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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럼 스티븐스

last modified: 2015-03-15 20:48:14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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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머나먼 아시아로 취직하러 와서는 생판 상관도 없는 나라 멸망기에 한 몫 껴서 놀다가,
그 망국 국민들의 자존심을 세계에 알리는 총알구멍난 선언지 역할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하찮은 삶이었다.
- 만화 이이제이 - 굽시니스트

Durham White Stevens(더럼더러운 화이트 스티븐스)
1851년 2월 1일 출생 ~ 1908년 3월 25일 사망

천하의 개쌍놈, 그리고 와패니즈[1]

미국의 정치가이자 외교관. 한때 일본에서 외무성 고문으로 지내다가 대한제국으로 건너와 '수지분(須知芬)' 이라는 한국이름으로 대한제국 외교고문을 지내다가 미국으로 돌아와서 친일파 미국인으로 급변하여 미국 외교가에서 일본이 을사조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통감정치를 지지하고 일본한국 지배를 찬양하는 발언을 하게 되면서 1908년 샌프란시스코 기차역에서 재미(在美) 한국인 교포였던 전명운, 장인환 열사에 의해 방법당해 사망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일본의 침략정책을 지지한 반한(反韓) 성향에 친일파 미국인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였으나 일본에서는 스티븐스가 죽은 후 일본 정부가 훈장까지 추서했을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Contents

1. 생애
1.1. 대한제국 외교고문
1.2. 친일파로의 변신 그리고 망언
1.3. 사망
2. 저격과정의 이점들

1. 생애

1851년 미국 오하이오 주(州)에서 태어났으며 19세 때 오버린 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으로 건너가 뉴욕 컬럼비아 대학 법리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후 미국 국무부에 외교관으로 입사하여 1882년 일본으로 건너가 주일(駐日) 미국 공사관에서 파견근무를 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일본이라는 동양의 국가와 인연을 맺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후에 미국에 있는 일본 외무성의 고문으로 임명되어 이 때부터 일제의 외교책을 위임받게 된다.

1.1. 대한제국 외교고문

이후 스티븐스는 일본의 외교가 노우에 가오루와 동행하여 대한제국으로 건너가게 되어 대한제국의 외교를 위임받게 되었고 한국이름 '수지분(須知芬)' 이라는 이름하에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1904년에는 고종으로부터 대한제국 외부고문관으로 임명되었는데 이 당시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이듬해 일본이 승리를 거두게 되면서 스티븐스는 이를 계기로 친일파로 변신하여 을사조약 체결과 한일병합의 진로를 트게 되는 소통자 역할을 하게 된다.

1.2. 친일파로의 변신 그리고 망언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이토 히로부미의 설득에 따라 미국 외교가와 정가(政家)에서까지 일본에 대한 지지발언과 찬양을 하며 본격적인 친일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한국일본에서의 외교활동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스티븐스는 미국의 외교가에서 일본한국 침략과 을사조약 체결을 강력히 지지하는 의사를 밝혔으며 1908년에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일본대한제국을 지배한 것은 당연한 결과로 일본은 헐벗고 굶주려 사는 대한제국을 발전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일본이야말로 고마운 존재라는 망언을 쏟아냈다.

이에 격노한 재미(在美) 한국인들이 스티븐스 앞에 나타나 망언을 취소하라고 요청했지만 스티븐스는 한국인들 앞에서도 일본대한제국과 백성들을 잘 먹고 잘 살도록 도와주겠다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왜 일본한테 화살을 돌리느냐는 망언을 끝까지 하게 되면서 한국인들로부터 비난과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1.3. 사망

더럼 스티븐스 저격사건 항목 참조.

1908년 3월 23일 스티븐스는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스티븐스의 앞에 낯선 동양인 남자가 나타나 그가 휘두른 쇠망치에 맞아 폭행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재미교포이자 독립운동가 전명운 열사였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동양인 남자가 나타나서 스티븐스를 향해 권총 사격을 가하였는데 그가 바로 독립운동가인 장인환 열사였다. 폭행과 총격을 받은 스티븐스는 급히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병원으로 후송되어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도중에 사망하였다. 두 열사가 거의 동시에 스티븐스를 공격하기는 했으나, 사전에 두 사람이 서로 만나서 스티븐스를 살해하기로 모의한 적은 없었고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라고 한다.

