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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사업

last modified: 2015-09-26 11:35:21 by Contributors

Contents

1. 푸른 숲 만들기
1.1. 대한민국의 산림녹화사업
1.2. 논란?
1.3. 기타
2. 전두환 정권의 흑역사

1. 푸른 숲 만들기

민둥산 등에 나무를 심어 푸른 산을 만드는 사업. 녹화(錄畵)사업이 아니라 녹화(綠化)사업이다.
숲을 만드는 사업인 조림사업과 의미상 유사하며 혼용되기도 하나, 녹화사업은 필요한 경우 사방공사를 시행하여 조림사업에 적합한 환경을 인위적으로 구성하는 것을 포함한다는 것에서 구분된다.

1.1. 대한민국의 산림녹화사업

백선엽 장군의 회고에 따르면 제1공화국 시절부터 기획되고 시행되었다고 한다. #

해방 당시만 해도 나무이외에는 별다른 연료가 없는 현실 때문에 한국의 산은 우리 강산 누렇게 누렇게(…) 운동이라도 벌인 것마냥 흙이 벌겋게 드러난 상태였다.[1] 조선시대의 기록을 보면 이 원인으로 뜻밖에 "온돌"을 지목한다. 온돌이 대중화되면서 나무의 수요가 기하 급수적으로 올라가면서 이 파괴되었다는 한탄이 당시의 기록에 많이 보인다.이런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제1공화국 정권은 당시 연료를 연탄으로 대체하는 사업을 벌이고 석탄개발공사를 세웠으며, 국군이 미군의 기술적 지원을 받아 석탄 수송로 철로를 깔게 하는 등 한국 산림녹화의 기반을 다졌다. 다만 기존의 온돌에 그대로 연탄을 투여하다보니 연탄가스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 문제가 나타나 오랫동안 피해를 입게 된다.

이후 제3공화국 시기가 되면서 사업은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1962년에는 제1차 경제개발계획에 민수용 석탄 공급계획을 포함시켰고, 64년에는 35개 도시에 민수용 석탄을 공급하면서 동시에 땔감 사용을 규제했다. 1965년부터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산림녹화 사업이 시작됐다. 화전(火田)을 정리하고 식목일을 제정하여 대통령부터 나무심기 행사에 앞장섰다. 전국 공직자와 학생들은 물론 일반 직장인들도 산으로 나무를 심으러 갔다. 73년엔 산림청을 내무부로 이관, 새마을운동과 산림녹화를 연결했다. 그렇게 범국민적 역사((役事)로 추진된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은 6년 만에 달성됐다. (<김수학 자서전 ‘이팝나무 꽃그늘’ 참고>) 이후에도 녹화사업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1970년대 말에는 해풍(海風)+돌산크리로 나무가 자랄 수 없을 것으로 여겨지던 포항시까지 녹화사업이 완료될 정도였다. 이 역사는 다른 개발도상국이 배우러 찾아올 정도의 모범사례.

당시 포항 영일지구는 토양이 모두 침식된 채 암반층만 남아 노출된 상태로 나무는 커녕 풀한 포기 없었던 지역. 이 암반층에 도랑을 파고 물을 부어 퇴적암반이 풍화되게 한뒤 풀을 베어 만든 퇴비를 날라다가 나무를 심고 가물면 물을 길어다 주고 매년 비료를 주는 노력 끝에 산림이 복원되었다. 관련기록은 국가기록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2]

여기에 정부에서는 그린벨트 제도를 도입해 과도한 도시화에 의한 산림파괴를 방지하였다.[3]이 사업을 지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은 국립수목원의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되어 있다.[4] 여담으로 이 명예전당에는 총 5인만이 수록되어 있는 정도이다. 나머지 4명을 소개한다면

  • 현신규 박사 : 척박한 땅에서도 빨리 잘 자랄 수 있는 조림수종 개발에 평생을 바친 세계적인 육종학자. 1953년부터 40여년 동안 임학교육과 함께 소나무와 포플러 육종에 쏟은 그의 순수한 열정은 임업과학기술 발달의 견인차였으며 그가 개량한 조림수종은 국토녹화 사업에 큰 기여를 하였다. 과학동아에도 실렸다.

