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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last modified: 2015-04-13 19:16:44 by Contributors

Nobel Prize

Contents

1. 개요
2. 탄생 배경
3. 수상 자격
4. 시상 분야
5. 해외 수상자
6. 국내 수상자
7. 노벨상을 2회 이상 수상한 괴물사람들
8.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사람들
9. 예산
10.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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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자는 5등분하여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화학분야에서 중요한 발견이나 개발을 한 사람, 생리학 또는 의학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 문학분야에서 이상주의적인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사람, 국가간의 우호와 군대의 폐지 또는 삭감과 평화회의의 개최 혹은 추진을 위해 가장 헌신한 사람에게 준다.
- 알프레드 노벨유언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매년 인류의 문명 발달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으로 만들어졌다.

2. 탄생 배경

노벨의 형 루드비그 노벨(Ludvig Nobel)이 사망했을 때 한 신문에서 실수로 알프레드 노벨이 사망했다고 기사를 실었는데, 그 기사에 노벨을 '죽음의 상인'이라 지칭했다. 안 그래도 다이너마이트가 군사적으로 이용되는 걸 싫어했던 노벨은 후에 유언으로 유산의 94%(약 440만달러[1])를 기부, 노벨상을 설립하게 되었다.

이 때 친척들(반평생 넘게 독신으로 살다가 죽었기에 노벨의 직손은 없었다)이 어마어마한 알프레드 노벨의 재산을 대부분 기부하려하자 죽기살기로 반대하며 서로 먹으려고 발악했다. 게다가 노벨은 유언장에서 국적에 상관없이 이 상을 줄 것을 당부했는데, 이것 때문에 세기말의 국수주의에 휩싸여있던 스웨덴 내 여론과 스웨덴 국왕까지도 노벨을 비난했다고 한다. 게다가 평화상 수상을 당시 스웨덴 식민지인 노르웨이에 넘겼으니 더더욱 그럴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언 집행인 랑나르 솔만(Ragnar Sohlman)의 결단으로 노벨의 재산은 안전한 유가증권으로 남게되었고, 지금의 노벨상의 위상을 봤을때 참 훈훈하게 탄생했을것 같은 상이지만 실제로는 참 우여곡절 끝에 탄생된 상이다. 솔만은 상을 제정하며 가진 인터뷰에서 욕을 그리도 많이 먹어보는지 참 재미있더군요라며 노벨의 친척들이 벌인 온갖 방해공작이나 욕설,명예훼손을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노벨상에는 수학상이 빠져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노벨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예스타 미타그레플레르라는 수학자가 노벨 수학상을 받는 꼴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라는 설, 미타그레플레르와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는데 그가 워낙 수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보니 수상의 공정성이 떨어질까봐 제외했다는 설, 흠모했던 여인이 수학자를 선택하는 바람에 사랑이 쫑나서라는 설 등등. 근데 다 떡밥이다(관련 반론). 공학도 출신 실업가였던 노벨이 수학 배워서 어디다 써? 수학은 실용학문이 아니라서 노벨상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들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수학자들이 위와 같은 소문을 꾸며냈다는 해석도 있다. 어쨌든 수학상은 없지만 노벨상과 동급의 권위를 가진 필즈상벨상이 존재한다.

노벨 경제학상의 경우 1968년, 즉 나중에 따로 생긴 상이다. 노벨 경제학상은 노벨재단에서 수상하는 상이 아니므로 노벨 재단에서 상금을 주지는 않는다. 스웨덴 중앙은행 설립 300주년을 기념해 제정한 상이라고 하며, 상의 정식 명칭도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의 축약어를 노벨 경제학상이라고 하며, 논란의 여지가 좀 있는 편이다.[2]
아무튼 현재는 노벨상으로 분명하게 인정받고 있다. 그 이유는 웨덴 왕립 아카데미에서 경제학상 수상자를 선정하기 때문. 따라서 물리학상, 화학상을 선정하는 절차와 동일하게 진행되며, 수상식에 다른 분야의 수상자들과 함께 참석해 시상 받기 때문이다. 상금도 동일하다. 그리고 노벨상 제정 당시에는 경제학이 체계적인 분과 학문으로 발전하기 전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19세기 기준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시상 초기에는 지금처럼 권위있게 여겨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곧 세계적인 명성을 갖춘 상이 되었다. 상의 수준을 높여가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지금의 노벨상을 있게 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노벨상은 평화상과 문학상을 제외하면 특정한 나라 출신만 받을 수 있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사실 문학상이 그나마 낫고, 나머지는 과학 연구 시설, 자금 문제, 홍보 등 여러가지로 강대국 출신 인물들이 유리할 수 밖에 없다.

평화상이나 문학상은 지역 안배/배려를 하는 경향이 좀 있으나, 과학 분야는 그런거 없다. 때문에 과학 분야는 미국이 독보적으로 앞서가고 있고, 서유럽이나 일본 정도에서 국적별로 몇년에 한 두명 정도씩 수상자가 나오는 수준이다.

3. 수상 자격

국적은 일체 불문하고 가장 적합한 수상자를 선정한다.

