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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last modified: 2015-03-30 04:45:54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대치 구도
3. 미국 vs 소련 떡밥
3.1. 군사적 비교
3.1.1. 시기별 비교: NATO와 WP(바르샤바 조약기구)
3.1.1.1. 1959년
3.1.1.2. 1973년
3.1.2. 서방진영과 공산진영
3.1.2.1. 미국과 NATO: 군별 비교
3.1.2.2. 소련과 WP: 군별 비교
3.2. 경제적 비교
3.2.1. 동구권
3.2.2. 서구권
4. 냉전의 역사
5. 냉전을 배경으로 하는 창작물
6.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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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색은 친미 성향의 국가들을, 붉은 색은 소련의 위성국을 나타내며 노란 색은 공산주의 국가지만 친소 성향이 약한 국가[1]들을 말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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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세력 확장

1. 개요

冷戰, Cold War.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세기의 중후반을 상징하는 체제
정치적 거짓말 및 정치적 암살,사망을 비롯한 타국에 대한 비공식적인 부대 파견,첩자 파견 등 정치적 공작,첩보 활동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때.
인류가 가장 미쳐있었던 시기들 중 하나

Hot War(열전)의 반대말. 적성국 관계인 두 나라가 실제로는 전쟁을 하지 않지만 첩보전이나 군비경쟁, 대리전 등의 방법으로 대치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 냉전 시기에 서로가 병기로 맞대는 것에 비쳐 철의 장막이 드리워졌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사실 냉전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서로 대치한 상황' 정도로 끝내기에는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으니 아래를 좀더 참고하자.

도망치던 힘러의 예측은 현실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991년 12월의 소련 붕괴까지 계속됐던 미국소련간의 총성없는 전쟁을 지칭하는 말이다.[3] 이 기간 동안 우주경쟁, 군비경쟁이 절정에 달했으며, 긍정적인 면으로는 인류의 과학기술 발전에 엄청난 디딤돌이 되었으나 다른 면으로는 대량살상무기출현유래없이 파괴력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어버렸다.[4]

시작 지점과 끝 지점에는 다소 견해차가 있다. 미국의 소련 주재 외교관 조지 케넌(George F. Kennan)이 "긴 전문(The Long Telegram[5])"을 본국에 송신한 1947년을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1950년한국전쟁을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상 전통주의적 견해든 수정주의적 견해든 마셜 플랜이 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결정적 계기였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

2. 대치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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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를린 위기 때 찰리 검문소에서 대치 중인 미군과 소련군의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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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 1982년, 냉전시기 유럽에서 NATO와 소비에트의 군사적 세력 지도

냉전 동안 사람들은 핵전쟁의 위협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으며, 소련과 미국은 서로에게 수없이 많은 ICBM을 겨냥해놓고 있었다. 군비경쟁은 대인배 레이건 시절 때 절정에 달해, 소련은 그 당시 45,000발 정도의 핵무기를, 미국도 25,000발 정도를 갖고 있었다. MAD전략에 기초해 '공포에 의한 평화'라는 모토 아래 아슬아슬하게 핵전쟁을 피했다. 더불어 잠수함전도 치열했다. 냉전 당시 소련과 미국은 북극해에 항상 전략핵잠수함을 순찰시키고 있었고, 가끔 소련 잠수함과 미국 잠수함이 교전 직전까지 간 경우도 더러 있었다.

유럽에서는 WTONATO가 각각 공산권과 자유진영을 대표해 대치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서독에는 미국의 핵 발사기지가 있었다. 현재 미사일방어체계(MD)의 전신인 SDI가 발표된 것도 이때.

그러나 냉전 시대 전체에 걸쳐서 모든 점에서 경쟁만 한 것은 아니다. 미국과 소련에도 국력의 한계는 있었고 함께 멸망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흐루쇼프 시대부터 경쟁은 하면서도 공존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브레즈네프의 시대에는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체결하는 등 서로 군비경쟁을 제한하고 관계 개선을 도모하기도 했다.

