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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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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tendo
任天堂株式會社[2]
일본 닌텐도 공식 홈페이지
한국 닌텐도 공식 홈페이지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게임기를 만들기 이전(1889년 ~ 1983년)
2.2. 패미컴을 출시하고 게임기 = 닌텐도의 정의를 세우게 된다(1983년 ~ 1996년)
2.3. 서드파티의 이탈과 닌텐도 64 출시 이후 암흑기(1996년 ~ 2005년)
2.4. NDS, Wii 출시 이후 다시 찾아온 리즈시절(2005년 ~ 2010년)
2.5. 세대 교체 시기에 다시 찾아온 암흑기(2010년 ~ 2012년)
2.6. Wii U 출시, 하지만 8세대 스타트 대시엔 실패(2012년 ~ 2013년)
2.7. 최대의 위기, 그러나 양질의 퍼스트 파티로 숨통이 트이게 되다(2014년)
2.8. 스마트 디바이스로 진출 및 신규 콘솔 발표(2015년)
3. 현 평가
3.1. 유일한 퍼스트 파티
3.2. 스마트폰과의 전쟁
3.3. 대표인물
3.4. 하드웨어
3.5. 하드웨어의 튼튼함
3.6. 프론티어 닌텐도
3.6.1. 게임패드
3.6.2. 중고신상
3.6.3. 소프트웨어
3.6.4. 시리즈 개량
3.6.5. 논쟁거리
3.6.6. 저축정신
3.7. 닌텐도 다이렉트
3.8. 안티
3.9. 닌텐도 쇼크
3.10. 한국에서의 닌텐도
4. 대표 플랫폼
4.1. 가정용
4.2. 휴대용
4.3. 개발 중
5. 대표작
5.1. 아케이드 게임
5.2. 애니메이션
5.3. 서드 파티 독점작
6. 대표적 인물
7. 자회사 & 협력사
8. 관련항목


1. 개요

#
닌텐도 컨트롤러의 진화과정. 다만 빠진 것도 있다.[3]


세계 최대 규모의 비디오 게임 회사. 세계 최고(最古)의 비디오 게임사는 미국 아타리(Atari).[4] 그러나 게임 기네스북 2008판에는 세계 최고(最古)로 닌텐도가 등재되어있다. "창업 연도가 가장 오래된 비디오 게임 회사"라고 보면 닌텐도가 최고(最古)가 맞다. 비디오 게임 사업을 한지는 얼마 안됐지만 닌텐도 자체는 100년이 넘은 회사이므로...

본사는 교토에 위치해 있으며, 그 외 여러 닌텐도의 계열사들이 위치해 있다. 도쿄에도 닌텐도 도쿄 지부 및 주식회사 포켓몬, 크리쳐스 등이 위치해있다. 참고로 닌텐도의 미국 지사인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본사가 워싱턴 주의 레드먼드에 위치해있는데 공교롭게도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바로 옆에 위치해있다. 근처에 밸브 코퍼레이션까지 위치해있는 것까지 생각하면(…).

1986년 이후로 닌텐도는 아케이드 게임에서 철수하고 가정용 게임기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다만 세가, 남코와 합작한 트라이포스 기판으로 닌텐도의 프랜차이즈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 나오기도 하였다. 또한, 슈팅 게임은 닌텐도에서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5]

그외에도, 닌텐도는 타사(소니, MS)가 실시하는 유명게임의 후기 저가판매정책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싫어한다[6]. 또한, 게임의 연령등급이 청소년이용불가 정도의 높은 연령수준을 요구할 경우 해당 게임 패키지의 케이스를 검은색으로 처리하거나 그라데이션을 넣어 청소년이용불가 등 높은 연령수준 등급의 게임이라는 것을 명확히 표시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2. 역사

2.1. 게임기를 만들기 이전(1889년 ~ 1983년)

1889년 9월 23일 화투를 제조하는 개인 상점 「닌텐도 곳파이」(任天堂骨牌;임천당 골패)로 창업했다.[7] 닌텐도 곳파이는 화투를 만들때 손맛이 들어 치는 재미가 들게 끔 바닥에 내려칠 때 경쾌한 소리가 나도록 화투의 앞, 뒷면 사이에 석회가루를 넣었다. 열심히 화투를 치다보면 석회가루가 터져서 화투를 다시 사야했기에. 닌텐도는 누구나 손쉽게 화투를 사도록 담배 가게를 유통점으로 개척한 것이다. 이 화투는 현재도 판매하고 있고, 이 당시에 사용하던 가게는 현재도 연구소로 쓰고 있다고 한다. 닌텐도(任天堂)라는 이름이 실제로 어떤 뜻으로 작명했는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다만, "일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하늘에 맡기고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라는 사훈이 있는걸 봐서는 그런 뜻이 아닌가 추측을 하게 된다. 근데 지금 닌텐도의 행보를 보면 임의로 즐길 수 있는 게임기의 천당이라는 뜻이 일지도 모른다.[8]

조부의 죽음으로 야마우치 히로시가 뒤를 이어 닌텐도의 3대 사장이 된다. 원래는 데릴사위인 그의 아버지가 이어야 하지만 실종(잠적)[9]으로 1949년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중퇴하고 22세의 나이에 뒤를 잇는다.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 재질 럼프 카드를 생산해(1953년) 팔아 히트를 치고, 디즈니 캐릭터들을 인쇄한 디즈니 트럼프(1959년)로 다시 한번 대히트, 일본 최대의 카드생산회사가 된 동시에 세계 최대의 카드 생산회사를 목표로 삼게 된다.

그러나 야마우치가 견학을 간 세계 최대의 카드 제조회사인 미국의 US Playing Card가 생각보다 초라한 조그만한 회사였음에 충격을 먹고, 카드를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이후 이것저것 사업[10]을 벌여보지만 전부 실패해서 도산 위기에 처한다.

결국 야마우치 사장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느낌에서 아이들의 놀이기구를 만들어 보자."라고 결심, 아날로그 장난감들로 원펀치 투펀치 잽을 날리며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반에 만능팔인 「울트라 핸드」를 개발했고, 야구공을 칠 수 있도록 던져주는 야구공 피칭 머신인 「울트라 머신」, 잠수함의 잠망경을 닮은 「울트라 스코프」등 일련의 울트라 시리즈를 발표했다. 울트라 시리즈가 히트하자 닌텐도는 태양전지와 반도체 기업이던 일본 샤프의 우에무라를 영입해 장난감용 레이저 광선총을 개발했다. 특히 닌텐도는 기발하게도 오일 쇼크로 문닫은 볼링장들을 인수해 광선총용 실내 사격장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또 여담이지만 잭커 전격대에 나오는 트럼프들은 닌텐도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2.2. 패미컴을 출시하고 게임기 = 닌텐도의 정의를 세우게 된다(1983년 ~ 1996년)

그래도 이걸로는 아직 많이 부족했고, 업계에서 버티고 있는 대기업들을 이길 수단을 찾던 닌텐도가 결정한 것은 당시로서는 첨단 산업이었던 전자 완구였다.

전자 게임기 진출 첫 제품인 TV 게임 15,TV 게임 6 출시 당시(1977년) 광고. 광고에 나오는 게임은 (Pong).

멋진 볼의 변화, 선명한 9색 컬러가 게임의 종류에 따라 달라집니다.
라켓의 크기나 볼의 속도가 조절가능해서 기술수준이 높은[11]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보는 TV에서 놀이용 TV로, 15가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컬러 TV 게임 15.
9,800엔의 컬러 TV 게임 6도 있습니다.
자막: '컬러' 텔레비전 게임 6 - 9,800엔/ ~15 - 15,000엔
- 닌텐도 -


번역은 삼상교류님께서 수고해주셨다.

닌텐도의 전자 완구 사업 방향 전개는 그 유명한 패미컴의 大히트로 이어진다.

이 시기는 아타리 등이 과거 아무 게임이나 자기네 콘솔로 만들게 해서 E.T.와 같은 막장 쿠소 게임을 내놓은 끝에 파산하는 아타리 쇼크 사태로 큰 손실을 입어 비디오 게임계는 아예 죽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 닌텐도는 게임에 필요한 부분 이외의 기능은 모두 없애버려 성능을 극대화시키고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를 중시하였으며, 당시에 시장을 이끌어나가고 있던 몇몇 회사를 세컨드 파티로 영입했다. 또한 닌텐도는 먼저 소프트를 테스트해서 일정 이상의 퀄리티인 게임만 닌텐도 라이센스를 주는 방식(서드파티 제도)을 도입, 전체적인 게임의 퀄리티를 높였다.

닌텐도의 패미컴은 가정용 게임기 업계를 살려내었고 덕분에 서구권에서는 닌텐도를 게임기 업계를 살려낸 구세주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12] 패미컴 시절에는 닌텐도라는 명사가 게임기를 뜻하게 될 정도였다고 하니 그 당시의 열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DS/닌텐도 3DS를 '닌텐도'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이후 슈퍼패미컴 역시 패미컴의 뒤를 이어 일본 양대 RPG(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전부 닌텐도로 몰림으로써 경쟁하던 플랫폼이었던 PC엔진메가드라이브를 물리치고 일본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다만 서구권에서는 아케이드 게임의 이식에 충실했고 서앙 게이머들의 입맛에 맞는 액션과 슈팅 장르가 많았던 메가드라이브가 슈퍼 패미콤보다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여담으로 패미컴과 슈퍼패미컴이 연이어 히트하던 90년대 초반 닌텐도는 이미 경상이익만 1천억엔을 넘기는 회사였는데[13], 이건 당시 삼성, LG(당시 금성), 대우, 현대 등등의 한국 10대 그룹 경상이익 총합을 혼자서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한국 입장에서는 사원 700여명 남짓의 '작은' 기업이 애들 장난감이라 생각하던 게임기 하나로 이정도의 결과를 내놓자 새삼 거대한 일본의 경제력과 닌텐도라는 회사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서[14] 삼성, 현대, 해태등등이 게임기 사업에 발을 들이는 계기가 된거 같기도 한데[15] 결과는.. 사실 닌텐도라는 회사는 일본내에서도 신기한 취급을 받았다. 단적으로 당시 비슷한 매출을 기록했던 후지츠만 해도 사원수가 5만여명이었으니. 사원 1인당 경상 이익이 1억엔대인 회사는 당시 잘나가던 일본내에서도 최초이자 거의 유일한 기록이었다고.

