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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last modified: 2015-04-06 20:42:54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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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유사(類似) 영토 분쟁 관련 지역
대한민국 지배 지역 북한 지배 지역 러시아 지배 지역
독도 이어도 백두산 녹둔도


Contents

1. 대한민국의 동쪽 끝에 위치한 대한민국 고유 영토
1.1. 역사 및 명칭 문제
1.2. 역사적 논쟁점
1.2.1. 세종실록지리지의 우산은 독도인가?
1.2.2. 안용복은 거짓말쟁이?
1.2.3. 기타 쟁점
1.3. 독도 관련 조약
1.3.1. 독도 밀약
1.3.2. 한일어업협정 논란
1.4. 독도 문제가 중요한 이유
1.4.1.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문제
1.4.2. 승목외교관의 독도영유권 대담
1.5. 일본인들의 독도 인식
1.6. 독도 관련 최근 일본의 행보 (2008~ )
1.7. 세계인들의 독도 인식
1.8. 한국 정부의 대응
1.8.1. 현 대한민국 정부의 기본 입장
1.8.2. 노무현 정권기 (2003~2008)
1.8.3. 이명박 정권기 (2008~2013)
1.8.4. 박근혜 정권기 (2013~2018)
1.9. 민간 차원의 대응
1.10. 일본과의 군사분쟁 가능성
1.11. 대중매체에서의 독도
1.12. 유사한 분쟁 지역
1.13. 관련 항목
2. 판타지 마스터즈에 나오는 특수지형
3. 학교대사전에 나온 내용
4. 카타나가타리에 등장하는 완성형 변체도 독도 멧키


1. 대한민국의 동쪽 끝에 위치한 대한민국 고유 영토


獨島 / Dokdo

05-1dokdo2.jpg
[JPG image (14.08 KB)]

다음지도 네이버지도에서 각각 독도의 로드뷰를 제공하고 있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볼 수 있다.

독도 라이브 영상 링크 : KBS 제공. 청와대정부서울청사 구내 TV에 나오는 것과 동일한 영상이다.

Distance_to_Dokdo.jpg
[JPG image (322.04 KB)]

울릉도와 오키 제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

울릉도 동남쪽 87.4km 해상에 있는 바위섬로, 울릉도의 고지대에서 맨눈으로 관측할 수 있는 대한민국 최동단의 섬이다. 무엇보다 일본의 다케시마(竹島) 주장으로 인한 외교 분쟁으로 유명하지만, 독도는 국제법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입증된 명백한 대한민국의 영토다.

참고로 한반도 최서단은 압록강 하구의 마안도, 한반도 최동단은 함경북도 경흥군, 한반도 최북단은 함경북도 온성군, 한반도 최남단은 전라남도 해남군이다. 한편 남한 최서단은 황해도 해상의 백령도, 남한 최북단은 강원도 고성군, 남한 최남단은 마라도이다.

한자로는 홀로 독(獨)자를 쓴다. 그러므로 영어로는 The Lonely Island 다만 이것은 한자 뜻과는 관계없이 한자의 소리를 빌려 쓴 글자로, 돌(石)의 서남 방언을 적은 것이다.독도는 경상북도인데? 실제로는 한 가운데 수로가 뚫려 있어서 동도(東島)와 서도(西島), 그리고 크고작은 96개의 부속도서로 나누어져 있으니, 노래 독도는 우리땅의 첫 소절인 '외로운 섬 하나'는 사실 잘못된 셈.외로운 섬 아흔여덟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화산섬이다. 수백만년 전 신생대에 동해에서 분출한 화산이 오랜 세월이 지남에 따라 풍화되어 화산의 모습을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된 것. 마찬가지로 화산섬인 울릉도는 여전히 화산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

독도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식생들이 많이 서식한다. 무엇보다 본래 다사자의 아종인 강치의 주 서식지였는데, 1900년대 초 일본인들의 남획으로 멸종되었다. 애초에 일본에서 1905년 독도를 점거한 표면상의 이유가 강치 때문이기도 하고, 실제로 일본인들의 강치 사냥 장면이 흑백 영상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일본어판 위키피디아에서는 한국이 독도를 요새화했기 때문에 멸종했다는 개드립 주장을 내세운다. 아무런 이론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하는 일본의 세태를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수산물과 조류는 풍부하지만, 바위산이 바다 한 가운데 솟아있는 거나 다름 없어서 지형이 가파르고 평지가 별로 없다. 게다가 식수가 꽤 부족한 편. 일단 샘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이걸로 다 충당할 수가 없는 듯하다. 면적이 그렇게 좁은 건 아닌데도 인구가 거의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

