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덩리쥔

last modified: 2015-01-31 05:50:47 by Contributors

deng_li_jun_xiaojie.jpg
[JPG image (51.41 KB)]

한창 인기를 얻을 때의 사진.

Contents

1. 개요
2. 이름
3. 인생
3.1. 출생, 그리고 데뷔
3.2. 일본 활동
3.3. 중화권 활동
3.4. 사망
4. 기타
5. 추천곡

등려군, 鄧麗君, 邓丽君, テレサ・テン
1953년 1월 29일~1995년 5월 8일

1. 개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주로 중화권 및 일본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가수다.중화민국, 홍콩, 일본, 중국 까지 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아시아의 가희(歌姫)"라 불렸다.

한국에서의 대중적 가수 인지도는 안습. 그럼에도 첨밀밀(甜蜜蜜)이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은 두리안같은 한국 가수들도 많이 불렀던 곡이고, 멜로디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정도이다. 다만 노래는 들어봤어도 가수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적다....어디서 들어본 멜로디의 근원

그가 부른 노래 중에서는 원래는 다른 가수가 먼저 불렀지만 건전가요에 가까운 노래도 있다.

2. 이름

본명은 덩리쥔(鄧麗筠, 등려균)이지만, 어릴 때부터 가족들이 덩리쥔(鄧麗君, 등려군)이라는 애칭으로 불렀고 이 이름을 활동할 때 썼다. 중국어에서 '筠'과 '君'은 발음이 같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발음이 같은 글자로 애칭을 많이 붙여준다. 영문 이름은 Teresa Teng으로 이 이름은 일본에서 활동할 때도 '테레사 텐(テレサ・テン)'으로 계속 불렸다. 이 영문이름 테레사는 그녀 자신이 존경한다고 이야기했던 테레사 수녀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라는 설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세례명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3. 인생

3.1. 출생, 그리고 데뷔

1953년 1월 29일, 대만운림현에서 출생했다.양친 모두 중국 본토 출신이다. 부친은 중국의 하북성, 모친은 산동성 출신이다. 부친은 국민혁명군의 직업군인으로, 국공내전 후에 대만으로 쫓겨왔다. 부친의 영향인지 군 위문공연에 열심히 활동하였고, 중화민국에서는 '군인들의 연인'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아직도 중화민국의 군에서는 덩리쥔이 인기다. 인기투표에서 늘 1등한다.

1970년, 16세에 당시 중화민국의 인기 드라마인 '징징(晶晶)'의 주제가인 '당신만 보면 웃음이 나요(我一見你就笑)'를 불렀고 그후 5년 정도 중화민국과 홍콩을 중심으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1973년에는 홍콩에서 만난 '도라스(トーラス)'의 사장 후나키(舟木稔)를 만나 일본에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3.2. 일본 활동

아이돌 계열의 노래인 '오늘밤일까 내일일까(今夜かしら明日かしら)'를 취입했으나 별 성과를 얻지 못하자 곧 엔카 계열로 전환하여 '공항(空港; くうこう)'을 취입, 대히트를 하여 당시 '레코드 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일본 방송에도 활발하게 출연한다. 더 드리프터즈의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한것도 이 때의 이야기. 그러나 1979년 인도네시아 위조여권을 사용한 것이 발각되어 국외 추방당했다. 급히 일본에 가야해서 인도네시아 출신 친구가 만들어 준 여권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후 1984년까지 미국, 홍콩, 중화민국에서 활동하다 일본시장에 재입성, '속죄(償還; つぐない)', '애인(愛人; あいじん)'이 각각 150여만매,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겨(時の流れに身をまかせ)'가 200여만 매가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 '전일본 유선방송 대상(全日本有線放送大賞)' 최초의 동서(東西) 유선 대상 3해 연속 대상 및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1985년 12월에는 생전 마지막이 되는 솔로 콘서트를 NHK홀에서 진행하였다. 또한 같은 1985년에는 조용필의 일본 활동 후 '돌아와요 부산항에(釜山港へ帰れ)'를 부른 가수로도 유명하다(단, 최초 취입은 1983년 渥美二郞. 이후 계은숙, 美空ひばり, 森昌子 등이 취입/노래).

1987년 이후 일본에서 그다지 활동하지 않다가 1994년 11월 NHK '가요 자선콘서트(歌謡チャリティーコンサート)'에 출연하였다.

1995년 취입할 예정이던 '잊지마(忘れないで; Time to Say Goodbye)'는 그녀의 사망으로 취입되지 않았다가 2001년 일본가수(幸治)에 의해 추도음반으로 발매되었다.

3.3. 중화권 활동

중화민국 출신이라서 대만홍콩, 마카오 등 중국어권 지역에서의 활동도 활발했다.

1979년 위조여권 사용으로 일본에서 추방된 이후 중국어권에서 활동하였는데, 덩리쥔의 오리지널 노래도 흥행했지만, 만주국에서 활동한 향란(李香蘭; 山口淑子)의 노래들을 다시 불러 큰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유명해진 곡들로는 '夜來香', '不了情' 등이 있다. 그러나 대만 출신이 문제가 되었는지, 이향란이 만주국 찬양, 2차대전 종전 후 일본 귀국 활동 등을 한 이유가 문제가 되었는지,[1] 중화인민공화국1983년까지 금지했는데 물론 소용없었다.실제로는 양안관계가 해소된 1987년까지] 덩리쥔의 노래를 금지했는데 형식적인 금지였을뿐이다. 개나 소나 다 듣고 다녔고,심지어 단속하는 공안들도 덩리쥔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녔다고 한다. 덩리쥔의 인기는 극에 달했고, 금지하면 금지할수록 더 많이 들었다. 그래서 당시에 '낮은 덩샤오핑이 지배하고, 밤은 덩리쥔이 지배한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덩리쥔은 천안문사건 반대집회 등 중국 민주화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생전 중국 공연을 추진했으나 천안문 사태에 질색한 그녀가 중국공산당을 비난하면서 중공 공연 추진을 백지화시켰다.

