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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다 카츠요리

last modified: 2015-03-20 22:00:25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카츠요리의 성장배경
3. 카츠요리가 다케다가의 후계자가 될 때까지
4. 나가시노 전투. 그리고 다케다가 멸망
5. 카츠요리에 대한 논란
5.1. 카츠요리 무능설
5.2. 카츠요리 유능설
6. 사세구
7. 기타 창작물

1. 개요


武田勝頼
1546 ~ 1582

일본 전국시대의 다이묘. 사실 전국시대를 거쳐서 아즈치 모모야마시대까지 살았다.

45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카이 다케다씨의 적통이며 부친은 그 유명한 다케다 신겐. 아명은 시로(四郞), 이름 글자 중 요리(賴)는 원래 스와 가의 계승자라 외조부인 스와 가 당주 스와 요리시게의 이름 글자 중 하나를 딴 것이다.

2. 카츠요리의 성장배경

1546년 다케다 신겐의 4남으로 태어났다. 모친은 신겐의 매부였던 스와 요리시게의 딸, 스와 고료닌으로 전국시대인지라 자세한 인물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스와씨와의 동맹은 신겐이 부친인 케다 노부토라를 추방함으로서 무산되고 결국 신겐의 다케다군이 스와가문을 집어삼켜버린다. 모친이 몰락한 다이묘의 혈연이었다는 점과 4남이라는 점때문에 사실 카츠요리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3. 카츠요리가 다케다가의 후계자가 될 때까지

이 시절의 카츠요리는 일문장(다이묘의 혈통을 잇는 장수를 뜻한다)으로서 활약한 기록이 약간은 남아있다. 니시 코즈케(西上野)의 미노와 성 정벌부터 시작하여, 사가미 오다와라 성 공략, 스루가 다나카 성 공략 등에서 많은 공적을 세웠다. 모친의 혈통인 스와씨를 자처했으며 이것은 당시의 관습상 정치적으로 스와씨의 이름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4남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신겐에 의하여 후계자로 공언된다.

  • 다케다 요시노부
다케다 신겐의 적자. 그러나 이마가와가를 둘러싼 방침의 차이에서 신겐과 대립하여 마침내 모반을 꾸미고 있다하여 폐적된다. 그 후 절에 유폐되어 젊은 나이로 죽었다. 신겐과 대립한 이유는 요시노부는 친이마가와파였으나 반대로 신겐은 오다 노부나가와 편을 먹고 이마가와가를 갈라먹을 생각이였기 때문으로 추정되며 또 요시노부의 정실이 이마가와의 여성이었던 것도 원인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 운노 노부치카
신겐의 차남. 장님이었기 때문에 출가했었다가 운노가의 딸과 혼인하여 운노가의 후계자로 보내졌다.

  • 다케다 노부유키
어려서 죽었다.

결국 신겐은 다카토오성(高遠城)의 성주역을 하고 있던 카츠요리를 불러서 다케다성으로 되돌리도록 했다. 이것은 명언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신겐이 카츠요리를 자신의 후계자로 정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4. 나가시노 전투. 그리고 다케다가 멸망

부나가 포위망에 의하여 오다 노부나가를 궁지에 몰아넣던 아버지 신겐이 죽자 카츠요리가 자연스럽게 그 뒤를 잇게 된다. 신겐의 죽음이 알려졌을 경우에 대한 파급효과를 우려하여 신겐의 죽음은 함구되었으며 형식적으로는 신겐이 은거하고 카츠요리에게 가문을 잇게 하였다고 발표되었다. 그 이후 전공을 세우며 활약하였다.

그러나 다케다 신겐이 죽은 것으로 오다-도쿠가와 동맹을 압박하던 벽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고 이에야스는 그 틈을 타서 다케다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기로 한다. 신겐이 죽은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던 오쿠다이라 미마사카노카미 사다요시, 사다마사 부자는 다케다가를 배신하고 이에야스의 밑으로 들어갔고 이에야스는 오쿠다이라 사다마사(奧平定昌, 나가시노 전투 이후 노부나가에게 공적을 이어받아 노부나가의 이름 한 글자를 하사받아 노부마사(信昌)으로 개명.)를 대다케다전의 최전선인 나가시노 성에 배치했다.

물론 카츠요리에게도 도쿠가와를 집어삼킨다는 야심은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간과하지 않고 있다가 후에 군을 보내어 나가시노 성을 포위한다. 물론 도쿠가와측도 다케다공략의 요지가 될 나가시노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오다-도쿠가와 동맹 대 다케다가의 싸움으로 크게 번졌다.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이 직접 손을 쓸 때는 반드시 승산이 있을 때만 군을 움직이는 신중한 전략가였기 때문에 다케다 4명신은 노부나가가 친히 군을 몰고 왔다는 사실에 패배를 직감하고 카츠요리에게 철퇴를 주장한다. 그러나 카츠요리는 이것을 물리치고 결전을 강행한다.

