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

last modified: 2015-03-14 17:17:08 by Contributors

주의 : 사건 사고 관련 내용이 있습니다.

이 문서에는 실제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설명이 있습니다. 개개인에 따라 불쾌감을 느낄 수 있으므로, 열람에 주의해 주십시오. 실제 사건을 기초로 하여 작성되었으므로 충분한 검토 후 사실에 맞게 수정해주시길 바랍니다. 범죄 등의 불법적인 내용 및 따라하면 위험한 내용도 일부 포함되었을 수 있으므로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수정자는 되도록 미풍양속에 어긋나지 않게 서술해 주십시오.


때는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기분 좋게 맑게 갠 이른 봄날 아침이었다. 바람이 아직 차가워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모두가 외투 차림이었다. 바로 전날은 일요일, 그다음 날은 공휴일[1] - 즉, 징검다리 휴일 사이에 낀 평일이었다. 어쩌면 당신은 '오늘 하루는 쉬고 싶었는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당신은 휴가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당신은 평상시와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고, 옷을 챙겨입고 역으로 향한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혼잡한 지하철에 몸을 싣고 회사로 향한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아침이었다. 인생 가운데 구별할 수 없는 단 하루였을 뿐이다.
 
가발을 쓰고 가짜 수염을 붙인 다섯 명의 젊은 남자들이 갈개로 뾰족하게 갈아둔 우산 꼬챙이로 기묘한 액체가 든 그 비닐봉지를 찌르기 전까지는.
 
무라카미 하루키, "언더그라운드" 中

Contents

1. 개요
2. 배경
3. 사건
4. 가해자와 피해자
5. 결과
6. 기타

1. 개요

1995년 3월 20일, 일본에서 옴진리교가 일으킨 사상 최초의 화학물질을 이용한 대규모 테러 사건.

세뇌광신도를 동원해 도쿄 지하철에서 독가스사린을 살포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고 일본 사회 전체에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이름이 비슷하여 혼동할 수 있는데 절대 살인가스 살포사건이 아니다!! 실제로 사람이 죽어서 살인가스가 된 것 자체는 맞지만.

교주 아사하라 쇼코는 이 사건을 비롯하여 그간 옴진리교가 일으킨 각종 사건의 주범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옴진리교는 강제로 해산당한다. 하지만 아사하라 쇼코가 체포된 후에도 잔당들이 모여서 새로운 조직을 건설했다. 이 사건의 용의자들은 사건 발생 후 17년 가까이 장기 지명 수배되어 있었고, 2012년에 모두 체포되었다.

2. 배경

사카모토 츠츠미 살인사건, 메구로공증인사무소 사무장 납치 감금 치사 사건, 마츠모토 시 사린가스 살포사건 등의 온갖 대형 병크를 저지르던 옴진리교는 그 결과 이들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기 시작하면서 경찰 수사가 포위망을 좁혀 오자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교주 아사하라 쇼코는 경찰의 수사력 및 관심을 분산시켜 궁극적으로 옴진리교가 조사받는 사태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지금까지와 수준이 다른 대규모 테러를 일으키기로 결정했다. 특히, 테러 대상으로 도쿄의 주요 관공서가 밀집된 지역 등을 골라 일본 정부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것까지 노리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이미 이성적인 판단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미 계속적으로 테러를 저질러 왔기 때문에 옴진리교는 요주 대상으로 찍혀 있었다. 이 상황에 대규모 테러를 저지를 경우 오히려 제일 먼저 용의 대상으로 지목받기 쉽다. 역시나 이 사건이 터지자 옴 진리교는 확실하게 몰락의 길을 걷는다. 결국 궁지에 몰리자 망상적인 발상으로 최악의 사건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3. 사건