  • 김이만 나무 할아버지 : 이 땅에 자라는 나무 종자를 수집 하고저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국토의 구석구석을 누빈 나무 할아버지. 1922년부터 64년 동안 수목표본 수집과 종자 시험에 바친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주요 조림수종의 종자품질기준이 정해졌고 각 지역에 알맞은 나무를 골라 심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 이 땅과 나무를 사랑한 민병갈(Carl Ferris Miller) : 1979년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 1962년부터 40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충남 태안의 헐벗은 산림을 10.300여종의 식물종이 살고 있는 세계적인 수목원으로 바꾸어 놓았다. 아시아 처음이자 세계 12번째로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받은 천리포수목원을 조성하였다.

  • 조림왕 임종국 :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역경을 무릅쓰고 황무지와 다름없던 전남 장성의 543ha에 이르는 임야를 제일가는 조림성공지로 만들었다. 이 공로로 66년 식산포장(殖産褒章), 70년 철탑산업훈장, 72년 5·16 민족상을 수상했다.

이후 80년대에는 유한킴벌리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1984)의 주도로 민간단체의 녹화사업이 활발해졌으며, 1998년 생명의숲 국민운동, 1999년 평화의숲, 동북아산림포럼, 2000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 2003년 서울그린트러스트 등 다양한 운동이 전개되어 오늘에 이른다.

1.2. 논란?

다만 대한민국 근대화 과정 특유의 스피디한 전개 때문에 빨리빨리 이 녹화사업에도 몇 가지 부작용이 생겼고 그에 따른 비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 그린벨트의 부작용으로 대두되는 재산권 행사 권리의 방해. 이 부분은 수십년째 전혀 해결되지 않은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이제는 뜨거운 감자가 되어서 누구 하나 손대기 어려운 상태.[5]

  • 소나무 중심의 사업으로 인한 생태계 문란. 분명히 온대지방인데 눈에 보이는 건 타이가인 셈. 그런데 사실 중부지방부터는 타이가라고까지 할 수준은 아니지만 (이론상)냉대기후로 경기도와 강원도, 충청북도쪽에 리기다소나무, 물오리나무, 은사시나무(혹은 은백양)를 많이 심었다. 때문에 최근엔 외래종을 대신해 국내종으로 바꾸는 사업을 추진중이다. 대개 (외래)소나무->(자생)소나무로 바뀌는거라 일반인은 체감하지 못하겠지만.

  • 아까시나무, 리기다소나무, 리기테다소나무 등으로 대표되는 외래 속성종의 도입. 다만 여기서 아까시나무 같은 수종은 근본적으로 수명이 짧은 나무이기 때문에, 단시간내에 산림 환경이 조성된 이후 자연적으로 말라죽으면서 다른 나무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고, 소나무 역시 남부지방에서는 갈나무류 등 활엽수와의 경쟁에 밀려나서 천천히 활엽수로 대체되고 있는 중이다. 최초 심은 수종이 무엇이건 간에 결과적으로 산림이 자연적으로 성장, 천이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것이 생태학적으로 녹화사업이 가진 가치였다고 할 수 있다.

아까시나무의 경우 당시 척박한 토질 환경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당시의 황무지에서 잘 자라는 큰키나무는 리기다소나무, 사방오리, 아까시나무 정도밖에 없었다. 리기다소나무를 제외하면 모두 뿌리혹박테리아의 질소고정으로 척박한 땅도 비옥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진 나무들로 심었다고 보면 된다.[6] 참나무나 단풍나무 등은 어느정도 토양이 비옥해져야 잘 자라기 때문에 무턱대고 심을 수는 없었다. 전부 다 외래수종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나마 리기다소나무가 토종 소나무로 대체 가능했으나 당시는 솔잎혹파리가 기승을 부렸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어쨌거나 지금은 녹화사업으로 녹화된 산림의 대다수가 천이과정을 거쳐 안정적인 음수림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으로, 아까시나무는 수명이 다해가고 있고 소나무는 남부지방에서 활엽수와의 경쟁에 천천히 밀려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조림사업 자체가 중간에 중단되다시피 해서 그런 것도 있다. 원래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은 3차로 구성되었는데[7] 박정희 때인 1차는 제대로 마무리되었지만 5공 때인 2차에서 조금 주춤했다가 민주정권 하 완전히 중단돼 버렸다. 그래서 산지의 대부분이 중형목인 소나무 잣나무 등인 것.

