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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조 히데키

last modified: 2015-04-15 18:28:33 by Contributors


東条英機 1884.12.30~1948.12.23
한자 발음으로는 동조영기.

총리 임기 : 1941.10.18~1944.7.18

역대 일본 총리
38.39대 고노에 후미마로 40대 도조 히데키 41대 고이소 구니아키

태평양 전쟁의 최고 책임자[1]이자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일본군의 인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장교의 이미지가 '안경 끼고 콧수염 기른 빡빡이' 로 정착된 것은 이 사람 탓이 크다.

워낙에 벌여놓은 일들이 거대해서 흔히 유능하고 과감한 성격의 장군 같다는 환상이 있지만 일본군 내에서도 무능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인물이다.멍청하고 부지런한 사람한테 권한까지 쥐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반면교사로 딱인 인물

Contents

1. 그는 누구인가?
1.1. 태평양 전쟁이라는 병크
2. 사퇴 후 죽기까지
3. 평가
3.1. 세계
3.2. 현대 일본의 미화
3.3. 당시 사람들의 대접
3.3.1. 그 당시 부하들의 평가
3.4. 한국의 평가
4. 대중매체에서

1. 그는 누구인가?

아버지[2] 때부터 군인 집안이었고 도쿄 출생으로 육군대학을 졸업한 뒤 관동군 헌병사령관, 참모장, 육군차관을 역임했다. 다만 육대출신 엘리트들과는 다르게 다양한 직책을 전전했는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초슈쪽 라인에게 찍혀서(...) 한직을 돌았다. 실지로 육대출신이면 갈 까닭이 없는 한직인 헌병사령관도 했다.[3][4] 2.26 사건 때만 해도 통제파였으나 이후 권력을 얻어가면서 그가 있던 통제파 전체가 병신 집단으로 바뀌었다.

그가 관동군에 헌병사령관으로 있었을 때 그 악명 높은 731 부대가 생체실험도 했고 프로파간다라는 말도 있지만 10만의 반일 분자를 재직시 1만으로 줄였다는 평도 얻을 정도.[5] 1940년 육군대신에 올라 중국 전선의 확대를 주장했고 그 뒤 내무대신마저 겸임, 1941년 10월 대미 개전을 막으려던 고노에 후미마로의 노력을 물먹이고, 내각을 무너뜨려 총리를 했다.[6] 그리고 12월 7일 진주만을 습격해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다.

1.1. 태평양 전쟁이라는 병크

사실 집권도 절반쯤 쿠데타에 가까웠다.[7] 그 이전에도 군인 총리들은 있었어도 정치가들과의 균형에 그나마 상식선에 머무는 정치가 나왔으나, 그 뒤 일본은 점점 더 막장일보로 치닫는다. 물론 얼씨구나 하고 총리직에 오른 고노에의 자업자득인 측면도 있다.

일본군을 세기말 막장 집단으로 만든 데는 도조 히데키도 단단히 한몫했다. 대표적인 예가 1941년 1월 8일 육군대신이었던 도조가 중일전쟁의 장기화로 군기가 흐트러지고 있다며 발령한 훈유(訓諭)인 '전진훈'. 전진훈에서 "살아서 포로가 되는 치욕을 겪지 말라."고 항복 금지를 명문화하여 쐐기를 박아 놓는 바람에, 태평양 전쟁에서 무수한 일본의 젊은이들이 옥쇄라고 쓰고 개죽음이라 읽는 상황에 몰려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전쟁 시작 뒤엔 독재를 시작해 더욱 관직을 집어먹었는데 문부, 상공, 군수대신까지 겸임했다. 한 마디로 이 무렵의 도조 히데키는 현대 대한민국으로 따지면 '국방부 장관 교육부 장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안전행정부 장관 기획재정부 장관 육군참모총장 국무총리(...)' 인 셈.너 혼자 다 해먹어라 아돌프 히틀러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으니 참으로 할 말이 없다. 실질적으로는 차관이 장관직을 하니 이렇게 겸직해도 일단 겉모양은 그럭저럭 굴러갔다지만, 속사정은 당연히 개판 그 자체.[8]