그러다 소련 지도자가 고르바초프가 된 이후 소련이 개혁·개방 정책을 폄에 따라 상황은 눈에 띄게 바뀌기 시작했고, 전략무기도 '제한'을 넘어서 '감축'에 이르기 시작했다. START I, II조약이 체결되어 핵무기 감축이 시작됐으며, 1989년 동유럽 위성국가 붕괴와 1991년 소련 붕괴로써 냉전이 막을 내렸다. 소련의 붕괴로 독립한 12개 공화국중 조지아를 제외한 11개국은 독립국가연합(CIS)을 결성했다.[6]

동유럽 국가들은 예전부터 서슬 퍼런 소련의 압제에서 벗어나려고 발악한 역사가 있으나, 1989년 동구 공산권 붕괴의 주인공은 바웬사하벨이 아닌 미하일 고르바초프다. 고르바초프는 막장으로 치닫는 소련 경제를 개선하고자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를 추진, 돈만 처먹는 군비 경쟁을 줄이고 미국의 지원을 얻고자 평화 외교ㆍ군축 협상을 실시해 서구권에서 엄청난 외교적 인기를 구가하며 대처 아줌마가 팬클럽 회장이었다 카더라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폐기한 것이 동구 공산권 붕괴로 이어졌다. 고르바초프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버려도 동유럽이 친소파로 남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하지만 현실은(...)

'냉전'이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은 미국과 소련, 양국이 확실한 적성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서로간에 직접적인 전쟁이나 무력충돌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가리켜 차가운 전쟁이라고 부르게 된 것에 뿌리를 둔다. 미국과 소련은 서로 직접적 교전은 없었으나 각자가 지원하는 세력들에 의해 한국전쟁, 월남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등 세계 각지에서 대리전이 벌어졌다. 이 냉전기의 긴 평화(The Long Peace)[7]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월츠는 '양극체제의 안정성'에 근거를 두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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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 1980년대 냉전 말기까지 유럽연합(유럽동맹, EC, EFTA)의 경제적 세력 확장

냉전 말엽 소련의 경제가 막장으로 치달으면서 소련이 히틀러제3제국처럼 살아남으려 마지막 발악을 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지만, 다행히 소련은 미국과 NATO를 향해 발악하지 않고 붕괴되었으며 세계멸망의 위기는 조금 사라졌다. 하지만 현재 소련의 국력을 대부분 물려받은 러시아1990년대의 경제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제정신을 차린 이후 다시금 미국과 자주 대립하는 상황이라, 앞으로 제2의 냉전이 시작되는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으며 남오세티야 전쟁2014년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 등도 이러한 과정에서 불거졌다. 물론 현재 러시아는 더 이상 공산권도 아니고 철의 장막도 없어졌기 때문에 이념대립이었던 옛 냉전과는 상당히 다르며, 옛 소련 시절보다 약화된 러시아의 경제력으로는 궁극적으로 옛 소련처럼 완벽하게 대치하는 상황까지는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그 외에 중국과 미국이 신냉전 구도로 갈지도 모른다는 예측도 있다.

첩보전의 시대이기 때문에 스파이가 나오는 작품이라면 대부분 이 시대가 배경이거나 이 시대에 대한 언급이 나오며 둘이 정말로 전쟁을 벌이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추측하는 대체역사물도 많이 나온다. 그런 이야기가 정말 대체현실로 끝난 것에 감사하자.

최근까지는 "냉전"이 1945~1991의 시대를 칭하는 단어였지만, 요새는 사학계에서 냉전을 그 시대의 한 프레임으로만 보는 움직임이 일고있다. 냉전 자체가 1945~1991의 시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벤트 중 하나였다는것은 사실이지만, 냉전은 그 시대의 기술의 진보, 비식민지화, 민주화 등 여러 다른 프레임 중 하나였다는 주장이다.

3. 미국 vs 소련 떡밥

BearandEagl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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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까지만 해도 현재의 미국 VS 중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이슈였던 떡밥으로, 전혀 알지 못하던 적인 소련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만들어 낸 떡밥이다.

