stock》을, 후자는 앨범 《CRIMSON》이나 《CRUISE》을 들으면 바로 파악할 수 있다.

신인 시절부터 신인, 무명에 연연하지 않고 재능있는 작사, 작곡가들을 채용하여 곡을 받아 앨범에 수록하였는데, 이중에는 애니메이션 음악을 주로 작곡한 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앨범 자켓사진이나 곡의 의상, 무대에도 직접 참여하여 의견을 제시했고, 곡 하나하나가 가진 느낌을 중시하는 타입이라고 한다. 이게 대박을 친 것이 바로, 1986년의 대표곡 <DESIRE -정열->. 이 곡은 안무, 의상, 무대 등 그녀가 관여하지 않은 곳이 없었을 정도. 원래 곡부터가 B면곡(커플링곡)으로 나가려던 것을, 본인 의지로 싱글 대표곡으로 바꾼 것. 이런 부분에 대해 고집이 다소 강했던 듯. 다만, 당시 그녀와 함께 작업했던 스탭에 의하면 '이유 있는 고집'이었다고 한다.

1986년 최전성기 시절, 직접 프로듀서로서 작업한 《不思議》라는 앨범이 있는데, 제목의 뜻인 '불가사의'와 '목소리도 악기의 하나'라는 테마로 작업하였다. 이 앨범을 들어보면 아키나의 목소리가 반주소리에 뒤섞였을 뿐만 아니라, 멀리서 들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무엇보다 보컬이 잘 안 들린다. 오죽하면 발매 직후, 팬들로부터 '불량품인 것 같다'는 항의가 들어왔을 정도. 수록곡 <BACK DOOR NIGHT>와 <마리오네트>를 '밤의 히트 스튜디오'에서 선보였는데,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상당히 독특한 무대였다. 팬들 사이에서는 전설로 회자되는 무대.

노래, 특히 싱글 중에 <미 아모레>에서 시작해 <SAND BEIGE>, <집시 퀸>, <TANGO NOIR>, <AL-MAUJ> 등 이국적인 색깔을 띈 곡들이 많다. 이 중 <SAND BEIGE>와 <AL-MAUJ> 같은 아랍풍의 노래는 싱글이 아닌 앨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편. <TANGO NOIR> 등으로 대표되는 라틴계열의 노래는 이후의 노래들에서도 그 경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6번째 싱글 <二人静>은 일본풍의 간주가 인상적인 노래. 그 외에 <サザン・ウインド> 또한 남쪽 나라를 배경으로 한 곡 특성상, 이국적 노선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2015년 발매 예정인 신곡 <Rojo -Tierra-> 또한 아프리카풍 EDM으로 아키나의 이국적 노선을 잇는 노래로 분류할 수 있다.

7.3. 각종 음악상 수상

80년대에는 70년대부터 존속해온 수많은 가요 시상식이 혼재해 가히 음악상의 절정기를 맞이했다. 괄호 안에 있는 것은 각 시상식을 주최/후원하는 방송국이나 단체. 그 이름을 나열해보면, 일본 레코드 대상(레코드 대상 위원회, 일본작곡가 협회, TBS)을 비롯, FNS가요제(후지TV),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일본 레코드 협회), 일본 레코드 세일즈 대상(오리콘), 일본유선대상(전국 유선음악방송협회), 일본가요대상(방송음악 프로듀서 연맹[43]), 니혼TV음악제(니혼 TV), 전일본유선방송대상(요미우리TV) 등등 수십여가지. 이중에서도 일본 레코드 대상의 권위가 가장 높았다. 일본 레코드 세일즈 대상의 경우는, 시상식이라기보다는 한 해에 얼마나 많이 음반을 팔고 수익을 올렸느냐로 결정되는 실적 싸움이라고 보는 것이 좋다.

나카모리 아키나는 당시의 아이돌로서는 이례적으로 이런 유수의 시상식을 휩쓸며 활약했다. 그 중에서도 위에도 언급되었듯이 <일본 레코드 대상> 2연패('85~'86)가 대표적이며,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 1회('87)[44], <FNS가요제> 2회('85~'86), <일본가요대상> 1회('86), <일본 레코드 세일즈 대상>[45] 4회('83, '85~87), <전일본유선방송대상> 1회('86), <전일본가요음악제> 2회('84, '86), <니혼TV음악제> 2회('84, '86), <일본유선대상> 1회('84 상반기), <메가로폴리스 음악제> 3회('84, '86, '88) 등 각 시상식의 최고상은 물론, 기타 여러 크고 작은 상을 수상하며 가창력과 인기를 검증받았다. 그녀의 기타 수상 기록은 한국어 위키백과를 참조.
이것은 70년대 활약한 전설의 아이돌 야마구치 모모에와 라이벌 마츠다 세이코에 대해 비교우위를 차지하는 부분이기도. 다만, '야마구치 모모에'의 경우는 시대별 가요계 풍조 차이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인 편이다. 마츠다 세이코 쪽도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는 인기를 구가했으나, "아이돌"이라는 편견이 대상(그랑프리) 수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고 있다.(대상은 82년 'FNS가요제' 그랑프리와 83년 '전일본가요음악제' 골든 그랑프리 단 두개 뿐. 다른 상은 많이 받았다.) 자세히 아시는 분 추가바람.