일본 헌법과 정치/군사제도의 구조상 전시내각을 총리의 의도대로 끌고 갈려면 주요 장관직을 총리가 얻어야만 했다. 장관 1명이라도 정책에 딱지를 놓고 파업하면, 당시 일본은 각내 불일치로 내각 전체가 깡그리 물러나야 했으니. 당시 일본의 체제에서는 총리의 권한이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총리 취임 이후 권력욕에 한참 불타오르던 도조가 이러한 상황을 두고 볼 수 있을리가 없었다. 우선 도조는 당시 일본군 육군 참모총장이였던 스기야마 하지메를 갈아치워버리자는 의견을 냈고, 스기야마가 워낙 무능했던지라 대본영의 수뇌부도 전체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였고, 쇼와 덴노 역시 허가를 내렸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참모총장 자리를 비워놓은 도조는 국무와 통수의 일치 및 강화를 주장하며 스스로 참모총장을 겸임했다. 일단 나름대로 군인 정신 투철한 군인 출신 총리였던데다 적어도 스기야마보다는 훨씬 유능한 도조였으니 대본영에서도 이때까진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군에 제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던 이전 총리들과는 다르게 직접 군부의 수뇌부에까지 도달한 도조는 차원이 다른 권력을 누릴 수 있었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후에는 개전 최고 책임자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통수권자인 쇼와 덴노에 비해 훨씬 적극적이고 과감한 성격이였던지라 전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면서 그야말로 일본 제국 내에서 권력의 최정점에 서게 된다. 그러나 도조가 전쟁을 이끌면서 점점 그의 매우 실망스러운(...) 군사적 능력이 끝없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여기에 그의 답없는 인재 등용 능력까지 더해져서 온갖 무능한 바보들과 사악한 미치광이들이 군에서 높은 자리를 해먹는 바람에 일본군은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희대의 막장 집단 중 하나가 되어버리고 만다.

태평양 전쟁이 그야말로 개막장으로 치닫자 일본 정계에서도 도조 히데키에게 비난 여론이 급격히 늘어났다. 언론 통제로 민간과 군에서는 나라 돌아가는 자세한 꼴을 몰라 대놓고 비난은 못했는데, 당시 일본의 정보 통제가 워낙 철저해서 정부의 고위 관계자조차 미드웨이 해전의 결과를 몇 달이 지나서야 알 정도였다. 심지어 도조 자신도 처음엔 제대로 몰랐다. 해군 군령부에서 제대로 정보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조는 해군의 보고를 그대로 천황에게 올렸는데 천황이 자신과 다른 수치로 알고 있었던 것을 듣고는 그제서야 미드웨이 해전의 결과를 알았을 정도였다. 과달카날 전투 당시 육군 참모본부 작전부상 다나카 장군이 선박 지원을 요청[9]했지만 도조가 거부하자 욕설을 퍼부어 경질되기도 했다.

무타구치 렌야의 희대의 팀킬 만행인 임팔 작전을 하는 것에도 이 인간이 기여했다. 다만 이 부분은 결재받을 때 우물쭈물 준비도 안한 걸 그냥 넘어간 아랫사람 책임도 있다. 거꾸로 도조는 임팔 작전시 위험사항을 정확하게 인식했다.

실제로 도조는 "보급 문제는 해결 가능한가?" "현실성 있는 작전이냐?" "증원 병력이 더 필요하겠느냐?" "버마 방어에 공백이 없겠느냐?" "상대의 공중-지상 입체 공격을 막을 수 있느냐?" "해상으로 연합군이 밀려왔을 때 막을 수 있냐?" 등을 물어봤다. 그래봐야 어차피 결재했지만.[10] 자세한 것은 임팔 작전 참조.

다만 아주 뻘짓만 한 건 아닌지 일본 육군 항공대 소속 항공기들에 방탄장갑과 료 자동 봉입장치를 장착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별일이야?

이 글을 보면 알겠지만 의외로 히틀러처럼 정권을 잡는 정치적 능력만큼은 우수한 것처럼 보인다. 일단 주류 인맥에서 찍혀서 오늘 내일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육군 내 유력 파벌의 수장이자 독재자가 되었고 전쟁을 말아먹어 퇴임한 후에도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었던 것을 근거로 들 수 있다.

