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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슌스케

last modified: 2015-01-27 01:17:36 by Contributors


요코하마 F. 마리노스 No.10
나카무라 슌스케
(中村 俊輔, Shunsuke Nakamura)
생년월일 1978년 6월 24일
국적 일본
출신지 요코하마
포지션 측면 미드필더
178cm
프로 입단 1997년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입단
소속팀 요코하마 F. 마리노스(1997~2002)
레지나 칼초(2002~2005)
셀틱 FC(2005~2009)
RCD 에스파뇰(2009~2010)
요코하마 F. 마리노스(2010~)
국가대표 98경기 24골

Contents

1. 개요
2. 선수 경력
3. 평가
4. 기타


1. 개요

일본축구선수. J리그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서 측면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

정교한 왼발 프리킥과 테크닉 부분만큼은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선수로, 과거 일본 국가대표팀과 스코틀랜드 리그의 셀틱 FC에이스로 활약했다. 일본에서는 한 때 박지성의 대항마로 나카무라를 내세우기도 했을 정도. 현재는 그 대상이 혼다가가와로 바뀌었지만

일본 내에서도 상당한 인기가 있는 선수인데, 1999년 일본 천문학자가 발견한 소행성에 나카무라의 이름을 딴 '29986 슌스케'라는 이름을 명명했을 정도.

2. 선수 경력

1997년 19세의 나이로 요코하마 마리노스에서 데뷔했으며, 그 해 FIFA 청소년 월드컵에 참가하는 일본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다. 1999년에는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어 오노 신지 등과 호흡을 맞추었으며, 2000 시드니 올림픽 8강에 공헌하였다.

2000년 AFC 아시안컵 예선 당시 일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싱가포르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으며, 브루나이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후 대표팀에서 빠르게 주축으로 자리잡아 팀의 2000년 AFC 아시안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그 해 리그에서 30경기에 출장해 5골 1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J리그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다.

하지만 2001년 프랑스와의 친선경기에서 0:5로 대패한 이후 개인기보다 팀워크를 중시하는 타입인 립 트루시에 감독의 눈 밖에 났으며, 2002년 초에 잠시 선발되었다가 무릎 부상을 당한 이후 유럽 전지훈련에서 극심한 난조를 보이면서 일본 축구팬들의 절대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2002년 FIFA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1] 당시 트루시에는 나카무라를 엔트리에서 제외한 이유에 대해 피지컬이 약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덧붙여서 당시 레알 마드리드 입단을 추진했다가 월드컵에 나오지 못해 무산되었다 카더라.


월드컵 이후에는 350만 달러에 6개월 선 임대 후 3년 계약으로 이탈리아 세리에 A지나 칼초로 이적해, 일본에서는 네 번째로 이탈리아에 진출했다.[2] 입단 당시 팀의 에이스를 상징하는 10번을 받았는데, 초반에는 '최악의 11'에 선정될 정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기량을 서서히 회복하면서 32경기에서 7골을 넣어 AC 파르마 등 여러 구단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2003-04 시즌에는 부상으로 16경기에서 2골을 기록해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으며, 이는 다음 시즌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국가대표팀에서는 트루시에의 후임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지쿠의 신임을 받아 미드필더에서 레이메이커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으며, 2003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와의 경기를 포함해 3골을 넣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다.(참고영상) 그리고 팀의 2004년 AFC 아시안컵 우승의 일등공신이 되었으며, '대회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다. 이후 2005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골을 기록하는 등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았으며, 나카타 히데토시와 함께 일본 축구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참고영상)

2005년 레지나와 계약이 만료된 이후 각종 찌라시들에 의하면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포르티보 라코루냐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독일 분데스리가베르더 브레멘에서 이적 제의를 받기도 했으나, 나카무라의 선택은 스코틀랜드셀틱 FC였다.[3] 이적료는 270만 파운드이며, 연봉은 3년간 40만 파운드를 받는 조건이었다. 이적 이후 스코틀랜드 리그 데뷔전에서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으며, 이후 연속 선발 출전을 하며 네 경기만에 첫 골을 기록하는 등 팀에 빠르게 적응했다. 그 결과 2005-06 시즌 팀의 리그와 FA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나카무라 본인은 유럽 리그에서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세비야 FC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는 카더라 통신이 있었으며, 나카무라에 이어 두웨이가 셀틱 이적에 성공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셀틱에 입단한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안습. 또한 2006 FIFA 월드컵에 출전해 핵심 선수로 활약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조별 라운드 첫 경기에서 다소 논란이 있는 선제골을 뽑아냈다.[4] 그러나 경기는 결국 히딩크 매직으로 1:3으로 패배

