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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

last modified: 2014-08-24 20:48:30 by Contributors

중국의 역사
//서하
북송 12 ~ 13세기
  남송   

南宋

1127~1279

북송 황실이 강남으로 피난을 가서 세운 국가.


금과 영토 협상을 끝낸 1141년의 지도(주황색).

Contents

1. 건국
2. 금과의 전쟁
3. 남송의 역대 황제

1. 건국

1126년 송의 황제 송흠종과 상황 송휘종이 금에 의해 잡혀가고 수도 카이펑은 초토화가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이로서 북송은 멸망하고 송흠종의 동생 조구가 1127년 장강 이남 항저우에서 즉위하였다. 이것이 남송의 시작이다.

2. 금과의 전쟁

그러나 여기서 추격이 끝난것은 아니었다. 1127년 금나라는 방창을 왕으로 세워 괴뢰정부를 구성하기도 하였고 과연 그해 남송의 동경(개봉 = 카이펑)을 함락시키고, 유예를 항복시킨다. 한참 기세가 오른 금이 이런 고종을 가만히 둘리가 없었다. 대규모의 군대가 남하를 시작하고, 이후 고종은 계속해서 달아나고 급기야 1129년에는 배를 타고 바다로 도망가기까지 한다.

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 1129년 남송 정부는 수세에 몰리자 수도를 남경에서 남쪽 끝 임안(항저우)으로(...) 옮겨 끝까지 저항할 뜻을 밝힌다. 그런데 남경을 함락시킨 딱 3달 후 금나라 군대는 임안까지 함락시킨다(...). 바로 이 때 고종이 바다로 달아난 것. 대륙의 남진은 급이 다르다! 여기까지는 송나라의 사망 플래그였다.[1]

남북조 시대 이후로 이토록 강남이 이민족에게 유린당한 적도 없었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1130년 부터 갑자기 바뀌게 되는데, 남송의 명장 한세충이 1130년 4월 강중에서 최초로 금군을 대파하게 된다. (이 해 진회가 포로에서 탈출해 남송에 복귀한다.) 5월에는 악비가 금군을 대파하고, 다시 1131년에는 오린과 오개등이 화상원에서 금군을 대파한다. 1133년 악비는 강광의 군도를 평정했다. 다시 1134년에는 한세충이 다시 한번 금군을 대파하게 되었다. 계속되는 패배에 1135년 금의 태종이 죽자 금군은 북쪽으로 물러나게 된다.. 이후 진회의 협상(1142년)이 있었고, 그가 죽은 후(1155년) 해릉왕이 재침을 1162년 계획했으나 살해되고 금세종(완완옹)이 즉위하면서 다시 화평했다. 이로서 의외로 남송은 회수까지 영토를 확보하게 된다. 1234년 몽골과 연합하여 금나라를 멸망시켰는데 이것은 남송의 실수였다. 이이제이를 무시하고 나라를 멸망시켰다가 금나라에게 멸망한 북송처럼 남송도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몽골의 침입을 받고 멸망하게 된다.

남송의 역사는 사실 중국 한족 역사가 대개 그렇지만 사실상 황제의 역사라기보다도 군약신강 재상의 역사일 것이다. (+ 정치) 유명한 진회를 시작으로, 그나마 멀쩡했던 송효종 이후로는 송광종을 폐위시킨 여우, 한탁주의 권력투쟁(5년), 한탁주 독점(12년), 한탁주 죽고는 미원(26년, 이때 금나라가 멸망했다) 그리고는 몽골의 침공 등으로 어수선했던지라 좀 조용한가 했는데...

전쟁 영웅이었던 가사도가 1260년 이후 덜컥 재상이 된다. 도량형, 화개혁, 부정부패 엄단, 긴축 재정 정책 등 전시 수상으론 나쁜 인물은 아니었지만 근본적으로 재상 등 주요 요직을 모두 차지한 독재자였고, 군벌들을 중앙에서 밀어내어 군사력을 악화시켰다. 연개소문? 특히 남송의 마지막 재상이 된 충신 문천상을 박해한 것 때문에 더욱 욕먹고, 나라를 사실상 말아먹었다는 조금 과장된 평까지 듣는다. 들어싸지 뭐

