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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관련 이야기

last modified: 2015-03-11 01:40:12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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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연관된 사건/사고
1.1. 굿데이 강수진 기자의 무개념 기사
1.2. 녹취록 조작 사건
1.3. 지하상가의 문제
1.4. 생존자들의 후유증
1.5. 기적의 사진
1.6. 대형 낚시에 성공한 글짓기
1.7. 통구이 드립
1.8. 안양 LG 서포터의 불전동차 드립
1.9. 개신교 교회의 지옥 드립
1.10. 사건 이후 문화의 변화
2. 대구 지하철 참사를 소재로 한 작품들
3. 모방범죄 사례
3.1. 서울 지하철 7호선 방화사건
3.2. 서울 지하철 4호선 방화 미수 사건
3.3. 대구 지하철 2호선 방화 미수 사건


1. 연관된 사건/사고

1.1. 굿데이 강수진 기자의 무개념 기사

연예 > 굿데이 2003년 2월21일 오전 10:54 지하철 참사 "파이브 오빠들이 저를 살렸어요"

"파이브 오빠들이 저를 살려줬어요!" 올 상반기 최고의 신인으로 각광받고 있는 4인조 R&B 그룹 파이브의 한 팬이 대구 지하철 참사와 관련해 감사의 편지를 보내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8일 "명랑해영" 이라는 닉네임의 이 팬은 파이브의 공식 홈페이지에 "오빠들 덕분에 살았다" 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글에 따르면 이 팬은 사고가 나기 바로 직전 대구 중앙로역 입구 계단을 반쯤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중앙로역 부근 레코드 가게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파이브의 "걸" 이 울려퍼지자 이 노래를 듣기 위해 계단을 되짚어 다시 올라갔다.

이 팬은 "오빠들의 노래를 그냥 지나칠 수가 있나. 다시 계단을 올라가 레코드점 앞 TV모니터로 오빠들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펑" 소리가 났고 검은 연기가 솟구쳤다" 며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당시를 회상했다.

"생명의 은인으로 평생 기억하겠다" 는 이 팬은 최근 소속사측에 "꼭 한 번 찾아가 고마움을 표시하겠다" 는 약속을 남겼다.


이 기사의 오류는 근처에 레코드 가게가 없었다는 것과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은 폭발 사고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안 한 인터넷 사이트가 이에 대해 추궁했고 결국에는 부풀려진 이야기였음이 확인되었다. 당사자는 노래가 아닌 지인의 휴대전화로 피해를 모면했다고.

당시 근거 없는 찌라시성 기사로 인해 비난을 받고 있던 굿데이와 강수진 기자는 이후 더욱 거센 비난을 받았다. "펑" 하는 소리가 팬터 그래프와 가선 사이에서 발생한 스파크로 인한 폭발음이라는 얘기도 있기는 하지만 지하철이 LPG통이나 석유 탱크라도 실어나르고 다니는 게 아닌 이상 팬터 그래프 스파크로 인한 폭발음은 절대로 밖에서 들릴 정도까지 크지 않다. 관련 글

1.2. 녹취록 조작 사건

대구지하철 참사 / 사령팀장이 녹취록조작 지시, 조직적 공모 확인

경향신문 2003-03-04 (사회) 19면 45판 815자 스크랩

대구 지하철공사 종합 사령팀장이 기관사와 운전사령 간의 유·무선 교신 내용을 기록한 테이프 녹취록 조작을 지시하는 등 간부와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녹취록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을 수사중인 대구 지방 경찰청은 3일 "사고 발생 후 종합 사령팀장인 곽모씨(51)가 운전사령 조모씨를 통해 통신사령 한모씨에게 '(녹취문을 작성할 때)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없애라' 고 지시한 사실을 확인했다" 고 밝혔다.

