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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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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처벌대상
3. 집행방식
4. 능지형의 목적?
5. 능지형의 형제들
6. 능지형을 당한 인물들
6.1. 실존인물
6.2. 가공인물


凌遲刑

1. 개요

육회,생선회,대패삼겹살
전근대 중국사형 방식 중 하나. 가장 잔혹한 형벌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1] 나라 때 처음 시작되었다고 하며 나라가 중국을 통치하면서 한족의 형벌 중의 하나로 편입되었다.

죄인의 살을 산 채로 회뜨는 형벌로, 말 그대로 뼈와 살을 분리시킨다. 교수형, 참수형, 요참형 등의 갖가지 사형의 형태 중에서도 반역죄 등 일급 중죄인에게 실시하는 가장 무거운 형벌이었다. 때는 살을 뼈에서 발라낸다는 의미의 과형(剮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명나라 시대 형법의 기준이 된 법전인 대명률에서는 능지처사(凌遲處死)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공식적인 형벌의 방식은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이었고, 그 중에서 사형의 방식은 여전히 참(斬)교(絞) 두 가지만 있었다는 점이다. 능지처사는 공식 형벌은 아니지만 특별 죄목에 대한 처벌방식으로서 개별적으로 삽입되어 있는 것이다. 아래 단락에서도 언급하겠지만 능지처사는 어지간히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시행되지 않았다.

원래 '능지'란 말은 힘을 안들이고 넘어갈 수 있는 완만한 언덕을 가리키는데, 이 말이 사람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인다는 뜻으로 변주되어 이 형벌의 명칭으로 굳어버렸다고 하거나 혹은 에서 시행되던 형벌이 송대에 수입되면서 원래 있었던 단어인 '능지'로 음차되었다는 설도 있다. 별칭으로 백각형(百刻刑), 또는 살천도(殺千刀)라고 하는데, 이는 백 번, 천 번 칼질하여 죽이는 형벌이란 뜻이다.

흔히 한국에선 죄인의 팔다리를 말이나 소 등에 묶고 각 방향으로 달리게 하여 사지를 찢는 형벌을 능지처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형벌은 거열형(車裂刑)으로 본래 엄연히 다른 형벌이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능지형으로 판결이 나와도 대신 거열형을 집행했고 이것도 그리 흔하지는 않아 대부분 참형에 처한 뒤 거열형에 처하듯이 사지를 절단하는 형태가 많았기 때문에 충분히 오해할 만 하다. 원래 능지처참이라는 말은, 능지형과 참형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참고로 날카로운 칼로 살을 발라내는 형벌은 중국이 원조(?)는 아니다. 아주 일찍이 고대 아시리아에서도 그 사례가 있었고 베트남 등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2. 처벌대상

반역, 하극상, 패륜, 3인 이상 살상하여 대를 끊기게 했을 경우에만 집행하도록 하고 있으나 판관의 판단에 따라서 참수형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 반대로 황제의 명에 의해 능지형을 금지하던 시기에도 판관의 재량에 따라 시행되는 일도 있으나 일부러 거역한 것이 아니라 황제의 칙령이 지방까지 전해지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다. 멋대로 능지형을 시행한 게 발각된 판관은 삭탈관직 당하기도 했다.

참고로 조선에서는 아예 원론적인 의미에서의 능지형이 시행된 적이 없고 대부분 참수한 뒤 시신을 능지형 비슷하게 절단하거나 거열형으로 대체했다. 이외에도 중국에서 행해지는 형벌의 상당 부분이 조선에는 존재하지 않는 등 조선 시대의 형벌 방식이 중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덜 잔혹했던 건 사실이다.

3. 집행방식

  • 능지형은 법정형이 아니기 때문에 분명하게 규정된 처벌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래의 설명은 초기 능지형의 모습과 후기의 모습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착한 위키러들은 읽을 때 그 점을 감안하자.

일단 집행과정에서 지켜져야 할 권장사항으로는 아래의 두가지가 있다.

