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last modified: 2015-04-15 21:22:23 by Contributors

V-리그 - 남자부
K스타 V스타
LIG_Insurance_Greaters_s_logo.png
[PNG image (4.25 KB)]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Gumi LIG Insurance Greaters
Suwon_KEPCO_Vixtorm_s_logo.png
[PNG image (3.51 KB)]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Suwon KEPCO Vixtorm
bluefangs_s_logo.png
[PNG image (3.85 KB)]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Daejeon Samsung Fire Bluefangs
woori_hansae_s_logo.png
[PNG image (3.52 KB)]
아산 우리카드 한새
Asan Woori Card Hansae
Hyundai_Skywalkers_s_logo.png
[PNG image (2.5 KB)]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Cheonan Hyundai Capital Skywalkers
rushncash_s_logo_1.png
[PNG image (3.31 KB)]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Ansan OK Savingbank Rush & Cash
   
Korean_Air_Jumbos_s_logo_1.png
[PNG image (2.83 KB)]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Incheon Korean Air Jumbos
과거 참가 구단
sangmu_s.png
[PNG image (5.2 KB)]
성남 상무 신협
Seongnam Sangmu Shinhyup
   

bluefangs.png
[PNG image (34.05 KB)]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Daejeon Samsung Fire Bluefangs
창단 1995년
프로출범 2005년 2월 15일
구단명 변천 삼성화재 배구단 (1995년 ~ 2005년)
삼성화재 블루팡스 (2005년 ~ 현재)
연고지 대전광역시 (2005년 ~ 현재)
모기업 삼성화재 (Samsung Fire & Marine Insurance)
구단주 안민수
단장 전용배
감독 신치용
키트 스폰서 휠라
홈구장 대전충무체육관 (수용인원 : 4,200명)
클럽하우스 삼성 트레이닝 센터
관련 링크 홈페이지
페이스북

국내대회
대회 우승횟수 우승년도
대통령배-슈퍼리그 8회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V-리그 8회 2005, 2007-2008, 2008-2009, 2009-2010, 2010-2011,
2011-2012, 2012-2013, 2013-2014
KOVO컵 1회 2009
국제대회
대회 우승횟수 우승년도
아시아클럽 남자배구 선수권대회 1회 1997
AVC컵 남자클럽 배구대회 2회 2000, 2001
IBK 기업은행 국제배구대회 1회 2009
한·일 V리그 TOP매치[1] 2회 2006, 2010

삼성스포츠
삼성 라이온즈
(야구)
수원 삼성 블루윙즈
(축구)
서울 삼성 썬더스
(남자 농구)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배구)
용인 삼성 블루밍스
(여자 농구)
삼성 갤럭시
(E스포츠)
삼성생명 레슬링단 삼성생명 탁구단 삼성증권 테니스단 삼성중공업 럭비단
삼성전기 배드민턴단 에스원 태권도단 삼성전자 육상단 삼성전자 승마단

Contents

1. 소개
2. 팀 컬러
2.1. 호불호가 갈리는 팀 컬러
2.2. 배구계의 흑역사를 만들었던 스카웃 문제
2.3. 포스트 9연패
2.3.1. 2013-14 시즌: 블루팡스의 위기설 대두?
2.3.2. 2014-15 시즌
3. 2014-15 시즌 선수단

1. 소개


V-리그의 제국

V-리그 통산 8회 우승, 챔피언결정전 7연패[2]

팀 공격을 외국인 선수가 책임지는 몰빵 배구

V-리그의 남자 프로배구팀. 연고지는 대전광역시. 홈 구장은 대전 충무체육관이며, 창단일은 1995년 11월 7일이다.

팀명의 유래는 삼성의 고유색인 블루(Blue)와 신생대의 맹수인 검치호랑이를 뜻하는 팡(Fang)을 합성해 팀명을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Bluefangs)로 정하였다. 맹수인 검치호랑이의 송곳니와 같은 강한 공격과 수비(디펜스)의 불어식 발음 데팡스(defense)를 의미해 최고의 공수를 지향하는 팀의 의지를 담아 정했다지만, 그런 거 없고 오늘도 안티들은 그냥 돈성이라고 부른다. 이건 삼성이 모기업인 모든 팀들을 따라다니는 소리지만(...). 그리고 돈성이 아니면 보통 삼성화재를 줄인 '삼성' 혹은 '삼화' 이선규 사건 이후에 추가된 '삼재'라고 많이 부른다. 어? 나는?

