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데이비드 베컴



이름 데이비드 로버트 조지프 베컴
(David Robert Joseph Beckham, OBE[1])
생년월일 1975년 5월 2일
국적 잉글랜드
출신지 런던
가족 배우자 빅토리아 베컴,
아들 브루클린 베컴, 로미오 베컴,
크루즈 베컴, 딸 하퍼 세븐 베컴
포지션 윙어(클래식)
신체조건 183cm, 79kg
등번호 23번
유소년팀 브림스다운 로버스 FC (1982 - 198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88 - 1993)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3 - 2003)
레스턴 노스 엔드 (1995) (임대)
레알 마드리드 CF (2003 - 2007)
LA 갤럭시 (2007 - 2012)
AC 밀란 (2009) (임대)
AC 밀란 (2010) (임대)
파리 생제르맹 FC(2013)
국가대표 115경기 / 17골

1999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
수상
데이비드 베컴

2001 UEFA BEST 11
FW
다비드 트레제게
FW
티에리 앙리
MF
리 곤살레스
MF
지네딘 지단
MF
파트리크 비에이라
MF
데이비드 베컴
DF
비셴테 리사라수
DF
파트리크 안데르손
DF
사미 히피아
DF
스민 콘트라
GK
티아고 카니사레스
2003 UEFA BEST 11
FW
뤼트 판 니스텔로이
FW
티에리 앙리
MF
파벨 네드베드
MF
지네딘 지단
MF
데이비드 베컴
MF
루이스 피구
DF
호베르투 카를로스
DF
파올로 말디니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파울루 페헤이라
GK
지안루이지 부폰

"영국은 작지만 위대한 나라입니다. 셰익스피어, 처칠, 비틀즈, 숀 코너리, 해리 포터 그리고 데이비드 베컴의 오른발이 있는 나라이지요."[2]

위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전성기 그의 오른발은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의 축구 그 자체였다.


호날두의 롤모델[3]


Contents

1. 상세
2. 플레이 스타일
3. 클럽 경력
3.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2. 레알 마드리드 CF
3.3. LA 갤럭시 / AC 밀란
3.4. 파리 생제르맹
3.5. 은퇴
4. 대표팀
5. 사건
6. 기타
7. 경력
8. 출전 기록
9. 개인 수상
10. 홍보 대사
11. 대회 실적

1. 상세

영국의 전 축구선수. 풀네임이 길어서 흔히들 데이비드 베컴이라고 부른다. 본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조각같은 외모[4]와 뛰어난 축구실력으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고 미인(빅토리아 베컴)과 결혼한 뒤 4명의 자식과 단란한 가족까지 꾸민 현실세계에서 대표적인 인생의 승리자. 현재 영국인으로서 전세계의 일반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며, 스포츠 스타중 가장 가십과 파파라치등 세인의 관심이 몰려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실력도 있지만 뛰어난 외모때문에 비슷한 기량의 타 선수들보다 광고 수입등으로 몇 배의 수입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질투와 질시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국대에 대한 충성심이 누구보다 강하며, 일단 대표팀에 발탁되면 어느 잉글랜드 선수보다도 뛰어난 공을 세우곤 한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세계 축구계의 중심인 유럽을 떠나 미국에서 뛰면서 예전의 미칠듯한 인기와 세인들의 관심은 다소 떨어진 것으로 보이며, 최근엔 해외축구계에서 생각보다 많이 거론되지는 않고있다. 그러나 2009년 말에 남아공 월드컵 조추첨을 하는 멤버로 뽑히고 동년배 선수들이 모두 은퇴를 하고도 남은 2012년에도 2012 런던 올림픽/축구 영국 단일팀 와일드카드 0순위로 거론된다거나(실제로 뛰지는 않았지만...) 여자 축구 청소년 대회 결승에서 갑툭튀하여 선수들을 홀리는 등(...)[5] 그 영향력은 여전히 지대하다.

2003년엔 대영제국 훈장 4등급(OBE)을 받았다. 4등급이므로 작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6]

2. 플레이 스타일

becksexpress_sub_pop.jpg
[JPG image (94.77 KB)]

택배 왔습니다. 여기 수취인 서명 좀 해주세요. 경쟁부문업체 1위 배컴택배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킥을 통한 패스 보급이 베컴의 가장 강렬한 특색이다. 베컴이 오른쪽 미드필더로 뛸 경우 크로스가, 중앙 미드필더로 뛸 경우 이리저리 뿌려주는 칼같은 롱패스가 일품. 주력과 민첩성은 대단한 수준이 아니지만, 셀러브리티로서의 명성과 안 어울리게 굉장히 많이 뛰는 하드워커라는 점도 특징이다. 2002년 월드컵 지역예선 최종전 대 그리스전에서는 팀 동료들이 시망스러운 경기력으로 일관할 때 무려 14km를 뛰면서 코너킥 어시스트에 이어 95분에 극적인 프리킥 골을 터뜨리며 2-2 무승부를 견인, 거의 혼자 힘으로 팀을 월드컵으로 보내다시피 했다.

아래에 쓰여 있듯 스탠딩 윙어라고도 불렸지만 그건 그가 패스나 크로스를 할 때, 공을 잠시 키핑한 후 행하는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그가 많이 뛰지 않는다는 오해를 받았지만 상술되어 있듯이 그의 활동량은 가히 괴물 수준...
때문에 베컴이 뛰던 당시 맨유 역습을 보면 베컴이 킥뿐만 아니라 측면에서 패스 주자마자 공간을 찾아 뛰어들어가며 다시 받고 패스하는 역습시 윙어 플레이의 정석같은(평소 잘못 알려진 베컴의 플레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프리킥의 달인이기도 하다. 많은 축구 애호가들이 베컴이 활약한 시대 프리킥의 최고는 누구냐며 설전을 벌이는데, 베컴이 정말 독보적 1위이냐 하는 것에는 이견이 많지만 베컴이 빠지면 말이 안 된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허나 이건 직접 슛에 관련된 이야기고, 직접 슛이 아니라 어정쩡한 각도 혹은 먼 거리에서 선수의 머리에 얹어 주는 프리킥이나 코너킥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베컴의 손을 들어 준다. 돌파도 아주 못하지는 않으며 가공할 만한 활동량에서 비롯한 수비 가담력도 준수하다.

그가 자타 공인 킥의 1인자로 칭송받는 이유는 역시 첫째가 거의 cm 단위의 포격이 가능한 킥의 정확도도 정확도지만, 수비를 앞에 두고도 여유 있게 킥이 가능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일반적인 윙어들이 마크를 뿌리치고 공격수에게 크로스 한번을 올리기 위해서 죽어라고 드리블하는 것을 생각하면, 마크를 앞에 두고도 정확하고 여유있게 올리는 베컴의 크로스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물론 베컴이라고 항상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특정 상황에서 가능하다는 것만 해도 가공할 수준이다.

