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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학 학력고사

대학입학 학력고사. 大學入學 學力考査.

Contents

1. 개요
2. 과목
3. 시간표
4. 비판
5. 사건사고
5.1. 92학년도 후기 대입학력고사 문제지 유출 사건
6. 같이 보기

1. 개요

1981년부터 1992년까지, 즉 1982학년도부터 1993학년도까지 시행되었던 전국 규모의 대학입학/교육 적격자 선발 시험이다. 필기시험 320점에 체력장 20점을 합하여 340점 만점으로 구성되었다. 1982학년도부터 1987학년도까지는 선시험 후지원, 즉 먼저 학력고사를 본 후 그 점수 가지고 대학을 지원했으며[1] 1988학년도부터 1993학년도까지는 선지원 후시험, 즉 먼저 지망대학을 지원한 다음 학력고사를 봐서 당락을 결정했다.[2] 당시에는 대입 모집군이 전기와 후기로 구분되었는데[3] 선시험 후지원 시절에는 11월에 1회 시험을 본 후 그 점수로 전기, 전기에 탈락하면 후기에 지원했으며 선지원 후시험 시기에는 대입 지원이 먼저이고 채점이 대학에서 진행되다 보니 그에 따라 학력고사도 전기(12월)와 후기(다음해 1월) 2번 시행되었다. 보통 후기 시험이 전기 시험보다 난이도가 더 쉬운 편이였다.

인문/자연계(문/이과)구분이 폐지된 제7차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시행된 2002년 이전에 시행되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계열별 분리가 이루어졌다.

선지원 후시험 시절에는 원서 접수 마감일이면 오후 6시부터 각 방송사들이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각 대학 학과별 지원 현황 및 경쟁률을 보도하는 특집방송을 내보냈다. 때문에 이 시간대에 주로 방송되는 만화영화나 어린이 프로그램도 결방되어 어린이 시청자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학력고사 시험 당일이면 시험이 치루어지는 대학 앞에서는 수험생 말고도 수험생의 학부모들, 모교 출신 수험생들을 응원하러 나온 해당 대학 재학생들, 학부모들과 함께 수험생들의 합격을 기도해 주러 나온 목사나 스님, 합격 기원 엿이나 찹쌀떡을 팔러 나온 잡상인 등이 몰려들어 한바탕 북새통이 벌어지곤 했다.

2. 과목

학년도 기준 1982년~1986년까지는 국어,수학,외국어(영어를 포함해 응시하고자 하는 외국어를 선택할 수 있었다![4]) 비롯 음악,미술,체육,기술(가정) 등 사실상 내신산정 과목과 마찬가지로 총 15개 과목[5]이 학력고사 시험과목이였다. 이것이 1987년 시험부터 9과목으로 시험과목이 축소되게 된다. 아래 서술은 9과목으로 축소된, 1987년~1993년의 과목 구분이다. 15과목 시절 배점은 아시는 분이 추가바람.

인문계열은 국어Ⅰ 55점 만점, 국어Ⅱ 20점 만점, 영어 60점 만점, 수학 55점 만점, 국사/윤리 각 25점 만점이 필수로 지정되었고 사회Ⅰ.사회Ⅱ, 세계사, 지리Ⅰ.지리Ⅱ중 2개 과목 선택, 각 과목당 20점 만점, 물리Ⅰ, 화학Ⅰ, 생물Ⅰ, 지구과학Ⅰ중 택1 20점 만점, 제2외국어 및 실업 20점 만점 등 총 320점+20점(체력장[6])=340점 체제로 구성되었다.

자연계열은 국어Ⅰ 55점 만점, 영어 60점 만점, 수학 75점 만점, 국사/윤리 각 25점 만점이 필수로 지정되었고 물리Ⅰ.물리Ⅱ, 화학Ⅰ.화학Ⅱ, 생물Ⅰ.생물Ⅱ, 지구과학Ⅰ.지구과학Ⅱ중 2개 과목 선택, 각 과목당 20점 만점, 사회Ⅰ, 지리Ⅰ, 세계사중 택1 20점 만점, 제2외국어 및 실업 20점 만점 등 총 320+20점(체력장)=340점 체제로 구성되었다. 이거 이과 맞어?[7]

이외에도 예체능 계열의 경우 사회, 과학을 하나씩만 선택하고 국어 II가 빠지면서 남는 40점은 자기 전공의 이론시험(음악, 미술, 체육)으로 채워지게 됐다. 당시엔 이런 예체능 학생들을 위해서, 지금은 과학만 있는 하이탑에 음악, 미술도 있었다.

