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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작전

last modified: 2014-11-30 23:52:50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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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의 왼쪽인물은 아돌프 히틀러, 오른쪽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인 에드바르트 베네시(Edvard Beneš)이다. 뮌헨 협정 직후 대통령 직에서 사임하였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에 취임했으나 공산당의 무혈 쿠데타로 사임하였다.

  • 독일어: Fall Grün[1]
  • 영어: Case Green
  • 체코어: případ zelená
  • 한자 : 綠色作戰

체코슬로바키아는 영국과 프랑스를 적대국으로 만들면서 독일과 전쟁을 시작하느냐, 아니면 침략자에게 항복하느냐의 선택에 직면해 있다.
- 에드바르트 베네시(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군사적 관점에서, 우리는 1년 일찍 전쟁을 시작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하지만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뮌헨에서 우리의 주장을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 마르틴 보어만(1945년 2월 발언.)

전쟁이 발발했다면 우리로서는 서부 국경도, 폴란드 국경도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을 것이다. 체코슬로바키아가 만약 저항했다면 아군이 그 요새에 의해 진격이 정지되었을 것은 조금도 의심할 바가 없다.
- 에리히 폰 만슈타인(1946년 증언)[2]

Contents

1. 개요
2. 독일에게 부정적인 시나리오
3. 독일에게 긍정적인 시나리오
4. 결론
5. 기타

1. 개요

녹색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위한 독일의 계획이었다. 계획은 1937년말에 초안이 작성되었고, 군사적 상황과 조건이 변함에 따라 수정되었다. 계획의 마지막 수정에 따르면, 침공은 1938년 9월 28일로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영국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위한 전쟁에 마음이 내키지 않았고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을 막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계획의 집행이 연기되었고, 1938년 9월 30일의 뮌헨 협정 이후 완전히 폐기되었다.

2. 독일에게 부정적인 시나리오

아돌프 히틀러의 의지와 달리 독일군의 전쟁 준비는 극히 부족하였다. 실제로 독일군 수뇌부(총참모장 프란츠 할더, 육군장관 블롬베르크 등.)는 준비 상태에 비관적이었다. 그래서 히틀러가 영+프+소를 상대로 체코를 둘러싼 모험을 벌일까 패닉에 빠졌으며, 개전했다가 독일이 또다시 패전할까봐 전전긍긍했다. 할더는 히틀러와 회견할 때 권총 암살을 고려했을 정도.

당시 독일군은 (약 40개에 달하는 미동원 사단을 제외하면) 36개 사단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인력과 장비 모두 심각하게 열악하였다. 이에 반해 체코슬로바키아군은 46개의 사단과 300기의 현대식 전차를 갖고 있었으며, 무장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독일군의 사단과는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다.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 시절 70% 이상의 산업기반이 위치해 있었던 알짜배기 땅인 체코는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자 세계 10대 공업국가였기에 군사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력이 충실했다. [3] 지형상으로도 체코가 유리한 산악 지형의 고지대를 점유하고 있었다. 독일과의 국경지대에는 소(小) 마지노 선 이라 불릴 만큼 훌륭한 요새화가 이루어져 있었다. 게다가 소총탄 규격도 독일에 맞추었기 때문에 독일의 탄환을 노획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일부 총기의 경우에는 당시의 독일군 병기와 동일하거나 약간 우월한 성능을 가질 정도였다. 원래 체코슬로바키아는 독일 못지않게 중공업과 총기산업이 발달한 나라였고 전차의 경우 오히려 독일군의 전차를 능가했다. 독일군의 35(t) 전차는 본디 체코슬로바키아의 전차였는데 당시 독일의 주력이었던 2호 전차의 성능을 능가하였다. 이 전차들은 훗날 독일군이 접수하고 독일군에 소속되어 전쟁을 치른다.

