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last modified: 2015-08-13 14:17:57 by Contributors

주의 : 사건 사고 관련 내용이 있습니다.

이 문서에는 실제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설명이 있습니다. 개개인에 따라 불쾌감을 느낄 수 있으므로, 열람에 주의해 주십시오. 실제 사건을 기초로 하여 작성되었으므로 충분한 검토 후 사실에 맞게 수정해주시길 바랍니다. 범죄 등의 불법적인 내용 및 따라하면 위험한 내용도 일부 포함되었을 수 있으므로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수정자는 되도록 미풍양속에 어긋나지 않게 서술해 주십시오.

괌사고기모습.jpg
[JPG image (221.66 KB)]
사고 발생 3개월 전에 찍힌 사고기의 모습 추락 사고 후 사고기의 모습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 1997년 8월 6일
유형 CFIT, 조종사 과실
발생 위치 미국, 타무닝
탑승인원 승객 : 237명
승무원 : 17명
사망자 228명
생존자 26명
기종 Boeing 747-3B5
항공사 대한항공
기체 등록번호 HL7468
출발지 김포국제공항
도착지 아가나 국제공항

Contents

1. 개요
2. 사건의 내용
3. 희생자
4. 사고 이후
5. 관련 항목
5.1. 유사사고
5.2. 그 외

1. 개요

1997년 8월 6일 오전 1시 43분경(현지시각)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김포국제공항대한항공 801편, 테일넘버 HL7468이 미국의 안토니오 비 원 팻 국제공항에 접근하다가 추락, 승객 254명 중 229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희생자와 관련해선 아래의 내용 참고.

2. 사건의 내용

우선 이 사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당시 조종실의 상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짤막짤막하게 설명할 예정이므로, 긴 내용을 보고 싶은 사람은 여기로 가도록 하자.(원본)

플심으로 재현한 영상이다.

ke801cockpit.jpg
[JPG image (69.69 KB)]


사고기 조종실에는 박용철 기장, 송경호 부기장, 남석훈 항공기관사 등 3명의 조종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었다. 박용철 기장은 공군 조종사 출신으로 1987년 공군 소령 예편 후 대한항공에 입사하여 1992년 기장으로 승격되고 1995년 부터 보잉 747기를 조종하기 시작했으며, 사고 3개월 전인 1997년 5월에 비행안전 부문에서 대한항공 사장으로 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송경호 부기장은 1994년에, 남석훈 항공기관사는 1980년에 각각 공군 중령 예편 후 대한항공에 입사하여 근무해왔다.

당시 조종실에서는 사건 진행에 플래그가 되는 두가지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하나는 괌 공항의 VOR(무선표지소, 공항에서 비행기들의 착륙을 유도하는것. 바다의 등대와 비슷한 면이 있다)이 다른 공항들이 일반적으로 활주로 끝에 있는것과 달리 3마일 정도 멀리 떨어져 있으며, 공항 ILS의 활공각 유도 장치인 글라이드 슬롭이 고장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시 교신내용을 보면, 몇 피트 상공에서 어떻게 내려가자는 대화가 있다. 그런데도 기장은 교신기록 후반부로 갈수록 글라이드 슬롭에 의존하는 행동을 보인다. 분명히 글라이드 슬롭이 죽었으니 관제탑이 시키는 대로 내려가든가, 아니면 육안으로 내려가든가 해야 되는데 말이다. 그러나 하필이면 이날은 또 악천후였다.

