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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사

last modified: 2015-04-07 14:58:23 by Contributors

중국어: 蓝衣社(Lán yī shè)[1]
영어: Blue Shirts Society, BSS

CC단과 함께 중화민국 장제스의 양대 특무기관.

Contents

1. 어떤 조직?
2.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관계
3. 남의사 출신 유명인물


1. 어떤 조직?

남의사 그러던가 말던가
중국 국민당의 첩보 조직. 성별이 남자인 의사나,성이 남씨인 의사가 아니다 장제스비밀경찰으로 1932년에 다이리를 수장으로 창설했다가 1938년에 해산했다. 그 이후로는 중화민국 국방부 군사정보국수인계했다. 이쪽은 대만에 가서도 계속 존속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중화민족부흥사이다.(中華民族復興社) 삼민주의역행사(三民主義力行社)라고도 한다. 그냥 남의사라 불린다. 푸른 셔츠를 입고 있어서 그렇다고... 주요 임무는 일제와 중국 공산당과 싸우는 것이었다. 푸군관학교 출신이 주축이 되었는데, 이들은 훗날 국공내전에서 서로 싸웠다(...).

조선의 독립에도 큰영향을 주었는데, 이육사(신문조서에서는 이활)도 남의사의 학교에서 훈련받았다고... 홍가륵도 마찬가지다. 독립유공자들중에는 남의사 출신이 많다. 김광석, 대립(이름이 대립.남의사 수장.), 조인식등이 남의사에서 활동한 공적으로 독립유공자로 포상받았다. 일제하의 잡지들은 이들을 백색테러 조직이라 했다. 사실 공산당에게 테러한걸 보면 백색테러다. 백색테러라는게 극우 테러를 의미한다.비밀조직이지만 장제스의 조직이란건 널리알려진듯 일본과 내통했다고 중국 신문기자도 총살했다 만주국 전복계획도 있다. 대륙의 스케일이다... 백의사의 염동진이 모델로 삼았다. 그는 사실 남의사에서 활동한적이 있는데, 남경의 군관학교에서 훈련받았다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인들이 입학을 심사했다.

한편 일제는 이들을 없애기 위해 제스필드 76호를 만들었다. 국민당의 또 다른 첩보조직으로 CC단(Central Club)이 있다. 이쪽은 장제스대만으로 갔을때도 살아남았다. 1927년에 결성되었다. CC계,CC파,CC단이라고도 한다. 대만으로 갔을부터는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장제스는 남의사와 CC단을 통합하려고는 했다.

중국의 극우들은 상하이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남의사의 하부조직에 불과했다고 깐다...하지만 일제의 남의사 관련 자료에 이범석의 이름이 있긴하지만... #그래도 장제스김구에게 돈을 보내줬으니 하부조직은 아니다. 남의사 행동강령 상하이 조폭두목 두월생이 창설에 관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해주는등 한국의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조직. 저 두월생 링크에서도 나왔듯이 두월생이 임시정부 청사를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장제스의 측근인 천리푸, 천궈푸 형제의 CC단과는 경쟁관계였다. 천씨 형제는 다이리와 장제스의 총애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라 다이리와 사이가 안 좋았고 남의사가 창설에는 반대했다.

2.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관계

대한민국 임시정부중국 국민당장제스와도 협력했으며, 남의사의 지원도 받았다. 한국 광복군들중 일부가 남의사 출신이었다. 여담으로 이 남의사는 장제스의 백색테러 조직으로, 반공반일을 내세웠다.(...)

1962년 기사에 의하면, 재북중인 한국독립당, 대한민국 임시정부요인들은 중경파로 불리었다. 임시상무위원회에서는 과거 해외에서 망명중이었던 노인네들이라 지칭되었다.(노구를 이끌고 통일을 위해 일을 했던것이다.) 임정 요인들(조소앙, 엄항섭 등등)은 중국 국민당의 남의사원 노릇을 했다고 한다. 즉 장개석의 정보기관원 노릇을 했다고...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을 박해했다며 까이기도 했다.

1970년 신문에 의하면 진과부(백범일지에도 나온다),진입부 박사형제가 임시정부를 지원했다고 한다. 일본경찰 비밀보고에는 진입부 형제 그룹을 CC파(Central Club)으로 지칭,임시정부가 이들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그밖에 남의사로 통칭되는 정부기관 루트를 통해서도 지원받고 있다고 한다. 남의사 항목보면 알겠지만,이범석도 남의사 출신.

1974년 기사에 의하면, 1959년 김일성의 피의 숙청을 단행하는데 조소앙, 윤기섭, 원세훈, 송호성, 엄항섭을 중국 망명생활 당시 장개석의 정보원으로 남의사에 재직하면서 국제간첩이 되어 지금도 반공, 간첩행위를 감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숙청되었다.(...) 물론 지금도 반공간첩행위한거야 김일성 마음에 안드니 그런 누명을 쓴것이다.(...)


손문(쑨원시대에도 승인과 격려는 받았지만 5백만원 차관요구는 후일을 기약해야한다. 하지만 1975년 신문에 의하면, 장제스 시절(신문에는 장중정시대)에는 남의사 계통으로 한국의 각당파벌 임시정부등에 공작금,생활비,군수물자 명목으로 후년에 갈수록 많은 원조(당시에는 적다고 함)가 있었다고 한다.

이 항목을 잘 보면 알겠지만,윤봉길의 의거 이후 인재양성을 위해 황푸군관학교의 낙양분교의 한인학생들을 수용, 양성한건 유명한 이야기라고...(단 대한민국 임시정부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문제가 생겼다.)

3. 남의사 출신 유명인물

국부군에서 일한 조선인들은 대부분 남의사에 소속되어 특무공작을 많이 했다.

  • 이성가 - 중국 남경군관학교졸업. 중국군 소령출신. 해방뒤 귀국하여 8사단장까지 오른다. 참고로 본명은 이정일

  • 이범석 - 남의사 출신. 운남강무당 기병과 수석졸업. 남경 중앙군관학교 낙양 분교 생도 대장였기도 했다.

  • 동진 - 백의사수장. 이범석의 동창생.

  • 김재호 - 중경임정요인. 남의사 출신(뉴스에는 남이사라 발음). 귀국후 학교 교사를 했는데 1955년 이승만 암살미수에 연루되어 곤혹을 치뤘다.

  • - 남의사에서 훈련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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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간혹 감의사라고 칭하는 실수가 종종 보이는데, 이는 색깔의 남색과 감색이 서로 비슷한 색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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