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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

last modified: 2015-03-29 05:07:33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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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ɔ) Directorate of Intelligence, United States Central Intelligence Agency from


South_Suda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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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Republic of South Sudan

면적 619,745km²
인구 8,260,490명(2009) 이상
수도 주바
정치체제 공화제, 대통령제
국가원수 살파 키르 마야르디트 대통령
1인당 GDP 명목 $1,546, PPP 2,134$(2011)
민족구성 딩카족, 누에르족, 바리족, 잔데족 등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군대
4. 경제
5. 사회
5.1. 민족
6. 문화
6.1. 스포츠
6.2. 여아 선호
7. 상징물
7.1. 국호
7.2. 국가
8. 외교 관계
8.1. 한국과의 관계
9. 문제점
9.1. 끝나지 않은 남북갈등
9.2. 남수단 내 부족갈등
9.3. 내부 종교갈등
9.4. 내부 군벌갈등
9.5. 열악한 산업기반
9.6. 종합

1. 개요

2011년 2월 수단 공화국의 남부의 독립 투표에서 99%가 독립에 찬성, 7월 9일 공식적으로 독립한 국가. 수도는 주바(Juba). 아랍계 이슬람교도 위주의 수단과 달리 남수단은 기독교와 토속신앙을 믿는 흑인들로 이루어졌다. 공용어는 영어이고 일부 소수 민족의 언어도 사용되고 있다. 현재에도 아랍어사용자가 많이 존재하지만, 독립 이후 공용어에 포함되었던 아랍어는 퇴출되었다. 일단 북수단과 갈라진 계기가 종교와 인종갈등이기 때문에 북수단의 정체성과 결부되어 있는 아랍어가 달갑지는 않은 듯. 남수단은 수단어라는 언어를 개발중이다. 하지만 이것도 어려운 게 이 언어도 영어 위주이고 남수단에서 인구많은 딩카족 위주로 쓰이던 용어를 토대로 표준어로 정하려고 하기에 다른 다수민족인 지에 족이나 무를레 족은 이럴바에는 그냥 영어 쓰던지 차라리 아랍어 쓰자고 결사반대하고 있다.부족 갈등이 언어 문제에서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1] 기타 유력 종족의 부족어 외에 수도인 주바에서는 아랍어 바탕에 많이 간략화되고 각 부족어의 영향을 받은 크레올 언어인 주바 아랍어가 사용되고 있으며,그 밖에 스와힐리어 쪽에도 접근하고 있다.

국기 윗쪽의 검은색 줄은 아프리카인, 사이의 흰색은 평화, 가운데 붉은 줄은 독립을 위해 흘린 피, 아래의 녹색 줄은 풍요로운 자연, 파란 삼각형나일 강, 노란 별은 자유를 의미한다.(베들레햄의 별을 형상화했고 남수단 단결을 뜻한다는 설도 있다) 정확히는 나일강의 상류 지류인 백나일강이 지나고, 에티오피아를 지나는 청나일강과 수단에서 합쳐진다.

면적은 62만 평방킬로미터(세계 45위)에, 인구는 1,100~1,300만 가량으로 추산된다. 면적과 인구가 원래 수단의 1/4을 차지한다. 2008년 당시 수단이 인구 3200만 명에 190만 평방킬로미터. 이로서 아프리카 최대 면적에 세계에서 열 번째로 큰 나라였던 수단(당시 250만 평방킬로미터)이 알제리(238만 평방킬로미터)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되었다. 현재 수단 면적은 세계 16위. 그리고 현재 남수단은 한반도(22만 평방킬로미터)의 세 배는 족히 된다. 더불어 내륙국이다. 동으로는 에티오피아, 서로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남으로는 우간다케냐에 접한다. 수단과의 국경은 1000km에 달하는데 이게 앞으로 골치.

2. 역사

영국식민지였다. 사실은 이집트의 덤인 수단 북부의 덤……. 1894년 수단의 수도인 하르툼에 영국의 손길이 뻗쳤을 때 남부의 파쇼다에서는 프랑스 국기가 올랐고 이것이 바로 파쇼다 사건(1898년)이다. 결국 이 문제는 좋게 말해 외교적 협의, 바로 말해 해군력이 대폭 밀렸던 프랑스가 손을 때면서 일단락 되었다. 나일강고강의 중점이 양국의 경계가 되었다. 파쇼다는 남수단 북동부에 있는 지금의 코도크(Kodok)다.

사실 수단이 독립을 할 때부터 이 나라의 독립을 주도한 유학파 출신 엘리트들은 이질적인 여러 부족이 사는 거대한 나라에서 발생할 문제는 무시한 채 북부 아랍문화와 남부의 흑인 누비아 문화가 어떻게든 잘 조화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독립 이후 15년간 1차 내전으로 백만명이 죽었으며, 결국 1978년에 남북끼리 따로 분리하려고 했다가, 남부 수단에서 석유 및 자원들이 가득 발견되면서 분리문제는 다시 백지화 되었다.