8. 연기 활동

8.1. 드라마 출연

대표작은 볼드체로 처리. 배역의 일본어 독음에 문제가 있을 경우 수정바람.

방송일자 제목 방송사 배역 비고
1984.04.11 走れ青春42.195㎞ 涙と汗のマラソン野郎
(달려라 청춘42.195km 눈물과 땀의 마라톤남자)
TV도쿄특별출연
1987.01.02 トライアングルブルースペシャルⅡ
(트라이앵글 블루 스페셜2)
TV아사히아키나 役
1987.04.15 ベストフレンド
(베스트 프렌드)
TBS카지마 아야 役
(鹿島 亜矢)
첫 주연작.
1988.04.14 中森明菜のスパゲティー恋物語
(나카모리 아키나의 스파게티 사랑이야기)
후지TV노무라 아유미 役
(野村 歩)
1989.01.03 季節はずれの海岸物語 砂浜のDESTINY
(계절에 안 맞는 바닷가 이야기-모래사장의 DESTINY)
후지TV아키나 役특별 출연.
1989.03.08 男三昧女三昧(남자 삼매경 여자 삼매경)니혼TV쇼핑객 役특별 출연.
1991.01.03 世にも奇妙な物語 冬の特別編・さよなら6年2組
('기묘한 이야기' 겨울 특별편/안녕 6학년 2반)
후지TV쿠보타 레이코 役
(久保田 玲子)
1991.03.28 中森明菜・メロドラマ
(나카모리 아키나 멜로 드라마)
후지TV마지마 메구미 役
(真島 恵)
1991.08.30 悪女A・B (악녀A/B)후지TV마미야 카스미(間宮カスミ)
/쿠니모토 신코(国本新子) 役
1991.12.23 10年目のクリスマス・イヴ 愛してると私から!
(10년째의 크리스마스 이브 사랑한다면 나부터!)
TV아사히무기타 미스즈 役
(麦田 美鈴)
1992.04.13
~1992.06.29
素顔のままで (솔직한 그대로)후지TV츠키시마 칸나 役
(月島 カンナ)
첫 정규 주연작.[46] 月9 드라마로,
평균시청률 26.4%, 최종화 31.9%로
공전의 히트를 달성.[47]
1993.01.04 悪女Ⅱ サンテミリオン殺人事件
(악녀2 센티밀리언 살인사건)
후지TV히다 레이코 役
(緋田伶子)
1993.03.30 チャンス!(찬스!)후지TV츠키시마 칸나 役
(月島 カンナ)
'솔직한 그대로'에서의 역할로 우정출연.
1993.10.22 ざけんなョ!!5「一般職OLの悲哀」
(웃기지마!!5 '일반직OL의 비애')
후지TV모리오카 카츠코 役
(森岡 勝子)
1993.12.25 瞳に星な女たち
(눈동자에 별인 여자들)
니혼TV엔도 카오루 役
(遠藤 薫)
코이즈미 쿄코와 공동 출연.
1994.04.13 警部補 古畑任三郎「死者からの伝言」
(경부보 루하타 닌자부로 '사자로부터의 전언')
후지TV코이시카와 치나미 役
(小石川 ちなみ)
범인임에도 행복한 결말을 맞은 것이
후일 작중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유는 간단. 작가인 타니 코키
아키나의 덕후광팬이란다.(...)
1996.04.09 古畑任三郎「消えた古畑任三郎」
(루하타 닌자부로 '사라진 후루하타 닌자부로')
1996.09.27 恋物語 せつない夜は逢いたくて…「変身願望」
(사랑이야기-애절한 밤엔 만나고 싶어서... '변신소원')
TBS나카하라 미치코 役
(中原美知子)
1998.01.12
~1998.03.16
冷たい月 (차가운 달)니혼TV시이나 키요카 役
(椎名希代加)
외과의로 일종의 복수귀 역할.
최종화 18.0%를 기록.
1998.09.25 七人のOLソムリエ (7인의 OL소믈리에)TBS난바라 마이 役
(南原 舞)
1999.01.11
~1999.03.08
ボーダー 犯罪心理捜査ファイル
(보더 ~범죄심리 조사파일~)
니혼TV스기시마 키리에 役
(杉嶋桐惠)
평균시청률 11.1%
2006.04.12
~2006.06.21
プリマダム (프리마담)니혼TV쿠라하시 란코 役
(倉橋 嵐子)
평균시청률 11.2%. 데뷔 25주년을 맞아
7년만에 드라마 주연으로 출연.