창단 이후 싹쓸이로 끌어모은 선수빨로 우승한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이후 전성기를 구가했던 선수들이 하나둘 은퇴하며 전력이 약화되자 외국인 선수가 공격을 해결하는 형태로 버텨가고 있다. 2009-2010 시즌 종료 후 FA가 된 박철우를 영입하면서 큰 공격을 해결해줄 선수를 보강했다. 반대급부로 주전세터를 잃긴 했지만여오현을 놓쳤지만 이선규를 보상선수로 데려오면서 센터진을 보강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결국엔 외국인 선수가 팀 공격을 책임지는 건 변함이 없다.

처음에는 젤코화재라는 소리를 듣다가 이후 2009-10 시즌부터 2011-12 시즌까지는 가빈화재라는 비야냥을 들었고, 이후 2012-13 시즌에는 가빈이 떠나고 쿠바의 레오로 외국인 선수를 바꾸면서 레오화재로 불리고 있다.

2005 V-리그 우승 후 2005-06 시즌과 2006-07 시즌은 라이벌인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게 우승컵을 내줬으며 이듬해인 2007-08 시즌부터 2013-14 시즌까지 챔피언 결정전 7연패를 달성하였다.
삼성화재는 슈퍼리그 시절인 1995년 11월에 창단해서 한 시즌을 건너뛰고 1997년 슈퍼리그 시즌부터 참가했고, V리그 2014-15 시즌까지 총 19시즌 연속 결승진출. 우승 16회(슈퍼리그 8회+V리그 8회), 준우승 3회(V리그 3회)라는 한국배구의 독보적인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창단 이후에 결승진출 실패는 한번도 없으며, 준우승 미만으로 내려간적이 한번도 없다.

현재 마스코트는 검치 호랑이 형태의 마스코트, 그 이전에는 사자 마스코트를 쓴 적이 있다.[3]

대전시에서 프로 스포츠로 제대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대전 시티즌은 K리그 챌린지로 강등, 한화 이글스는 최하위권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4] 고로 V-리그에서 정상의 위치를 늘 지키고 있는 삼성화재는 그야말로 대전시민들에게 그야말로 보배이자 자랑거리이다. 참고로 V-리그 여자 팀인 대전 KGC인삼공사는 V-리그 시대 이후 시즌에 따라 롤러코스터 성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인삼공사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 팀 컬러

2.1. 호불호가 갈리는 팀 컬러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 함께 한국 남자 배구를 대표하는 명문구단이다. 그러나 창단 때부터 있었던 잡음과 V-리그 출범 이후 용병 몰빵이라는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호불호는 많이 갈린다.

주 공격수 1명에게 공격이 몰리는 속칭 몰빵배구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즉, 주 공격수 1명 몰빵에 센터 1명만 전위 블로커로 두고 나머지 4명은 모두 리시브에 가담하는 포메이션.
그나마 과거에 비해서는 나아졌지만 잉여 자원들을 타 팀에 넘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 예로 똑같은 라이트 윙 포지션에서 선배 김세진과 경쟁해야 했던 장병철이 김세진 은퇴 이후에 자리를 잡았음에도 결국 기량이 도태되어 생각보다 일찍 은퇴한 점은 삼성화재 까는 이들에게 두고두고 씹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현대캐피탈로 이적한 이형두 역시 삼성화재의 무차별 스카웃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이형두를 영입한 이유가 타 팀이 영입하려는 것을 애초부터 막아 잉여 자원으로 남겨두려 했던 것. 장병철은 그나마 경기에라도 가끔 뛰었지, 이형두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5]

믿을 수 없는 우승 횟수 때문에 골수 팬들도 많지만 그만큼 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 대표적으로 매번 우승을 놓고 다퉜음에도 끝내 분통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던 천안 현대캐피탈의 팬들과 삼성이라는 그룹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들, 삼성의 머니 파워 덕분에 무수히 많은 우승 컵을 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또한 팀의 최전성기 때 기존 배구의 인기를 깎아 먹은 것도 한 몫하는 요인이다.[6]

2.2. 배구계의 흑역사를 만들었던 스카웃 문제

명백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바로 삼성화재의 창단 과정. 프로 스포츠에서 선의의 경쟁이 필요한, 공정한 수준을 넘어선 지나친 스카웃으로 대한민국 배구판 자체를 흑역사로 만든 주범이 바로 삼성화재다. 그 이후에도 그 선례를 이용해 수많은 악용 사례가 나왔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7]

삼성화재 블루팡스가 창단된 시기인 1995년 7월, 삼성화재가 배구 팀을 창단한다는 소문만 무성했던 무렵인데 그 소문이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팀 창단 조건으로 삼성화재는 도대체가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것을 요구하였는데, 기존 스카웃 조건들을 싹 다 무시하고 삼성화재 구단 자신들이 원하는 신인 선수들을 모두 삼성화재 쪽으로 몰아 달라는 것.