1983년에 수단인민해방군(SPLA)이 궐기하여 2차 내전이 일어났고 20년간 내전이 줄곧 지속되었다. 2003년 수단 서부에 위치한 다르푸르에서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가 무장 봉기 세력을 무차별 학살, 강간하여 30만 명의 희생자와 27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수단 내전 당시의 참상을 찍은 사진들 중 유명한 사진이 있다. 1993년 2월 남수단 아요드 지방에서 사진기자 케빈 카터가 찍은 사진으로 1994년 퓰리처상 보도사진부문을 받은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독수리'이란 사진이다. 굶주림에 지쳐 쓰러진 소녀를 독수리가 지켜보는 장면으로 내전 당시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포착한 동시에, 사진 기자로서의 윤리에 대한 논란으로 숱하게 인용한 문제의 사진이다. 다만 워낙 이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유명한 통에 여러가지 루머가 퍼지기도 한다.

2차 내전으로 국제적 비난이 거세지자 결국 수단이 공격을 일단 중지했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투표가 이뤄졌다.

당시 수단 대통령이었던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은 1989년 쿠데타로 집권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2004년 유엔 평화 유지군 주둔 이후 인종청소 및 전범 혐의로 국제형사법원의 체포영장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바시르는 씹어버리면서 여전히 수단 공화국의 장기 독재자로 건재하고 있다. 게다가 아랍연맹의 결사반대로 무력 행사도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다.

남수단 독립 투표는 2011년 1월 9일 일주일간 진행되었고, 투표 3일만에 60%의 투표율을 돌파하였다. AP통신의 출구조사에 의하면 '독립한다'에 투표한 사람이 96%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국제 사회의 승인 과정에 대해서는 남수단/독립 문서 참고.



마야르디트 대통령의 레이드 마크카우보이 모자조지 W. 부시가 준 것이라고 한다. 후덜덜.

2011년 7월 9일 정식으로 독립을 선포했고, 초대 대통령은 그동안 수단 부통령으로 있던 살파 키르 마야르디트(Salva Kiir Mayardit). 가톨릭계이자 1983년 수단인민해방군을 세운 존 가랑이 2005년 의문의 헬리콥터 사고로 죽자 2인자인 뒤를 이었은 사람이다. 남수단UN(국제연합) 기준으로는 193번째 독립국가이자 유엔 회원국이다(2011년 7월 14일 가입). 수단이 독립 직후 남수단을 국가로 인정하고 남수단의 독립 선포식에 수단 대통령이 직접 찾아가 독립을 축하하는 등으로 문제는 일단락은 되었다. 화해인가? 그럼 다행인데...?

3. 군대

수단 내에서 독립투쟁을 하던 수단인민해방군(Sudan People's Liberation Army, SPLA)이 그대로 남수단군이 되었다. 개인 병사의 실전경험은 높지만 개인화기를 빼면 아무것도 없었다. 따라서 수단군이 작정하고 쳐들어 올 경우에는 체첸 전쟁 시즌 2편을 찍을 게 명백했고 결국 남수단군은 전력 증강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독립 직후 러시아로부터 Mi-17 10대를 구입하여 인도받았으며 공군력은 이게 전부다. 이 Mi-17이 수송용으로 개조된 V-5 버젼임을 생각해보면 남수단의 공군력은 그냥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 아랍연맹의 지원 아래 MiG-29를 비롯한 전투기들을 대거 보유한 수단 공군에 견주면 당연히 열세이다. 그동안 벌어진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 중 하나가 공군력의 절대적 열세로 수단 공군의 폭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왔던 점이다. 남수단을 인정하는 나라들도 섣불리 남수단에 대한 무장지원을 못하고 있다.

전차로는 T-72 100여 대를 가지고 있으나 수단군이 200대가 넘는 전차와 다수의 장갑차를 보유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기갑전력도 열세다. 장갑차도 전무하며 위에 언급한 T-72를 제외하면 테크니컬이 전부. 정해진 제식화기는 없지만 대체로 FN FALHK G3이 주로 사용된다.

4. 경제

1인당 GDP는 2011년 기준 명목 1,546$로 아프리카에선 준수한 편이다. 겉보기엔 아프리카 국가 기준으로는 높아 보이지만 석유빨이 상당한 관계로 국민의 90%는 하루 1$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못미.

수단 석유의 85%가 남수단 지역에서 나왔고, 정부 수입의 98% 이상이 석유에서 나왔다. 그러나 석유를 정제할 시설도 없고, 내륙국 신세이니 당연히 항구도 없다. 결과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경제를 가진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교통사정도 형편없어 철도도 북수단으로 통하는 248km짜리 협궤 하나밖에 없고, 석유를 수출할 파이프라인도 북수단의 포트 수단으로 가는 한 가지 파이프라인밖에 없다. 길의 거의 대부분은 포장되지 않아 수도 주바에서 다른 나라로 가는 포장된 길은 하나도 없다. 국민의 90% 정도가 하루 1$ 미만으로 가난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독립하자마자 물가가 미친 듯이 폭등하고 있고 혼란상으로 개발도 어려운 상황. 수도 주바는 세계에서 4번째로 물가가 비싼 도시라고 한다. 근데 이런 식의 국가 간, 도시 간 물가비교는 환율 변수가 너무 커서 현지인들이 체감하는 것과는 괴리가 심한 경우가 많다. 당장 본문에서 엔화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일본 도시의 물가가 낮아졌다는데, 정작 일본 현지에서는 엔화가치의 하락으로 인해 수입 물가가 오르고 있는 상황... 특히 개발도상국일수록 통화가치가 여러 측면에서 개판일 확률이 높은지라 그냥 경제가 어지간히 막장이구나,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좋다. 단적으로 생각해서 객관적인 물가까지 세계에서 4번째로 비싼데 국민소득이 천 불밖에 안 된다면 그 나라의 국민들은 다 굶어죽었겠지(...)