경찰은 종합 사령실 3명과 감사부 직원 3명 등 적어도 6명이 공모, 1080호 기관사와 운전사령 간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녹취록에서 누락시킨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삭제 경위를 조사 중이다. 특히 경찰은 2개 부서 간부와 직원들이 녹취록 조작에 개입한 데다 곽씨가 사고 발생 이후 수시로 윤진태 전 사장에게 사고 관련 내용을 직접 보고한 점 등으로 미뤄 윤 전 사장 등 경영진과 고위 간부들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이 날 윤 전 사장 등을 재소환, 조사를 벌였다. 경찰은 종합사령팀장 곽씨가 '마스콘 키' 와 관련한 구체적인 부분에 대한 삭제를 지시했는지, 포괄적인 삭제 지시를 했는지에 대한 당사자들 간의 진술이 엇갈려 이 부분에 대해 대질 심문 등을 벌였으며 구체적인 역할과 경위가 드러나는 대로 증거 인멸 혐의를 적용, 사법 처리할 방침이다. 또 윤 전 사장과 감사부장 오모씨 등 고위 간부들에 대해서도 녹취록 삭제 지시나 개입 여부가 드러나는 대로 사법 처리키로 했다.

한편 이번 사고로 중상을 입고 대구 동산의료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던 이순자씨(63.여)가 이 날 숨짐에 따라 사망자는 추정 198명으로 늘어났으며 부상자 수는 145명으로 집계됐다. 최슬기 기자


피해가 커진 이유 중에는 기관사의 무책임한 대응도 포함되어 있다. 화재가 발생한 역을 지나치거나 재빨리 발차했다면 피해가 줄었겠지만 정차한 뒤 문을 닫고 마스콘 키를 뽑은 뒤 도망친 행위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단, 한 가지 간과해야 되고 그에게 변명의 여지를 줘야하는 것은 그 상황에서 기관사는 아무런 권한도 없었다는 것이다. 해당 지휘 통제실에서 늑장 대응을 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래서 높으신 분들이 문제라는 거야 게다가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던 녹취록에서는 '통제실에서 차를 죽이고 나가라[1]' 는 지시를 한 것이 확인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관사의 행위가 용서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기관사가 모든 것을 뒤집어쓴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당시 관련자들의 처벌이 어떤가 하면 1080호 기관사 최상열은 열차의 출입문을 닫아버려 승객들의 탈출을 막아 많은 사상자를 내게 한 점에서 금고 5년이, 1079호 기관사 최정환과 가장 먼저 화재 사실을 연락 받은 관제사 방정민에 대해서는 초동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각각 금고 4년, 홍순대 등 나머지 관제사들에 대해서는 각각 금고 3년에서 1년 6월이 선고되었으며 그 밖의 역무원이나 시설 책임자들에 대해서는 직접 책임이 없다고 하여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이에 대해 '다른 국가라면 이런 약한 처벌은 없었을 것이다' 등의 비판이 가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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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지하상가의 문제

위에서 잠깐 언급한 문제인데 지하 1층 상가로 통하는 방화 셔터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문제는 그 방화 셔터 바로 옆 가게쪽 벽에 개폐 스위치가 있어서 빨리 열어놨다면 인명 피해가 줄었을 텐데, 근처 가게 상인들이 연기가 가게에 들어올까봐 그냥 방치하고 튀었다고 한다.[2] 당시 중앙로역 지하 1층 분수대 양 옆의 지하철역 출입구 셔터 두 곳이 모두 닫혀서 그 부분까지만 새카맣게 그을려졌다. 지하 상가 외벽은 하얀 타일이므로 현장의 민간 공개 시 방화 셔터가 내려갔던 곳을 경계로 흑백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광경이 나왔다. 말 그대로 천국과 지옥이 갈린 상태. 한쪽은 참사의 현장이요, 한쪽은 쇼핑을 위한 지하상가였으니...

이 방화벽 그을음은 재개장 후에도 청소하기 미묘한 구석에 1년 넘게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꾸준한 청소와 세월의 힘으로 지워져서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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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곳은 화재발생시 지하철에서 상가방향으로 이동하는것이 아니라 지하상가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지하철방향으로 이동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방화셔터에 있는 비상구도 거꾸로 달려있다. 이 문만 열었더라면 정말 많은 시민들이 살아남을수 있었을것이다. 2011년3월29일 히스토리후 방송분에서 당시 셔터를 닫는 CCTV장면이 공개되었는데 터벅터벅 걸어가서 버튼한번 딱 누른뒤 뒤도 안돌아보고 걸어 나가는 모습이 나왔다.