거기다 택배 수취인의 편의를 고려 수취인에게 붙어 있는 수비수들을 절묘하게 휘어서 빠져나가는 킥의 경로, 거기다 수취인께서 편안하게 씹어 삼키시라고 패스가 닿을 때쯤 되면 부드럽게 각이 줄면서 속도가 감소하는 패스는 또다른 종류의 전술병기.

롱킥을 할 때 뛰어난 발목힘을 이용해 양팔을 아래 위로 휘저어 킥력을 올리면서도 밸런스를 잡는 특유의 폼은 그만의 전유물로, 킥 동작의 시작에서부터 볼이 선수의 머리에 닿을 때까지가 마치 하나의 공예품처럼 느껴져 시간이 멈추는 것 같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전성기는 맨유에서 보냈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과 비교하자면 2002년 말에 당했던 부상이 그의 플레이를 크게 바꿨다. 이전까지는 한 경기 90분 14km라는 박지성급의 활동량을 녹여낼 수 있는 베컴이었지만 알도 두세르의 태클은 그의 운동능력 저하를 불러일으켰다. 라 리가에서도 많이 뛴다 많이 뛴다며 제일 많이 뛰는 베컴이었지만 맨유에서는 정말로 오른쪽 사이드의 끝에서 끝까지 그리고 중앙까지도 너끈하게 커버하면서 뛰어다니는 미친 하드워커였다.[7]

태클로 입은 부상으로 인한 운동능력 저하 전에는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지만 어쨌든 돌파력도 더 나을 수밖에 없고, 눈 감고도 아는 걸로 유명한 개리 네빌과의 호흡을 바탕으로 측면 공격의 진퇴를 자유자재로 조절했다. 여기에 미친 활동량으로 중앙에서의 공격작업에 참가해 절묘한 반 니스텔루이에게 땅볼 킬패스를 날리거나 본인이 공간 침투로 골을 넣기도 하고 반대편의 긱스에게 돌리거나 중앙의 로이 킨이나 스콜스에게 부드럽게 연결해 주기도 했다. 고전적 윙플레이어들은 측면의 붕괴와 그에 이어지는 크로스에 집중하지만, 베컴은 전성기 박지성급 활동량으로 중앙까지 넘나들면서 마무리 스루패스나 슈팅까지 관여했다. 괜히 바르샤 회장 선거 공약으로 베컴을 사오겠다는 공약이 나온 게 아닐 정도로 베컴은 맨유의 에이스였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주로 스탠딩 윙어로 뛰던 맨유 시절에 비해 보다 중앙에서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그동안의 킥 스루 패스 스타일보다 경기장을 휘젓는 엄청난 활동량이 부각되어 그 해 프리메라 리가에서 제일 많이 뛰어다닌 선수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라 리가에서는 얼굴빨이라는 비난이 쇄도하는 등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이는 부상으로 인한 운동능력 저하와 더불어 제대로 된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던 갈락티코의 사정 때문이었다. 또 라 리가에 진출한 잉글랜드 선수들이 흔히 겪는 어려움 중 하나인데 느려진 템포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말년에 방출이 확정된 상태에서 오른쪽 날개로 돌아가 리가를 제패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본포지션에 돌아간 게 첫째고, 둘째로는 빠르고 위협적인 시싱요가 베컴에게 부족한 부분을 잘 메꿔줬기 때문이고, 호나우두 대신 영입된 반 니스텔루이는 훨씬 더 위협적인 공중전 능력과 더불어 많은 활동량과 활동범위로 수비를 흔들어 베컴에게 보다 더 많은 편의를 제공한 게 세 번째다.

AC 밀란에서는 안첼로티 감독이 있을 때는 주 포지션인 스탠딩 윙어에 가까운 플레이(중앙 미드필더이긴 하지만)를 하였지만, 레오나르도 감독 아래에서는 전술적 이유로 윙포워드로 출장했다. 하지만 우측 풀백으로 출장하는 이그나치오 아바테의 수비력이 개판 오분전인 관계로 윙포워드가 미친듯한 수비가담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기도. 어쨌든 생긴거나 플레이 스타일때문에 착각하기 쉽지만 대단히 부지런하고 열심히 뛰는 선수인건 확실하다.

3. 클럽 경력

3.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유 전설의 밑그림이 되었던 화려한 유스 출신 선수들[8]. 왼쪽부터 라이언 긱스, 키 버트, 데이비드 베컴, 게리 네빌, 네빌, 폴 스콜스, 리 쿠크 누군가 홀로 빛이난다

Example.jpg
[JPG image (88.67 KB)]

2011년에 다시 윗사진 처럼 포즈를 취하고 찍었다. 리 쿠크 제외 애들이 이렇게 삭았어요

1993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뒤 그림같은 프리킥 솜씨 등 뛰어난 축구 실력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전성기로 이끈다. 구단 최초의 트레블의 중심에 있었으며, 1995년 윔블던전에서 기록한 하프라인 슛은 프리미어 리그 10주년 기념 베스트 골 10선에 포함되기도 한 환상적인 골. 다이내믹한 윙어의 최고봉이었던 라이언 긱스의 왼쪽과 후방에서 활동량과 롱패스로 받쳐 주는 베컴의 오른쪽은 시대를 풍미한 좌우 날개 조합이었다.

하지만 2003년 2월 15일, FA컵에서 아스날에게 패배한 뒤 알렉스 퍼거슨과 라커룸에서 충돌. 결국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되었다. 당시 상황을 서술하자면, 경기에서 패배한 후 라커룸에서 알렉스 퍼거슨이 데이비드 베컴에게 "플레이가 이게 뭐냐. 애쉴리 콜에게 완전히 발렸잖아"는 식으로 호통을 쳤는데, 발끈한 베컴이 "영감님은 아르센 벵거에게 완전히 발려버렸고요"는 식으로 맞받아치자 열받은 퍼거슨이 축구화를 발로 차버렸다. 그런데 그게 우연히 베컴의 얼굴을 직격해서 눈썹 위가 찢어졌다. 폭발한 베컴이 퍼거슨에게 달려들었으나 팀메이트들이 엉겨붙어 간신히 떼놓았다고. 덕분에 둘 사이는 봉합이 불가능해졌고, 그대로 이적. 현재는 화해했다고 하기는 한다.[9] 그런데 화해한 것치고는 영국에서 개인 훈련할 때도 맨체스터는 가지도 않고 런던에서 팀을 바꿔 가며 훈련하는 게(아스날-토튼햄-아스날 순) 화해 했다고는 해도 여전히 앙금은 남아있는 듯.[10] 이번에 퍼거슨의 2번째 자서전에서 퍼거슨이 밝히길 베컴이 자신의 권위를 무시하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훈련을 할 때 베컴이 비니를 쓰는 모습을 보고 (비니를) 벗으라고 했는데 무시한것부터 시작해서 밑에도 나와있듯이 빅토리아와의 사랑에 빠지거나 하는 등 축구에 소홀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에게 실망했다고 한다. 만약 그가 축구에 더 집중했다면 자기가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도 맨유에 남아있었을 것, 정말로 축구 자체에 헌신했다면 레알 마드리드에서 la 갤럭시로 이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성토했다.[11]