이러한 비판은 건설적인 경우도 있지만 그저 까고 싶어서 까는 케이스도 있으니 각자 당시 역사적, 문화적 상황을 잘 살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1.3. 기타

외국 환경운동가들 중에는 한국의 사례를 들면서 "전 세계의 산림도 이렇게 구원될 수 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정작 산림이 파괴된 후진국 국민들 의견은 "그럼 밥지을 나무 어디서 구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산림녹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민수용 석탄을 비롯한 연료 공급 사업을 병행한 결과 석탄과 석유가 장작(땔감)을 대체했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문제로 태양열 조리기를 보급하는 운동도 있다.[8]


대륙의 기상. 돌산에 녹색칠을 하는 녹화(錄化)사업이다(…).

이후 한국에서도 F1이 벌어지는 영암 서킷 공사에서 잔디밭에 녹색 페인트칠을 하는 사진이 돌아다녔으나 사실 그건 복합비료, 잔디 씨앗, 피복양생제, 침식방지 안정제, 착색제 등을 섞어 만든 시드 스프레이다. 즉, 앞의 '대륙의 돌산'은 그냥 녹색으로만 보이게 하는 거고 이쪽은 녹색으로 보이게 함과 동시에 진짜로 잔디를 심는 거다.

북한에서도 녹화사업이 시행되고 있으나 경제난과 겨울철 연료부족으로 효과가 별로 없다고 한다. 정부시책을 무지막지하게 밀어 붙이는 사회주의 국가 답게 많은 양의 나무를 갖다 심고 있으나, 주민들이 땔감으로 식량으로 다 갖다 쓰고 있어서 꾸준히 악화 추세라고... 북한은 공업화 과정에서 자국 내에 풍부한 석탄을 일반 가정과 공장에서 연료로 활용하였으나 1990년대 이후 경제가 붕괴하면서 석탄의 채굴과 수송 체계가 상당 부분 마비되었다. 평양과 대규모 기업소를 제외하면 석탄 공급이 모두 끊겼고, 이러나 일반 가정들은 난방이나 취사를 위해서는 당연히 산에서 나무를 베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부족한 식량 증산을 위해서 산을 무리하게 개간하다가 1994~95년 대홍수로 상당부분 삼림이 유실되었는데, 나무를 계속 없애고 있으니 매년 홍수 피해는 증가 한다고 한다. 그 결과는 아래 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구수가 많은 곳 부터 점점 민둥산이 되고 있는 중이다.
http://blog.unikorea.go.kr/3228

이제는 김정은이 직접 나무심는 퍼포먼스를 보여줘할 판국인 듯.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867310

실제로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에 입국할때에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어딜가나 산림이 우거져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온갖 나무가 빽빽히 들어선 산과 언덕들이 여기저기 있으니... 모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이런 모습을 보고 '남조선이 잘 살긴 잘 사는가보다' 라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고 한다.남 조선에서는 밥 할때 연료로 뭘 태우나요?

2. 전두환 정권의 흑역사

한자는 1과 같다(…)
이게 나무 심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학생들 머리의 붉은 물을 푸르게 만든다는 이야기. 즉 공산주의적 사상을 없앤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거지 실제론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이 시기 남자 대학생이었다면 누구나 이 사업의 대상자가 될 수 있었다. 당시 5공화국 정권 차원에서 대학생 시위를 뿌리뽑기위해 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가 실행한 비밀 공작이다.