비록 현대자동차서비스는 투덜투덜거렸지만 자신들도 1990년에 고려증권으로 가버릴 마낙길을 영입했고, 이듬해인 1991년에는 한양대학교의 4인방인 하종화, 윤종일, 장재원, 문양훈을 7억 원이라는 엄청난 돈으로 싹쓸이했다. 그리고 또 이듬해인 1992년에는 강성형, 박종찬, 또 다음 해인 1993년에는 임도헌 등등. 스타급 선수들을 모조리 싹쓸이한 전례가 있어서 할 말이 없는 데다가, 전 시즌인 1995년에 우승한 디펜딩 챔피언이라서 할 말은 많은데 있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현대자동차는 국가대표 훈련 중에 마르팡 증후군으로 인한 심장질환으로 1995년 2월에 갑자기 숨진 센터 병선의 공백을 메우게 하려 했던 센터 김상우를 삼성화재에게 넘겨줬다. 현대에게 있어서 아쉽지만 그래도 언제든 우승권에 가장 근접한 팀 구성으로 미루었을 때 그래도 군말 없이 물러난 것.

대한항공도 마찬가지로 투덜거렸지만 애초에 대한항공은 투자에 인색한 구단으로 유명했기에 별다른 말 없이 신생 팀을 위한 일종의 선물이라고 치고는 자신들이 스카웃할 김규선을 삼성화재에게 넘겨줬다.

그런데 문제는 LG화재였다. 당시 LG화재가 받을 수 있었던 신인 선수들은 김세진, 구본왕, 구준회였다.[8] 전년도 결승에서 현대에게 무참하게 셧아웃당한 데다가 스카웃 경쟁에서도 그간 현대에게 진 것만 따지면 몇 번이나 우승할 기회를 날려 먹었는데, 이번에는 당대 최강의 대박급 신인들을 눈뜨고 삼성화재에게 빼앗기는 참극을 맞이하게 된 것! 당연히 LG에서는 서슬 퍼런 눈으로 반대할 수밖에. 거짓말 안 치고 "차라리 우리가 팀을 해체했으면 해체했지 이런 꼴을 보지는 않겠음!"이라고 바락바락 반발을 했다. 결국 삼성화재는 LG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결국 김세진 하나만을 데려가는 것으로 끝냈는데 지금도 LIG 팬들은 이런 삼성화재의 행태를 맹비난하고 있다.

그 와중에 고려증권은 자신들이 원하는 경기대학교선출을 그대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사실 박선출 정도 선수는 삼성의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벼룩의 간을 빼먹긴 좀 그랬나

그렇게 갖은 우여곡절 끝에 삼성화재는 1995년 11월에 창단했는데 그 멤버 구성을 보자면 한양대학교에서 김세진, 김규선, 장동우, 오세종, 김태종을 성균관대학교에서 김상우, 장민호를, 홍익대학교에서 최근배, 장경훈을, 충남대학교에서 김재만을 데려왔는데 문제는 뭐냐? 리그 출전을 운운했는데도 최소 엔트리인 12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겨우 10명만으로 선수 등록을 끝내 놓고는 추가 선수 영입을 중단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

한 마디로 삼성화재가 이런 식으로 짱구를 굴렸다고 보면 된다. '선수 부상이라는 핑계댈 것도 없어. 어차피 최소 엔트리를 못 채우면 리그 출전 자체를 못하는데 그렇게 되면 리그고 뭐고 다 날아가서 지들 밥줄 없어지는데~ 그러면 지들이 선수 또 안 주고 배기겠어?' 다시 말해 삼성화재는 어차피 자기들 팀 참가 안 하니까 스포츠 리그 하나 말아먹든 말든 상관없었고, 그저 다른 팀들에게 자기들이 원하는 선수들을 몽땅 다 뺏을 심산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작태에 분노한 다른 팀들의 분위기는 설명이 必要韓紙? 특히 LG의 분노는 가장 극심하였고, 이 사건 이후로 LG는 삼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깔 준비부터 한다.

그렇게 1996년 슈퍼 리그를 가벼운 마음으로 날려버린 삼성화재는 이듬해 3월부터 무개념이 따로 없는 스카웃의 진수를 보여줬다. 그때 삼성은 93학번 싹쓸이 모드에 돌입하였는데 경희대에서 허규호를, 경기대학교에서 상현과 김구철을, 홍익대에서 하종민, 윤종권을, 명지대에서 이재현을 가져가는 것도 모자라서 성균관대학교 4인방인 지섭, 강근수, 김명철, 그리고 신진식까지 뜯어가버리는 것으로 그 정점을 찍어버렸다. 그것도 모자라서 한양대로부터 정섭을 손에 넣기까지... 이로써 삼성화재는 당대 빅3 중에서 현대자동차에 입단한 경기대학교후인정을 제외하고 나머지들을 다 가져가버렸다.