2.3. 서드파티의 이탈과 닌텐도 64 출시 이후 암흑기(1996년 ~ 2005년)

그러나 닌텐도가 점차 슈퍼 갑으로 성장하여 독점이 강해져 점점 서드파티들이 불리해지기 시작하자 수많은 서드파티들이 다른 회사로 이전하였으며, 닌텐도64의 삽질은 소니플레이스테이션에게 치명타를 맞게 했으며, 게임큐브에서 결국 플레이스테이션2에게 결정타를 맞아 거치형 시장은 간신히 수지타산을 맞추는 수준까지 몰락하고 말았다.

사실 플레이스테이션의 제작회사인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는 원래 닌텐도에게 부품을 납품하던 일종의 서드파티 회사였다. SCE는 닌텐도와 합작해서 슈퍼패미컴용 CD 드라이브를 개발하려고 했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 일이 추진되었지만 결국 닌텐도는 이를 취소해버렸다. 롬 카트리지 시스템이 닌텐도에서 더 이익이 있을거라는 계산하에서였다. 이 점은 닌텐도64를 참고하기 바란다. 결국 SCE는 만들던 것을 가지고 자체적으로 플레이스테이션을 제작. 단숨에 게임계를 제압해버렸다. 닌텐도는 소니와 CD 게임기 등에 대해 평가절하 했지만 결국 당대의 승자는 소니가 되었다.

하지만 야마우치 사장의 "오락산업은 언제 불황이 될지 모르고 언제 호황이 될지 모른다." 말 덕분에 전성기 시절에 모아놓은 자본력으로 적어도 회사가 기울어지진 않았으며, 닌텐도 64로 나온 슈퍼 마리오 64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는 3D 게임의 기본이 되는 등 나름대로 영향력을 펼치기도 했다.

이 시기 즈음에 휴대용 게임기 산업에서는 게임보이가 완벽한 패자로 군림했다. 1989년도에 나오자마자 빅 히트를 친 게임보이는 1996년까지 전세계 4000만대를 갈아치우게 되고 90년대 중반, GB의 수명이 다 되어간다고 생각될 무렵에 등장한 포켓몬스터의 신화적인 히트는 휴대용 시장을 다시 한 번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어내었다. 그래도 아직 휴대용 시장 자체가 틈새시장에 불과한 시점이었던지라, 회사 전체의 수입은 전성기때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고 그나마의 수입도 매 해 떨어지고 있었다. 이 상황은 게임보이 어드밴스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NDS의 발매 이전까지는.

2.4. NDS, Wii 출시 이후 다시 찾아온 리즈시절(2005년 ~ 2010년)

소니가 PS2의 빅 히트를 발판으로 휴대용 게임시장 역시 넘보기 위해 PSP를 출시하였을 때, 닌텐도는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동시기에 NDS를 출시한다. 그리고 닌텐도의 그동안의 경험과 역량, 그리고 2002년에 새로 취임한 사장인 이와타 사토루의 야심찬 계획을 담고 출시된 NDS는 그간 게임기 시장의 주류였던 거치형 콘솔마저도 압도하는 히트를 쳐, 휴대용과 거치형을 모두 아우르는 게임업계 전체의 주류시장을 차지하게 된다.[16]

2004년 말에 출시한 NDS는 듀얼 스크린과 터치 스크린이라는 획기적인 기획 등으로 2005년 쯤에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다. 덕분에 역대 휴대용 콘솔 1위를 차지하게 되고, 그 히트를 발판으로 하여, 2006년에 닌텐도는 마침내 체감형 게임기인 Wii를 출시. 이 역시 총 기기 판매량 1억을 넘는 대박을 치게 되고, 겜덕후들에게 "닌텐도가 부활했다!" 라는 소리를 들으며 주목을 다시금 받게 된다. 이후 2007년엔 한국닌텐도도 설립하게 되고, 한국에서도 오랜 암흑기 끝에 대박을 치게 되었다. 이 시기엔 패미컴과 슈퍼패미컴의 영광을 사실상 되찾았다고 봐도 무방했을 정도다. 그리고 2010년 5월에는 소니와의 오랜 싸움에서 승리하였음을 선언하였다. 헌데...

2.5. 세대 교체 시기에 다시 찾아온 암흑기(2010년 ~ 2012년)

nintendo_operincome.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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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지옥까지
아아 과거의 영광이여
2011~2012년 연말에 보이는 파란색은 젤다랑 Wii U 로 번거다 역시 연말의 닌텐도
2009년 상반기부터 순이익이 전년대비 52%[17]가량 줄어들며 실적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2010년 상반기에는 Wii와 NDS의 판매 실적이 엔고현상과 3DS 출시연기, 소프트웨어 판매 저조로 인해 악화되면서[18] 전년대비 매출액 34% 하락, 영업 이익 48% 하락, 순손실 20억엔을 기록하여 7년만에 흑자에서 적자전환(#1, #2, #3)이라는 성적표를 받았고, 결국 2010년 전체 순이익도 전년대비 약 74% 가량 가파르게 하락(#)하는 등 갈 길이 험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 이후에도 닌텐도는 다시 일어서지 못하였다. 2011년 4~6월(2분기) 실적은 직전 분기 실적인 360만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215만대 (3DS의 71만대 판매, 구세대 NDS 144만대 판매, 합쳐서 215만대.)[19]였고, 순손실 377억엔(사상 최악)이 났으며, 이 소식이 전해진 날엔 닌텐도 주가는 하한가(-20%)를 달리기도 했다. 이에 이와타 사토루 사장은 책임을 지고 자신의 급여를 절반으로 줄이고, 2011년 순이익 예상치를 1100억엔에서 200억엔으로 80% 이상 대폭 줄이고(2011년 10월에 이걸 다시 -200억엔으로 수정하게된다. 아랫 문단 참조), 출시한지 6개월도 안된 닌텐도 3DS를 40% 할인판매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닌텐도DS가 가지고 있던 모바일 게임시장을 아이폰 등이 거의 완전히 잠식했고 가격 경쟁력도 매우 떨어졌고[20]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사용자들의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1, #2, #3, #4, #5)

2011년 10월 27일, 닌텐도는 다시 한 번 충격의 실적 발표를 하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기 결산을 발표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사상 처음으로 상반기 영업적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닌텐도는 2011년 4월부터 9월까지 573억엔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으며 매출액은 전년 동기인 3631억엔에 비해 40.6%가 감소한 2157억엔을 기록하였고 닌텐도 3DS가 2011년 4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세계적으로 1600만대가 팔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정작 출시 후 2011년 9월까지 6개월동안 팔린 물량은 307만대이었다고 한다. 2011년 3월 말에 8128억엔이었던 현금 보유액도 9월말 기준 5912억엔으로 급감하였다. 게다가 엔고 현상이 더욱 심해지면서 순손실 702억엔(약 1조원)을 기록하였고 이 영향으로 닌텐도는 2011년 실적 전망을 처음 순이익 1100억엔에서 7월에 순이익 200억엔으로 하향한 후 3개월만에 순손실 200억엔으로 수정하게 되었다. 이 전망치가 현실화 될 경우 닌텐도는 1981년 처음으로 실적 발표를 시작한 이후 사상 처음으로 연간 순손실(즉, 적자)을 기록하게 된다.(#1, #2, #3, #4, #5, #6, #7)

그리고 그 예상은 2012년 1월 27일, 닌텐도가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업손익 전망치를 10억엔 흑자에서 450억엔 적자로 하향 수정하고 당기순익 예상치도 순손실 200억엔에서 순손실 650억엔으로 하향 수정하면서 점점 현실화가 되어가는 중이다. 최종 결과는 회계 연도가 끝나는 3월 말에 나온다. 참고로 기사의 사진은 기자회견 도중 사과하는 이와타 사토루 사장의 모습이다.(#1, #2)
#재무제표를 통해 알아보는 닌텐도 현 상황

DS와 Wii로 인해 한때 7만 가까이 도달했던 닌텐도의 주가는 이후 계속해서 떨어져 2012년 1월 27일 기자회견 당시 9980까지 떨어졌다가 10250으로 회복하는등 큰 혼란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단기 수익이 하락한 가장 큰 이유는 외화(달러)로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엔고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120원 하던게 80원 이하로 떨어진 셈. 흠좀무 하지만 일본 정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1달러당 75엔을 바라보고 있는 2011년 11월 현재, 엔고 현상이 떨어질 날은 머나먼 일인듯 하다. 하지만 닌텐도는 막대한 환차손을 보면서도 가격을 조정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2012년 4월 26일에 2011 회계년도 결산 발표가 났다. 결론은 상장 이후 50년만에 처음 겪어보는 적자. 닌텐도는 2011년 회계연도(2011년 4월 ~ 2012년 3월) 에 423억엔(약 5909억원)의 순손실을 냈다고 발표했다. 오로지 엔고에 따른 달러자산 손실 때문이었까? 물론 엔고도 영향이 없다고 할수는 없으나, 엔고를 감안하고 보아도 영업적자가 373억2000만엔이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36% 줄어든 6476억엔(약 9조470억원)이었다. 엔고와는 무관하진 않으나 대개의 원인은 쉽게 말해 안 팔려서 적자 난 것.(기사)

일본 내 언론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10년 들어서는 일본내에서 Wii가 플레이스테이션3보다, NDS가 PSP보다 적게 팔리기 시작했다. 3DS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소프트 판매량은 미묘한 수준. 물론 세계로 눈을 돌리면 아직까지는 소니나 마이크로소프트에 비해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2.6. Wii U 출시, 하지만 8세대 스타트 대시엔 실패(2012년 ~ 2013년)

비록 과거에는 '닌텐도 = 최고'라는 등식이 성립했을 지 몰라도 Wii U 출시의 평은 그리 좋지 못하게 되었다. 소매점들은 게임큐브의 재림을 우려할 정도로 Wii U기대 이하의 판매량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경쟁사들과 비교해 킬러타이틀이 적은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사람들이 할 게 없다는 것을 계속 지적하고 있다. 2013년 초 현재 닌텐도에서 낸다고 한 작품은 많지만 출시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시기를 서드파티가 감당해 주면 좋겠지만, Wii U의 성능이 차세대기(PS4엑스박스 원)에 비해 좋지 못해 서드파티의 참여가 좋지 못하다.