8.2. 영화 출연

개봉년도 제목 배급사 배역 비고
1985년愛・旅立ち (사랑・여행)도호코이즈미 유키 役
(小泉 ユキ)
콘도 마사히코와 남녀주인공을 맡았다.
내용 자체가 심히 괴랄하다.(...)[48] 주연들 연기도(...) 둘의 비주얼만 남았다.
1992년走れメロス (달려라 메로스)도에이라이사(ライサ) 役애니메이션으로, 더빙에 참여.

9. 에피소드

9.1. 마츠다 세이코와의 라이벌 구도

신인 때부터 3살이 많은 선배인 마츠다 세이코와 라이벌으로 불려왔는데, 밝고 사랑스러운 세이코와 다소 어둡고 쿨하며 슬픈 사랑 노래를 부르던 아키나와는 데뷔 초부터 이미지와 곡의 분위기가 확연히 갈려 세이코는 '해의 아이돌', 아키나는 '달의 아이돌'이라 일컬어져 왔다.[49] 쉽게 논하자면, 세이코가 마치 슈퍼맨 같은 의 이미지라면 아키나는 반대로 배트맨 같은 어둠의 이미지로 볼 수 있겠다. 동세대에 음악적으로 경쟁해오던 두 사람이었으며 내적인 면까지 상당히 달랐기 때문에 줄곧 비교 되어왔으며 전성기엔 어떤 연령대이건 '아키나파'와 '세이코파'로 나뉘어 신경전을 벌였다는 얘기도. 당시 세이코와 아키나의 라이벌 구도는 방송에서도 일부러 연출을 시켜 세이코와 아키나를 양쪽 맨 끝에 세워놓아 냉전을 방불케했다고 후에 토크쇼에서 얘기되었다.

세이코는 겉으로는 순수하고 활기찬 이미지였자만 처세술이 뛰어나고 영악한 면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아키나는 강해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여리고 정이 많은 타입이었다. 아키나가 2번째로 본 스타 탄생 오디션에서 부른 노래는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라 한다. 실제로 더 베스트텐에서 아키나가 <십계>, 세이코가 <핑크 모차르트>로 함께 등장했을 때 자신이 세이코의 팬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상술되었듯, 콘도 마사히코와 두 사람이 얽힌 큰 사건이 있었으나(...) 마츠다 세이코와는 세월의 흐름이 상처를 어느 정도 치유해 주었는지, 몇년 뒤 모 방송에 출연해서는 자신은 세이코씨의 팬이라며 세이코의 노래를 불렀고 이후에도 여러번 오락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였다. 특히 'HEY! HEY! HEY!'라는 프로그램에 함께 나와 볼링대결을 펼친 것이 유명. 마츠다 세이코의 싱글은 거의 다 갖고있다고 할 만큼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팬들은 아직도...

사족이지만, 의외로 두 사람의 전성기 당시 오리콘, TBS 베스트텐 등 음악차트 상에서 이들에게 더 큰 위협은 콘도 마사히코, 타하라 토시히코, 커즈 등의 남성 아이돌들. (물론 세이코 VS 아키나 대립구도가 만만찮지만.) 예를 들어, 82년 연간 싱글차트에서는 콘도 마사히코가 TOP10에 세곡이나 올려놓으며(7위, 9위, 10위), 세이코는 <물가의 발코니>와 <붉은 스위트 피>가 각각 11위, 12위로 아깝게 TOP10 진입에 실패하였다. 아키나의 경우 85년, <미 아모레>가 체커즈의 <줄리아에게 상심>[50] 에 밀려 연간 싱글랭킹 2위에 그쳤다. <미 아모레>에 이은 레코드 대상의 차점이 이 <줄리아에게 상심>. '더 베스트텐' 차트 상에서도 체커즈의 곡들이 매우 무서운 기세로 아키나와 세이코를 위협했었다. 상기의 <줄리아에게 상심>이 1위를 차지한 다음주에 아키나가 <장식이 아니야 눈물은>으로 1위를 빼앗았으나 바로 다음 주에 돌려주었고, 세이코는 <하트의 귀걸이>가 이 노래에 막혀 2위. 덧붙여 아키나로부터 1위를 탈환한 후에는 연속 7주간 1위를 차지, 통산 8주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이전에도 <눈물의 리퀘스트>나 <슬퍼서 젤러시> 등이 여러 주에 걸쳐 1위를 차지하는 등 기세가 매서웠다.

