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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 갤러거


이름노엘 토머스 데이비드 갤러거(Noel Thomas David Gallagher)[1]
가족관계페기(어머니) 토머스(아버지) 폴(큰형) 리암(동생)
새라(아내) 아나이스(딸) 도노반(아들) 소니(아들)
성별남자
신장173cm 추정[2]
출생일1967년 5월 29일
직업맨체스터 시티 서포터

지금은 해체된 영국의 로큰롤 밴드 오아시스의 메인 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 이자 맨시티 서포터.오아시스 해체 후,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를 결성하고 활발히 활동중이다.

Contents

1. 음악
1.1. 표절
1.2. 솔로
1.2.1. 솔로 데뷔 관련
1.2.2. 1집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
1.2.3. 2집 Chasing Yesterday
1.2.4. 솔로 내한
2. 축구 사랑
3. 국내의 인식
4. 그 외
5. Discography
6. 관련항목

1. 음악

"노엘 갤러거는 그의 세대에서 가장 뛰어난 작곡가이다." 조지 마틴 경(卿)

오아시스의 거의 모든 히트곡은 그가 작곡했다. 그의 창작력이 절정을 치달았던 90년대 당시엔 정규 앨범뿐만이 아니라 싱글의 B-side 곡들까지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당시 노엘은 "우리 B-side 곡들은 왠만한 밴드들의 싱글보다 훌륭하다. 그들의 가장 훌륭한 곡들을 전부 다 합해도 우리 B-side 수준도 안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다. 밴드의 프로듀서였던 오웬 모리스의 발언에 의하면, 그 당시 대중들은 오아시스의 B-side곡들을 듣기 위해서 싱글을 구매했다고 밝혔다. 결국 애초에 미국 시장을 겨냥해 발매될 예정이었던 B-Side 모음집인 The Masterplan이 전세계에 발매되는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 크리에이션 레코드 사장 앨런 맥기는 "이 노래를 들어봐. 이게 B-side라고. 노엘 갤러거는 천재임에 틀림없어."라며 감동했다고. 다만 싱글의 B-side곡들이 모든 객층에 훌륭한 평가를 받았던 건 90년대까지였으며, 2000년대 이후론 노엘이 더이상 많은 노래를 쓰지 못함과 동시에, 시장의 추세에 맞추어 싱글의 B-side 곡 수를 줄이게 되면서 예전과 같은 퀄리티를 유지하지는 못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맨체스터에서 노동자로 살던 시절엔 항상 돈이 없었지만 일어나면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대되고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너바나의 노래를 비난하는게 아니다.) 너바나의 'I hate myself and I want to die' 같은 부정적인 노래를 쓰기보다는 긍정적인 곡을 쓰고 싶다고 했다.[3] 그래서 나오게 된 곡이 오아시스의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인 Live Forever였다.

'Supersonic', 'Shakermaker', 'Live Forever'를 연이어 발매하며 주가를 높인 그들은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로 스타덤에 오른 이후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로 쐐기를 밖으며 단숨에 당대 최고의 밴드로 올라선다. 하지만 이후 발매된 세번째 앨범 Be Here Now는 여전히 큰 세일즈와는 별개로 각 계층에서 고르게 처참한 평가를 받으며 상승세를 잃기도 한다. 이후 그는 밴드에 찾아온 여러 대격변, 시대의 변화, 한 번의 이혼 그리고 마약 후유증 등의 영향으로 작곡에 대한 의욕을 잃었으며 밴드는 점점 정상에서 내려온다. 브릿팝의 광풍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2000년대에 들어서자 그와 밴드는 전체적으로 차분해지고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노엘은 훗날 인터뷰에서 '사람이 언제까지나 Some might say같은 밝은 노래를 쓰는 데는 한계가 있는 거다."라는 발언을 한다. 밴드가 침착해짐에 따라 노엘은 다양한 방식의 작곡 성향을 드러냈다.

"지금이라도 Little By Little이나, Champagne Supernova 같은 곡들은 집에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앞으로도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난 이제 그런 싱얼롱 조의 곡들은 질렸다고. Lyla나 Don't look back in anger 같은 곡을 도대체 몇백곡이나 써줘야 직성이 풀리나? 나도 이쯤에서 기분 전환이 필요했어. 이번에 그런 전환점에 서 있던 나를 앞으로 나아 갈 수 있게 해준 것이 데이브[4]야. 내가 새로운 타입의 곡을 써서 들려줄 때마다 '이거 좋군!, 좀 더 이런 자신의 숨겨진 면을 보여 달라고.'라고 해서 나도 이후론 지금까지의 오아시스의 스타일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어. 좀 더 자신의 표현 영역을 넓히고 싶었고 만약 우리가 어떤 타입의 곡을 낸다고 해도 위화감 없이 "오아시스의 클래식이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앞으로의 이상이기도 해." (2008년 11월 rockin'on : oasis)

데뷔 때부터 꾸준히 '노엘 표 발라드'라고 할 수 있는 기타 발라드 곡들을 써왔으며, 목소리도 보다는 발라드 곡에 더 어울리는 편이다. 리암이 날카롭고 락킹한 목소리라면 노엘은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다소 음울한 목소리이며, 음역대도 동생에 비해 폭이 넓은 편.

90년대에 한창 유행하였던 MTV Unplugged에서 리암을 대신하여 보컬까지 소화해냈고 (리암이 어쿠스틱 공연을 싫어해서 공연 직전에 노엘이 부르기로 결정되었다.), 특히 최고의 전성기였던 96년도 공연 등에선 리암의 컨디션 난조와 공연 불참가 등등으로 참여하지 않을 땐 전부 노엘이 불렀기 때문에 오히려 oasis 팬들은 이러한 노엘이 보컬을 담당한 부틀렉까지 찾아서 구매할 정도로 노엘은 열성적인 팬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노엘은 다양한 악기를 다룰 줄 안다. 기타, 베이스, 드럼 등 여러 악기를 다룰 수 있다. 인스파이럴 카펫츠의 로디 시절엔 스탭 명단에 드럼 테크니션으로도 명목상 기록되어 있었다. 그래서 7집 Dig Out Your Soul에서는 본인이 드럼을 친 곡도 꽤 있고(Bag It Up, Waiting For The Rapture, Soldier On) 농담조로 "내가 체력만 되면 이생키들 다 내쫓고 나 혼자 밴드할텐데."라고 말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외 X-Files: Fight The Future의 OST(Teotihuacan)와 영화 Goal!의 OST(Who Put The Weight Of The World On My Shoulders) 등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1.1. 표절


노엘은 무수히 많은 곡을 써냄과 동시에 무수히 많은 표절 시비를 당하기도 한다. 이미 오아시스 초창기 시절부터 표절과 관련된 문제가 수없이 일어났던 통에 락 커뮤니티 등지에선 브릿팝의 제왕이자 동시에 표절의 제왕으로 까인다... 노엘의 노래들은 특히나 표절시비를 많이 받는다.