물론 꼭 그래픽이 좋아야만 좋은 게임인 것은 아니나, 현대의 게임은 대체적으로 좋은 그래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이를 위해서 빠른 연산 속도와 메모리 확보가 필수이다. 이 때 성능이 낮은 Wii U로 엇비슷한 퍼포먼스를 보이려면 다른 콘솔에서보다 더욱더 최적화가 잘 이루어져야만 하고 이는 많은 비용으로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저사양 게임을 만들 때 비용이 덜 드는 이점을 살리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최적화를 잘 한다고 해도 쓰인 부품들의 세대가 다르다 보니 차세대기에 적용된 고급스러운 효과를 적용하기는 힘들다.

개발비가 덜 드는 것도 아니면서 그래픽은 더 안좋고 거기다 판매량마저 시원치 않으니 서드 파티는 점점 닌텐도를 외면해 가고 있다. 그리고 게이머들에게 친숙하지 못한 Wii U의 패드를 아직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게임 제작사가 적은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하긴 닌텐도 퍼스트 파티 게임조차도 패드를 잘 활용한 게임이 별로 없으니 서드 파티로서는 더욱 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닌텐도가 여태까지 하이스펙 타이틀의 개발을 등한시했던 것도 발목을 잡고 있다. Wii U가 닌텐도 최초의 HD 그래픽을 제공하는 하드웨어로, 당연히 닌텐도는 여태까지 HD 그래픽의 게임을 개발한 경험이 없는지라 게임 개발과정에서 많은 난항이 벌어졌고, 덕분에 출시가 예정돼있던 퍼스트 파티 타이틀의 투입이 대폭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서드 파티의 게임이 잘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퍼스트 파티 타이틀까지 발매가 지연되자 Wii의 막바지와 마찬가지로 소프트 부족 현상이 일어났고, 결국 Wii U는 스타트 대쉬에 실패.

하지만, 닌텐도 3DS는 사정이 나쁘지 않은 편으로, 제2의 파판7 사태라고도 불리는 몬스터 헌터 4의 3DS 출시를 전환점으로 많은 킬러 타이틀을 내놓고 있다. 경쟁기인 PS Vita가 힘을 쓰지 못해 DS - PSP 시절 시장을 이등분[21]했던 것과 달리 사실상 원탑체제를 유지중이다. 닌텐도의 재정을 흑자로 돌릴 정도까지는 아닌 듯 하지만. 그리고 처음에는 비난 일색이었던 2DS 역시 막상 출시된 뒤에는 호의적인 평이 많이 늘었다.

2.7. 최대의 위기, 그러나 양질의 퍼스트 파티로 숨통이 트이게 되다(2014년)

Wii U의 판매부진 및 여러 악재가 더해지면서 닌텐도가 기존의 노선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판단인가에 대한 의혹은 계속 발생하였으며, 결국 2014년 1월 발표된 2013년 손실이 발표되면서 그 우려는 현실화 되었다. 결국 닌텐도는 2014년 1월 30일 새로운 경영방침을 발표했다. 해당 설명회의 실시간 트윗을 모은 글. 설명회 전문.

새로 발표한 경영방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닌텐도 게임을 다른 플랫폼으로 출시할 일은 여전히 없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정책은 그대로 유지한다.
  • 하드웨어 개발 강화. 이는 계속 이슈가 되었던 닌텐도 플랫폼의 저성능에 대한 자책으로 보고 있다.
  •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출시할 일은 없지만, 스마트폰을 이용한 서비스는 올해 런칭으로 예정. 이 어플리케이션은 유저-유저 및 유저-닌텐도 간의 소통을 위한 장이 될 것이라 한다. Mii버스 모바일 버전이 아닐까라는 추측이 있다.
  • 스마트폰 서비스는 디바이스 베이스가 아닌 ID 베이스로, 휴대기기/플랫폼과 공유. 이는 닌텐도가 이상하게 고집을 부려왔던 디바이스 귀속 방침을 버린다는 의미로도 해석되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 2015년부터 신흥시장 진출. 여기서 신흥시장이란 건 다른 플랫폼을 말하는 게 아니라 게임이 아닌 다른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며, 건강과 관련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다음 10년을 투자할 것이라고 한다.
  • 유연한 소프트 가격 도입
  • 자사 캐릭터 IP를 게임 이외의 분야에도 적극 활용 예정[22] - 사실 이는 이전에도 애니메이션 등의 미디어 믹스가 된 전례가 많았다. 그리고 출시된 것이 게임 연동 피규어인 아미보.
  • Wii U에 버추얼 콘솔로 DS 소프트 출시

2014년 4월 28일과 5월 2일. 일본 다이아몬드誌 에서 이와타 사토루 사장이 이를 재확인시켰다. 원문 전편 원문 후편 번역
  • 닌텐도는 시대에 맞추어 유연하게 자신을 변신시켜해온 기업이다. 닌텐도를 비디오 게임기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황스러울것.
  • 야마우치 히로시 前 사장이 엔터테이먼트 사업 이외의 영역에 진출하지 말라고 했으나 "엔터테인먼트 = 비디오 게임" 으로 생각하진 않았다.
  • 특정 타겟을 노리는것이 성공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것이 상식이나, 닌텐도의 개성 중 하나는 대상 고객을 과도하게 노리지 않는 것이며, 이렇게 폭 넓은 고객에게 진심으로 접근하는것을 추구하는 회사는 적기 때문에 닌텐도는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단기적으로 보면 확실히 효율이 나쁠지도 모르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닌텐도 DSWii가 태어 났다고 생각한다.
  • Wii는 발매 직후부터 단번에 퍼졌던 느낌이 있기 때문에 오해 받기 쉽지만,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는 모두가 순식간에 퍼지는 것이 아니라, 소문으로 서서히 퍼지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이해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
  • 세상이 생각하는만큼 닌텐도는 스마트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부 성공 경험이 시끄럽게 전달되는 한편(반대로), 그늘에서 몸부림 치고 있으며, 과거부터 다양한 실패도 거듭하고 있다. 지금은 세상이 요구하는 '똑똑한 성공 "이라 쓰고 원가절감이라 읽는다을 얻기위한 도움 닫기 기간 인지도 모르겠다.
  • 하드·소프트 일체형 비디오 게임기를 경영의 핵심으로하는 것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다.

2014년 1월 오는 3월 끝나는 2013회계연도에서 당기 순손실 250억엔(약 25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는데, 미국 시장에서 3년 연속 적자를 낸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닌텐도가 Wii의 후속작으로 야심차게 내놓은 Wii U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 속에서 극심한 부진으로 겨우 500만대가 넘어서는, 당초 계획상 판매 대수였던 900만에 크게 못미치는 판매 대수인데다, 출시 한달만에 300~400만 판매를 넘어선 플레이스테이션4엑스박스 원 등과 비교되어 더욱 참혹한 결과로 비추어지고 있는 상황. 언론등에서는 대체로 닌텐도가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게임 시장에 진출하지 않은것이 오산이었고, 무엇보다 신형 Wii가 스마트폰 게임과는 차별화된 그래픽을 가진 게임을 원하는 유저들을 사로잡기에는 성능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닌텐도의 이와타 대표가 "게임기를 수만엔에, 게임 소프트웨어를 수천엔에 파는 전통적 방식이 힘을 잃었다"라는 발언을 하여 닌텐도의 자사 하드웨어 집중 전략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관측을 낳기도 했지만, 보수적인 경영 스타일을 고수하는 닌텐도가 '젤다'나 '마리오' 같은 자사의 초히트 게임들을 닌텐도의 하드가 아닌 스마트폰용 게임으로 '내던지는' 유래없는 선택을 하는건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상황.

그리고 결국 실적 부진에 대한 우려로 2014년 1월 20일 닌텐도 주가가 한때 전 거래일(17일) 대비 19%나 밀리면서 1990년대 이후 최대폭의 하락을 기록했다. 주가가 큰폭으로 하락하는건 주식회사라면 흔한 일이지만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에 허덕일때도, 2008년 금융위기때도 아랑곳없는 모습을 보이던 닌텐도라서 언론의 주목을 모았다. 다만 떨어진 주가는 얼마 안 있어 다시 회복세를 보였다.

2014년 4월 22일 닌텐도는 대만에서 닌텐도 제품을 취급하던 자회사 닌텐도 유한 회사를 해산하고 대만쪽 직원들은 대부분 해고한 다음 모든 업무를 홍콩 닌텐도로 이관한다고 밝혔다. 닌텐도 유한 회사는 1991년에 설립되어 닌텐도가 지분 100퍼센트를 보유한 형태로 23년간 이어져온 기업이었으며, 뉴스등에서는 이 해산을 닌텐도 본사의 적자로 생긴 부진으로인한 자회사 축소의 일환으로 보고있다. 평소 닌텐도 최고 경영자등이 공공연하게 '현금을 잔뜩 보유하고 있으므로 구조조정 같은거 안해도 괜찮다'고 떠들던 닌텐도였지만 이번 사태로 어디까지나 일본 본사나 적어도 중요 지사 한정인게 되어버렸다.한국 닌텐도는 괜찮은가?? 한편으로는 2014년 1월 중국 정부가 상하이 자유무역지구 개방과 함께 14년간 금지해온 콘솔 게임 봉인을 해제함에 따라 본격적으로 중국 대륙쪽에 판매 중심을 옮기기 위한 조치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다. 하나의 중국을 의식한게 아니냐 하는것.