거기까지만 해두고 그치면 또 모를까, 이전에 LG로부터 김세진을 뜯어갔던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다음 해에는 현대로 가기로 되어 있었던, 그리고 현대로 가고 싶었던 신진식을 현대에게 17억이라는 거액의 위약금까지 물어 주면서까지 데려와버렸다. 거기다가 94학번 선수 중에서는 권순찬, 김기중만 데려왔다. 더 웃긴 것은 삼성화재는 방신봉까지 데려오려고 했던 것... 게다가 권순찬은 LG에서 이번에는 절대로 삼성에게 우리 선수 뺏기지는 않을 거야!라는 마인드로 지극정성을 들였음에도 뺏. 겼. 다. LG의 분노는 정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고, 결국 이는 LG화재가 1999-2000 슈퍼리그를 포기하는 결정까지 내리게 한다.

신진식의 경우를 보자면 더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데... 저 시기엔 학교의 동의와 졸업장이 없이는 실업 팀 입단이 무려 5년 동안 불가능했다. 거기다가 성균관대학교는 자신들의 재단인 삼성화재에게 거액의 돈을 지원받고 있는 실정. 사실상 성균관대에서 신진식에게 삼성에 입단하지 않겠다면 학점 인정도 안 해 주고 은퇴 ㄱㄱ OK?라고 협박한 셈. 그리고 신진식의 삼성화재 입단을 끝까지 강력하게 반대한 당시 성균관대학교 배구부 감독인 김남성은 성균관대학교의 재단인 삼성에게 완전히 찍혀서 신진식의 삼성행이 결정된 이듬해에 일반직으로 전환되었고, 친 현대파였던 김남성 감독은 성균관대와 삼성화재의 그 모진 구박 속에서도 꿋꿋이 버텼지만 결국 해임당했다. 삼성화재는 이후 김남성의 직계 제자들에게도 갖은 박해를 가하였다.

그리고 그것까지만 해두고 끝이면 삼성화재는 평생토록 두고두고 까일 일은 없었을 텐데... 아니 그래도 처음 저질렀던 것들이 워낙에 커서 안 까일 수는 없었겠지만... 한국배구연맹에서는 더 이상 협상이 어려우므로 기존대로 자유 계약제로 스카우트를 한다고 발표를 했다. 그리고 각 실업 팀들은 단장 회의를 통해 드래프트가 아니면 스카우트를 하지 않겠다고 철썩 같이 합의를 했었는데... 삼성에서 갑자기 단장이 바뀐 데다가 배구연맹도 드래프트 말고 기존 방식대로 자유 계약으로 선수를 수급하라고 하자 삼성화재는 기다렸다는 듯이 "예전 단장이 한 합의 따윈 무효임 ㄲㄲ~" 하면서 협회의 자유 계약제 선언 1주일 만에 한양대의 석진욱, 최태웅, 성균관대의 장병철, 노경택과 신선호(자퇴), 경희대의 명중재를 무지막지한 돈을 뿌리며 스카웃했고, 그들을 스카웃했다면서 연맹과 각 팀에게 통보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것.[9] 이것은 삼성화재가 한국배구연맹과 한통속인 것으로 봐도 이상할 게 없는 분위기로 흐른 것이다.

그리고 LG는 말할 것도 없었고,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잘 참았던 다른 구단들도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삼성화재의 입단 계약에 대해 전면적이고 즉각적인 무효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삼성은 그 말을 들어줄 턱이 없었다. 삼성은 왜 우리가 가진 합당한 권리를 포기하라는 거임?이란 인터뷰를 날리고 법무 팀의 자문까지 받아 가며 드래프트로 내놓을 수 없다고, 단박에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결과... 리그를 정지합니다 사태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95학번까지 스카웃을 마치고 나서 배구판은 거의 망했어요가 될 뻔했다.[10] 배구 팬들은 이 사태를 보고는 '삼성화재든 현대자동차든 LG화재든 다 똑같이 나쁜 노무 시키들이야!'라고 외친다. 그 이유는? 95학번이 본격적으로 투입되는 2000-2001 시즌에 이르러서는 각 팀들의 선수 부족은 극에 달했는데 팀마다 10명 이상 선수를 보유한 팀이 드물 지경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앞서 삼성이 벌려온 행태 때문에 나머지 구단들은 선수들을 스카웃할 마음까지 사라져버렸고, 삼성화재만 좋은 선수들을 죄다 가져갔기에 선수가 썩어서 남아돌아서 강제 은퇴시키는 짓까지 벌여 놓았다.