오아시스와 노엘의 솔로 프로젝트의 표절 의혹 곡들 모음.오마주나 트리뷰트의 곡들,그렇게도 봐줄 수 없는 빼도박도 못할 표절곡, 단순히 표절 의혹만 제기된 곡,원곡과의 유사성을 찾을 수 없는 곡들이 모두 섞여 있다. 대표적인 표절곡들로는, 당시 코카콜라 광고 삽입곡이었던 'I'd Like to Teach the World to Sing'을 표절한 Shakermaker[5]스티비 원더, 헨리 코스비, 실비아 모이의 'Uptight'를 표절한 'Step Out', 닐 이네스의 'How sweet to be an idiot'을 표절한 'Whatever', 조지 해리슨의 'My Sweet Lord'에서 기타 리프를 훔쳐온 'Supersonic', 역시 조지 해리슨의 명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 따온 She's Electric[6], 티렉스의 'Get It On'의 리프를 가져와 만든 'Cigarettes and Alcohol', 의 'Freedom'에 영향을 받은 'Fade Away'등 이 밖에도 많은 곡들이 있다. 또한 노엘의 솔로 앨범들에서 역시 여러 노래들과의 유사성이 드러나기도.

노엘은 오마쥬에 대해서 매우 관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그들은 표절 시비에 휘말릴 때마다 "응 맞아. 이 노래는 여기서 가져왔고, 이 노래는 저기서 가져왔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7] 또한 노엘은 '누군가 우리 곡을 베껴도 아무 상관 없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매우 절묘한 평가로 배철수씨의 "기라성같은 선배들의 멜로디에 강한 스파이크로 되받아치는 듯한"을 빌릴 수 있다.

1.2. 솔로

1.2.1. 솔로 데뷔 관련

오아시스 시절은 오아시스 참조. 같은 오아시스의 멤버이자 동생인 리암과의 충돌 끝에 결국 2009년 8월 28일, 노엘은 밴드의 공식 웹사이트에 오아시스를 탈퇴한다는 글을 올린다.

"약간의 슬픔과 굉장한 안도감과 함께 여러분께 내가 오늘 밤 오아시스를 그만둔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쓰고싶은대로 써갈기겠지만, 난 간단하게 '더 이상 리암과 함께 일하지 못하겠다'라고 하고 싶습니다. 파리, 콘스탄츠와 밀란에 있을 예정이었던 공연의 표를 구입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과를 표합니다."

이 일 이후로 겜을 제외한 오아시스 시절의 다른 멤버들과는 연락을 잘 하지 않는 듯 하다. 노엘은 오아시스 시절부터 다른 멤버에 비해 겜을 신뢰하는 듯. 해체 후 자선공연에 겜과 함께 공연도 하고, 문자도 했었다[8]고 한다. 해체 후에는 인터뷰에서 "비디아이에 겜이 있는 게 엄청나게 부럽다"라고 했다.

2011년 7월 6일, 솔로 활동 발표 기자회견을 연다. 이어지는 내용은 이날 배포된 보도자료 및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내용과 현재까지 인터뷰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을 취합해서 작성한 것임을 밝힌다.

2011년 7월 5일 기자회견의 구체적인 내용이 노엘의 공식 트위터와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올라왔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리암이 없는 게 잘된 일이냐고? 아마도 아닌 거 같다. 난 스스로를 프론트맨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프론트맨 역할을 한다는 건 X나 성가신 일일 테니까."
    "Am I better off without Liam? Probably not. I've never seen myself as a frontman & I can see it being a right pain in the arse."

  • 당장 돈 버는데 목적을 두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상업적 성공은 괴상하고 그건 네가 X같다는걸 의미하니까." (상업적 성공을 거둔 요즘 곡들을 비꼬는 말로 생각된다.)
    Not chasing money now because: "Commercial Success is weird because it normally implies you are shit!"
  • 노엘이 오아시스의 마지막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하며 "정말 후회가 된다. 겨우 공연 두 개밖에 안 남았었으니까."
    Noel giving a blow by blow account of the end of oasis. "I regret it really, cos there was only two gigs left"

  • "내가 오아시스 노래를 몇 개라도 부르지 않는다면 난 공연장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사람들이 날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내 노래들이고 나에겐 마약과 같다.
    "I wouldn't be let out of the venue if I didn't play some Oasis songs. They are my songs, they are like drugs to me"

  • 비디 아이에 대해 : 비디 아이에 있는 내 친구들을 생각해서,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어... It's...alright.
    Noel's opinion of Beady Eye: "out of respect for the friends I've still got in the band, I'd rather not say...It's...alright."

  • 솔로와 오아시스의 차이점에 대하여: "티백 상자가 더 오래 가겠지..."[9]
    on the differences between solo and Oasis: "the boxes of teabags last longer..."

  • 흥미롭게도 노엘 갤러거는 오아시스의 종말은 리암이 공연에서 프리티 그린을 홍보하려고 했을 때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Alistair Foster의 트위터에서.

위의 발언과 더불어 노엘은 오아시스가 2009년 첼름스퍼드에서 열린 V Festival의 헤드라인 자리를 취소한 이유가 리암의 숙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 때문에 리암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당하게 된다. 그러나 노엘이 팬들과의 채팅에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10]한 이후로 소송은 취하된 상황.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이쪽으로.

이 날 노엘은 비디 아이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의 앨범을 들어본 적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곡들은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놈들은 몇 년 전에는 오아시스 앨범을 위해 돌아다니곤 했으니까. 리뷰 몇 개를 읽어보니 네놈들(평론가나 기자들)이 오아시스 앨범에 줬던 것들보다 훨씬 낫더군. 그게 얼마나 사람을 빡치게 하는 건지 당신들은 모르겠지."