2014년 5월 7일 2013 회계연도(2013년4월~2014년3월) 실적 발표를 통해 매출 5천717억엔(5조7천490억원), 영업손실 464억엔(4천666억원), 순손실 232억엔(2천333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번 매출은 지난 1월 발표된 예상 매출 5천900억엔(5조9천330억원)에 못 미치는 결과다. 닌텐도 3년 연속 적자에 이와타 사토루 대표는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책임을 완수하는 것은 그만두는 게 아니라 사업의 추진력을 회복시켜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는 것”이라고 답해 연임 의사를 확고히 내비쳤고 새로운 사업 추진력으로 안정적인 이익을 창출할 것”이라고 밝히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2014년 10월 29일 2014년 3분기에 영업순손익을 242억 엔(2,343억원)의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Wii U마리오 카트 8등이 꾸준한 실적을 거두고 3DS에는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즈 시리즈등의 킬러 타이틀이 많이 나온 덕에 기기견인이 상당히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또한 예상치를 훨신 윗도는 수익이 나온 것은 또 엔저로 인한 환차익으로 재미를 보아서 이기 때문이다.

2015년 1월 발표한 2015년 3월기 제3사분기 결산발표에서는 나쁘지만은 않은 결과를 발표했다.
  • 3DS 총 708만대
  • Wii U 총 303만대

  • 포켓몬스터 오메가루비·알파사파이어 935만장
  •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 3DS 619만장
  • 마리오 카트 8 477만장
  •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 Wii U 339만장

분기 순이익은 595억 1500 만엔으로 작년 동기 대비 5배에 가깝다. 다만 이건 작년 동기가 워낙 폭망해서 그런거고(...) 전반적으로 볼 땐 나쁘지만은 않은 매출을 올렸으며 그 전 분기에 이어 일단 흑자가 나왔다는데 의의가 있다. 일단 닌텐도가 완벽하게 회복했다고 말하긴 그렇지만 적어도 심각한 경영난에서는 벗어나는데 성공한 걸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이 발표에서 Wii U는 퍼스트/세컨드 파티 게임(또는 서드 파티 독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증명하였으며 이는 Wii U가 앞으로 출시될 퍼서트/세컨드 파티 게임들에 크게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의미다. 2015년 라인업도 만만치 않은 타이틀이 있고 그 중엔 젤다의 전설 신작도 포함되어 있지만 퍼스트/세컨드 파티 특성상 제한될 수 밖에 없는 타이틀의 양 때문에 이 소수 기대작들이 얼마나 견인해 줄 지 관건이다.[23] 마리오와 올스타들이 막아놓은 것을 젤다가 얼마나 하드캐리할지 지켜보자

2.8. 스마트 디바이스로 진출 및 신규 콘솔 발표(2015년)

2015년 3월 17일 17시경, 일본의 모바일 게임업체인 DeNA와 업무・자본 제휴를 맺는다는 취지의 공동기자발표회를 통해 자사 IP를 스마트 디바이스로 확대해 나갈 것을 발표하였다. 기자회견 전문 번역 이는 이전부터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할 생각이 없다고 발언해온 이와타 사토루 사장이 결심한 사항으로, 다소 경직된 문화를 가진 닌텐도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한 닌텐도 IP의 게임은 2015년 연내 선보일 예정으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다만 UX를 중요시 여기는 닌텐도답게 기존에 나온 게임의 이식작 등은 내놓지 않을 것이며 철저히 모바일엔 모바일 전용 게임을 내놓을 거란 방침이다.

또한 스마트 디바이스로의 진출과 더불어 이와타 사장은 '코드네임 NX'라는 차기 게임전용 플랫폼을 발표하며 이후로도 콘솔 플랫폼을 소홀히 하진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며, 차기 플랫폼의 정보는 2016년에 발표하고 싶다는 발언을 하며 게이머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아직 Wii U가 발매된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라 발표가 너무 이르다는 평도 없진 않지만 게임보이 어드밴스도 애뮬레이터 문제 등으로 인해 2001년 발매 이후 불과 3년 뒤인 2004년에 닌텐도 DS에게 세대 교체를 내준 것을 생각하면 닌텐도 측에선 더 이상 Wii U를 끌고 가기엔 힘들것이라 판단하고 재빨리 9세대로 세대 교체를 하려는 생각을 한 듯하다. 몰론 NX가 거치형 게임기일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 발표 후 닌텐도의 주가는 수직상승하여 2011년 6월 이후 약 3년 9개월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3. 현 평가

동양, 서양권을 막론하고 닌텐도의 평가 및 입지는 독보적이다. 하드웨어의 경우, 1980년대 초 아타리 쇼크를 종식시키는 동시에 게임계에 최강자로 올라선 경험이 있으며, 게임패드에 십자키나 아날로그 스틱, 진동 같은 기능을 넣는 참신한 먼저 시도함과 동시에 몇몇 기능은 게임패드의 표준이 되었다. 이 시도는 지금까지도 3D 콘솔, 리모컨 패드, 모션 기능, 터치스크린 게임패드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2004년 이전까지는 하드웨어의 성능은 언제나 타 기종들보다 우월했었고, 그 덕분에 닌텐도의 소프트웨어들은 그 버프를 받아 우수한 성능을 보여왔다. 그리고 2010년대 접어 들어서도 콘솔을 만드는 회사 중 닌텐도가 가장 오래되었다는 점도 알아둬야 한다.

소프트웨어(퍼스트/세컨드 파티)의 경우는, 가족적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절대 단순함, 유치함은 없었으며 언제나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마리오 시리즈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액션 플랫포머 게임의 한 획을 그엇고, 슈퍼 마리오 64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는 지금의 3D 게임의 틀이 되었다. 또한 역대 게임 판매량 1~10위의 게임 전부와 100위 안에 드는 게임 대부분이 전부 닌텐도에서 나온 게임이라는 점에서 역대 소프트웨어 매출 역시 최강이다. 대부분의 닌텐도 사 게임은 아무리 옛날에 나왔어도 지금 해봐도 재미있는 경우가 많고, 그 덕분에 고전게임으로 인기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그에 만만치 않게 안티도 많다. 가장 큰 이유로는 시리즈 재탕이 있으며[24] 그 외에도 Wii와 Wii U의 기믹을 위한 하드웨어적 희생등으로 인해 코어게이머 층에서는 팬과 안티가 확실하게 갈린다. 안티쪽의 대표적인 리뷰어로는 Zero Punctuation의 Yahtzee가 있다.[25] 그렇지만 그러한 시리즈 재탕 말고도 무시무시할 정도의 게임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사람들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다.

2010년대 현재 게임 업계에서 이전의 압도적인 강자의 모습에서 많이 퇴색된 상태이다. 거치형에서는 Wii가 초기 폭발적인 판매량으로 최강자의 자리를 차지했으나 그에 못지 않게 빠른 쇠퇴를 보여줘서 경쟁기들이 근처까지 치고 올라왔으며[26] Wii U도 Wii의 쇠퇴가 그대로 이어졌는지 Wii와 같은 강력한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휴대형에서도 3DS가 PS Vita에 비해 크게 선전하고 있지만 예전 DS 시절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편이다.

소프트웨어 쪽도 마찬가지로 일본 쪽에선 거의 최강이나 다름없으나 미국 게임사인 일렉트로닉 아츠[27]액티비전-블리자드와는 아직 라이벌 수준으로 경쟁하고 있다.

서양권에서도 상당수의 코어게이머 계층은 마리오와 포켓몬 같은 프랜차이즈는 슬슬 죽을 때가 됐다고 하는 사람도 나오기 시작하는 걸로 봐선 아무래도 영향력 자체는 느리게나마 조금씩 잃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

최근 시장에서는 아이패드와 아이폰 외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과 페이스북의 소셜네트워킹(SNS) 게임의 영향으로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입지가 적어지고 것으로 보고 있으며, 더 이상 닌텐도의 상대는 MS소니가 아니라 애플구글로 두어야 한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닌텐도 DS나 닌텐도 3DS는 일시불로 따로 구매해야 하는 반면 스마트폰은 통신사의 보조금과 약정할부 + 휴대폰을 사면 게임기능이 따라오는 상황이다보니 가격자체는 고가형 스마트폰이 비싸지만 구매난이도는 스마트폰이 훨씬 낮다. 이런 상황에서 질은 떨어지지만 저렴한 신작 게임들로 엄청난 물량공세를 펼치고 있으니 고래싸움에 새우등터지는 격이다.

아직 스마트폰의 정전식 스크린이 멀티테스킹을 하지 못하고 조작감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어 터치위주의 단순한 게임들이 흥행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미 시스템상으론 다른 게임들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데다[28] 조작감을 신경쓰는 사람들은 위한 게임전용 확장 패드 제품도 있어서 있어서 불편한것만 감수하면 휴대용 게임기를 쓰는것보다 더 경제적으로 조작감문제를 해소 할 수 있다. 이미 스마트폰은 생필품으로 여겨지고 있고,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는 문제이며 이미 기존 휴대용 게임기가 할 수 있는건 대부분 할 수 있기에 앞으로도 휴대용 게임기와의 격차는 더 좁아질 전망이다.

