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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세종

last modified: 2015-04-04 16:16:00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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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하드라마
대조영 대왕 세종 천추태후

Contents

1. 개요
2. 장점
3. 단점
4. 기타
5. 출연진
5.1. 주역
5.2. 왕실, 외척
5.3. 집현전
5.4. 조정 대신들
5.5. 무관들
5.6. 명나라
5.7. 여진족
5.8. 일본

1. 개요

KBS의 전 사극. 방영기간은 2008년 1월 5일 ~ 2008년 11월 16일.

대왕 세종 오프닝 타이틀.


조선의 4대 국왕 세종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조선 초 궁정 내부에서 빚어진 사건들을 주 소재로 삼았다.

종래 KBS 사극과는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는데, 각본(윤선주), 연출이 모두 젋은 층에게 이양되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연출 면에서 크게 일신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감각적인 구도나 배경음악의 효과적인 사용이 눈에 띄었고, KBS 대하드라마 사상 최초로 나레이션을 기용하지 않은 드라마였으며 [1] 스토리 면에서는 KBS 사극 중 무인시대 이후 5년만에 모처럼 선역과 악역으로 나뉘지 않는 입체적 인물 설정이 이뤄졌다는 점, 그리고 역대 KBS 대하사극과는 다른 현대식 말투 등을 꼽을 수 있다.

역사적 연대표 순으로 보면 용의 눈물의 후속 내용이 되고 왕과 비프리퀼이 되는데, 자그마치 10년만의 후속작인 셈이다. 또한 2014년 방영한 정도전의 에필로그에서 바로 이어질정도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2. 장점

이 드라마에서는 국가로서 조선의 역동적 능력이 묘사되어 있다. 가령 정보력의 경우 불멸의 이순신에서 일본의 사정을 알지도 못하는 것으로 표현했던 조선의 정보력을 대왕 세종에서는 한 에피소드를 들여 제대로 표현해냈다.[2] 군대 묘사의 경우도 그러한데, 포졸복 입고 삼지창을 든 병사라는 나약한 묘사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3]

이 외에도 중동계 인물을 정부 고관으로 등장시킨다던가[4], 당시 조선의 정치과정과 과학기술력을 드라마 내에서 주요 소재로 활용하고 당시의 과학수사 과정 등을 에피소드화 한 것을 볼때 각본가 역시 그동한 폄하되어 왔던 조선에 대한 인식을 수정하는 것이 나름의 목표였던 듯하다. 실제로 이 사극은 복식이나 군복, 세트 등에서 가장 고증에 투철한 사극으로 꼽혔다. 이러한 조선왕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작품 외적인 부분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를 통해 다소 조선까적인 감이 있었던 대중들의 평가를 상향시키는 효과를 노림직했다.

스토리의 페이싱도 확실하게 잘짜졌다고 할 수 있다. 초반 지나친 역사적 사실의 왜곡으로 다소 문제가 있다는 평을 받아왔으나 후반부로 접어듬에 따라 세종의 업적에 대한 역사적 사실의 배열에 비교적 충실한 모습을 보였으며 인물들에 대해서도 선과 악을 가르는 구성대신 인물의 개별 입장에 최대한 주목을 하고자 한 점 등을 뛰어나다고 들 수 있다.

3. 단점

이 사극은 적지 않은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었는데, 이 드라마가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무시하거나 뒤바꿈으로서 정통사극으로서의 가치가 손상된 점에 있다. 용의 눈물 이후 한동안 제작되지 않았던 정통 정치 사극이 부활한다는 것에 열광했던 사극 매니아층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왕 세종을 외면했고, 전쟁을 배경으로 한 사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행방식이 무거운 정치사극이었기에 대다수의 시청자층은 이 사극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때 대하사극을 KBS 2TV 채널로 옮겨 방송하는 무리수를 두는 바람에 20%까지 기록하던 시청률이 최종 15.3%까지 떨어지며 좋지 않았다.

  • 초중반부 주요 키워드가 되는 것은 옥환이라는 가공의 인물이 이끄는 고려부흥세력인데, 이러한 세력은 아예 실존하지 않았기에 사극 매니아들의 무수한 비난을 받았다. 드라마적인 완성도는 높았으나, 이러한 완전한 가공의 요소를 드라마 내의 핵심요소로 등장시킨 것은 정통 사극이라는 이름 자체를 버리는 행위였다.