녹화사업 대상자로 지정되면 일단 강제휴학&입대처분이 내려졌다. 참고로 당시엔 학생운동을 통제하기 위해 대학 학칙에 '지도교수가 학생을 휴학시킬 수 있다'는 항목이 있었다.(...) 이를 빌미로 수사관들이 지도교수들을 찾아와서 반강제로 대상 학생을 휴학시킨 뒤, 제멋대로 입대영장을 뽑아와서 바로 입대시켜버리는 것. 절차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실제로는 바로 잡아가서 입대영장 뽑아서 훈련소에 처넣으므로 가족이나 친구들 입장에선 어리둥절하게된다. 심지어 신검도 안하고 무조건 현역으로 처넣었다. 그리고 반대로 대학생 출신 입대자를 찾아서 녹화사업 대상자로 지정하기도 했다.

녹화사업으로 강제입대할 경우, 육군은 전방 철책 경계부대로, 해군은 역시 전방 고속정 등에 배치토록 했는데, 전두환의 탄압에 염증을 느낀 데다 주체사상에 오염되기까지 한 몇몇 입대자들이 철책을 넘어가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정장 살해하고 참수리 몰고 월북한 놈이 안 나온게 신기하다. 하지만 실제로 녹화사업으로 강제입영된 병사가 아군을 여럿 죽이고 월북한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내부의 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원을 후방 부대에 보내 감시케 하기는 커녕 넘어가기 쉬우라고 전방에 보내주기까지 한 것은 보안사령관에 중앙정보부장 서리까지 했던 전두환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을 만큼 한심한 조치이며, 대놓고 이적 행위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역시 기초적인 군사상식조차 없던 똥별천국 하나회.

물론, 당시 군사정권에게 눈엣가시인 청년들을 후방 기행부대에서 꿀 빨게 할 수 없고, 대신에 전방 전투부대에서 온갖 고생하라는 것이 문어대갈 일당의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후방부대가 전부 기행부대도 아니고 엄연히 전방과 맞먹거나 그 이상으로 근무 환경 내지는 내무 부조리 등에서 더 안 좋은 곳도 수두룩함에도, 무조건 위험을 감수하고 전방으로 보냈다는 것은 역시 하나회 인간들이 똥별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후방은 다 쳐논다고 생각한다는 거 자체가 이것들이 근무지를 제대로 왔다갔다 안 하고 꿀부대만 오갔다는 증거다.

그리고 이렇게 녹화사업 대상자로 지정된 병사/수병들 중 일부에게 대학 내 학생운동을 감시하고 방해하는 프락치가 될 것을 강요하고, 그들이 얻어온 정보에 따라 새로 잡아들인 학생들을 취조하는 과정에서 가혹한 수단이 사용되어 많은 학생들이 희생되었다. 잡혀온 학생이야 데모했으니까 당연히 고초를 겪겠지만, 녹화사업 대상자로 지정된 학생들도 프락치가 되라고 강요하는 과정에서 구타나 고문을 겪기도 했으며, 결국 이 구타를 견디지 못하고 죽거나 혹은 친구들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자살하기도 했다. 이 시기 군 의문사 사건의 많은 피해자들이 이 녹화사업의 대상자였던 경우가 많다.

현재 유명인사가 된 486세대 정치인들 중에도 이 사업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들이 제법 있다.(ex:시민)

이렇게 입대한 이들은 제대한 이후 학교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학생들을 강제적으로 휴학시킨 것에 대한 보상 차원으로 이후 남은 학기를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군 입대 중 의문사한 6명의 학생들(이윤성, 김두황, 정성희, 최온순, 한영현, 한희철)을 위로하는 위령비를 고려대학교 민주광장에 건립하였으며, 이 비석은 아직도 남아 있다.[9]

당연히 6명의 학생만이 녹화사업의 희생자였던 것이 아니고, 당시 군 내부, 특히 정보기관인 보안사에서 추진한 일이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얼마나되는지 정확히 알 도리가 없다. 애초에 강제입대 자체가 워낙 학부모들과 사회의 반발이 심했으므로 1984년 9월에 폐지되었다. 그리고 이때 녹화사업도 공식 중단되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강제입대를 안시켜서 그렇지 대학생 입대자에게 프락치짓을 할 것을 강요하는 행위는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군 내부에서 공공연히 행해졌다. 심지어 다음정권인 노태우 정권까지도 계속되었다고 한다.