1.4. 생존자들의 후유증

이후 참사 1주기를 맞이하여 생존자들의 모습이 방송된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 밤에도 불을 환하게 켜놓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한 초등학생의 경우 게임을 할 때도 히어로가 나와서 사람을 구하는 스파이더맨 게임만 하고 있었다. KBS의 방송 중 하나인 위기탈출 넘버원에선 어느 소년이 이 사건에서 살아남은 사연이 문제로 나왔었다. 이런 화재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3]을 적신 뒤 입을 막으며 낮은 자세로 대피하는 것이라고 한다. SBS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 Y' 에서는 한 생존자 여성을 취재했는데, 방에 불에 탈 만한 재질(벽지라든지 장판 수납장)은 하나도 없고 맨 방바닥에서 생활하는 여성의 모습을 취재했다.

1.5. 기적의 사진


이때는 디지털 카메라가 처음 보급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화재 당시 현장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사진이 남을 수 있었다. 위의 사진은 류호정 씨가 촬영한 2장의 사진 중 한 장으로 촬영자는 이 사진을 찍은 직후 질식해서 쓰러졌지만 다행히 누군가 문을 열어준 덕분에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다. 이 사진에는 모두 여섯 명의 사람이 식별 가능한데 모두 생존한 기적의 사진으로 불렸다. 촬영자 류 씨는 영남대병원, 나머지 5명은 파티마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생존이 불확실했던 나머지 한 사람도 후에 생존이 확인되었다.

여담으로 연기가 칸 내에 들어찼는데도 뭔가 사태를 알아보거나 탈출하려는 시도조차 없이 다들 좌석에 앉아만 있는 모습은 집단 심리의 무서움을 알수 있다. 참사 후 이뤄진 여러 공개 실험에서도 유사 상황에서 비슷한 전개를 볼 수 있었다. "심각하면 직원들이 경보를 울리거나 조치를 취하겠지?" 라는 당연한 상식이 무시된 탓도 크지만 말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앞서 언급된 내용처럼 전동차 출입문의 비상 개폐 기능이었는데, 대다수 승객들은 이 기능을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소화기로 창문을 부수고 탈출했단 사례도 있었다.

1.6. 대형 낚시에 성공한 글짓기

인터넷에서 조금만 검색을 하다 보면 대구 지하철 참사와 관련된 슬픈 이야기라고 해서 떠도는 글이 있다. 대충 내용을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수학여행 때문에 가방이랑 신발 새로 사려고 했는데 용돈을 너무 적게 주는 엄마한테 화를 내고서 시내로 나가 엄마가 보내는 문자도 무시한 채 아이쇼핑(구경)을 하다가 집에 왔는데 아무도 없었고 TV뉴스에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나오길래 불안한 마음에 문자를 열어봤더니 엄마가 쇼핑 센터에서 가방과 신발을 사온다는 문자와 지하철 사고에 휘말려서 그걸 전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문자가 있었다."

이게 인터넷상에서 언제부터인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는데 대다수 사람들로부터 슬픈 이야기라는 공감을 얻어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군데군데 이상한 구석이 있다.

첫번째로 대구 지하철 참사는 2003년 2월 18일에 발생했는데 왜 이때 수학여행을 가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일각에서는 2월에 수학여행을 갈 수 있지 않느냐는 억측을 하지만 통상적으로 2월에 초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진급 및 교사들의 전출입 등의 업무가 많기 때문에 수학여행을 갈 여력이 없을 뿐더러 그나마 있는 봄방학인데 이때 수학여행을 간다고 하면 좋아할 학생들이 몇이나 될지도 의문이다. 또한 한국은 2월 졸/종업, 3월 입학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2월 중순이면 이미 대부분의 학생들이 졸업 내지 종업을 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직 3월이 되지 않았으므로 공식 진급은 하지 않은 상황이라 학생들은 공식적으로 소속된 반이 없으며 따라서 담임 교사가 없다.