독일체코슬로바키아침공할 경우 프랑스 국경에 전개될 '예정'이었던 18개 사단으로는 프랑스군의 압박을 견디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폴란드 국경에 마찬가지로 전개될 '예정'이었던 10개 사단이나 전략 예비 8개 사단을 프랑스나 체코 전선에 투입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현대적인 체코군 46개 사단에 대해 공세를 펴기에는 병력이 심각하게 부족하다.

물론 다른 예측도 가능하다. 독일의 스투카 편대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산업 시설과 전차, 요새들에 공중폭격을 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의 산업능력과 방어능력을 저하시키면서 장기전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한편 양산이 시작된 3호 전차로는 LT vz. 35보다 확실히 우세하고 (아직 생산이 개시되지 않은) LT vz. 38에게도 약간 우세하였다. 또한 4호 전차 C형도 당시 양산 중이였으나 장갑이 꽤 부족하긴 했다, 그래도 LT vz. 38나 LT vz. 35보다는 우세를 점할수 있었다. 그후 몇달만 지나면 슬슬 4호 전차 D형이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폴란드 침공에서도 3호 전차나 4호 전차같은 제대로 된 전차의 숫자가 크게 부족했으므로 한줌도 안되는 신형 전차로 체코슬로바키아군을 밀어붙인다는 것 자체가 무리며, 체코슬로바키아도 3호 전차와 대등한 수준의 ST vz. 39를 개발한 상태였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산업 시설을 폭격하면서 몇 달이나 전쟁을 질질 끈다면 설령 승리하더라도 체코슬로바키아의 산업시설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으므로 독일의 이후 전쟁 수행 능력은 망했어요가 된다.

소련이 참전한다면 체코슬로바키아가 승리할 것이다. 체코 위기 당시, 소련은 체코와의 협정에 의거하여 체코에 출동 준비를 하고 있었음이 냉전 붕괴 후 비밀 해제된 문서에서 드러났다. 루마니아가 소련군의 국경 통과를 승락했으므로, 독일-체코간에 전쟁이 일어났다면 소련군이 루마니아를 통해 개입하여 2차 대전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었다. 독일 입장에서는 항공 전력의 압도적 우위를 바탕으로 후방의 소련군 지원을 차단한다면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겠지만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긴 힘들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독일군의 전력이 체코슬로바키아군의 전력을 압도하지 못한다.

3. 독일에게 긍정적인 시나리오

히틀러의 의지와 국방군의 준비 상황이 엇박자를 내는 것은 이후 폴란드 침공에서도 역력하게 드러나게 되는 모양새로, 실제로 폴란드에서와 같은 전과를 이룩할 수 있었을지는 불확실하지만, 준비 부족 만으로 독일군의 졸전을 예언할 수 있지는 않다.

체코슬로바키아 공군에는 최신형 항공기가 부족하였고, 전략은 오로지 프랑스군이 체코를 구원하러 온다는 희망적인 관측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동전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독일과 직접적인 국경을 접하고 있는 주테텐란트에는 상당한 수준의 요새화가 진행되었으나, 완료된건 아니었고 특히 독일이 3월에 병합한 오스트리아-체코 국경은 급히 허둥지둥 준비한 대전차호 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에 독일군이 이 쪽으로 진입할 경우 어떤 요새화 시설의 효과도 못 받고 독일군과 전투해야 했다. 더군다나 소(小) 마지노 선라고 일컬어졌던 모라비아 북부의 요새선의 경우, 그 종심이 얕았던 것은 물론이고 국경선과 지나치게 가깝게 건설된 탓에 독일 측에 그 위치가 진작부터 노출된 상황이었다. 어디에 있는지 빤히 다 아는 요새들이니, 전쟁이 개시되면 이 방어선이 어떤 꼴을 당할 것인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3개 차량화 사단과 1개 기갑 사단 등 독일군의 11개 사단이 집중된 주공이 자리잡을 예정이었던 보헤미아 서부의 경우, 산과 구릉이 많아 독일군이 통과하기 어렵다는 가정 하에 경무장한 요새선을 건설하고 단 1개 사단을 배치한 상황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상황 같지 않은가?