이에 비해 닌텐도 3DS가 지금은 흥행을 하고 있지만 하드웨어 판매로 이득을 보는 기존의 방침을 깨고 처음 3DS가격에서 1만엔을 내리면서 생산단가 절감을 위해 후속기종으로 휴대용과 거리가 먼 3DS XL과 기계의 컨셉 자체가 한계인 닌텐도 2DS를 출시하며 한국과 북미에서 기존의 3DS를 단종시키는 판매전략을 써서 얻은 성과다. 그나마도 스마트폰 때문에 게임시장 점유율이 DS보다 더 떨어졌기에 3DS는 잘팔려도 닌텐도의 상황이 좋아지진 않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닌텐도는 세간의 예상을 깨고 스마트폰이 닌텐도의 경쟁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건강사업을 차기 산업으로 선택했다. 그래도 이쪽 부분에선 2015년에 스마트폰으로 닌텐도 캐릭터를 내준다고 하면서 여러모로 해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담으로 닌텐도 출신의 캐릭터, 작품들과 쌍벽을 이뤘던 다른 경쟁상품들은 전부 그 아성을 이기지 못하고 나락으로 추락해 버렸다. 대표적인 예가 닌텐도의 간판스타 마리오의 유일무이한 라이벌이었던 소닉 더 헤지혹. 그렇게 오랜 세월 나락을 헤매다가 최근에야 소닉 제너레이션즈로 부활... 할 줄 알았지만 바로 다음 작품으로 또 다시 뼈아픈 데미지를 입어버렸고, 연이은 더블 콤보로 정말 아프게 두들겨 맞았다. 록맨 시리즈를 만든 캡콤도 처참한데, 록맨 시리즈는 패미컴으로 나온 록맨 클래식 시리즈록맨 X로 어느 정도 경쟁을 했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기존 작품의 우려먹기로 연명하다 록맨 X7로 거하게 몰락하고 록맨 9, 록맨 10으로 잠시 부흥을 하기도 했지만, 2012년 록맨 Xover로 처참하게 몰락, 결국 시리즈가 아예 끝나기 직전에 몰렸다. 그러고 보니까 이 둘은 메인 제작자이자 아버지였던 들이 시리즈 제작에서 손을 떼고 퇴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포켓몬스터도 마찬가지로 초기엔 디지몬 시리즈와 경쟁한 바가 있었으나 지금의 포켓몬스터는 디지몬 시리즈를 넘겨버린 지 오래다.

특이하게도 크리스마스에서 새해까지 이어지는 연말 기간동안에는 항상 강세를 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온 가족의 닌텐도' 이미지가 먹혀들어가서인지 연말 판매량이 높은 편으로, 2014년 연말의 경우 패미통이 집계한 2014년 12월 22일 ~12월 28일 하드 및 소프트 판매량만 봐도 최고 판매 30위 중 23개가 닌텐도 콘솔 게임이었고, 3DS가 40만대 이상 팔렸으며, 심지어 WiiU(4만9천대)는 이 기간동안 PS4의 판매량(3만대)을 추월하는 연말의 기적이 일어났다. 대한민국에서도 연말동안 Wii(...)가 가장 많이 팔렸다고 한다.게임메카 기사

3.1. 유일한 퍼스트 파티

닌텐도는 현존하는 메이저 게임 회사 중 유일하게 순수 게임 개발사이기도 하며 콘솔을 만드는 회사이기도 하다. 다른 경쟁 콘솔들은 전부 직접 게임 개발은 하지 않고 콘솔 생산 및 게임 퍼블리싱만 하는 반면[29] 닌텐도는 최초 콘솔을 만들었을 때 부터 지금까지 직접 퍼스트 파티 게임을 만들어 왔다. 과거에는 이렇게 게임 회사가 자신만의 콘솔을 만드는 게 그다지 신기한 것도 아니었지만 드림캐스트를 마지막으로 세가가 콘솔 사업을 접은 뒤 닌텐도는 유일하게 남은 콘솔을 만드는 퍼스트 파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닌텐도는 게임기를 만드는 회사, 게임을 만드는 회사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진 회사이며, 닌텐도 게임은 닌텐도 콘솔로만한다는 특징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닌텐도의 퍼스트 파티 타이틀이 엄청난 인지도를 가진 것들이라 결국 강력한 퍼스트 파티 라인업이 닌텐도 콘솔의 강점이된 것이다.

그러나 경쟁기기들이 서로를, 아니 정확하겐 PC를 점점 닮아가고 있는 반면 Wii와 Wii U는 독창적 인터페이스 + 시대에 동떨어진 성능을 뽐내자 서드 파티들이 하나 둘 등을 돌리게 되었고, 결국 타 플랫폼으로 멀티 런칭하는 타이틀도 닌텐도 기기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면서 닌텐도의 갈라파고스화는 심해져 결국 강점이었던 퍼스트 파티 타이틀은 현재 유일한 강점이 될 처지에 놓였다.

3.2. 스마트폰과의 전쟁

2011년 8월 10일에 나온 블름버그 기사에 의하면 닌텐도의 주주(투자자)들이 닌텐도의 게임들을 아이폰 등에 출시할 필요성이 있다고 이와타 사토루 사장에게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1, #2)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폰아이패드의 앱 스토어에서 활기를 띄고 있는 99센트짜리 게임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복병 덕분에 주력 사업이라 할만한 휴대용 기기 사업에서의 이익률이 감소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저 99센트라는 가격 책정의 시초가 세가의 슈퍼 멍키볼이었다는걸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닌텐도가 SNS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로 이와같은 기사가 소개되었다. 전세계를 휩쓴 뇌단련 같은 게임이 고작 몇 명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그보다 푼돈을 벌려고 귀중한 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손해임은 물론이고 남들이 다 한다고 따라가는 일 역시 자존심 상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물론 세간에서는 폐쇄적, 갈라파고스, 고집불통 등으로 취급당하기도 한다.)

참고로 소셜게임이 참 없어보인다고 만들기 쉬울 것 같아 보이지만, 메가히트 소셜게임의 개발진들은 하나같이 백전노장의 베테랑 오브 베테랑만 투입되었다.(페이스북에서 수억명이 동시에 하는 게임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일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소셜게임이 요새 만만해 보인다고 아무나 시장에 뛰어드는데 절대 만만하게 볼 곳이 아니다.

아무튼 자사의 게임을 타사의 게임기로 이식하는 경우도 거의 없는 닌텐도로서는 누군가(애플?)와 수익을 나누는 장사라는건 전혀 고려치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

2013년 1월 콘솔 게임 개발 인력과 휴대용 게임 개발 인력의 통합을 실시하였다. 명목상으로는 태블릿 기능이 포함된 신형 위를 위해 하드웨어 개발 리소스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결국 앞으로도 이어질 스마트폰을 위시한 기타 휴대기기와의 전쟁을 위한 통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단 300명에 가까운 개발 인력을 통합하여 본사옆의 새로운 건물로 옮길 계획이라고 한다.

어찌됐든 2015년 이전까지는 닌텐도는 스마트폰으로의 진출은 일절 생각하고 있지 않았고, 이와타는 자체적인 조사 결과를 근거로 스마트폰으로 인한 닌텐도의 실적저하와의 관계를 끊임없이 부정해왔으나 결국 2015년 3월 18일에 닌텐도는 실적저하를 인정하고 마리오 등 주요 캐릭터를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하기로 결정하면서 스마트폰과의 전쟁은 막을 내렸다.# 그에 따라 적자를 보던 닌텐도의 주식은 이틀만에 48%나 뛰었다고 한다.

3.3. 대표인물

시게루 이전 닌텐도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요코이 군페이가 있다. 게임&워치, 게임보이, 버추얼 보이 등을 만들었으며, 파이어 엠블렘 등을 비롯한 닌텐도 유수의 타이틀을 프로듀스했다. '요코이즘' 이라는 말도 있고, '고사한 기술의 수평사고' 같은것 전부 요코이에게서 나온 말. 이와타 사장이 명심하고 있는 철학이라고도 한다.

슈퍼 마리오, 젤다의 전설, F-ZERO, 스타폭스, 대난투 등으로 유명한 크리에이터로는 미야모토 시게루가 있다. 프로필을 찾아 보면 알겠지만 닌텐도의 히트작 중 과반이상을 이 양반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미국에선 비디오 게임의 대명사로 여겨지며[30], 마리오 같은 경우 심슨의 한 에피소드에서 게스트 출연하기도 했다. 비디오 게임 라이브 공연과 코스프레 대회의 경우 대부분이 닌텐도 코스프레를 하고 나오기도 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는 높다. 거기에 인터넷 상에선 겜덕후임을 인증하는 프로필 사진으로도 자주 사용된다.

그리고 누구나 알 법한 슈퍼 마리오 시리즈의 음악과 젤다의 전설의 음악을 담당한 콘도 코지 등이 있다.

야마우치 히로시 전 닌텐도 사장은 닌텐도=게임이란 공식을 세웠으며 갖가지 게임 산업에 대한 명언을 남겼다. 그의 뒤를 잇는 이와타 사토루 사장은 닌텐도 DSWii를 개발해내는 데 일조하면서 다시 한 번 닌텐도의 전성기를 구축해냈으며, 닌텐도 다이렉트에서 직접 자신이 현재의 계획을 발표하는 등 열정을 뽐내고 있다.

3.4. 하드웨어

아타리 쇼크를 보고 배우면서 전통적으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닌텐도였지만, FC로 시장을 반독점한 닌텐도의 콘솔은 SFC 시절부터 경쟁 회사들의 기종들보다 우월한 하드웨어 스펙에 집착하는 경향이 생겼다. 가령 SFC도 확대 축소 기능이나 음향칩 개발같이 이거저거 붙이다가 16비트 머신중에서는 비교적 늦게 나온 편이었으나 시장을 압도했고,[31] 닌텐도64도 남들 전부 32비트일때 혼자 "앞으로는 64비트다!"라면서 개발로 씨름하면서 세가 새턴이나 PS보다 늦게 나왔다. 게다가 엑스박스나 PS2가 이미 128비트 시장에서 혼전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느긋하게 독자 규격의 미디어를 채용하는 등의 시도를 하면서 가장 늦게 게임큐브로 시장에 뛰어든다.