이 이후로 가면 쟈니즈의 년대나 아이돌 사대천왕(쿠도 시즈카, 나카야마 미호 등)이 등장하며, 10대를 대상으로 한 '톱 아이돌'의 자리에서 점점 내려오게 된다. 사실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이며, 세이코와 아키나 모두 "아이돌"에서 "가수"로 점점 음악적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었다.

9.2. 야마구치 모모에와의 관계

라이벌인 마츠다 세이코를 비롯하여 전설의 가희인 야마구치 모모에의 후계자라고 불렸지만 모모에의 존재에 가장 근접한 것이 나카모리 아키나이다. 야마구치 모모에와 아키나는 활동 시기가 겹치지는 않았으나 <소녀A>나 <십계>를 부르던 모습은 모모에의 '플레이백 part.2'와 '록큰롤 위도우'등으로 불량소녀(츳빠리) 노선을 확립시켰던 모모에의 스탠스를 물려받았다 칭해지며 포스트 야마구치 모모에의 한 사람으로써 이름을 알려갔다. 아키나 본인도 야마구치 모모에에 커다란 존경심과 동경을 가져왔었으며 데뷔 전 야마구치 모모에의 '몽선안내인'을 부른 것으로도 유명. 또한 20살의 나이로 결혼 뒤 바로 은퇴한 모모에의 모습에 동경을 가져왔다고도 한다.

야마구치 모모에 본인도 방송 '더 베스트텐'에서 아키나의 <북쪽 날개>을 가라오케에서 즐겨부르는다는 근황이 알려지기도 하였으며 2006년 자신의 <여행하기 좋은 날>(いい日旅立ち)를 커버한 아키나에 대해 "아키나씨가 불러주길 바라고 있었다. 아키나씨의 음악으로 재탄생된다면 더할나위없이 기쁠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 등 서로에게 있어서 특별한 존재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9.3. 기타

  • 스타탄생
    '스타탄생' 3번째 도전에서 합격한 곡은 야마구치 모모에의 <夢先案内人>(몽선안내인). 이 때의 예선에서는 케우치 마리야의 <September>를 불렀다고 한다. 2번째 오디션에선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불렀으나 심사위원이던 마츠다 토시가 "노래는 잘 부르는데 얼굴이 너무 애기 같아. 동요라도 부르렴?"이라고 매몰차게 비평. (...) 아키나는 이 말을 듣고 "오디션에서 동요는 못 부르게 하잖아요"라 반문했다고 한다. 사실 중학교 2학년때 최초로 도전한 오디션에서 이와자키 요시미의 노래를 부르려 했으나 같은 심사위원이 "연령에 비해 너무 어른스럽다"고 비평했다고 한다.

  • 데뷔 준비과정/데뷔 동기들
    데뷔 당시에 '모리 아스나'(森アスナ)란 예명으로 데뷔하는 것이 검토되었는데 그녀는 본명으로 데뷔하길 원하여 거부했다. 데뷔 전 계약한 사무소에게 '일단 치열을 고르게 만들자'는 말을 듣고 나름 마음에 들었던 앞니를 교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그녀가 데뷔한 82년에는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아이돌이 데뷔했는데, 코이즈미 쿄코, 리 치에미, 하야미 유, 시카와 히데미, 츠모토 이요[51] 등 유명인들이 많았다. 주로 여성 아이돌이 많았지만 쟈니즈의 부가키대 등 남성 아이돌도 있었다. 이들을 이른바 꽃의 82년조(花の82年組)라고 부른다. 이 해에는, 이런 아이돌 가수 뿐만 아니라, 남성 솔로인 나가키 쥰이치나 여성 2인조 가수 등을 비롯하여 전설적인 록 밴드 안전지대BOØWY 등도 데뷔하였다. 한 해동안 총 386팀의 가수가 데뷔. 그녀는 이런 유수의 82년 데뷔조 중에서도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동기들 중에서 가장 친했던 사람은 코이즈미 쿄코.[52][53] 하야미 유나 호리 치에미, 이시카와 히데미 등 타 동기들과도 나쁜 사이는 아니었다.(아주 친한 것도 아니었던 듯 하지만) 84년에 아키나가 <십계(1984)>로 '니혼TV음악제'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유-치에미-히데미 세 사람이 옆에서 축하해주는 장면도 있었고. 최근 아키나의 활동정지 이후, 쿄코는 특집 프로에서 그녀와 친해졌던 사연을 말하거나 라디오 등지에서 응원멘트를 하고 있고, 유 또한 아키나에게 편지를 썼으나 주소 등을 몰라 관계자에게 맡겼다고 고백했고, 치에미는 활동정지 직후 블로그에 응원글을 올리기도 하는 등, 당시 및 현재의 여러 방송에서 이 네 사람은 그녀에게 우호적이었으면 우호적이었지 적대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반면에, 츠모토 이요와는 사이가 별로였던 모양. 이요 쪽에서 일방적으로 싫어한 느낌. 이게 수면에 올라온 게 2011년 경, 이요가 한 방송에 나와 병환으로 활동을 중단한 아키나를 가리켜 그 시절 화장대를 너무 오래 썼다느니 사이가 안 좋았다느니 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고 했다.[54] 이날 방송에 같이 출연한 치에미와는 전혀 딴판.. 물론 이요는 방송 직후 욕을 오지게 얻어먹었다. 애초에 남아있는 팬층에서 아키나가 압도적이다 영상링크 구글에 '松本伊代 中森明菜'를 치면 嫌い(싫어한다), 悪口(험담)이라는 단어가 연관검색어로 붙어나온다.(...)