3월 20일 아침 8시, 옴진리교는 한창 직장인들과 학생들의 출근 및 등교로 바쁜 러시아워 시간대에 도쿄 메트로가 담당하는 노선에서 총 5개 편성을 노려 차량에 대량의 사린 가스를 살포했다. 마루노우치선히비야선에 각 2편성, 지요다선에 1편성을 노렸는데, 이들 3개 노선의 공통점은 도쿄의 주요 관공서 밀집지역을 지난다는 것이다. 카스미가세키로 불리는 이 지역은 한국세종로와 비슷한 지역으로서, 이 지역에 위치한 주요 성급 부서만 해도 법무성, 후생노동성, 환경성, 경제산업성, 총무성, 국토교통성, 재무성, 문부과학성 등 8개에 이르며 또한 이들 부서의 산하기관이 수두룩하게 밀집해 있다. 당연히 통근하는 공무원들이 많았고 그들을 핵심 타겟으로 노려 사린 가스를 살포했다.[2]

실행자들은 각각 2명씩 패를 이루어 한 명은 지하철에 탑승하여 사린을 담은 비닐봉투에 구멍을 내는 식으로 사린을 살포하고, 다른 한 명은 살포자를 태워 도망치는 운전수의 역할을 맡았다.

당연히 도쿄는 대패닉에 빠졌다. 그나마 일선 부서의 발빠른 대처 및 숭고한 희생[3]으로 살포 지역의 무정차 통과 및 열차운행 중단 등의 조치가 이어졌고, 살포된 독가스가 사린이라는 것도 비교적 초기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도쿄도 내의 각 병원에 사린가스의 해독제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병원에 비교적 빨리 도착한 피해자들을 제외하면 추가 치료가 불가능해 대재앙이 발생할 뻔했다. 사린의 해독제로는 트로핀과 프랄리독심 (Pralidoxime, 2-PAM)이 쓰이는데, 프랄리독심은 유기인계 농약 중독의 치료제로 많이 쓰이는 물질이어서 대도시인 도쿄에는 물량이 얼마 없었다. 다행히 스미토모(住友)제약회사에서는 이 프랄리독심을 생산하고 있어, 서일본지역에 있는 아트로핀과 프랄리독심을 긁어모아 도쿄 지역의 병원에 공급해 사태가 크게 번지는 일을 막았다.

자위대에서는 화학전 담당 부대 (제101화학방호대)를[4] 중심으로 화학학교 교관등이 파견되어 치료를 도왔다. 자위대중앙병원에서 파견된 의사가 이전의 간부연수에서 화학병기 대응 교육을 받았었고, 현장으로 파견될 때 연구자료를 가지고 와서 화학병기로 인한 테러라고 판단하고 병원에 아트로핀과 2-PAM을 투여할 것을 조언해 빠른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이 테러로 13명이 숨지고 5,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사실 테러의 규모, 살포된 사린 가스의 양을 보면 이 정도에 그친 것이 다행이었다.

4. 가해자와 피해자

놀랍게도 이 사건의 직접적인 가해자, 그러니까 지하철에서 가스를 살포한 이들은 일본 사회 전체 가운데에서도 엘리트로 불릴 만한, 고등교육을 받고 전문지식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가해자들의 학력과 경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지요다 선에서 역무원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하야시 이쿠오(당시 48세)는 평판이 좋은 심장외과 전문의였다. 마루노우치 선에서 승객 한 명을 죽게 한 히로세 겐이치(당시 30세)는 와세다대학의 이공학부 응용물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마루노우치 선에서 이백 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요코야마 마사토(당시 31세)는 도카이 대학에서 응용물리학을 전공했다. 히비야 선에서 승객 한 명을 죽게 만든 도요타 도오루(당시 27세)는 도쿄대학 이학부의 응용물리학과 출신으로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훌륭하고 우수한 연구실의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같은 히비야 선에서 무려 여덟 명의 승객을 죽게 만든 하야시 야스오(당시 37세)는 고가쿠인 대학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이 (아마도) 타겟으로 삼은 일본의 관료들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다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지하철역에서 사린 가스를 마시고 호흡 곤란에 빠져 영문도 모른 채 격렬한 고통 속에서 목을 쥐어뜯으며 죽어간 사람들은 시스템 안에서 하루하루를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보내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책을 위해 사건 피해자들을 육십 명 넘게 인터뷰했지만, 반수 이상의 사람들이 대학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놀랐다. 실행범들에 필적할 만한 고학력자는 아주 소수에 불과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죽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은 전형적인 평범한 소시민들이었으며, 그에 반해 테러를 자행한 범인들은 만일 테러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면 국가와 사회를 떠받칠 우수한 인재가 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당시 일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5. 결과