그러나 몇가지의 요인때문에 다케다군은 오다군에 의하여 패배하고 다케다가는 많은 장병들을 잃는 것만이 아니라 다케다 4명신 중에 3명(야마가타 마사카게, 바바 노부후사, 나이토 마사토요)을 잃고 그 밖에도 많은 중신들을 잃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그 후로 4명신 중에 유일하게 생존한 코사카 마사노부의 부대와 합류한 다음에는 우에스기 겐신과 화친을 맺으나 이미 때는 늦어서 그 후로도 사양길에 접어든 다케다 가를 회복시키지 못하고 하나둘 성을 빼앗기다가 오다 노부나가의 카이 총공격을 받고 본거지 코후에서 도주. 이때 사나다 마사유키와 오야마다 노부시게 둘 중 한 곳을 가려고 했는데 카츠요리는 오야마다 노부시게를 택했다. 그러나 오야마다 노부시게는 이미 오다 측에 붙어 다케다를 배신한 뒤였고, 결국 카츠요리는 텐모쿠잔에서 적에게 포위된 뒤 자결. 이 때 카츠요리의 아들도 같이 죽음으로서 카이지방에서 450년간 명성을 누려온 카이 다케다씨는 멸망한다. 여기서 유래하여 텐모쿠잔은 마지막 대결장을 의미하는 관용구로 쓰이기도 한다

부인은 호죠 우지야스의 딸로, 삼국동맹의 일환으로 카츠요리에게 시집 왔으나 텐모쿠잔에서 카츠요리와 함께 어린 나이로 자결했다.

5. 카츠요리에 대한 논란

5.1. 카츠요리 무능설

일반적으로 카츠요리에 대해서는 악평이 많은데 이것은 뛰어난 군략가였던 아버지 신겐에게서 다케다 가를 물려받고 비교적 짧은 시간에 오다 노부나가에게 패배하여 명문가였던 다케다 가를 멸망시켰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하나의 징크스라고도 볼 수가 있는데 선대의 다이묘가 걸출한 인물이었던 경우 그 다음 대가 별볼일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오다 노부나가, 우에스기 겐신[1], 후호조씨[2], 베시마 나오시게, 도요토미 히데요시[3], 도쿠가와 이에야스[4]등.

카츠요리의 실책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나가시노 전투에서 4명신의 철퇴 주장을 듣지 않고 결전을 시도함으로서 크게 패하여 중신들과 병사들을 잃어서 다케다가의 군사력을 줄인 것이다.

또한 외교정책의 실패로 우에스기의 후계자 다툼 때는 우에스기 카게카츠의 편을 듬으로서 호죠를 적으로 돌렸다. 사실 그 전부터 호죠와의 관계는 최악이었으나 이것을 계기로 호죠는 도쿠가와와 편을 맺고 다케다를 공격하게 된다. 이에 대항하여 다케다는 우에스기와 동맹관계가 되나 우에스기가 자체가 몰락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다케다가의 유지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째서 이것이 실패인가, 하니 당시 우에스기가문의 후계자 후보중에 한 명인 우에스기 카게토라호죠 우지야스의 아들이었다가 우에스기와 호죠가 동맹관계가 될 때 우에스기 겐신의 양자가 된 것이며 또한 호죠 우지야스는 당시 다케다 카츠요리와 동맹관계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카츠요리가 카게토라의 편을 들어서 우에스기의 후계자로 만들었을 경우 다케다는 호죠와 우에스기의 양쪽을 다 아군으로 만들 수 있는 것에 비하여 실제로는 카게카츠의 편을 들어서 호죠를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타카텐진 성 전투에 있어서 원군을 보내지 않고 방치함으로서 성병들을 죽도록 놔두었다. 이것은 무명을 널리던 다케다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에 이 이후로 가신들의 다케다에 대한 충성심이 크게 감소하여 다케다가를 배신하는 가신들이 늘어나게 된다.

결국 카츠요리의 실책들이 다케다가를 끝장냈다는 것이 카츠요리 무능설의 골자이며 오랜 세월 동안 정설로서 받아들여졌다.

5.2. 카츠요리 유능설

그러나 물론 그런 설에 부정적인 의견도 많다.
우선 카츠요리는 아버지인 신겐이 함락시키지 못한 타카텐진 성을 함락시킨 것을 비롯하여 전체적으로 패배보다는 승리를 더 많이 경험한 유능한 장수였다는 점이다.

