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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흥

段智興

생몰년도 미상

후대리국의 제4대 황제. 재위는 1171 ~ 1200년으로 시호는 공극황제(功極皇帝), 묘호는 선종(宣宗).

이관은과 고수창이 제위를 빼앗으려고 하자 그의 조카인 고정명을 재상으로 세웠으며, 아기에서 난이 일어날 때 고정명이 제위를 빼앗으려고 하자 고수창을 내세워 막게 했다.

Contents

1. 김용 월드의 단지흥
1.1. <사조영웅전>의 단지흥
1.2. <신조협려>의 단지흥

1. 김용 월드의 단지흥

천하오절 중 한 사람으로, 송나라 남쪽에 자리한 대리국의 황제였기 때문에 '남제'라는 별호가 붙었다. (옛부터 교분이 있는 이들로부터는 '단황야'라 불리우기도 한다.)[1].

대개 한 나라의 통치자에겐 격무라는 짐이 따라붙기 마련인데[2], 그러한 부담을 안고서도 무공으로 천하를 주름잡았으니 이 양반도 이래저래 먼치킨. 더군다나 선정을 베풀어 명군으로 추앙받기까지 했다니 더더욱 대단하다.

하지만 성격이 약간 소심한 탓인지[3] 황제 시절 저지른 잘못 때문에 황제의 자리를 내던지고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 이 때 고위직에 앉아있던 신하들 네 사람까지 같이 산으로 끌고 가는 물귀신적 행보를 보인다. 이들이 바로 어초경독.

천하오절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무공은 확실히 강력하다. 출가한 이후의 법명은 "일등". 따라서 작중에서는 "일등대사"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자신을 출가하게 만든 예전의 사건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어서 죄과를 씻는 데 다소 집착을 보이는 편이다.

2차 화산논검에서도 천하오절 자리를 유지하게 되는데, 황제에서 스님이 되었으므로 "남제"에서 "남승"으로 별호가 바뀌었다.

천룡팔부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단예의 손자이기도 하다.

1.1. <사조영웅전>의 단지흥

제1차 화산논검 이후, 왕중양은 단지흥의 무공을 보고 매우 탄복하여 다음해 사제 주백통과 함께 대리국으로 와서 함께 무공을 익혔다. 이때 왕중양은 단지흥에게 자신의 일양지를 전수해주었으며, 단지흥은 왕중양에게 선천공을 전수해주었다. 왕중양은 자신이 죽은 후에 서독 구양봉을 상대할 인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냥 전수해 줘도 되는데 굳이 교환을 한 것은 남제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함.

그러나 천룡팔부에서 일양지가 대리국 단씨 가문의 무공으로 등장하자 설정 충돌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개정판에서는 단지흥이 일양지를, 왕중양이 선천공을 익히고 있었던 것으로 바뀌게 된다.

주백통과 당시 단지흥의 후궁이었던 영고가 사통하여 아이를 낳는 사건이 일어나자, 충격을 받고 몇달간 앓아 누웠다. 게다가 영고의 아이가 괴한(구천인)에게 습격당해 생명이 위독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아닌 주백통과 그 아이를 목숨을 걸 만큼 사랑하는 그녀를 보고 질투심을 느껴 아이를 구해주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영고에게 원한을 사게 된다. 영고가 떠난 후 삼일 밤낮으로 고뇌하다가, 홍칠공을 불러 그에게 선천공과 일양지를 넘겨주고 자살하려 했지만 그의 결심을 눈치챈 홍칠공이 듣지 않자 제위를 장자에게 물려주고 그 길로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

또 출가한 후에 어초경독무삼통이 대리국 대설산(大雪山)에서 구양봉의 아들 구양극과 시비가 붙었으며, 갑자기 나타난 구양봉의 합마공을 맞고 중상을 입었다. 그래서 무삼통을 치료하느라 자신의 내공이 소진된 틈을 타서 구양봉이 자신을 습격하려는 것을 알고 구양봉을 피해 룡사에 은거하게 된다. 구양봉을 끝장낼 수도 있었지만 원한이 쌓이는 것을 원치 않아 자신이 은거한 것이다.

