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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오카 츠요시

last modified: 2015-04-08 22:55:23 by Contributors



이제는 다시 봐선 안되는 볼 수 없는 미네소타 트윈스 시절. 하지만 트윈스 팬들에게는 재앙 그 자체.

© Mori Chan on Flickr (Original version)
UCinternational (Crop) (cc-by-2.0) from


2006년 WBC에 일본 대표로 출전한 니시오카.

Contents

1. 프로필
1.1. 개인 수상 타이틀
2. 지바 롯데 마린스
3. 미네소타 트윈스
4. 한신 타이거스
4.1. 2014 시즌
4.2. 일본시리즈 고의 수비방해 의혹
4.3. 2015 시즌
5. 한국 선수와의 인연
6. 기타

1. 프로필

한신 타이거스 No.7
니시오카 츠요시(西岡 剛)
생년월일 1984년 7월 24일
국적 일본
출신지 오사카
포지션 내야수(2루수, 유격수, 강제 3루수)
투타 우투양타
프로입단 2002년 드래프트 1순위
소속팀 치바 롯데 마린즈(2003~2010)
미네소타 트윈스(2011~2012)
한신 타이거스(2013~)

한신 타이거스 소속 재일 한국인 3세[1] 내야수. 등번호는 롯데 시절에는 7번, 트윈스에서는 1번. 한신에선 다시 7번을 달았다.

1.1. 개인 수상 타이틀

도루왕:2회(2005년, 2006년)
베스트 나인:2회(유격수 부문・2005년, 2007년)
골든 글러브:2회(이루수 부문・2005년, 유격수 부문・2007년)
월간 MVP:2회(2005년 3월・4월、2010년 5월)
올스타 게임 출장:5회(2005년-2008년, 2010년)
치바시 시민 영예상(2006년)
2006 WBC 일본팀 대표(8시합 31타수 11안타 2홈런 8타점 4삼진 6볼넷 5도루 타율 0.355)
2008 베이징 올림픽 일본팀 대표

2. 지바 롯데 마린스

2006 WBC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표팀으로 뽑혀 일본 선수임에도 국내 야구팬들에게 잘 알려진 선수. 원래 어릴때부터 PL학원[2]에 진학하여 야구를 하는게 꿈이였으나 떨어져서 오사카 토인고교로 가게되었다. 참고로 PL학원고교, 토인고교 둘 다 오사카를 대표하는 야구명문 고등학교다. 이 내용은 본인이 찍은 아디다스 광고에서도 나온다. 상당한 쇼크를 받았던 모양. 이때문에 PL학원이라면 악을 품었는지 토인고교 시절 PL학원 상대로는 한번도 지지않았다. 이때 고교선배로 나카지마 히로유키, 나카무라 다케야 등이 있었다.

고교 시절은 2루수였지만 프로 입단 후 유격수도 소화하며 2006년 이후로는 유격수로 출장했다. 지금이야 테이블 세터지만 고교시절은 통산 홈런 42개로 상당한 장타자였다.[3] 심지어 니시오카 전용 쉬프트까지 있었을 정도. 좌타자였지만 프로 입단 후 스위치 히터로 전향.


국가대표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2009 WBC에서 대표팀 선발이 되지 못하자 연봉을 자진 삭감하였다. 2010년에는 포수 사토자키 토모야를 대신해 주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주장이 된 해에는 치바 롯데의 일본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2010년 개인 통산 시즌 첫 200안타를 달성하였으며 퍼시픽 리그 수위타자&최다안타 1위를 차지했다. 역대 일본리그 단일시즌 200안타 타자는 통산 3명 뿐이었으나 올해만 벌써 3명이나 나왔다. 한신의 맷 머튼, 야쿠르트의 아오키 노리치카 그리고 지바롯데의 니시오카 츠요시 본인이다. 시즌 최다안타는 한신의 맷 머튼이 214안타로 1위에 올랐고 니시오카는 206안타로 퍼시픽리그 1위에 올랐다. 2010년 시즌 연봉은 1억 7천만엔.