두번째로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시각은 아침이었고, 이게 뉴스 속보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무렵이었다. 그야말로 대형 사고였기 때문에 주변에 떠들썩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낮에 대구 시내에서 쇼핑을 즐기는 와중에 전혀 소식을 몰랐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세번째로 사건이 발생한 시각은 오전 10시가 되기도 전이었다. 이 때 쇼핑센터에서 벌써 나와서 지하철을 탔다는 얘기는 도저히 설명이 안된다. 딸이 정말 갖고 싶어하는 가방과 신발이라면 엄마 입장에서 결코 대충대충 고를리가 없으니 쇼핑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1~2시간 정도다. 쇼핑센터가 지하철역 바로 앞이라고 가정한다해도 오전 8시에서 9시 사이에 쇼핑센터에 들렀다는 소리인데 2003년 당시에는 대형마트조차 이 시간에는 영업을 안했다. 뭔가 2003년이 너무 옛날 수준으로 들린다.

결국 이 글은 낚시픽션이었음이 드러났는데 화성시의 어느 여고생이 쓴 글짓기가 2003년 7월 27일자 한겨레 신문 교육 섹션에 실린 게 실화인 양 와전된 것이다. # 당시 한겨레의 교육 섹션에는 학생들이 쓴 글을 싣고 교사가 평가해주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 코너에 실린 것. 지면상에서야 이게 실제가 아니고 그냥 학생이 쓴 글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었겠지만 인터넷 기사로 실리면서 문제가 된거다. 인터넷상에 난독증을 앓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인터넷 기사 첫머리에 영화나 소설처럼 픽션임이 명백하다는 것을 밝혔으면 없었을 일이었겠지만 지어낸 글이라는 걸 알 수 있는 표지가 달랑 '글짓기교실'이라는 제목의 모호한 것 하나뿐이었으니 낚일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대형 낚시질이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나 씁쓸한 대목인데 실제로도 이 글에 대해 비극적인 사고를 이용해 억지 눈물을 만들려고 한다.는 비난이 인터넷상에 꽤 있는 편. 애초에 실화라고 해도 가슴이 아플 터인데 군데군데 허점이 있는 낚시글이니 결코 좋게 봐줄 수는 없는 대목이긴 하다.

참고로 이 낚시글은 대구경북지역 수련회 밤에 선생님이나 교관이 들려주는 1순위 이야기이기도 하다(...). 덤으로 이 이야기를 들려줄때는 항상 촛불을 켜놓는다. 하지만 리그베다위키를 봤거나 위와 같은 논리적 추리로 이미 사실을 파악한 학생들이라면 그저 웃지요

1.7. 통구이 드립[4]

요약하자면 고인드립 + 지역드립. 각각 막장성이 충만한 만큼 두 개가 합쳐져서 막장성이 배가 되었다.

이 참사가 보도된 후 일본의 혐한들은 조선인들이 불고기 파티를 열었다. w라는 충격과 공포의 반응을 보여주며 제대로 인간말종적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이것으로 끝나면 다행이었는데 2011년 홍어 드립이 만연하게 퍼지면서 그에 대한 반발로 비슷한 드립이 등장했다. 특히 야구 갤러리에선 대구를 연고지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의 별명이 되었는데 2011년 한국프로야구 페넌 트레이스에서 삼성이 1위를 하게 되면서 해당 드립은 더욱 퍼지게 된 것이다. 한국프로야구의 8개 구단별 팀 갤러리 중에서는 LG 트윈스 갤러리에서 해당 드립을 주로 사용하다가 시간이 지나 대구, 경북도민, 삼성팬들을 제외한 야갤러라면 다 쓰는 표현이 되었다. 비슷한 말로 '통구이 바비큐', '노릇노릇 고담 통구이' 등이 있다.다만 야갤에서 쓴다고 온라인/오프라인에서 이런 소리하다간 운지드립과 마찬가지로 빼도박도 못하는 고인드립이므로 사용하고 나서 자신에게 욕이 날라와도 100% 자신 책임이다.

