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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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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희생자들의 애절한 마지막 메시지
3. 현장 사진과 추모 메시지
4. 관련 이야기
5. 지금도 위험은 계속된다
6. 비극을 막기 위한 노력

대구 지하철 참사 공식 홈페이지. 희생자가족방 게시판을 보면 그들의 아픔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 개요

대한민국에서 철도 관련으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기록한 범죄이자 참사로 19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고로 발생한 인명피해 순위로는 501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302명이 사망[1]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292명이 사망한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의 뒤인 4위에 해당되며, 165명이 사망한 대연각 화재사건에 버금간다. 1995년에 289명이 사망한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벌어진 지하철 화재 사망자 다음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지하철 화재 희생자를 낳은 불미스런 비극이기도 하다.

발생 시점은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발생 장소는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동(城內洞)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발생 경위는 당시 56세였던 김대한이라는 뇌졸중을 앓은, 정신지체 장애인의 석유통 방화가 원인이었다. 결국 총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고의 여파로 약 8개월간 중앙로역 뿐만 아니라 명덕역부터 신천역까지 6개 역의 영업이 중단되었으며, 전 구간이 영업을 재개할 때까지 1년이 조금 못 되는 시간이 걸렸다. 이때문에 약 1~2년 동안 대구 지하철의 이용객은 반 이상으로 급감했다.

이 사고는 김대한이 자신의 신병을 비관하다 자살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는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南山洞) 명덕역에서 1079호 지하철을 탄 뒤 경로석에 앉아 있다가 성내동 중앙로역에서 열차가 서행하는 틈을 이용해 미리 들고 있던 석유 플라스틱 통에 불을 붙이고 바닥에 던져 화재를 일으켰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불이 치솟고 아비규환이 되자 화상을 당한 뒤 공포를 느끼고 빠져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1079호는 중앙로역에 정차 중이었고 많은 승객들이 열려 있던 출입문을 통해 대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운행 중지 조치를 취하지 않은 지하철 사령의 오판으로 정상 운행 중이던 1080호가 중앙로역 반대편 선로에 정차하고 말았다. 게다가 출입문이 닫힌 채 기관사가 출입문을 열어주지도 않고 자신은 마스터콘트롤 키를 가지고 탈출하여 1079호에 비해 훨씬 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하였다. 거기다 비상시 문을 수동으로 열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2][3] 사태를 더욱 키웠다. 더구나 방화 셔터가 일찍 닫히면서 나오려던 사람들도 나오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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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고로 열차는 완전히 불에 타 뼈대만 남았고 중앙로역 천장과 벽에 설치된 환풍기, 철길 바깥쪽 지붕들도 모두 녹아내려 역 구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사고 뒤 공개된 차량 내부는 시꺼먼 재와 철골만 남아있어 사고 당시의 참상을 잘 대변한다. 희생자 대부분은 직접적인 화상보다는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되지만 그렇다 해도 불에 타버리는 바람에 유해들은 형체도 못 알아볼 만큼 처참한 상태였다. 사고 다음날 정부는 대구를 특별 재난 지역으로 선포하였으나 사고 직후 대구광역시와 지하철 종사자들이 사고를 축소, 은폐하고 사고 열차들을 차량기지로 가져와서 대대적으로 물청소를 시키는 등 현장과 증거들을 훼손하는 부실한 대응으로 피해가 확대된 것으로 밝혀져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이로 인해 방화범과 지하철 관련자 8명이 구속, 기소되었다. 피해 집계 결과 전동차 2대가 전소하고 사망자 192명, 부상자 147명, 실종자 289명의 피해가 발생했다. 부실 공사가 초래한 성수대교 붕괴사고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는 달리 가해자가 특정 개인에 의해 일어났고 그것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공작원이 아니라 그저 한 정신 이상자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더욱 큰 충격을 준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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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한 정신 이상자의 세상을 향한 증오, 지하철 운영 측의 무책임, 시공 및 제조 업체의 안일함이 빚어낸 어마어마한 참사였다. 아쉬운 점은 이 중 하나라도 제대로 되었다면 피해가 줄었을지도 모른다. 이 사건의 긍정적인 면이 단 하나 있는데 전 세계의 지하철을 포함한 각급 철도 시설들이 개인에 의한 테러에 대하여 갖가지 대책을 세운 것이다. 그에 따라 전 세계의 철도가 이전보다 더욱 안전해진 것이다. 실제로 이 사건을 단순한 방화에 의한 참사로 분류해야 하는지, 명백한 "테러" 로 분류해야 하는지 논쟁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사고 직후인 2003년 중반부터 시작된 전동차 내장재의 불연재 교체 작업과 지하철 내부 시설들의 불연재 교체 작업 등이 있으며 거의 모든 지하철 내에 소화기와 비상 손전등, 긴급 전화번호판 등이 갖춰지게 되었다. 또한 비상시 전동차 문을 손으로 여는 방법도 대대적으로 홍보되었고 현재도 꾸준히 안내 방송에 나온다.