그래서 인문계와 자연계는 국, 영, 수가 190점, 기타과목이 130점, 예체능계는 국, 영, 수가 170점, 기타과목이 150점인 체제다. 제2외국어와 실업 중 하나 선택이 가능한데 일부 대학은 제2외국어를 치를 학생만 지원 가능했다. 당시에는 원점수를 그대로 적용했으니 자기가 배운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낫겠지만 지금처럼 표준점수제를 도입했다면 당시 고등학생 중 소수만 배웠던 중국어나 스페인어에 응시자가 몰렸을지도.

3. 시간표

교시 계열 시험 과목[8]
1교시 공통(필수) 국어Ⅰ(한문Ⅰ), 국사
2교시 인문 수학Ⅰ, Ⅱ-1(필수)
사회Ⅰ·Ⅱ, 지리Ⅰ·Ⅱ, 세계사 (2개 선택)
자연 수학Ⅰ·Ⅱ-2 (필수)
사회Ⅰ, 지리Ⅰ, 세계사 (1개 선택)
예체능 수학Ⅰ (필수)
사회Ⅰ, 지리Ⅰ, 세계사 (1개 선택)
3교시 공통(필수) 영어
공통(선택)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9], 일본어, 에스파냐어, 농업, 공업, 상업, 수산업, 가사 (1개 선택)
4교시 공통(필수) 국민윤리
인문 국어Ⅱ (필수)
물리Ⅰ, 화학Ⅰ, 생물Ⅰ, 지구과학Ⅰ (1개 선택)
자연 물리Ⅰ·Ⅱ, 화학Ⅰ·Ⅱ, 생물Ⅰ·Ⅱ, 지구과학Ⅰ·Ⅱ (2개 선택)[10]
예체능 음악, 미술, 체육 (1개 선택)
물리Ⅰ, 화학Ⅰ, 생물Ⅰ, 지구과학Ⅰ (1개 선택)

한편 재5차 교육과정 하에서 치뤄진 처음이자 마지막 학력고사인 93학년도 학력고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변경되었다.
  • 1교시 '국어Ⅰ(한문Ⅰ)'이 '국어(한문 상)'으로 변경.
  • 2교시
    • '수학Ⅰ, Ⅱ-1'은 '일반수학, 수학Ⅰ'로, '수학Ⅰ, Ⅱ-2'는 '일반수학, 수학Ⅱ'로 각각 변경.
    • 인문계의 '사회Ⅰ·Ⅱ' 및 '지리Ⅰ·Ⅱ'는 각각 '정치경제·사회문화', '한국지리·세계지리'로 변경. 자연계 및 예체능계의 '사회Ⅰ', '지리Ⅰ'은 각각 '정치경제', '한국지리'로 대채.[11]
  • 3교시 제2외국어 및 실업 선택과목에 '정보산업' 추가.
  • 4교시
    • '국어Ⅱ'가 '문학·작문·문법'으로 대채.
    • 인문계 및 예체능계의 '물리Ⅰ', '화학Ⅰ', '생물Ⅰ', '지구과학Ⅰ'은 각각 '과학Ⅱ-상', '과학Ⅱ-하', '과학Ⅰ-상', '과학Ⅰ-하'로 변경. 자연계의 '물리Ⅰ·Ⅱ', '화학Ⅰ·Ⅱ', '생물Ⅰ·Ⅱ', '지구과학Ⅰ·Ⅱ'는 각각 '물리', '화학', '과학Ⅰ-상·생물', '과학Ⅰ-하·지구과학'으로 변경.[12]

시험은 4지선다형 시험였고 폐지 직전 몇 년 동안은 주관식 문항이 만점의 30%를 차지하였다.[13] 학력고사의 출제는 중앙교육연수원 평가관리본부에서 담당하다 중앙교육평가원을 거쳐, 1992년 마지막 해에는 국립교육평가원에서 담당하였다.

한편 전문대학에 진학할 때에도 별도의 학력고사를 치뤄야 했는데, 시험 과목은 계열 구분 없이 국어, 수학, 영어, 국사 , 국민윤리 5과목이었다.
교시 계열 시험 과목
1교시 공통(필수) 국어Ⅰ(한문Ⅰ), 국사
2교시 공통(필수) 수학Ⅰ, Ⅱ-1, 국민윤리
3교시 공통(필수) 영어

4. 비판

사교육을 없애고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일련의 조치로 도입되었으나, 지나친 암기형 문항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수험생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의 학업성취도 검사에 지날 뿐 대학 교육 적격자를 선발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는 비판에 부딪치자 1987년부터 미국의 SAT를 본 따 학력고사를 대체하기 위한 대학입학 적성검사의 연구.개발이 진행되었으며 1990년부터 1992년 7차례에 걸친 실험평가를 통해 1993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되자 폐지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능인데 누군가는 도로 고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로 돌려놨다