앞으로 오아시스 곡도 7~8곡 정도 계속 부를 생각이라고 한다. 물론 Rock'N'Roll Star 같은, 리암이 부른 로큰롤한 곡들은 부를 수 없겠지만, 본인이 보컬을 맡았던 곡이나 어쿠스틱 셋 위주로 간다고.

1.2.2. 1집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


솔로 데뷔앨범 타이틀은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이며, 2011년 10월 17일 발매되었다. 오아시스 7집 시절 같이 프로듀싱을 진행했던 프로듀서 데이브 사디가 이 앨범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The High Flying Birds는 10월에 있을 예정인 공연 투어를 같이 진행할 노엘의 백 밴드 이름이다. 본인은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고 있으나 이름때문에 많이 까이고 있다. 주로 촌스럽다고 까이는듯 다만 50년대 스키플 밴드들은 이런 식의 네이밍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비틀즈의 전신인 쿼리맨도 정확히는 john lennon's Quarry Men이였다. 노엘이 이렇게 밴드 이름을 지은 이유는, 자신의 이름으로만 나오는 건 뭔가 쇼비즈니스에 적합하지 않았다고 느꼈고 그래서 Peter Green's Fleetwood Mac처럼 자기도 이름 뒤에 뭔가를 붙여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60년대 싸이키델릭 밴드인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앨범을 듣던 중 'High Flying Bird'라는 곡을 발견하고 이 제목의 어감이 마음에 들어서 자신의 이름앞에 붙였던 것이다.


구성 멤버는 노엘 갤러거(기타, 보컬), 오아시스 투어에서 라이브 세션으로 인연을 맺었던 마이키 로(Mikey Rowe, 키보드), 밴드 Zutons의 베이시스트였던 러셀 프리처드(Russell Pritchard, 베이스), 영국의 90년대 팝밴드 The Lemon Trees 출신의 제러미 스테이시(Jeremy Stacey, 드럼) 그리고 팀 스미스(Tim Smith, 기타)이다. 다만 하이 플라잉 버즈의 밴드 구성은 유동적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The Amorphous Androgynous와의 두 번째 콜라보레이션 앨범이 2012년에 발매될 예정이었으나 결국 무산되었다. 참고로 The Amorphous Androgynous는 오아시스 7집 시절 Falling Down 싱글에서 Falling Down (A Monstrous Psychedelic Bubble Mix)를 통해 이미 한 차례 작업을 같이 했던 적이 있는 댄스 듀오이다. 예스와 버글스의 만남에 비견되기도...

당시 Q 매거진에서 인터뷰한 구체적인 솔로앨범 관련 주요 내용들 중, 2012년 여름 즈음 발매 예정이었던 The Amorphous Androgynous와의 콜라보레이션 앨범 이야기가 나왔는데 매거진에 실린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참고로 이 두번째 앨범의 이름은 Space Bound Ball Of Fury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 "다른 하나 같은 경우엔, 이건 존나 멀리 간 거라고, 친구. (프로듀서인) The Amorphous Androgynous가 마지막 오아시스 녹음을 가지고 믹스 작업을 했고, 용케 곡 하나를 23분 짜리로 늘여놓았지. 그 앨범은 총 18개 트랙인데, 어떤 부분은 보드빌 공연[11] 같을 것이고, 어떤 부분은 사실상 우주 느낌의 재즈에 가깝고, 어떤 건 크라우트 락[12]인데다, 소울 음악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건 펑크고... 근데 이게 모두 첫번째 곡에 다 들어가 있다. 이건 정말이지 내가 해봤던 것들 중에, 가장 멀리 나가본 것이다."

2011년 7월 19일 공식적으로 앨범의 첫 번째 싱글 컷은 'The Death Of You And Me'임을 밝혔으며, 같은 달 25일 인터넷을 통해 공식 뮤직비디오를 공개하였다. 싱글 발매일은 2011년 8월 21일. 공개 이후 이 곡은 UK Radio Airplay 차트 36위를 기록하였다. 9월 18일 UK 싱글 차트 중 15위.

2011. 09. 5. What A Life!가 나왔다. 9월 18일 기준 UK Top 40 싱글 차트 중 20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The Death Of You And Me에 이어서 If I Had A Gun, AKA...What A Life!의 뮤직비디오가 각각 공개되었는데 이 뮤직비디오들은 3부작 구성으로 다시 'Ride The Tiger'라는 하나의 뮤직비디오로 다시 연결된다.[13] 내용은 요약하자면 현실을 탈출해 새로운 삶을 찾으려는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 3부작 공개 이후 남은 것은 도촬중인 노인네밖에 없었다


발매 이후 이 앨범은 발매 첫 주 UK 앨범 차트 1위, 아일랜드 차트 1위, 일본 차트 5위, 호주 차트 16위, 네덜란드 차트 1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발매 첫주만에 17만장을 판매했다. 그리고 곧이어 Mylo Xyloto가 차트에 입성해 사이좋게 1위를 나눠먹었다. 참고로 발매 첫주 판매량 1위는 27주 연속 No.1의 자리를 지킨 아델의 '21'.

노엘의 솔로 활동은 노엘이 더이상 기존의 로큰롤 스타일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는 1집 앨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 앨범에서 노엘은 그야말로 댄스, 사이키델릭 등 다양한 장르에 다 손을 대서 자신의 작곡 능력을 실험했고 또 그 실험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The Death Of You and Me에서는 금관악기의 사용, AKA...What a Life!의 댄서블함은 성공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세일즈에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팬들의 호응도 좋았다. 다만 평단의 평가는 그다지 좋진 못했다.