  • 형이 집행되는 동안 사형수는 최대한 오래 살아있어야 한다.
  • 최대한 많은 횟수로 살을 발라내야 한다.

사형수가 고통으로 먼저 사망하지 않도록 집행 시 다량의 마약[2]을 복용시켰다. 그 다음, 혀를 깨물지 못하게 나무로 된 공을 입에 물린[3] 죄인을 십자가 모양의 형틀에 묶어 고정시킨 후, 면도칼처럼 생긴 얇은 도검으로 사형수의 온몸을 회를 뜨듯이 발라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처형은 주로 손가락이나 발가락과 같은 덜 치명적인 말단[4]에서부터 시작하여 온몸의 근육을 발라낸 다음, 관절 등을 부수는 순이었고, 주요 혈관 및 몸통은 가장 마지막에 칼질을 하였다. 대부분의 사형수는 보통 집행 초기에 사망하지만 사형집행인은 그와 관계없이 칼질을 지정한 만큼 지속. 내장 기관 및 흉곽 등을 모두 조각낸 후, 마지막으로 목 부위를 잘라내 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집행 기간이 대개 2박 3일 정도 걸리는 게 보통이었다.[5] 이렇게 함으로써 수형자의 고통을 극대화하고 보는 군중들로 하여금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여담으로, 형이 집행될 때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으며 심지어 도시락까지 싸들고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6]밥이 잘도 넘어가겠다 거기다 집행자는 사람들이 외치는 부위를 자르는 쇼맨십까지 선보였다고… 인간이란 본래 잔인한 존재이다.

능지형이 가장 활발히 집행되었던 시기는 대로 매관매직과 부정축재를 일삼으며 권력을 휘두르다가 결국 사형에 처해진 환관 유근(劉瑾, 1451~1511)이 최고 기록을 세웠는데, 황제의 명령에 따라 도합 6천 번의 칼질이 가해졌다. 3일 동안 집행되었으니 하루 평균 2천 번 생살이 발라졌는데, 이틀째 되던 날 유근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사흘째 되던 날 몸통과 머리만 남은 유근의 시체는 장대에서 끌어내려져 가슴께를 도끼로 부순 뒤에 내장을 끄집어 낸 후 목을 잘라 장대 위에 함께 걸어보임으로써 형이 모두 끝났다. 군중들 중에 그에게 핍박당했거나 그의 모함으로 처형을 당한 유족들이 너나할 것 없이 달려들어 시신을 물어 뜯었다고 전해진다. 당대 학자인 적승위는 이걸 보면서 '유근이 간악하여 그동안 벌인 짓을 보면 자업자득이지만 그 잔혹함에 나도 하늘을 바라보며 뭔지 모를 한숨을 내비친다. 과연 악을 징벌한다는 명목으로 이런 것이 과연 옳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명말 최후의 명장 원숭환모문룡을 계책으로 죽였다는 죄로 책형에 처해졌는데, 이 경우 기둥에 묶어놓고 살점을 바르며 나중엔 두개골까지 부수어 버렸다고 한다.

대개 능지형이 끝난 후 뼈만 남은 토막난 몸통은 처형 직전에 입고 있었던 옷을 놓은 대바구니에 담겨 장대끝에 내장과 머리와 함께 걸리며, 처형 이튿날에는 각지로 보내져서 경계의 목적으로 쓰였다.

사형집행에 걸리는 시간이 길고, 죄인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기 때문에, 이미 고대 중국에서 황제에게 형의 폐지를 건의하는 의견이 있었다. 또한 일부 시대에는 형이 폐지되었다가, 나중에 다시 부활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나라 말기까지 존속했다. 결국 1905년 4월에 능지형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신해혁명 이후에 다시 부활해 청나라 관리 출신의 탐관오리들이 능지형에 처해졌다.