이후 삼성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적수도 없었다. 거기다 삼성화재는 1995년 12월 창단 이후 현재까지 준우승 미만이 단 한 번도 없다... 맨날 우승 내지는 준우승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삼성의 안티들은 한결같이 삼성이 이번에야말로 동네북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다.

2.3. 포스트 9연패

과거 삼성화재를 빛냈던 김세진, 신진식 등의 삼성화재 1세대 선수들이 은퇴한 뒤에도 여전히 삼성화재는 리그 수위권을 지켰다. 그렇게 완만하게 선수단이 유지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문제는 2010-11 시즌에 터졌다. V9 이후 삼성화재의 공수 양면에서 부지런하게 활약했던 석진욱이 2009-10 시즌 막바지에 시즌 아웃당하고 2010-11 시즌 역시 출장하지 못한데다가 그나마 몸 상태가 괜찮았던 손재홍마저 방전되면서 수비 조직력이 와해가 됐다.[11] 박철우의 FA 영입으로 최태웅을 현대캐피탈로 보상 선수로 보내면서 세터 후계자로 지목된 유광우의 미숙한 경기 운영 또한 문제. 또한 많은 기대로 영입했던 박철우의 먹튀짓 역시 문제.

이는 앞서도 언급됐지만 신치용 감독의 지나친 노장 선호와 유망주들의 더딘 성장이라는 폭탄이 결국 터져버린 것이다. 결국 2010-11 시즌 초반 창단 처음으로 꼴지를 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정규리그 최종 순위는 16승 14패로 3위. 한 시즌 14패는 V-리그 출범 이래 가장 많은 패배이다.

2010-11 시즌 준플레이오프에서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를 상대로 1경기를 잡고 시작, 2차전에서는 패배를 당하여 위기에 빠졌지만 3차전에서 3:0으로 이기고 플레이오프에서 전통의 라이벌인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를 상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volley_ball.jpg
[JPG image (250.88 KB)]


가빈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플레이오프를 설명할 수 있는 단 한 장 사진.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팀 득점 70점 중에서 총 57점(...)을 득점하고, 3차전에서는 4세트에서만 18득점(...), 총 42점을 올린 가빈에 힘입어 현대캐피탈을 제압하고(시리즈 전적 3승 무패) 챔피언전에 올랐다(...). 그야말로 가빈 전설. 플레이오프가 끝나고 각종 커뮤니티는 가빈 쇼크로 대폭발했다. 디씨 배구 갤러리는 가빈을 신세계의 신으로 추대하고, 甲人이라 칭송했다.

그리고 2010-11 챔피언 결정전.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를 4:0으로 제압하며 남자배구 최초로 정규 시즌 3위 팀이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12]그리고 V5 달성. 구미 LIG 손해보험 그레이터스에게 준플레이오프에서 1패한 것 제외하고는 전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현재 삼성화재가 몇몇 선수에 의존하는 공격과 그에 대비된 국내 선수의 미미한 활약, 유망주들의 저조한 성장이 반복된다면 2010-2011 시즌 초반에 있었던 부진을 되풀이할 것이라 예상되었다.

하지만 이는 그저 예상이었을 뿐, 다음 시즌 전반기 성적은 16승 2패. 무지막지한 독주를 달렸다. 2위인 대한항공과의 승점 차이는 무려 9점. 전문가들 대부분은 가빈이 부상을 입지 않는 한 5라운드 중반쯤에 정규 시즌 우승을 확정지을 것이라 예상했고,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결국 그 이전 2시즌과 마찬가지로 여섯 구단이 가빈 슈미트 한 명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대한항공에 3승 1패를 거두며 V-리그 출범 후 통산 6번째이자 5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우승 이후 가빈이 러시아 리그로 떠났지만, 2012-13 시즌에도 새로 영입한 레오의 맹활약을 앞세워 전반기가 끝난 가운데 1위를 달렸다. 그리고 질주 끝에 2013년 2월 23일 KEPCO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마지막 6라운드(5경기)를 남기고 챔피언 결정전 직행을 확정지었다. 이어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대한항공에 세 경기 모두 승리하며 통산 7번째이자 6시즌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2.3.1. 2013-14 시즌: 블루팡스의 위기설 대두?

김세진, 김상우, 신진식 등 구단 레전드의 은퇴 후 삼성화재는 거의 매년 위기라고 했지만 2012-13 시즌 종료 후엔 진짜로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레오와는 재계약을 했지만, FA가 된 여오현이 현대캐피탈로 이적했고 '배구 도사' 석진욱이 전격적으로 은퇴를 결정했다. 여기에 전역 후 팀에 합류해 활력을 불어넣었던 신으뜸마저 이강주 영입에 따른 보상 선수로 우리카드로 넘어가면서 삼성화재를 지탱해 왔던 철벽 수비 라인이 거의 무너졌다.