노엘 갤러거의 1집은 2012년 2월까지 600,000장 이상 판매되었다. 참고로 세간의 비디 아이와의 경쟁을 부추기는 시선에 대해서, 자신은 밴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 반면 비디 아이는 훌륭한 밴드이므로 솔로인 자신과 밴드인 비디 아이를 비교하는 것은 서로에게 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 Everyone's On The Run
  • Dream on
  • If I Had A Gun
  • The Death of You And Me
  • (I\ wanna Live In A Dream In MY) Record Machine
  • AKA...What A Life!
  • Soldier Boys And Jesus Freaks
  • AKA...Broken Arrow
  • (Stranded On) The Wrong Beach
  • Stop The Clocks
  • A Simple Game OF Genius
  • It's Never Too Late To Be What U Might Have Been

1.2.3. 2집 Chasing Yesterday


10월 14일 드디어 2 집 Chasing Yesterday 가 공개 되었다! 음반 발매는 2015년 3 월 2 일로 확정. 수록곡은 총 10곡으로 보너스 트랙 4 곡이 추가되어있다. 싱글 In the Heat of the Moment(http://www.youtube.com/watch?v=4thCOmIMuVM&feature=youtu.be) 로 시작, Ballad of the Mighty I 라는 곡과 함께 순차적으로 공개 된다. 반응은 대체로 "노엘이 돌아왔다"와 'Noel Gallagher is god' 등 좋은 평가가 주를 이룬다. 다만 수록 곡의 뮤직비디오에 대한 반응이 좋지 못하다. 유튜브 댓글 중에서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 중 다수는 노래는 좋은데 뮤직 비디오가 끔찍할 정도로 별로라는 내용이다.

In the Heat of the Moment의 뮤직비디오가 2014년 10월 24일 공개되었다. 또한 2014년 11월 17일에 7인치 바이닐 싱글로 발매됐다.

Ballad of the mighty I가 두번째 싱글로 발매되었다.

2015년 3월 초 발매예정이던 'Chasing Yesterday'가 2월달에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미 앨범은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앨범은 발매도 안됐는데 전세계에서 팬들의 커버곡들이 올라오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마침내 발매된 두번째 앨범인 'Chasing Yesterday'가 UK 차트 1위로 데뷔하였다. 이로써 오아시스 시절의 정규 앨범 7장을 포함한 본인의 정규 앨범 2장까지 총 9장의 앨범이 연속으로 정규 앨범 차트 1위를 달성하는 기록을 이어가게 되었다. 다만 오아시스 시절부터 있었던 '1위 자리에서 금방 내려오는 전통' 또한 이어질 지 지켜봐야 할듯.

두번째 앨범은 오아시스 시절부터 자신의 솔로 데뷔 앨범까지 함께 일해왔던 프로듀서 데이브 사르디가 참여하지 않았으며 노엘이 셀프 프로듀싱하였다. 데뷔 앨범에선 오아시스의 분위기가 아직 가라앉지 않았었지만 두번째 앨범에선 오아시스의 분위기는 이제 거의 느낄 수 없으며, 좀 더 멜랑콜리하고 미디엄 템포의 싸이키델릭한 팝 앨범이 되었다. 대체적으로 객관적인 평가는 데뷔 앨범과 비슷한 편이며, 전반적으로는 무난한 점수를 얻었다. 선 공개된 싱글들의 성적은 대체적으로 부진하지만 앨범은 무난한 세일즈를 기록했다.

  • Riverman
  • In The Heat Of The Moment
  • The Girl With X-Ray Eyes
  • Lock All The Doors
  • The Dying Of The Light
  • The Right Stuff
  • While The Song Remains The Same
  • The Mexican
  • You Know We Can't Go Back
  • Ballad Of The Mighty I

  • Do The Damage
  • Revolution Song
  • Freaky Teeth
  • In The Heat Of The Moment (Toy Drum Remix)



1.2.4. 솔로 내한

2012년 5월 28일 솔로 데뷔 이후 첫 내한공연이 확정되었다. 장소는 아이러니 하게도 작년에 비디아이가 공연을 했던 AX-KOREA. 그리고 티켓팅 시작 2분만에 매진. 희망은 취소표밖에 없는 상황에서 현상황은 새로고침 전쟁이 벌어졌었다... 그리고 이런 뜨거운 반응덕인지 5월 29일의 추가공연 결정. 프로필에서 보다시피 그날은 노엘의 생일이다! 솔로 앨범 발매 후 첫 생일날의 공연이 한국이라니 팬들로서도 굉장히 의미가 각별한 날이 되었고, 노엘 또한 자신의 생일에 콘서트를 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생일날 콘서트 도중 팬들이 떼창으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고, 노엘에게 케익도 전달이 되었다. 유투브를 찾아보면 동영상이 있다.

2012년 5월 25일 뮤직 스테이션에 출연, 후지 록 페스티벌에도 참여한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같이 출연했던 AKB48을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여자애들이라고 깠다 이후 후지 록 페스티벌 둘째날 헤드라이너로 공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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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3일/4일 내한공연이 확정되었다. 장소는 쉐라톤그랜드워커힐 시어터이다.
오프닝 밴드는 BYE BYE BADMAN이 맡았다

공연 앵콜을 부르기 전 팬들이 Live Forever를 불러달라고 떼창을 하며 협박(...)했지만 씨알도 안 먹히고 부를 노래 그냥 불렀다고...

2015년 7월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내한공연을 할 예정이다.1년에 두 번 온다!


2. 축구 사랑

"축구[14]는 내 전부지. 내 전부야. 어쩌면 음악보다 축구를 더 사랑할지도 몰라"

자식 사랑인지 축구 사랑인지 모르겠지만 본격 인터뷰


동생 리암과 함께 맨체스터 시티의 골수팬이자 지독한 축덕. 오아시스에 있을 때도, 나온 후에도, 틈만나면 스포츠 방송 Talksports에 나와 그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며, 심지어 FA 컵 조추첨을 하기도 한다. 덕분에 팬카페보단 축구 커뮤니티인 알싸에서 더 자주 보인다. 심지어 해외 축구 기사에도 간간히 올라온다

노엘의 말에 따르면 음악적 재능은 원래 주어진 것이지만, 축구는 자신이 무엇보다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밴드를 하지 않았으면 축구 암표 판매원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축구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영국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겐 흔한 일이다. 영국 노동계급 젊은이들에게 축구는 거의 종교에 가까우며, 어릴때 같이 나고 자란 동네친구들은 같은 동네 팀을 좋아한다. 말 그대로 동네 문화의 한 축이 축구인 셈.