2. 사퇴 후 죽기까지

이미 전황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이던 1944년 7월 일본 본토 폭격을 할 수 있게 된 사이판 점령을 구실로 스스로 사퇴[11]했다. 그러나 해놓은 짓이 워낙 많은지라 종전 뒤 '포로' 로 전범 재판에 섰다. 재판에 올려지면 사형이 거의 확정인 상황에서 체포되기 직전 권총 자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심장을 쐈다가 빗나갔다. 리영희 교수는 도조의 자살 미수에, 대일본제국 총리대신의 피스톨 다루는 솜씨가 매우 졸렬했다고 조롱하였다. 이때 당시 미 육군 병사의 피를 수혈해서 목숨을 살렸다.차라리 버리지. 이로서 도조는 살아서 포로가 되고 극진한 치료까지 받는 크나큰 치욕(...)을 당함으로서 전진훈이고 나발이고 다 헛소리였음을 몸소 입증했다. 게다가 도조가 자살기도를 한 정황을 살펴보면, 권총자살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머리 관자놀이나 턱에 대고 쏘거나 입에 물고 쏘는데 도조는 드물게도 가슴에 대고 총을 쏜 점, 도조는 왼손잡이였는데 자살을 시도할 때는 굳이 심장을 쏘겠다고 오른손으로 피스톨을 다루다 조준이 빗나간(?) 점, 항복 방송(8월 15일)부터 주요 전범 체포 명령(9월 11일)까지 한 달 넘게 자살할 여유(?)가 있었는데도 가만있던 인간이 하필 미 육군 헌병들이 잡으러 왔을 때 자살소동을 벌여서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간 점 등 수상쩍은 점이 한둘이 아닌지라, 실은 죽기는 싫은데 책임지는 척은 해야 할 거 같으니까 자살쇼한 거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아이고 나 죽네 자살 실패 뒤 치료받는 도조 히데키 내가 고자라니
그리고 이 사진이 도조가 자살에 실패한 다음날 신문 1면에 사용되는 일이 벌어졌고, 온 일본 국민들에게 일본의 수치라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이 사람도 패전의 책임을 일본 국민과 정부에게 전가하는 발언을 했다. 거의 마지막 재판에서 '나도 사실은 덴노가 시켜서 그랬다' 라는 발언을 했는데 이건 명백한 책임 회피였다. 쇼와 덴노 역시 국가원수로서 전쟁을 허가했으니 책임이 무겁지만, 애초에 태평양 전쟁은 도조가 기획한 일이였고, 쇼와 덴노가 수차례 반대했음에도 거듭 설득하며 끝까지 밀어붙여 허가를 받고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도 도조였다. 일본 안에서 자체적으로 전범 재판을 하더라도 도조는 사형 판결 확정임이 좌우를 막론하는 의견이다. 그나마 반인륜 범죄에는 가담하지 않았지만 이것도 그가 전쟁 전체의 판을 직접 만들고 이끄는 과정에서 수하들이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인간 쓰레기라고 불려도 모자랄 판.

끝내 극동국제군사재판에 A급 범죄자로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1948년 12월에 사형 선고를 받은 다른 A급 전범들과 함께 교수형에 처해진다. 죽어가던 거 살려놓고 다시 죽여버리는 천조국의 위엄 교수형 뒤 화장되어 7명[12]명의 유골은 태평양 먼 바다에 버려졌으나, 화장지 등 남은 유골의 일부를 일본 한복판에 안장했다. 자세한 내용은 순국7사묘 참고.
처형되기 직전의 도조. 웁웁웁 뒤에 있는 미 육군 헌병장교의 표정이 참 적절하다. 매듭이 크고 아름답다.


톱니바퀴 도둑
믿음직하거나 훌륭한 군인과는 3만 8천리 떨어졌으며 정권을 잡는 정치적 능력은 제법 뛰어났으나, '국가를 이끌어나가는 정치가'로서의 능력은 형편없었다. 그냥 권력 강화하고 자기 이득이나 챙기는 전형적인 악질 독재자였다. 사실상 그냥 막장. 그 유명한 무능의 대명사 무타구치 렌야심복으로 쓰고 이놈은 쓰면 안 됨이라고 평가한 츠지 마사노부를 인재라고 격찬까지 하면서 등용할 안목이었으니 말 다했다. '파시스트' 라는 점을 빼고 봐도 그냥 개막장이다.