실제로 단순히 군사적인 면만 파보면 현재의 그 어떤 떡밥보다도 흥미 있으며, 당장 NATO군과 바르샤바 조약기구군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두 군사집단이었다. 가장 확실하게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떡밥이며, 지금도 미국과 러시아의 전쟁은 세계멸망과 동급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렇게 유일하게 미국과 군사적으로 비등비등했던 국가란 인식이 있어서인지, 관련 2차 창작물도 상당히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말 발발했다면, 전면적인 핵전쟁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에는 인류의 절멸 혹은 절멸은 면하더라도 문명의 멸망을 가져왔을 것이라는게 과학자들의 예상이었다. 폭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대규모 연소로 생긴 분진이 태양 에너지를 막아 생길 핵겨울이나, 심각하게 지표면을 덮을 방사능 물질, 그리고 수백년 후 핵겨울이 끝나더라도 이후에 이미 오존층은 파괴되어 지상에서 인류는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설령 억세게 살아남았더라도 방사능 오염으로 유전자 레벨부터 떡이 된 인류가 과연 현재의 인류와 비슷하리라고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냉전 피크(1980년대)에 소련과 미국의 핵탄두 수는 45,000기, 25,000기였으며, 현재 러시아와 미국은 각각 1만2천기, 8천기씩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는 수백기만을 가지고 있는 중국이나 프랑스, 영국같은 2류 핵보유국가와 넘사벽으로 보유하고 있는 셈. 일단 냉전 당시의 양은 지구를 7번 멸망시킬 수 있는 양이라고 추정되며, 지금 보유한 양도 2-3번은 문제없을 지경이다.

이 당시 미국의 대 소련 전략정책들을 묶어 봉쇄정책이라고 한다. 자세한것은 항목참조.

3.1. 군사적 비교

사실상 이 떡밥이 아직도 유지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이며, 이 떡밥의 액기스(…)라고 할 수 있다.

3.1.1. 시기별 비교: NATO와 WP(바르샤바 조약기구)

3.1.1.1. 195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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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2. 197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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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서방진영과 공산진영

3.1.2.1. 미국과 NATO: 군별 비교
붉은 폭풍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 후반, 보다 정확히는 위기 의식이 극에 달했던 1988~9년 당시 기준으로 양군의 지상전력을 비교하고자 한다.

정확한 해당 소스를 통해 크게 독일이 중심이 되는 중부전선과 발칸 반도 일대가 중심이 되는 남부전선으로 유럽을 분할하며, 증원이 아닌 즉응 가능성을 가진 부대 위주로 서술할 것이다. 즉 유럽 대륙 내에 당장 주둔하고 있는 부대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다만 중부 유럽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스페인군이나 포르투갈군, 다른 나토국가들과 달리 홀로 북부 유럽에 떨어진 노르웨이군 등은 생략했다.

  • 중부전선
    • 미군
      • 제7군
        • 5군단
          • 3기갑사단/8보병사단
          • 11기갑기병연대
        • 7군단
          • 1기갑사단/3보병사단
          • 1보병사단 3여단/2기갑기병연대/캐나다군 1보병사단 4기계화여단[8]
        • 199보병여단[9]/2기갑사단 3여단
    • 서독연방군[10]
      • 1군단
        • 6기갑척탄병사단[11]11기갑척탄병사단
        • 1기갑사단/3기갑사단/7기갑사단
      • 2군단
        • 4기갑척탄병사단
        • 10기갑사단
        • 1산악엽병사단[12]
      • 3군단
        • 2기갑척탄병사단
        • 5기갑사단/12기갑사단
    • 영국 라인 군단[13]
      • 1기갑사단/3기갑사단/4기갑사단
      • 1왕립포병사단
      • 9-12왕립척후창기병연대/13-18왕립척후검기병연대[14]
      • 베를린 여단[15]
    • 본토 주둔 영국군
      • 왕립기병대
        • 1기병연대 라이프가드/1용기병연대 블루스 앤 로얄스
        • 2보병사단
        • 1보병여단/2보병여단/8보병여단/19보병여단/42보병여단/43보병여단 웨섹스/51보병여단 하이랜드/52보병여단 로우랜드/54보병여단/56보병여단/143보병여단/160보병여단 웨일스
    • 네덜란드군[16]
      • 1군단
        • 1기계화사단/4기계화사단/5기계화사단[17]
    • 벨기에군
      • 1군단
        • 1기계화사단/16기계화사단
        • 3창기병대대
    • 프랑스군
      • 1군
        • 13공수용기병연대
        • 1군단
          • 1기갑사단/7기갑사단
          • 12경기갑사단/14경기갑사단
          • 8검기병연대
        • 2군단
          • 3기갑사단/5기갑사단
          • 15기계화보병사단
          • 3검기병연대
        • 3군단
          • 2기갑사단/10기갑사단
          • 8기계화보병사단
          • 1검기병연대
        • 신속대응군
          • 4공중기동사단
          • 6경기갑사단
          • 9해병사단
          • 11공수사단
          • 27산악사단
          • 외인부대
    • 덴마크군
      • 유틀란트 사단 (기계화보병사단)
      • 동부사령부
        • 1질란트여단/2질란트여단 (기계화보병여단)
  • 남부전선 : 남동부 유럽, 즉 발칸 일대를 임의로 나누었다.
    • 그리스군
      • 1군
        • 1개 독립기계화보병여단/1개 기갑정찰여단
        • A군단
          • 1차량화보병사단/2차량화보병사단/3차량화보병사단
          • 4보병사단/5보병사단/6보병사단
        • C군단
          • 7보병사단/8보병사단/9보병사단
          • 20기갑사단
        • D군단
          • 10보병사단/11보병사단
          • 15기계화보병사단
        • 3군
          • 1개 기갑정찰여단
        • 4군
          • 1개 기갑정찰여단
        • 공수특전사단[18]
    • 터키군
      • 3기계화사단/66기계화사단
      • 1기갑사단
      • 2개 기계화보병여단/4개 기갑여단