자원도 풍부하고, 농산물도 자급자족했던 나라다. 특히 남수단의 원유는 46억 배럴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원래 수단의 75%. 또 사하라 사막이 국토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수단보다는 상황이 좋다. 다르푸르 학살 및 내전으로 이웃 차드로 피난간 수단 서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수단에서 살 때는 1주일에 한두 번은 꼭 염소나 양이나 닭고기를 푸짐하게 먹었고 빵이나 옥수수가루 떡같은 아프리카 주요 식사들도 풍성하게 먹었다면서 그 때를 그리워할 정도. 다만 최근엔 내전 등의 영향으로 영 상태가 좋지 않다. 물론 그게 독립 이후에도 우려되는 혼란의 원인이 된다(…). 2012년만 해도 기근으로 50만 명의 수단 난민이 남수단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러나 내전과 사막화로 인해 남수단도 식량이 점점 부족해져 2012년 현재 470만 명이 식량원조를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5. 사회

5.1. 민족

남수단인에서 상당수를 차지하는 딩카족은 평균 키가 매우 크다. 사실 딩카족 뿐만아니라 나일사하라어족군의 민족자체들이 허벌나게 키가 크다. 1953년 딩카족 남성과 여성의 평균키는 183cm로 유럽 내 장신국가들인 발칸반도 발트해안 북유럽 국가들 및 체코 슬로바키아 독일 베네룩스 남성의(20~24세) 평균키가 (최대) 187cm이상인것을 감안하면 매우 큰 수치. 그런데 1995년 조사에선 노인을 포함한 딩카족 남성의 평균키가 177.4cm 기근왔다는 게 177이냐까지 줄어들었는데 전쟁과 기근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다만 아직까지 20~24세를 기준으로한 평균키는 185cm이상 높은 신장을 가지고있다. 딩카족이 포함된 나일로트계 민족은 대체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합친 평균키가 180cm 넘어가는 아프리카 장신부족 중 하나다.

또한 딩카족을 포함한 남수단인들은 흑인들 가운데에서도 독보적으로 피부색이 검다. 완전한 흑색. 윗쪽의 독립선포식 때 사진이나 아래의 매뉴트 볼을 참고해보자.

6. 문화

6.1. 스포츠

영국으로 귀화하여 NBA 시카고 불스에서 맹활약하고 농구 약체인 영국의 2012 런던 올림픽 선전을 이끈 루올 뎅(키 206cm)이 바로 남수단 딩카족 출신이다. 루올 뎅 이전에는 딩카족 출신의 NBA 역사상 최장신 선수 중 1명인 매뉴트 볼(231cm)이 있었다.

2012년 5월 FIFA에게 209번째 정식 가입국으로 인정받았다.

6.2. 여아 선호

딩카족 사회는 지구상의 문화권과 마찬가지로 남성이 사회를 통치하는 남성중심의 문화이다.실상 일부다처제와 여성의 사회 활동이 극히 제한된 아프리카에 내전으로 여성이 살기 힘들다는 말이 사실이다.

하지만 출생에서는 딸을 더 선호하는데,그 이유가 아들은 지참금이 나가는 짐이지만 딸은 길러준 보호자가 신랑집에서 지참금을 받는 돈이기 때문. 내전상황에서 수많은 고아들이 생겼을 때도 여아들은 친척에 이웃,심지어는 일면식도 없는 남이 서로 데려가려고 하지만,남아들은 거의 고아원행이라고 한다.남아들은 가난으로 옷도 없어 발가벗고 다니기도 하지만,여아들은 몸값을 높이기 위해 가난한 와중에도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거나 그게 아니면 최소한 깔끔하게 세탁이 된 옷을 입고 있다고 한다.

물론 지참금이 지급되고 시집간 만큼 그 비용만큼 고된 노동은 당연시된다.

7. 상징물

7.1. 국호

독립이 논의되던 당시 여러 가지 국명이 제안되었으나 부족들이 서로 자기들 언어와 뜻이 담긴 나라 이름을 고집하여 결국 친숙하고 부르기 쉬우며 모든 부족이 동의할만한 것이라는 이유로 남수단 공화국이 정해졌다. 그동안 여러 기사에서 수단 남부라는 이유로 남수단이라고 부른 것의 영향이 큰듯하다.

남수단 공화국이라는 국명이 정해지게 된 이유는 대한민국북한이 일조한 바 있다. 남수단 독립 준비 위원회의 벤야민 머리얼은 발표를 하면서 남베트남, 북베트남도 있었고, 남한과 북한도 있는데 남수단 북수단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물론 결정적 요인은 아니지만. # 관련기사 남한 북한이 정식국호가 아닌데요!