스티븐스가 사망하면서 전명운, 장인환 두 열사는 미국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재판에서 전명운은 증거불충분을 명목으로 선행(先行) 석방되었다. 장인환은 2급 살인죄로 25년형을 선고받고 1919년 석방되었다. 여담인데 바로 이승만이 이 두 사람의 행위를 살인행위라고 하면서 이들에 대한 변호를 위한 통역을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거부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이승만이 비난을 당하고 있다.[2]

스티븐스의 시신은 워싱턴으로 운구되었다가 기독교식 장례를 치른 후 워싱턴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이에 미국의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조화(弔花)를 보내 조의(弔意)를 표했으며 일본은 정부를 통해서 미국 정부에 애도를 표하고 일왕의 조화와 조문사절단을 워싱턴에 파견하였으며 훈1등의 훈장을 추서하고 유족에게는 위로금 및 조의금을 지급하였다. 서면에 의하면 일본 제국의 앞잡이였다고 한다.

2. 저격과정의 이점들

일부 도서나 영화 등에서는 스티븐스의 저격과정이 경우에 따라 다르게 그려졌거나 해석되기도 하였는데 일각에서는 전명운 열사가 스티븐스를 향해 쇠망치로 때렸고 장인환 열사가 후방에서 저격을 했다는 일화를 내놨으나 다른 쪽에서는 이들 두 열사가 스티븐스를 향해 쌍방으로 동시 저격하였다는 일화 등을 내놓으면서 해석이 엇갈리기도 하였다. 다른 쪽에서는 반대로 장인환 열사가 쇠망치로 때리고 전명운 열사가 저격을 했다는 일설도 있다. 또 일부에서는 열사 중 한 명이 스티븐스에게로 저격해야할 총탄이 다른 열사에게 날아가 부상을 입었다는 설도 있었다. 1990년대 한국사 관련 책자에선 전명운 열사가 총을 준비했지만 워낙에 낡은 총이라 작동이 되지 않았고 만일을 위해 준비한 쇠망치를 쓰게 된 것이라고 나오기도 했다. 이렇게 관련 설명이 엇갈리는 데에는 사건 자체가 급박하게 진행되어서 목격자들의 증언들이 제각각인 것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세원의 영화 마 안중근에서도 스티븐스의 저격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는데 특이하게도 기차역이 아닌 다리 위에서 두 열사가 스티븐스를 쌍방으로 저격하고 돌아갔던 장면이 나오기도 하여서 기차역에서 스티븐스를 저격했다는 지금까지의 고증을 뒤집어 놓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참고로 이 때의 스티븐스는 기차역이 아닌 다리 위를 건너다가 다리 위에서 자동차가 지나가고 난 후에 전명운, 장인환 두 열사가 쌍방으로 저격한 총탄에 맞아 즉사하였다. 하지만 영화가 워낙 망작(...)인 관계로 크게 반향을 일으키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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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취소선이 그어져 있지만 실제로도 오늘날 서양권 웹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열심히 쉴드쳐주며 한국과 중국을 비하하는 와패니즈들의 효시쯤 된다.
  • [2] 2011년에 KBS-1에서 방영한 이승만 다큐멘터리에서는 이승만을 옹호하며 전명운과 장인환이 잘했지만 이승만은 보복당할까봐 어쩔 수 없었다는 내용으로 방영했다. 이승만은 당시 유학생 신분으로, 나중에 회고록에서 스티븐스 저격 사건을 전후하여 조선인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빠져 대학 동급생은 물론 교수들마저 자기를 꺼림칙한 눈으로 보았다고 기록한 바 있어 이를 토대로 한 내용으로 추측되나 전명운,장인환 후손들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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