그러나 평소의 악행으로 개발사들과 사이가 틀어졌고, 이적 행위(?)를 한 개발사들을 "절대로 용서 못한다!"라는 식으로 행동하던 닌텐도의 콘솔은 결국 소프트웨어 라인업의 빈약함으로 처절한 응징 닌텐도64나 게임큐브나 예전같은 재미를 보지 못한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과 품질을 강조하던 닌텐도로서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32] 하드웨어를 절대 손해보지 않고 판매하는 닌텐도의 방침에 따라 결국 Wii에 와서는 게임큐브를 조금 손 본 수준의 성능으로 기계를 내놓고야 말았다. 다행히 "성능 대비 고가격 + 독특한 요소" 라는 전략으로 닌텐도 DSWii로 그 동안의 부진을 씻어낸다. 하지만 똑같은 전략을 내세운 닌텐도 3DS는 3D 기능의 부정적인 반응과 소프트 부진 등이 겹쳐 반년만에 가격을 40% 인하하였다. 이렇게 특단적인 가격 인하 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3DS는 지금과 달리 부진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닌텐도는 7세대 이후 들어서는 6세대까지의 시절과는 다르게 하드웨어 성능을 낮게 책정하는 경향이 있다. Wii 같은 경우에는 플레이스테이션 3, 엑스박스 360 세대의 기종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두 기종과 달리 과거 기종과 그렇게까지 확실한 차이를 보여주지는 못하였으며[33] 차세대기로 내놓은 Wii U는 초반에는 '이제와서 현 세대기(플스3, 엑박360)를 만들어냈다.'는 평까지 들을 정도로 2006년 이전과는 정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PS2&XBOX≤GC≤Wii<PS3&XB360≤WiiU<PS4&XBOXONE 이들과의 직접적인 비교는 최근엔 없다시피 하다만 다른 동세대 콘솔과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 이런식으로 하드웨어를 만드는 영업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니, '독점 타이틀이 누가봐도 대작이며 앞으로도 쭉 독점일 것이란 것'이다. 게임 라인업이 슈퍼 마리오, 젤다, 포켓몬 정도라도 닌텐도는 기기를 팔아먹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

3.5. 하드웨어의 튼튼함

야마우치 회장의 영향으로 게임을 아이들이 놀 수 있는것을 중점을 둬 만드는 경향이 짙고[34], 그 때문인지 NDSL을 제외한 모든 게임기는 엄청나게 튼튼하다.[35] 소설가인 오트슨트위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게임큐브에서는 다소 딴길로 샜지만,[36] NDS와 Wii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할 수 있다.[37] 아니, 전보다 그러한 경향이 더 강해졌다. 또한 대부분의 게임이 라이트 유저들도 접근하기 쉬운 게임을 만드는 경향도 강해져(물론 난이도가 어려운 것이 있긴 하지만) 대중들이 좋아하기 쉬운 편. 이러한 튼튼함의 정점에 서 있는 기기가 바로 게임보이. 해당 항목을 봐도 알 수 있지만 폭탄을 맞고도 구동하는 흠좀무한 내구력을 자랑한다게임기의 노키아.

3.6. 프론티어 닌텐도

3.6.1. 게임패드

닌텐도는 항상 게임 본질의 재미를 추구한다는 명목 아래 게임패드 기능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항상 해 왔다. 7세대 이후로는 게임패드의 형태가 리모콘이나 터치스크린으로 바뀌는 등 널리 알려진 게임패드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오늘날 게임패드의 기능 중 대다수가 닌텐도가 최초 시도한 것이 많다.

  • 십자키 : 닌텐도에서 특허를 갖고 있다. 패미컴보다도 한참 전에 낸 특허. 때문에 다른 게임기 메이커들은 십자모양의 십자 버튼을 만들지 못하고, 가운데 부분을 분할하거나 원형으로 만드는 등의 궁여지책을 펴고 있다.

  • 숄더 버튼 : 슈퍼패미컴에서 처음 도입하여 이후 콘솔들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 아날로그 스틱 : 이전에도 스틱형 컨트롤러는 없지 않았으나 이는 내부를 뜯어보면 4버튼이었고, 실제로 360도 방향 인식 및 기울임 각도까지 인식하는 스틱은 N64가 처음이다. 이후 아날로그 스틱은 6세대 이후 게임패드의 표준이 된다.

  • 진동 : N64에서 닌텐도가 처음으로 주변기기로 만들어 그에 대한 독자적인 특허를 가지고 있다. 소니도 발빠르게 배껴서도입해서 진동기능이 포함된 듀얼쇼크1을 발매했으나 후에 닌텐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진동 기능 특허를 가지고 있던 이머젼사로부터 소송이 걸려 벌금 크리를 맞게 된다. 합의에 실패한 소니는 진동은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개드립을 치며 진동기능을 빼고 플레이스테이션3를 발매하게 된다. 지금은 합의해서 진동이 다시 포함되었다. 참고로 엑스박스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머젼사와 일찌감치 합의했다. 즉 같은 진동 기능이라도 닌텐도는 독자적인 자기네들 특허를 가지고 있고,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머젼사의 라이센스를 받고 있다. 기술적인 특허와는 별도로 콘솔 게임기에 진동 기능을 제일 먼저 발표한 것은 닌텐도가 맞다.

  • 모션인식 : 모션인식 기술 자체는 이미 이전부터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콘솔에 적응한 것 역시 Wii 리모컨을 만든 닌텐도. 마이크로소프트는 뒤따라 키넥트를 만든다.

  • 3D 영상 : 패드 기능은 아니지만(...) 콘솔 중 최초로 3D 영상을 시도한 것은 버추얼 보이였으나 이는 참패로 끝났다. 그러나 몇 세대 후 닌텐도는 3DS로 3D 영상을 다시 시도하며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다.

3.6.2. 중고신상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의 전통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액정. 게임보이 시절부터 닌텐도 3DS까지 액정은 전부 어둡고 흐린 액정으로 먼저 낸 다음 신형이라는 이름으로 액정의 문제를 모두 개선하여 새로 발매한다는 것이다. 특히 NDS은 같은 시기에 나온 게임보이 미크로와 비교하면... 무게를 경량화 시키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액정이 항상 공통적으로 안좋은걸 쓰다가 좋은 걸로 바꿔버린다.

닌텐도의 하드웨어 기술의 철학을 대표하는 말로 고사한 기술의 수평적 사고 가 있다.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개발하기 보다는 이미 완성되고 친숙한 일반기술을 다른 방식의 놀이로 제공한다는 것. 시계등에 사용되던 소형 액정기술과 카트리지롬을 이용한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보이, 두개의 컬러 액정과 터치스크린 방식을 이용한 NDSL, 모션센서를 이용한 Wii등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6.3. 소프트웨어

그리고 하드웨어와는 달리 소프트 웨어 쪽은 도전정신과 거리가 있다는 평도 있다. 대표적인 닌텐도 3대 게임인 슈퍼 마리오 시리즈, 젤다의 전설 시리즈, 포켓몬스터가 그 예인데, 슈퍼 마리오는 1985년에 나온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기본 틀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고, 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시리즈는 새롭다기보단 정통 횡스크롤 시리즈의 리부트, 리메이크에 가깝다. 젤다의 전설 2D 시리즈는 1986년에 나온 첫 시리즈인 젤다의 전설, 3D 시리즈는 1998년 시간의 오카리나의 기본 구성을 거의 충실히 따르고 있고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1996년에 나온 첫작인 포켓몬스터 적·녹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최신작까지 큰 변화없이 계승되고 있다.

물론 게임계에 큰 획을 그은 걸작의 기본 베이스를 따르고 있고, 매 작품마다 심혈을 기울여 대부분 수작 이상의 퀄리티를 내고 각 작품마다 발전과 개성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보이며, 판매량도 어마어마하게 잘 나오고 있지만, 오랜 세월동안 이렇다 할 큰 혁명적 변화가 없다며 지루함을 표하는 반응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얏지 : 전 닌텐도라고 하면 일단 화부터 나요

그러나 이는 닌텐도 게임은 해보지도 않고 까는 일부 안티들의 의견에 불과하다. 마리오의 경우 슈퍼 마리오 64의 진행방식은 기존의 마리오 시리즈들과는 크게 달랐으며 슈퍼 마리오 3D 랜드 또한 3D 효과를 가장 잘 적용한 게임이라는 평가를 듣는 등 혁신적인 시도는 계속되었었다. 젤다의 전설 또한 세부적인 시스템 변화 등을 통해 매 작품마다 새로운 게임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포켓몬 또한 물리 특수 분리등 전투시스템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물론 마리오의 점프가 주가 되는 액션이나 포켓몬 배틀의 큰 틀은 변하지 않았지만 모든 게임들의 후속작은 큰 틀은 유지한 채로 세부적인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지 시리즈의 기본적인 틀을 아예 바꿔버린다면 그것을 같은 시리즈라고 부를 수 있을까?

3.6.4. 시리즈 개량

또한 마리오 중 마리오 카트 시리즈도 게임계의 최강자에 들어섰으며, 마리오 RPG 시리즈메이드 인 와리오 시리즈는 평이 좋은 편이다. 포켓몬스터 역시 포켓몬 불가사의 던전이라는 스핀오프 시리즈가 존재한다. 이런 걸 보고 시리즈를 우려먹는다 보긴 힘들다.

이런 논란은 닌텐도의 신입 사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가 영 신통치 않은 평을 받으며 부각되기도 했다. 그리고 닌빠들과 닌까들의 주요 대립거리이기도 하다.

3.6.5. 논쟁거리

하지만 또 이런한 견해가 오히려 닌텐도의 개척 정신을 평가절하하는 호사가들의 입방아라는 소리도 있다. 먼 소린고 하니 닌텐도가 이룩한 혁신은 알고보면 이미 있던 기술의 적당한 짬뽕이고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하는 뉘앙스가 깔려있기 때문이다.[38] 그러나 이건 천만의 말씀이다. 닌텐도 64를 통해 일부 PC 게임[39], 비행 시뮬레이션에서나 쓰이는 아날로그 스틱을 가정용 게임기에 도입하고, 진정한 의미의 3D 게임인 슈퍼 마리오 64 같은 게임을 내놓은 것은 닌텐도가 유일하다. 진동 기능을 내놓자 남들이 다 따라한 것 또한 말할 것도 없으며, 듀얼 스크린의 휴대용 게임기와 터치로 진행하는 게임을 대중화하고 선도한 것 또한 닌텐도이다. Wii로 인해 키넥트와 무브가 나온 것 역시 좋은 예이며 버추얼 보이로 시대를 너무 앞서가서 대차게 말아먹고, 다시 닌텐도 3DS로 3D에 재도전한 것 역시 닌텐도.

3.6.6. 저축정신

실제로 닌텐도는 연구개발비의 비중이 큰데 2007년의 연구개발비는 370억엔, 사원 1인당 연구 개발비는 3500만엔 수준이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몇 배의 연봉을 제시한 스카우트를 거절한 이유로 "연구 개발에 무한한 예산을 쓸 수 있는 곳은 닌텐도 뿐이다."를 들었다.