러시앤캐시 창단으로 드래프트로 전력을 보강하기도 여의치 않은 터라 다가오는 2013-14 시즌 삼성화재는 어느 때보다 쉽지 않은 행보가 예상됐다. 3라운드 초반까지 1위를 지키긴 했으나 2위 현대캐피탈에 바짝 쫓겼다. 2라운드 러시앤캐시와의 경기에서 박철우가 손가락 부상을 당해 이탈하면서[13] 그렇지 않아도 공격을 많이 했던 레오의 부담이 더 가중되었다. 그리고 1몰빵 1블로커 4리시버라는 극단적인 포메이션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결국 2014년 1월 5일, 대전 홈 경기에서 현대캐피탈(12승 4패, 승점 35점)에게 1-3으로 지면서 1위 자리를 내줬다(12승 4패, 승점 33점). 3라운드를 마친 2014년 1월 16일까지 승점 39점(14승 4패)으로 현대캐피탈에 1점 뒤진 2위를 지켰다. 3위 우리카드(32점)와는 승점 7점 차이였으나, 우리카드가 하락세라도 언제든지 치고 올라올 힘이 있었기 때문에 2위 자리 지키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나마 우리카드에게 3전 전승을 거두며 차이를 벌린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리고 3라운드가 종료된 2014년 1월 17일에 대한항공과 2:2 트레이드를 전격 단행했다. 세터 강민웅과 센터 전진용이 대한항공으로 가고 세터 황동일과 레프트 류윤식을 받는 트레이드였다. 이 트레이드의 핵심은 세터 강민웅과 레프트 류윤식 간의 교환. 당장 세터가 필요한 대한항공이나 리시브 라인이 무너진 삼성화재로서는 서로 실속을 챙길 수 있는 윈윈 트레이드였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어 2014년 1월 24일 현대캐피탈에게 승리를 거둠으로써 다시 1위 자리를 탈환했다. 그러나 류윤식이 시즌 전 입었던 부상이 재발하면서 다시 전열에서 이탈했다. 이후 승점 1~4점 범위에서 밀고 당기는 공방이 이어진 가운데 3월 9일 현대캐피탈과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면서 챔피언 결정전 직행을 확정지었다.

챔프전 1차전에서는 현대캐피탈의 공격수 아가메즈가 초반에 부상으로 나가면서 오히려 당황하기 시작했고 상대의 다양한 공격에 말려들면서 완패를 했다. 그러나 2차전에서 접전 끝에 승리하면서 흐름을 돌리는 데에 성공했고 3차전과 4차전에서 내리 완승하면서 통산 8번째이자 7시즌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2.3.2. 2014-15 시즌

오프 시즌 동안에는 FA가 된 유광우와의 재계약이 최대 현안이었는데 1차 협상에서 계약에 성공했다. 유광우는 다른 팀들에서 관심을 보인다는 설이 돌았지만 선수 자신이 삼성화재에 남는 것을 원했다고 한다. 선수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당했음에도 끝까지 기다려주었던 구단에 대한 고마움이 우선이었고, STC에서 벗어날 경우 제대로 된 몸 관리를 담보할 수 없다는 부담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같이 FA가 된 황동일과도 재계약에 성공했다. 이어서 6월 16일에는 한국전력에서 리베로 곽동혁을 받고 신인 지명권 1장을 내주었다. 백업 리베로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던 강녕의 군 입대에 대비하는 한편, 이강주에게 자극을 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물론 이 트레이드에는 신영철 감독의 곽동혁 홀대라는 이면이 있기는 했지만.

시즌 개막 후에는 OK저축은행과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11월 27일 박철우가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하면서 생긴 공백은 황동일을 공격수로 쓰는 등 실험을 거쳐서 김명진을 주전으로 기용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

1월 20일 팀 미들 블로커 이선규가 자행한 경기중 폭행사태에 대해 반성은커녕 뻔뻔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일관하며 배구팬들의 열화와 같은 비난을 받았다. 경기영상에서 확연히 잡혔던 이선규노재욱 가격에 대해 '가벼운 터치를 했을 뿐이다.'(..) '선규에게 물어 보니 테이핑 때문에 주먹을 쥐지 못한다고 한다.'(...)고 입장을 밝히며 오히려 LIG가 경기에 지니 괜히 이런다.(..) 경기 이기면 선수 때려도 되냐...는 망발을 하며 당당히 맞서다 여론의 싸늘함과 경기 영상을 확인하고는 '선규가 노재욱에게 사과문자를 보냈다.' '이런 건 당사자끼리 풀어야 한다.'고참과 새파란 신인 사이에서 잘도 해결이 되겠다고 변명만 일삼으며 꼬리를 내렸다. 구단의 적반하장격의 도의에 어긋나는 대처로 인해 팬들과 여론들로부터 수많은 질타와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이선규는 올스타전에 불참함과 동시에 2경기 출장정지라는 징계를 받았다.