2010 시즌 타율 0.346 안타 206 홈런 11 타점 59 득점 121 도루 22 OPS 0.904

이 당시 팀에 있었던 이승엽과 상당히 친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그가 한국계라는 점이 친분에 도움을 준 듯하다. 김별명도 같은 이유로 친해지려 했던 듯. 하지만 김별명의 po뒷통수wer

3. 미네소타 트윈스

2010년 시즌 마치고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도전했으며, $5.329M의 이적료에 미네소타 트윈스에 낙찰, 계약조건은 2011~2013년까지 연봉 300만 달러, 2014년 옵션 400만달러 바이아웃 25만달러로 총 925만달러로 합의하고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한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는 타율 .345를 기록해 2루수로 메이저에 데뷔한다. 하지만 시즌 개막전부터 에러성 플레이가 나온데다 4월 8일 양키 스타디움에서 있었던 뉴욕 양키스전에서 경기 도중 1루 주자 닉 스위셔와 부딪혀 왼다리 종아리 뼈가 골절되어 약 두달간 결장했다.

11 시즌 최종성적은 68경기 출장 50안타(2루타 5개) 0홈런 19타점 2도루(4실패) 타율 0.226 출루율 0.278 장타율 0.249 OPS 0.527... 아 망했어요...

뛰는 야구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데려 왔는데 현실은 도루도 못한다.(...) [4] 여기에다 니시오카의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시즌 전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트레이드된 J.J. 하디30홈런[5]을 치며 대폭발해 미네소타팬들의 속을 벅벅 긁어놓았다.(...) 게다가 원래 일본에서도 그다지 수비 잘한다는 소리는 못 듣는 선수이긴 했지만 타구질의 차원이 다른 메이저리그로 와선 수비에서도 가히 블랙홀 급의 임팩트를 주며 먹튀 기미가 보이는 조 마우어, 저스틴 모노와 함께 미네소타 현지언론의 집중포격을 받았으며 미네팬들한텐 공격도 안되고 수비도 안되는 천하의 개쌍놈 취급을 받았다.(...)

시즌 전 ESPN의 칼럼니스트 키스 로는 타격왕을 차지한 전년도의 성적은 BABIP이 높아 뽀록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92마일 이상의 패스트볼엔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평가했는데 정말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강속구에 배트 스피드가 채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 엄청난 폭망에 의한 반동인지 바로 다음해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일본인 야수들은 찬바람을 면하지 못했는데[6] 세이부 라이온즈유격수 나카지마 히로유키는 헐값+백업이라는 굴욕적인 조건을 제시한 뉴욕 양키스와의 협상이 결렬되어 메이저리그 진출이 좌절됐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일본 정상급 외야수 아오키 노리치카밀워키 브루어스와 2년계약(+1년옵션)을 맺긴 했는데 연평균 연봉이 고작 125만달러로 일본에서 받았던 연봉에 3분의 1로 토막이 났다. 그리고 가와사키 무네노리는 일본선수 잘 데려가는 시애틀로부터 마이너리그 계약에 스프링 트레이닝 초청선수 신분으로 계약을 하기까지 했다.

2012시즌, 시범경기에서도 삽질을 거듭하며 트리플A로 강등되었다. 트리플A에서도 타/출/장 245/309/301로 고전 중. 8월 중에 메이저리그로 콜업되었는데 3게임에 에러 2개를 범하는 등, 타격, 수비 모두 안되는 상태로, 올라온지 일주일만에 다시 트리플A로 내려갔다.
그리고 9월 28일 잔여 연봉과 바이아웃 전액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트윈스에서 퇴단하였다.

니시오카가 왜 실패했는가에 대해서 좋은 기사도 나왔다 분석기사 이와중에서도 김태균은 또 까인다 근데 기사보니 진짜 나쁜 XX

미네소타 퇴단 이후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내가 할수 있는 것을 하겠다"라고 쓰고 일본 복귀할래영 뿌잉뿌잉 이라고 읽는 발언을 하여 사실상 일본 복귀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요 몇년간 폭망중인 한신 타이거스가 대놓고 "담 시즌 주전 3루수는 이미 정해졌음, 우리는 4억정도를 이미 장전하고 성의있게 교섭할것임" 이라고 발언하면서 니시오카를 영입후 3루수로 쓰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였다. 그리고 2ch에서는 이미 니시오카에게서 맹호혼이 느껴진다는 드립을 쳤다