연평도 해안 포격 사태 이후, 긴급 상황 발발시 주민의 긴급한 후송 및 함정의 정박을 위해 국토해양부에서 독도를 포함한 전국 10개 섬을 국가 관리항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독도에는 기상악화에 대비한 방파제, 부두등을 신설하고 최대 5천톤 급 선박이 정박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독도경비대 및 1가구가 거주하며, 일대에 천연가스, 메탄 하이드레이트 등 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정구역상 주소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시설물로는 RKDD라는 ICAO 코드를 받은 헬리콥터 포트와 노무현 정부 시기 만들어진 접안시설, 어민숙소 등이 있다. 접안시설은 확장될 예정이다. 참고로 RK**는 대한민국의 공항을 의미하는 국가 코드이다. 일본은 RJ**.

독도에도 우체통이 있다. 중요한건, 투함된 우편물은 2개월에 한번 독도경비대함이 들어올 때 집배원이 수거한다. 서울 영등포구 기준으로 독도에서 투함한 우편물이 오는 경로는 독도⇨2개월 숙성⇨울릉우체국⇨포항우편집중국⇨대전교환센터⇨서서울우편집중국⇨영등포우체국⇨배달이다.


외부와 연결되는 교통수단은 선박이 유일하다. 울릉군/교통 항목 참고.

1.1. 역사 및 명칭 문제

독도의 역사는 울릉도와 굉장히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특히 흔히 독도 영유권의 시초라고 생각되는 '우산국'은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 모두 울릉도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독도는 조선이 세워지기 이전까지만 해도 사료상에서 전혀 언급이 되지 않았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독도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국제 사회에서 근거로 내놓을 뚜렷한 사료가 없다는 것은 아쉬운 면이다.

한편으로 울릉도 동편 바로 옆에는 죽도(죽서도)라고 불리는 별개의 섬이 존재하여, 후에 우산도가 죽서도이냐 독도이냐를 놓고 많은 논란이 된다. 특히 '울릉도 옆에 있으면서 사람이 사는 섬'의 경우 죽서도로 추정되는 경우가 많다. 혹여 고지도에 관련된 문제를 접한다면 이를 알아두는 편이 바른 이해에 도움이 된다.


이후의 한국 문헌에서도 독도에 대한 표기가 오락가락하다. 세종실록지리지의 우산도(于山島), 안용복 관련 기록의 자산도(子山島), 에도 막부와 메이지 정부의 마츠시마/송도(松島), 조선 말 고종이 말한 송죽도(松竹島), 대한제국의 석도(石島) 등등... 이 때문에 한국 측이 '이 섬은 독도다'라고 하면 일본 측에서는 '이 섬은 독도가 아니다.'라며 자료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는 대개 죽서도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는 전 근대까지만 해도 국가에서 영토로 파악하는 범위는 호구의 거주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고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는 독도를 정부 차원에서 명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1876년까지는 다케시마(竹島)가 울릉도였다는 것이다. 정작 독도는 마츠시마(松島)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울릉과 우산이 모두 우산국 땅인데 우산은 왜에서 송도라 부른다. 《만기요람》, 조선

일본에서 1박 2일 거리에 송도가 있고 다시 거기서 1일 거리에 죽도가 있어 고려가 보인다. 《은주시청합기》, 일본

이러한 혼란스러운 지리 인식은 《승정원일기》에서 이규필이 울릉도로 부임하면서 고종과 나눈 대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어쨌든 한국 측 사료상에서 독도로 추정되는 섬에 대한 기록은 15세기 초엽에 처음 나타난다. 특히 조선 태종 치세에 이루어진 일련의 울릉도 쇄출 과정에서 울릉도에 대한 지식이 축적됨과 더불어 '우산도'라는 이름으로 그 외의 섬에 대한 인지가 이루어진 것인데, 우산도라는 이름이 본래 울릉도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였으므로 다소간 울릉도와 우산도의 구분에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일본 측 사료상에서 독도로 확증되는 섬에 대한 기록은 17세기 중반에 처음 나타난다. 이는 오오야·무라카와 양 가문의 다케시마 즉 울릉도 출어 과정에서 울릉도에 대한 지식이 축적됨과 더불어 '마쓰시마'라는 이름으로 독도에 대한 인지가 이루어진 것인데, 그 위치나 거리 등의 표현에 따라 이것이 독도임을 부동의 사실로 확증할 수 있는 기록이다.