곽정구천인의 철장공에 당해 생명이 위독한 황용을 데리고 오자, 자신의 목숨을 걸고 황용을 구해주었다. 그리고 영고가 보낸 물건들을 보고 그녀가 복수를 하러 올 것을 알게 된다. 예전의 업보를 갚기 위해 스스로 영고에게 죽기를 바랬으며, 그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던 황용과 곽정이 계략을 꾸며 영고를 막았음에도 스스로 나서서 목숨을 바치려 했다. 그리고 영고는 그가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 하자 자책감이 들어서 도망쳤다.

본래 황용을 치료하느라 진기를 크게 소모해 5년간 다시 수행을 해야 할 정도로 무공에 손상을 입었지만, 곽정에게 얻은 구음진경의 상승 요결을 해석하여 이틀만에 원래 무공을 되찾게 되었다.

1.2. <신조협려>의 단지흥

구천인을 제자로 삼아 설법을 들려주며 교화시키고 있었다. 주자류의 요청을 받고 구천인과 함께 절정곡으로 향하다가 양과소용녀가 잠시 머물던 사냥꾼의 집에 들리게 된다. 개방의 배신자 팽 장로의 심술에 걸린 구천인이 살심이 일어나 발작을 일으키자, 무공을 써서 제압하지 않고 구천인이 스스로 깨우치고 나오도록 구천인의 장법에 맞으면서도 설법을 멈추지 않았다. 보다 못한 양과가 나서서 구천인을 제압하게 된다.

그리고 양과로부터 절정곡에서 있었던 일과 주자류, 점창어은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듣는다. 소용녀가 중독된 사연을 듣고 자신의 약을 줘서 소용녀가 7일간은 연명할 수 있도록 보증해준다. 절정곡에서는 싸움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심후한 내력으로 구천척공손녹악에게 하는 귓속말을 들어 황용에게 알려주거나 양과가 단장초를 먹은 뒤 점혈을 하여 치료에 도움을 좀 주었다.

16년 후에는 그 동안 증손자 정천현왕(定天賢王) 단흥지(段興智)가 다스리고 있던 대리국이 몽골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고, 무삼통, 주자류, 점창어은이 간신히 단흥지의 목숨만을 구했다.

구천인금륜법왕과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 죽기 직전의 몸이 되자, 영고를 찾아가 구천인의 사죄를 받아달라고 7일 밤낮으로 불렀다. 그러다가 양과의 도움으로 구천인은 영고와 주백통에게 사죄를 하였으며, 단지흥도 그들과 화해하여 주백통 부부가 사는 백화곡의 이웃집에 살게 된다.

황용이 찾아와 곽양의 행방을 찾자 함께 따라나섰고, 양양성 전투에서도 활약한다. 신조협려에는 오늘내일 하는 연배의 노승이지만 그 고절한 솜씨는 어디 가지 않은 듯 하다. 양과가 일등대사의 전음술을 듣고 그 순수하고 득도한 듯한 공력의 경지를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느낄 정도.[4] 금륜국사와의 대결에서도 국사는 일등대사를 안중에도 없이 취급하다가 등봉조극, 노화순청의 경지에 이른 산뜻한 일양지 한 초식을 보고 즉시 대경하여 전심전력을 기울여 상대하게 된다. 단 워낙 늙은 몸이라 체력이 예전같지 않아 황용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정신적인 수양은 극치에 달해 있기 때문에 금륜국사가 수리들의 공격에 정신이 분산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흔들리지 않고 승기를 잡아나가는 간지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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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만 시기적으로는 좀 안 맞는데, 몽골제국 초기인 몽케 시대에 쿠빌라이수부타이의 아들인 우리양카다이가 대리국을 공격하자 곧 항복했는데, 이 때 대리국왕 단지흥이 포로로 잡혔다. 재위기간은 1172년에서 1200년. 포로로 잡힌 사람은 단지흥이 아니라 단흥지이다. 몽케 칸이 1209년생이고 대리국의 멸망이 1254년이니 단지흥이 몽케 칸에게 포로로 잡힐 수는 없다.
  • [2] 물론 제대로 통치를 할 경우 한정. 막장화된 군주는 격무 같은 거 없다.
  • [3] 그러나 명군답게 대인배다.자기가 총애하는 영고를 건드린 주백통을 용서해주고, 영고도 결혼하게 해주려고 했다.
  • [4] 물론 일등대사 역시 내공의 거친 기세와 강맹함은 자신이 따라가지 못할 경지에 있다고 여겨 양과를 내심 칭찬한다. 즉 막상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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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4-10-21 13: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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