3.2. 레알 마드리드 CF



최고의 스타성과 상품성을 가진 데이비드 베컴이 화려한 네임밸류를 자랑하는 갈락티코스 1기의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하자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베컴은 클럽과 대표팀에서 7번을 달았으나, 레알 마드리드의 7번은 레전드 라울이기에 23번을 달았고, 이후 23번은 베컴의 상징이 된다.[12]그러나 본래 포지션인 오른쪽 미드필더에는 포르투갈의 전설적인 윙어 루이스 피구가 존재했기에 중복된 포지션으로 인해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된다. 익숙치 않은 포지션에서 활약하면서, 게다가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 클로드 마켈렐레가 떠난 상태이기에 더욱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당시 갈락티코스 1기의 레알 마드리드는 모래알 조직력과 구멍난 수비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었다. 수많은 감독들이 경질되었으며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라는 소리를 듣게된다. 엄청난 이적료를 주고 영입한 베컴이 부진한 활약을 펼치자 스페인의 언론들은 그를 비난하는 기사를 써내려갔고, 더 자극적인 가십을 써 내려가기 위해 베컴의 사생활 취재에 집중하며 기자와의 몸싸움을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베컴의 레알 마드리드 진출은 실패로 끝나는 듯 싶었지만, 리그 적응에 완전히 성공해 루이스 피구를 인테르로 이적시키고 원래 자리인 오른쪽 미드필더 자리를 되찾았다.

이 시기 레알 마드리드는 02-03의 리그 우승 이후 세 시즌 째 무관을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승청부사라 불리던 파비오 카펠로가 06-07 시즌 감독으로 선임되지만, 이는 베컴에게 재앙으로 작용한다. 카펠로는 언론을 통해 대놓고 베컴을 중용하지 않을 것임을 밝히고, 베컴은 힘든 시간을 거치다가 시즌 종료 후 LA 갤럭시로 이적을 할 것을 밝히게 된다. 그리고 반전이 시작된다. 베컴처럼 퍼거슨과의 불화 때문에 레알로 이적하게된 뤼트 판 니스텔로이는 이적시즌인 06-07 초반에는 다소 부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점점 팀에 적응하게되고 이는 택배 크로스 전문가인 베컴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호재였다. 언론을 통해 대놓고 베컴을 디스하던 카펠로도 일단 리그 순위가 간당간당하다보니 당장 골배달 잘하는 베컴을 안 쓸 수가 없었고, 06-07시즌 레알마드리드는 초반에는 위태위태한 출발을 하였으나 막판에 대폭발한 니스텔로이-라울 투톱에 이를 보조하는 베컴의 엄청난 활약으로 대역전 우승을 하게 된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우승청부사의 명성을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이어나갈 수 있었지만 결국에는 시즌 종료 후 경질당하게 되는데, 표면적인 이유는 "레알 마드리드답지 않은 축구를 했다" 라는 이유였으나, 실은 "너님이 필요없다던 베컴의 하드캐리로 우승해놓고 그게 무슨 너님 능력임?" 이라는 뉘앙스가 강했다. 그만큼 해당 시즌의 베컴은 대단했고, 베컴의 택배 수취 전문인 판 니스텔로이는 리가 데뷔시즌에 득점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3.3. LA 갤럭시 / AC 밀란



이적 이후 LA 갤럭시의 간판 스타로 활약. 하지만 이적 당시 갤럭시 구단은 비난을 많이 받았다. 아직은 야구나 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에 절대적으로 밀리는 메이저사커 리그에서 베컴이 받은 돈은 다른 팀 동료들이 받는 돈을 다 합치고도 남는 돈이었기 때문.[13]


미국 시즌이 끝날때 쯤이면 AC 밀란으로 임대와서 뛰기도 했다. 밀란의 감독이었던 카를로 안첼로티는 베컴을 굉장히 아까운 인재로 여겼는데, 안첼로티는 베컴은 미드필더로서 투쟁심, 활동량, 수비력, 축구지능, 킥력 등 미드필더에 필요한 모든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맨유에서 플레이 스타일을 한정짓는 바람에 재능만큼 꽃피우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특유의 정확한 크로스에 노련미 넘치는 플레이까지 더해지며 밀란의 미드필드에 활력을 불어넣는 쏠쏠한 활약을 펼친다. 밀란의 팬들은 베컴의 활약에 매우 만족해했고, 베컴 역시 밀라노의 생활을 즐겼다. 2010년에 안첼로티가 떠난 밀란에 왔을 때에는 절묘하게도 밀란이 맨유와 챔피언스리그에서 대결하면서 처음으로 올드 트래포드에 서게 되었는데 비록 선발출전하지는 못했지만 교체로 투입될 때 전 관중이 기립박수로 환대해줬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 팬들이 건네 준 노란색/녹색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퇴장하며 더 큰 환호를 받았다. 다만 그 스카프는 그 당시 경기장에서 구단주에 대한 항의 시위를 이어가던 팬들의 상징이라서 약간 논란이 있었다. 베컴 본인은 시위에는 큰 관심이 없고 그저 팬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는 듯. 그러나 2010년 시즌에 밀란에서의 최종전에서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면서 2010년 월드컵 출전이 좌절되었다. 기량이 예전만 못하다거나 세간의 관심에서 조금 멀어졌다고 해도 베컴은 여전히 잉글랜드 국대 캡틴급의 위상을 가진 인물이었던데다, 베컴 없이 치르는 국제 대회는 참 오랜만이었기에 잉글랜드 축구팬들에게는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성적도 늘 그렇듯이 큰 아쉬움이었다

일단 2012년 12월에 열리는 MLS컵 결승을 마지막 무대로 퇴단 절차를 밟고 있다. 선수생활을 계속 이어가려는 의욕을 보이고 있는데 아직 차기 행선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 다만 현지 언론에 따르면 중동으로 팀을 옮겨 마지막 축구 인생을 불사르리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미러, 피플 등에서) 현재 유력한 행선지로 꼽히는 곳은 카타르의 알 사드[14], UAE의 알 와슬 등이며 프랑스의 모나코나 PSG도 관심이 있다는 설이 있다. QPR의 레드냅 감독도 토튼햄 감독하던 시절부터 계속해서 베컴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베컴은 맨유가 아닌 프리미어리그 팀에서 뛰는건 상상도 할 수 없다면서 계속 거절했다.