형이 집행되는 초반에 사형수가 사망해버리면 집행자를 처벌[7]하였으나, 사망 전까지 2천 번 이상의 조각을 발라낸 경우에는 집행자에 대한 처벌이 면제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숙달된 집행자의 경우, 사형수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2만 번 이상 칼질이 가능했다 카더라는 말도 전해진다. 그러나 청대에 접어든 후 능지형은 순화된 형태로 집행되었으며, 그 범죄의 흉악에 따라 8도(8번 칼질을 함), 24도, 72도, 120도 등으로 수천 번 썰어죽이던 명에 비해 숫자상으로도 상당히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명대와 달리 숨통을 미리 끊어놓고 시신만 절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능지도 매뉴얼화 되어 첫 2도는 가슴, 그다음은 오른쪽 왼쪽 팔, 다리 뭐 이런식으로 순서도 기록되어 있다.

4. 능지형의 목적?

사실 능지는 고통을 준다기 보단[8] 유교적인 신체발부수지부모적 의미로써 영혼까지 토막쳐버린다는 의미가 더욱 강해졌다. 즉 이 형벌의 목적은 신체적인 고통을 주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교적인 의미에서 사후의 신체가 훼손당한다는 공포를 주는 것에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반역이나 연쇄살인 등이 끊이지 않았던 점을 보면 범죄 예방 효과는 별로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주원장조차도 오늘 부패 관리를 능지처참하면 내일 다른 관리가 또 부패를 저지른다고 말했을 정도다.

중국인의 타고난 야만성의 증거라면서 서양 문화권 혹은 한국에서도 비판의 도구로 곧잘 삼는데, 사실 고대 중국에서도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비판여론이 높았고 황제에 따라서는 재위기간 동안 금지시키기도 한 형벌이다. 지식인들이 비판한 이유는 쓸데없이 잔인하기만 하고 계도의 효과도 없다라는 취지에서 비판해왔다. 사실 법전에도 없는 형벌이기도 했다.

5. 능지형의 형제들

한국 역사에서는 공민왕 때부터 능지형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특히 조선 태종, 세조, 연산군, 광해군 때에 많이 집행되었다고 하는데, 중국과 달리 거열형으로 대체했고 그 방식도 대부분 사형 자체는 참수형으로 집행하되, 시신을 절단하는 과정만 추가하는 것으로 마지막 모습만 능지형 비슷하게 하고 실제로는 고통을 덜어주는 형태였다. 또한 살아있는 죄인을 토막내는 것 외에 이미 죽은 죄수의 시체를 토막내 공공장소에 전시하는 형벌도 능지라고 하였는데,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상하이에서 암살당한 후 본국으로 이송되어 토막난 김옥균을 들 수 있다. 죄인의 시체나 목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형벌을 실질적으로는 (梟示)라고 부른다.

야사청성잡기에 의하면 인조 시절 권신 김자점이 역모를 일으킨 과거 반정 공신인 심기원을 잔혹하게 처형해야한다면서 기존의 방법인 시체 상태에서 능지형을 집행하지 않고 "저 놈은 산 채로 팔, 다리를 절단한 뒤 머리를 잘라 죽여야한다!"라고 주장했고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김자점의 권세가 워낙 엄청나던 시절이라 심기원은 그대로 형이 집행되었다. 그러자 심기원은 죽기 전 분노에 차서 "너도 똑같이 될 것이다. 이놈아!"라고 외치며 죽었고 훗날 김자점은 반역자가 되어 효종의 명령으로 능지형에 처해졌다. 그래도 김자점은 규정대로 처형되었으니 그나마 낫긴 하다.[9]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형벌이 시행된 경우는 역사적으로도 드문 편이었으며 인조 때는 아예 금지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부활과 금지를 거듭하며 폐지되지 않다가 갑오개혁이 이뤄진 뒤에 모든 사형을 교수형, 총살형으로 대체하게 되면서 완전히 폐지되었다.

한편 서양 세력이 중국으로 들어온 이후 유럽인들은 능지형을 중국의 야만성을 대표하는 예로 들었다.[10] 하지만 기행의 나라 영국 이 형과 비슷한 형벌이 실존했었다.