노엘은 그야말로 맨체스터 시티를 사랑한다. 팀이 3부리그를 왔다갔다하던 시절에도 노엘은 바쁜 시간을 쪼개서 꼬박꼬박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를 찾았다고 한다. 모두가 맨유를 좋아해서 그에 대한 반골의식으로 맨시티팬이 되었다는 소문도 있고[15], 사촌들이 모두 맨유를 좋아해서 그에 대한 반항으로 아버지와 함께 맨시티의 팬이 되었다는 소문도 있지만 정확한 사실은 알려진 바가 없다.[16] 공연을 할 때에도 항상 맨시티의 저지를 걸어두며 심지어 유로2012에 잉글랜드 경기를 보러 갔을 때에도 맨체스터 시티를 나타내는 걸개를 걸고 경기를 관람했다.

사실 노엘이나 리암의 축구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는데, 자신들이 어린 시절 자라왔던 맨체스터 버니지에서 유일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것이 라디오에서 축구 경기 중계를 듣는 것뿐이었다 한다. 노엘은 "맨체스터에서 자란다면 가질 수 있는 꿈은 두가지 밖에 없다. 축구 선수가 되거나 락스타가 되거나"라고 말하였으며, 자신의 집에서 경기가 있는 날이면 맨체스터 시티 경기장의 불빛이 보였다고 한다.


당연히 지역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무척 싫어한다. "유나이티드 팬들이 기름을 살 때마다 우리 수중으로 돈이 들어온다니 너무나 기쁘다." 라며 맨유 팬들을 조롱하였다. 또 맨유에서 수비수로 활약하다가 은퇴했던 게리 네빌의 수염을 모두 뽑아버리겠다며 으르렁거린 적도 있다. 형제 모두가 게리 네빌을 특히 싫어한다 하지만 2015년 초 게리 네빌과 대면하며 둘이서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KJ39tHPTonM)

80년대 노동자로 살아갈때는 맨시티의 훌리건짓[17]을 하기도 했으며 때문에 국내 오아시스 팬들은 맨체스터 시티에 당연히 높은 호감을 보인다.

축구로는 관람하는 것만 지독히 좋아할 뿐, 잘 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노엘이 축구를 하면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뻗어 버린다고. 집에서 축구를 보면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한다고 한다. 안절부절하면서, 왔다갔다하며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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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웨인 루니와 벌어진 기타 해프닝은 유명하다. 오아시스의 팬인 루니에게 보낼 선물을 위해 루니의 부인 콜린이 노엘에게 깁슨 레스폴을 보내 그의 사인을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노엘은 기타를 맨시티의 상징인 파란색으로 칠하고 그 위에 맨시티의 응원가인 Blue Moon 가사를 잔뜩 적어 돌려보낸다. 이에 루니는 크게 재미있어하며 그 해 맨시티와의 경기에서 시원하게 100호 골을 넣은 다음 세리머니 사진을 찍어 노엘에게 보답했다고 한다.

노엘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좋아한다. 월드컵 7회 연속 진출, 2002년 4강까지 역시 축덕답게 알고 있고, 판타스틱하고, 헤어 스타일도 멋있는 팀이라고 칭찬한다. 2009년 7월 내한 인터뷰 심지어 남한과 북한이 경기하는 일정까지 알고 있다. 일정이 맞았으면 (공연 다음날이 축구 경기인데, 아침에 출국) 보러 갔을 것이고, 당연하지만 남한이 이기길 바란다고. 2009년 4월 내한 인터뷰

축구 선수들과도 친분이 깊은데 리버풀 FC의 캐러거와 맨체스터 시티 선수였던 조이 바튼, 그리고 유벤투스의 레전드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와도 매우 친분이 깊다고 한다.
예전에는 친구인 델 피에로에게 전화해 맨시티로 이적하라고 땡깡을 놓는다던지 온다면 주급을 자신이 내겠다고 한다던지...한 적이 있었다. 물론 술 먹고 술주정부린 거였지만, 델 피에로의 에이전트는 이 제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실제로 맨시티 행을 고민했었다고. 2006년에는 델 피에로의 초대로 2006 독일 월드컵 4강전과 결승전을 보러 가기도 했다. 4강전에서 이탈리아가 이기자 델 피에로는 노엘에게 결승 보러 올때 꼭 똑같은 옷 입고 와달라고 요청했고 노엘은 같은 옷을 입고 갔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우승했다.

모든 축구 선수들과 친분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노엘 갤러거는 첼시의 주장 존 테리를 상당히 안 좋아한다. 존 테리 항목을 참고하면 알겠지만, 존 테리는 사생활에서 문제가 좀 있는 사람인데 그런 면이 노엘에게는 무척 좋지 않게 비추어진 듯. 2009년 여름 존 테리와 맨체스터 시티가 접촉했다는 뉴스가 떴을 때도, 노엘은 존 테리의 영입을 반대하는 인터뷰를 했다. 그러다가 존 테리의 불륜 행각이 까발려졌을 때 노엘의 반응은... 게다가 존 테리가 불륜을 저지른 여자는 맨체스터 시티 소속의 웨인 브리지의 약혼녀였다. 평소에 존 테리를 싫어했던 노엘이 이 사건으로 노발대발한 건 당연했던 일. 대충 노엘 갤러거가 했던 인터뷰를 요약하자면 "존 테리 그 자식은 완전히 씨X놈이야. 내가 그 개X끼를 만나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겠어."

종종 알싸 같은 축구 커뮤니티에서도 인터뷰가 뜨는데, 노엘을 잘 모르는 네티즌들은 "도대체 노엘 갤러거가 누구길래 인터뷰를 하면 기사가 됨?"이라고 묻기도 한다. 사실 다른 밴드의 뮤지션들도 좋아하는 축구 클럽이 있긴 하지만, 노엘처럼 열정적으로 축구계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은 거의 없다. 이제는 아예 무려 '축구 전문가' 타이틀을 달고서 전현직 축구 스타들과 함께 축구 방송 패널로 출연한다. 이젠 그냥 뮤지션이 아니라 FA직원이나 축구 방송 패널이라고 불러야 할 지도