NATO의 국가들은 사실상 2차대전의 참전국으로 한몫을 챙기던 국가였고, 대전 이전의 제국주의 시기엔 엄연히 초강대국이던 국가들이었으며, 동유럽의 WP국가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래서인지 NATO는 WP처럼 일방적으로 미국이 감놔라 대추놔라 한다고 놓는 국가들은 아니었으며, 2차대전의 후유증으로 그래도 알아서 조금씩 기긴 기어야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 독자적인 핵무장까지 이룩했던 국가들이었다. 서독은 패전국이었지만, 사실상 유럽의 최전방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군사력을 갖고 있었다. 거기에 주요 외계인 고문국 중 하나고

다만 이탈리아의 경우 분명 상당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위의 전력비에 포함시키지 않는데, 이는 공산당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탈리아 특유의 정치 상황을 고려한 것이며, 실제로도 전시 이탈리아군은 즉응하는 임무가 아닌 국가 내부 안정 및 전선 증원에 중점을 두는 역할을 맡았다. 이탈리아군이 너무 형편없어 나토군 총계에서 뺐다는 소리도 있지만, 900대의 레오파르트1 전차와 300대의 M60 패튼을 보유한 군대가 전력이 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근대 이후의 역사만 본다면 전력에 의구심이 들 수도 있긴 하겠지만...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토는 동구권의 압도적 숫적 우위, 특히 무지막지한 기계화부대의 진격을 MLRS로 대표되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지연 및 섬멸하려 하였다. 여기에 독일군과 영국군, 미군이 그 화력의 엄호를 받으며 WP군의 주력을 섬멸, 프랑스군 등 직접적으로 주력이 초기에 노출되지 않는 후속 부대의 증원을 통해 최종적인 지상전에서의 승리를 얻어내려 했을 공산이 높다. 간혹 이 시기의 NATO가 소련의 수적 우위를 상쇄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전술핵을 운용했다는 소리가 있는데, 이는 시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괴담이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의 유럽 전선은 재래전으로 포커스가 이동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70년대 핵균형이 성립해 양측 모두 MAD능력을 갖게 된 이래, 전술핵 사용은 에스컬레이션을 불러일으켜 전면핵전쟁에 의한 상호 공멸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비핵 재래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증대되고 재래억지나 재래전력 균형이 국제안보연구와 군사학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자연히 군의 작전계획과 전력발전 역시 재래전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공지전 교리 개발이나 구 소련 종심전투교리의 부활 같은 작전술에 대한 강조가 이뤄진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NATO에는 미국이 있으므로, 해군은 두말 안해도 잔소리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강력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해군에서의 전력비는 잠수함을 제외하면 안드로메다로(…). 게다가 미국을 제외하더라도 영국, 프랑스는 전통적인 해군 강국이고 노르웨이, 네덜란드, 서독 등도 해군 전력 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치였다. 게다가 NATO가 아닌 친미 국가인 일본이나 캐나다까지 범위를 확장하면...[19]