통구이라는 단어는 여러 단어들을 파생시켰다. '통궈'는 대구의 다른 이름으로 '통구이'의 '통'과 중국을 뜻하는 중국어 '중궈'의 '궈'를 합친 신조어다. 대구에서 일어나는 황당한 사건들이 중국과 비슷하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거나, 경상도 사투리의 억센 억양 등이 중국 북경어와 비슷하다는 것에서 나왔다고 한다. 역시 대구를 일컫는 '통구'는 통구이의 준말이기도 하고 통구이의 '통'과 대구의 '구'를 합친 말이기도 하다.[5] 대구, 경북도민들을 만주 퉁구스족을 패러디한 '고담 통궈스족'으로 불리기도 한다. '뒤통궈'란 경북도민들이 뒤통수를 때리는 것을 말하지만 경북식 뒤통수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야갤에서 일베의 이중잣대를 깔 때 '통베', '통베충' 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호남 지방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모 사이트에서는 홍어드립이 뭐가 문제냐고 주장하기 위해 통구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이들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가리켜 서울사람들에게 쥐포드립까지 치고있다. 답이 없다. 이들은 그밖에도 사건 범인이 호남 출신이라느니 하는 드립도 치고 있는데 실제로는 영남 출신이다. 그리고 애초에 한 범죄자가 출신 지역을 대표하는 듯 사고하는 것부터가 문제. 조승희가 한국이나 한국인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고인드립이나 지역드립과 마찬가지로 썼다간 인간말종으로 찍히기 딱 좋은 드립이다. 충분히 병크를 유발하는 단어이므로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1.8. 안양 LG 서포터의 불전동차 드립

2003년 7월 4일에는 안양 LG(현 FC 서울) 서포터즈인 RED가 안양 홈페이지에 경기 일정을 소개하면서 대구 FC와의 홈경기를 vs불전동차라는 드립을 쳤다. 사고 발생 후 5개월이 지났지만 전국민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던 사건을 희화하하는 고인드립에 분노한 대구 시민들은 야빠축빠를 가리지 않으며 분노하였고 이 이야기가 인터넷을 통해 전국으로 퍼지면서 그야말로 가루를 넘어 분자가 되도록 제대로 까였다. 결국 RED의 대표가 대구로 내려가서 고인들에게 분향하며 대국민사과를 하며 마무리되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

1.9. 개신교 교회의 지옥 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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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한 장으로 모든 게 설명된다.

공동체 모두가 함께 아픔을 나누어야 할 비극조차 선교 목적을 위한 협박의 도구로 써먹으려 드는 왜곡된 가치관이 담겨있다. 희생자들의 매세지 항목에도 적혀있지만 희생자 중에서도 기독교 교인이 있었음을 보면 '알려지지 않은 개신교인 희생자'도 있었을 텐데 같은 교인까지 한 큐에 깎아내려버린 희대의 병크다. 결국 이것은 개독예수쟁이, 먹사 등으로 낙인 찍힌 한국 개신교의 이미지만 대폭 깎았다. 안 되겠어 이 녀석들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1.10. 사건 이후 문화의 변화

당시 전기가 내려가고 연기가 가득 차서 어둠 속에서 길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랜턴의 대용품으로 활약했던 것이 당시 막 보급되기 시작했던 컬러 액정 휴대폰이었다. 그 이후로부터 재해 대비 매뉴얼로 휴대폰의 액정 빛을 랜턴 대용으로 쓰는 것이 추가되었다. 2004년 이후 휴대폰에 카메라 기능과 함께 LED 플래시가 달린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다. 80만원짜리 후레시

큰 사건이 발생한 후 대중 가요는 대체로 추모하는 느낌의 곡들이 인기를 끄는 경우가 많은데[6] 이 사건 직후에 인기를 끈 가요는 M.C The Max의 '마지막 내 숨소리'라는 곡이었다. 사실 대구 지하철 참사와는 무관한 내용[7]이라 평범한 곡으로 남을 뻔했으나 그 가사가 당시 대구 지하철 참사의 현장 상황과 너무나도 비슷하였고 슬픈 발라드 곡조가 사람들을 추모하는 듯한 느낌이 강해서 사고 직후 큰 인기를 끌었다.

2. 대구 지하철 참사를 소재로 한 작품들

  • 2007년 감우성, 최강희 주연의 옴니버스 영화 사랑에서는 대구 지하철 참사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사고 장면이 나온다.

  • 승우비빔툰에도 이와 관련된 8행시를 그리는 에피소드가 연재되었는데 단행본으로는 5권에 실려있다.