남수단 최대 부족인 딩카족이나 일부에선 구드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주장하기도 했으나 다른 부족에선 구드 공화국이라는 명칭이 딩카의 땅이라는 뜻이라는 이유로 결사반대하여 결국 이 이름으로 결정났다.

국민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외세의 강압 등으로 분단 및 분할된 현재의 남북한이나 옛 남북베트남과는 달리 남북수단은 현지 국민들의 자의적인 독립 및 분할 의사와 국민투표를 통해서 자발적인 분할 및 분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외세에 의해 만들어진 분단국가라고 볼 수는 없다. 남북한은 1945년 냉전 초기에 들어서 미국소련이라는 양강이 남북에 군대 상주를 통해서 억지로 분단되었을 뿐이었기 때문에 국민투표와 그들의 사회적인 의사와 이슬람 성향과 아프리카 토속성향이라는 차이로 인해서 남북의 분할을 염원했던 남북수단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7.2. 국가

남수단 국가. 박력이 넘친다.

8. 외교 관계

8.1. 한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 국교를 수립했으며 2011년 12월에 서울에 주한국 남수단 대사관을 설립한다고 한다. 한국은 보통 중국과 일본에 묻혀서(…) 제3세계 국가들 중 이 두 나라 주재 대사관 중 한 곳으로 하여금 한국 관련 임무를 겸임시키는 나라가 많다. 한국의 비중을 낮게 보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한국에까지 외교공관을 운영할 돈이 없기도 하고. 물론 우리나라도 외교관계가 있는 모든 나라에 대사관을 설립하지는 않고 큰 나라 주재 대사관에서 근처 작은 나라 관련 업무를 겸임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가난한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이 서울에 대사관을 두겠다니, 오오...! 반기문 총장이 독립 때 영향도 많이 행사하고 건국 선포식에 방문하기도 했고, 또 故이태석신부의 봉사활동으로 한국과의 인연도 감안한 듯하다.

하지만 2012년까지 서울에 대사관을 설립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남수단 정부에 돈이 없어서라고. 돈이 생기면 한다고는 했는데 돈이 언제 생길지……. 한편 남수단에는 한국 대사관이 주재하지 않는데, 현재 남수단에 대한 한국 대사업무는 주 우간다 한국 대사관에서 같이 하고 있다.

독립을 전후해서 한국에서도 관심이 꽤 높아졌는데, 2010년 4월에 발표된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인 故이태석 신부가 남수단에서 청소년 교육 및 의료 등의 봉사활동을 하였다.

대한민국화유지군으로 한빛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공병, 의무위주의 부대이다.

2013년 12월 현재 PKO로 파병된 한빛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보르'시의 북쪽 수십km까지 반군이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화력의 보강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한빛부대에선 예비탄약 확보를 위해 유엔 남수단임무단(UNMISS) 본부에 탄약지원을 요청, 미 아프리카사령부로부터 5.56㎜ 탄약 3천417발과 7.62㎜ 탄약 1천600발, 일본의 육상자위대로부터 5.56㎜ 소총 실탄 1만발을 지원받았다. 한국군이 일본 자위대로부터 탄약을 지원받은 것은 창군 이래 처음. 덕분에 엄청난 논란이 한일 양쪽에서 몰아닥치고 있다.
조만간 화기·탄약 보충 공군 수송기 파견 추진 日, PKO 협력법 '예외' 적용해 실탄지원 결정 무수한 관련기사들

9. 문제점

9.1. 끝나지 않은 남북갈등

일단 수단과 결별하긴 했지만 갈등이 봉합된 건 아니다. 독립투표가 이뤄진 2011년 1월 10일에도 남북 국경선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남수단에서만 33명이 목숨을 잃었다.


article|default 독립 하루전인 2011년 7월 8일 중앙일보 기사. 공교롭게도 중간에 유전지대인 아비에이(Abyei)가 있다.

마지막 유전인 아비에이 등을 수단이 과연 포기할지도 의문이다. 아비에이는 건기에만 남하하는 유목민 인구가 절반을 차지해 이들을 유권자로 포함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남수단 입장에서는 최대 부족 딩카족의 발상지라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2011년 5월 20일, 남수단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아비에이 유전지대를 수단 군대(SAF)가 점령하고, UN 헬기까지 공격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6월 20일 남아공 대통령 보 음베키의 주도로 협상을 가져 아비에이 지대를 비무장지역으로 만들기로 합의했지만, 이게 과연 얼마나 지켜질지 의문. 일단 유엔 평화유지군이 주둔중이다.