  • 재일교포?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아주 오래 전부터 조총련계 한국인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어린 시절 조선학교를 다닌 재일교포라고... 본인이 언급한 적도 없으며, 아키나의 어린시절 집에서 찍은 사진의 배경이 한옥이기 때문에 나온 추측일 뿐이지만[55][56] 우리나라에서 나온 기사에선 '재일동포(?) 여가수'라고 표기한적 있다.

  • 홍백가합전
    NHK의 홍백가합전에는 83년부터 88년까지 6회, 2002년에 다시 한번 출연해 총 7회 출장. 2002년, 14년 만의 출연에서 부른 노래는 장식이 아니야, 눈물은[57]. 2005년 NHK에서 그 해의 홍백가합전 출연가수를 선정하기 위해 조사한 "좋은 노래~홍백 모두 함께 앙케이트~"에서 그녀의 곡이 홍팀 11위, 14위에 랭크되었다. 11위가 <DESIRE -정열->이었고, 14위는 <장식이 아니야, 눈물은>. 정작 그녀의 몸상태가 좋지 않아 출연은 하지 못했다고. 2014년 연말, 주간지를 통해 NHK측에서 아키나 측에 홍백가합전 출연을 타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조금씩 흘러나왔는데 실제 성사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었고, 결국 홍백 측이 특별 출연 형식으로 등장이 결정되었다고 발표했다.홍백 공식 트위터 12월 31일, 마침내 미국 뉴욕의 음악 스튜디오에서 생중계로 신곡 <Rojo -Tierra->를 공연하였다.

  • 오카다 유키코 관련
    후배 가수 오카다 유키코가 아키나를 많이 따랐다고 한다. 그녀가 죽은 뒤 2일 후에 방영된 음악프로 '더 베스트텐' 말미에 그녀를 추도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나카모리 아키나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방영되기도. 게다가 그녀가 자살한 뒤 86년 더 베스트텐의 무대[58]에서 아키나의 무대 뒤에 오카다 유키코의 유령이 보인다는 설이 도시전설처럼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영상을 확인한 결과, 뒤에 앉아있는 관객이 어쩌다 유령처럼 보이게 된 것. (...) 오카다 유키코의 자살을 제대로 막을 수 있었다면(=자살 미수로 끝났다면) 아키나처럼 나중에 다시 일어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의견을 일본의 웹에서 볼 수 있는데, 씁쓸하게도 이미 지나가버린 일.

  • 그녀의 팬들
    일본의 여배우이자 가수인 시노하라 료코는 그녀를 동경해 연예계(가수)에 데뷔했다. 오디션에서 부른 곡이 <슬로우 모션>이라고. 동시대의 후배 아이돌 오카다 유키코도 '스타탄생'에서 이 곡을 불러 합격했다. 80년대 후반 인기를 끈 '아이돌 사대천왕'의 나카야마 미호도 신인 시절의 한 방송에서 그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미호는 자신의 첫 콘서트에서 아키나의 《D404ME》 수록곡 <모나리자>를 공연하기도 했다. AKB48의 리더 다카하시 미나미는 그녀를 좋아하는 가수, 동경하는 가수로 항상 꼽고 있으며, 솔로 데뷔 쇼케이스에서 <DESIRE -정열->을 선보였고, 음악방송에서 자료영상으로 나오는 아키나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모습이 자주 비추어졌다. 그 외에 오키나와 출신 여성 가수인 츠카와 리미 또한 어릴 적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가수를 꿈꿨다고 한다.
    일본의 인기 개그맨 콤비 다운타운마츠모토 히토시도 그녀의 팬. 마츠모토 히토시는 그녀를 '아키나 님'[59]이라고 부른다. 그 외에 여장 방송인 츠코 디럭스츠 맨그로브, 여성 예능인 모치카 등도 열렬한 팬. 이들은 관련 행사나 방송 등지에서 그녀의 팬임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작곡가 겸 제작자인 방시혁도 팬인 모양이다. #자신의 트위터에 직접 광팬이라는 말을 남겼다. 일본의 성우 박로미트위터에 남긴 글에서 아키나에 대해 '아키나님 (明菜様)'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마음의 아이돌이라 적었다.