그의 수기에서 발췌

"싸움은 최후의 한순간에 결정되는 법인데 일본 제국이 가지고 있는 힘을 십분 발휘해보지도 않고 적들의 선전책동에 휘말려 무릎을 꿇게 됐다."

"적의 위협에 겁먹고 손을 들어버리는 내각 지도자와 국민의 얼빠진 정신을 믿고 전쟁에 나선 것은 개전 당시 책임자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신폭탄에 움츠러들고 소련참전에 움찔해 무조건 항복하면 국민의 전투 의사는 급속히 사그라진다. 이런 사태는 군의 통수 지휘에 지대한 혼란을 일으켜 전투력을 저하시킨다."

"동아시아와 일본의 보호를 위해 많은 군인과 국민이 희생했는데 끝을 보지 못하고 섣불리 화평을 맺는 것은 적에게 종속되는 길."


나라가 이 꼴인데 자기가 공헌한 게 제일 많으면서 정작 책임을 정부와 국민에 떠넘겼으니 역시 미친놈 맞다. 이쯤이면 이딴 생각을 가진 놈의 도구로 쓰여서 죽은 일본군 병사와 일본인들이 불쌍할 지경이다.

3. 평가

3.1. 세계


보통 이런 대접. 대한민국, 중국 등 이놈 때문에 고생한 나라들은 이놈이라면 학을 뗀다.

3.2. 현대 일본의 미화

도조가 화장된 후 그 유명한 고이소 구니아키의 전담 변호사를 지낸 산몬지 쇼헤이(三文字正平)[14]는 작자가 화장장에서 이 7개 인간 쓰레기들의 남은 유골안타는 쓰레기을 모아서 이들의 무덤 겸 제단인 순국7사묘라는 네오나치도 생각 못한 희대의 등신 짓을 했다. 자세한 것은 순국7사묘 참조.

야스쿠니 신사에 이 사람도 합사했다. 일본 정부가 '몰래' 모셔놓았다고. 그리고 이 사람의 친손녀이자 얼굴도 대단히 비슷하게 생긴 도조 유코 견공자제분 [15]난징 대학살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고 정치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촉구하며 미국의 원자탄 사용을 비난하는 성명을 낼 것을 촉구하는 등의 병크를 벌였다. 참의원 선거에도 나왔으나 떨어졌다.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 생각을 했어요2차세계대전때 떨어진 원자폭탄의 우라늄이요 뭐긴 뭐야필로폰 이지


그 할아버지에 그 손녀. 답이 없다

도조 유코KBS의 다큐멘터리에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한 징병 조선인/대만인의 유족들과의 대담에서 "당신이 당신 아버지의 진심을 아느냐?", "일본을 위해 싸워주신 당신의 아버지께 감사한다" 는 둥의 막장 발언으로 한국인들의 혈압을 상승시키는데 지대한 공헌도 했었다.[16] 도조 유코는 2013년에 뒈졌다. 여담으로 결혼하느라 성이 바뀌어서 도조란 성은 통명이다. 일본 우익들이 재일 한국인이나 재일 중국인들이 통명 쓴다고 까댐을 생각하면...

일본 우익들이야 이 인간이 그 당시 최고지휘관이라 어쩔 수 없이 미화하지만, 우익에서도 '일본군을 말아먹은 졸장'이라고 욕하는 이들도 꽤 있다. 우익들조차 거론하기 싫어하는 무타구치 렌야라든지 츠지 마사노부 같은 인간을 유능하다고 써먹었으니 오죽할까? 특히 2차대전 최악의 졸장이라 말할 정도로 일반적인 무능함을 넘어 근현대사 최악의 병신인[17] 도미나가 교지한테는 의형제까지 맺었다. 도조 유코는 '저런 멍청한 부하들을 등용하여 아군을 무수히 죽이며 패전에 기여한 점은 어떻게 생각하슈?' 라는 질문에 그래도 다른 유능한 부하들도 등용했다고 넘어가면서 반론조차 못했다. 물론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멍청한 부하에 대한 후한 대우를 생각하면...

인도인 펄 판사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하여 그를 영웅시한 영화 프라이드가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한 바 있지만, 극우 단체들의 반복적인 관람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뿐이지 대중적 흥행은 영 별로였다 한다. 심지어 개봉 첫날에는 극장에 교련복 입은 시커먼 사내놈들이 우글거려서 일반 관객은 접근도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그리고 이 영화 감수 및 제작에 이시하라 신타로와 가세 히데아키[18]가 참여했다.