시즌 아웃급의 허리부상을 당했던 명진 선수가 2015년 2월 10일 OK저축은행과의 홈경기에서 짧은 출장시간이었지만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2월 16일 대한항공과의 홈경기에서 복귀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3월 3일 대한항공과의 원정경기에서 3:0 승리를 거두면서 정규리그 4연패를 이루어내며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하였다.

챔피언결정전의 상대는 PO에서 한국전력을 꺾고 올라온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아무래도 OK저축은행이 젊은 선수로 구성된 팀이라 경험에서 앞서는 삼성화재가 가볍게 우승할 것이라는 게 세간의 평이었는데... 3월 28일 대전에서의 1차전에서 전반적으로 무거운 모습을 보이며 0:3 셧아웃으로 시원하게 털렸다. 레오가 막히니 아무것도 안됨

하루 쉬고 열린 2차전에선 무쓸모들류윤식-준용의 답도 없는 리시브에 유광우와 레오가 흔들리며 0:3 으로 또 한번 시원하게 털리면서 홈에서만 2패로 벼랑끝에 몰렸다.

자폭ㅋㅋ.jpg
[JPG image (78.73 KB)]

4월 1일 안산에서의 3차전에서 세트스코어 1:3으로 패배, 시리즈를 스윕당하며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최장 연속 우승 기록도 7시즌에서 마감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고희진의 자폭 KO 세레머니와 비매너 행동은 많은 배구팬들에게 비웃음을 샀다.[14]

챔피언결정전 전까지 삼성화재가 이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지리라고는 많은 전문가나 팬들이 예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적인 결과. 물론 시리즈 전에 OK저축은행이 준비를 잘한 것도 있지만, 삼성화재도 그동안 눈에 보이지만 근근히 막아온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터진 시리즈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오현의 현대캐피탈로의 FA 이적, 석진욱의 은퇴로 리시브라인이 무너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거기다 군복무로 시즌 초에 아웃이 된 박철우의 공백을 그 어느 누구도, 어느 방법으로도 메우지 못했다는 문제까지 겹쳤다. 평소에 벽철우, 사위라고 놀린 데에 대한 대가니라! 공격력은 현대캐피탈 2연패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박철우라는 옵션은 여전히 리그 최고의 사이드 블록 능력과 레오에 집중된 공격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삼성화재의 시리즈 스윕 패배를 더욱 부추긴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여오현과 석진욱이 팀을 떠난 것은 이미 2년이 지난 일이고, 그 시간 동안 리시브 라인이 정비되지 못한 것을 단순히 선수가 못한다고 돌리는 것은 언제나 선수 훈련량이 가장 많다고 자부하던 삼성화재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진다. 더욱이 현재 삼성의 리시브를 책임지는 류윤식 곽동혁 이강주는 FA와 트레이드로 데려온 타팀의 주전급 선수들이었다.쩌리 국내선수로 팀 운영한 게 아니라는 거다. 특급신인을 데리고 오지 못했어도 다른 루트로 선수영입을 통해 스쿼드를 갖췄던 삼성이 선수가 없어서 졌다고 말할 순 없는 일이다. 그리고 드래프트에서 하위권 팀이 1라운드 상위픽을 가져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이것이 억울하다고 할 순 없다.