  • 그 외
    마츠모토 이즈미의 인기 만화 오렌지 로드의 히로인 아유카와 마도카는 그녀가 모티브. 정확히는 활동 초창기 '불량소녀' 컨셉으로 인기를 모으던 무렵의 모습. 록가수 유현상이 프로듀싱한 한국의 8~90년대 인기 여가수 이지연도 아키나가 모티브였다. 단, 이쪽은 청순 노선이었을 때. 제작자 유현상이 한 인터뷰에서 직접 밝혔다. 아키나랑 가장 비슷한 당시의 한국 여가수로는 역시 김완선. 비록 가창력 부문에선 김완선이 아키나에 미치지는 못하고 댄스실력에선 김완선이 워낙 출중하지만 둘 다 신중현이나 이노우에 요스이같은 거물 싱어송라이터를 비롯한 여러 참신한 작사, 작곡가들과 작업하며 곡이 나올때 마다 컨셉을 바꿔가며 아티스트의 길을 걸은 점은 상당히 비슷하다고 할수 있다.
    인기 절정기였던 88년 음악 방송에서 AL-MAUJ를 부르고 있던 중, 무대 위로 한 남성이 난입한 사건이 있었다. 그가 B5 사이즈의 노트를 던져서 보니 그 노트엔 아키나에 대한 마음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이 남성은 23세의 열광적인 팬으로, "아키나가 텔레파시로 날 불렀다"는 헛소리를 했다고. 라이벌이었던 마츠다 세이코도 오키나와에서 라이브 중 비슷한 사건을 겪은 적이 있다. 다만 세이코 쪽은 야구 방망이로 머리를 가격당한, 심각하다고 말할 정도의 사고였다.
    근래의 예능프로에 출연할 때에는 주로 보케천연 쪽의 속성이 드러난다. 그녀의 다소 엉뚱한 발언에 예능인들이 츳코미를 거는 식으로 토크가 진행될 때가 많다.
    후지TV를 대표하는 SMAP의 칸무리방구미(冠番組) <SMAP X SMAP>의 첫번째 게스트 (1996.04.15 OA) 였다. 이 날 나카모리 아키나SMAP나카모리 아키나의 대표곡 장식이 아니야, 눈물은, TATTOO,DESIRE -情熱-SMAP의 대표곡 '힘냅시다 (がんばりましょう)'를 불렀다. 모리 카츠유키 탈퇴 전이라 6인 체제의 풋풋하던 시절 SMAP을 볼 수 있는 것도 묘미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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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인기의 최절정기는 아니고, 막 히트하여 인기가 올라가고 있던 시절의 모습. 중후반부의 모습과 비교해 아직 통통하고 앳된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 [2] 작사가로서의 필명으로 AKINAMiran:Miran이라는 필명을 쓰기도 한다.
  • [3] 2000년 설립, 2002년 이래 소속 중인 그녀의 개인 사무소다.
  • [4] 정확히는 '유니버설 뮤직 재팬' 산하 레이블 중 '유니버설 J' 소속. (2014년 현재) 과거에는 'J'와 '유니버설 시그마', 그리고 '시그마' 산하의 사설 레이블 '가희 레코즈' 등에서 음반을 내왔다.
  • [5] 데뷔 이후의 레이블 변천사는 워너 파이오니아(워너 뮤직)→MCA레코드(유니버설 뮤직으로 사명 변경)→가우스 엔터테인먼트(현재 토쿠마 재팬에 합병)→@ease→유니버설 뮤직 재팬 순.
  • [6] 뮤직 스테이션 3시간SP '출신지별 아티스트 총매상 랭킹'에서 인용. 여기서 그녀의 라이벌 마츠다 세이코에게는 영원한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었다. 과연.
  • [7] 출처는 뮤직 스테이션 2013년 3월 29일 방송.
  • [8] 출처는 뮤직 스테이션 2012년 6월 29일 방송.
  • [9] 2013년 3월 기준. 출처는 13년 3월 29일자 뮤직 스테이션.
  • [10] 전자는 2010년 9월, 후자는 2011년 1월 뮤직 스테이션 조사. 참고로, 역대 아이돌 매상랭킹 1위는 SMAP, 2위는 마츠다 세이코. 80년대 아이돌들 중 판매량이 2천만장을 넘은 건 세이코와 아키나 단 둘뿐이었다.
  • [11] 아라시와 타이기록.
  • [12] 참고로, 이 남매의 이름을 나열하면 장녀 아키에(明恵)부터 시작해 장남 아키히로(明浩), 차남 아키노리(明法), 차녀 아키코(明子), 3녀 아키나, 4녀이자 막내인 아키호(明穂)까지 전부 앞글자가 '明'(아키)이다. 아버지는 아키오(明男), 어머니는 치에코(千恵子)라고.
  • [13] 정시제란 보통의 전일제와는 다르게 특별한 시간/시기를 이용하여 수업을 하는 제도이다. 이 학교의 정시제 과정은 사이조 히데키, 콘도 마사히코, 코이즈미 쿄코, 아사카 유이 등을 비롯해 수많은 연예인들이 재학한 바 있다.