한국의 '우산도'와 일본의 '마쓰시마'로 인식되었던 독도의 존재는 17세기 후반의 쟁계 사건으로 더욱 구체화되었다. 울릉도의 영유권을 두고 한국의 조선 조정과 일본의 쓰시마 번이 첨예한 갈등을 빚었던 이 사건을 통해 이전까지 모호한 면이 있던 한국과 일본의 울릉도 인식이 완전히 정립되었는데, 이로서 한국은 울릉도에 대한 자세한 조사가 이루어져 독도의 존재를 다시금 인지하였고 일본은 '다케시마'와 그 부속 도서인 '마쓰시마'의 영유권이 조선 측에 있음을 명확히 규정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서양 함선의 해안 측량 과정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오류로 인해 졸지에 '마쓰시마'와 '다케시마' 서로의 이름이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19세기에 서양 선박들이 울릉도를 측량하는 과정에서 그만 위도와 경도를 잘못 표시해서 울릉도 서북쪽에 있지도 않은 '아르고노트'라는 섬을 하나 더 만들어버린 것사건의 발단이었다.

서양에서는 이걸 다시 일본 명칭과 대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동쪽의 다줄레(울릉도)를 마츠시마, 서쪽의 아르고노트를 다케시마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후 이것이 일본 해군성에 역수입되었다. 그런데 해군성을 제외한 원래 메이지 정부와 육군성은 여전히 에도 막부의 인식을 이어받아 울릉도를 다케시마, 독도를 마츠시마라 부르고 있었다. 때문에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정작 독도가 측량된 것은 이보다 늦은 1849년의 일로, 프랑스의 포경선 리앙쿠르 호(Le Liancourt)가 독도의 바위로 인해 난파당한 뒤로 리앙쿠르 락스(Liancourt Rocks)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이름은 현재 서양권에서 많이 사용된다. 여기에서 rocks는 암초(岩礁), 그중에서 수상암으로 섬보다 작고 사람이 살 수 없는 해면 위로 튀어나온 바위를 의미한다.

위키백과 기준으로 표기는 리앙쿠르 암 >>> 독도 정도로 차이난다.

하여튼 일본은 이러한 서구의 지리적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였고, 때문에 근대 일본에서는 'Liancourt Rocks'를 리앙꼬루도 열암(リヤンコルド 列岩)이라 번역하기도 했다. 그 결과 독도는 일본에서 한동안 서구식의 이름으로 불렸으나, 이리저리 엉켜있던 상황 속에서 공중에 붕 떠버린 다케시마라는 이름을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로 독도에 가져다 찍어버리면서 일본은 독도에 다케시마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그러나 시마네 현 고시의 '무주지' 주장과는 달리 한국은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서 "석도"라는 이름으로 독도를 근대적 영토에 편입한 바 있었고, 앞서 일본 스스로 1879년 태정관에서 처리한 문서에서 울릉도와 그 외 1도를 일본령에서 제외한 바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대한제국은 1906년 일본의 시마네 현 고시를 뒤늦게 전해받고 독도 점거에 대해서도 항의하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이미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준 식민지로 접어든 상태에서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에서는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도서로 간주하여 조선총독부 치하로 파악하였고,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독도는 다시 한국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1.2. 역사적 논쟁점


1.2.1. 세종실록지리지의 우산은 독도인가?


본문보다 주석이 문제가 되는 경우다.

우산, 무릉의 두 섬은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는데, 두 섬이 서로 멀지 않아 날씨가 청명한 날에는 바라볼 수 있다.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세종실록지리지》

일본의 와카미 겐조는 세종실록이 고려사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울릉도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 우산도를 착오로 집어넣었다고 주장했으나 이 주석으로 논파 끝. 애초에 고려사와 세종실록은 편찬 책임자부터가 동일인이다. 울릉도에 파견되어 주민의 쇄출을 집행한 김인우의 직함 또한 1차 쇄출(1416년)에서는 '무릉등처안무사'였다가, 3차 쇄출(1423년)에서는 '우산·무릉등처안무사'로 바뀐다. 따라서 당시 조선이 '두 개의 섬'을 인식했음은 분명하다.