충돌 30여분 전, 위 두번째 문단의 내용이 대부분인 대화가 오고 갔다.(이 때까지는 확실히 글라이드 슬롭이 죽은 걸 알고 있던 모양) 그리고 충돌 29분 전, 4만 1천 피트 상공에 있던 비행기는 2천 6백피트로 내려온다. 충돌 22분 전엔 갑자기 비구름 떼가 나타나 10마일정도 우회해서 들어간다. 충돌 11분전, 비구름 떼에서 벗어난 801편은, 괌 공항 6번 활주로로 내려가겠다고 관제탑에 보고한다. 그리고 충돌 9분 전에는 착륙을 위해 괌 공항에 로컬라이저와 VOR을 맞춘다. 로컬라이저란 계기착륙장치에서 발사하는 무선으로서 이것을 수신하면 착륙 비행기의 항로와 활주로의 중앙선을 일직선으로 일치시킬 수 있다. 당시 괌 공항에서는 착륙시의 강하고도를 보여주는 글라이드 슬롭은 작동하지 않고 있었으나 로컬라이저는 작동하고 있었다. 사고기는 90도로 좌회전하여 로컬라이저 무선을 포착한 다음 고도 2천 6백 피트를 유지하며 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관제탑과 부기장의 교신, 글라이드 슬롭 죽었으니 쓰지 말라는 관제탑의 명령. 근데 갑자기 충돌 2분 31초전에 기장이 글라이드 슬롭이 된다면서 조종실에선 자기들끼리 되네 안되네 논쟁을 벌였다. 글라이드 슬롭 전파송신소는 고장이 나 있는데 비행기 계기판에는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잘못된 신호가 나타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라디오 같은 전자제품에 의한 전파간섭이나 비행기 외부에서 방출된 전파가 그런 장난을 일으킬 수도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후의 건교부 조사팀의 보고에 의하면, 만약 괌 공항의 글라이드 슬롭 송신시설이 120헤르츠의 전파를 발사하였더라면 801편의 수신기에 허위 신호가 나타날 수 있었다.

그리고 약 1분간은 관제소 지시에 따라 상공 2천 6백 피트에서 1천 4백 피트까지 내려간다. 괌 공항은 글라이드 슬롭이 작동하지 않을 때 모든 항공기는 VOR로부터 7마일까지는 고도 2천6백피트를 유지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리하여 1천4백 피트까지 내려간 이 때부터 관제소 말 무시 모드(...)로 들어가는데, 착륙 때 고도 안지키면 충돌한다는 걸 모를리가 없는 사람들이 왜 이랬는지 의문이다. 사실 이때 관제소와 체크만 했다면 충돌이 일어났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다음 내용은 교신 기록으로 확인 하도록 하자.


.1541:22(충돌 1분 4초전)
기장 : Flaps 30 (플랩을 30도로 접으라고 지시. 조종석 내에서의 체크리스트 복창이나 기기 세팅시 기본 언어는 영어이고, 이는 교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부기장 : Flaps 30

.1541:31
부기장 : 착륙 점검
기장 : 잘 봐요. 560 피트 set. (글라이드 슬롭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엔 최저 560피트로 하게 되어 있다. 이 고도까지 내려가서도 활주로가 보이지 않으면 착륙을 포기하고 상승해야 한다. 이 고도를 최저고도로 설정했다는 것은 기장이 활공각 유도장치가 고장난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1541:42(충돌 44초전)
GPWS : One thousand! (1천 피트!)

이때 801편의 위치는 VOR로부터 2마일, 고도는 1400피트. 이 고도는 이 위치에서 지켜야하는 최저고도 2천피트 보다도 6백피트나 낮다. 그래서 GPWS가 지면과 비행기 사이의 고도가 1천 피트라고 경보한 것이다. 801편은 활주로에서는 3.3마일 떨어져 있는 VOR송신소를 지향하여 일직선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1541:46(충돌 40초전)
기장 : 글라이드 슬롭 안되나? Wiper on. (충돌 40초 전인데도 글라이드 슬롭에 신경을 쓰고 있다.)
기관사 : Yes, wiper on.