일단 살아남은 사람들도 가스 노출에 의한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야 한다. 가스 자체의 유독 성분도 문제지만 고열의 가스로 인해 피부와 호흡기에 상당한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설사 몸에 아무런 이상 없이 무사히 빠져나온 사람들이라 해도 후일담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목숨이 왔다갔다 했던 당시의 충격 때문에 PTSD로 고생하고 있다. 희생자들과 그에 관계된 유족들은 지금도 이 사고를 잊지 못하고 있으며 생존자들은 대부분 사고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충격으로 자살하거나 정신 이상을 일으킨 사람, 울화병으로 사망에 이른 사람 등도 적지 않았다. 당시 뉴스를 보면 사고가 난 후 다른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지하철 창문을 깨고 나가거나 선로를 따라 인근 역으로 가서 나간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쪽은 거의 모두 부상 하나 없이 무사히 탈출했다.[4] 사고가 일어난 이후 시간이 흐른 지금은 화재 흔적 같은 것은 이미 사라진 상태지만 사고 당시부터 2년 6개월을 넘는 시간 동안 해당 역 근방의 지하도 전체에 굉장한 어떻다고 표현을 하기 힘든 냄새가 흘러넘쳤으며 그와 함께 통행인의 수는 매우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이후로도 여러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일들이 있다고 추정된다.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 같은 것은 당연하고 지하도는 상당한 시간 동안 스산한 분위기에 유동 인구마저 상당히 줄어드는 등 여러가지로 참사의 흔적이 이어졌었다.

한편 피의자 김대한은 당시 화상을 입어 달아나던 중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범죄 사실이 드러나 검거, 구속되었다. 그는 마치 정신 이상처럼 굴려는 듯 진술이 뒤죽박죽이었으며 정신 이상자가 저지른 사고라는 기사가 나오면서 정신 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부채질하는 거 아닌가 우려도 나왔지만 정신과 의사들의 판단에 의하면 정신 이상은 아니라고 했다. 결국 1심에서 사형을 언도받았고 항소하여 2심에서는 무기징역을 언도받았으다. 그러나 상고는 포기하고 교도소 안에서도 그는 횡설수설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4년 8월 30일 지병인 호흡 곤란과 뇌졸중으로 급사했다.[5]

사고일인 매년 2월 18일에 추모 행사를 하고 있는데, 올해 2013년부터 10주기가 되었다. 9주기인 2012년에는 한겨레21에서 특집으로 생존자들의 증언과 이후의 삶을 기사화했다. "우리는 생존자가 아니다"

대구 일간지 매일신문에선 사고 10주기에 즈음하여 세 편의 특집 기사를 실었다. <상> 아물지 않는 유가족 고통 <중> 후유증 시달리는 부상자들 <하> 부상자 처우 및 향후 대책

2013년 2월 15일, 김범일 대구시장은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대시민 담화문을 발표하여 위로의 말을 전한 뒤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한 도시를 만들 것을 약속했다. #

참사 10주기가 되는 날인 2013년 2월 18일, 대구 각지에선 추모 행사가 열렸다. # #

2. 희생자들의 애절한 마지막 메시지

「잘 잤어요. 여긴 날씨 맑음. 오늘 하루 보고 싶어도 쬐금만 참아요.」
(사고 발생 7분 전 예비 신부 송혜정 씨가 예비 신랑 이호용 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좀 있으면 중앙로역을 지난다. 곧 갈게. 조금만 기다려."
(AM 09:50분, 서동민씨가 선배 송두수씨에게 한 통화기록 중)