2006-07 시즌에는 셀틱에서의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던디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경기에서 셀틱 이적 이후 자신의 첫 해트트릭을 기록해 '맨 오브더 매치'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참고영상) 또한,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라운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홈 경기와 어웨이 경기에서 모두 득점에 성공했으며, 특히 홈 경기에서는 나카무라의 골이 결승골이 되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1:0으로 꺾고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5](참고영상) 당시 나카무라가 터뜨린 프리킥 골은 많은 극찬을 받았으며, 영국의 찌라시 언론에서 알렉스 퍼거슨이 나카무라에게 관심이 있다는 기사도 나왔다. 팀에서 핵심적인 활약을 보이면서 팀의 리그 우승을 견인했으며, 리그가 종료된 이후 '스코틀랜드 올해의 선수상'을 포함해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상(물론 신인상은 제외하고)을 모두 수상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2007-08 시즌에는 초반 무릎 부상으로 인해 약 두 달 반 가량 경기에 나오지 못했으며, 부상 복귀 이후에는 극심한 부진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자신의 기량을 회복했으며, 레인저스 FC와의 경기에서 중거리 슛으로 골을 터뜨려 일본 선수 중에서는 처음으로 올드펌 더비에서 골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또한 겨울 이적시장에서는 나카무라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셀틱이 즈노 고키를 영입하기도 했는데, 셀틱에서 나카무라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시즌 종료 이후 나카무라의 계약 만료 시점이 다가오자 이탈리아 세리에 A의 볼로냐 FC가 나카무라의 영입을 추진했지만, 나카무라는 계약 만료 이후 친정팀인 요코하마 마리노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거절했다. 결국 2008-09 시즌에도 셀틱에 잔류하게 되었고, 리그 100경기 출장과 두 번째 해트트릭을 기록하였다.(참고영상)


시즌 종료 후 계약이 만료된 이후에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카더라 통신이 있었지만, 나카무라 본인은 연봉 120만 유로에 RCD 에스파뇰과 2년 계약에 합의하여 자신이 평소 원하던 프리메라 리가 무대로의 진출을 이뤄냈다. 6000여명의 팬들 앞에서 입단식을 가져 한껏 구단의 기대를 자아냈으며, 리버풀 FC와의 경기장 신축 기념 경기에서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기대가 현실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데뷔한 이후 비야레알 C.F.와의 경기에서 평점 3점을 받는 등 부진한 경기를 펼쳤으며, 서서히 출전 기회가 줄어들자 잉글랜드 챔피언쉽에 있던 미들즈브러에서 영입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나카무라 본인의 거절로 팀에 잔류했으며, 결국 2월 시점까지 12경기 출전(선발 6번)에 1도움만을 기록하는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프리메라 리가 2009-10시즌 최악의 이적 랭킹 1위로 꼽히기도 했다.

결국 2010 FIFA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서 본인의 친정팀인 요코하마 마리노스로 이적해 일본 무대에 복귀했으며, 데뷔전에서 골을 터뜨려 쇼난 벨마레를 3:0으로 제압하고 팀에 승리를 안겼다. 이후 본인의 소원대로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포함되어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대표팀 에이스가 혼다 게이스케로 넘어간 상황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월드컵이 끝난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였다. 은퇴 당시 A매치 98경기 출장에 24골을 기록한 상황이었으며,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센추리 클럽까지 채우지 않을까 여기기도 했다.

J리그로 복귀한 이후 회춘했다는 평가를 듣고있다. 2010시즌 6골 4도움을 기록한 이후, 2011시즌 6골, 2012시즌 8골 3도움, 그리고 2013시즌에는 무려 13골 8도움을 기록하고 J리그 MVP[6]를 차지했으며, 팀에게는 일왕배 우승을 안겼다.[7] 35세라는 나이가 무색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 자케로니 현 일본 대표팀 감독도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발탁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참고뉴스

3. 평가

한국에선 그의 커리어 중 가장 화려한 시기가 셀틱 FC였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스코티쉬 프리미어 리그(SPL)은 올드펌을 제외하면 다수의 한국 선수가 뛰고 있는 잉글리쉬 프리미어 리그(EPL)보다 수준이 훨씬 낮기 때문. 일본 대표팀 감독도 이를 지적한 바 있다.