남수단에 살고있는 이슬람을 믿는 부족 및 소수 독립 반대파들에 대한 처리도 문제시된다. 유목민들이 아비에이 이남으로 내려오는 경우도 많고, 물 문제로 인구는 줄곳 남하하는 형편이었다. 이들을 무력으로 뭉개면 피해자라고 주장하던 남수단의 입지가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랍권이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제 코가 석자라고 수단 문제에 끼어들긴 커녕 자국 문제에 급히 신경쓰는 상황이 되면서 남수단에선 호재가 되었다. 이미 수단도 89년 쿠데타이후 22년째 집권하는 오마르 알 바시르에 대한 반발이 거세기 때문에 한동안 자국 안정화에 신경써야 할 판국이다. 수단의 알 바시르는 1989년부터 세계 10대 독재자 순위에 포함돼, 2007년에는 독재자 순위 1위에 오른 경력을 가지고 있다. 수단 내에서도 반정부 세력이 늘어나고 있기에 남수단 일에 질기게 매달릴 수도 없다.

뒤에 보듯 유전은 남수단에 있는데 정유공장, 파이프라인, 석유 수출 항구는 수단에 있어서(나일강의 입장으로 볼 때 상류가 남수단, 하류가 수단) 이 배분 문제도 남아있다. 독립 협상이 진행되던 2005년까지는 수익을 반씩 나눠먹었지만 지금부터가 진짜 문제다. 수단은 남수단의 독립으로 앞으로 4년 반 동안 재정에서 52억 달러가 빠지게 된다. 그래서 수단은 103억 달러를 보상으로 요구했다.

북 : "님 석유 수입 그래도 좀 내놓지?"
남 : "아오. 독립했는데 이젠 삥까지 뜯냐? 어느 나라 독립국이 감히 자원도 내 맘대로 못함?"
북 : "그래도 항구고, 정유회사고, 파이프도 우리 거 쓰잖아? 그건 주셔야지?"
남 : "3년간 석유 25% 깎아 주고 파이프 값 세금 값은 주겠음. 이렇게 20억. 됐지?"
북 : "장난하냐? 6년간 석유 배분 조금씩 줄여나는 걸로 하고, 우린 관세 물겠음. 안 그럼 수출 중단한다?"
남 : "해보시든가? 우린 그냥 숲에서 흙 파먹고 맘 편히 살겠음."
(그러나 이것도 사실 불가능하다.(...) 흙 파먹는다고 해도 그 풍요로운 농경지에 쓰고 소를 키울 물이 필요한 강가를 두고 부족들간의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독립 이후에도 남수단과 수단은 석유가 풍부한 국경지대를 가지고 니꺼 내꺼 하면서 계속 싸워왔다. 남수단은 수단 내의 무장세력을 지원하거나 국경을 넘어 수단군을 공격했고, 이에 수단군은 우세한 공군력을 이용해 남수단을 폭격했다.

2012년 3월 26일, 독립 이후로 헤글리그의 소유를 주장해오던 남수단군은 석유가 풍부한 국경지대 마을인 헤글리그(Heglig)를 공격하여 점령했으나 확전과 국제사회의 압력을 두려워하여 2일만에 병력을 철수시켰다. 하지만 수단군은 남수단군의 공격을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남수단에 대해 폭격을 개시함과 동시에 여러 국경지대를 공격했다.

2012년 4월 11일 남수단과 수단군이 본격적으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남수단군이 기습으로 헤글리그를 일시적으로 점령했지만 수단군의 공습이 이어졌고 23일까지 수단군의 발표에 의하면 남수단군은 3천 명 이상이 전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남수단도 전사자 3백 명도 되지 않으며 폭격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헤글리그 지역은 양군이 무장하여 외신기자를 일절 출입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라서 자세한 피해 및 어느 군이 유리한지는 아직 모르고 있다. 다만 외신보도 추정으론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수단군이 헤글리그 지역에 배치되어 있으며 적어도 남수단군 피해 규모가 압도적인 게 맞다고 하는 분석이다. 곧이어 23일에는 남수단 내 도시인 벤티우를 수단공군이 폭격을 감행, 민간인 16명이 사망했다.

덤으로 남수단은 이웃 케냐와 영토 분쟁을 벌이면서 케냐군과 총격전을 벌였기에 케냐와도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딩카 족 피난민으로서 미국에 이민가서 정착에 성공한 이가 공동집필(미국 작가와)로 쓴《신이 찾은 아이들》에 따르면, 케냐로 피난간 남수단 난민들은 케냐 경찰과 군인들에게 난민촌에서도 허구헌날 약탈당하고 대들다가 사살당하면서 죽기까지 했다. 앞서 말한 중국의 송유관 문제를 두고 더 벽에 부딪친 것이 케냐와의 국경문제인데 남수단은 케냐 측의 국경에서 약 13,300평방 킬로미터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케냐는 결사거부하고 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송유관을 허용할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9.2. 남수단 내 부족갈등

학살이 일어난 다르푸르의 경우 다르푸르 독립군이 남수단 수단인민해방운동(SPLM)과 전혀 다른 조직이기에 2010년 2월의 정의, 평등 운동 평화협정(JEM)이 쉽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 외 남코르도판과 블루나일도 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남수단 내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가득하다. 바로 부족 갈등. 30여년이 넘는 내전 와중과 잔자위드(아랍계 민병대)와 젤라바[2]의 대대적인 학살 와중에도 여러 부족끼리 서로 죽어라 싸웠으며 몇몇 부족은 다른 부족을 뭉개고자 젤라바와 손잡는 경우도 흔했다. 심지어 수단 공군의 공습을 받아가면서도 부족들끼리 서로 총질하고 있을 지경으로 부족들의 갈등이 엄청나다. 그 감정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어 남수단의 미래가 암울하다.