3.1.2.2. 소련과 WP: 군별 비교
  • 중부전선
    • 소련군
      • 소련군 서부군집단
        • 1근위전차군
          • 9전차사단/11근위전차사단
          • 20근위차량화소총사단
          • 1근위전차연대
        • 2근위전차군
          • 21차량화소총사단/207차량화소총사단/94근위차량화소총사단
          • 16근위전차사단
          • 94전차여단
        • 3충격군
          • 7근위전차사단/10근위전차사단/12근위전차사단/47근위전차사단
        • 8근위군
          • 27근위차량화소총사단/39근위차량화소총사단/57근위차량화소총사단
          • 79근위전차사단
          • 47전차여단
        • 20근위군
          • 35차량화소총사단
          • 25전차사단/32근위전차사단/90근위전차사단
          • 5전차여단
        • 6차량화소총여단
      • 소련군 북부군집단
        • 6차량화소총사단
        • 20전차사단
      • 소련군 중부군집단
        • 4근위군
          • 18근위차량화소총사단/30근위차량화소총사단/48차량화소총사단
          • 1근위전차사단/51전차사단
          • 단대호 미상 전차여단 1개
      • 소련군 레닌그라드 군구
        • 6제병협동군
          • 37근위차량화소총사단/54근위차량화소총사단/63근위차량화소총사단/65근위차량화소총사단/68근위차량화소총사단
        • 바이보르그 군단
          • 45근위차량화소총사단/64근위차량화소총사단/111근위차량화소총사단
        • 아르항겔스크 군단
          • 45차량화소총사단/69차량화소총사단/77차량화소총사단
    • 동독군
      • 3군
        • 4차량화소총사단/11차량화소총사단
        • 7전차사단
        • 2근위차량화소총연대
      • 5군
        • 1차량화소총사단/8차량화소총사단
        • 9전차사단
    • 체코슬로바키아군
      • 1군
        • 2차량화소총사단/19차량화소총사단/20차량화소총사단
        • 1전차사단
      • 4군
        • 3차량화소총사단/15차량화소총사단
        • 4전차사단/9전차사단
      • 동부 군구
        • 13전차사단/14전차사단
    • 폴란드군
      • 1군
        • 1차량화소총사단/3차량화소총사단/9차량화소총사단
      • 2군
        • 8차량화소총사단/12차량화소총사단/15차량화소총사단
        • 16전차사단/20전차사단
      • 3군
        • 2차량화소총사단/4차량화소총사단
        • 5전차사단/10전차사단/11전차사단
    • 헝가리군
      • 11전차사단
      • 4차량화소총여단/8차량화소총여단/9차량화소총여단/15차량화소총여단/17차량화소총여단
      • 1전차여단

  • 남부전선
    • 소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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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전차만 놓고 비교하자면 1:2를 넘는 수다. 게다가 특정 전역에서의 압도적 우위를 통해 전선의 돌파 및 전과확대를 지향하는 소련 지상전 교리를 감안하면 이는 순간적으로 1:5~10까지 벌어질 여지가 있는 정도.

NATO국가들이 엄연한 2차대전 참전국에 전세대 슈퍼파워였다면, 동유럽 국가들은 2,3류국에 독소전쟁의 최전방이었다. 즉 NATO국가들처럼 회원국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련의 위성국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경제력 역시 NATO구성국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NATO와 한번 떠볼 정도의 군사력은 갖고 있었다. 단지 소련과 마찬가지로 그걸 유지하기 위한 경제력이 딸렸다.

주로 이들은 소련군식 교리를 채택하고 실제로 통제도 거의 소련군이 일방적으로 하고 있었으며, 소련군식 교리 아니랄까 지상군이 상당히 강하고 숫자도 많았다. 유일한 예외는 동독인데, 다른 나라는 해당 국가군대가 탱킹을 하고 소련군이 딜링을 하는데 반해, 동독은 반대다. 서독군에게 동독군이 무저항으로 투항할 것을 우려한 정치적 안배라는 이야기도 있고...

분명 전쟁이 벌어졌다면 위협이 됐을 거라는 건 분명하다.

(ɔ) Graham H. Turbiville from

Seven Days to the River Rhine의 작전 계획도. 1979년에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수립한 공격 계획이다.

2010년 9월 4일 독일 슈피겔지에는 과연 동구권측의 고전적인 설명대로 바르샤바조약기구는 서방측으로 공격에 대비한 방어-내지는 반격 전략만을 수립해놓았는가?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슈피겔이 동독에 산재해있는 1200여개의 벙커들과 기밀해제된 소련 문서들을 연구한 학자들과 전직 동구권 장성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내린 결론은 바르샤뱌 조약기구 측은 선빵도 염두를 해두고 있었다는 것.

WP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전장인 서독-동독 지역이 포함된 중부유럽에 대한 개전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았다.