지독한 축덕이지만 생각만큼 잉글랜드 국대를 안 좋아한다. 물론 가끔 응원을 가고 우승을 바라기도 하지만, 생각만큼 간절하게 바라지는 않는다는 뜻. 우승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이다. 아무래도 잉글랜드 국대에는 맨체스터 시티 소속의 선수가 거의 없고 노엘이 싫어하는 맨유, 첼시, 리버풀 소속의 선수들이 다수 포진해있다 보니 마음놓고 응원하기 껄끄러운듯.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는 피식 웃으며 "4강만 가도 잘한거지"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잉글랜드의 축구 문화는 클럽 축구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축구 팬들 중에는 국대에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다. 또한 그는 아이리쉬 혈통이며 잉글랜드인의 피가 한방울 섞여있지 않다고 한다. 부인인 사라또한 스코틀랜드인이다. 모 다큐에서는 한 맨유팬이 "잉글국대의 2번의 월드컵 우승보다 맨유의 1번의 리그 우승이 더 중요하다." 라고 말한적도 있다. 그리고 잉글국대의 행보를 보라, 과연 응원할 맛이 나겠는가[18]

또한 2010년에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 영입에 대해서 인터뷰를 했는데 맨체스터 시티 사장인 개리 쿡이 자기랑 밥 먹으면서 영입할 선수들 목록을 냅킨에 써서 보여줬다고 한다 본격 사장이랑 같이 밥먹는 서포터

말년에는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하는데, 현재 구단주가 어마어마한 자본을 뿌리면서 클럽을 발전시키고 있는 바람에 그 꿈은 이루기 힘들게 되었다. 어쨌든 그것에 불만은 없는지 맨체스터 시티가 돈을 너무 많이 쓴다는 비난에 "X발. 우리는 그동안 거지였으니까 돈 좀 써도 돼."라고 반응하기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쓰자면 "윤리? 시장 원리? 귤까. 시발 너네들은 돈 물쓰듯 써놓고 우리가 쓰기 시작하니까 난리네. 전통? 우리가 30년동안 거지였다는 그 빌어먹을 전통?"이라고 반응했다.

2011년 4월 17일(한국 시각)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FA컵 4강전 맨체스터 더비에서 모습을 보였는데, 야야 투레의 선제골을 보자 매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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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_영국의_맨시티빠.jpg 시상식에 올라도 저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맨체스터 시티 공식홈페이지에는 친절하게도 동영상까지 올라와있다!

심지어 맨체스터 시티의 유니폼 모델로 나서기도 했다. 이쯤 되면 뮤지션으로 성공한 맨시티

인생의 의미란 프로그램에 나와서 가장 먼저 한 얘기가 축구 얘기였다. 이때 진행자가 "맨시티의 우승이 섹스나, 명성, 가족보다 좋은가요?"라고 묻자 물론이죠. 제 아내도 이해해줍니다라고 대답했다(...)

3. 국내의 인식

90년대 브릿팝 열풍에 힘입어 제2차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선두주자가 oasis였기에, 당시 PC통신 락음악 동호회에서 노엘은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는 당시 일본 음악 잡지의 인기 투표에서 노엘이 동생 리암을 압도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아시아에서의 인기는 노엘이 리암보다 많았으나, 같은 시기 영국 음악 잡지를 보면 표지 모델로 등장해도 리암이 센터이고 노엘이 살짝 밀렸다. 사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를 제외하면 언제나 세계적으로 오아시스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건 리암이었다. 다만 오아시스 후기로 갈수록 노엘의 입지가 점점 강해지면서 리암이 뒤로 밀리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래도 그때까지도 여전히 영국에선 오아시스하면 리암을 주로 먼저 떠올렸다.

거친 언행의 인터뷰와 별개로, 팬들에게 친절하고 사인도 잘 해주는 등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기도 한다. oasis 첫 내한 당시 Mnet 인터뷰에서 노엘이 먼저 시계를 풀어 테이블에 내려놓고 손으로 잡고 인터뷰에 응해서 기자가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사연이 있다. 녹음기에 시계로 인한 잡음이 들어갈까봐 기자를 배려해준 것. 비단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노엘의 인터뷰 준비는 언제나 훌륭하다고 하며, 언제나 인터뷰할 때는 핸드폰을 꺼놓고 상대방이 편하게 인터뷰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고 한다.

몇번의 한국의 투어 방문 후 노엘의 한국 팬들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2015년 최근 BBC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제일 잘하는 색소폰 연주자일거야! 한국에 가봤나? 말그대로 아시아의 아일랜드야. 거기서 공연하면 더블린공연같아. 한국 팬들은 미쳤어. 아주 정신이 나갔다고. 진짜로." [19]라고 한국에 대해 언급했다. 다른 국가에 비해 10대 팬층이 두터운 것이 요인으로 팬들의 열광이 작용한 듯 하다. 출처 : http://www.bbc.co.uk/programmes/p02j2r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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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노엘 횽의 근황'이란 제목으로 노엘이 촬영자에게 중지를 올리고 있는 사진이 유행한 적이 있다. 아는 사람 대부분은 건강해 보인다라는 평.

4. 그 외


2008년 2월 1일, 제이지가 2008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이전 페스티벌의 표가 2시간 만에 매진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총 137,500 석중 100,000석도 채우지 못했다. 비평가들은 이에 대해 락밴드와는 상반되는 힙합 가수를 내세운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 발언 이후 노엘은 집중 포화를 당했으며 자신의 발언을 번복하게 된다.