또한 '두 섬이 서로 멀지 않다'는 내용에 힘입어, 시모조 마사오는 세종실록의 우산도가 울릉도 바로 옆의 죽도(죽서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 측에서는 '날씨가 청명한 날에는 바라볼 수 있다'는 구절에 주목하여 '울릉도에서 날씨가 굳이 맑아야만 보이는 섬은 독도뿐이다'라는 주장으로 반박하고 있다.

한편 일본의 가와카미 겐조는 울릉도에서 독도를 보려면 130m 이상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울릉도는 안개가 잦고 삼림에 덮여 있으므로 오르기 곤란했다고 주장하였다. 근데 울릉도 성인봉의 높이는 무려 984m고, 나리분지만 해도 250m에 달한다. 게다가 『고려사』에는 1157년(!)에 이미 명주도감창 김유립이 울릉도 정상에서 사방을 답사한 보고가 기록되어 있다. 참고

일각에서는 '울진현에서 맑은 날에 울릉도와 죽서도의 두 섬을 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相(서로)'이라고 하여 두 섬의 관계임을 명시한 데다가 죽서도는 아무리 보고 싶어도 울릉도에 가려서 울진현에서 안 보인다.


刷出空其也, 麟雨言, 土地沃饒, 竹大如柱, 鼠大如猫, 桃核大於升, 凡物稱是사람들을 쓸어 내보내 비웠는데, 인우가 말하기를, "토지는 비옥하고, 대나무는 크기가 기둥 같으며, 쥐는 크기가 고양이만하고, 복숭아씨가 됫박만 한데, 모두 물건이 이와 같다." 하였다.(세종실록 지리지)

이것은 일본측에서 주장하는 것인데, 독도에서는 대나무가 자라지 않고 쥐는 살지 않으며, 복숭아가 자라기 힘들고 토지는 척박하기 때문에 세종실록지리지의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1.2.2. 안용복은 거짓말쟁이?


다만 이미 그해 1월에 다케시마 도해가 금지된 상황에서 과연 일본인들이 울릉도에 출어해 있었는가 하는 것이 또 문제인데, 일본 측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안용복의 진술이 거짓이라고 단정짓고 싶어하지만 일본에서 당시 안용복을 취조한 '겐로쿠9병자년 조선주착안 일권지각서'가 발견되면서 이들은 몹시 난감해진 상황. 오컴의 면도날도 모르냐?

더군다나 안용복이 "일본의 마츠시마가 곧 자산도로 조선의 영토이다!"라고 주장한 것은 그 진술의 진위와는 상관없이 숙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안용복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자산도'를 일본인이 말하는 '송도'라고 명확히 기록했고, 이를 일본 측에서도 받아들였음이 확인되기 때문. 이것이 일본 문서에서도 확인되면서 전근대 영유권 주장에서 한국 측이 한 발 앞서나가게 되었다.

  • 이 도 안에 다케시마와 마츠시마가 있다

겐로쿠9병자년 조선주착안 일권지각서에서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언급이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江原道(カンヲンダウ) 此道竹嶋松嶋有之

한국에서는 이 문장을 '강원도(이 도 안에 다케시마와 마츠시마가 있다)'라고 해석하고 있으나, 일본측에서는 이 서술을 1. 날조라고 치부하거나 2. 안용복의 망상을 받아적은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거나 3. '강원도(여기로 가는 도중에 다케시마와 마츠시마가 있다)'라고 해석하거나 한다. 어째 지들끼리도 말이 안 맞냐 1 2

'여기로 가는'이라는 표현을 '此'라는 한 글자로 나타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제껴두고, 저 한자들만 봤을 때는 이렇게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쳐 주자. 그러나 정확한 원문표기는 "此道竹嶋松嶋有之"로, 한문을 일본어로 읽기 쉽게 한자 옆에 붙이는 토씨인 오쿠리가나까지 포함해서 일본어로 읽으면 "此の道の中に竹嶋松嶋之有り"라고밖에 못 읽는다. 즉 어떻게 해도 道中을 '도중'이라고 붙여 읽을 수가 없다.