우익적 견해로 유명한 베츠미야 단로는 도조를 가리켜 "인사계원으로나 쓸모있고 지휘관으로서는 중대장조차 위험하다"고 적시했다. 실제로 도조는 연대장 시절에 인사계 이상으로 사병들의 처우와 복장에 솔선수범한 군인으로 평가받았다. 연대장에서 퇴역하거나 전사했다면 좋은 의미로 남았을 사람

3.3. 당시 사람들의 대접

이 사람에 대한 주변인들의 증언은 어떤 면에선 정말 천차만별이라 이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방해이기도 하다. '지나친 완벽주의자', '면도날' 같은 별명이 있는가 하면 '맘씨 좋은 할아버지라 가을에 날씨 좋은 날을 골라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아서 운동회를 열고 과자를 나누어주었다' 는 말도 있다. 후자의 경우 손녀인 도조 유코가 한 말이지만.

히데키의 조카도 육군 장교였는데, 하루는 도조 히데키의 집을 방문했다가 하녀와 담소를 나누었다. 이 모습을 보고 갑자기 조카의 뺨을 때리면서 '이놈이 체면도 없이 여자한테 정신 놓고 뭐하냐?'라고 막 뭐라 했다고. 진짜 웃긴 건 나중에 도조 사후 이 조카가 결혼했는데 신부는 그때 담소를 나누던 하녀였다. 메이드와 도련님의 연애이야기 얼핏 못 이해할 만큼 쪼잔한 면이 있었던 듯. 게다가 이 조카를 결전장이라고 찍힌 마리아나 제도로 보내버리려고 했다. 조카 집안의 대를 끊어버리려면 다른 방법이 더 나을 텐데...

그래서 조카의 아버지인 히데키 남동생은 도조와 의절하고 나중에 이 조카는 반극우 성향 인사로 바뀌었다 한다. 참고로 이 조카의 아버지인 도조의 남동생은 형의 사형선고에 매우 고소해했고 야스쿠니 신사에도 일체 안 갔다. 게다가 부하들이 옥쇄를 준비하자 "안경 쓴 바보두마리들을 위해 아까운 니네 목숨을 날리지 마라"라고 했다. 바꿔 말하자면 덴노에 대한 충성심이 전혀 없었다는 말이다.

야마구치[19] 출신들을 싫어해서 육군대학 면접관으로 재직시에 야마구치 출신 수험생들에게 '귀관이 면접 장소까지 걸어오는데 몇 보였나?' , '본교 화장실의 변기는 모두 몇 개인가?' 등의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가는 질문을 하여 다 떨어뜨렸다. 그러나 1920년대 말에서 30년대의 일본 육군 내 분위기는 반초슈벌이었던지라 도조가 아니더라도 야마구치 현 출신들은 어차피 육대 입학이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두가 군내에 강력한 파벌을 만들어버린 야마가타 아리토모 탓이지만.