.1541:53(충돌 33초전)
부기장 : Landing Checklist. (착륙전 점검 시작.)
기관사 : Ignition Flight Start Flight Start (엔진이 갑자기 작동을 중지하는 것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가동시킨다는 뜻)

.1541:59(충돌 27초전)
부기장: 안보이잖아?
GPWS: Five hundred! (5백피트!) (이때 801편의 고도는 해발 약 1천1백 피트였으나, 지면으로부터는 불과 150m(492피트) 밖에 떨어지지 않아 충돌방지장치가 다시 경보를 한 것이다.)
기관사 : 어? (놀라는 어투)
조종실 : Stabilize, stabilize. (기체가 안정된 상태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뜻)
기관사 : 자동 브레이크? (비행기가 착지한 뒤 자동적으로 브레이크가 작동하도록 하는 장치.)
기장 : Minimum. (브레이크를 최저 단계에 놓아 활주로에서 길게 미끄러진 뒤 멈추도록 조작 지시. 활주로에 닿기 직전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1542:08(충돌 18초전)
기장 : Landing Gear Down in green. (착륙 바퀴가 내려갔음을 표시등을 통해서 확인했다는 뜻이다. 이때가 충돌 18초전인데 기장은 정상적인 착륙 절차라고 생각하고 착륙점검을 계속하고 있다.)

.1542:12(충돌 14초전)
기장 : On Course. (정상 비행중)

.1542:13(충돌 13초전)
기관사 : Flaps?
조종실 : 30 green. (플랩이 30으로 내려와 있는 것을 확인했다는 뜻)

.1542:14(충돌 12초전)
GPWS : Minimums, minimums! (최저 비행 고도)
? : 착륙 포기합시다.

경보음이 들렸을 때는 충돌 불과 12초전. 이때 비행기의 고도는 840피트였다. 니미츠 힐이란 언덕 위를 날아가고 있던 801편과 지면 사이의 격차는 3백4피트, 약 90m 였다. 이 경고음이 나왔을 때 조종실에서는 활주로가 보이지 않았다. 254명의 목숨을 태운 점보기는 당시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소낙비와 구름 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최저고도!"란 경보를 받고, 또 활주로 불빛도 안보이는데 왜 기장은 즉각적으로 기체를 상승시키지 않았을까. 조종사들은 눈앞에 있는 계기판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최저고도를 해발 560피트(격차고도 304피트)로 미리 고정시켜 놓고 있었는데 현재 해발고도는 그보다 280피트나 높은 것으로 나오니 안심했을 것이다 "560피트까지는 마음놓고 내려가도 안전하다"는 선입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560피트라는 최저고도는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3.3마일 떨어진 VOR 상공까지 1천4백 피트 이상의 고도로 접근한 뒤 VOR을 넘어서서 활주로로 강하하는 구간의 최저고도이다.

조종사들은 머릿속에서 한 구간을 생략한 채 무조건 560피트까지는 내려가도 된다는 오산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미니멈!"이란 경고는 기체가 활주로에 가까워지니까 울리는 것이라 착각했을 것이다. 사실은 기체와 니미츠 힐이 접근하고 있는데 대한 경보였다. 미니멈이란 경보음이 나왔을 때 활주로가 보이지 않으면 무조건 기체를 상승시켜야 하는데 조종사들은 활주로가 보이지 않나 두리번거리고 착륙지점과 확인작업을 계속했다. 뭐하는 지거리야

.1542:14.70(충돌 11초전)
기관사 : 유압.
조종실 : 음, Landing Lights. (착륙등)

.1542:17(충돌 9초전)
GPWS : SINK RATE! (갑자기 강하속도가 빨라진 것을 경고)
부기장 : Sink rate, 오케이. (기체를 급히 상승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급강하는 문제없다고 말한다.)
기관사 : 2백 피트. (기체와 지면 사이의 격차 고도. 3백4 피트일 때까지 내려가서 활주로가 보이지 않으면 즉시 착륙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 최저고도 이하로 백 피트나 내려왔다는 말만 하고 있다.)

.1542:19.47(충돌 7.47초전)
부기장 : 착륙 포기합시다.