"지금 지하철인데 거의 사무실에 도착했어. 저녁밥 맛있게 준비해 놓을 테니깐 오늘 빨리 퇴근해요!"
(사고 발생 4분 전 김인옥 씨가 남편 이홍원 씨에게 한 통화기록 중)

"여보, 여보!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요. 숨을 못 쉬겠어요. 살려줘요... 여보 사랑해요, 애들 보고 싶어!"
(사고 발생 8분 후 통화기록 중)

"지현아 나 죽어가고 있어. 나를 위해 기도해줘."
(기독교 모임 강사 허헌 씨가 강사 강지현 씨에게)

"엄마가 여기 와도 못 들어와!"
(AM 09:54분, 대학생 딸이 어머니 김귀순 씨에게 한 통화기록 중)

"아... 안 돼... 안 돼!"
(AM 09:58분, 이현진 양이 어머니에게.[6])

"불이 났어. 나 먼저 하늘나라 간다."
(김창제 씨가 부인에게)

"엄마 지하철에 불이 났어."
"영아야, 정신 차려야 돼."
"엄마 숨을 못 쉬겠어."
"영아, 영아, 영아..."
"숨이 차서 더 이상 통화를 못하겠어. 엄마 그만 전화해."
"영아야, 제발 엄마 얼굴을 떠올려 봐."
"엄마 사랑해..."
(장계순 씨와 딸 이선영 씨의 마지막 휴대전화 통화 내용)

"어무이! 지하철에 불이 나 난리라예."
"뭐하노, 빨리 나온나."
"못 나갈 것 같아예. 저 죽지 싶어예. 어머이 애들 잘 좀 키워주이소."
(아들 박정순 씨가 노모 황점자 씨에게. 이 날 그는 직장을 얻으러 가는 중이었다.)

"열차에 불이 났다. 살아나갈 수 없을 것 같으니 꿋꿋하게 살아라."
(어머니 최금자 씨가 아들에게)


3. 현장 사진과 추모 메시지

팔공산에 위치한 대구광역시 시민안전테마파크에는 당시 불에 탄 1079호 전동차 몇 량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건을 가정해서 인체에 무해한 짙은 연기를 뿌려놓고 당시의 사건을 체험할 수 있다. 사족으로 대구경북의 공익근무요원이 소양 교육을 받을 때 두 반 중 한 반이 이곳에 간다. 나머지 한 반은 포스코행.

2013년 2월 7일에는 대구도시철도공사 임직원들이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대구광역시 시민안전테마파크에 방문했다. 대구도시철도공사가 지난 10년간 중앙로역 화재 참사와 관련된 공식적인 활동을 자제한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이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개통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안전을 중시해야 한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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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련 이야기

관련 사건/사고 항목들과 관련되어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되었기 때문에 관련 내용들을 대구 지하철 참사/관련 이야기로 분리조치합니다. 자세한 것은 항목참조.

5. 지금도 위험은 계속된다

2010년 하반기부터 서울[7]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을 중심으로 기이한 흡연자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지하철 역사도 아닌 달리는 전동차 안에서 흡연을 하는 20~30대로 보이는 남자들로 객차와 객차 사이를 연결하는 격실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한다. 좌석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의를 일으킨 30대 남자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다른 승객들이 흡연을 제지하거나 다른 칸으로 넘어가려고 문을 열면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폭력을 가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목격자들에 의하면 노숙자처럼 보이는 남자도 있고 머리를 금발염색양아치 같은 남자도 있다고 하는데 주로 2호선과 4호선에서 출몰하는 듯하다.


하는 짓으로 볼 때 상당히 위험 인물들로 보는 즉시 귀찮다 생각 말고 기관사 혹은 서울메트로코레일에 신고하자.