바로 교수척장분지형(Hanged, drawn and quartered)으로, 묘사 장면은 여기서 볼 수 있다 칼로 장기나 생식기를 차례차례 잘라 불에 구워 죄인이 냄새를 맡게 하곤 칼이나 말로 사지를 찢는 오체분시로 몸을 찢은 다음 머리를 베어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때 죄인은 자신이 산산조각 나는걸 그대로 지켜봐야 봐야한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붙잡힌 윌리엄 월레스가 이 방식으로 처형당했다. 그러나 용맹무쌍한 로빈 경은 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튜더스 시즌 4의 5화에도 같은 방식의 처형을 볼 수 있다. 단, 사지가 잘리는 것까지만 표현되어 있다. 참고로 둘 다 실화다. 영문 위키에는 아예 교수척장분지형을 당한 사람이 리스트로 있을 정도(...) 물론 이 정도 처형이 가해지는 건 반역죄 정도가 아니고서야...

이 끔찍한 처형법은 18세기 말 대역죄인도 교수형을 하도록 하는 법이 생김에 따라 영국 땅에서 사라지게 된다. 다만 사형 방법만 바뀌었을 뿐 어지간한 범죄는 거의 다 사형에 처하는 관행 자체는 19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또한 프랑스에도 비슷하게 범죄자의 신체를 공개적으로 심하게 훼손하는 형벌이 있었는데, 루이 15세의 암살 미수범 로베르 프랑수아 다미엥에게 가해진 사형판결문에는 다음과 같이 사형방법을 매우 상세하게 지시하고 있다.

"손에 2파운드 무게의 뜨거운 밀랍으로 만든 횃불을 들고, 속옷 차림으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정문 앞에서 사형수 호송차로 실려와, 공개적으로 사죄를 할 것. 다음으로, 상기한 호송차로 그레브 광장에 옮겨간 다음, 그곳에 설치될 처형대 위에서 가슴, 팔, 넙적다리, 장딴지를 뜨겁게 달군 쇠집게로 고문을 가하고, 그 오른손은 국왕을 살해하려 했을 때의 단도를 잡게 한 채 유황불로 태워야 한다. 계속해서 쇠집게로 지진 곳에 불로 녹인 납, 펄펄 끓는 기름, 지글지글 끓는 송진, 밀랍과 유황의 용해물을 붓고, 몸은 네 마리의 말이 잡아끌어 사지를 절단하게 한 뒤, 손발과 몸은 불태워 없애고 그 재는 바람에 날려 버린다."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1장)

범죄자의 신체 일부를 절단하거나 훼손하는 전통은 이후에도 남아서, 프랑스 혁명 때는 단두대를 도입하기도 했다.

자무카칭기즈 칸에게 잡혔을때 자신을 이 형벌로 죽여달라고 했다고 한다는 말이 있으나 몽골인들의 세계관에 따르면 피를 보지 않고 죽는 것이 영적으로 가장 좋으며 반대로 최악은 물 또는 기름에 익사하는 것임을 감안할 때, 칭기즈 칸을 비하하고 몽골인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로 넣은 엉터리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인지 정반대로 가죽푸대에 넣어서 말에게 밟혀죽거나 아니면 푸대에 넣은 채로 질식사 또는 다른 방법으로 죽였다는 기록이 위인전이나 다른 창작물에 더 자주 나온다. 몽골인들도 이것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루타루코가 노리오가 이런 방식으로 죽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강간당하기까지 했다. 남잔데 남자한테. 최후는 머리만 남아 관절인형 같은 것에 장식...

워크래프트넬쥴도 이런 식으로 되어 킬제덴에 의해 죽지 못하게 된 상태로 고통받았다. 어떻게 보면 더 끔찍한 경우. 리치 왕불타는 군단을 등질 이유는 이미 이 때부터 있던 셈.