3.4. 파리 생제르맹



그렇게 차후 행선지를 저울질하며 입단 타진을 하고 있던 중 아스널 선수들과 같이 훈련을 하게 됐는데, 언론에서는 베컴이 아스날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는 기사를 써댔다. 베컴은 아스날 그리고 아르센 벵거 감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MLS가 쉬는 겨울마다 아스날에 합류해 훈련을 해왔지만, 맨유의 서포터이자 레전드로서 맨유의 라이벌인 아스날의 유니폼을 입을 수는 없기에 아스날 입단설을 일축했다. 아르센 벵거 감독 역시 베컴은 아스날에 몸을 만드는 중이며, 아스날은 베컴에게 이러한 편의를 제공할 뿐이라고 입단설을 부인했다. 그리고 베컴은 자신 대신 아들인 로미오를 아스날의 유스팀에 입단 시키는 것으로 대신했다(...)[15] 그리고 신흥 강호로 떠오르는 파리 생제르맹 FC 입단한다는 기사가 떴다. 빅토리아 베컴의 명품수집을 위해서라는 이야기도 있더라

PSG는 1일(이하 한국시각)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베컴과 올해 6월 30일까지 계약을 했다"고 공식발표했다. 연봉 등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밝히지 않았으나, 주급은 15만 파운드(약 2억5000만원) 수준이며 5개월 이후 1년 계약 연장을 하는 조건이 첨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젠 파리에서 택배크로스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베컴의 실제 연봉은 0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베컴은 PSG 입단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5개월치 주급 전부를 어린이를 위한 자선사업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베컴의 계약 조건은 일단 6월 30일까지 5개월 계약한 뒤 이후 1년 계약 연장 여부를 논의하는 방식이다. 베컴은 첫 5개월의 급여를 모두 기부하겠다는 뜻이다. 박찬호가 국내 프로야구에서 뛰었던 2012 시즌 연봉을 모두 기부한 것과 닮았다. 베컴의 5개월치 급여는 50억원이 넘을 전망이다. 이 돈이 모두 자선사업에 쓰인다고. 아마 자신도 현역마지막 팀이라고 보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베컴은 파란만장했던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3.5. 은퇴


BBC, AP통신등을 통해 2012-13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고 밝혔다. 베컴을 애지중지하는 안첼로티가 레알로 옮긴 것이 결정타인 듯. 2000년대를 풍미했던 많은 별들과 함께 이제는 역사로 사라지는가...은퇴 이후에는 FA의 홍보대사를 하고싶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기사도 돌고 있다. 2013년 5월 16일부로 은퇴.

2007년 LA갤럭시로 이적할 당시, 데이비드 베컴은 MLS의 프랜차이즈를 인수할 권리를 부여받았았는데 2014년 2월, 권리를 실현하여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마이애미(가칭)의 구단주 취임이 확정되었다. 2016년 또는 2017년에 본격적으로 리그에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아직 구장 문제조차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라 리그 참여는 더 늦어질 수도 있다.

4. 대표팀


잉글랜드의 상징인 킥 앤 러쉬 스타일에 그의 초정밀 택배 크로스는 반드시 필요한 옵션으로, 프리킥과 함께 대형 스트라이커가 없는 잉글랜드 대표팀의 강력한 공격수단이다.

베컴처럼 정밀한 크로스를 올릴 윙어와 이를 높은 확률로 득점으로 연결해줄 타겟 스트라이커 조합이 갖춰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공격 옵션이 된다. 때문에 창조적인 대형 스트라이커 부재에 시달리는 잉글랜드 대표팀으로선[16] 베컴의 프리킥과 더불어 크로스는 세계 무대에서 통할 몇 안되는 유효한 공격수단이다. 하지만 이로인해 모든 잉글랜드의 공격 패턴이 배컴으로부터 시작되는 부작용 때문에,[17] 배컴의 크로스를 두고 지금 당장 잉글랜드에 가장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 체질개선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사라져야 하는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몇 년째 잉글랜드에서 그보다 창조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는 없다. 폴 게스코인이라는 잉글랜드 역사에 남을 테크니션이 아웃되고나서 잉글랜드 공격진, 혹은 전방 중원 미들진은 창조성이 실종한다.

조 콜은 게스코인의 뒤를 이을 천재라고 평가 받았지만 결국 유망주로 끝나버렸고 중원에 제라드와 램파드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성이 있긴 있지만 동 포지션의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떨어진다. 그나마 있던 폴 스콜스도 국대에서 조기은퇴, 그리고 현재진행형이다.

그런 상황에서 베컴만큼은 순간의 시간만 있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크로스 혹은 땅볼 패스 혹은 중거리를 때려 버린다. 흔히 베컴이 크로스만 날린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땅볼 패스 역시 명품이다. 단지 크로스가 너무나 압도적인 훌륭함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지. 베컴의 크로스는 98년 즈음 부터 10여년 간 잉글랜드의 사실상 가장 확실하고 가장 보장되고 가장 유일했던 창조성이었다.

그러나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의 디에고 시메오네의 다리를 걸어 퇴장 당한 사건은 월드컵 역사에 손꼽히는 병크로 수시로 방송에 재탕되며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영국인이 많다. 그 때 영국 신문 헤드라인이 '10명의 용감한 사자와 한명의 멍청이.' 그 사건 이후 베컴이 맨유에서 활약한 걸 생각하면 베컴 본인에겐 기폭제가 된건 사실이다. 이후 2002 한일월드컵, 2006 독일월드컵에 잇달아 발탁되었고 중요한 순간에 제 몫을 해내며 두 대회 연속 8강을 이끌었다.


특히나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2002 월드컵 최종예선 그리스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잉글랜드의 월드컵 진출을 확정짓는 장거리 동점 프리킥을 성공시킨 것은 백미였다. 이 골로 극적으로 잉글랜드를 월드컵에 진출시키면서 98 월드컵에서의 오명을 모두 씻어내는 동시에 월드 스타로서의 명성을 드높이는 계기가 된다.

독일월드컵 종료 후 새 감독 스티브 맥클라렌이 대표팀 체질개선을 위해 베컴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대표팀을 꾸렸다. 그러나 시망인 경기력을 보여주고 대내외적으로 온갖 비난에 직면하다가 결국 할 수 없이 2007년 여름부터 다시 베컴을 대표팀에 불러들였다. 그러나 그 시점이 너무 늦은 탓에 베컴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의 유로2008 본선 진출 실패를 막을 수는 없었다.