1987년, 일본에서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활동적인 모습은 그다지 없었고, 홍콩대만에서 활동만 유지하다 1990년 이후 콩 반환 등의 문제로 파리로 거주지를 옮겼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금지곡이었던 덩리쥔의 노래는 국민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어 수많은 소문과 유언비어, 특히 콘서트에 관한 소문이 많았다. 안 관계 해소 후 실제로 덩리쥔은 그런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천안문 사태를 보고 중국공산당 정부에 실망하며 시위에 참가하여 실현되지 못했다.

3.4. 사망

덩리쥔이 죽었다는 소문은 1990년1991년에 한번씩 있었으나 유언비어였다. 그러던 중 1995년 5월 8일 요양을 목적으로 가끔 방문하던 태국 앙마이이핀호텔에서 기관지 천식 발작으로 사망, 향년 42세. 1990년부터 동거 관계에 있었던 14세 연하(...) 프랑스인 스테판 퓨엘이 최후의 간호를 했다. 같은 달 28일 타이베이에서 국장급의 장례가 치뤄져 전 세계 3만여명의 팬들이 몰렸다. 덩리쥔의 관은 중화민국 국기국민당 당기로 덮였다. 묘소는 타이베이시 동북에 자리하고 있으며, 묘 앞에서는 동상과 레코드 장치가 설치되어 덩리쥔의 노래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사람들은 덩리쥔을 추모하기 위해 사체를 화장하지 않고 그대로 매장하였다. 사후 50년 정도는 생전 모습 그대로 둘 예정이라고 한다. 공식적으로 관지 천식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발표되었지만, 마약 복용설, 민주화운동 및 반정부운동에 관련한 중국 공산당에 의한 암살설 등 여러가지 음모론이 있다.물론 당연히 음모론 일뿐. 안문사태가 일어나자 규탄시위에도 참석했었으니 암살설도 그럴듯하다. 하지만 음모론일뿐, 검증된 바 는 없다.북한에서는 덩리쥔이 사망하자 좀 벌어보려고 덩리쥔 사망 기념우표를 발행하는 병맛스러운 짓을 벌였다(...). 북한에서 발행한 덩리쥔 추모 우표엔 '華人歌星鄧麗君'라고 써져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북한이 이런걸 만드니까 어색하기만 하다.

4. 기타

등려군이 한국에서 이름이 많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밀밀'이라는 영화 덕분이다. 덩리쥔이 동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인기를 얻지 못한 나라가 한국. 그렇지만 중국영화가 많이 들어오던 시절, 영화 배경음악으로 쓰이기도 하고 첨밀밀(甜蜜蜜)이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은 한국 가수들도 많이 부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등려군이나 노래 재목을 모르는 사람들도 노래를 들려주면 한번쯤 들어봤다고 많이 얘기한다.

2012년 11월 11일, 갑자기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위를 유지했었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 덩리쥔의 일대기가 방영되었는데 지도에 '일본해(동해)'라고 영문표기 되어 있었기 때문. 덩뤼쥔의 노래들 중 제목이 '姑娘'으로 끝나는 노래들을 팬들이 '姑娘시리즈'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는 '南海姑娘'이다.

70년대에 성룡과 사귀었는 데, 성룡이 친구들과 밖에서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반면, 등려군은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걸 좋아해서 헤어졌다고 한다.

5. 추천곡

아래의 곡들은 추천하는 곡들이다. 어디선가 들어본듯한 멜로디라는게 공통점.
('원곡명(한국식 독음)'으로 작성바람.)
  • 甜密密(첨밀밀) (원곡은 인도네시아 민요인 dayung sampan 이다.)
  • 月亮代表我的心(월량대표아적심)[2]
  • 美酒加咖啡(미주가가배)[3]
  • 我心爱的小马车(아심애적소마차)
  • 何日君再來(하일군재래)
  • 南海姑娘(남해고낭)
  • 留不住你的心(류부주니적심)
  • 好梦太匆匆(호몽태총총)
  • 爱你一万倍(애니일만배)
  • 你可知道我爱谁(니가지도아애수)
  • 江水悠悠淚長流(강수유유루장류)[4]
  • 夜来香(야래향)[5]
----
  • [1] 이향란(李香蘭)은 예명. 본명은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로 일본인 히키아게샤이다. 항목 참조.
  • [2] 한국인들에게는 첨밀밀과 함께 덩리쥔의 대표곡으로 잘 알려져있다. 제목은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 표현하네"라는 뜻
  • [3] 중국인들에게 첨밀밀과 함께 가장 많이 알려진 곡.
  • [4] 중국적인 느낌이 강한 곡. 중국에서는 줄여서 '江水悠悠'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 [5] 영화 서의 순정에서 문근영이 부른 OST인 '그댄 몰라요'의 원 버전이다. 극중에서 중국어로 부르기도 했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1-31 05:50:47
Processing time 0.0967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