전쟁 개시 90분 동안 WP는 나토의 주요 시설과 공항, 정부 부서 등, 서유럽 국가들의 사회인프라 시설에 수천 개의 핵탄두로 공격을 가한다. 초기 공격대상에는 라인강을 넘어 앤트워프, 암스테르담, 브레멘, 쿡스하펜, 엠덴, 뮌헨이 포함된다. 평화 협상은 누구랑 하려고 이는 전형적인 소련군의 종심작전 교리에 기인한 것으로, 소련군은 전쟁 과정에서 적 주력을 마비시키는 것에 중점을 둔다. 적 주력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해도, 그 주력을 움직일 머리를 제거한다면 최종적인 승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 그렇기에 나토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정부 부서 및 인프라를 먼저 때리는 것은 당연한 것. 물론 이럴 경우 협상 따위는 이미 안드로메다. 진짜 한 쪽이 전멸할 때까지 싸우게 된다.

핵공격의 시작과 함께, 중부유럽에서 지상군 주력이 전개된다. 북부에서는 폴란드군이 덴마크 인근의 유틀란드 반도까지 6일 내에 도착한다. 남서쪽 전선에서는 체코군의 지원을 받아 독일 남부의 바이에른주로 진격한다. 중부에서는 소련군의 지원하에 동독군이 국경을 넘어 루르 지역, 프랑스의 로렌지방까지를 목표로 삼는다. 최종적으로는 라인강까지는 7일 이내에, 대서양 해안지대까지는 12일 이내에 진격한다.

하지만 이 작계를 본 위키러라면 핵으로 선빵 날린다 치자. 그런데 아군 피폭은? 라고 궁금증을 품을 법 하다. 거기에 이 친구들 왈.

작전계획에 따르면, 라인강변에 도착할 때까지,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방사능 피폭증상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라인강변에 도착하면 이들 방사능에 피폭된 병사들은 제2전략군으로 재배치할 예정이었죠.

…할 말이 없다. 과연 불곰대륙

하지만 이게 생각보다는 소련 입장에서는 매우 현명하고 현실적인(...) 작계일 수도 있다. 미국이나 서유럽권은 핵미사일 완전 자동 발사장치를 구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핵 날릴 수뇌부가 사라지면 핵 맞을 가능성이 약간이나마 줄어버린다는것. 설사 이런 방식으로 선제공격이 시작된다 해도, 나토 역시 이런 전쟁에 대비하지 않은 게 아니므로 이런 식으로 흘러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그 이전에 저 정도면 서로 핵샤워 하겠지

3.2. 경제적 비교

3.2.1. 동구권

눈물이 앞을 가린다. 위성국들 중 가장 경제적 사정이 낫다는 동독도 통일 당시 서독과의 엄청난 경제력 차이를 보였을 정도다. 그러나 서독과 비교하면 많이 처졌지만 당시 한국보다 전체적인 경제력이 강한 나라였고[20] 절대적으로 본다면 잘 사는 나라였다. 다만 라이벌이 서독이라 문제였을 뿐... 사실 동유럽이 상대적으로 서유럽보다 국력도 약했고 공업화도 늦었기 때문에 이들은 소련에게 경제를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동독, 체코, 폴란드 등 그럭저럭 산업이 갖춰진 국가는 그나마 나았지만 구소련 위성국가와 루마니아, 불가리아 같은 국가는 더욱 상황이 막장이었다. 그래도 1960년대와 70년대 들어서 헝가리나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등 각 국가에서 서방의 자금[21]을 끌여들여서 경제를 성장시킬려고 했지만 결국 오일쇼크와 이자율 상승이 겹쳐지면서 경제적인 격차는 더더욱 벌어졌다.[22] 이는 냉전 붕괴 이후 소련 붕괴 이후 독립 국가들 중에 발트 3국과 러시아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 극히 일부를 뺀 모든 국가가 파탄국가로 전락하는 것으로, 그리고 동유럽 위성국가들 중에도 슬로베니아[23],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몇몇 국가를 뺀 모든 나라가 EU의 불량채권으로 전락하는 것으로 증명된다.