3. 2014-15 시즌 선수단

2014-15 시즌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선수단
감독 신치용
코치 임도헌 (수석코치), 윤종권, 신진식
레프트 1.고준용 4.이태호 8.류윤식 13.박윤성[15] 16.레오나르도 레이바 17.김강선 18.고현우
라이트 3.최귀엽 11.김명진
센터 9.이선규 10.고희진 12.이재목 15.지태환 19.안정경 20.정진규
세터 2.이민욱[16] 6.황동일[17] 7.유광우
리베로 5.곽동혁 14.이강주
----
  • [1] 한·일 V리그 TOP매치는 한국과 일본의 클럽팀까지 맞붙는 클럽배구 국제대회로 2006년부터 출범되었으며, 총 5회까지 개최(2006, 2007, 2009, 2010, 2013)되었다. 2009년 3회 대회까지는 한국과 일본의 우승팀과 준우승팀의 출전자격이 주어졌지만, 2010년 대회때부터는 한국과 일본의 우승팀만 참가하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게 되었다. 우승도 단판승부로 결정이 되는걸로 바뀌었다. 2011, 2012년은 일본에서 지진으로 인해 개최되지 못했고, 2008년과 2014년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개최되었다. 2015년에는 6회 대회 개최가 확정되었다.
  • [2] 2008-09 시즌은 정규리그 2위, 2010-11 시즌은 정규리그 3위로 올라와 우승을 차지했으므로 통합 7연패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다
  • [3] 푸른색 타이즈에 타 종목에도 쓰였던 그 마스코트다.
  • [4] 그러나 이 말은 과거가 될 가능성이 큰게, 한화 이글스가 김성근 감독을 선임함으로써 2015년 시즌 꼴찌 탈출이 유력해졌고, 대전 시티즌은 아드리아노 빨로 2014 K리그 챌린지 우승을 차지하며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했다.
  • [5] 사실 오히려 기회는 이형두가 더 많았다. 장병철은 한창 날려야 했을 때 김세진이라는 희대의 걸출한 선수에게 가려 출장 기회조차 잡기 힘들었지만, 이형두는 프로 리그 초반에 석진욱이 2004년 세미 프로 리그에서 당한 무릎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해 있었기 때문에 기회가 꽤 있었다. 다만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로 복귀했을 때 현저한 기량 저하로 인해 제 자리를 찾지 못했을 뿐.
  • [6] 사실 2000년대 초반 배구 인기의 급락은 복합적인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우선 외환 위기 때 많은 팀들이 줄줄이 해체됐고, 그 사이 일어났던 한국프로농구의 출범, LG화재의 이경수 스카우트와 드래프트 파동에 남자 배구 국가 대표팀의 FIVB 월드 리그 불참(A 매치 포기)이 이 시기에 일어나 찬물을 끼얹었다. 거기에 화룡점정이 바로 삼성화재의 V9과 현대건설의 V5 독주 체제, 그리고 지지부진한 프로화 과정 등이었다. 이 원인들이 바로 배구 팬이 줄게 한 주범이었다. 그러니 고려증권을 돌려줘!
  • [7] 대표적인 것이 우리캐피탈 창단 과정, 절반의 성공만 거둔 한국전력의 준프로 전환이 있다.
  • [8] 김세진은 말이 필요 없는 한국 배구사의 전설이고, 구본왕, 구준회 또한 포텐셜이 어마어마한 유망주들이었다. 부상 때문에 은퇴해서 그렇지.
  • [9] 이때 신선호의 자퇴는 삼성이 짜고 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그러나 삼성화재 입단과 동시에 센터로 포지션을 전환했다는 점에서는 소문이 아닐 거라는 확신만 남겼다.
  • [10] 그런데 나머지 구단들도 사실 할 말이 없는 것이, 삼성화재를 욕하면서도 삼성화재로 간 선수들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을 매몰차게 외면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졸업 후 상무에 입대한 박종호(홍익대), 자진 유급한 정승용(서울시립대)과 박우석(명지대)은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지만 그 외의 선수들은...
  • [11] 비단 삼성화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배구 준결승전에서 일본에 세트 스코어 2:1으로 무난하게 앞서던 남자 배구 대표 팀이 석진욱의 무릎 부상과 동시에 리시브가 순식간에 무너지며 3:2로 역전패한 사건을 생각해보자. 물론 석진욱의 배구 센스가 타의 주종을 불허하는지라 여전히 훌륭한 선수로 남아 있지만, 엄청난 서브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가장 안전하게 리시브를 해주던 석진욱이 이탈하자 어려운 리시브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한국 배구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 [12] 여자배구에서는 3위 팀인 07-08 GS칼텍스, 08-09 흥국생명이 우승을 한 적이 있다.
  • [13] 3라운드 마지막 경기인 우리카드전에 복귀하긴 했다.
  • [14] 이전에도 이런 비슷한 짓을 여러 번해서 타팀팬들의 어그로를 끌어오고 있었고, 상대편을 바라보며 세리머니를 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어낸 장본이기도 하다. 고희진도 자신이 한짓을 잘 알고있지만 대답이 "타팀팬 반응까지 신경써야하나요? 우리팀 팬만 좋으면 그걸로 된 거에요."라고 해서 타팀팬들이 이를 갈던 차에 이번 일이 터졌으니 위 아 더 월드 타팀팬들이 통쾌해하고있다.
  • [15] 원래 13번은 김정훈(레이싱 모델 육지혜의 남편으로 유명하다)의 배번이었으나 10월 31일에 은퇴하면서 상무에서 전역한 박윤성이 가져갔다.
  • [16] OK저축은행의 이민규가 형이다. 중학교 시절을 제외하고 대학까지 형제가 같은 학교에 다녔다.
  • [17] 2014년 12월 4일 우리카드전부터 라이트로 간간이 뛰었다. 그리고, 5라운드 도중에 김명진이 부상당하면서 이를 대신해서 라이트로 뛰었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15 21:22:23
Processing time 5.3872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