덧붙여, 닌텐도는 전통적으로 다른 회사보다 월등히 많은 수의 현금 자산을 항상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 현금 보유량 자체는 다른 회사들과 비교해봐도 크게 많은 편이 아니다. 2015년 기준으로 5천억엔 정도로, 현금 보유액 자체는 오히려 경쟁사인 소니(6천억엔)보다도 적다. 다만 보유자산 중 현금이 비율이 높고, 부채가 전혀 없을 뿐.

이는 「오락산업은 언제 불황이 될지 모르고 언제 호황이 될지 모른다.」라고 생각한 야마우치 전 사장이 현금의 보유량을 늘리고, 생산을 억제하게 된 것이 회사의 경영방침으로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져 예전에 있던 적자에 큰 타격을 맞았긴 했으나 걱정할 필요는 아니라고.

3.7. 닌텐도 다이렉트

2011년 10월부터 시작한 닌텐도의 인터넷 프레젠테이션 방송. 사장인 이와타 사토루가 직접 닌텐도의 새로운 기기와 게임 라인업을 소개하는 자리이다. 주로 일본과 북미, 유럽의 닌텐도 유저들을 대상으로 각 대상국가의 언어로 발표를 진행한다. 예를 들면 북미권 다이렉트에선 이와타 사토루가 직접 영어로 진행한다. 일본어권은 오직 이와타 사토루만이 진행하지만 다른 나라는 특정 부분에선 해당국의 닌텐도 지사 사장이 진행한다. 사장이 직접 알짜배기 정보를 공급한다는 점에서 유저 호응도가 상당히 높다. 이후 정례화되어 보통은 한달이나 두달에 한번 정도 방송을 시행하게 되었다. 또, 특정 소프트를 소개하는 방송을 이 형식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초창기엔 비교적 딱딱하게 진행했으나 2012년 이후로는 이와타 사장이 특유의 손동작인 초쿠세츠(직접)을 하거나 가상과 현실간에 연기를 하는 등 예능감을 뽐내면서 가벼운 분위기로 바뀌였다. 한국은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딱딱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흠이긴 하다.

2012년에는 3DS의 한국 출시를 맞이하여 한국에서도 두 번 시행되었다. 한국의 방송은 처음엔 이와타 사토루가 진행했으나 이후에는 한국닌텐도 사장인 후쿠다 히로유키가 한국어로 진행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한국 시장만큼은 다른 나라보다 다른 만큼 다른 나라에 비해 내용도 많이 다른 편이다. 한국 유저들의 반응도 괜찮은 편. 다만, 타국에 비해 1회와 2회의 텀이 6개월로 매우 길었고, 거의 1년만에 한 2013년 10월의 3회 방송도 실망스러운 수준인지라 많은 팬들이 4회를 기다렸다. 그리고 2014년 첫 닌텐도 다이렉트는 한국닌텐도가 하게되었다. 2015년 현재는 총 5회 진행했다.

이 다이렉트 형식의 정보공개는 소니는 물론, 여러 게임회사들이 벤치마킹하고 있다.

2014년 5월 2일에 공개된 일본 다이아몬드誌와의 인터뷰에서 이와타 사토루는 닌텐도 다이렉트가 해외보다 먼저 일본에서 퍼진 큰 이유 중 하나로 니코니코 동화를 꼽으며, 처음에는 니코니코 동화에서 자기가 진지하게 말하는걸로 꼬투리를 잡거나 조롱하는걸 꽤 복잡한 마음으로 봤지만 이것도 포함해서 "전달하는 것이 엔터테인먼트로 변화한단것은 이런 것인가?"라고 느끼게되고, "이런 일을 하면 즐겁게 해 줄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장난기를 가지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 [40] 원문 번역 [41]

3.8. 안티

닌텐도는 게임계의 신으로 독보적 위치를 자랑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은 무지하게 싫어한다. 아타리 쇼크 이후 닌텐도는 자사기에 게임을 발매할 때에 받는 심사를 엄격히 하는 등 거의 슈퍼 갑의 위치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소니가 우수한 소프트 메이커를 서드파티로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닌텐도와 다른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고 이런일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업계도 있다는걸 생각한다면 다소 태도를 달리 해야할 필요가 있다.[42]

또한 Wii에서부터 시작된 캐주얼 노선과 저스펙 하드로 인해 일본 게임 개발사들의 기술경쟁력을 퇴화시켰다는 비판도 종종 있는 편. Wii U에 와서야 HD 해상도 기술을 도입했는데, 닌텐도 자신들조차도 HD 경험이 없다보니 외주업체의 힘을 빌리고 있는 실정이다. 덕분에 개발이 대폭 지연되어 자신들의 장점인 강력한 퍼스트 파티 IP를 투입하지 못해 Wii U는 스타트 대쉬에 실패.

Wii와 DS가 많이 팔렸음에도 불구하고, 차세대기인 Wii U, 3DS가 나오자 타사의 하드에 비해 Wii와 DS의 소프트 공급이 빨리도 끊겼다.[43]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멀티플레이 서비스도 2014년 5월 20일부로 종료된 상태다.### 몰론 10년 가까이 이를 지원해오긴 했고, 그것을 지원하는 2005년 게임이 있긴 하지만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는 2012년도 게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이해해주기가 어렵다.

하지만 닌텐도의 검열은 어쩔 수 없는것이, 닌텐도는 스팀처럼 평점에 의거해 프로그램만을 팔 수 있는 회사가 아니며 게임 하나를 내도 엄청난 자본금이 들어가는데 판단을 신중히 해서 나쁠 것 없고, 이렇게 갑질 검열을 해도 똥망작이 종종 나와서 닌빠인 AVGN에게 까이기 일쑤다. 소니는 어디까지나 소니가 자신들 기준대로 제대로 한데다 운도 따라줬다. 또 닌텐도는 쿠소게로 망한 미국에서 아타리 쇼크를 직접 경험하며 초반에는 위기에 빠지면서 폭풍 확장을 했던 경력도 있으며 초 네임드 시리즈인 배틀필드 시리즈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도 레이블 잘못 나오면 재미없다고 처발리는 대기업들의 각축장인 세계 게임시장에서 검열의 끈을 놓아 일시적으로 게임 질이라도 떨어지는 것은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고 애플앱스토어로 닌텐도식 검열을 하면서도 아주 잘먹고 잘 산다.

3.9. 닌텐도 쇼크

아타리 쇼크와 관계 없다!
특정한 형태로 빛이 점멸하는 것에 의해 일어나는 광과민성 간질 증상을 닌텐도 증후군이라 부른다. 이는 TV를 보다가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닌텐도 게임을 하고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으며, 한국에서도 1993년 환자가 발생해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닌텐도 쇼크, 이로 인해 수모를 겪은 닌텐도는 닌텐도 때리기(beat) 등으로 한동안 수모를 겪어야 했다.

3.10. 한국에서의 닌텐도

게임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NDS를 '닌텐도' 라고 부른다. 겸사겸사 초딩들도. 「엄마, 닌텐도 사주세요.」 「그래, 까짓거 사주지. 얼마니?」 호치키스나 바리깡처럼 브랜드가 제품 이름(내지 종류)처럼 쓰여 버리는 예가 되었다. 온라인 게임이 워낙 강세라 미국처럼 닌텐도=게임 공식은 좀 힘들겠지만.

R4와 복사 때문에 소프트 판매량이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지만, 실제로는 조금 다르다. 특히 퍼스트 소프트의 판매량만큼은 정말 발군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괜찮다. 포켓몬스터 블랙/화이트는 2012년 10월 기준으로 48만장(!)이 팔렸고 그 외 40만장이 넘게 팔린 소프트가 2개, 30만장 이상이 1개, 20만장 이상이 3개, 10만장 이상이 3개로 한국 게임 시장 내에서 어마어마한 판매량의 기염을 토했다.#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안 잡힌다면, ps2시절 한국에서 데빌 메이 크라이3가 3만장이나 팔렸다고 파티를 개최할 정도였단 걸 떠올리면 된다. 참고로 서드 파티 게임 중 하나인 메이플 스토리도 10만장이 팔린 걸 생각하면 소프트 판매량이 좋지 않다고 보긴 힘들다. #
그리고 3DS의 경우에는 포켓몬스터 X·Y가 이례적으로 단 이틀만에 5만장을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
또한 2012년 4월부터 2013년 3월까지의 매출액이 닌텐도코리아는 726억, SCEK는 289억인 것으로 보아 이러니 저러니 해도 타 콘솔보다 한국에서 장사는 잘되는 편이다.

Wii 의 경우는 지역코드 정책을 펴고 있는데, 모든 타이틀 한글화 발매로 한국만의 시장을 만들겠다는 과감한 정책은 칭찬해줄만 하지만 과연 그것이 협소한 한국시장에 통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한국닌텐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닌텐도가 모두를 위한 게임기, 게임에 너무 집착했다고 할수 있다.


2012년 10월 2일에 닌텐도가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우익단체에 자금을 대준다는 기사가 한 게임언론에 올라와 한국의 닌텐도 유저와 닌빠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기사를 보면 이름이 안 나오는 관련기관과 업계 관계자들만 나오고 제대로 된 공식 자료를 말하지 않는다.이를 통해 볼 때 카더라성 기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 이게 얼마나 허황된 일인지는 이 항목을 참조하기 바란다.

2013년 04월 15일 닌텐도 코리아가 공식 트위터 계정 명의로 기상 캐스터 박은지에 대한 기사에 악플을 달아 논란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닌텐도 항목을 참조.

4. 대표 플랫폼

4.3. 개발 중

  • NX(가칭)

5.1. 아케이드 게임

5.2. 애니메이션

5.3. 서드 파티 독점작

이쪽은 퍼스트파티/세컨드파티 게임들 덕분인지 화려하게 부실하니 빠진게 있으면 추가해주세요.