  • 태조 왕건 이후 KBS 사극의 고질병이 된 마냥 정의로운 주인공이란 점도 극복하지 못했다. 작중 세종은 욕망에 초탈한채 이상을 추구하는 인물로 세종의 행적과 정책들을 백성을 사랑하는 정의로운 인물이어서라고 단순, 막연하게 표현된 경우가 많다. 많은 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해낸 세종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은 무시된다. 역사속 세종은 형의 비행을 아버지에게 고해바치고 세자에게 여러차례 대놓고 직언을 했으며 남재와의 일화처럼 세자 자리에 대해 야심을 내비친 것으로 생각되는 대목도 있다. 또 세종의 정책이라고 다 성공한 것도 아니고 태종 시절부터 원칙이었던 명에 대한 지성사대를 충실하게 지켰지 명과 드잡이질을 벌이면서 (현대인이 생각하는)민족 자긍심을 지키려 한 군주는 아니었다. 그리고 드라마속 명과의 대립에는 실제 역사에는 없는 퓨전사극 요소가 대폭 첨가되어 있다.

  • 실제 행실을 보면 그저 망나니였던 양녕대군은 열혈 쾌남아에 요동 정벌을 꿈꾸는 사나이로 대책없이 미화되고[5] 신하들은 쪼개져 각각 양녕대군과 효령,충녕에게 지지를 보낸다. 용의 눈물에서도 어느정도 미화된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용의 눈물에서는 이성계의 죽음을 기점으로 서서히 놀아제끼는 모습을 보여줘, 결과적으로 현실의 기록과 비슷하게 흘러가게 된다. 하지만 대왕 세종에서의 양녕대군은 풍류만 좋아할 뿐 딱히 광기있게 놀아제끼는 모습은 나온 것이 없다. 더군다나 무인으로서의 보여주는 모습도 역사상의 양녕대군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1화 방영시점(1409~1410)에서 이미 죽었거나 제주도에 귀양가있어야할 민무구, 민무질 형제는 멀쩡하게 살아남아 효령과 충녕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며[6] 민무휼과 민무회는 양녕대군 편에 서서 권력을 추구하며 사병까지 끌고다녔다.[7]이외에 충녕대군이 북변에서 유배생활을 하거나 태종이 양녕에게 충녕을 죽이라고 권하거나 하는 등 역사적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정신줄 놓은 전개를 거론하자면 끝도없다. 이 와중에 괜히 너프당하는게 태종.[8]

  • 사실 이 드라마의 주제 자체도 역사속의 인물 세종대왕을 그대로 그리는 것보다는 조선시대 배경으로 현대 한국사회를 그려내고 현대 한국에 필요한 지도자를 세종대왕에 투영했다고 보는게 정확하다. 문제는 드라마에 투영된 한국사회의 문제점과 이상향이 어디까지나 윤작가 개인의 생각이었다는거. 때문에 작가가 원하는 인물상을 그리려는 시도에서 전형적인 주인공의 시련을 주는 과정에서 충녕대군을 귀양보내는 어처구니 없는 내용을 집어넣었다. 참고로 이것은 무인시대 때와도 일치하는 제작 의도다[9]. 그러나 무인시대의 것은 호평을 받은 반면에, 대왕 세종은 비판을 받은 이유는, 무인시대는 실제사건을 묘사하는데 작가의 의도를 넣은 것이고, 대왕 세종에선 작가의 의도로 인해 실제사건에 대한 왜곡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 기존의 대명 사대에 충실했던 임금 중 하나인 세종을 한글 창제 문제로 과의 일전을 불사하는 임금으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장영실을 명으로 보내려고 한다든가, 이에 세종 비 소헌왕후 심씨가 토목의 변 직전의 정통제에게 직접 지은 옷을 보내서 무마한다든가.. 마지막화에서의 환관 왕진이 명의 사신으로서 남긴 "한 사람의 눈먼 자가 만인을 눈뜨게 하였다"라는 대사는 나름 명대사이나 완전히 눈이 멀지 않은 세종을 두 눈이 먼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도 이것도 따지면 왜곡. 진양대군(수양대군)과 최만리가 명과 손을 잡고 세종을 몰아내려고 한 것도 왜곡. 근데 드라마에서는 마치 무마용으로 올려준 것 같이 나온다. 그나마 마지막 부분쯤 가서는 말기임을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초중반에 있었던 역동적인 분위기도 그닥 없어서리... 사실 후반부는 대왕 세종이 아니라 장영실이라고 따로 파트를 만들어야 했다.

즉, 엄밀히 말해서 이 드라마는 제대로 된 정통사극이라 평가받기는 무리다는 평.