가사도가 죽은 뒤엔 마지막 재상 문천상이 최후의 4년을 분투했으나 결국 1279년, 쿠빌라이에 의해 황족이 산전투 패배 후 다 바다(남중국해)에 빠져죽는 등의 비극적인 최후를 맞고 남송은 멸망한다. 마지막 황제인 조병은 8살의 아이에 불과했는데 다시는 후장상의 씨앗으로 태어나지 않으리라[2] 라는 비참한 유언을 남기고 스승 육수부와 함께 빠져죽는다. 이 루트를 , 특히 남명이 반복하는건 안 자랑

그래도 나름대로 에 대항해 강릉, 양양 등의 형주에서 훌륭한 방어를 자랑했던 시절도 있었고, 을 나름 위협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결국 망했다. 그래도 몽골의 주공을 두번이나 격퇴했다는 것은, 북송보다는 낫다는 의의가 있을 것이다. 포스팅 # 남송의 군사력 참조.

3. 남송의 역대 황제

1130년, 고종의 굴욕적인 대금정책에 반발한 이강 등의 무단파가 반현비(潘賢妃) 소생으로 고종의 유일한 아들인 조부(趙旉)를 황제로 옹립하고 연호를 명수(明受)라 정했으나 진회와 장준 등 문치파의 격렬한 반대로 3일만에 황태자로 원위치 되었다. 조부는 이때의 충격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니 향년 3세였다. 고종은 크게 비통해 하며 원의태자(元懿太子)라는 시호를 추증했고, 고종의 직계가 단절됨에 따라 태조의 셋째 아들 조덕방의 6세손인 조선을 양자로 삼아 제위를 물려주니 그가 바로 효종이다.

대수 묘호 이름 연호 즉위년일 퇴위년일 재위기간 능호
01 고종(高宗) 조구(趙構) 건염(建炎, 1127.5~1130)
소흥(紹興, 1131~1162)
1127.6.12 1162.7.4 35년 42일 영사릉(永思陵)
02 효종(孝宗) 조선(趙昚) 융흥(隆興, 1163~1164)
건도(乾道, 1165~1173)
순희(淳熙, 1174~1189)
1162.7.24 1189.2.18 26년 209일 영부릉(永阜陵)
03 광종(光宗) 조돈(趙惇) 소희(紹熙, 1190~1194 1189.2.18 1194.7.24 5년 157일 영숭릉(永崇陵)
04 영종(寧宗) 조확(趙擴) 경원(慶元, 1195~1201)
가태(嘉泰, 1201~1205)
개희(開禧, 1205~1208)
가정(嘉定, 1208~1225)
1194.7.24 1224.9.17 30년 55일 영무릉(永茂陵)
05 이종(理宗) 조윤(趙昀) 보경(寶慶, 1225~1227)
소정(紹定, 1228~1233)
단평(端平, 1234~1236)
가희(嘉熙, 1237~1240)
순우(淳祐, 1241~1252)
보우(寶祐, 1253~1258)
개경(開慶, 1259)
경정(景定, 1260~1264)
1224.9.17 1264.11.16 40년 60일 영목릉(永穆陵)
06 도종(度宗) 조기(趙祺) 함순(咸淳, 1265~1274) 1264.11.16 1274.8.12 9년 269일 영소릉(永紹陵)
07 공제(恭帝) 조현(趙顯) 덕우(德祐, 1275~1276.4) 1274.8.12 1276.2.4 1년 176일 위치미상
08 단종(端宗) 조하(趙昰) 경염(景炎, 1276.5~1278.4) 1276.6.14 1278.5.8 1년 328일 영복릉(永福陵)
09 소제(少帝)[3] 조병(趙昺) 상흥(祥興, 1278.5~1279.2) 1278.5.10 1279.3.19 313일 홍콩부근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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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제로 이 사망 플래그는 원나라쿠빌라이 칸 때 재반복 되는데, 이번에는 악비고 의병이고 협상이고 그딴건 없고 그대로 남송 황족 전원이 바다로 몸을 던져야했다.
  • [2] 헉, 이건 원래 제나라 소도성에게 끔살당하는 유송 마지막 황제 유준유언인데! 송나라는 다 같은가보지
  • [3] 정식 시호나 묘호가 없기 때문에 상흥제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자세한 건 소제 항목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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