2009년 9월만 해도 한 번에 167명이 테러로 죽었으며 결국 2009년 한 해 동안 2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전으로 목숨을 잃고 난민도 3만 명이 넘는 상황. 해를 넘긴 2010년 6월에도 해외 기자들은 부족들 갈등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 집단 장례식을 취재했는데 생존자들은 다른 부족들에게 복수를 외치면서 내전이 계속될 걸 보여주었다. 남부 수단 여론은 이런 갈등에 수단이 배후조종한다고 비난한다. 틀린 말도 아니지만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 이간질로 만들어낸 갈등이 대를 이어 남은 것도 엄청나기에 꼭 수단 탓만을 할 수도 없다. 사실 영국의 이런 이간질 수법은 대영제국 시대 많은 식민지에서 흔하게 벌어진 일이다. 한 부족에게 더 이득을 주면서 다른 부족들이 영국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그 부족에게 가게 하는 방법. 벨기에르완다 및 콩고에서 벌여놓은 짓이나 프랑스가 카메룬 및 알제리에서 벌여놓은 짓처럼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 곳곳 및 전세계 식민지에서 자주 저지른 짓이다. 사실 '이이제이'라는 고사성어에서 보듯 강대국이 식민지나 약소민족을 관리(?)하는 고전적인 수법이다.

2011년 3월 12일 수드 습지를 두고 무를레족과 남수단내 최대 민족인 딩카족이 무력충돌을 벌였다. 비가 오면 남한의 절반만한 큰 습지대가 되면서 온갖 동식물이 많고 물이 부족한 여기에선 소를 키우자면 절대적으로 중요한 곳이라서 이 곳을 두고 부족들의 갈등은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어왔다. 독립 이전부터도 여기 지역 지배권을 두고 영국도 골치 아파했을 정도라고 한다. 여기에 백나일 강을 두고 역시 부족들끼리 서로 충돌을 벌이며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소를 많이 기르는 여러 부족들에겐 강은 절대 양보할 수 없기에 강의 실질적 지배권을 두고 3월 20일에도 총격전이 벌어져 누에르족 여성 6명을 비롯한 민간인 41명이 살해되었고 보복으로 공격을 감행한 지에족 마을에 무차별로 켓포 공격을 벌여 100여명 사상자를 냈다. 세계가 도호쿠 대지진오디세이 새벽 작전에 더 신경을 쓰느라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한국에서도 번역 된《신이 찾은 아이들》이란 책자를 보면 딩카족의 개신교 소년 존이 겪은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나와있다. 이 책에는 수단의 무차별 학살적 공격과 같이 부족갈등도 나와있는데, 다른 부족 아이들 고아를 납치하여 맹수 먹이로 던져주는 일(정확히는 표범을 생포하고자, 아이들을 먹이로 줘 배를 채우게 하여 표범을 가죽 손상없이 잡고자 했다는 것)까지 있을 정도로 부족들의 갈등이 깊고 악랄했다고 한다.

2012년 1월 무를레족과 누에르족의 부족갈등으로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수자원 봉사단체인 팀 앤 팀에서 남수단 한 마을에서 우물 펌프를 설치할 당시 겪은 일인데 딩카족이 다수인 그 마을에서 소수로 살고 있던 주변 지에족이 봉사단체 사람들과 절친하게 굴면서 펌프 수리기술이나 여러 가지로 더 배우려고 한 적이 있었다. 이들과 친해지면서 열심히 하신다고 말하자 나오던 답변이 "이렇게라도 안 하면 딩카 놈들이 우릴 죽이려 들기 때문이라오. 우리가 기술력을 가져서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된다는 걸 알게 해줘야지." 이에 봉사단체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고.

울지마 톤즈 연출을 맡은 구수환 PD가 후속 이야기를 다룬 울지마 톤즈-그후 선물을 찍으러 2011년에 남수단을 방문할 당시에도 톤즈 지역에서도 치안이 장난 아니었다고 한다. 톤즈 이웃 동네에서 소 1마리 때문에 사람이 20여 명이나 죽을 정도였다.부족 갈등도 갈등이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같은 부족도 마을끼리 서로 도둑질하고 그 과정에 따른 살인 및 보복으로 마을이 아주 불바다가 될 정도이니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 내부 치안 상태가 영 좋지 않다.

  • 일본 외무성의 남수단 설명. 2013년 12월 23일 위험도가 상향됐는데, 전 지역의 위험도가 소말리아의 4단계(방문 금지, 즉각 대피)와 같다. 그 전에도 거의 전 지역의 위험도가 이보다 한 단계 낮은 3단계(방문 연기, 대피를 고려해 볼 것을 추천)로 되어 있어 사실상 여행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었다.

