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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꾼

last modified: 2015-11-30 23:15:01 by Contributors

Contents

1. 무덤 도둑
1.1. 한국에서의 사례
2. 유희왕에서 사용되는 함정카드


1. 무덤 도둑

고분, 유적을 몰래 도굴해 거기에서 꺼낸 부장품들을 업자나 후원자에게 파는 도둑. 고대 이집트 파라오 당시에도 부족한 생활비나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툭하면 피라미드와 이들을 피하고자 조성한 왕가의 계곡 상대로 휭행했을 정도로 역사와 전문성(...)을 자랑하는 분야이다. 때문에 인류사에서는 매춘, 첩자와 더불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오래된 직업으로 꼽고 있다. 영어로 하면 Tomb raider.

피라미드왕가의 계곡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도굴꾼은 다른 여타 도둑과는 다른 끈기와 지식을 요구한다. 특히 이런건 현대에 오면서 더더욱 중요하다. 다른 도둑들은 목표가 분명하고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도굴꾼의 목표는 과거 유명하고 부유했던 이들의 유적이나 무덤에 묻히거나 안장된 부장물이다.[1] 물론 봉분이나 비석, 특징적인 조형물 같은 단서가 있다면 찾기 쉽겠지만 개중엔 그것조차 없이 상당한 두께의 벽이나 지하에 숨겨져 찾아내기 힘든 경우도 있어 다수의 분업이나 협업을 요구하기도 하다. 개중엔 왕가의 계곡 경우처럼 대를 이어 도굴을 가업으로 삼은 이들도 존재했다.[2]

설령 무덤을 찾더라도 그곳이 어떤 곳인지, 그것을 얻기까지 어딜 얼마나 많이 파내야 하는지 등은 나름대로 상당한 지식과 기술이 요구된다. 또한 거기에서 얻은 부장품이 시장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도 알아야 하는데 그래야 업자에게 헐값으로 파는 사고를 덜 겪을 수 있기 때문.[3] 그밖에도 순례나 등산객으로 위장하고 유적지나 사원 터 등을 돌아다니며 탐침봉으로 마구 찌르고 돌아다니다 손끝의 느낌으로 무덤이나 부장품을 찾아내는 이들도 존재했다.[4]

그리고 동서양 막론하고 연구를 목적으로 남의 나라에 가서 그들의 유적, 유물을 조사한 다음 본국의 박물관[5]으로 보내거나 개인 소유로 돌리는 학자들도 도굴꾼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 연유에서 타국의 유적이나 무덤을 멋대로 휘저어 놓는(...) 인디아나 존스, 몬타나 존스, 라라 크로프트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1.1. 한국에서의 사례

대한민국에서는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무덤 도굴을 큰 죄악으로 봤기에 옛날 고분들이 거의 훼손되지 않았다. 하지만 고려 말기 왜구들이나 임진왜란 때 건너온 왜군들이 일부 고분들을 도굴했으며 일제강점기부턴 시장의 수요[6]에 힘입어 대놓고 판을 쳐서 수많은 무덤을 속 빈 강정으로 만들어놨다. 고구려백제의 돌방무덤은 입구를 친절하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도굴이 쉬워 거의 대부분 탈탈 털렸고 고려 시대 무덤들도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7] 다만 신라의 무덤은 구조상 도굴이 힘들어 선견지명 많은 무덤들이 지금까지 도굴을 당하지 않았으며[8] 조선 왕릉은 검소함을 위해 부장품이 왕릉에 맞지 않게 간소했기에 대부분 피할 수 있었다.[9]

참고로 일제 당시 가루베 지온(輕部 慈恩)은 고고학이란 명분으로 충남 공주 일대에 조성된 고분들을 여기저기 파헤쳐 발굴된 유물들을 일본으로 빼돌렸는데, 만약 이것들이 다 환수되면 역사서 상당수가 바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전의 본인은 물론 그의 후손들도 2006년에 기와 4점을 돌려주고는 # 없다고 발뺌하는 중. 다만 가루베가 무령왕릉을 자기가 송산리 6호분을 파헤치며 생성된 인공주산이라고 여겨 손을 대지 않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다.

광복을 맞은 후에도 황룡사지를 발굴해 조사하기 위해 민가들을 매입해 헐어버렸는데, 그 틈을 타 도굴꾼이 난입하기도 했다. 자세한 건 해당 항목 참조.

2. 유희왕에서 사용되는 함정카드

도굴꾼(유희왕)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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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때문에 건질 건덕지가 없는 무덤은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 [2] 여기서 나온 무서운 일화가 무덤 하나를 완전히 파내려고 몇 대가 무덤 옆에서 거주하고 나중에는 이들이 모여 마을까지 형성됐으며 심지어 일부 무덤은 자손을 위한 예금통장 수준으로 보존되기도 했다.
  • [3] 여담으로 상당수가 석실이나 옹곽묘 같은 것만 뒤지고 자잘한 부분이나 봉분에 해당하는 외곽은 건드리지 않았는데, 일부 무덤은 거기에 유물이나 부장품이 남아있어 학자들에게 위안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학술논문을 도굴꾼이 입수해 부장품의 존재와 가치를 알자 그마저도 선수쳐 쓸어가기도 했다.(...)
  • [4] 때문에 유물 표면에 탐침봉으로 인해 생긴 흠이 '도굴꾼이 캐낸 진품'이라는 증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 [5] 대표적인 사례가 대영박물관.
  • [6] '오구라 컬렉션'으로 대표되는 골동품 수집가들.
  • [7] 하지만 소 뒷걸음치다 쥐 잡듯이 일제의 도굴 과정에서 고려청자가 발견되기도 했다.
  • [8] 폭탄이나 중장비를 동원하면 가능하겠지만 경주의 경우 왕릉 주변에 주민도 많이 살고 있었던 이상 몰래 도굴하기는 매우 어려운 조건이다.
  • [9] 다만 성종선릉중종정릉은 임진왜란 때 도굴되었다. 왜군들이 왕릉이라고 하기에 명종의 강릉과 문정왕후의 태릉을 도굴하려고 했다가 너무 튼튼해서 실패하자 선릉과 정릉을 도굴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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