한 상에 대해서 최대 3명에게 수상하고,[3] 생존자만이 수상할 수 있다.[4] 또한 수상자로 결정되고 나서 시상식까지 수상자가 사망한다고 해서 무효처리되진 않지만, 1년 이내에 상을 받지 않으면 수상을 거절한 걸로 간주한다고 한다. 그런데 2011년 노벨의학상 수상자 가운데 한 명인 랠프 스타인먼 박사가 수상자 발표 3일 전에 사망한 걸 노벨위원회가 알지 못하고 명단에 올리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었으나 수상자 목록은 그대로 유지시키기로 하였다. 이유는 수상자 명단에 올리고 내리고 하는 기준은 심사위원회가 수상자가 사망하였음을 인지한 것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즉, 심사가 끝나고 수상자가 결정된 이후 인지는 수상자 변동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판단.#

해마다 노벨상 시즌이 되면 누가 후보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지만 노벨상 후보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노벨상 최종후보자가 공개되려면 무조건 50년이 지나야지만 가능하다. 흔히 언론에서 누가 후보라 카더라 하는 떡밥은 영국의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의 배당률을 참고한 것. 래드브록스는 2006년 터키 소설가 르한 파무크의 수상을 맞춘 이력이 있다. 2011년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수상이 발표되기 직전 래드브록스에서 그의 배당률이 급격히 떨어져 수상자 정보가 유출됐다는 의혹도 있었으나, 의혹제기 직후 스웨덴 검찰이 수사에 나설 정도로 후보나 수상자 정보에 대해서는 철통보안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불편한 사례는 러일전쟁을 중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받은 시어도어 루스벨트.[5]

5. 해외 수상자

각 항목 참고.

인구당 수상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이름도 생소한 세인트 루시아. 그 다음은 룩셈부르크, 스위스 순이다.

유럽의 라이벌인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 경제-과학분야 노벨상에서 영국이 거의 3배로 앞서고 있다. 참고로 수학상인 필즈 상은 프랑스가 인구비가 아닌 절대 수로도 2위.

6. 국내 수상자


결론부터 말하면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사랑은 2000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前대통령 밖에 없다.

한국에서 매년 문학상 후보로 고은을 거론하지만 매번 언론에서 주도적으로 설레발만 칠 뿐이다. 한국어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느낌이 영어로 옮겨지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노벨문학상은 번역 작품이 수상한 예가 많다. 아니, 따지고 보면 번역되어서 여러 나라에서 읽힐 정도가 아니면 노벨문학상을 받을 리도 없다. 적어도 심사위원들이 읽어보긴 해야지 흔히 "한국말의 '시원하다', '' 과 같은 느낌을 다른 말로는 번역할 수 없다." 라든지, "영어로는 red지만 한국말로는 빨갛다, 뻘겋다, 붉다, 불그스름하다, 불그죽죽하다..." 같은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데 영어에도 색상을 표현하는 어휘는 엄청나게 많다. 몇몇 국어 선생들이 우리말 표현의 다양함을 치켜세우는데, 다른나라 말도 거의 비슷하므로 이는 어디까지나 자위용. 따지고 보면 '한 언어에서만 정의되는 단어'나 '다양한 의성어와 의태어' 등은 어느 언어에나 있는 것이며, 한국어만의 장점도 아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영문학만 수상하게 될 듯

다만 고은의 경우는 꼭 번역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한국어권(수상자 없음)/비주류 언어권/동양-한자 문화권 출신자인 점, 그리고 그동안 시인 수상자가 많지 않았던 점을 고려한 안배 차원에서 수상 가능성이 상당히 높게 쳐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11년에 시인에게 상이 돌아갔고, 2012년에는 중국의 소설가 이 수상하면서 향후 10년 안으로 다시 한자 문화권 작가에게 상이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기 때문에 수상 가능성은 상당히 불투명해졌다. 특히 고은의 나이가 2013년 기준 80세로 상당히 고령이기 때문에 수상 가능성이 상당히 희박해졌다.

그나마, 문학계는 그렇다 쳐도, 과학기술 쪽에서는 그야말로 안습. 수상은 커녕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경우조차 거의 없다. 안타까운 한국 과학계의 현실이라고 할까. 여기서 많이 언급된 사람은 그래핀 분야의 권위자인 김필립 교수. 실제로 2010년 노벨물리학상은 그래핀 연구에 업적을 남긴 두 사람이 수상하였는데, 김교수도 유력한 수상후보로 거론되었지만 수상에는 실패했으며, 상을 받은 업적에 노벨상을 다시 줄 가능성은 드물기 때문에 앞으로의 수상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2014년에는 기능성 메조나노다공성 탄소물질과 제올라이트 분야의 개척자인 유룡 교수가 노벨화학상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역시 수상에는 실패하였다. 다만, 이 분야는 아직 연구중이고, 이 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은 아직 없으니, 아직까지 기회는 있다. 당분간은 꾸준히 후보로 거론될 것으로 추정된다.

CT, MRI, PET 의 대가로 인정받는 조장희 교수도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다. 양전자 단층촬영기(PET)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업적이 있다.


