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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징비록)


"짐[1]은 말이야. 이 도자기국화를 꼭 가지고 싶구나."

Contents

1. 개요
2. 작중 행보
2.1. 임진왜란 발발 이전
2.2. 임진왜란 발발 후
3. 그 외


1. 개요

드라마 징비록의 등장인물. 배우는 김규철.
처음에는 우현이 맡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김규철로 확정. 김규철은 1960년생이며 한국나이로 56세인데, 드라마 상에서도 극중 히데요시가 자신의 나이 쉰여섯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완벽한 고증이다.

김규철은 10년전에 같은 임진왜란 시대를 그린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가공 악역 임천수로 등장했으며 대조영에서는 이해고의 군사 신홍으로 등장했다. 사실 거의 출연한 작품 대부분에 악역으로 나왔으니 말다했으며 극중에서 김규철의 도요토미 연기는 징비록을 먹여살리는 원동력으로 시청자들에게 호평받고있다. 참고로 어떤 시청자들은 외모를 보고 가가멜 히데요시가 아니냐고 야유했다고 한다.

2. 작중 행보

2.1. 임진왜란 발발 이전

첫 회에서 교토성[2] 안에서 타치바나 야스히로가 조선 사절로 파견됐지만 성과없이 돌아오자, 이에 분노한 도요토미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침착히 다스리며 서서히 타치바나에게 다가가 위협을 가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3] 이 때의 대사가 "꽃이 사람보다 나은 것이 뭔지 아느냐? 꽃은 질 때가 되어도 변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어 도요토미가 가토 기요마사에게 눈으로 지시를 내리자, 가토는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타치바나를 처단한다. 잔잔하면서도 광기 어린 도요토미의 모습을 잘 나타냈다. 한편 2회에서는 가토가 조선을 공격해야 한다는 과격한 소리를 하자, 그보다 '네가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마누라라는 답을 내놓아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익살적이고 방정맞은 면모를 보여주었다. 극중의 도요토미는 국화[4]과 조선 도자기가 가진 화려함과 기품에 소유욕을 보이면서도, 자신의 지위에 맞지 않은 방정맞음을 보여준다.

3화에서는 오다와라 공방전 이야기가 언급되었다. 가토는 속전속결을 주장했으나, 고니시가 아사작전을 주장했고 고니시의 견해를 받아들이며 고니시한테 아직도 가톨릭을 믿느냐고 묻자 고니시는 더 이상 믿지 않는다고 답한다. 도요토미는 이것이 거짓말임을 간파했지만[5] 고니시가 조선사정에 밝기에 이용가치가 있다며 넘어간다. 4화에서는 오다와라성의 반란을 진압하러 나선다. 울지 않는 두견새 이야기도 고니시를 통해서 묘사된다. 6화에서 히데요시는 조선을 속이기 위해 기만책을 펴고 이것은 그대로 먹혀들었다.

7화에서는 동생 도요토미 히데나가의 죽음을 슬퍼하며 가신들과 술을 마시면서 자신이 오다 노부나가가 이루어 놓은 업적을 넙죽 받아 먹었다는 생각이 들어 칭기즈칸처럼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대륙침략을 계획했음을 밝힌다. 그리고 츠루마츠의 병이 악화되는 것에 안타까워하며 전쟁을 위해 나고야성의 축성을 명한다. 7화 마지막에는 계속 도요토미의 의도를 읽지 못하고 헛다리를 잡는 조선 조정[6]과 만약 왜변이 있다면 자신이 일본 본토를 정벌하겠다며 허세를 떠는 선조를 비웃는 듯한 장면이 오버랩된다.