  • 캐나다 외무부의 남수단 설명. 위험도가 가장 높은 4단계(방문을 피해 주십시오)로 되어 있다. 그나마 수도인 주바가 한 단계 낮은 3단계(중요한 경우가 아니면 방문을 피해 주십시오)로 되어 있지만, 이것도 사실 꼭 방문을 해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방문을 피할 것을 권고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여기도 웬만해선 가지 말아 달라는 소리.

  • 호주 외무부의 남수단 설명. 위험도가 가장 높은 5단계(방문하지 마십시오)로 되어 있다.

  • 한국 외교통상부 해외안전여행의 여행경보제도 역시 남수단을 3단계(여행제한)으로 분류하고 있다. 상세한 설명은 아직 추가되지 않았지만 여행제한이 걸린 것 자체만으로 위험한 곳임을 알 수 있는데, 여행제한이 걸린 나라는 대부분 파키스탄, 차드,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부룬디의 수도 이외 지역 등 한마디로 소말리아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무법천지에 사람이 시도 때도 없이 죽어나가는 전쟁터다. 여행제한 국가로 지정되거나 특정 국가 내 한국인 여행제한지역이 있을 경우 다 이런 헬게이트가 열린 곳들이기 때문에 가지 말라면 가지 말고, 갔으면 최대한 빨리 대피해야 한다.

9.3. 내부 종교갈등

부족 갈등과 같이 앞서 말한 종교적 문제도 골치 아프다. 남수단 인구의 80% 이상이 기독교를 믿지만, 성공회개신교, 가톨릭이 복잡하게 얽히고 이들이 내전 와중에 같은 기독교도끼리도 종파가 다르면 죽어라 싸우거나 사이가 나빠 다른 부족의 약탈 및 학살이 줄곧 일어났다. 젤라바와 잔자위드가 자행하는 학살도 자신들이 당하지만 않으면 외면하는 게 흔했다. 심지어 기독교 믿는 일부 부족은 젤라바를 불러와 젤라바를 돕겠다는 조건으로 사이 나쁜 다른 기독교 부족 거주지역을 불바다로 만들고 학살하게 만들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밖에도 젤라바에게 학살된 다른 부족 난민들이 도움을 요청할때 외면하곤 그 난민들이 국제구호품을 받게되자 되려 총기나 무기를 들고 약탈하는 일도 꽤 자주 벌어졌다고 한다. 팀 앤 팀 한국지부가 남수단에 가서 수도공사를 하다가 겪은 일인데, 소들을 방목하는 곳을 차타고 지나보니 수십여 명이 아주 진지까지 만들고 기관총박격포까지 무장하여 떼 근처에 주둔하고 있었다. 통역에게 저거 뭔 진지라도 구축한 거냐고 묻자, 답변이 "저건 소를 지키는 치기들이 무장한 건데 이 정도로 무장 안하면 소떼 다 약탈당해요." 라고 할 정도로 치안이 장난 아니다. 본격 삼국지.

이러니 힘을 합쳐 싸우자는 의견은 좀처럼 통하지 않아 오랫동안 수단에게 동네 북처럼 당했다. 그나마도 수단도 같은 슬람끼리 싸움이 벌어지고 여기에 이집트 등 주변국과의 관계도 좋지 않은 등의 문제로 인해 전적으로 남수단에 매달릴 수 없기에 이만큼 저항할 수 있었던 것.

여기에 고유신앙을 고집하는 부족에 이슬람을 믿어서 젤라바를 돕던 부족들도 있고, 당연히 이들은 기독교를 믿는 부족들에게 적대적이다. 즉 나머지 20% 다른 종교를 믿는 부족들이 차별 및 학살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수단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9.4. 내부 군벌갈등

더불어 같은 부족에 종교라고 해도 세력권 때문에 군벌을 이뤄서 또한 서로 죽어라 싸운 경우도 적지않아서 골칫거리가 한둘이 아니다. 덕분에 남수단을 강력하게 통합하게 이끌 지도자가 드문 것도 문제.

여기에 정부군 편성도 문제시되고 있다. 정부군 장교들과 군벌들과 친분에서 여러가지로 정부군 편성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여러 군벌들이 난립한 상황에서 이렇듯 같은 기독교고 뭐고 일단 권력을 위하여 수단의 힘을 빌리는 일도 얼마든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군도 엉망이다. 그밖에 군 문제 말고도 다른 국가를 이루는 모든 분야에서도 저런 문제는 곪고 있다. 어차피 정부군이래봤자 치안유지도 못하고 각 부족이 자발적으로 자경단으로 치안 유지를 하고 있지만.

2011년 2월 17일에는 남수단 용레이 지역에 반군이 여러 마을을 무작정 공격하여 211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죽었다. 이 반군 세력을 이끄는 것도 기독교인 조지 아서(또는 아투르, 아르투르) 대령이라고 한다. 이전부터 수단의 지원을 받아 강력하게 무장하고 제법 세력을 강력하게 이끌던 그는 용레이 주지사 선거에 나섰다가 선거에서 지자 휘하 부대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2월 25일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남수단 임시정부군이 파병되었으나 용레이 인근의 히자두 지역의 군벌을 이끄는 리처드 아시킴가 준장이 정부군의 통과를 거부했는데, 정부군을 이끄는 가브리엘 마얌바 대령이 아시킴가와 개인적 친분이 있어서 그냥 넘어갔다.결국 여전히 조지 아서는 무사했다.