7. 자회사 & 협력사

8.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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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는 보통명사가 된 고유명사들로서, 닌텐도가 회사가 아니라 게임기라는 이미지로 굳어진(...) 예시이다.
  • [2] 한자를 한국식으로 읽으면 임천당주식회사. 가타카나로 쓰지 않는다.
  • [3] 게임보이 어드밴스 미크로, 버추얼 보이, 닌텐도 3DS, 닌텐도 TV게임, 게임&워치.
  • [4] 정확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창립된 회사 중의 최초. 근데 현재 망한거나 다름 없어서 미묘하다. 아타리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지금 남아있는 아타리는 현역 시절의 아타리와는 다른 회사나 다름없다. 닌텐도의 게임기 시장 참여는 일본에서조차 에폭(EPOCH)보다 늦었다. 바둑이나 장기를 게임으로 본다 해도 200~300년째 가업으로 바둑용구, 장기용구를 만드는 노포(老鋪)도 많기에 그쪽으로도 무리.
  • [5] 미야모토 시게루가 말하기로는 슈팅게임은 라이트 유저들이 플레이하기에는 게임이 너무 어려우므로 만들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닌텐도에서 내놓은 슈팅게임이 아예 없지는 않고, 과거 게임보이 초창기 시절, 요코이 군페이가 프로듀스한「솔라 스트라이커」라는 게임이 있다. 다만 세컨드 파티와 협력하여 제작한 스타폭스 시리즈별의 커비 시리즈에서는 슈팅 게임의 요소가 많이 나온다.
  • [6] 당장 미국내에서 플스가 'Greatest Hits'로, 엑박이 'Platinum Hits'로 베스트 셀러 타이틀을 저가판매로 내놓는데 비해 닌텐도는 아예 없다. 금전 사정이 넉넉하지 못해서 초기에 사지 못한 게이머들이 시기를 기다렸다가 염가판매판으로 나오는 것을 구입한 방법인데 이게 의외로 대박이 된다. 어짜피 대작이었던데다 저가판매로 나오는건 시간문제니까 굳이 비싼 돈들여 초판을 구입할 필요가 없어서다. 다만 Nintendo Selects는 예외.
  • [7] 2015년 현재 126년이다.
  • [8] 「닌텐도 이야기」라는 책에서 해당 사훈의 의미로 닌텐도라는 사명이 지어졌다는 점이 나온다. 막상 야마우치 히로시 본인은 "증조부가 붙인 이름이지, 사훈은 아니다. 그런 사훈이 있으면 게임 회사 같은 건 안 한다."라는 듯한 발언을 했다.
  • [9] 사실 이건 좋게 표현한 것이고 실제로는 바람피우고 잠적한 것이다. 어차피 히로시가 대를 이을 시점에는 사망했지만.
  • [10] 택시라든가, 러브 호텔이라든가, 인스턴트 라이스라든가, 유모차라든가(...)(#) 인스턴트 라이스라면 지금의 '햇반'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지만 정작 중요한 맛이 영국맛이라서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실패.
  • [11] 원문은 '하이테크닉의'
  • [12] 앞의 단원에서도 언급한 것이지만 아타리 쇼크로 거의 사장된 가정용 게임기 업계 또한 충분한 관리가 따르면 명품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이유에서다.
  • [13] 1990년 9월 13일 발표에 따르면 매출 4천 4백억엔, 경상 이익 1천 2백 70억엔
  • [14] 당시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게임기는 완구, 즉 어린이용 장난감으로 간주되었기에 아동용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회사의 수익이 그 정도라는 사실이 희귀하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주력사업군에서 어린이용 장난감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15] 마이크로소프트엑스박스항목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하드웨어 성능 하나만 갖고는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게임기 산업이다. 엑스박스가 선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게임 개발자들이 게임 제작할 수 있는 쉬운 개발환경, 즉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제작된 까닭이다.
  • [16] 플레이스테이션 1과 2와 함께 하드웨어 베스트 셀러 위치를 차지한다.
  • [17] 1448억3천만엔 → 694억9천만엔
  • [18] Wii : 1000만여대(2008년 상반기) → 575만여대(2009년 상반기) → 497만여대(2010년 상반기), NDS : 1170만여대(2009년 상반기) → 669만여대(2010년 상반기)
  • [19] 아이폰은 같은 분기에 약 2000만대를 판매하였다. 한때 NDS는 1170만대를 팔아치웠었다.
  • [20] 닌텐도 DS 타이틀이 20~30달러 수준인데 비해서 스마트폰 게임의 과금제는 무료부터 부분정액제까지 다양하다.
  • [21] 사실 이등분이라 해 봤자 1:1에는 한참 못 미친다. PSP의 최전성기 당시 게임 판매량이 DS의 30% 정도며(그마저도 대부분 몬헌에 의한 판매량) 전체적으로 기기 판매 수는 DS 2 - PSP 1 정도다. 그나마 PSP가 휴대기 시장에서 닌텐도와 제대로 경쟁한 거의 유일한 기기이기 때문에 나름 선전했다고 평가받는 듯 하다.
  • [22] 여기에는 해외 게이머들 중 닌텐도 레고를 기대하는 반응이 매우 많았다.
  • [23] 대난투는 출시일 직전까지 트위터를 통해 매일 스샷과 함께 정보를 올렸으며, 지금은 스플래툰이 그렇게 하고 있다. 이는 출시되는 타이틀 사이 공백이 길기 때문에 그 공백을 매꿔 기다리는 유저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마케팅 전술이다.
  • [24] 파판도 같은 의미에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 [25] 다만 이 사람은 원래 닌텐도 외 다른 게임에도 비판을 많이 하는 편이며, Escapist를 보면 Yahtzee 본인의 Wii U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다. 단순히 현재 닌텐도가 내놓는 소프트의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그는 게임큐브를 칭찬한 적이 많고, 젤다의 전설 바람의 택트나 슈퍼 페이퍼 마리오를 좋아한다고 한 적이 있다.
  • [26]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2015년 현재의 상황에서 Wii의 판매량은 약 1억대, PS3과 XBOX360은 각각 약 8천만대 정도.
  • [27] 특히나 이쪽은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에 특화되어 있는데다 Wii U 콘솔로 게임을 내주지 않는 등 거의 완벽한 라이벌 회사다.
  • [28] 스마트폰에서 돌릴 수 있는 에뮬레이터까지 포함하면 게임폭이 훨씬 넓어진다.
  • [29] 그나마 자회사 개념으로 게임 개발 부서를 만든 경우도 있긴 하다.
  • [30] 「닌텐도 파워」라는 닌텐도 전문 잡지도 나왔다. AVGN에서도 여러번 언급됨.
  • [31] 곧 슈퍼패미콤이 나온다! 그러니까 다른 16비트 사지말고 기다려! 한마디로 메가드라이브를 팔리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 [32] 전통적으로 닌텐도의 하드웨어는 동급최강을 목표로, 실제로 CD를 사용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분명 동세대의 다른 게임기보다 높은 스펙을 보였다.
  • [33] 물론 양쪽 모두 출시되었던 피크민 등을 통하여 게임큐브와 비교해 보았을 때, 디테일 면에서는 분명하게 차이가 난다. 다른 두 기종만큼의 차이를 내지 못하였을 뿐.
  • [34] 이 때문에 닌텐도=초딩이 즐기는 게임이란 선입견이 강해졌다.
  • [35] NDSL의 경우에는 경첩이 약하다. 최근에는 많이 나아졌고 실리콘 케이스같은 보호용 케이스를 달면 어느정도 내구력이 생기지만.
  • [36] 그런데 이것도 미국에서 자주하는 품파괴 인증 영상을 보면(사실 당시 3대 게임기 내구력 인증에 가깝지만...) 오함마로 내려쳐 뚜껑이 날아갔는데도 멀쩡히 돌아갔다. 단지 X-Box의 내구력이 너무 엄청났던 것일 뿐.
  • [37] 그대신 Wii가 처음 나왔을땐 TV 깨트린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닌텐도가 TV를 만들었다면?
  • [38] 블리자드도 비슷한 평을 듣는다.
  • [39] IBM PC나 애플II 등에서 쓰인 구형 조이스틱(대략 1980년대~1990년대 썼던 것)이 아날로그로 입력을 받았다. 문제는 입력 처리하기도 복잡하고 오차도 꽤 커서 잘 안 쓰였다. 괜히 조이스틱 지원 게임에 스틱 보정 기능이 있던게 아니다.
  • [40] それからニンテンドーダイレクトというものが、海外より先に日本で世の中に広がった大きな理由のひとつに「ニコニコ動画」の存在があると思っているんです。「ニコニコ動画」では、自分が大真面目にしゃべっているところを、いじられたりからかわれたりするわけで、最初は私も正直なところかなり複雑な気持ちで見ていたんですけど、でもこれも含めて「伝えることがエンターテインメントに変わるとはこういうことか」と感じるようになり、そのうちに「こんなことをすれば面白がってもらえるのではないか」と茶目っ気をもって考えられるようになってきたんです。
  • [41] 그리고 2013년부터 닌텐도가 코니코 초회의의 스폰서 지원을 하고있다.
  • [42] 다만 이것은 플레이스테이션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어쩔수 없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 [43] 단, 닌텐도가 특별히 제재를 한 것이 아니라 업체들이 스스로 차세대기로 넘어간 것일 수도 있다.
  • [44] 이스터에그. 버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초보자들을 위한 일종의 비기기술일 뿐.
  • [45] 북미명은 어스바운드라 칭한다.
  • [46] olleh TV에서는 애니메이션 카테고리에 이 프로그램이 등재되었다. 하기사 모 회사전대물애니메이션으로 속여서 수입했으니... 몰론 저 프로그램 자체는 한국닌텐도와 연관이 큰 프로그램이긴 하다.
  • [47] 트라이 G 이후부터.
  • [48] 현 시점에선 닌텐도 게임기와 단순히 라이벌 관계라고 생각하겠지만 놀랍게도 슈퍼패미컴 이후 소니와의 합작을 생각했을 당시 닌텐도가 지은 게임기의 코드네임이다. 즉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는 닌텐도 게임기와 형제뻘이 되는 불편한 진실이 생기는 것이다. 국적이 같은 일본 게임기라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출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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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10-19 14: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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