노엘은 전통적으로 기타 연주가 주를 이루는 페스티벌에서 제이지를 헤드라인으로 지정한 주최 측을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 "만약 부숴지지도 않았고 문제도 없다면 고치려 들지 마. 만약 네가 부숴버리기 시작한다면 사람들은 가지 않을 거야. 미안하지만 제이지라고? 어림도 없지. 난 글래스톤베리에서 힙합은 안 볼거야."
논란은 몇 달 사이 가수들, 기획자들, 팬들이 각각 찬반을 다투는 상황으로 번져갔다. 제이지는 이에 대해 이렇게 반응했다.
  • "우린 기타를 연주하지 않아, 노엘. 하지만 힙합은 다른 음악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 이 헤드라인 쇼는 당연한 진행 과정이야. 랩은 아직도 진화하고 있지. 플라티늄 앨범이 된 Bronx 와 런 디엠씨의 멤버 아프리카 밤바타의 디제잉에서부터 그래미상 랩부문에서 처음으로 수상한 DJ Jazzy Jeff & The Fresh Prince까지, 난 그저 다음 차례일 뿐이야. 우린 서로의 음악 장르를 존중해주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해."
제이지는 그의 2008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오프닝을 오아시스의 〈Wonderwall〉의 커버버전으로 막을 열었다. 노엘이 이 사건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말했다.
  •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건 내가 제이지는 글래스톤베리에서 공연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했을 때 겠지. 그건 진짜 말도 안되는 헛소리였다니까. 전엔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누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글래스톤베리가 티켓 매진 실패했는데 이게 만약 제이지 때문이라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더라구. 거기서부터 내가 Speakers' Corner(영국에 있는 자유발언대)의 주황색 발판 위에 서서 '들어봐, 형제 자매들. 이번년도 글래스톤베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라고 외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거지. 그러니까 말이야, 만약 내가 '맥도날드에 있는 치킨 샌드위치들은 말 그대로 틀려 먹었어'라고 한다 해서 그게 세상 모든 닭들이나 샌드위치를 욕하게 되는 건 아니란 소리야. 전에 도쿄에서 제이지를 만났는데 거기서 그의 공연을 본 적이 있어.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괜찮더라. 우린 모두 크리스 마틴을 친구로 두기도 한걸. 난 그저 힙합의 충격적인 표현을 싫어하는 남자일 뿐이야. 랩퍼나 힙합,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을 싫어하진 않아. 80년대 랩이 한창 영감을 주고 있을 때 맨체스터에서 열린 데프잼 투어에 갔던 적도 있어. 퍼블릭 에네미는 굉장했지. 근데 항상 지위나 재산에 대해서 만 얘기하고 있어서 나한텐 그다지 와닿지 않았어."
제이지가 이러한 노엘의 코멘트에 대해 질문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 "노엘이랑 말해본 지는 꽤 됐지만 그가 연락하려고 한단 소리를 들었어. 난 아무 유감 없고, 모든 게 다 괜찮아. 언제나 말해왔지만 난 그냥 좋은 음악 나쁜 음악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 내 초창기 인터뷰들을 보라구.난 언제나 사람들이 쉽게 파악하기 위해 음악에 규정짓는 선들과 분류 따위를 믿지 않는다고 말해 왔었지."
또한 앞으로 어떤 가수와 작업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아무나. 오아시스도 뭐. 상관없어."라고 대답하였다.

왼손잡이이다. 왼손잡이 항목에서 상당히 늦게 추가되었다. 기타를 오른손으로 치기 때문에 덜 알려져서 그런 듯 하다. 커트 코베인은 원래 오른손잡이지만 왼손 기타를 써서 왼손잡이임이 널리 알려 졌듯 기타 치는 손에 따라 어느 손잡이인지 알려지는 정도가 상당히 다른 것 때문에 그런 것. 본인 말로는 오른손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기타 치는 거라고 한다. 그리고 한쪽 팔에 관절이 두 개라고 한다


인터뷰에서 종종 케이크, 초코바 등등 달달한 군것질 거리 들을 언급 하다 보니 단 것 덕후 기믹이 붙기도. 또 건강과 미용을 위해 고기와 담배와 맥... 아니 한잔의 요크셔 티[20] 를 굉장히 좋아해 Love Music Love Food : The Rockstar Cookbook이라는 레시피북 겸 사진집 에서는 아예 요크셔 티와 연결지어서 나오기도. 나름의 밀크티 레시피도 가지고 있다. 아래 이미지는 책에서 나온 노엘식 요크셔 밀크티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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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자면,

1. 티백과 설탕을 채운다 (요크셔 티백)
2. 물을 컵 위쪽의 1인치까지만 채우고 적절한 시간 동안 태운다 본격 뮤지션 김대기
3. 차 색이 노란색 봉지에 든 캐러멜(...) 같은 색이여야 한다
4. 우유를 마지막에 넣는다
5. 마신다

참으로 간단하다.

인터뷰에서 초창기의 건방진 이미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당시에는 말로는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없었다고 하지만 여기서 "우리같이 아무도 아닌 무명들이 할수 있으면 너희들도 할수 있다"는 얘기를 전달하고자 싶었다고 밝혔다.

2011년에 작곡의 기술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가사 쓰는 일이 자신에게 악몽이라고 한 것이다가사 그거 막 쓰는 거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말할 게 그렇게 많이 없으니까.' 인터뷰어가 '하지만 당신은 엄청난 이야기꾼이잖아요!'라고 하자 그렇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에 대해 일일이 곡을 썼더라면 지금 당신은 나를 인터뷰하고 있지도 않을 거라며 플라시보의 브라이언 몰코 같은 꼴이 났을 거라고 말했다. 당신 앨범에 참여한 음악가들 상당수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냐는 말에 '쟈니 로튼은 결코 쟈니 로튼에 대해 노래하지 않았어. 그들은 우리들에 대해 이야기했지. 스페셜즈도, 더 잼도 우리들에 대해 노래했어.'라고 대꾸하며, 이어지는 비판에서 안 좋은 예시로 로비 윌리엄스를 들었다. 모든 게 얼마나 자신이 개 같은지에 대한 곡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어필을 하겠냐고(...)랩 음악도 모든 게 래퍼 자신의 고투, 어떻게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출세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라서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고. 노엘의 음악관에 대해서 알 수 있게 하는 대목.

2013년에 보이 밴드인 원 디렉션을 까댔다는 것이 밝혀졌다. 별 다른건 아니지만 특이사항 이라면 노엘에게 한 소리를 들은 원 디렉션은 "노엘 갤러거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아무렇지도 않다"(...)고 초연한 모습을 보였으며, 멤버의 말에 따르면 데이먼 알반도 노엘 갤러거와 함께 원 디렉션을 깠다고 한다(...)[21]

인터뷰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리암을 욕하며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적이 있다. red indian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가리키는 모욕적인 말로 흑인에게 니그로라고 말하는 것과 동급이라고 한다. (추가설명 필요)

2012 NME awards에서 "Godlike genius"라는 부문의 상을 받았다. 그야말로 노엘을 위한 상이라 할 수 있다.
수상소감(한국어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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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트로피.[22]


GQ 시상식에서 시상식에 참석한 대사 윌리엄 헤이그를 향해 "지금 세계에서 정리해야 될 일이 많은데 여기에 오고 참 잘 하는 일이다"라는 식으로 얘기해서 물의를 빚었다.