4. 한신 타이거스


2012년 11월, 한신과 2년 6억엔의 계약을 맺었다. 주로 2루수로 출장하면서 리드오프 역할을 맡고 있다. 2013 시즌 한신의 상승세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 성적도 성적이지만, 주로 무뚝뚝한 형님들이 모여 있는 한신 덕아웃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간사이 출신 선수들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은 한신 야수진에서 몇 안되는 오사카 토박이. 2013시즌부터 등장했던, 홈런이 나왔을 때 선수들이 일제히 스탠드를 향해 손을 뻗는 특유의 홈런 세리머니도 니시오카가 제안한 것.[* 'Gratitude'를 줄여서 'Gratiii'라고 부른다고 한다. 다만 이 세리머니를 요란스럽다고 좋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었다.[7] 타구단 팬들이나 평론가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좋지 않은 목소리가 들리자, 결국 구단 측에서는 2014시즌부터는 이걸 하지 않기로 결정 했다. 이대로 영영 못볼 것 같았던 이 세리머니는 2014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첫 시합을 사흘 정도 남겨두고 언론을 통해 클라이맥스 시리즈 한정으로 부활 될 것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4연승을 거머쥐며 CS 우승을 확정하는 순간까지 니시오카를 포함하여 이 세리머니를 행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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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 image (1.89 MB)]


4.1. 2014 시즌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뜬공을 처리하려던 도중 우익수 후쿠도메 고스케와 충돌하여 완전히 몸이 공중에 뜬 채 머리부터 떨어져 정신을 잃고 구급차로 후송되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흉부에 타박상을 입은 것과 동시에 코뼈 골절과 왼쪽 어깨 탈골이란 진단을 받고난 뒤 한동안 공백기를 가졌다.

이 무렵 오승환은 니시오카를 위해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모자에 니시오카의 등번호를 새겼는데[8], 경기가 끝난 후 심판에게 주의를 받았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모자에 스티커 같은 걸 부착하거나 글로 무언가 표시하는 것이 금지 된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 덕분에 고액 계약이라 까이던 오승환의 이미지가 반대로 크게 상승했다. 일본야구에서는 흔하지 않은 동료애 표현법이라 임팩트가 커서인지 팬들중에서는 오히려 그정도는 괜찮지 않냐며 심판을 욕하는 반응까지 나왔을 정도.

이후 6월 말에 다시 1군으로 복귀 하지만 아직까진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지라 이렇다 할 활약은 보여주지 못한 채 얼마 안 있다가 2군으로 말소 되었고 이후 9월달에 완전히 1군으로 복귀 했다.

참고로 니시오카는 부상으로 인해 2014년 시즌엔 출전한 경기가 몇 안되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2014년 올스타전 팬투표 1위 선수로 선정 되었다. 복귀한 이후에도 활약을 하건 못 하건 그저 니시오카가 스타팅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고 환영하는 팬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이후,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요미우리를 4연승으로 꺾고 2014년 일본시리즈에 진출 하여 1승까지 거머쥐며 연승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던 한신 타이거스에게 어떠한 사건(?)이 들이닥치게 되면서 니시오카는 한동안 한신 팬들로부터 가루가 되도록 신명나게 까이며 전범 취급을 받게 된다. 그게 바로

4.2. 일본시리즈 고의 수비방해 의혹



2014년 일본시리즈 5차전, 시리즈 1승 3패에 9회초 0:1로 뒤지던 1사 만루 상황에서 어처구니 없는 3피트 라인 위반으로 더블 아웃되면서 한신의 일본시리즈 도전을 끝장내는 바람에 사실상 금지어행이 되었다.