체코슬로바키아군을 부실한 독일군 기갑전력으로 상대했더라면 Pak가 많은 편이었던 체코의 포병에 녹아내렸을 터이니 초기에 전력을 정확히 파악하여 전차전으로 인한 피해를 조기에 감지하여 후선으로 빼내거나, 혹은 Hs123을 통한 근접항공지원 교리가 원만하게 돌아갔다면 Ju87 스튜카가 이미 양산을 시작했고 스페인 내전부터 실적을 올리기 시작한 상태였으므로, 1940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경험이 없던 체코 전차와 전차병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불후의 이름을 날린 38(t) 전차는 체코슬로바키아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38년 9월 시점에선 단 한대의 전차도 완성되지 않았고, 1939년 3월 CKD 사가 독일군에게 접수당한 시점에서 완성 차량이 단 10대에 불과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혀 빛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는 1925년 체코와 방위조약을 체결한 바 있으며, 프랑스가 참전할 경우 영국도 참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1938년 뮌헨 협정 당시의 분위기는 이러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정말로 분별력을 잃었다면,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가 스스로의 (동맹)의무에서 면제되었다고 선언해도 무방할 것. - 프랑스 외무장관 보네

체코슬로바키아는 현재 맺고 있는 동맹 관계를 단절하고, 독일의 위성국이 되어야 한다. - 현지 주재 영국 외교관들의 권고

그러므로 가짜 전쟁과 같이 영/프 양국이 독일의 체코 침공을 수수방관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상태는 전쟁 준비가 거의 안 된 상황에서 일을 저질렀던 독일보다도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전쟁이 없을 거라는 희망적 관측으로 일관한 양국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전쟁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으며, 일본의 팽창과 히틀러의 집권,이탈리아에티오피아 침략으로 격발된 재무장 정책은 시작된지 이제 겨우 3년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 영국과 프랑스의 중공업 섹터가 붕괴해버렸기 때문에 잠재적 적국인 독일에 강철을 주문해야 할 지경이었으므로, 이런 상황에서 전쟁에 나서봐야 장비의 소모를 억제하기 위해 소극적인 작전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폴란드가 무너지고 있었을 무렵, 프랑스군은 잠깐의 공세 이후 가짜 전쟁에 돌입한 것은 물론 1940년 프랑스 침공 당시 독일과의 정면 대결에서도 제대로 된 공세 한번 해보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게다가 소련도 희대의 병크인 정치장교 제도가 살아있다. 과거 1920년 적백내전 당시 바르샤바 전역에서 투하체프스키의 전략을 스탈린 등 정치장교가 말아먹고 대패한 사례가 존재한다. 사단장이나 부사단장, 참모 등 사단 지휘부가 통째로 숙청되면서 소령, 중령이 하루 아침에 사단장이 된다거나 하는 대숙청 시절의 소련군이기 때문에, 지휘관이 정치장교의 권위에 도전한다던가 하는 상황은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대숙청이 1938년 8월 시점에서 마무리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고봉 전투에서와 같은 졸렬한 전투력을 보여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독일에 빌붙어 체코슬로바키아에게 땅을 뜯을 의지가 넘치는 폴란드헝가리독일측으로 참전한다면 독일이 승리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물론 폴란드와 헝가리는 영국프랑스와 전쟁을 하면서까지 땅을 뜯을 의지는 없었으나, 영/프가 방관하고 소련이 적극적인 간섭을 하지 않는다면 노골적으로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 굳이 전면전이 아니더라도 소규모 국지전을 통해 체코슬로바키아군의 상당한 전력을 붙잡아두는 한편, 분쟁 중인 영토의 일부를 점거하는 것 또한 충분히 가능하다.