여담이지만 총리로 재임하던 시절 도쿄를 시찰하면서 사람들이 을 낭비하는지 확인한답시고 하수구를 살펴보면서 쌀이 몇 알 떨어졌네, 낭비하네 떠들어서 사람들의 어이를 털었다는 일화도 있다고 한다. 사실이거나 정말 당시 있었던 야사라면 은하영웅전설의 감자대장 도슨의 일화와 비슷하다. 어쩌면 이게 모델일지도. 이름도 비슷하게 도조와 도손(슨) 이건 도조의 오랜 습관이었다. 그는 연대장 시절 부대 취사장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자 음식이 맛없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렸다. 수상이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는데 뭐만 하면 시찰하면서 쓰레기나 하수구를 뒤지면서 뭔가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좋아했다.시궁쥐 현시창 수상 직위에 있는 이가 할 짓이 아니라는 지적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 절대 국방권은 도서 지역 확보를 거친 비행장 건설로 할 뿐 삽으로는 이룰 수 없다며 도조의 전략을 대놓고 디스한 신문기자자기 명령으로 육군 이병으로 징집해 당시 격전이 벌어지던 이오지마에 보내서 죽이려고(!) 했다. 아마 이런 짓이 전매특허인 듯. 그러나 중간에 육군 디스를 위한 고급 인적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해군에서 이 기자를 육군 입대일 하루 전 날짜로 징병[20]하는 식으로 데려가 버려서 그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전범재판소에서 오카와 슈메이라는 극우사상가도 전범으로 기소되었는데 재판정에서 도조 히데키의 뒤통수를 때리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해 정신이상으로 사형을 면했다. 그가 말년에 코란일본어로 완역했으니 정신이상은 사형을 면하기 위한 연기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아무튼 재판정에서의 모습을 담은 저 짤방합성이 아니다! 실제 2차세계대전 갤러리에서 이 사건을 배경으로 쓴 도조x오카와 야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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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지식의 창고' 라는 책에 따르면 도조 히데키는 단 것을 좋아해서 그의 치아 상태는 군대 상태보다도 훨씬 나빠서 체포 당시 치아 전체를 틀니로 바꿔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돌프 히틀러도 단 것을 좋아해서 치아가 성치 않았다는데 나쁜 놈은 서로 닮아가는 듯. 실제로 아돌프 히틀러와 도조 히데키는 닮은 점이 많다, 둘다 당분 덕후였다는 점부터 의외로 세세한 부분까지 닮았다. 군사적으로 무능했다는 것과 무리하게 전선을 막 늘린 점이나 초반에는 서로 적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으나 패했다는 점, 또한 단순히 동맹 관계인 것을 넘어서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도 서로를 매우 좋게 평가했다. 실제로 만난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히틀러는 도조를 환상의 파트너이자 든든한 동맹으로 여겼고, 도조 역시 히틀러를 '친구'라고 칭할 정도로 좋게 생각했다.그리고 훈훈하게 지옥까지 함께 갔다 그야말로 천생연분...

미 육군에 파견되어 근무하던 미 해군 치의관 조지 포스터와 잭 맬러리는 도조의 틀니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고 이 유명한 환자에게 장난을 치기로 작당했다. 그들이 만든 틀니는 아주 잘 맞았지만 거기에는 모스 부호로 "진주만을 기억하라"는 문구를 새겼다니 흠좀무.

3.3.1. 그 당시 부하들의 평가

매우 놀랍게도 일반 병사나 부사관, 하급 장교들에게는 부드럽고 자상한 아버지 같은 상관이었다고 한다. 도조는 신병이 들어오면 일일이 부모를 찾아 뵙고 "귀한 자식을 맡겨 주셨으니 끝까지 보살피겠습니다."며 부모와 입대하는 자식 모두를 안심시켰고 형편이 어려운 가장이 입대하면 동사무소를 통해 생계비를 받을 수 있도록 하여 불안을 해소해 주었다.

게다가 도조는 평등주의에 철저하여 식사도 사병과 같은 것을 먹었다. 이건 그 당시 일본군 장군들로써는 굉장히 이례적인 반응이다. 특히 같은 군국주의자 항목의 하나야 타다시와 비교해도 훨씬 나은 대접이다. 항목 참조하길 바란다. 부하들을 어찌나 사랑했는지 한번이라도 다른 반찬이 나오면 병사들의 식단에도 그 반찬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고는 만약 없을 경우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부하에 대한 배려가 깊어 사단장 시절에는 병사들과 부사관들의 건강과 가족사항까지 세세하게 기록해 이름을 외웠고 부하인 부대장들에게도 병사들의 신상명세와 집안 사정 등을 꼼꼼하게 확인하도록 명했다. 그리고 그 부하들 중에 부모가 위독하다거나 집안에 큰 우환이 있을 경우 사단장의 권한으로 전역증도 발급했다고 한다.

부대 훈련 때도 도조는 군 생활이 병사들에겐 평생 남는 기억이 된다며 체력이나 전투 기술이 부족한 병사들에겐 핸디캡을 적용하여 훈련에 낙오하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심지어 시골 출신 병사가 도시 출신보다 면역력이 약해 결핵에 걸리기 쉽다는 군의관의 조언을 듣고 결핵 검진을 위해 당시(1920년대)로선 최신 기술인 X선 장비를 즉석에서 도입하기도 했다.