문헌에 기록된 가장 마지막 집행은 1905년 4월 10일 베이징에서 이루어졌으며, 사형수는 몽골 왕족의 왕자인 아오한우안(Ao-Han-Ouan)을 암살한 죄로 사형이 집행된 18세의 한족 청년 푸추리(Fou Tchou-Li).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집행 장면이 당시 베이징에 체류 중이던 서양 선교사의 카메라에 담겼고, 후에 유럽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이 사진은 조르주 바타이유가 그의 저서『에로스의 눈물』에서 인용할 정도로 유명한 사진이 되었다. 바타이유는 이 사진에 극단적 공포와 극단적 황홀이 공존한다고 보았다.

아래 링크에 이 집행과정을 찍은 사진이 있으니 노약자와 임산부는 클릭을 삼가시라. 사진은 전 세계에서 딱 세 장 남아있는데, 세 장 모두 동일한 사형수를 위치만 달리하면서 찍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세장 모두 다른 사진이다. 사진을 보면 갈비뼈가 드러나 있는데 놀랍게도, 사형수는 이 사진이 찍히는 순간까지 아직 살아있었다고 한다.
험짤이니 주의[11]

6. 능지형을 당한 인물들

참고: 능지형으로 판결받았으나 실제로는 거열형으로 집행된 인물에 대해서는 거열형 항목 참고.

6.1. 실존인물

  • 정충
  • 김옥균 : 조선에서 보낸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당한 후 그의 시체는 조선에 넘겨졌고 양화진에서 능지처참 되었다.
  • 유근(왕웨이친)
  • 원숭환

  • 유응부
  • 주리(푸주리)
  • 재학
  • 투팍 아마루 2세 : 스페인인들에 의해 거열형이 선고되었으나 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능지형으로 처형당했다.
  • 히파티아

6.2. 가공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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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전 설명에는 가장 잔혹한 형벌로 알려져 있다고 되어 있었는데, 그렇게 단언할 수는 없다. 벌레를 활용하거나, 타이어를 목에 걸고 불을 붙인다든가, 톱질로 몸을 반토막내거나 몸무게만으로 몸을 꼬챙이로 꿰서 죽이는 등 리그베다 위키에 소개되지 않은 기상천외한 사형 방식은 매우 많다. 관심이 간다면 위키에만 의존하지 말고 따로 공부를 해보자. 아니 대체 무슨 공부를?
  • [2] 주로 치사량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의 아편을 사용했다.
  • [3] 혀를 깨물면 죽는다 항목을 참조하면 알지만 혀를 깨물어도 그 자체로 죽진 않는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려두기 위해 가뜩이나 출혈이 심한 형벌이니 과다출혈로 죽는 시간을 늦추기 위해 물리는 것이다.
  • [4] 물론 목숨에야 말단이 덜 치명적이겠지만 통각 신경은 말단부에 더 많이 분포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형수의 고통 면에서는... 글쎄다.
  • [5] 사지수족을 모두 처리했는데도 사형수가 아직 살아있을 때에는 흉곽에 구멍을 뚫어 기흉으로 사망시키거나 심장을 찔러 죽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집행 초반에 미리 죽여놓고 시작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 [6] 루이 15세 암살 미수범 처형당시에는 구경할 자리를 두고 미리 자리세를 받는 일까지 있었다...
  • [7] 그것도 그냥 처벌이 아니라 사형.
  • [8] 대량의 아편을 먹였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었고, 청대 이후에는 아예 사형을 미리 집행한 다음 작업에 들어갔다.
  • [9] 김자점의 능지형을 드라마 중잔혹사 꽃들의 전쟁에서 팔다리부터 잘라내도록 지시하는 것으로 나왔는데, 실제 그렇게 집행되었으면 기록에 남았을 것이다. 별다른 언급이 없는 걸 보면 원칙대로 참수형을 집행한 뒤, 시신을 절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 [10] 이는 티모시 브룩, 제롬 부르곤, 그레고리 블루 등이 지은 책에 잘 나와있다. 너머북스에서 번역본이 나왔는데 제목은 능지처참.
  • [11] 이 모습은 영화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에도 잠깐 등장한다.
  • [12] 무슨 말인가 싶지만, 능지처참 판결을 받은 이 인간이 슐리어였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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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6-30 18:4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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