.1542:21(충돌 5초전)
기관사 : 안 보이잖아 (기체를 급히 상승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아직도 밖을 보면서 활주로를 찾고 있다.)

.1542:22(충돌 4초전)
부기장 : 안보이죠. 착륙 포기!

이 때 부기장이 기장을 무시하고 자기 앞에 있는 조종간을 잡아 당겼어야 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부기장이 두 번이나 "착륙포기"를 건의했는데도 기장은 듣지 않았다. 기장이 명백하게 잘못하고 있을 때는 부기장이 조종권을 인수하여 위기를 모면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절차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게 되어 사고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조종실 내의 권위주의적인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공교롭게도 조종석에 탑승한 3명의 조종 승무원들 모두 공군 조종장교 출신으로 밝혀졌는데, 박용철 기장은 1975년 공군 간부후보생학교에 조종간부로 입교하여[1] 1987년에 공군 소령으로 예편하였으며, 송경호 부기장의 경우 공군사관학교 26기 출신으로 1994년 공군 중령으로 예편하였고, 남석훈 항공기관사 역시 공군사관학교 11기 출신으로 1979년 공군 중령으로 예편하였다. 서열에 따른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권위주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그것도 일반인도 아니고 상명하복이 몸에 배인 군인 출신들끼리 모인 집단이 조종석을 구성하고 있다보니 감히 선배님이 모는 비행기의 조종대를 잡을 수 없는 분위기로 자연스레 굳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대한민국에서 민항기 조종사의 대다수는 공군사관학교에서 조종특기를 부여받은 후 15년 의무복무[2]를 한 뒤에 민항사에 지원했거나 공군 학군단을 거친 케이스다. 그리고 군 내에서는 사관학교 기수를 대단히 중요하게 따지며, 이는 전역 후 예비역 관련 행사 등에서도 습관처럼 적용된다. 즉, 전역한다고 해서 사관학교 선배한테 같은 민간인으로서 대해지는 게 아니라 철저히 후배가 선배의 말에 따라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조종 승무원들의 군출신 서열만 놓고 보자면 셋 중에 항공기관사인 남석훈씨가 가장 선배였고 연령대로나 입사시기나 비행시간도 나머지 둘보다 훨씬 많았지만, 조종실에서의 직급만 놓고 보자면 항공기관사가 세 사람 중에 가장 하위 서열에 있었던 것이었다. 남석훈 항공기관사 입장에서는 박용철 기장이 군에서나 항공사에서나 짬밥으로는 후배이긴 해도 사관학교 직속후배가 아니다 보니 실질적으로 선후배간의 강력한 상하관계라고 보기도 어렵고, 조종석에서의 직급은 오히려 자신보다 두단계 가까이 높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사실상 방관할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3]

특히 남석훈 항공기관사의 이런 애매모호한 위치는 사고 당시 박용철 기장이 조종실내 분위기를 강압적으로 몰고가거나 나머지 승무원들에게 불평하는 부분이 사실상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송경호 부기장이 박용철 기장의 행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었던 결정적인 계기로 분석될 수 있다. 셋 중에 나이도 제일 많고 같은 사관학교 15년 대선배인 항공기관사 조차도 기장에게 저렇게 깍듯이 하고 가만히 있는 상황이다 보니, 셋중에 나이로나 군대 짬밥으로나 가장 막내였고 항공사 경력도 신참에 가까웠던 부기장으로서는 기장의 행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가 더더욱 어려운 것이었다.[4]

결국 이들 중 누군가가 조종실의 분위기를 딱히 나쁘게 몰아간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권위주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던 조종실에서 군출신 구성원들로 성립된 짬밥 및 파벌 서열과 조종실 내에서의 직급 서열이 뒤섞이며 엉망이 되어 이들 간에 명확한 서열기준이 없어지면서 상호간의 의사결정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고, 결국 조종 승무원들은 1분 1초가 아쉬운 긴급상황에서 멘붕과 망설임으로 시간을 지체하다가 참사를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을 마지막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1542:22.18
기관사: Go Around (착륙을 포기하고 다시 올라가자는 뜻.)