나가시노 전투에서도 단순히 카츠요리의 실책에 의한 패배라고 볼 수 없는 점이 여럿 있다. 우선 나가시노 전투에서 다케다측의 패배요인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철포대를 동원하여 다케다 기마군단을 꺾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통설인데 실제로 다케다 기마군단은 존재하지 않았다.[5] 또한 이 싸움에서 유명한 오다가의 삼단사격[6]자체가 후세의 픽션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사실 노부나가가 동원한 철포의 수도 적게는 500정, 많으면 3000정이라는 식으로 확실하지가 않다.

총앞에 기마병으로 돌격하는 것은 요새상식으로 보면 미친 짓이나 당시에는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실제로도 카츠요리는 그런 식으로 몇 번인가 승리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나가시노 전투를 전술적 판단 미스에 의한 패배라고 보긴 힘들다.

사실 나가시노 전투 자체가 오다 노부나가가 이례적인 규모의 야전축성[7]를 통하여 철포를 히든 카드로서 사용했기 때문에 카츠요리가 아니라 신겐이 살아있었어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오다 노부나가는 이미 다케다가 있는 동쪽에서 땅을 얻지 않더라도 서쪽으로 계속 확장 중이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볼 경우 국력에서 오다에 뒤떨어지는 다케다가에게 있어서는 나가시노가 최후의 기회라고 보아도 좋았다. 때마침 다케다가는 카츠요리의 지휘하에 연전연승을 거두어서 몹시 사기가 높은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전략적인 관점에서 나가시노 전투는 피해갈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카츠요리의 실책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에스기 가의 후계자 다툼의 문제만 하더라도 카츠요리가 카게토라의 편을 들어서 우에스기 가가 사실상 호죠의 산하가 되었을 경우, 호죠가가 그것을 기회삼아서 다케다가를 통채로 집어삼킬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당시에 다케다와 호죠는 동맹관계였으나 우에스기-호죠-다케다는 장년 다투어온 사이이고 거기에 이마가와까지 섞어서 몹시 복잡한 정치적인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설사 동맹관계이더라도 안심하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따라서 그것을 외교정책의 실수라고 볼 수도 없다는 의견이 있다.

결정적으로 신겐은 유능한 장수이자 정치가였으나 동시에 맨날 전쟁놀음이나하면서 국고를 탕진한 것도 사실이다. 이미 카츠요리가 뒤를 이었을 때는 다케다가는 만성적인 적자였고 또한 신겐이 아버지인 노부토라를 추방하고 자리를 찬탈한 것이나 장남인 요시노부를 불화끝에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실등으로 신겐의 인망은 미묘한 수준이었다. 우에스기와 호죠와 다케다는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서 서로 적이 되거나 아군이 되거나 했는데 그 호죠의 우지야스는 겐신을 높이 친 한 편 신겐은 믿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혹평했다.

또한 카츠요리의 모친인 스와가문의 여성만해도 당시에는 가신들이 측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한 것[8]을 신겐이 의견을 꺾고 자신의 측실로 삼은 것이다. 이에 따라서 가신들의 충성심이 자연스럽게 카츠요리에게 이어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렇듯 카츠요리가 다케다가를 이은 시점부터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케다의 몰락을 카츠요리의 책임이라고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는 것이 카츠요리 유능설의 골자이다.

6. 사세구


おぼろなる月もほのかに雲かすみ 晴れて行くへの西の山のは
구름이 드리워 흐려보이던 달도 마침내 맑게 개여서 서방정토를 향해 가는구나

7. 기타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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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다 가츠요리

노부나가의 야망에서의 능력치는 전형적인 맹장형. 지력, 정치는 혁신까지는 밑바닥을 찍었었다. 심지어 통솔과 무용이 통합되었던 창천록에서는 그야말로 호부견자 급의 처참한 능력치[9]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나마 천도에서 상향이 되었지만 그래봐자 지력, 정치는 50대. 100만인의 신장의 야망에서 오의는 미하타타테나시.[10]