셀틱 시절 이후는 내리막 행보인데다 A매치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자국 축빠들에게는 늘 까이고 있는 실정. 특히 경기후 인터뷰에서는 늘 부상에 대한 핑계가 많아 일부에선 '다리가 아프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일본 미디어가 붙이는 '기적판타지스타'라는 근사한 수식어와는 달리 일본 축빠들이 호칭하는 별명은 キノコ(버섯). 십수년째 불변인 헤어스타일이 이유인 듯 싶다.

프리메라리가에서 부진을 두고 한국해축빠,또는 일까들이 나카무라가 스페인에서 말아먹어서 한국선수가 스페인 가는 게 어려워졌다고 비웃는 경우도 있는데 우습게도 일본에선 정반대로 이천수와 박주영을 두고 똑같은 소리를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하여 재일교포 축구전문가 신무광이 포포투 플러스 한글판에서 이런 지적에 그러는 당신들은 나카무라 순스케는? 아니 한국(2명)보다 더 많이 가서 말아먹었던 수로 일본이 많다(6명), 솔직히 아시아 선수로 스페인 무대에서 잘한 선수라곤 자바드 네쿠남 하나뿐인데 그럼 이란을 칭송할 것인가? 라고 비아냥거리자 반론하던 일본 축구계 인물들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분명 프리킥만큼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특히 위에서 서술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터뜨린 골은 이후로도 계속 회자되고 있다.[8] 이전에는 한 네티즌이 유튜브에 나카무라와 데이비드 베컴의 프리킥을 비교하는 영상을 올려서 화제가 된 바 있다.(참고영상) 또한 중거리 슛 능력도 절대 무시 못한다.

4. 기타

여담으로, 한국 뉴스 기사에서 이 선수의 이름이 '나카무라 쑞봬'로 바뀌어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원인은 슌스케에서 '슌'이라는 글자가 KS X 1001 완성형 코드에 없는 글자다 보니까 그게 깨져서 그렇게 나온 것 같다. #

배급사가 세가 풋볼 매니저에선 기술 능력치가 박지성보다 훨씬 좋다. 적어도 기술능력치만 놓고 본다면 여타 다른 잘하는 선수들이 부럽지않다. 하지만 피지컬 능력치는 박지성보다 훨씬 낮아서 오래 굴리기 힘들다.

작은 체구를 가져 수많은 좌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실한 노력으로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했다는 내용으로 일본 초등학생 도덕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2008년 영국의 한 사이트에서 여성팬 2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축구선수' 선정에서 20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오사카 거주 한국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한식을 꽤나 즐긴다고 한다. 일본은 물론 스코틀랜드에서 뛰던 시절에도 한식당을 곧잘 찾곤했다고. 한국어도 기본적인 인사말 정도는 할수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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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닛칸스포츠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중 86%가 나카무라의 최종 엔트리 제외를 반대했다고 한다.
  • [2] 앞의 세 명은 제노아에 입단한 우라 가즈요시, 베네치아에 입단한 나미 히로시, AC 페루자에 입단한 나카타 히데토시이다.
  • [3] 실제로는 라싱 산탄데르와 이적 협상을 했다고 한다.
  • [4] 골 장면을 보면 일본 선수들이 크 슈워처 골키퍼를 밀어 넘어뜨리는 동작이 있다.
  • [5] 하지만 이후 나카무라는 손목 부상을 당해 정작 AC 밀란과의 16강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 [6] 최초로 J리그 MVP를 두 차례 탄 케이스가 되었고, 2000년 처음 시상할 때는 최연소 수상(20살), 2013년 수상할 때에는 최고령 수상(35살)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 [7] 사실 요코하마 마리노스는 리그 우승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시즌 종료까지 두 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한 경기만 승리했어도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으나 모두 패배하면서 산프레체 히로시마에게 우승을 넘겨주고 말았다. 대신 일왕배에서 산프레체 히로시마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복수에 성공. 나카무라는 일왕배 결승전에서도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 [8] 2008년 골닷컴에서 진행한 '세계 최고의 프리키커' 설문 조사에서 나카무라가 20.79%의 지지로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에 이어서 2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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