국제대회 우승에 대한 갈망 때문인지 이제 나이가 제법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표팀 승선을 원하고 있다. AC 밀란으로 임대를 가는 것도 대표팀에 뽑히기위한 활동의 일환. 당시 파비오 카펠로 대표팀 감독은 유럽무대에서 검증된 선수만 대표팀에 발탁한다는 입장이었고 이에 베컴은 오프시즌마다 AC 밀란으로 임대를 가면서 카펠로 감독의 눈도장을 찍기 위해 노력했다. 둘의 레알 마드리드 시절 껄끄러운 관게에도 불구하고 카펠로는 월드컵 최종예선 10경기 중 9경기에 베컴을 출전시키며 베컴을 중용했다. 하지만 AC 밀란에서 경기를 뛰던 도중 키에보 베로나와의 경기에서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해서 아쉽게도 2010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에는 뽑히지 못했다.[18]

하지만 결국 선수가 아닌 수석코치 보좌역으로 대표팀에 승선. 잉글랜드 대표팀의 경기를 벤치에서 지켜보았다. 이때 골키퍼의 실책을 지켜보다 급정색하는 표정이 중계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되었다. 골키퍼 저걸 그냥 확! 그리고 현피 직전까지 갔던 스티븐 제라드존 테리를 잘 다독여서 화해시키는 등 알게 모르게 많은 역할을 했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 카펠로가 더 이상 대표팀에 베컴을 발탁하지 않을 것이라며 2010년 11월 프랑스와의 친선경기때 베컴의 대표팀 은퇴 경기를 열어주겠다고 제의했지만 베컴은 자신의 대표팀 경력을 이렇게 끝내지 않을 것이라며 그 제안을 거부하였다.

2012 런던올림픽의 영국 단일팀 출전을 열망했고, 와일드카드 최종 후보 명단에 올랐으나 끝내 최종엔트리에는 발탁되지 못했다. 다시한번 좌긱스 우베컴을 보고 싶어했던 전 세계의 축구팬들은 멘붕.

대표팀 감독이 로이 호지슨으로 교체되었고, 마침 베컴이 다시 유럽무대로 복귀하며 대표팀 복귀설이 나왔지만 호지슨 감독은 베컴을 뽑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2013년 5월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더 이상 대표팀에 승선할 기회도 없게 되었다. 베컴의 명성을 감안했을 때 친선경기 중에서 하나 골라 대표팀 은퇴 경기를 열어주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그마저도 요원한 상태. 하지만 호나우두가 2011년에서야 은퇴경기를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2014년 월드컵이 끝나면 적당한 시점에 친선경기로 은퇴경기를 치를 가능성도 있다.

5. 사건

2002년 월드컵 직전이었던 5월 21일 잉글랜드와 한국이 평가전을 가졌는데, 경기종료 후 한국선수들이 유니폼 교환을 위해 벤치에 앉아있는[19] 자신에게 다가오자 유니폼 교환을 거부하고 유니폼을 교환하려던 다른 선수에게도 '얼른 락커룸에 들어가!'라며 호통을 친 일화로 논란이 되었다.

당시 베컴은 한국에서 그야말로 콩이 까이듯이 까이고 까여 가루가 되었다. 차범근도 칼럼을 통해서 대대적으로 비판했을 정도. 또한 얼마후 월드컵에서 일본과는 유니폼 교환을 해버린 덕에 다시 줄창 까였다(…).

결국 유니폼 교환 거부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시 한국과의 경기가 잘 안 풀렸던데다 월드컵 개막이 불과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선수들이 다소 거친 플레이[20]를 펼쳤던 점 역시 대회 직전까지 회복을 맞추느라 신경이 날카로워진 베컴의 심기를 건드렸을 수도 있다. 베컴은 당시 시즌 중에 입은 발목부상을 치료중으로,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에릭손 감독이 엔트리에 포함을 시켰지만, 회복이 더디어지면서 상당히 심기가 불편했던 상태였던듯. 참고로 당시 경기 결과는 1:1 무승부.[21]

2010년에는 이탈리아 TV의 농간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 농간이란…말하기가 정말 민망하다(…). 한국에서도 인터넷 신문들이 대서특필해서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탈리아 여자 리포터가 베컴에게 접근해 거시기를 꽉 쥐어버린 것. 당시 베컴의 표정은 그야말로 뭐 이딴 미친년이 다 있어. 이 리포터의 말로는 작다 카더라

2012년 6월 30일 캘리포니아 스탠포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 프로축구 LA 갤럭시와 산 호세 얼스퀘이커와의 경기에서 누워있는 선수를 정확한 킥으로 맞춰버려 화제가 되었다.

베컴의 활약에도 경기는 3-4 LA가 뒤지는 상황에서 추가시간을 맞이했고, LA의 마지막 기회일수도 있는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이때 산 호세의 샘 크로닌이 LA 선수들과 문전에서 몸싸움을 벌이다가 부딪혀 쓰러졌는데, 그라운드에 그대로 누워 일어나지 않고 시간을 지연시키는 침대축구를 시전했다. 프리킥에 실패한 베컴은 그의 시간지연에 화가 났는지 사이드라인 부근에서 누워있는 크로닌을 향해 슛을 날렸고, 공은 크로닌의 몸에 정확히 맞았다[22]. 공에 맞은 크로닌은 벌떡 일어나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했고, 주심은 베컴에게 경고를 주었다. 하지만 양 팀 선수들까지 흥분해 서로를 밀치는 몸싸움 직전까지 갔다. 경기는 다시 속개됐으나, LA의 패배로 끝이 났다. 화난 베컴은 다시 상대 선수와 몸싸움을 벌이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고,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국의 프로그램을 홍보하러 그라운드에 진입한 나온 마스코트를 밀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2012 런던 올림픽 대표팀에서 탈락해서 이러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침대축구에 응징을 가했다는 점에서많은 축구팬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

6. 기타

부인 빅토리아 베컴스파이스 걸스라는 유명 걸그룹의 멤버. 초기엔 베컴보다 더 유명했지만 지금은 인기가 역전되었다. 언론에 전해지는 이미지에서 베컴은 빅토리아에 잡혀 사는 공처가로 그려진다. 불행하게 되기 쉽다는 슈퍼스타의 결합이지만 자식을 넷이나 둘 정도로 금슬 좋고 행복하게 사는 듯하다. 다만 슈퍼스타들의 결합이라 그런지 불륜설은 끝도 없다.

둘의 첫 만남은 베컴이 이제 막 축구계의 별로서 떠오르던 시점이었다. 베컴은 그 전부터 스파이스 걸스 중에서도 빅토리아의 팬이었는데, 동료들도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어느 날 경기를 끝낸 베컴은 동료의 호들갑스런 부름에 '뭐야?' 싶은 심정으로 따라나섰는데 놀랍게도 관중석에 빅토리아가 다른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와 함께 있었다고. 그 경기는 자신도 놀랄 만한 쩔어주는 골을 성공시킨 데다 축구계의 블루칩으로 나름 명성을 날리던 시절이었지만 말도 잘 나오지 않는데 빅토리아는 축구에도 별 관심이 없어 보여서 뭐야 이 듣보잡은 같은 느낌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고. 그러나 어찌어찌 만남을 이어가다 보니 서로 근처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사실 베컴은 축구 잘해 얼굴 잘 생겼어 섬세하고 감성적인데다 빅토리아만 보는 순정파라. 만날 당시 애차도 빅토리아 취향으로 바꾸고, 곧 미국 진출을 하게 되는 빅토리아에게 애정 어린 전화며 선물 공세를 퍼부어 스튜어트 빌튼이라는 골키퍼 있는 골대에 우아한 포물선을 그리며 골키퍼를 제끼는 골을 성공시킨다.