역사적 사실의 작은 수정에서 그치지 않고, 임의로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 그것을 이야기의 중요 키워드로 등장시킨 것은 '정통' 사극으로서의 가치관을 사실상 포기한 행위나 다름없다. 그나마 이런 왜곡은 고려부흥운동 세력이 등장하고 세종이 즉위하기전인 초반부를 넘어가면(기록이 없어 창작해낸 몇몇 인물의 과거 이외에는) 요즘 사극들과 비스무리한 수준으로 떨어지긴 한다.

물론 이 드라마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높은 퀄리티의 에피소드들과 잘 반영된 조선시대의 모습 등 스토리 라인으로 미루어볼 때, 고증을 중시하는 사극이 아니라 상상력이 개입된 '시대극'으로 칠 경우 높이 평가될 만한 작품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정통 사극으로서의 개념을 부정한 것이 아쉬울 뿐.

4. 기타

여러가지로 용의 눈물과 비교되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 드라마가 용의 눈물 이후 처음으로 나온 정치사극이라는 것도 있지만 일단 시대도 부분적으로 겹치며[10], 세종의 어머니이자 태종의 왕비인 원경왕후의 경우는 같은 배우가 맡았으며[11], 용의 눈물에선 상대적으로 세종에 대해 자세히 나오지 않았다는 것 등의 이유 때문이다. 참고로 용의 눈물의 후속작이었던 왕과 비는 세종 대의 바로 다음 시기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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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2008 KBS 연기대상에서 사회를 본 이덕화 씨의 실수로 대으로 개명당했다(...).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 아래에 있는 세종대왕 전시실에 이 드라마를 편집한 영상을 상영해주고 있다. 애초에 세종을 테마로 만든 작품 자체가 너무 드물기도 하고...

OST 수록곡인 소원이 YOU RAISE ME UP과 너무 흡사하다. 이 노래도 김도훈의 작품.

여담으로, 위에 거론한 천추태후는 물론이고 근초고왕, 광개토대왕, 대왕의 꿈이라는 4연속 병크에 오히려 이 대왕 세종이 더더욱 평가가 높아졌다(...).

뿌리깊은 나무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세종대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드라마를 다시 찾아보는 사람도 늘어났다. 이 드라마에서 묘사된 세종과 뿌나에서 묘사된 세종은 캐릭터가 사뭇 다르긴 하지만... 특히 두 드라마의 묘사가 제일 판이한 사람은 당연히 조말생.