  • [14] 연예계를 동경한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 [15] 본인이 한 방송에서 밝히기를, 이건 텔레비전 본선만 따졌을 때이고 예선에서도 5번이나 낙방했다고. 도합 7번을 낙방하고 8번째에 합격한 것.
  • [16] 일본은 매니지먼트사인 '사무소'와 음반제작과 발매를 담당하는 레코드사 '레이블'을 크게 구별해서 사용한다.
  • [17] 오리콘 최고 순위 30위. 발매 당시에는 크게 히트하지 못하였다. 가수 본인이 90년대의 방송에서 전혀 팔리지 않았다고 언급할 정도. 소녀A 발매 이후까지 꾸준히 팔려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므로 최종성적이 아예 안 좋은 것은 아니다.
  • [18] 한 해동안 그 가수가 올린 매상의 누계. 이 당시 아키나는 67.2억엔을 기록.
  • [19] 출처는 2015년 1월의 NHK SONGS 스페셜.
  • [20] 美新人娘이라고 쓰고 'ミルキーっこ'(Milky한 아이)라고 읽는다.美+新人+娘의 합성어(?)
  • [21] 일본어로는 つっぱり. 발음대로 읽으면 '츳빠리' 정도다.
  • [22] 곡 선정, 안무, 의상, 무대 등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 [23] 정식 영문 표기는 The Grand Prix Artist of the year인 듯.
  • [24] 하마사키 아유미우타다 히카루가 각각 3회씩 차지했다. 2014년 세일즈 1위를 아라시가 차지하며, 총 4회로 타이기록을 이루어내었다.
  • [25] 하마사키 아유미와 우타다 히카루는 99년부터 04년까지 서로 1년씩 번갈아가며 기록했고, 아라시는 09년부터 10년까지 2회 기록하였다가, 11년과 12년에 AKB48가 1위를 기록하며, 13년에 3번째 1위, 14년에 4번째를 기록.
  • [26] 시상 대상 년도가 88년으로, 89년 3월에 치뤄졌다.
  • [27] 아키나가 연예계에서 성공하고나서 가족 모두가 아직 어린 아키나에 기대어 일도 하지않고 마구 살았다고 한다. 이밖에 동생인 아키호가 언니인 아키나의 강력한 반대와 설득에도 불구하고 AV배우로 데뷔, 이런 저런 19금 사진집을 냈지만 아키나의 유명세에 잠깐 화제가 됐을 뿐 별다른 인기는 끌지 못하고 은퇴하였는데 이 사건으로 아키나가 크게 마음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 [28] 현재 쟈니즈의 최고 선배격으로, 쟈니 사장을 이을 후계자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근래에는 가수활동보다는 레이싱 분야에 더 열중하고 있다. 다만, 결혼한지 오래되었음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고. 지난 2007년에야 비로소 무사히 득남했다.
  • [29] 정확히는 89년 12월 말
  • [30] 1위는 하마사키 아유미이고, 2위가 마츠다 세이코.
  • [31] 이 방영버전은 비디오로 출시된 것과 약간 다르다. 예를 들어, 아키나가 '눈을 감고 작은 여행'(目をとじて小旅行)이라는 곡을 부를 때, 비디오판에는 곡 끝을 울면서 마무리 하는데, TV방송판은 멀쩡히 잘만 부른다
  • [32] 아키나에게 곡을 줄 때는 아직 풍미는 안 했지만, TM NETWORK의 멤버이자 타나베 미사토의 <My Revolution> 등을 쓴 유망한 작곡가로 이름이 있었다.
  • [33] 정확히는 유니버셜 뮤직 그룹 인터내셔널의 "유니버셜 뮤직 재팬" 산하 여러 레이블 중 하나인 '유니버설 시그마'에 소속되어있다.
  • [34] 박용하가 부른 '처음 그 날처럼'을 커버한 곡이다
  • [35] 원문은 明菜はユニバーサルの隠れたドル箱.
  • [36] 노래와 건강 문제가 생긴 이유에 대해 담배와 자극적인 음식보다 더 큰 문제가 과음이라는 견해도 있다.
  • [37] <Cross My Palm>의 자켓부터가 담배를 손에 쥔 아키나의 모습이다.
  • [38] 심지어는 방송에서 자신만의 레시피랍시고 소주에 고추냉이를 듬뿍 넣은 막장을 선보이기도(...). 그 다운타운이 기겁할 정도니 더 이상 설명이 必要韓紙?
  • [39] 80년대 당시에 발표한 음원에 대한 권리가, 워너 뮤직에 있기 때문에 음반사 이적 후에는 당시의 음원을 사용할 수 없었다.