또한 이 당시 원판밖에 없던 베컴은 빅토리아와 교제하며 스파이스 걸스 내에서도 최고의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빅토리아의 지도 아래 완벽하고 화려한 꽃으로 거듭나게 된다. 다만 이 부분이 퍼거슨과의 갈등을 불러일으켜 맨유에서 축출되는 계기가 된다. 베컴 본인은 당시 빅토리아와 너무 행복했지만 축구 역시 맨유의 주축 선수로서 우승 행진을 이끄는 등 프로페셔널했다고 생각했던 반면, 퍼거슨은 축구밖에 모르던 바보의 변모가 달갑지 않았던 것. 베컴은 겉모습만 변한 것뿐만 아니라 대외활동까지 활발하게 시작했는데 퍼거슨은 베컴의 변모도 싫었지만 설사 베컴 자신은 어떻게 잘 제어를 하더라도 주위의 다른 어린 것들이 나쁜 물이 들까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23]

2010년대의 한국인들에겐 잘 실감이 나진 않지만 90년대 스파이스 걸스와 빅토리아는 정말로 지구 최고의 걸그룹이었고 베컴과의 결합은 영국을 그야말로 들었다 놓는, 마치 연예인 누구누구 머리띠나 팔찌 등이 유행을 일으키는 것처럼 그 자체만으로도 사회현상이나 경제현상을 일으키는 초대형 가십이었다. 이에 퍼거슨은 시시때때로 베컴을 집적거렸는데 베컴은 젊었고 퍼거슨은 당시에도 이미 스코틀랜드 영감님이었다. 털털하게 웃으며 넘긴다면 별 거 아닌 일이 될 수 있었지만, 안 그래도 섬세한 기질이 있는 베컴은 늙은이의 이런 태도가 나를 부당하게 대하고 존중하지 않는다고 여기게 되었고 둘 사이는 악화일로를 달리게 되었다.

당시 베컴이 축구를 등한시했다면 모를까 이전의 축구밖에 모르는 축덕후 모드에서 벗어나긴 했어도 여전히 성실히 훈련하는 선수였다. 자서전에서 퍼거슨이 전화로 '누가 빅토리아랑 니가 어디 있는걸 봤다던데' 하면서 어디있는지 불라는 식으로 나오기도 했다고 밝혔다.

슈퍼스타 부부답게 인맥이 축구계뿐 아니라 연예계까지 폭넓게 퍼져 있다. 활동반경도 매우 넓다. 쉼없는 광고 활동은 물론, 유니세프 등 공익성 활동에도 꾸준히 시간과 자산을 투자하고 있다.

왼쪽 팔뚝에 아내 빅토리아의 이름을 힌디어로 새겼으나 글자가 잘못 들어가 '비흑토리아'가 되어버렸다 한다. 베컴의 대변인은 이에 대해 힌어와 힌어는 다르다는 개드립을 쳤다.

아들 부자다. 큰 아들 브루클린, 둘째 아들 로미오, 셋째 아들 크루즈 모두 훈훈한 외모를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도 딸을 가지고 싶어서 여러모로 노력한 결과 드!디!어! 딸을 갖게 되었다. 얼마나 좋았으면 태어나지도 않은 딸 방을 꾸미는데 무려 2억 3천만원을 들였다고 한다. 2011년 7월 드디어 딸 하퍼 베컴 출생. 팔불출이 될 것이 예상된다. 아빠가 레전드, 엄마는 패셔니스타, 오빠들은 원빈. 재산은 황금산. 유전자 라인을 생각하면 외모도 그다지 걱정없이 순풍을 타게 될 듯.인생 치트키 브루클린과 크루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이지만 로미오는 아스날 팬이라고 한다. 로미오는 모델 활동도 하고 있으며 2014년 아스날 유스팀에 입단해서 뛰고있다.브루클린은 퀸스 파크 레인져스 유스팀에 입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무근으로 알려졌으며, 베컴은 인터뷰를 통해 세아들 모두 아스날 유스팀에서 뛰고 있다고 밝혔다. 세 아들 중 축구선수로써의 재능은 로미오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중.
아이들을 마냥 오냐오냐 키우는게 아닌지 첫째 아들 브루클린은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런던의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시급은 2.68 파운드로, 만 16세 미만이기 때문에 최저임금보다 적다. 커피숍 아르바이트 외에도 모델일을 하고 있다.

로미오와 함께 아스날 경기를 관전중인 베컴, 아들아 아빠는 맨유 레전드란다.

'베컴의 목소리를 안 들어봤으면 꼭 들어봐라! 환상이 부셔지는 동시에 한 5분 동안은 실실 쪼갤 수 있다'는 식으로 한국 네티즌들에게 놀림받는데, 축구해설위원 서형욱이 조장한 잘못된 선입관이다. 서형욱은 자신이 쓴 책마다 베컴의 목소리를 트집잡았고[24], 이것이 한국 축구팬들에게 각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거 전혀 모르고 베컴 인터뷰하는 것이나 방송에서 대화하는 거 보고 목소린 별로군...이런 사람도 있으며 유튜브에서도 '다람쥐 목소리 같다'며 놀리는 서양인도 얼마든지 있는 걸로 보아선, 웃기는 사람은 웃기고 안 웃기는 사람은 안 웃기는 미묘한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베컴의 목소리가 비웃음거리였던건 다 옛말인게 나이를 먹어가면서 발성법이 조금씩 바뀌기도 했고, 또 목소리 교정도 따로 받아서 그런지 현재의 목소리에서는 이전부터 지적(?)받아온 삐걱대는듯한 고음부가 많이 사라져서 이제는 베컴의 목소리를 단점으로 꼽는 글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25][26] 그나마 하나 있던 약점마저..