여기에 혹자는 '안'이라는 단어를 표기하기 위해서는 中이 아닌 內를 써야 한다고 하지만, 글쎄올시다? 어쨌든 원문을 보면서 판단하자. 참고로 이 문서에는 논란이 되는 문장 외에도 안용복이 설명한 다케시마와 마츠시마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기술이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一 安龍福申候ハ竹嶋ヲ竹ノ嶋と申朝鮮国江原道東莱府ノ内ニ欝陵嶋と申島御座候是ヲ竹ノ嶋と申由申候則八道ノ図ニ記之所持候
一 松嶋ハ右同道之内子山と申嶋御座候是ヲ松嶋と申由是も八道之図ニ記申候
* 안용복이 말하길, 다케시마를 다케노시마라고도 한다. 조선국 강원도 동래부 안에 울릉도라고 하는 섬이 있으며, 이를 다케노시마라고 하는 까닭에라고 말해, 팔도지도에 기록해 이를 소지하고 있다.
* 마츠시마는 상기한 도(道) 중에 자산이라고 하는 섬이며, 이를 마츠시마라고 하는 까닭에 이도 팔도지도에 기록했다고 말했다.

1.2.3. 기타 쟁점


  • 지도상의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다?

    1711년에 수토관으로 파견된 박석창이 보고서에 첨부한 「울릉도도형」에 우산도가 그려져 있으나, 동쪽 한가운데 있는 섬에 '해장죽(海長竹. 대나무의 일종) 밭. 이른바 우산도.'라고 표기하고 있다. 문제는 독도의 지형에는 '밭'이라고 표현할만한 평지가 없어서 일본 학계에서는 조선에서 기록한 우산도가 현재의 죽도라는 유력한 증거로 보고 있다. 사실 우산도 = 죽서도의 시각이 유력해 보이는 몇몇 기록들은 한국 측의 가장 큰 약점이긴 하다.

  • 하치에몬 사건 이후 설립된 팻말 문제

    1837년 2월에 에도 바쿠후의 명령으로 다카다번이 니가타현 지역 해안가에 세운 도해금지령 팻말에는 '이번에 하치에몬이 다케시마(竹嶋)에 도해한 사건을 검토한 결과, 오른쪽의 섬(右嶋)은 겐로쿠 시대부터 도해정지를 명령한 곳이다. 오른쪽의 섬(右嶋)은 항해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데, 여기서의 '다케시마'는 엄연히 울릉도이다. 때문에 국내에서는 뒤의 '오른쪽의 섬'을 독도로 보려는 주장이 여론몰이에 들어갔지만, 실제로는 문맥에 따라 '위에서 말한 섬'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이 팻말은 2010년에 한국인 사업가가 구입하여 국내로 가져왔다.

  • 내무성지령서의 다른 한 섬은 독도가 아니다?

    1879년 '태정관문서'로 불리는 독도 관련 문서의 '다른 한 섬'은 지금의 죽도이고, 질의서 부속문서의 '다음으로 한 섬'은 독도로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킨다는 주장. 하지만 질의서에서 'XY'에 대해 물었으면 지령서에도 'XY'를 가리킨다고 보는 게 정상이며, 애시당초 질의서와 지령서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질의서 말미에 지령을 휘갈겨 써놓은 것이다. 따라서 질의서의 '두 섬'과 지령의 '두 섬'은 같은 섬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저것은 질의서와 질의서 부속문서의 '두 섬'이 각기 다른 의미라는 말이 되는데… 말이 되냐!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실제로 편찬된 시마네현 지도를 찾아보면 간단한 일이긴 하다. 참 쉽죠?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러스크 서한 문제

    만약 미국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독도 문제를 확실하게 언급하였다면 이러한 무구한 논쟁은 아예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미국에는 그럴 의향이 없었다.

1.3. 독도 관련 조약


1.3.1. 독도 밀약


박정희가 집권 당시 한일협정 전에 일본과 독도에 관한 비밀협정을 맺었다고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고 한다.

1. 독도(다케시마)는 앞으로 한일 양국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고, 동시에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2. 장래에 어업구역을 설정하는 경우 양국이 독도(다케시마)를 자국 영토로 하는 선을 획정하고 두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수역으로 한다.
3. 현재 한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의 건축이나 증축은 하지 않는다.
4. 양국은 이 합의를 계속 지켜 나아간다.

다만 관련 당사자 모두는 밀약의 존재를 부정한다. 일본 정부에서는 이 밀약의 존재를 부인으로 일축했고 영토문제를 밀약으로 거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발표했다. 태프트-가쓰라 밀약과 같이 과거에 행한 수많은 밀약은(...) 이 밀약은 증거가 남아있지 않고 증인들의 증언으로 재구성되었다고 한다.