폴란드군의 경우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집권 초에 소련-폴란드 전쟁을 치뤄 승리하면서 그 능력을 입증한 적이 있고, 특히 기동전 경험이 풍부했다. 폴란드 침공 당시 몇몇 부대들이 독일군에게 선전했으며, 거대한 규모의 폴란드 육군은 독일군의 든든한 서포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적은 수의 사단만이 주둔해있고 요새화도 미약한 슬로바키아 지역을 재빠르게 침공하여 접수한다면 전황은 체코슬로바키아에게 크게 불리해진다. 공군의 경우는 체코슬로바키아 공군과 비교도 안될만큼 미약하지만 루프트바페의 공군력이 워낙 압도적이기 때문에 커버가 가능하다.

큰 위협이 될 폴란드에 비해 헝가리는 그다지 큰 위협은 되지 못할 것이다. 예비군을 포함해 전체 군병력은 체코슬로바키아군의 30% 수준밖에 되지 않았고 1920년 리아농 조약에 의해 군 규모에 제약을 받은것이 1930년대 초반에 와서야 서서히 완화된것을 보아 아마 헝가리군의 상태는 병맛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격적인 공수부대의 편성도 1938년이 돼서야 시작됐고 1941년 유고슬라비아 침공당시 주력이 CV-33인것과 1942년 동부전선 파견 헝가리군 주력이 38(t)였던것, 일반 보병사단의 정원이 고작 2개 보병 연대가 끝인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헝가리는 독립 직후에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이미 한번 공산국가가 된것을 루마니아의 지원으로 다시 되찾은 경력이 있는지라 붉은 군대를 상대로 적어도 전투의지를 상실하는 것과 같은 상황은 없을 것이다. 독일이 헝가리에게 얼마나 큰 지원을 하냐에 따라 그 위협도가 달라질 것이다.

폴란드, 헝가리가 참전할 경우, 소련군이 적극적으로 참전하지 않으면 체코슬로바키아가 패배할 가능성이 높으며, 소련군이 참전할 경우에는 루프트바페가 후방의 소련군 지원을 차단하느냐 못하느냐, 소련군이 폴란드를 직접적으로 침공하느냐 마느냐, 소련군이 얼마나 빨리 루마니아의 좁은 회랑을 지나 슬로바키아까지 오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지만 다른 경우보다 체코슬로바키아가 크게 불리한 상황이다.

4. 결론

독일군 단독으로는 체코슬로바키아군을 제압할 수는 있으나 폴란드 침공을 재고해야 하는 희생이 나올 것이다. 근데 이러면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점령 이유가 사라진다. 소련적극적으로 참전한다면 독일은 이기기 어렵지만, 폴란드헝가리가 독일 측으로 참전한다면 독일에게 상당히 유리했을 것이다. 여하튼 체코가 이기든 독일이 이기든 독일의 전쟁수행 능력이 병맛이 되는 건 거의 확실하므로 영국, 프랑스가 얼마나 개객기인지 알 수 있다.

5. 기타

결국 역사에 만약은 없다. 그래도 뭘 해도 프랑스가 발린다든가, 독소 불가침조약이 일어난다든가, 오랜 기간의 전쟁과 학살, 폭격이 난무하는 실제 역사보다는 나았을거라는 말도 있지만.

해리 터틀도브의 대체역사소설 "일찍 일어난 전쟁"은 바로 이 if 시나리오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페인 내전 당시 국가주의군의 수장이 프랑코 대신에 호세 산후르호가 되고,[4] 뮌헨 협정 직전에 독일 외교관이 체코 민족주의자에게 암살되어 분노한 히틀러가 뮌헨 협정을 파기해 1938년에 전쟁이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각 당사자 모두 실제 역사보다 상당히 하향된 상태로 전쟁에 임하고 몇 가지 요소의 변화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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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녹색 '사건'으로 등재되어 있는데, 사건보단 상황이 적절한 번역이다.
  • [2] #.
  • [3] 다만 헝가리, 폴란드, 독일 등 적성국가에 둘러쌓인 탓에 장기전의 경우 사방으로 고립되어 물자난의 우려가 있다.
  • [4] 항목에 나오는 옷 싣다가 비행기 추락한 장군이 조종사의 말을 듣고 짐을 줄이는 바람에 살았고 이 사람이 수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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