8화에서는 많이 나아진 츠루마츠의 모습에 기뻐하고 있다가 답서를 가지고 돌아온 소 요시토시와 겐소를 맞아들인다. 처음 답서의 내용을 듣고 대노하며 둘을 직접 죽이려하지만 이내 전쟁의 명분을 얻었다며 기뻐한다. 이후 당장 전쟁을 하자는 가토에게 또다시 마누라드립을 하고 고니시의 건의에 따라 도쿠가와를 선봉장으로 보낼지를 생각한다. 9화에서는 직접 출병을 하는 것이 어떠한지에 대해 가신들과 논의하다 이를 반대하며 찾아온 마에다를 반갑게 맞이하지만 아들인 츠루마츠의 사망소식을 접하게 된다. 츠루마츠의 시신을 직접 보았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는 츠루마츠를 어서 깨우라며 의원들을 마구 베다가 마에다의 만류에 슬퍼하다 츠루마츠를 위해서 당장 조선을 치겠다고 선언하며 군대를 소집한다. 이걸 보면 도요토미 그노무스키가 명군은 아닌듯

10화에서는 마에다의 조언에 따라 고니시를 선봉장으로 채택하지만 마에다와 달리 고니시에게 사실상 피를 강요하려 한 것이며 가토에게 고니시보다 먼저 조선왕을 잡을 것을 명한다. 11화에서는 고니시와 가토의 모의전투 중 두 사람의 일기토가 벌어지자 가신들과 함께 내기를 한다. 이 때 모두 고니시 편을 드는데 자신만 가토 편을 들어 이기고는 어서 은자를 가져오라며 기뻐한다. 수군 폐지가 논의 되었다는 첩보를 받고[7], 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고니시가 조선왕을 잡으려면 석 달은 걸린다고 고하자 한 달하고 보름 시간을 줄테니 못하면 할복하라는 엄포를 놓는다. 그와중에 조선인들 중 도공들은 생포해오라며 조선백자에 대한 사랑도 빼놓지 않았다. 한편 네네가 도요토미 히데쓰구를 밀어준다는 마에다의 보고를 듣고는 쿨하게 관백 자리를 넘겨주는데 이 때문에 요도가 실망하자 아들만 나으면 언제든 갈아치울 것이라고 위로해주는 모습도 나왔다. 요도에게 안절부절 못하는 히데요시.jpg 어쨌든 히데쓰구에게 관백직을 넘겨주고 자신은 병권은 여전히 거머쥔채 태합 자리에 올랐다. 12화에서는 군량을 보내지 않은 류큐에 분개하며 군사를 보내지 않은 쓰시마도주 평의지를 꾸짖더니 사열식을 가지고 고니시가 이끄는 제1군을 출항시킨다. 그리고 조선 전도에 먹물로 자신의 발도장을 찍어버리면서 엔딩을 장식.[8]

2.2. 임진왜란 발발 후

13화에서는 시작하자마자 명나라 땅에도 발도장을 찍어버리면서 포스를 발휘하는데 이후 등장한 장면에서는 좀이 쑤신다며 자기가 조선에 건너가도 되지 않겠냐면서 마치 어린애가 떼쓰듯이 마에다에게 사정을 하지만 마에다가 단호하게 반대하자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포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에다 권력이 그 정도야? 14화에서는 조선 악공들이 연주하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조선 기생들과 함께 춤추며 승리에 도취하며 고니시의 승전보에 조선군 상태를 한심하게 여긴다. 15화에서는 군대가 충주로 향하고 있다는 승전보를 이시다에게서 듣고는 크게 기뻐하며 승전을 축하하는 이시다와 마에다에게 명나라 점령 후에 받겠다고 하면서 한양에 오사카 성 규모의 성을 짖는다는 둥, 선조에게 몇석 규모의 영주자리를 줄까 하는 둥 향후 대책에 대해 이시다와 마에다와 의논을 한다. 16화에서는 세계지도를 보며 마에다와 논의를 하던 중 이시다로부터 명나라의 반란소식을 접하고는 쉽게 명나라를 정복할 수 있다며 기대를 한다. 그리고 수륙양면작전을 주장하며 여진족을 걱정하는 마에다의 말에 조선군을 화살받이로 사용하면 된다면서 조선이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고 한다.