소련의 경제 상황도 별로 좋지 않았다. 세계 2위[24] 의 경제규모를 가졌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의 절반도 되지 못했고, 1970년대 이후 계속되는 경제 침체는 그 격차를 더 벌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소련은 엄청난 자원 대국이었고, 세계 1위의 석유 생산국이였던 소련은 오일 쇼크로 유가가 크게 올라서 1985년까지 석유 수출로 큰 돈을 벌었다. 그러나 1986년에 유가가 급락하면서 경제난이 왔다. 거기에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겹쳐지면서 결국 몰락하게 된다. 물론 국민소득이 바닥까지 떨어진 것은 냉전의 갑작스러운 붕괴로 인한 카오스스러운 사회 분위기가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이전부터 성장율 감소 추세 자체는 꾸준했다. 이걸 개혁하겠답시고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뒤 여러 가지 정책을 추진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소련은 많은 양의 식량을 생산했지만 식량 자급 자족은 하지 못했는데... 농민도 많았고 엄청난 곡창 지대를 보유했는데도[25] 인센티브제를 도입하는 등의 부분적인 개혁을 실시했는데도 식량이 부족해 상당량의 곡물을 미국에서 수입했다.[26] 하여간 유럽에서 손꼽히는 곡창지대를 제대로 써먹지 못 하는 것도 대단하다면 대단하다. 당장 지리부도책에서 소련 지역의 경작 지대를 봤다면 알겠지만 그 경작지대를 갖고도 식량 자급 자족을 못한게 신기한 수준이다(...). 이건 우크라이나 대기근에서 보듯이 곡창지대를 활용하지 못하는 공산주의와 소련의 관료제 탓이 크다.

그래서 이런 농담도 나왔다.

최종적인 승리를 위해서는 미국이 멸망해야 한다는 연설을 들은 소련의 농민이 연설이 끝난 후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질문에 연설자는 아무런 대답도 못 했다고 한다.

만일 미국이 멸망하면, 당장 올해 겨울을 날 식량은 어디서 수입해오죠?


3.2.2. 서구권

유럽에서 잘 나가는 나라 대부분(영국, 프랑스, 서독)이 속해 있고 여기에 경제규모가 가장 큰 미국이 주도한다.

또한 미국은 엄청난 자원 대국이다. 미국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미국이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석유 같은 지하자원도 상당히 많고 미국의 넓은 땅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없었다면 전 세계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실제로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렌드리스에 큰 도움을 받았고 냉전 시기에도 농업 생산이 충분하지 못해서 많은 양의 농산물을 미국에서 수입했다. 그래서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꼽힌 것이 미국이 소련에게 곡물을 수출하지 않기였다고 한다.[27]

5. 냉전을 배경으로 하는 창작물

RTS나 첩보물의 단골 소재로 나온다. 대한민국또한 냉전시대때 최전선이었던 만큼 가끔 등장한다.