노골적이지 않아서 이슈가 안되었을 뿐이지 2010년대 중반의 군대에서도 훈련소에서 신병들을 모아놓고 데모에 참여해보거나 참여한 적이 있는, 혹은 그런 사람을 아는 이는 잠깐 면담할테니 나와라 하는 식의 행위는 여전히 기무사에서 파견 나온 인원들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다.담배 줄게 다만 이쯤되면 운동권이란 존재 자체가 이미 학교에서도 배척받고 씨가 마른터라 대부분의 신병들은 본 적이 없어서(...) 주로 운동권보다는 종북주의자들을 타겟으로 하는 조사라고 보면 된다. 아울러 최근까지 알게모르게 행해지고 있는 운동권 출신 또는 데모에 참여한 적이 있는 육군훈련소 입대자의 전투경찰 전환복무도 어찌보면 녹화사업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드라마 제5공화국의 한 에피소드가 이 녹화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잘 묘사하고 있다. 드라마에 나오는 가상의 녹화사업 희생자와 같은 부대원들인 육군 병사들이 달고 있는 부대 마크는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녹화 사업 대상자가 배치되지 않은 부대를 모르고 쓸 경우 그 부대에서 소송 등 명예 훼손에 대한 이의 제기를 해올 것을 우려해 가상의 부대 마크를 달았다고 한다.

서태지아이유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화제가 된 노래 소격동은 녹화사업으로 인해 벌어진 소격동 사건을 베이스로 깔고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소격동에 녹화사업을 주도한 기무사령부가 있었다는 점, 뮤직비디오에 나온 상황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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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당장 50이 넘으신 아저씨/ 어르신들께 여쭤보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다들 산에서 나무껍질을 벗겨 삶아먹느라 산의 나무가 다 말라죽었던 것을 기억하고 계신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섬유질과 수지 때문에 단단해진 변이 나오면서 항문이 찢어지는 경우가 많아 생긴말. 이 정도가 아니더라도 연료로 쓰려고 가지나 작은 나무 등을 베어냈기 때문에 지금과는 다르게 상당히 황랑한 상태였다.
  • [2] http://forest.or.kr/intro/intro_42_02.php?bcfg_idx=42&board_idx=1512&cmdProc=viewform&search_field[]=&search_value=
  • [3] 다만 그린벨트의 애초 도입목적은 군사작전지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였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최초 도입 목적은 그러했을지 몰라도 체계적인 그린벨트의 지정으로 고속성장과정에서 무분별한 난개발과 삼림파괴를 막은 것은 엄청난 업적이자 치적이다.
  • [4] 과거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을 격렬하게 비판하는 쪽에서도 확실하게 인정하는 치적이 그린벨트 지정과 고교평준화 조치이다. 특히 그린벨트 지정은 정말 시대를 앞서간 혜안이다.
  • [5] 누구나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는데 여야보수진보 정치권,언론,학계 그 누구 하나 나서서 고칠려고 하지 않고 그냥 쉬쉬 하면서 넘어간다. 국민연금도 비슷한 상태
  • [6] 참고로 오리나무는 자작나무과에 속한 나무들 중 유일하게 질소고정을 하는 나무이며 나머지 질소고정 효과가 있는 나무들은 모두 콩과에 속한다.
  • [7] 1차는 아까시나무 등 생명력이 강한 품종, 2차는 소나무 등 중형목, 최종적느로 3차는 경제성이 좋은 대형목으로
  • [8] 인도 등 저위도 지방에서는 태양열 조리기 효율이 장난이 아니다. 낮의 대부분을 땔감 줍느라 시간을 보내던 여자들이 이런 조리기 덕분에 허리 펴고 살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인도의 어느 힌두교 사원에서는 하루에 만 명분 음식을 태양열 조리기로 만들 정도.
  • [9] 학생회관 맞은편, 홍보관 앞 편의점 계단 아래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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