니시오카는 경기후 인터뷰에서 "왼손타자는 (타격 후에)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라인) 안 쪽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으니까. (뛰어가면서) 서서히 (원래 뛰어야 할 주로로) 돌아갔다. 고의로 할 수 있는 플레이가 아니다."라고 변명을 했다. 그러나 수비방해를 선언한 1루심 아즈마 심판은 "명확하게 처음부터 (파울라인) 안 쪽으로 달리고 있어서 아웃을 선언했다. 타격후 처음에는 라인 안 쪽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오른손 타자라면 몰라도 왼손타자가 처음부터 안쪽을 달리려고 했던 것은 명백하게 수비방해의 의도가 있었다. 그리고 송구가 몸에 맞은 것도 파울라인 안 쪽이었다."라고 판정의 이유를 분명하게 밝혔다. 위의 리플레이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니시오카는 타격 직후에는 파울라인 바깥쪽을 뛰고 있다가 본인의 변명과는 반대로 도리어 라인 안쪽으로 들어와서 뛰다가 베이스를 밟는 순간에야 밖으로 살짝 빠져나가려는 자세를 취한 것이 보인다. 게다가 공식 인터뷰에서의 변명과는 반대로 자기의 페이스북에는 "규칙 상 안쪽으로 달려서 공이 몸에 맞으면 수비방해인 건 나도 알고 있다. 타구가 맞은 순간 병살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일말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뛰어야 되는 것을 라인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달리면서 (송구가) 몸에 맞으라고 생각하면서 달렸다. 나는 송구가 등에 맞을 때 다리가 바깥쪽에만 있으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달렸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는 규칙에 잘하면 안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한 플레이였다."라고 글을 남기면서 결국 라인 안 쪽을 뛰었던 주루가 수비방해를 의도한 고의였음을 자백했다. 그리고 또 까일 거리를 제공했다.

이 사건(?)은 곧 시즌 후 동료 선수의 개그네타로 사용 되기도 하였다. 2014년 11월 22일 개최 된 한신 타이거스 팬 감사데이 이벤트에서 매년 개최 되는 이벤트마다 특정 선수의 모노마네를 하는[9] 한신 내야수 이마나리 료타가 니시오카의 수비방해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이걸 지켜본 니시오카 본인은 "저 스스로도 아직까지 (마음 속에서) 질질 끌고 있는 부분인데, 그 상처는 아물지 않았습니다. 내년엔 수비방해 하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라고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4.3. 2015 시즌

2014시즌이 끝난후에 중견수로 전향한다고 한다. 토리타니 다카시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대비하여 이전에 중견수를보던 야마토를 유격수로. 영입에 공들이고있는 나카지마 히로유키를 3루수로. 3루를 보던 니시오카가 중견수로 전향할 계획이다. 이에 구단은 5억엔을 들여 낡은 구단펜스를 교체할계획이라고 하는데, 시즌 후에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은 니시오카의 부상방지 측면이 크다.

토리타니의 메이저 진출과 상관없이 본인은 2루수 자리를 두고 경쟁할것이라 밝혔다. 2014시즌중에 본인이 부상으로 빠졌을때 우에모토 히로키가 2루수로 자리잡았고,본인은 부상복귀후 3루수로 뛰었다.

2015시즌엔 2루수 주전 자리를 두고 경쟁하겠다고 본인 입으로 단언 한 것 치곤 오픈전부터 시작해서 정규시즌 초반인 지금까지 경기 내내 줄곧 2루수가 아닌 3루수로써 선발 출장하고 있다. 불안했던 3루 수비가 작년보단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믿고 맡길 만큼 안정적인 수비도 아니기 때문에 팀이 3점차 이내로 리드하고 있는 중요 상황에서 9회가 되면 마무리 투수 오승환과 교체 되면서 자연스럽게 니시오카 수비 위치엔 대수비요원 사카 카즈히코가 들어가는 것이 이젠 그냥 공식이 되어버렸다. 4월 초반인 현재까지 타격 쪽에선 더할 나위 없는 대활약을 펼쳐주고 있다. 개막전부터 줄곧 선발 라인업으로 출장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타율 3할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중.

5. 한국 선수와의 인연


니시오카 자체가 워낙 친화력이 좋은 성격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듯 알게 모르게 재일 한국인이라는 요소가 작용 되어서 인지 외국인 선수 중에서도 유독 한국 선수가 자기 팀 소속이 되면 더욱 더 신경 써서 잘해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 앞서 거론 된 것처럼 각각 다른 시즌이긴 했지만 치바 롯데 마린스 선수였던 시절엔 이승엽김태균에게 잘해주었고[10] 지금 현재 소속 되어있는 한신에선 오승환에게 시즌 들어가기 앞서 훈련할 때부터 말을 걸며 가까워지고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중에서도 특히 오승환과 스스럼 없이 지내는 것 같이 여겨지는 모습이나 일화 등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 2014년 9월 21일 주니치전에서 9회 말 한신 공격, 오승환이 한일 통산 프로 첫 안타를 때려냈을 때 사용했던 야구 방망이는 니시오카에게 빌린 것이다. 이후 9월 26일 히로시마전에서 9회 말 타석에 들어섰을 때 역시 니시오카의 야구 방망이를 사용 했다. 이대호한테 선물 받은 야구 배트는 어디다가 두고