옴진리교와 아사하라 쇼코의 의도와는 반대로 일본 경찰은 테러의 배후로 옴진리교를 지목해서 집중적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 들어오면서 결국 아사하라 쇼코는 옴진리교 본거지인 사티안에서 체포되었으며 사형 판결을 받고 현재 복역 상태에 놓여 있다. 그리고 옴진리교는 테러단체로 지목되어 강제 해산되었다.

독가스가 인간에 의해 개발된 이래, 전쟁이 아닌 테러 목적으로 대량인명살상을 위해 처음(이자 현재로서는 마지막)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세계 각국은 독가스 테러의 위험을 직시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한편, 옴진리교는 원래 사린 가스가 아니라 탄저병을 연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조사 결과 밝혀졌다. 옴진리교의 기술력이 부족해서 탄저병을 포기하고 사린으로 전환했다. 결국 탄저균 배양에 성공, 살포하였으나 고압 분무기로 인해 악취만 남게 된 카메이도 악취사건이 벌어진다.

사린 제조 프로젝트에 관여한 키쿠치 나오코(菊地直子)는 2012년 6월 3일 저녁, 카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에서 체포되었다. 키쿠치는 1996년에 타카하시와 함께 숨어 산 것으로 알려져 일본 경찰은 키쿠치가 타카하시의 행방을 알고 있을것으로 보고 이를 추궁 중이라고 한다.

히비야 선 구간에서 운전수 역할을 맡았던 타카하시 카츠야(高橋克也)는 다른 범인들과 마찬가지로 명수배 중인 상태였으나 2012년 6월 15일 도쿄 오타구에서 타카하시가 잡히면서 사건 17년만에 드디어 모든 관계자가 잡혔다! 만세![5] 사건 전에도 만화를 좋아했던터라 만화방에서 나오다 잡혔다고 한다. 잡히고 나선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나는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드립을 치고 있다. 그러더니 경시청 조사에서는 옴진리교에서 수행하고 싶다는 드립을 쳤다!!! 아무래도 끌려나와 복날 개패듯이 맞아봐야 정신을 차릴 듯 싶다 또한 해당 기사에 따르면 체포됐을 때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의 사진을 갖고있었다고 한다. 이쯤되면 도주하는 17년동안 반성이나 후회를 했을 가능성은 전무한걸로 보인다.


6. 기타


일본의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사건의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모아서 '언더그라운드'라는 책을, 가해자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약속된 장소에서'라는 책을 발간했다.
----
  • [1] 일본에서는 춘분이 공휴일이다. 항목 참고.
  • [2] 평상시에는 출근 시간이 9시 30분까지였지만, 사건이 일어난 요일인 월요일에는 아침 일찍 조례를 하는 곳이 많아 사건이 일어난 시각 즈음에 출근하는 공무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 [3] 승객들을 1명이라도 더 대피시키기 위해 사린 가스 살포 지역에 남아 대피작업을 하다 숨진 역무원도 있다.
  • [4] 훗날 2001년 중앙즉응집단소속 중앙특수무기방호대가 된다.
  • [5] 이로서 옴 진리교 특별지명수배 대상이었던 3명(키쿠치 나오코, 타카하시 카츠야, 히라타 마코토)이 모두 잡혔다. 1990년대, 2000년대 일본에 여행 다녀오신 분이라면 아마 이 지명수배 포스터를 지겹게 봤을 것이다. 우습게도 이 중 다른 사건에 연관되었던 히라타 마코토(平田信)는 2011년 12월 31일 도피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변호사와 상담 후 자수했다. 그리고 2012년 1월 1일, 즉 자수한지 하루 만에 본인임이 확인되어 최종적으로 체포. 다만 이 자수과정에 좀 경시청의 병크가 돋보였다. 옴진리교 항목 참고.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3-14 17:17:08
Processing time 0.0891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