이 밀약은 독도가 이미 완전히 한국 영토인데도 일본과의 영토 분쟁을 협정으로서 허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는 주장이 있다. 후술하는 어업 협정과는 성격이 다른데, 이는 영토 주장을 묵인한 것이기 때문. 월간중앙에서 보도하였다.#

이후 김대중 정부 때 외환위기로 차관이 궁했던 것 처럼 당시 정권의 경제성장을 위해 차관 6600만불을 일본으로 부터 받아오기 위한 밀약이라고 주장되지만 같은 해 1965년 6월 경에 미국이 한-일 독도 공동 영유를 설득했다는 기밀 문서가 나온 것으로 보아 녹록치는 않았던 듯. 미국의 기밀 문서에 의하면 한-일 공동 등대를 건설하는 등 공동 영유권을 설득했으나 박정희 대통령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축했다고 전해진다.

1.3.2. 한일어업협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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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64.94 KB)]


IMF 직후 급하게 국제사회에서 차관을 빌려야 하는 김대중 정부 하에서 일본이 일방적으로 기존의 한일 어업 협정을 파기하자 동해에 해양 순시선을 배치하여 양측이 서로 상대방의 어선을 나포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심지어 국내 어선이 일본 해양순시선에 그대로 들이받혀 침몰하기도 했다.

이 어업협정은 사실 김영삼, 김대중 두 정부에 걸친 산물이다. 1997년 7월 배타적 경제수역의 기점을 울릉도로 하겠다는 발표를 했고 1997년 10월 당시 김영삼 정부는 잠정공동수역안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여 독도를 중간수역으로 하기로 일본과 합의했다. 잠정조치수역은 독도 중간수역이다. 김대중 정부는 이를 이어받아 대화퇴 어장 등, 독도와 전혀 상관없는 쪽의 협상을 진행했다. 참고기사 참고기사2

새로운 한일어업협정이 문제가 되는 점은 독도가 일종의 "중간수역"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주장하는 독도 기점 EEZ와 일본에서 주장하는 독도 기점 EEZ에서 겹치는 부분이 중간수역으로 정해진 것. 이 협정에 대해 '독도는 명확한 한국령인데 무슨 조치이냐', '일부라도 독도 관련 권리를 내준다는 것이 향후 영유권 문제에 불씨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반응이 들끓었고, 어민들은 헌법 소원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01년과 2009년 두차례에 걸쳐서 "이 협약은 어업과 관련된 분야만을 정의하기 때문에 이 협약이 영토권을 침해한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실제로 1982년 해양법에 관한 UN 협약의 제58조 제3항을 보면, 배타적 경제수역은 경제 주권으로서의 영해적 수역이면서 공해적 수역이기도 하다.

다만, EEZ를 완전한 공해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서해, 동해에서 주변국과 EEZ로 관련되는 상황에서, 국가의 이익한계선을 단순히 공해로 생각한다면, 한 국가의 경제주권등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즉 모든 영토는 12해리 영해를 가지지만, 모든 영토가 200해리 EEZ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EEZ 등을 표기한 지도를 보면 중간수역 가운데 울릉도 주변 12해리가 동그랗게 비어있다. 영해에서 해당 국가는 모든 활동의 독점권을 보유하며, EEZ에서는 해당 국가는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데, 보통은 어업권을 보유한다.

이에 관해서는 세계적으로 여러가지 분쟁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19세기부터 지속된 영국아이슬란드 간의 Cod war가 있다. 아이슬란드의 EEZ를 보면 그만한 섬들이 EEZ의 기점이 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국제법상으로는 섬을 사람이 거주하며 경제활동이 가능한 섬(island)과 그렇지 못한 암초(rocks)로 구별하며, 전자에 대해서는 EEZ가 인정되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EEZ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독도는 EEZ 기점'이라고 하면 논란의 여지가 있다. 독도본부 등에서는 "독도는 사람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국제법상으로도 훌륭한 유인도이므로 울릉도와 같은 대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독도는 국제법상 섬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볼 때는 만약 중간 수역을 정하지 않고 울릉도와 오키섬 기점으로 EEZ를 절반으로 분리 시 독도는 대한민국 단독의 EEZ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화퇴 어장 등 수자원이 풍부한 독도 동쪽 지역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명분과 실리 중 한쪽은 잃을 수 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또한 IMF를 맞았던 당시 상황상 대외 차관 문제가 걸려 있어 강경 드라이브를 걸기 힘든 면도 없지 않았다. 결국 협상의 장기화를 막기위해 현재 독도의 국제법적 지위를 그대로 건드리지 않고 어업에만 협정의 효력을 한정하기로 했다.