태합입지전5에서의 능력치 역시 맹장형. 통솔은 79, 무력은 85로 괜찮은 편이나 다른 능력치는 그다지 좋지 않다. 다케다가 기마 특화라 기마, 군학기능은 3으로 좋지만 풍림화산이 없어서 사실 적으로 만나면 손쉬운 편. 1575년 시나리오에서 첫 평정을 열면 바로 발생하는 이벤트인 나가시노 전투에서 원래대로면 좆망테크를 탈 수밖에 없지만,[11] 풍림화산을 사나다 마사유키에게 배운 다음에[12] 평정을 열어 이벤트를 발생시키면 카츠요리는 총대장이니 후방으로 피신시킨다음 풍림화산이나 걸고 나머지 기마대(다케다 4명신중 3명이나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장수의 질적으론 꿀리지 않는다)의 돌격으로 총대장인 이에야스만 점사하면 이에야스, 노부나가를 황천으로 보내버릴 수 있다.
1582년 시나리오로 시작할 경우 이이다, 타카토오성을 내주면(즉 본성인 코후성이 노부나가, 이에야스와 인접하게 되면) 자택으로 들어갔을 때 텐모쿠잔 이벤트가 발생하게 된다. 분기는 3가지로, 본성인 코후에서 항전 or 마사유키따라 누마타로 피신 or 노부시게 따라 이와도노로 피신인데,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기본적으론 병력 12500의 오다 노부타다 군대와 붙게 된다. 역사대로 노부시게를 따라가면 노부시게가 배신하고 오다 노부타다의 추격군과 만나 7500 vs 12500의 가장 불리한 싸움을 하게 되고, 코후에서 항전할 경우 오다군의 계략으로 거성 방어도가 바닥(초기 상태라면 90->55)이 된 상태에서 공성전을 하게 된다. 마사유키를 따라가면 너무 멀어서 추격군에 따라잡히지만 마사유키가 배신을 안해서 병력만 10000 vs 12500인 상태에서 노부타다와의 야전이 기다리고 있다. 어느쪽을 골라도 지면 게임오버, 승리할경우 피신 없이 거성인 코후성으로 돌아오나, 노부시게를 따라가면 노부시게는 오다소속으로 가버리니, 나머지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좋다. 또한 이 시나리오도 기본적으로 사기등에서 아군이 불리하며, 노부타다는 별 거 없지만 타키가와 가즈마스도 참전하니 풍림화산정도는 이벤트가 일어나기 전에 사나다 유키무라에게 배워두는 것이 좋다.

또 여담이지만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동명의 만화가 있는데, 작가가 그 요코야마 미츠테루다.(원작자는 타 지로)

뜬금없지만 에키벤에서 아버지 신겐과 함께 동상으로 등장. 주인공 다이스케는 김미지에게 노부시게가 배신하지 않았으면 천하는 다케다가 차지했을 거라고 설명해준다.

센고쿠에서는 텐모쿠산에서 가족들과 함께 자결했다는 통설과 달리 가족들을 죽이고 홀로 달아나다[13] 오다군 병사들에게 살해된다. 죽기 전 아버지의 영혼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나름 만족스런 표정으로 사망. 더불어 노부나가는 그의 죽음을 듣고 '영원한 작별이다. 벗이여.'라며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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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요새는 우에스기 카게카츠도 한 수 한다고 쳐 주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 [2] 다만 이 경우는 뛰어난 다이묘였던 호조 우지쓰나호조 우지야스같은 이들의 존재 때문에 대표적인 예라고는 할 수 없다. 호조 우지쓰나는 역시나 뛰어난 다이묘인 호조 소운의 아들이었고 호조 우지야스는 그 우지쓰나의 아들이었다. 물론 호조 우지마사 대에서 시망했긴 하지만, 4대가 되도록 어리석은 사람 하나 안 나오는 건 그거대로 이상한 일이니까..
  • [3] 히데요리는 평생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벗어나질 못했고 또 오오사카 성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는 지경에 심지어 히데요시의 친자가 아니라는 설까지 있다.
  • [4] 도쿠가와 히데타다. 사나다 부자 때문에 지참하여 한 때 이에야스의 후계자가 되지 못할 뻔했고 심지어는 도쿠가와가문의 내부기록에서조차 히데타다의 평가는 낮다.
  • [5] 군전체에 있어서 기마병의 비율은 오히려 부유한 호죠가측이 좀 더 높다. 근데 그래봐야 다른 나라에 비하면 많지가 않기에 기병부대도 아니다.
  • [6] 철포의 사격을 분담함으로서 발사의 효율을 높이는 전술
  • [7] 토목공사로 인공적인 급경사를 만들고 또 거기에 삼중으로 흙자루를 쌓았으며 방책까지 만들었다.
  • [8] 스와하고는 한 번 적대했을 뿐더러 이미 몰락해서 정략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 [9] 그래도 완전히 바닥은 아니고 통솔이 중박을 치는 B급형 무장이지만, 지략이나 정치력이 부족해서 주변의 오다나 도쿠가와, 호죠, 우에스기 사이에서 버텨 나가기에는 벅찬 능력치이다.
  • [10] 미하타는 다케다 가문의 깃발, 타테나시는 시조 미나모토 요시미츠가 입었다는 갑옷
  • [11] 병력, 사기가 모두 뒤지는데다가 아군은 기마대라 붙어야되는데 앞에는 진지와 함정이 기다리고 있고, 그렇다고 유인을 하자니 적은 철포대라 멀리서 쏘면 그냥 망했어요...
  • [12] 군학4에 풍림화산을 들고 있는 다른 장수로는 고사카 마사노부도 있지만, 마사노부는 성주기 때문에 기능사사를 받을 수 없다.
  • [13] 정황상 호죠가로 향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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