당장 옆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19명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거기에 문학상, 평화상을 더하면 무려 22명이나 된다. 아무리 일본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선진국이자 강대국이라지만 옆나라인 한국 입장에서는 비교되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6] 그렇게 학생들을 밤낮으로 혹사시켜 놓고도 노벨상 수상자 한 명도 못 만들어 내는 대한민국의 교육의 현실

한국계 출신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게 거의 확실시 되었던 물리학자는 핵물리학의 재규격화와 이지 이론등을 연구한 벤자민. W. 리, 한국이름으로는 이휘소라고 하는 사람인데 미국국적을 취득한 이후 노벨상 후보로 강력하게 노미네이트 되던 도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하고 말았다. 그와 같은 연구를 함께 진행한 스티븐 와인버그던 그래쇼, 라드뤼스 엇호프트 같은 인물이 훗날 해당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보았을 때 리 박사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물리학 발전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었을 것 뿐만 아니라 비록 한국 국적은 아니더라도 한국인으로서 노벨상을 수상했을 것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운동을 벌이는 정치인이 등장해서 비웃음을 사고 있다.

7. 노벨상을 2회 이상 수상한 괴물사람들

8.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사람들

  • 장폴 사르트르 - 1964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함.
  • 득토 - 북베트남 외교부장. 베트남 전쟁 종전에 기여한 공로로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1973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공동 선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함.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1950년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러시아 혁명을 비판한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하여 소련 정부와 작가 동맹으로부터 압력을 받게 되면서 수상을 거부함.

9. 예산

아무리 노벨이 많은 돈을 남겼다지만, 그 예산이 영원할 수는 없는법. 다행히도 노벨상 위원회는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여 지속적으로 상금을 줄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노벨상 위원회의 투자도 경기 불황을 비켜갈 수 없는지, 1949년에 인당 지급하는 상금을 한번 줄였었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상금을 높여서 인당 140만불까지 지급했지만 2012년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다시 인당 110만불로 줄였다고 한다. [9]

10.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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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세기 말에는 엄청난 돈이었다. 2000년대 초반,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당시, 국내 방송에서 현재 값어치를 원화로 추정했더니 약 2조 215억 원으로 추정했다.
  • [2] 한 때 노벨 공학상을 만들자는 얘기가 있었으나, 무산된적이 있다. 아마 공돌이 들은 안될거야...
  • [3] 한번은 그 업적으로 4명이 수상자로 나오는 바람에 1명은 수상자에서 제외되었는데, 이 때 3명이 상금을 나눠서 그 1명에게 주었었다고 한다.
  • [4] 이걸 못 받고 사망한 대표적인 사례는 주기율표를 만드는 데 큰 공로를 한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갈리폴리 전투에서 사망한 헨리 귄 제프리스 모즐리. 예외로는 1961년 콩고 내전을 중재하러 가던 도중에 북로디지아(현재 잠비아)에서 비행기 사고로 죽고, 같은 해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제2대 UN 사무총장 다그 함마르셸드가 있다.
  • [5] 잘 알다시피 러일전쟁에 뒤따른 포츠머스 조약에 의해 을사조약의 조건이 사실상 완비되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그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니 얽힐 건 없지만 이것도 한국인 입장에서는...
  • [6] 다만 일본이 아시아 유일의 선진강대국이라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중국은 강대국이지만 선진국이 아니다. 한국은 애매하게나마 선진국이긴 해도 강대국에는 못 미친다. 반면 일본은 G7 멤버로 선진국인 동시에 강대국이다. 이런 일본의 국력을 생각할 때, 노벨상 수상자가 없거나 적은 편이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거다.
  • [7] 반핵운동 때문에 당시 매카시즘 광풍이 불고 있던 미국정부에 출국금지조치를 받는 바람에 DNA의 X선 사진을 보지 못했고 DNA의 잘못된 구조를 내놓는 바람에 왓슨-크릭에게 생리의학상을 빼앗겼(?)다. 최상의 시나리오의 경우 3회 수상까지 가능했을지도...
  • [8] "여자의 정신 구조로는 과학을 할 수가 없다!"는 당시 남자들의 편견을 개박살내고 사상 최초로 2번이나 노벨상을 받았다. 남편 피에르 퀴리 역시 1903년에 그녀와 공동으로 물리학상을 받았고, 첫째 딸과 사위는 1935년에 화학상을 받았으며, 둘째 사위는 1965년에 유니세프를 대표하여 평화상을 받았다. 둘째 딸인 이브는 이에 대해 "저는 우리 집안의 수치입니다."라는 농담을 하곤 했는데, 이는 아버지, 어머니, 언니, 형부, 그리고 그녀의 남편까지도 노벨상을 탔는데 자신만 못 탔다는 이유라고. 하지만 이브도 베스트셀러 작가에, 여러 상과 훈장을 받았다. 그야말로 가족들 모두가 능력자
  • [9] http://latimesblogs.latimes.com/world_now/2012/06/budget-troubles-force-nobel-prizes-to-be-cut-back-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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