  • 제 15조 : 이 협정의 어떠한 규정도 어업에 관한 사항외의 국제법상 문제에 관한 각 체약국의 입장을 해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아니된다.

또한 협정의 만료일을 3년으로 정하고, 그 이후에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넣었다.

  • 제16조 2항 : 이 협정은 효력이 발생하는 날부터 3년간 효력을 가진다. 그 이후에는 어느 일방체약국도 이 협정을 종료시킬 의사를 타방체약국에 서면으로 통고할 수 있으며, 이 협정은 그러한 통고가 있는 날부터 6월후에 종료하며, 그와 같이 종료하지 아니하는 한 계속 효력을 가진다.

따라서 2014년 현재는 이미 일방의 의지만으로 어업협정은 파기가 가능하다.

1.4. 독도 문제가 중요한 이유


이 작은 섬이 이렇게나 큰 논란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섬이 가지는 역사적 상징성이다.

일단, 한국에서는 독도를 제국주의 시절 일본에게 강탈당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제국주의 시절 점령했던 영토의 주권을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역사 자체를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일본 제국주의 시절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실제로 제국주의 마수를 처음으로 뻗치던 첫 땅, 일 전쟁 당시 첫 거점 바로 독도를 노린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본은 러일 전쟁 당시 독도를 임시등대로 사용했다.

일제강점기를 몸으로 겪어보지 못한 신세대들의 반일 감정은 많은 경우 이 문제에 기인한다. 한 설문 조사에선 과거사 문제와 근소한 차이로 2위를 했을 정도. 그만큼 한국인들이 독도 문제에 민감하다는 말이다. 일기 예보나 세계 지도에도 다른 자잘한 도서 지역들은 무시하면서 독도만은 표기 하는건 이것 때문이다. 한반도기도 다른 섬은 다 안그려놓으면서 울릉도와 독도 만큼은 그려놓는다(....) 그렇지만 사실 울릉도 독도보다 사람이 많이 살고 중요한 섬은 너무 많다!! 섬은 아니지만 이어도라든지

반면에, 일본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들은 독도와 제국주의 문제는 관련없는 것으로 본다. 일본 측의 입장은 한일병합이 이루어지기 전, 그리고 1905년 시마네 현에 편입되기 이전에 독도는 한국이 지배한 적 없는 무주지(無住地)였다고 본다. 또 이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러스크 서한에서 확인되었기에, 한국을 식민지화한 것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전후, 러스크 서한에서 미국이 독도를 한국 땅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이승만은 이승만 라인으로 알려진 화선을 설치해 독도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일본 측의 살상자가 나왔고, 이로서 '한국의 독도 무력점거'의 근거가 생기가 된 것이다. 따라서, 일본 측은 한국이 독도와 연관되어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것을, 과거사를 아무런 관련 없는 쟁점에 이용해서 외교적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도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일본의 고의적인 오해에서 비롯된다.

즉,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제국주의 역사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고, 독도 영유권과 제국주의 역사는 관련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적극적으로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일수록 제국주의를 긍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다.

어찌되었든, 한국 입장에서는 독도는 1905년 이전에도 한국의 근대적인 지배권이 미치고 있던 땅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득해야만 이러한 오해를 풀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우리 땅이니까 우리 땅이라는 단순한 주먹구구식 논리가 아니라, 우리부터 독도에 대해 바로 알고, 이를 논리적으로 민간 외교를 통해 외국에 알리고 일본의 조작된 논리를 비판하는 것이다. 실제로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열을 올리면서도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는 제대로 설명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근거가 뒷받침하지 못하는 주장은 제 3자 입장에서는 선동일 뿐이고, 세계 무대에서 선동에 대놓고 넘어갈 만큼 녹록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행동은 오히려 역효과만 잔뜩 부채질할 뿐이다. 국내에서도 논리싸움에서 깨지고 일빠로 전향한 사람이 소수지만 존재한다. 인조이재팬이 존재했을 당시에 특히 두드러졌던 부류이고 지금도 가끔씩 찾아볼 수 있다.

독도는 분명 한국의 소중한 영토이고 상징적인 의미가 큰 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무조건 강요하기만 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또한 엄밀히 말해서 그것이 일본 전체에 대해서 적개심을 품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극우 혐한들이 날뛴다고 똑같은 짓을 해서야 되겠는가? 피장파장의 오류

우리나라 사람이든 일본을 비롯한 외국 사람이든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것에 대해서 잘못된 사실을 알고 있거나 명확한 근거를 요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있다면 무조건 감정적으로 몰아붙이기보다는 제대로 된 근거를 통해 명확하게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이 옳은 일이며 훨씬 이득이다. 어려울 것도 없다. 지금 보고 있는 엔하위키의 독도 관련 항목에 수록되어 있는 정도만 대략적으로 알아놓아도 일반적인 수준에서 해명하기에는 충분하니 참고하자.