일본에서의 인기가 장난이 아닌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출전했던 잉글랜드 대표팀은 조별 예선을 일본에서 치뤘는데, 어느 구장을 가던간에 웸블리에 버금가는, 홈에 가까운 일방적인 응원을 받았다.[27] 이게 다 베컴이 대표팀에 있었기 때문. 심지어 베컴 닮은 꼴로 활동하는 사람이 일본에 갔다가 대형 음반점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덕에 앙죽전인 아르헨티나전에서 잉글랜드가 공을 잡으면 관중들이 환호성을 지른 반면 아르헨티나가 공을 잡으면 관중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때 베컴은 아르헨티나 대 세르비아몬테네그로전을 관전했다. 이 경기가 아르헨티나의 학살극으로 끝나자 베컴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내가 마라도나였어도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에서 손으로 골을 넣었다. 스포츠정신이고 뭐고 간에 우리와 아르헨티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승리가 절박한 상대였다. 지금 아르헨티나랑 맞붙으면 잉글랜드로서는 아르헨티나를 이길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대표 명대사로는 2009년 모토로라의 MOTO V10 한국용 광고에 나왔던 "난 둘돠(Nan Dool d'wa)."가 있다. 블랙 앤 레드를 고민하다가 둘을 선택한다...짜장 짬뽕에선 짬짜면 고를 기세 이랬던 얘가 훗날 옆 동네에서 축구공으로 징을 쳤다 무엇보다 이번엔 외국어 발음 굴욕이 없다

상체에 한문 문신을 하고 있다. 아니, 상체 전체에 문신이 엄청나게 많다. 왼쪽 상체 세로로 고사성어 '생사유명 부귀재천(生死有命 富貴在天)'이 초서체로 적혀 있는데, 뜻은 '생사는 수명에 달렸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으니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베컴은 첫째인 브루클린을 낳고 등에 천사 문신을 하고 아들의 이름을 새기는 것으로 문신을 시작했는데, 처음 문신을 했을때엔 너무 고통스러워서 다시는 안하리라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새겨진 것이 마음에 들어 점차 문신을 늘렸고, 그리고 자녀들이 늘어나면서 이름을 더 새기기 시작했고 이제는 상체 전체가 문신으로 뒤덮였다.


H&M바디웨어 광고를 찍는 중인 베컴, 상체 전체가 문신으로 덮여있다.

축구 선수가 되지 않았다만 화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휴식시간엔 종종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슈퍼스타들이 그런 경우가 많지만 친절한 성품이라고 한다. 한국에도 이벤트로 la 갤럭시로 가서 베컴을 만난 팬들이 있었는데 서슴없이 포옹도 하며 서글서글하게 대해주는 그 친절함에 녹았다고.


2011년엔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에 초청되어 빅토리아 베컴과 함께 기품 있는 자태를 뽐냈다. 가슴에 달고 있는 것은 2003년에 받았던 4등급 훈장(OBE) 메달이다.

7. 경력

8. 출전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 컵리그 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92/9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0 0 0 0 0 0 0 0
1993/9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0 0 0 0 1 0 0 0
1994/95 프레스턴 노스 엔드 잉글랜드 디비전 3 5 2 0 0 0 0 - -
1994/9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4 0 2 0 3 0 1 1
1995/9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3 7 3 1 2 0 2 0
1996/9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6 8 2 1 0 0 10 2
1997/9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7 9 4 2 0 0 8 0
1998/9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4 6 4 2 0 0 12 2
1999/0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1 6 - - 0 0 12 2
2000/0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1 9 2 0 0 0 12 0
2001/0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8 11 1 0 0 0 13 5
2002/0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1 6 3 1 5 1 13 3
2003/04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라 리가 32 3 4 2 - - 7 1
2004/05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라 리가 30 4 0 0 - - 8 0
2005/06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라 리가 31 3 3 1 - - 7 1
2006/07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라 리가 23 2 2 1 - - 6 0
2007 LA 갤럭시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5 0 0 0 - - - -
2008 LA 갤럭시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25 5 0 0 - - - -
2008/09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18 2 0 0 - - 2 0
2009 LA 갤럭시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11 2 0 0 - - - -
2009/10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11 0 0 0 - - 2 0
2010 LA 갤럭시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7 2 0 0 - - - -
2011 LA 갤럭시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26 2 0 0 - - - -
2012 LA 갤럭시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24 7 0 0 - - 1 0
2012/13 파리 셍제르망 프랑스 리그앙 10 0 2 0 - - 2 0

9. 개인 수상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상 (1) : 1996년 8월
  • PFA 연간 최우수 신진 선수상 (1) : 1996–97
  • 맷 버스비경 올해의 선수 (1) : 1996–97
  • PFA 연간 베스트 일레븐 (4) : 1996-96, 1997-98, 1998-99, 1999-00
  • UEFA 최고의 미드필더상 (1) : 1998–99
  • UEFA 연간 최우수 선수상(MVP) (1) : 1998–99
  • 프리미어 리그 10시즌 어워드(1992–93 ~ 2001–02)
  • 10주년 기념 베스트 일레븐 선정
  • 10주년 기념 베스트 골 : 1996년 8월 17일, 윔블던전에서의 골
  • 20세기의 위대한 축구 선수 100명 49위 : 1999년
  • NFA 올해의 선수상 : 2000년
  • BBC 선정 올해의 스포츠인상 : 2001년
  • UEFA 올해의 베스트팀 : 2001년, 2003년
  • FIFA 100 선정
  • ESPY 어워드 - 최고의 남자축구선수 선정 : 2004년
  • 레알 마드리드 올해의 선수상 (1) : 2005–06
  • ESPY 어워드 - 최고의 MLS 선수상 : 2008년
  • 잉글랜드 명예 축구 전당 : 2008년
  • FWA 공헌상 : 2008년
  • BBC 선정 스포츠 평생 공로상 : 2010년
  • MLS 올해의 재기상(Comeback Play of the Year) : 2011년
  • MLS 베스트11 선정 : 2011년
  • UEFA 특별상 : 2012년
  • ESPY 어워드 - 최고의 MLS선수상 : 2012년

10. 홍보 대사


  • 2005년 ~ (현재) 유니세프 친선대사
  • 2005 ~ 2012년 2012 런던올림픽 홍보대사
  • 2008 ~ 2010년 "2018년 잉글랜드 월드컵" 홍보대사
  • 2010년 ~ (현재) 야후! 글로벌 축구 홍보대사
  • 2011년 ~ 2012년 삼성전자 런던 올림픽 글로벌 홍보대사
  • 2013년 ~ 중국 슈퍼리그 홍보대사

11. 대회 실적


  • 멘체스터 유나이티드 (1992/93 - 2002/03)
  • 레알 마드리드 (2003/04 - 2006/07)
    • La Liga (1) : 2006/07
    • Supercopa de España (1) : 2003

  • LA 갤럭시 (2007 - 2012)
    • MLS Cup (2): 2011, 2012
    • MLS Supporters' Shield (2): 2010, 2011
    • MLS Western Conference
      • Winners (Regular Season) (3): 2009, 2010, 2011
      • Winners (Playoffs) (3): 2009, 2011, 2012

