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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조

last modified: 2015-04-14 01:13:26 by Contributors

당의 역대 황제
초대 고조 태황제 이연 2대 태종 문황제 이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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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 고조(高祖)
시호 신요대성대광효황제(神堯大聖大光孝皇帝)
연호 무덕(武德, 618년 5월 ~ 626년)
이(李)
연(淵)
숙덕(叔德)
생몰기간 566년 4월 8일 ~ 635년 6월 25일
재위기간 618년 6월 18일 ~ 626년 9월 4일




  • 생몰년 : 565년 ~ 635년 6월 25일 (70세)
  • 재위기간
    • 당의 황제 : 618년 6월 18일 ~ 626년 9월 4일 (8년 78일)
    • 당의 태상황 : 626년 9월 4일 ~ 635년 6월 25일 (8년 294일)
  • 즉위식 : 618년 6월 18일
  • 장례식 : 635년

중국 당나라의 건국자, 초대 황제. 휘는 연(淵).

(조상은) 농서 성기(成紀) 출신으로, 농서 적도나 거록군 출신이라고도 한다. 자는 숙덕(叔德).

Contents

1. 즉위 전
2. 황제 즉위
3. 자녀

1. 즉위 전

8세에 북주의 안주총관(安州總管)이었던 아버지 이병이 죽자, 당국공(唐國公)의 자리를 계승했다. 수문제의 아내인 독고황후가 작은 이모였다. 즉, 수양제 양광의 이종사촌이었다. 양제 때는 태원유수(太原留守)로 있었고, 이에 따라 훗날 태원은 당 왕조의 개창지로서 당나라가 존속하는 동안 북도(北都)로 불리게 된다. 선비족 계통의 무장이다.이런 출신을 보고 이연을 이민족이라고 까는 경우가 많은데, 이연은 오호십육국 시대에 매우 드문 한족계 왕조인 서량 후주 이흠의 6대손이다. 그리고 집안을 보면 전한의 명장 이광의 후손이고, 더 올라가면 진의 명장 이신의 후손이다. 비록 선비족들과 피가 섞이고 선비족 지배하에서 지냈지만 충분히 자신을 한족이라고 인식했을만 하다.

아버지 이병은 이후에 당 세조로 추증되었다. 태조가 흔히 건국자들에게 주어지는 묘호인데도 남북조시대 서위의 재상이었던 이병의 아버지 이호가 당 태조로 추존되었다. 초대 당국공이었기 때문.

2. 황제 즉위

617년, 수양제의 폭정이 극에 달하면서 반란이 중국 각지에서 터졌고, 이연 역시 반란에 가담했다. 장안으로 쳐들어간 이연은 양제를 폐위하고, 최후의 황제인 황태손 양유(수공제)를 옹립하고 대승상이 되었다.

이후 양제가 죽자 선양을 받아 당을 건국하고, 연호를 무덕(武德)이라 했다.

후에 당태종이 되는 진왕(秦王) 이세민은 사방에 퍼진 반란군을 백전백승으로 토벌했고, 이에 천책상장이란 별호를 내려주었다. 하지만 황태자는 맏이 이건성(李建成)이었다.

결국 626년 현무문의 변이 일어나면서 4남인 제왕(齊王) 이원길(李元吉)과 태자가 살해당하자 3일 후 황태자에 이세민을 봉하고 2개월 뒤 양위하여 태상황이 되었다.

주색을 좋아했고, 그 때문에 술친구인 배적(裴寂)을 우대했으며, 개국공신 유문정을 처형한 것을 들어 창업자의 재질이 아니었다는 말도 있으나 당태종의 왜곡이란 말도 있다. 기록에 따르면 제위에 있을 때 이세민을 의심했고, 특히 후궁 장첩여와 윤덕비의 참소에 넘어가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고 한다.(하지만 돌궐의 침략이란 말에 데꿀멍 하고 도로 이세민을 불렀다;;)

635년 태상황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0세.

묘호는 고조(高祖), 시호는 신요대성대광효황제(神堯大聖大光孝皇帝)로 줄여서 태황제(太皇帝)라고도 부르며, 능호는 헌릉(憲陵)이다.

3. 자녀

슬하에 22남 19녀를 두었다.정력왕

특히 3녀였던 평양공주(平陽公主) 이수녕(李秀寧, 596~623)은 정비인 태목황후(太穆皇后) 두씨(竇氏)의 유일한 딸이다. 어머니도 여장부로 이름이 높았다. 수문제의 독고 황후, 훗날의 측천무후 등을 보면 수당 왕조는 대대로 쥐어사는 남편들이었던듯;; 이 평양공주가 시소(柴紹)와 혼인 한 후 아버지의 반란에 가담하였다. 그녀는 갑옷을 입고 직접 싸웠고, 호현과 곡관에서 수나라 군을 크게 격파했는데, 그녀의 부대는 낭자군(娘子軍)이라 불렸고 수는 3만에 달했다. 후에도 낭자군은 이세민의 북벌에 활약했다.

아들은 시영무(柴令武)를 두었고, 다른 아들을 낳다가 스물 일곱에 죽었다. 고조는 3살 떄 죽은 명제 조예의 장녀 평원공주 조숙(曹淑)에게 의(義)라는 시호를 붙인 이래(그래서 '평원의공주'라고 부름) 두 번째로 평양공주에게 소(昭)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래서 사서에서는 그녀를 가리켜 봉호와 시호를 합쳐 '평양소공주(平陽昭公主)'라 부른다. 그리고 개국공신의 예로 군대를 동원하여 장사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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