오승환의 그림 같은(?) 베이스런닝 모습을 흉내내며 본격 능욕 들어가는 니시오카 짤

  • 오승환도 다른 팀 동료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니시오카를 부를 때 "츠요시"라고 부른다.[11]

  • 2015년 3월 오픈전 시기에 한신 외야수 이토 하야타, 일본 개그맨 그리고 오승환과 함께 가라오케를 갔고 새벽 다섯시까지 술을 마셨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니시오카 본인이 얘기한 게 아니라 이때 한 자리에 있었던 개그맨 타무라 켄지가 자기 라디오에 나와 얘기한 것. 물론 다음날은 오픈전 시합 일정이 없었다. 이와중에 니시오카는 아직까지 비시즌인 것 마냥 논다고 밤의 유흥 즐기는 버릇을 못 버렸다며 욕을 한 바가지로 얻어 먹었다.

물론 이 일화들 만으로 두 사람이 각별하게 사이가 좋다고는 단정 지을 순 없다. 오승환이 1년 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면 그걸로 안녕

6. 기타


  • 간사이 출신 답게 평소 말할 때에도 간사이 사투리를 사용한다.
  • KAT-TUN의 카메나시 카즈야와 절친 사이라고 한다. 서로를 "츠요군" "카메군"이라고 부른다고(...)
  • 좌우명이 선우후락. 즉 <세상 사람보다 먼저 앞일을 걱정하고, 즐기는 일은 세상 사람들에 뒤져서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좌우명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기분탓일까
  • 니시오카의 닮은 꼴 배우라고 하여 니시오카의 이름을 본따 만든 게이 포르노 등장인물이 있다. 작품명은 한여름 밤의 음몽. 항목에 들어가 보는 건 본인 자유. 참고로 게이 포르노에 출연했다고 몇달 전 논란이 일었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출신 투수 타다노가 나온 작품이 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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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할아버지가 한국인임이 본의 아니게 밝혀졌다. # 김별명의 뒷통수 본인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으며 니시오카를 좋아하는 일본팬들이라고 쓰고 넷우익이라고 읽는다은 물증이 없기 때문에 사실이 아닐 것이라며 대부분 의미 없는 부정을 하고 있다.
  • [2] 키요하라 카즈히로, 타츠나미 카즈요시, 마쓰이 카즈오, 후쿠도메 코스케리그베다 위키에 쓰일 정도로 잘 알려진 선수들을 다수 배출하였다. 당연히 고시엔 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진출하였다.
  • [3] 하지만 아직도 일본 고교야구에서는 알루미늄 배트를 쓴다는 점에서...
  • [4] 도루왕을 몇번 먹었던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에도 도루자가 많아 도루 성공률이 안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선 출루 자체가 안되다 보니...
  • [5] 2011시즌 트로이 툴로위츠키와 더불어 유이한 메이저리그 유격수 30홈런이다.
  • [6] 물론 NPB의 통일구 도입으로 눈에 보이는 성적이 크게 하락한 원인도 있겠지만. 아오키 : 2010년 타율 0.358 14홈런 -> 2011년 타율 0.292 4홈런, 나카지마 : 2010년 타율 0.314 20홈런 -> 2011년 타율 0.297 16홈런.
  • [7] 2013년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 지었던 순간 마운드에 모여 취했던 세리머니가 이 세리머니다.
  • [8] 2014년 4월 3일 주니치전 홈경기
  • [9] 오승환의 투구폼 흉내를 낸 적도 있다.
  • [10] 김태균과 김석류의 결혼식 땐 고등학교 선배와 함께 한국까지 날라와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해줬다. 그 반면에 김태균은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자세한 사항은 김태균 항목 참조.
  • [11] 출처는 한신 타이거스 잡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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