  • 파리 셍제르망 (2012/13)
----
  • [1] 대영제국 훈장 4등급(OBE)을 받았음을 나타냄.
  • [2]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영국 총리로 나온 휴 그랜트의 명대사. 참고로 이 대사는 한국의 모 막장 드라마에서 패러디 당했다(...). 다시는 한국을 무시하지 마라 항목 참고.
  • [3] 물론 농담이다. 하지만 맨유-레알로 이루어지는 커리어, 절세미녀와의 염문, 훤칠한 외모, 황금같은 프리킥 등등 공통점이 너무나도 많은 스타들이다.
  • [4] 이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1990년대 중반의 올드 트래포드에선 웬 순정만화 남자주인공이 맨유 유니폼을 입고 축구를 하고 있었다.(...)
  • [5] 2010년 FIFA U-17 여자 월드컵 트리니다드 토바고 대회 결승전에서 한일전이 벌어져서 양국 축빠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을 때 FIFA의 높으신 분들과 함께 등장하여 경기 전에 선수들과 악수를 했다. 당연히 양국의 아이들(선수라 해도 만 16~17살인 고딩들이었다.)은 경악하였다. 하지만 귀국 후 한국 선수들이 인터뷰에 나왔을 때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별로였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 [6] 알렉스 퍼거슨, 바비 롭슨 등이 받은 기사작위(Knight Bachelor)는 2등급 훈장에 준하는 것이다. 4등급 OBE는 이보다는 두 단계 낮은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대영제국 훈장 항목 참조. 같은 4등급 훈장을 받은 또 다른 축구 선수로는 라이언 긱스, 앨런 시어러가 있고, 그들에게 또한 'Sir'는 붙지 않는다.
  • [7] 중앙보다는 전력 질주나 방향전환 할 일이 많은 윙포워드의 체력소모가 같은 활동량에 비해 더 심하다.
  • [8] 긱스 왼쪽의 트로피를 들고 있는 사람이 이 선수들을 유스시절부터 키워낸 에릭 해리슨 코치다.
  • [9] 본인 자서전에선 슈퍼스타와 결혼한 자신이 잿밥에 눈이 팔렸다고 여겨 못마땅하게 여긴 퍼거슨과 오랜 기간 다투다가 폭발한 것이라고 한다.
  • [10] 하지만 둘간의 사이도 이제는 더이상 문제가 될법되지 않은게 베컴은 맨유 아니면 다른 EPL팀으로는 갈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할 정도로 뼛속까지 맨유 팬이라고 인터뷰에서 꾸준히 밝힌 바 있으며 하지만 아들 로미오가 아스날 팬 퍼거슨 감독과의 관계 역시 몇 년전 맨유 선수들과 감독님을 직접 만나러 런던으로 찾아가기도 했고 이벤트 매치때 맨유 선수로서 참가하며 함께 얘기를 나누는등, 이번에 퍼거슨 감독이 은퇴했을 때에도 본인 페이스북에 퍼거슨 감독에 대한 장문의 감사함의 글을 남기기도 했으며 퍼거슨 역시 베컴의 은퇴 이후 그에 대해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베컴의 은퇴 이유 역시 자기를 어린 시절부터 키워준 퍼거슨 감독의 은퇴에 정신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설도 있을 정도. 사실 자택이 런던이라 훈련하러 굳이 촌동네인 맨체스터까지 갈 필요가 없기도 하다.
  • [11] 다만 미국 이적은 관점을 달리해서 볼 여지도 있다. 미국 축구를 발전시킨 것도 사실이고, 부인의 활동을 지원해 주며 가정생활을 훈훈하게 만들기도 했다.게다가 커리어 마지막까지 그 실력을 유지한 걸 봤을때 결코 축구에 헌신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 [12] 7번을 달지 못하자 미국시장 공략을 염두에 두고 조던의 번호 23번을 고르라고 빅토리아가 조언했다고 한다
  • [13] 베컴은 미국에서의 축구 인기를 높이기 위해 LA 갤럭시에 갔다고 밝혔으며, 실제로 LA 갤럭시에서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관중이 상당한 수 늘어나는 등 미국 축구 리그 MLS를 어느정도 부흥시키는데에 기여했다. 또한 유니폼 팔이도 평균의 3배 이상으로 다른 선수들과 비교를 불가하며, 아디다스의 인터뷰에 의하면 미국 최고의 농구선수인 르브론 제임스 등보다도 판매율이 높다고 한다.
  • [14] 전 레알 팀메이트인 라울 곤살레스가 캡틴이다.
  • [15] 로미오는 열렬한 아스날의 서포터로서 맨유가 아닌 아스날의 유스팀에 입단했다.
  • [16] 웨인 루니가 있긴 하지만, 둘의 축구스타일이 달라 베컴과는 조합이 잘 맞지 많는다.
  • [17] 박지성이나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같은 일대일 마크가 뛰어나고 활동량이 많은 선수에게는 지워지는 경기가 몇번 있었다. 실제로도 베컴을 막는 전술 중에 하나이다.
  • [18] 당시 베컴의 월드컵대표팀 발탁 가능성은 반반이었지만, 카펠로는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베컴을 뽑는 쪽으로 거의 마음먹고 있었다고 한다.
  • [19] 베컴은 당시 시즌중에 입은 부상을 치료중으로, 경기에 출전하지는 않았다. 월드컵 출전이 불투명한 상태였지만 에릭손 감독은 전력의 핵심인 그를 엔트리에 포함했고, 베컴은 월드컵까지 회복하여 출전했다.
  • [20]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히딩크 감독에 대한 이미지는 썩 좋지 못했다. 2001년에는 '오대영 감독'이라는 별명이 유행했을 정도였고 2002년 들어서도 우루과이에 패하고 북중미 골드컵에서는 쿠바와 0:0 무승부에 캐나다를 상대로 1:2 역전패를 당했으며 심지어 4월 27일 중국과의 평가전에서조차 0: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본선에 대한 불안감이 컸던 상황. 이러한 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이후 평가전 때마다 선수들이 죽기 살기로 경기에 임하다보니 다소 거친 플레이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며칠 전이었던 5월 16일 스코틀랜드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4:1의 스코어로 한국이 이겼고 잉글랜드전을 무승부로 끝내면서 히딩크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싹 걷혔다.
  • [21] 전반에 마이클 오언이 선제골을 넣었으나 후반 초반에 박지성이 헤딩 동점골을 기록.
  • [22] 조금만 옆으로 빗나갔으면 주심에게 맞아 옐로가 아닌 레드 카드가 나왔을 것이다(…).역시 칼같은 컨트롤
  • [23] 당장 한국만 해도 연예계의 단맛을 즐기던 고종수가 결국 쓴맛을 본 바 있다. 뭐 고종수 외모가 원빈급이었으면 뭘 해도 됐겠지만...
  • [24] 서형욱은 자신이 기획한 어린이용 축구 만화책에서도 이 소리를 빼놓지 않았다.
  • [25] 베컴의 목소리와 화법의 변화에 대한 BBC 기사, 베컴의 목소리 변화에 대한 칼럼
  • [26] 이전 목소리와 비교한 동영상. 톤 자체가 확연히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 [27] 당시 주한미군내 여행사에서는 한국 경기를 포함한 거의 모든 경기의 티켓을 예약할 수 있었지만, 일본과 잉글랜드 경기는 불가능했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09 09:05:00
Processing time 1.4339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