  • 윤인완이 스토리를 쓰고 김지혁, 유현, 변병준, 최경아, 서문다미, NANO, 요요 등이 작화를 맡은 단편집 문화 컨텐츠의 이해 (2010) 2부 "동화" (작화: 변병준) 편은 최면 치료를 받고 당시의 기억을 지워버린 대구 지하철 참사 피해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작품을 통해 실제 사건을 컨텐츠화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네이버 웹툰 기타맨 59화에 이를 소재로 한 내용이 나온다.#

  •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에서도 대구 지하철 탈출이라는 게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학교 탈출 같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뒤에서 방화범(파이어뱃) 역할의 플레이어가 쫓아오고 나머지 사람들은 건물과 미네랄을 뚫고 도착 지점까지 가는 것(...)으로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 보컬로이드 시유(VOCALOID)노래 Falling Rain발라드곡인 노래를 재해석해노래에 맞추어 팬PV를 만들었다.

  • SCP 재단의 한국어 위키에도 이를 소재로 한 항목이 있다. SCP-222-KR

3. 모방범죄 사례

범행의 내용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인지 범인 김대한과 비슷하게 사회적 사각지대에 있던 사람들이 자포자기하여 모방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몇 차례 발생하였다. 다행히 시민들의 적극적인 신고와 대처가 큰 사고를 막았다.

3.1. 서울 지하철 7호선 방화사건

철산역 방화 사건으로도 알려져 있다.

2005년 1월 3일, 가리봉역에서 온수행 7017열차에 승차한 강모씨가 철산역 접근 중에 미리 준비한 신문지와 석유로 불을 질렀다. 대구 지하철 사고가 발생한 지 얼마 안 되었던지라 초동 조치가 빨랐고 광명사거리역에서 소화기로 진화한 뒤 운행을 계속했다. 문제는 불을 대충 끄고 운행을 재개하면서 불이 다시 붙었고 결국 온수역에서 차량 3량이 전소하고야 말았다. 2011년 현재 사고 편성 중 전소한 3량은 차량 기지에 보관 중이고 나머지 차량은 8호선의 잉여 차량 3량과 연결하여 영업 운전 중이다.

3.2. 서울 지하철 4호선 방화 미수 사건

2005년 10월 24일 오후 7시 54분 무렵, 서울 지하철 4호선 사당발 당고개행 4198열차에 탄 임모씨가 신문지에 불을 붙이고 끄는 행동을 반복하였다. 주변 승객들이 피하는 가운데 여성 승객 김모씨가 지하철 상황실에 신고, 동작역에 도착하자마자 열차가 정지하였고 역무원 조모씨와 공익근무요원 2명 등 4명이 출동하여 임모씨를 제압하고 경찰에 넘겼다.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으나 열차 운행이 1분 30초 가량 중단되었다.

임모씨는 강도상해죄와 특수강도죄로 실형을 산 경력이 있는 전과자로 무직으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범행 당시 만취한 상태였다. 경찰에서 방세도 못 내고 휴대전화도 끊기는 등 생활고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지하철 방화를 저지르려 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법원에서 6개월 실형을 선고 받았다.

3.3. 대구 지하철 2호선 방화 미수 사건

2005년 11월 19일, 대구지하철 2호선 경대병원역에서 김모씨가 유사 사건을 벌이려다가 학생들의 제지로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했다. 19일 오후 김모씨는 인화성 물질이 든 살충제 스프레이를 들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 분사하며 "다 죽여버리겠다" 고 외치는 등 위협적인 행동을 하였다.

대구 시내에서 영화를 보고 귀가하던 영남공고 3학년 학생 김형석, 최고영, 주세별군 3인은 옆 칸에서 벌어진 사건을 목격하고 신속하게 김모씨에게 달려들어 인화성 물질과 라이터를 빼앗고 팔을 꺾어 제압하였다. 또 경북 경산 소방서 진량 파출소에 근무하던 박수덕 소방위는 이때 가족들과 나들이를 다녀오던 중이었는데 화재가 발생한 것을 보자 소화기를 꺼내서 김모씨가 붙인 불을 끄고 학생들과 함께 김모씨를 제압하고 완전히 제압한 것을 확인한 뒤 현장을 떠났다. 21일에 3명의 학생들은 대구 지하철 공사[8]에서 감사장과 100만원씩 포상금을 받았으며, 대구 지방 경찰청에서 용감한 시민상과 표창, 50만원씩 포상금을 받았다. 박수덕 소방위도 표창과 30만원의 포상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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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11 01: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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