.1542:23.07
기장: Go Around
"신음소리"

(기장이 마침내 착륙을 포기하고 기수를 올리기로 결심한 시각은 충돌 2.53초 전이었다. GPWS의 최저고도 경고 후 약 9초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부기장이 "착륙 포기"를 건의한 지 3.2초가 지난 시점이었다.)

.1542:23.77(충돌 2.3초전)
조종실 : (자동조종장치를 해제할 때 나는 경보음이 들린다.) (기장이 조종간을 잡아당기기 전에 자동조종장치 해제 단추를 눌렀다는 것을 뜻함. 기장은 왼손으로 조종간을 당기면서 오른손으로 엔진 스로틀 레버를 밀어 올렸다. 비행기록장치의 분석치에 따르면 이 시각에 엔진 추진력과 비행속도, 그리고 기수의 상승각도가 증가하고 있었다.)

부기장 : Flaps. (플랩을 다시 집어넣었다.)

.1542:24(충돌 2초전)
GPWS : 100 (지면에서 1백피트 되는 상공까지 내려왔다는 뜻) 50, 40, 30(피트) (기수를 치켜드는 동작을 했지만 254명을 태운 중량 2백10t의 747기가 시속 290km로 급강하하는 관성을 즉각 멈추게 할 수는 없었고 하강은 계속되었다.)

.1542:25.78
GPWS : 20, 충돌음

(801편의 왼쪽 날개 밑에 달린 랜딩 기어가 먼저 언덕의 나무를 살짝 건드린 뒤 도로 곁에 있는 송유관을 치면서 도로를 건너가다가, 왼쪽 날개 바깥쪽의 1번 엔진이 언덕 비탈과 충돌했다. 엔진은 떨어져 나갔고 비행기 동체는 언덕의 비탈을 기어 올라가면서 조종실이 있는 기수를 시작으로 부러지기 시작했다. 기수는 언덕의 꼭대기를 넘어 아래로 내려꽂듯이 쳐박혔다. 사고기는 충돌 직전에 기장이 기수를 치켜올린 때문에 충돌 2초 후에는 기수가 상향 8도로 치켜져 있었다. 결국 하강을 멈추고 막 상승하려는 찰나에 나무와 송유관을 친 것인데 약 3m만 여유가 있었더라도 아슬아슬하게 충돌을 면하고 상승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1542:29(충돌 3초후)
조종실 : 신음 (떨어져 나간 조종실이 뒤집히면서 구조물이 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1542:32.53(충돌 7초후) 녹음 끝

ke801_cockpit_c.jpg
[JPG image (26.38 KB)]


조종실과 1등석이 있는 기수(機首)부분은 동체가 분리되어 뒤집어진 채 발견되었다. 기수의 코 부분은 충돌시의 충격으로 안으로 쑥 들어가 있었다. 기장과 부기장이 앉았던 의자는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부기장의 의자는 튕겨 나가 있었다. 생존자 가운데 8명은 1등석, 10명은 뒷좌석, 13명은 3개의 의자열(列)가운데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생존자들은 비행기가 동강날 때 의자와 함께 바깥으로 튕겨 나갔던지 기체 안에서 자력(自力)으로 안전띠를 풀고 화염과 쏟아진 짐덩어리들 사이를 뚫고 바깥으로 탈출한 이들이었다. 생존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충돌 직후의 승객실은 다음과 같았다.

산소 마스크가 내려와 있었고, 머리 위에 있는 짐칸에서 물건들이 쏟아져 바닥에 쌓여 있었다. 공사장처럼 어지러웠다. 붉은 화염과 열기가 덮쳐 왔다.