17화에서 가토와 고니시의 대결에서 누가 승리를 할지 궁금해 하고 조선왕이 도망갔을 수 있다는 마에다의 말에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왕이란 싸우다 죽거나 붙잡혀서 죽거나 둘 중 하나 아님?? 그래도 한양점령으로 조선을 사실상 점령한 거라 생각하며 이시다에게 조선으로 가 자신이 명한 점령정책을 시행하고 즉시 명나라 침공을 준비하라 하고 이에 병사들의 피로와 사기를 이유로 거부감을 느끼는 이사다에게 비록 명나라는 종이 호랑이나 여전히 대국이라며 지금같이 기회가 없다고 역정을 내었으며 이시다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협박한다. 그리고 그날밤에 요도와 동침을 하려 했으나 네네가 피임약을 주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자신의 소원은 조카인 히데츠구가 아닌 아들과 함께 정복한 대륙을 말을 타고 돌아보는 것이라며 피임약을 네네에게 뿌려버린다.

18에서 마에다와 함께 바둑을 두는데 자신에게 불리해지자 한 수 물러달라 한다. 그러나 마에다가 완강히 거부를 하자 그냥 바둑판을 엎어버린다... 그러다 이시다로부터 그동안 별 것 아니라 생각했던 조선 수군에게 자국 수군이 박살나고 보급을 포함한 해상 작전 자체가 봉쇄되기 시작하자 분노한다. 이에 이시다에게 조선으로 건너가 조선 수군을 박살내고 이순신의 수급을 가져오라 명령한다.

3. 그 외

빈민층으로 태어나 일본 최고 권력자가 된 도요토미의 성격을 잘 묘사했다. 늦게서야 얻은 아들 츠루마츠를 매우 아끼고 있다.
잘 보면 도요토미의 앞니가 묘하게 이상하게 생겼는데, 도요토미에게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원숭이'란 별명 외에 '생쥐'란 별명이 있는데 이를 묘사한 듯한 느낌이 든다. 일본인(특히 왜구)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인 뻐드렁니를 묘사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후자는 일본인 비하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일본 대중매체에서도 도요토미는 추남으로 나오니 문제삼을만한 소재는 아니다.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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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극중에서 도요토미는 스스로를 (朕)이라 칭한다. '짐'은 독립 왕국이나 제국황제, 일본덴노 등이 스스로를 칭하는 1인칭 대명사이다. 그런데 도요토미의 당시 직책은 관백(關伯)이었다. 관백은 일본 열도를 다스리는 실질적인 통치자이지만, 명목상 덴노의 아래. 하여 자신을 이라 칭할 수 없다. 그러나 원전인 징비록이나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도요토미는 천하가 짐의 손아귀에 돌아왔다는 식의 표현을 쓴 바 있는데 이를 고려하면 고증오류는 아니다.
  • [2] 정확히는 1586년에 주라쿠다이가 완성될 때까지 니조성에서 거주했다고 한다. 니조성은 당시 행정구역상으로도 교토 안에 위치했으니 니조성을 교토성이라 한다면 말은 된다.
  • [3] 이 과정에서 타치바나가 조선 땅에서 벌인, 외교관으로서는 실격감인 행각들을 사람을 붙여서 감시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 [4] 여담으로 국화꽃은 조선 선비들이 숭상하는 사군자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일본 덴노의 상징이기도 하다. 어찌 보자면 도요토미의 끝없는 야심을 상징하는 요소라고 볼 수도 있겠다.
  • [5] 신념은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없다며,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으면 믿었을 거라고 말했다.
  • [6] 나레이션으로 조선 조정이 왜란 발발 이전까지 일본의 침략을 남해안 유린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음을 확실히 밝혔다. 물론 대책을 내놓곤 있지만 이도 모두 남해안 유린을 전제로 두고 내놓고 있다는 소리이므로 결과적으로 헛다리.
  • [7] 여담으로 조선의 수군폐지 논의가 부결되었다는 소식에 오히려 잘 되었다며 너무 약하면 재미없고 깨부수는 맛이 있어야 한다며 자신만만해 하는데 다 알다시피 사망 플래그...
  • [8] 근데 이 때 쓰인 동아시아 전도가 쓸데없이 자세하다는 오류가 있다. ### 조선쪽 퀄리티만 봐도 더 후대의 지도인 대동여지도를 이미 초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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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4 01: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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