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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고

last modified: 2014-12-18 11:01:50 by Contributors

南師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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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일설에는 1509~1571)

조선 중기의 학자, 도사. 호는 격암(格庵). 소년 시절, 고향 울진의 불영사에서 신승을 만나 비결을 전수받고 전국 각처의 명산을 돌아다니며 수련한 끝에 천문,역학,관상,복서의 비결에 뛰어났다고 전한다. 이른바 한국의 노스트라다무스(...)

과거를 몇번 봤으나 떨어졌는데 자기 앞 일만큼은 욕심이 끼어서 잘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중인들이 보는 로 관상학의 천문 교수(종6품)가 되었다고도 하고, 쉰 다섯에 종 9품인 사직참봉(社稷參奉)직을 제수 받았다고도 한다. 이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탄생을 천기로 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1537년 생인데? 그래서 전란을 두려워하여 율곡 이이만양병설을 만들었다는 식으로 비약하는 이야기도 있다.

또 아버지 묘지 자리도 잘 못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구룡쟁주(九龍爭珠, 아홉 마리 여의주를 놓고 다툼)의 명당인 줄 잡았더니, 구사쟁와(九蛇爭蛙, 아홉 마리 개구리 한 마리를 놓고 다툼)의 자리 였다는 것. 부정적 설화로는 산신을 섬기지 않아 산신이 아홉번 옮기는 묫자리를 모두 망쳐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1] 자신을 위해 본 묘도 잘못된 장소였으며 아들 대에 대가 끊어져 천기누설의 화를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생몰년을 모르잖아

정확한 생몰년은 알수 없으나 대체로 중종,명종대의 인물이라고 알려졌으며 명종대에 이미 선조대에 일어날 동서분당(붕당정치)임진왜란을 예언했다는 이야기가 구전되어 온다. 특히 임진왜란에 대해서는 "백마를 탄 자가 임진년에 남쪽에서부터 침략해오리라"라고 예언했는데 가토 기요마사가 백마를 타고 다녀서 정확하게 적중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전쟁이 용의 해인 임진년에 일어나면 나라가 망하지 않겠지만, 다음 해인 뱀의 해 계사년에 일어나면 망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안 망했네

풍수지리에도 능하여 조선의 수도인 한성의 한산과 한수가 다골다탄(多骨多灘)의 지세이므로 골육상쟁의 화가 잦을것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명종에게 "내년에는 태산을 봉하게 될것입니다"라고 예언했는데 정말로 이듬해 한강에서 크고 괴상한 물고기가 잡히는 해괴한 사건이 터지고(윤원형 항목 참고) 3일 있다가 문정왕후가 죽어 태릉에 장사지내 그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한다.

또한 난리를 피할수 있는 열곳의 살만한 곳을 지적한 소위 십승지론을 설파하기도 했는데 그 십승지는 공주(公州)의 유구(維鳩)와 마곡(麻谷), 무주(茂州)의 무풍(茂豊), 보은(報恩)의 속리산(俗離山), 부안(扶安)의 변산(邊山), 성주(星州)의 만수동(萬壽洞), 봉화(奉化)의 춘양(春陽), 예천(醴川)의 금당곡(金唐谷), 영월(寧越)의 정동상류(正東上流), 운봉(雲峰)의 류산(頭流山), 풍기(豊基)의 금계촌(金鷄村) 등이라 한다.

저서로는 "남사고비결" 과 "남격암십승지론"이 "정감록"에 수록되어 전한다. 그가 저술했다는 언서 "암유록"도 있는데 여기서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까지 예언되어 있다고 하며, 많은 사이비 종교들에게 추종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 한국인인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격암유록"은 현대에 남사고의 이름을 빌어 창작된것이고, 조선시대 인물인 남사고와는 무관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그런데 김진명은 이걸 가지고 소설을 썼다. 다만 어디까지나 창작이지, 조작은 아니다. 그 차이를 확실히 인지해야 한다.


생가는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에 있다. 성류굴에서 왕피천을 따라 약 2 km 올라가면 있다. 울진군에서는 이곳 생가 터를 발굴하고 유적지를 조성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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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열번을 옮기면 큰 횡액을 당하므로 이장은 아홉번이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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