사건은 대한민국 시간으로 밤시간대에 이루어 졌다. 대한민국 시간 새벽에 최초로 미국 CNN 등에 다루어 졌고, 이 방송을 본 PC통신 유저들이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으로 소식을 전파 했다. 당시는 TV가 24시간 할때도 아니였고 인터넷도 없던 시대였다. PC통신 유저들에 의해 국내에 최초로 알려져서 아침 방송이 시작할 때는 어느정도 사건 전파가 되어 있었다.

상당히 특이한 경우라 언론등에서도 PC통신의 위력에 대해 많이 다루어 졌다.

3. 희생자

ke801_photo2.jpg
[JPG image (217.14 KB)]


휴가철인 8월, 그것도 대표적 휴양지인 괌으로 가는 항공기에서 벌어진 대형참사였기 때문에, 가족단위로 탑승한 경우가 많아서 일가족 전원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았다. 이 사고로 비행기를 타지 않았던 사위를 제외한 장인과 그 일가족 및 직계비속까지 전원 사망하여, 장인의 형제들과 사위가 천억원대 유산의 상속권을 두고 3심까지 가는 소송을 벌인 끝에 사위가 승소한 재판이 있기도 했다. 법대생들이 법공부하다가 '동시사망 시 대습상속'의 유명한 판례로서 접한다. 상속 관련이지만 소유권 이전 등기말소 건으로 분류되는 사건번호 97가합91172(1998년 4월 3일 서울지방법원에서 판결), 98나21825(1999년 2월 1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판결), 99다13157(2001년 3월 9일 대법원 판결), 이 세 판결이 바로 그 판례에 해당한다.

그 외에도 운명의 장난같은 기구한 사연들도 많았다. 당시 대한항공 박완순 괌 지점장은 이 사고로 아내와 초등학교 6학년생이던 아들을 잃고, 당시 고등학생이던 만 살아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슬픔을 뒤로 한 채 밤새도록 사고 수습에 전념해야 했으며, 애써 침착함을 보이며 유족(박완순 씨 자신도 유족이었음에도)에게 죄송하다는 인터뷰를 하다 끝내 울음을 터트려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참고로 박완순 씨는 지금은 대한항공에서 퇴사하고 인성교육전문가로 활동중이다. 또 1983년 옛 소련 전투기 미사일에 격추된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한 재미교포는, 이 사고로 여동생도 잃게 되어 대한항공과 원치않은 악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또한 성우 장세준 정경애 부부가 자녀와 함께 이 사고로 모두 세상을 떴기에 성우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등, 항공사고사 이외의 면으로도 이슈가 됐었다.

사고 당시 광주광역시 동구를 지역기반으로 하던 국회의원이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신기하 의원(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도 이 사고로 숨지고 말았다. 만약 이 사고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의 제 16대 대통령이 노무현이 아니라 신기하였을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최측근이었다. 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대선에 출마했을때 죽은 신기하 의원을 어디갔냐고 데려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떠돌아서 치매설이 돌기도 했다. 김대중 후보 측에서는 물론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이 치매설을 처음 발언한 것이 당시 경쟁 정당인 신한국당(한나라당) 측이어서 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후보의 건강 문제를 지적하는 네거티브 전략이라는 설이 있다.

특히 괌 현지에서 발생한 사고이기 때문에 현지 풍습에 따라 시신을 방부처리하고 온전한 형태로 메이크업까지 마치는 조건 하에서 사망인정 및 시신 인도 절차를 고수하는 괌 주정부의 정책 때문에 시신 인도가 상당히 늦어졌으며, 이에 대해 유족들이 항의하여 방부처리 및 염습하는 자원 봉사자들이 추가로 투입되었으나, 사고 당시 화재 등으로 인해 시신들의 상태가 온전치 못하기에 시신 처리 과정이 간단치 않아 시간이 지체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과중한 업무로 인해 방부처리 자원봉사를 하던 현지인이 과로사하는 일도 있었다.