연기를 정말 못해서 팬들은 그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한다.
정작 본인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했던 최고의 연기라고 자랑했다

5. Discography

  • The Death of You and Me (Single; 2011. 8. 19)
  • AKA... What a Life! (Single; 2011. 9. 9)
  •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 (Album; 2011 . 10. 17)
  • If I Had a Gun... (Single; 2011. 12. 26)
  • Dream On (Single; 2012. 3. 11)
  • Songs from the Great White North... (EP; 2012. 4. 21)[23]
  • Everybody's on the Run (Single; 2012. 7. 29)
  • International Magic Live at The O2 (Video album 2012. 8. 15)
  • iTunes Festival: London 2012 (EP; 2012. 9. 21)
  • In The Heat Of The Moment (Single; 2015. 1. 19)
  • Chasing Yesterday (Album; 2015 .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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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갤러거(Gallagher)라는 성씨는 아일랜드계 성씨인 Ó Gallachóir(오 골리허)에서 유래한 성씨이다. 이 이름으로 검색해도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다.
  • [2] 그러나 실제로는 160대 후반정도. 본인도 인터뷰 때 마다 바꿔 말한다. 5'6", 5'8"
  • [3] '내가 그를 좋아하고 그런만큼, 난 씨발 그런게 싫었다고. 사람들이 헤로인에 취해와서, 씨발 자기는 자신이 싫고 죽고싶다고하는거, 우리는 싫다고. 존나 쓰레기거든. 그렇다고 내가 그거에 반발해서 쓴건 아니고, 그냥 그게 내 생각이였어'
  • [4] 프로듀서 데이브 사디Dave Sardy. 오아시스 7집 Dig Out Your Soul의 프로듀싱 및 믹싱을 담당했다.
  • [5] 코카콜라에서 소송이 걸리자 노엘은 공연에서 어쿠스틱 라이브를 하며 "우리 모두 같이 펩시를 마셔요"라고 한다.
  • [6] 나중에 지드래곤이 표절시비에 휘말렸던 그 곡이다. 웃기게도 표절시비가 난 부분은 노엘 갤러거가 조지해리슨에게서 베껴온 바로 그 소절. 표절을 표절했다
  • [7] Cigarettes and Alcohol이 표절 시비에 걸렸을 때 "그래도 우리 때문에 사람들이 티렉스를 알게 됐잖아?" 라고 말했다.
  • [8] 비디아이 내한공연으로 한국에 온 크리스와 겜을 W호텔 우바에서 만난 팬들이, 노엘과 문자를 하는 게 사실이냐고 해당 멤버들에게 묻자, 그들은 2년전에 한번 주고받은 문자가 마지막이었다고 답했다.
  • [9] 오아시스 투어 주문 사항에 보면 항상 요크셔 티백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영국인답게 투어 다닐 때 항상 차를 마시는데, 오아시스가 아니라 솔로로 다니면 그 티백 상자가 금방 떨어지지 않고 오래간다는 말로 생각된다.
  • [10] "If he gets offended by my opinions on such things then you know I apologize."
  • [11] 20세기 초에 크게 유행했던, 노래와 춤, 희극이 어우러진 짧은 뮤지컬극.
  • [12] 70년대에 독일에서 발생한 프로그레시브 록의 분파로 현재 테크노의 원조격되는 음악. 대표적 아티스트로 라프트베르그
  • [13] 공개순은 The Death of You and Me - If I Had a Gun... - AKA...What a Life! 순이지만 스토리 상으론 If I Had a Gun... - The Death of You and Me - AKA...What a Life!이다.
  • [14] 여기에서 축구는 맨체스터 시티를 의미한다고 해도 무방.
  • [15] 단 노엘이 태어났을 때는 맨시티의 전성기였고, 지금도 그렇지만 맨체스터에서 두 팀의 팬덤 크기는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에 굳이 이럴 이유는 없다.
  • [16] 그냥 외국에서는 거주지나 출생지에 맞춰서 지지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게 아마 들어맞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한국도 강남이나 서초에서는 FC 서울보다는 성남이 훨씬 가까워서 그리로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 [17] 이는 오아시스가 패션에 있어서는 주얼스(캐주얼족)로 분류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10대 후반~20대 초반 영국의 노동계급 젊은이들중에 의외로 많은 숫자가 훌리건에 가담해 있다. 골수 훌리건 조직인 펌(firm)의 구성원들도 대부분 노동계급 젊은이들이다.
  • [18] 그런데 이건 단순히 잉글랜드 만의 모습이 아니라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 축구리그가 활성화 된 나라의 팬들에게 보이는 경향인듯. 본 위키니트의 친구는 나폴리에서 온 이탈리아인 인데 만약 이탈리아 국대 vs 이탈리아 선수를 제외한 나폴리 팀 이 붙으면 누굴 응원하겠냐는 솔직히 유치한거 안다. 질문에 후자를 망설임 없이 말했다.
  • [19] "I cannot wait to meet the South Korean guy with a saxophone in hand, lord knows what he'll be dressed in like, but he will be the preeminent saxophonist in all of Korea. Koreans, they are considered the Irish of Asia. They are mental. Have you been to Korea? The gigs are like playing in Dublin. It is insane. Insane." 21:36초부터 나온다
  • [20] 요크셔 티는 홍차 중에서 가장 서민 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브랜드로 적은 양으로도 향이 진하게 우러나, 주로 스트레이트보단 밀크티로 많이 만들어 마시는 홍차라고. 그러나 노엘이 마시는 요크셔 '레드를 국내에서 구하려면 힘들다. 만약 마셔보고 싶다면 직구를 해서 마셔보자.
  • [21] 근데 리암은 싱반된 입장을 보였단다.역시 어제의 형제는 오늘의 적 해리 스타일스 더러 로큰롤 스타는 아니지만 멋진 놈이라고 했다고.
  • [22] 원래 NME어워드 트로피는 다 저렇게 생겼다. NME매거진에서 주최하는 행사로, 어워드 내내 술 퍼먹다가 헤롱헤롱 하면서 수상소감 하는 뮤지션들이 일품.
  • [23]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 싱글컷의 비사이드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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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3 22: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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