5. 사건사고

5.1. 92학년도 후기 대입학력고사 문제지 유출 사건

92학년도 후기 대학입학 학력고사를 하루 앞둔 1992년 1월 21일 서울신학대학교에서 보관중인 학력고사 문제지 포장 박스 겉면이 뜯겨져 있는 것을 경비원이 발견하여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문제지가 각 교시별로 한 부씩 없어진 것이 확인되었고, 이에 교육부에서는 부랴부랴 전국 각 대학에서 보관 중인 문제지를 긴급 회수하여 파기하는 한편, 1월 22일로 예정되어 있던 후기 대입 학력고사를 2월 10일로 연기했다. 이 사건으로 21일로 예정된 예비소집을 위해 올라와 있던 수험생들은 헛걸음을 치고 되돌아가야 했고, 22일 학력고사 실시와 함꼐 연금 상태에서 풀려날 예정이었던 학력고사 출제위원들은 20일을 더 붙잡혀서(?) 문제를 다시 출제해야 했다. 결국 많은 수험생들 및 출제 위원들은 2월 2일~5일로 이어지는 구정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수험 공부 및 문제 출제에 매달려야 했고, 후기대 입시 관계자들 역시 합격자 발표 예정일인 2월 15일까지 불과 5일 안에 입학 사정을 끝마치고 합격자를 발표해야 했기에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또한 전문대 입시도 예정된 2월 19일에서 1주일 연기되는 바람에 전문대 입시 관계자들도 불과 3일이라는 촉박한 시간 안에 입학 사정을 마무리해야 했다. 덤으로 많은 대학들이 편입학 시험을 취소, 연기해야 했다.
한편 이 사건의 여파로 당시 교육부 장관 윤형섭이 경질되고, 후임으로 조완규 서울대 총장이 임명되었다.
경찰 수사 결과 범인은 당시 야간 당직을 맡고 있던 경비원으로 밝혀졌다. 해당 경비원은 평소 알고 지내던 교회 집사의 딸이 장학금을 받고 입학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으로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시험지를 해당 수험생에게 전달하지 않고 바로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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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현 수능 정시모집과 비슷하다.
  • [2] 대입 수험생 입장에서는 사상 최악의 입시제도로 불리운다. 자신의 객관적인 실력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모의고사 점수나 내신성적 등의 '감'에 의해 대학 지원 후 학력고사를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모의고사 전국 1등, 수학,과학 올림피아드 한국 대표, 즉 지금이라면 수능성적 0.01%의 극상위권 수험생도 시험 당일 컨디션난조가 있으면 떨어질수밖에 없다. 수시도 없었고 복수지원도 없었던 시기라서 전기에 단 1회의 지원이 실패하는 경우 피해가 꽤 컸다.지금이라면 저정도 극상위권 학생이라면 일단 수시에서 100% 합격이다. 설사 수시를 안 치고 정시에서 수능시험을 망쳐도 가나다군 복수지원으로 최소한 연고서성한급에서 하나는 걸린다.
  • [3] 몇몇 대학은 전후기 분할 모집을 실시하기도 했다.
  • [4] 이 때문에 몇몇 학생들이 영어를 선택하지 않고 점수 획득이 쉬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을 선택하였다.
  • [5] 사실상 고교 거의 전 과목
  • [6] 윗몸일으키기, 앉아 윗몸 앞으로 굽히기, 100미터 달리기, 오래달리기 (남자는 1km (2.5리), 여자는 800m (2리)였다.), 턱걸이 (남)/매달리기 (여) 등이 있었다.
  • [7] 국사/윤리가 합 50점이다 보니 이과 과목인 수학,과학 총점보다 국,영,사회계열 과목 총점이 더 많다.
  • [8] 4차 교육과정 기준이다. 5차 교육과정의 첫해는 과목명이 달랐다.
  • [9] 당시는 한중수교 이전(대만과 수교시절)이라서 문자는 정체자, 발음부호는 주음부호와 한어병음방안 병기
  • [10] 2개 선택 중 물리, 화학이 반드시 1과목 이상 선택되어야 했다. 즉 생물-지구과학 조합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
  • [11] 4차 교육과정의 '사회Ⅰ', '지리Ⅰ'과 5차 교육과정의 '정치경제', '한국지리'는 내용이 완전히 동일하지 않았다.
  • [12] '과학Ⅰ-상', '과학Ⅰ-하'는 필수 과목이었으나, '생물', '지구과학'은 학교장 선택 과목이었다.
  • [13] 20점 만점인 경우 객관식 14문제와 주관식 3문제(각 2점)으로 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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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8 19: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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