유가족 중에는 이후 이런 사건도 있었다. #

4. 사고 이후

사고 원인에 대해 괌 주정부는 조종사 과실로 단정 지으며 자신들의 시설 미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이에 분노한 대한항공이 사고 며칠 후에 서울-괌 노선의 운항을 전면 중단하였고, 관광산업에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했던 괌 측에서는 주지사가 직접 한국에 찾아와 대한항공과 유족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기도 했으나,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조종사 과실이라는 기존의 의견을 고수했다.

이로 인해 중앙일보 시사만화에선 코쟁이 미국인들이 이 사고는 죄다 대한민국 탓이라고 실실거리는 걸로 깐 바 있으며, 당시 국내 방송사들도 괌 측 잘못이 크다며 자칫하면 다른 여객기도 위험하다고 보도했는데 싱가포르 및 다른 여객기들도 괌 공항에 착륙할때 아슬아슬한 현장이라고 보도하였다. 이를 두고 괌 공항 측은 불쾌한 반응을 보이긴 했으나 별다른 반론을 하지 못했다.

비록 끔찍한 사고였지만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 사고의 큰 충격이 안전 문제를 곱씹어볼 기회가 된 것인지, 이 사고 이후로 2015년 현재까지 대한항공에서 여객기 관련 사망 사고는 발생하지 않고 있으며, 화물기 사고까지 고려한다 해도 1999년에 발생한 6316편(MD-11F)과 8509편(747-200F) 화물기 추락사고를 마지막으로 2000년대부터는 대한항공에서는 인명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이 이후로 대한항공은 비행기 안전을 관리하는 부서에 외국인 임원을 적극 채용한다고 한다.#]

199708120003.jpg
[JPG image (13.57 KB)]

사고 4일 후인 8월 10일, 이해구 의원을 비롯한 당시 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괌 현지에 도착해 사고기 잔해 앞에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는 병크를 저지른 것이 한겨레 기자를 통해 알려지면서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조선일보도 도저히 옹호해줄 수 없는지 함께 비난할 정도였다.(#)

사고기인 HL7468편은 보잉에서 제작한 747-300 기종으로 대한항공에서 1984년 12월 12일에 인도하였고, 사고 당시 기령은 약 13년 정도로 약간 구형 기종에 속했다. 사고 원인이 불명확했기에 조종사 과실 외에도 기체결함, 정비불량 등의 원인추정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경쟁사인 아시아나항공은 사고기가 기령이 오래된 구형 기종임을 암묵적으로 디스하는 아시아나는 새 비행기로 모십니다라는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실제 당시 아시아나항공은 신생 항공사였고 대한항공은 구형 747-200, A300 등의 오래된 기종들의 비중이 꽤 되었기 때문에 평균기령에 있어서 대한항공보다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했고, 결국 아시아나의 국내 항공시장 점유율 성장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새 비행기 마케팅'에 굴욕적인 패배감을 맛본 대한항공은 2000년대부터 최신예 기종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오늘날에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보다 평균기령이 낮은 실정이고, 아시아나항공은 2000년대부터 새 비행기 마케팅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제작하는 항공 사고 수사대의 시즌 4에서도 다루어졌다. 재현 퀄리티가 나쁘지는 않았으나 비상착륙 공로패에 적힌 기장의 이름이 박영철로 잘못 표기되는 등의 오류가 있었고, 그래픽 재현에 사용된 항공기 모델도 747-400 기종을 사용하여 윙렛이 보이는 등 고증이 좋지 않았다.[5] 또한 배우 캐스팅의 문제였는지 몰라도 실제 기장이었던 박용철씨와 외모가 전혀 딴판인 배우[6]를 섭외하여 말이 많았다. 박용철 기장은 일반적인 긴 머리의 헤어스타일에 수염을 기르지 않았고 뚱뚱한 체구도 아니지만, 재연배우는 완전 대머리에 콧수염도 기르고 체구도 뚱뚱한 점 등 완전 다른 인물에 가깝다.[7] 다만, 부조종사인 송경호씨와 항공기관사 남석훈씨를 맡은 배우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 이들의 경우 실제 인물과 외모상 크게 차이점이 없었고, 특히 부조종사를 맡은 Silver Kim이라는 배우는 수고하십시오라는 짧은 대사속에서 명료하고 자연스러운 네이티브 수준의 한국어 발음을 보여준 덕분에 한국 시청자들에게 한국계 배우임을 강제인증 당하기도 했다.