또한 야전 부대장 때는 물론이고 총리 재임 시절에도 관저의 임원들과 총리관저를 지키는 병사들을 모아 식사를 대접하며 운동회와 보물찾기도 열었다고 한다. 심지어 도조의 운전기사 역시 "총리님만큼 훌륭하신 분은 진짜 처음 봤습니다."라고 증언했다.

만약 도조가 총리를 역임하지 않고 그냥 사단장 등 야전 지휘관이나 헌병사령관에서 퇴임을 했더라면 아마 못해도 최소한 기타나 평범한 인물 측에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며 조금 과장하면 대인배 항목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격언을 몸소 증명한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로 꼽을 수 있겠다. 그놈의 정치가 문제여

3.4. 한국의 평가

당연히 일제강점기를 겪었던 한국의 입장에서는 일제 군국주의 및 제국주의를 앞세운 만악의 근원으로 평가받고, 한국 침략의 주범 중 하나이자 한국사에 있어서도 한국을 침략하는데 선봉장으로 나선 악한이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이 이름만 나와도 펄쩍 뛰게 만들고, 분노와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장본인. 1992년부터 일본 대사관 앞에서 할머니들을 모이게 하여 지금의 수요집회를 만들게도 했다.

지원병 및 학도병으로 강제 징병되었거나 노역장으로 강제 징집된 노인들 입장에서도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게 만드는 장본인이자 만악의 근원으로 부상한 인물이며,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요약하면 만악의 근원중 하나. 다만 한국 대중매체에는 등장하지 않는데 계몽사에서 80년대 나온 한국사 책에는 야사로서 머리를 중처럼 빡빡 깎고 망상에 찌들어 미국을 공격한 광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미친 짓한 증거로서 연설할때마다 깔개로 성조기와 영국기를 썼다는 이야기를 싣고 있다.

4. 대중매체에서

만화 지팡구에도 나오는데 초기 연재분에서는 악의 축 그 자체로 묘사하고[21] 단 한 장면 나온 도조의 모습은 세밀화로 그린 악의 축 그 자체.

후기에는 매리애나 결전[22] 직전에 학도병 출전식 장면에서 다시 나오는데 전반부의 악마적 카리스마와는 달리 어느 정도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를 구현한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대놓고 부하들이 디스함을 알지만 이미 미쳐버린 군을 나름대로 제한하려면 강화는 위험하다는 의견, 즉 군이 완전히 미치게 만든 일본보다는 차라리 화끈하게 져야 낫다는 의견을 독백으로 제시한다.

도라 도라 도라에도 한 장면 나온다. 배우가 삭발을 하기 싫어서인지 뽀글파마 백발로 나와서 압권.

드라마 더 퍼시픽에서 박격포 훈련 때 마네킹을 타깃으로 하는데 마네킹에 'Tojo'라고 이름표가 붙었다. 옆에 앉은 친구 마네킹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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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민해방군의 훈련용(?) FPS 광영사명에서는 왠지 도조의 얼굴을 한 자위대 병사가 적성군 일반 보병으로 등장한다(...). 게임의 초기 버전에선 미군으로 보이는 군대가 적성군이었건만 개발 와중 센가쿠 열도 같은 중일관계 악화로 중간에 바뀐 듯. 이것 말고도 민간용 온라인 버전의 2차 대전 상하이 일본군 웨이브 미션에서도 일본군 병사들이 죄다 도조의 면상으로 등장한다(...).