  • [40] 7월 10일에 베스트 앨범 자켓이 공개되었고, 더불어 이미 베스트에 보너스 트랙으로 들어갈 신곡이 녹음 완료되었음이 알려졌다. '오리지널'에는 신곡 <SWEET RAIN>이, '가희'에는 새 리메이크곡 <사랑의 노예>,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수록되었으며, 7월 16일부터 iTunes, 레코초쿠 등에서 다운로드가 미리부터 개시.
  • [41] '오리지널'과 '가희'를 묶어서 한 작품으로 만든 것.
  • [42] 스페인어로 뜻은 '빨강'(Rojo)과 '대지(Tierra)'. 각각 '로호'와 '티에라'로 발음한다.
  • [43] 도쿄내 민영방송사 8개사(TV도쿄, TV아사히, 후지TV, 니혼TV, 문화방송, 닛폰방송, RF라디오일본, FM도쿄)가 연합해서 결성됨.
  • [44] 이 시상식의 최고상인 "Artist of the Year"를 가리킴
  • [45] 지금의 "오리콘 연간 랭킹"
  • [46] 이전까지는 단막극/특별극 위주로 출연했었다.
  • [47] 2014년 현재, 게츠쿠 역대 7위의 기록.(평균시청률 기준) 사전에도 실려있으니 말 다했다. 링크는 네이버 일본어사전.(중서림)
  • [48] 유튜브 영상. TV광고 영상으로 나간건데, 이 15초짜리 영상으로도 그 괴랄함을 알 수 있다.
  • [49] 나카모리는 일본 "고스로리"의 시초라고도 불린다. 물론 당시엔 고스로리라는 말이 없었지만.
  • [50] 원제는 ジュリアに傷心. 傷心(상심)이라 쓰고 하트브레이크로 읽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컨츄리꼬꼬가 "OH! MY JULIA"로 리메이크해서 인기를 끌었다.
  • [51] 81년 하반기에 데뷔해 신인상 수상이 82년에 행해지는 등 실제로는 82년조로 여겨진다.
  • [52] 쿄코에 대한 아키나의 애칭은 '쿄쨩'.
  • [53] 두 사람 다 니혼TV계열 오디션 프로 '스타 탄생'을 통해 데뷔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 [54] 정확히 말하면, "xxx가 유독 화장대를 너무 오래 썼다"는 얘기를 한 후에 82년조 다른 아이돌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코이즈미 쿄코'와는 사이가 좋았다라고 말한 후, 패널 중 한 사람이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xxx 뿐이죠?' 라는 말에 거리낌없이 '그래요'라고 대답했다. 입모양이나 정황 상 얼마든지 아키나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같이 출연한 호리 치에미는 저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했고 이요의 발언 직후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뭐 직후에 이요가 자기만 안 친했을 뿐이라 말했지만..
  • [55] 이 사진은 아키나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素顔のままで>의 타이틀에서도 등장한다. 사진이 묘하게 어색한지라 합성이 아닌가하는 추측도 있다.
  • [56] 일본에서 연예인을 깎아내리려는 목적으로 퍼지는 소문 중에 가장 일반적인 것이 재일교포라는 것이다. 아키나의 선배이자 라이벌격인 세이코도 재일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
  • [57] 이 곡은 본인의 노래 중에서도 상당히 히트한 곡이지만, 발매가 11월이라 그 해의 홍백에는 적합하지 않았고 85년에는 그 이상의 히트곡인 미 아모레가 나오는 바람에 묻혀졌었다.
  • [58] 이 때 부른 노래는 '집시 퀸'. 이 노래가 오카다 유키코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루머도 있었다.
  • [59] 일본어로 '明菜様(さま)'. 읽으면 '아키나사마'. 욘사마할 때 그 '사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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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5 01: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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