대한항공에서는 사고 이후 괌 노선을 운항하지 않다가 2001년에 복항했다. 그러나 801편은 영구결번되어 복항 후에는 한동안 805편으로 운항하다가 2008년에 대양주 편명을 100번대로 갈아엎으면서 현재는 111편으로 운항하고 있다. 헌데 운항 기종은 사고기종의 후속 모델인 747-400이다(...).

5. 관련 항목

5.1. 유사사고

대한민국 조종사들의 전형적인 착륙 고집이나 권위주의(고압적 상하관계)가 영향을 끼친 사고.

5.2. 그 외

----
  • [1] 다시 말해서 기장은 공군사관학교 출신이 아니며, 오히려 부기장과 항공기관사가 공군사관학교 직속 선후배 사이다. 혹자는 기장과 부기장이 공군사관학교 선후배 사이여서 마치 기장이 강압적으로 부기장을 짓눌렀다고 하는데 애초에 기장이 공군사관학교 출신이 아니기에 잘못된 내용이라 할 수 있으며, 실제 공군 조종장교들의 경우 공사 출신과 비공사 출신간에 파벌이 나뉘어 이게 항공사에서 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에, 비공사 선배-공사 후배 관계의 경우 그냥 군대 짬밥 정도만 존중해주는 것 외에는 서로 노터치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 [2] 이 정도면 진급이 빠른 조종특기의 경우 대충 소령 말 ~ 중령 초는 되어야 전역이 가능하다. 참고로 중령이면 비행대대장 보직을 맡게 된다.
  • [3] 실제 블랙박스에 기록된 기장과 항공기관사 사이의 칵핏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남석훈씨 쪽에서 혼잣말로 편하게 말을 놓는 경우가 간혹 있긴 해도 기장과는 대체로 상호 존칭으로 대화를 주고 받고 있다. 항공기관사는 조종석 내에서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기장에게 존중을 표하는 것이고, 기장은 항공기관사가 자신보다 하위 직급이긴 해도 짬밥 대우를 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사실 기록된 대화 내용이나 뉘앙스를 분석해 보면 군복무를 해 본 사람들은 익히 알만한 중대장과 행보관이 대화하는 느낌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 [4] 특히 항공기관사가 공군사관학교 직속 선배에다가 항공사 짬밥도 높다는 점에서 부기장이 비공사 출신인 기장보다는 실질적으로 공사 출신 선배인 항공기관사의 눈치를 보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 [5] 특히 기종의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747-400 기종부터 항공기관사가 탑승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고기는 747- 300 기종으로 실제 사고 당시 항공기관사가 탑승해 있음을 알 수 있다.
  • [6] 중국계 배우로 알려져 있었는데 잘못된 내용이다. 해당 배우의 이름은 Paul Sun-Hyung Lee(한국명 : 이선형)로 한국계 캐나다인 배우라고 한다. NGC도 대충 아시아계 배우들로 넣지 않고 나름 신경써서 한국계 배우를 캐스팅 한건데 실존 인물의 외모조사를 못했거나 이를 그냥 지나친 것일 뿐이다.
  • [7] 이 점을 지적받았는지 추후 시즌에 다뤄진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에서의 기장 재연배우는 실제 기장이었던 천병일씨와 이질적이지 않았다. 참고로 이 재연배우는 항공사고 수사대의 일본 항공 123편 추락 사고편과 대한항공 8509편 추락 사고에서도 각각 교관 조종사와 기장으로 출연한 바 있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8-13 14:17:57
Processing time 0.2154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