복거일 옹의 대체역사소설비명을 찾아서에서는 도조 유신을 일으킨 것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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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국가원수로서 전쟁을 허가한 쇼와 덴노 또한 전쟁 책임이 무겁지만, 전쟁을 기획하고 일으킨 장본인은 도조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의 책임이 크며, 법적으로도 태평양 전쟁의 총책임자였다.
  • [2] 이름은 도조 히데노리. 황당한건 도조 히데키랑 달리 굉장히 유능했으며 이 사람은 오히려 착검돌격을 반대했다. 게다가 이 사람은 전술연구의 선구자다.
  • [3] 육군의 헌병대가 큰 권력을 행사한 조직이지만, 그와 별개로 사령관의 권한은 영 션찮았다.
  • [4] 사실상 이 자리를 주면 좋은 말할 때 나가라는 뜻이었다. 물론 도조는 때를 기다린다는 측면에서 그냥 역임그냥 이때 나갔어야...
  • [5] 실지로 만주에 부임했을 때 딸들에게 몸값도 없고 굴복할 생각도 없으니 비적이 납치해도 구하지 않겠다라 공언했다고.
  • [6] 사실 처음에는 자기가 총리할 생각은 없었는지 고노에와 함께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를 총리로 추천했다. 하지만 쇼와 덴노는 황족이 정치에 너무 간섭하는게 싫어서 군의 수뇌부에서 추천하던 도조를 총리로 지명했다.
  • [7] 이것은 쿠데타의 정의를 완전히 망각한 주장이다. 쿠데타는 무력을 통해 불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말하는데 도조의 집권은 엄연한 합법이었고 무력을 동원하지도 않았다.
  • [8] 다만 대부분의 관직은 1년도 안가서 물러났다.
  • [9] 해군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육군은 해군과 별개로 수송선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단, 규모가 해군 통제하의 선단보다 작아서, 상당 부분은 해군에 위탁하긴 했다.
  • [10] 임팔작전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전부 No였던 상황이었다.
  • [11] 이것도 도조가 만주국 이래로의 맹우인 기시 노부스케를 장관직에서 해임하려고 시도했으나 기시가 "나 자르려면 네놈도 절대 국방선 붕괴의 책임을 지고 같이 물러나라!" 면서 강경하게 고집을 피운 덕분에 같이 사퇴했다.
  • [12] 다만 이중에서 억울하게 사형받은 사람도 있다.
  • [13] 써있는 말은 간체로 '일본 갑급(A급) 전범 도조 히데키가 중국 인민에게 사죄합니다'. '중국 인민에게 사죄하라'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 [14] 무슨 일인지 이전판까지 三文字正平을 고이소 쿠니아키라고 소개하면서, 친절하게도 그 유명한 조선 총독 고이소 쿠니아키와는 동명이인이라는 설명까지 붙어있었다. 물론 이는 완전히 잘못으로, 산몬지 쇼헤이는 코이소 쿠니아키의 변호인을 맡았던 사람이다.
  • [15] 웃긴 건 도조 히데키의 장남을 제외한 모든 도조 히데키의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물론 도조 유코 자녀들을 제외한)이 도조 유코를 비웃었다고 한다.
  • [16] 사실상 상대편의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죄다 회피하고 녹음기처럼 자기 할 말만 해댔다.
  • [17] 그냥 적은게 아니다. 윙드 후사르가 세운 교환비를 압도적으로 능가했으며 심지어는 충무공께서 세운 교환비와 맞먹는 화려한 전적을 세웠다.
  • [18] 70년대 한국 정계에서 친한파로 통하다가 지금은 혐한에 앞장서며 일본 극우 홍보나 한다. 93년에 박태혁이라는 가명으로 한국을 헐뜯는 <추한 한국인>이란 책을 내서 잘 팔리기도 했지만 이후에 수익 배분 문제로 고소를 겪으면서 자신이 쓴 게 드러나 책이 회수되기도 했다. 프라이드 대박(?) 이후로 무르데카란 인도네시아를 무대로 한 일본 극우영화를 만들었다가 인도네시아의 반발로 일본 기업들의 피해가 크면서 받은 소송 문제로 이후로 극우영화 제작, 감수를 포기했다.
  • [19] 과거 초슈 번. 한때는 이곳 출신의 육군 파벌이 득세하였다(...) 게다가 도조의 부친인 도조 히데노리는 제1기 육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였음에도 러일전쟁 중 여단장으로 전투에 참가했을 때의 실수를 초슈 파벌에게 트집잡혀 한직으로 맴돌다가 퇴역당했다.
  • [20] 전쟁 이후 해군도 징병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또한, 육해군 모두 징집영장이 나왔다 해도 자기가 징집된 군과 다른 군으로 지원해 입대해버리면 징집영장은 무효가 되었다.
  • [21] 오죽하면 덴노나 기타 궁정 대신들도 아는 미라이의 비밀을 도조가 알아서는 안 된다라며 대놓고 이야기한다.
  • [22] 칠면조 사냥이 아닌 이 작품 한정의 대체역사. 여기서 전략적 무승부를 함으로서 지팡구의 역사는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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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5 18: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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