6.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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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대표적인 예로 중국, 유고슬라비아. 근데 위 지도상에서 노란색으로 표시된 나라들 중에서도 말하기 뭐라한게, 몽골은 소련덕에 독립한지라 소련의 입김이 강했고, 베트남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친소 노선을 탔다. 쿠바 역시 미국의 견제에서 버티기 위해 소련에 많이 의존했다.
  • [2] 다만, 친미나 친소의 성격도 아닌 제3세계 국가 중에서도 어느 한쪽 편으로 다소 쏠린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는 친소 성향이 되었으며, 앙골라, 자이르같은 아프리카에서도 미국과 소련을 지지하는 파벌이 서로 내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중동 대다수 국가들은 사우디아라비아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이스라엘 견제를 위해 친소 성향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그리고 남예멘은 아예 칠해지지도 않았다
  • [3] 한국에서는 흔히 1945~1991년의 시기 자체를 냉전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냉전 또한 이 시기동안 일어났던 한가지 프레임으로 보는 경향이 생겼다. 냉전이라는 프레임이 지극히 미국중심이라고 생각해서 생긴듯하다. 다른 프레임들로는 식민지해방, 근대화, 인권/민주화 등이 있다.
  • [4] 출현은 이미 2차대전이 끝나갈때 했다.
  • [5] 이후 케넌이 이 전문을 기반으로 작성한 논문을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발표하며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 논문은 X라는 가명으로 발표되어 'X 논문(X-article)'로 불린다.
  • [6] 이미 1991년 9월 6일에 독립을 승인받은 발트 3국과 조지아는 독립국가연합에 참여를 거부했다. 이후에 조지아는 러시아의 압력으로 1993년 12월에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하지만, 2008년에 터진 남오세티야 전쟁이 끝난 후 독립국가연합 회원국에서 제명되었다.
  • [7] 의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냉전기에는 강대국 사이의 전쟁이 없었다.
  • [8] 전시에는 캐나다군 1보병사단 전체가 미 7군단 지휘 하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 [9] 일명 베를린 여단. 3개 보병대대에 1개 전차중대/1개 자주포대를 혼성편제한 여단으로, 서베를린 방어에 투입되어 있었다.
  • [10] 아래 나열된 부대 외에도 지역사령부(Heimatschutzen이라고 하며, 전시에는 나토군 산하에 편입되어 실전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산하에 다수의 예비 부대를 확보하고 있으며, 6기갑척탄병사단을 주축으로 할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지역 사령부와 하노버 지역의 1지역사령부가 각각 군단급 편제로 개편되어 사단급으로 편제된 산하 지역 사령부를 흡수하여 전투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무서운 건 향토사단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사령부 산하 부대들도 모두 기계화/차량화가 이루어져 있다는 정도? 여기에 이 부대의 주력 전차는 레오파르트1.
  • [11] 전시에는 1군단에서 분리되어 군단급으로 편제되는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지역 사령부 예하에 배속될 예정이었다.
  • [12] 말만 산악엽병이지 예하 3개 여단 중 2개 여단이 기갑/기계화보병여단이었다.
  • [13] 이후 BFG(British Forces Germany)로 개편된다.
  • [14] 이 두 연대는 한국군 편제로 치면 기갑수색대의 역할을 수행했다.
  • [15] 미군과 마찬가지로 1개 기갑중대를 혼성편제한 보병여단이었다. 다만 이 쪽은 기계화보병이 주력이다.
  • [16] 여기에 예비군 1개 보병여단이 존재했다.
  • [17] 이 중 1개 사단은 예비대 역할을 맡았다.
  • [18] 공수부대와 해병대를 결합한 전투사단.
  • [19] 다만 한국은 여기서 제외된다. 한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본격적으로 서방 진영 내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솔직히 말해서 얼마 되지 않았다. 냉전 당시에는 3차대전이 벌어지면 언제든 버릴 준비가 끝난, 흔한 개도국 중 하나에 불과했고 군사력 역시 북한 상대로나 쓸만하지 진짜 군사대국인 소련, 중국을 상대로는 싸움조차 못 할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제대로 된 지역 강국 겸 군사대국으로 인정받은 것은 냉전이 끝나고도 한참 지난 뒤에나 가능했다.
  • [20] 1990년 독일 통일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을 비교해 본다면 동독이 약 8500달러 정도였고, 한국이 약 5800달러 정도였다.(소련은 9300달러) 그 이전 1988년 동독의 1인당 국민소득은 9,679달러였으며, 이는 2010년 달러 가치로 볼 때 20,000달러에 이르는 금액이었다. 1976년의 동독의 GDP성장률은 5%대였다. 물론 환율 교환비를 따져서 좀더 낮게 볼 수 있기는 한데 그렇게 따지면 PPP나 빈부차의 문제도 있다.
  • [21] 서구권 국가와 동구권 국가들이 정치적이나 군사적으로 대립관계였다고는 해도, 경제적 교류는 생각보다 활발히 이루워졌다.
  • [22] 사실 동시기 서구권 국가에서도 경기침체를 겪은 나라는 많았지만, 서구권 국가들은 그래도 쌓아놓은게 많았는데 비해 동구권 국가들은 원채 기초체력이 부실하고, 제품경쟁력에서도 서구권 국가와 비교가 되는 수준이 안 되었기 때문에 쉽게 쓰려져 나갔던 것.
  • [23] 구 동구권 국가 중 가장 빨리 경제선진국 대열에 드는 데 성공했다.
  • [24] 1988년 일본에게 밀려 3위가 됐다.
  • [25]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곡창지대가 있다.
  • [26] 미국인의 4~5%가 농업에 종사했지만 미국은 곡물 수출국이였는데 소련인의 22~23%가 농업에 종사했지만 소련은 곡물 수입국이였다.
  • [27] 한번은 미국이 소련을 압박하기 위해 식량 수출을 금지시킨 적이 있다. 그러자 소련으로 수출되던 막대한 양의 곡물이 국제 시장으로 풀렸고, 가격이 대폭락하는 바람에 미국의 농업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소련이 식량 자급 자체를 못하는 나라는 아니라 어떻게든 버텨내는 데 성공했고, 그 뒤 싸게 풀린 미제 곡물을 미친 듯이 사들여 비축하면서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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