5. 출연진

5.2. 왕실, 외척

5.3. 집현전

5.4. 조정 대신들

5.5. 무관들

5.6. 명나라

5.7. 여진족

5.8.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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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대마도 정벌과 후기 집현전의 업적에 대해선 나레이션을 썼다.
  • [2] 실제로 임란 직전 일본에서 활동하는 조선 정보원의 숫자가 적었던 것도 아니다. 조선 정부는 일본의 전후사정을 정보원을 통해, 비록 완전치는 않아도, 파악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 [3] 물론 조선군의 갑옷 착용 비율이나 주로 착용한 갑옷의 종류는 명확히 밝혀낼 자료가 없기에 요는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걸 밝혀낸다면 그 연구자는 바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다. 조선 전기가 그 이후에 비해 갑옷무장비율이 더 높았을 가능성은 높지만, 유물은 극히 부족하며 류성룡의 갑옷이나, 래성 해자유물로 보아 임란 당시까지는 찰갑 계열이 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나마도 조선군이 갑옷을 벗고 싸웠다는 기록도 흔하다. 그리고 입고 싸웠다는 기록이나 그림은 한참 후에나 그린 것이나 주워 들은 것이다. 다만 조선군이 다 벗고 싸웠다고 단정짓기도 힘들고, 입고 싸웠다는 기록도 분명히 있으므로 단정은 금물. 어쨌든 기존 사극에서 조선군을 쾌자로 통일한 것은 단순한 고증의 선택이니 무작정 잘못되었다는 비판은 맞지 않다. 오히려 17세기까지 전군에 군복을 입힌 나라가 얼마나 있었는가 생각하면 쾌자, 일명 졸복을 폄하하기는 힘들다.
  • [4] 해당 인물은 설순이라는 사람인데, 실제로 배우를 중동계 사람을 출연시켰다. 설순의 할아버지인 설손은 고려 말엽에 고려로 귀화한 위구르인. 설순의 아버지 설장수도 조선 초기 조정에서 일했다. 그런데 위구르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이슬람교도라고 볼 수는 없다. 설순의 조부 설손은 엄연한 유학자로 공민왕과도 친교가 있었고 원나라 태자인 아유르시리다라의 스승이었다. 물론 이슬람 교도이면서 유학자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이슬람 교도였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기록에 없는 이슬람 교도설은 추정만 가능하다.
  • [5] 물론 그렇다고 여기서의 양녕이 병신이 아니라는 건 아니다. 고차원적 병신이라는 게 문제. 가장 단적으로 보이는 게 32화인데, 자기가 태자 자리까지 내놓을 기세로 싸고돌던 민무휼과 민무회가 사사당한 뒤에 반성 한 점도 없이 '나한테 반대하는 놈은 다 간신임. 간신이 어떻게 숙청되는지 똑똑히 봤지?'라고 한다. 언제는 충신이라며?
  • [6] 이건 태종이 민씨형제 제거할때 써먹었던 떡밥으로 당연히 구라다.
  • [7] 연도를 따져보면 이미 사병 혁파정책이 추진되고 반발하던 공신들 귀양까지 보낸지 한참 지난 시점이다. 물론 실제로 끌고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아니고, 이게 빌미가 되어 죽임당한다는 정도.
  • [8] 남성적 카리스마가 두드러졌던 용의 눈물에 비해 정치가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났다는 평도 있으나 막상 극중에선 외척과 신료들이 왕자별로 파벌을 가르고 있지도 않은 고려부흥세력이 궁을 습격하며 툭하면 사람 마구다지로 죽여 일 크게만든다고 까인다.(쓰시마 정벌 부분에서 윤회가 아주 대놓고 깐다.) 신하들을 좌지우지 하고 조선을 반석에 올린 정치가로서의 역량은 역량대로 너프되었고 아들을 귀양보내고 죽이라고 권하는 모습에선 자식들에게 한없이 자애로웠던 역사속 태종의 인간다운 면모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용의 눈물에서의 태종은 카리스마로 누를 때와 그러지 않을때가 잘 구분되어 있는 편이다. 정책을 집행할 때는 신하들과 회의를 하고(용의 눈물은 역대 그 어느 사극보다 국무회의 장면이 많이, 상세하게 나오는 작품이다.)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공신숙청 등 뭔가 큰 일을 벌릴때는 밑밥 깔기부터 시작해 판을 철저하게 짜놓고 뚝심있게 추진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소리 한번 안지르고 신하들을 쥐락펴락하는 노회한 책략가의 면모도 잘 나타난다.
  • [9] 무인시대는 아예 대놓고 현대사를 풍자한다는 것을 기획 의도라고 밝혔다.
  • [10] 드라마 용의 눈물은 태종이 주인공으로, 고려 말에서 조선 세종 초까지 다뤘다.
  • [11] 용의 눈물, 대왕 세종 모두 최명길이 맡았다.
  • [12] 비중도 그렇고 극중 묘사도 그렇고 사실상 세종과 더불어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 [13] 중도 하차. 이후 복귀했는지는 추가바람. 가수 이정현 맞다. 소헌왕후의 궁녀로 승은을 입어 간택 된 캐릭터로, 초기 오프닝만 해도 중요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성대결절로 하차.
  • [14] 세종의 글 스승. 드라마에서는 세종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등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중반 무렵까지 주역급.
  • [15] 특별출연. 회상씬으로 지나가는 역이었다.
  • [16] 재미있게도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세종의 5남 광평대군 역을 맡았다. 한 번 더 사극에서 왕자 역을 맡으면 왕자 전문 배우가 될지도.
  • [17] 집현전 출신 관리는 아니지만 드라마에서는 집현전 멤버로 묘사된다.
  • [18] 공교롭게도 공주의 남자에서 성삼문을 맡은 배우도 박철호. 단 대왕 세종의 이 배우와는 동명이인이다.
  • [19]성우 겸 배우 김기현 맞다.
  • [20] 최무선의 아들.
  • [21] 실존인물인데 의도적으로 출신과 시대를 변경했다. 실제 황엄은 한족 출신이나, 작중에서는 조선에서 차출되어 명나라로 보내진 환관으로 설정했다. 위키백과에도 평안도 신의주 출신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대왕세종에 의한 자료로 신빙성은 없어보인다. 원래 영락제가 연왕일때부터 내관이었던 자로, 무려 3대가 지난 정통제 때의 환관 이란 주장은 근거가 없다. 조선 초기 명나라의 환관 중 조선 출신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므로 차라리 가상인물로 설정했다면 더욱 고증에 맞을 법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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