4월 20일에 반군과 정부군의 충돌로 군 20명이 사망하였는데, 이미 2011년 4월까지 8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나마 12월 20일에 조지 아서는 정부군에게 휘하 부대가 진압되면서 사살당했다.하지만 다른 군벌세력도 남아있는 남수단에서 여전히 군벌과 내전은 뺄 수 없는 위험이다.

2013년 12월 전 부통령을 중심으로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 아직도 교전이 벌어져 수도 주바에 400여 구의 시신이 실려왔다고 한다. #

9.5. 열악한 산업기반

오랜 내전으로 남수단에선 제대로 된 산업 및 경제 체제가 없다. 석유말고도 다른 자원은 많지만 그걸 개발하려면 외국 자본 및 기술 투자가 필수적인데 이것에 대한 각 부족의 우선권 주장으로 제대로 되기가 어렵다. 국가 채무 부담도 수단과 얼마나 잘 나누게 될지도 불투명한 상태에 수단과 아랍권의 반발로 다국적 석유 개발 업체들도 나서길 꺼려하고 있다.중국에서 참여하려고 해도 여전히 아랍연맹이 눈치를 봐서 주저하고 있는 것도 사실. 세계적인 원유업체인 로열 더치 쉘이나 BP plc, 엑슨모빌같은 대기업들이 남수단 석유 개발 문제에 끼어들려다가 포기한 것도 아랍연맹 눈치도 크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석유 시설 정제공장도 아예 없어서 수단으로 가져가야 하며, 내륙국가라 석유를 수출하려면 항구를 장악한 수단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그래도 이 문제는 중국이 송유관 놓으면 좀 나아질 전망이지만, 영토 문제로 인한 케냐의 갈등과 같이 석유 수익 분배를 두고 부족끼리 죽어라 싸우는 문제 및 수단과 힘을 합친 군벌이 이 송유관을 건드릴 가능성도 무시할 수가 없어 중국도 골치를 겪고 있다.

또 중요 유전지대인 헤그리그 지대가 남북으로 절반으로 동강났는데 자본이나 기술력이 유리한 수단에서 선점한 곳이 가득하여 경제적인 시설 보충이 일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수도인 주바조차도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이 가득하니 할 말 다했다.

2014년 9월 16일에는 남수단 정부가 모든 외국인 소유 회사 및 NGO를 자국에서 추방하겠다는 충공깽 스러운 발표를 하여 남수단에 있는 모든 외국인들을 패닉에 빠트렸다.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산업기반에 이를 운영할 남수단인 인력이 부족하여 주변의 우간다 , 케냐 등 외국인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는판에 이런 조치는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9.6. 종합

이처럼 아프리카 많은 나라들이 겪고 있는 종교, 부족, 자원, 군벌, 내전과 그 휴유증, 영토분쟁 문제를 몽땅 한꺼번에 겪고 있는 상태라서 자칫하면 제2의 소말리아가 될 가능성이 거의 100퍼센트. 일각에서는 소말리아와 같은 파탄국가로까진 가지는 않더래도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 이후 아프리카의 최악의 부정부패 독재국가로 전락한 에리트레아처럼 남수단도 똑같은 전철을 밟아 부패한 독재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으며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앙골라나이지리아, 시에라리온 등에서 실증된 '오래된 미래'가 나타날 가능성은 많다. 그래도 일단 유엔과 중국이 적극 지원하고 있고, "답이 안 나온다"던 독립문제도 해결은 한지라 최악은 안 될 거라고 기대는 하고 있으나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과도 같은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는 미국의 권유로 남수단에 평화유지군을 파병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도 평화가 오려면 외국군대 주둔으로 어림도 없을 듯. 다른 부족끼리 싸우고 으르렁거리는 것에 함부로 끼어들다간 다른 부족 편애한다고 폭발하기에 과거 보스니아 내전이나 르완다 내전 때처럼 가만히 두고 볼 가능성도 허다하다.

2011년 11월, 일본 정부가 평화유지활동으로 자위대파견을 결정했다. #일본언론 보도 2011년 12월 1일, 대한민국 정부도 평화유지군 파병을 결정했다.

2014년 7월 9일로 남수단은 독립 3주년을 맞지만, 아무도 이를 기뻐하지 않을 정도로 상황은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끝없는 내전과 부족갈등에 기근까지 겹치면서 마침내 6관왕 소말리아를 제치고 취약국가 1위에 올랐다. UN 등에서도 남수단은 타국의 도움 없이는 근대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 불가능한 상태라며 남수단의 미래에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간단히 말하면, 생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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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런데 이 "남수단어"라는 언어의 존재가 명확(...)하지 않다. 국내 언론에서 "남수단어 개발중"이라고 나와 있으나 해당 기사 외의 다른 근거나 출처,정보가 부족한 것.
  • [2] 원래는 사막에서 온 몸을 가리는 아랍인들의 고유 옷을 가리키는 말인데 남수단 사람들은 흑인 이슬람 민병대를 부르는 말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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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29 05: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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