6. 비극을 막기 위한 노력

사건 이후 수도권 지하철이고 부산 지하철이고 할 것 없이 부랴부랴 차량과 시스템을 뜯어 고치기 시작했다. 당시 굴러다니던 차량들은 유독성 가스의 원인으로 지목된 의자 시트를 전부 뜯어내고 은색 쇠 시트로 바꾸었으며 그 이후로 제작하는 신형 차량들의 경우에는 내연재가 사용된 시트가 채택되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 나중에 내연 시트를 쇠 시트 위에 덧붙였다. 현재 2호선과 4호선은 쇠 시트로 전면 교체되었다.[8]추가바람

또한 이 사건 이후로 전국 지하철 내의(이래봤자 수도권 위주지만) '테마열차' 투입이 거의 없어졌다. 이전만 해도 지하철에서는 가끔 특수하게 책을 끼워서 이동하는 도서관 열차나 불교 장식을 한 봉축열차를 운행한다거나 하여튼 별의별 신기한 한정 열차를 굴렸었지만 이 사건 이후로 안전 가능성이 기존 차량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이쪽도 불에 취약하다는 분석이 나온 탓인지 사건이 일어난 뒤 한동안 테마열차 운행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세월이 지나면서 테마열차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사건 이전만큼은 못하다. 자세한 사정을 알고 계시는 분은 수정바람

그 외에도 다행스럽게도 언론과 여론이 충분한 사회적 관심을 보인 덕인지 유사 상황을 가정한 대피훈련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객실 내, 역사 내 안내 방송안내 영상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매우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승객들의 인식 수준도 높아졌고 출입문 수동 개폐 요령이나 소화기 사용 방법 등에 대해서도 전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

한편, 참사가 발생한 대구 지하철은 역내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승객들이 승강장의 안전선을 넘어가거나 안전 펜스에 손을 대는 행위를 엄금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공익근무요원이 즉각 제지한다. 공익근무요원이 없을 경우 역무실에서 방송을 통해 제지한다. 그러나 작정하고 사고를 일으키는 사람(예를 들어 투신 자살하는 사람)은 즉시 제지할 수 없기 때문에 스크린도어 확충이 필요하다. 현재 대구 지하철의 스크린도어는 타지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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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4년 4월 24일 기준으로 사실상 구조된 174명외의 인원인 302명은 사망한 것으로 분류되고 있다.
  • [2] 보통 문 옆 의자 아래나 벽면에 있는 뚜껑을 열고 그 안의 레버를 당기면 손으로 열 수 있는데 사고 전에 이 방법이 시민들에게 홍보가 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 [3] 레버위치와 사용법에 대해서 아주 조그맣게 써놨기 때문에 지하철타면서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 아니면 알기 힘들었다. 1호선 지하철 문짝에 크게 적혀있는 비상레버 사용법이 아니라 비상레버 주변에 작게 적혀 있던 사용법만 사고전에 붙어있었다.
  • [4] 이것은 연기가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으로 화재가 나면서 생기는 열 때문에 공기가 데워지면서 대류 현상이 일어나 연기도 그 바람을 타고 위로 올라가게 된다. 화재 사고 매뉴얼에서 불이 났을 때 몸을 아래로 최대한 숙이고 저지대로 가라고 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실제 사고 사례를 보면 연기가 많은 화재 사고 현장에서는 저지대 쪽으로 피한 사람이 고지대 쪽으로 피한 사람들보다 생존률이 높다.
  • [5] 김대한은 2001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상방신, 하반신 모두 장애가 와서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김대한의 방화 사유는 심한 우울증 후 정신 질환이 심해진 데 따른 판단력 상실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한의 아들은 대구 중부 경찰서에 출두하여 '아버지가 심한 우울증을 앓았으며 남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등 정신적으로 심한 문제가 있었다' 고 밝혔다. 하지만 지병인 뇌졸증으로 인한 울분을 방화로 토한 사건이라는 분석도 있어 방화 사유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김대한의 직계 가족은 사건 이후 곧 경북 지역을 떠났다. 친척들도 이쪽 집안은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한다고.
  • [6] 이현진 양은 이 해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 계열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이 해 서울대학교 입학식에서는 식전에 추도 의식을 가지고 예정된 신입생 환영 행사를 취소했고 유족은 보상금으로 서울대 측과 협의하여 장학 기금을 조성하였다. 여담이지만 이현진 양은 사망 전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동생에게 '누나가 잘 못해줘서 미안하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라' 는 메세지도 남겼다.
  • [7] 서울인지 어딘지 표기가 안 되어있었다. 표기하도록 하자.
  • [8] 겨울에는 이 쇠 시트를 열로 데워서 지나치게 차가워지는 걸 막는다. 이게 또 과민성 대장 증후군 환자들한테는 엉덩이 난방으로 불리며 또 다른 민폐로 취급받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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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11 01:4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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