요즘은 이에 발맞추에 논리적인 비판 내용을 담은 독도 대중서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으로 귀화한 일본인 호사카 유지 현 세종대 교수가 쓴 '우리역사 독도'. 김경진이 쓴 소설 독도왜란도 마지막권 후반부에서 상당한 쪽수를 소모하여 이 부분을 한일 양국의 네티즌들이 토론하는 모습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결과는 철저한 논리와 역사적 사료로 인해 일본 넷우익의 참패/자폭.

가수 김장훈안부와 독도 문제를 일본에 제기했던 사카 유지 교수가 함께 독도 전문 사이트를 개설했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 국어를 지원한다. www.truthoftakeshima.com라는 주소도 2012년 8월 확인 결과 http://www.truthofdokdo.com/ 로 리다이렉트 된다.


  • 독도에 군대가 주둔하지 않는 이유

2011년 8월 14일, 한나라당의 홍준표 대표가 울릉도에 해병대 1개 중대를 배치시키고 한 달에 1개 소대씩 독도 순환 근무를 실시하자는 제안을 냈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 군부대가 배치 되면 분쟁지역화를 공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유로 지금껏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사실상 독도 문제는 국내 정치용 떡밥으로 위치가 커져있기도 하고. 다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꾸준히 근거자료는 확보하는 것이 좋다.

1.4.1.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문제


일본은 계속해서 독도문제를 제사법재판소(ICJ)에서 국제법으로 해결을 보자고 도발을 하고있다. ICJ에 자국적 재판관이 있고 일본이 ICJ에 독도를 제소해서 최소한 손해볼 일이 없고 표면적인 명분상으로도 그럴듯 한 일이다. 물론 고유영토를 아무런 이익이 없는 ICJ 제소에 동의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한국은 ICJ의 강제관할권을 유보했기 때문에 ICJ는 임의로 독도문제를 재판할 수 없으며 결론적으로 한국의 동의가 없는 이상 ICJ제소는 불가능하다. 독도를 ICJ 제소하기 이전에 센카쿠 열도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방침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애초에 ICJ 제소는 그냥 도발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일단 대한민국이 독도를 실효지배 하는 이상 지나치게 민감하고 감정적인 대응으로 심한 분쟁화를 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라 할 수 없다. 독도가 분쟁 지역이 되는 것 자체가 일본의 전략이기도 하거니와, 대한민국은 노무현 정부 때 이미 영토분쟁에 관한 국제 해양법 재판소에 강제관할을 유보하였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이 제소에 동의하지 않는 이상, 독도 문제는 국제 해양법 재판소에서 판단될 여지가 없다.

덧붙여 대한민국은 1991년 제사법재판소 가입시 강제관할권을 유보해 우리가 소에 불응하면 국제사법재판소에서도 재판이 이루어질 수 없다. 물론 이걸 유보하는 동안에는 다른 영토 분쟁에 대해서도 대한민국도 독자적으로 국제 해양법 재판소에 제소가 불가능하지만, 대한민국의 독도 실효지배가 유지되고 현실적으로 독도를 능가하는 영토 분쟁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만약에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타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영토에 관한 문제일 가능성은 적다.

따라서 현재 당장 우리나라가 국제법을 활용해서 재판을 해야할 필요성은 최소한 2014년 현재 기준으로는 없다. 추후에 중국과는 간도, 일본과는 대마도가 될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실익이 적거나 거의 없다.

다만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는 분쟁에 대해 UN은 국재사법재판소를 통해 해결할 것을 권고할 수 있는데 소설 「독도 인 더 헤이그」는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일간에 무력충돌을 빚고 국재사법재판소로 가는 가정을 담고 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도 이러한 가능성을 제기한적이 있다.

적어도 현재 일본과 전쟁을 하지 않는 이상, 독도의 영유권이 갑자기 일본에 넘어가는 일은 없으니 냉철한 사실관계에 근거한 주장, 홍보를 떠나 지나치게 감정적인 대응으로 분쟁화를 유도하는건 삼가는 것이 좋다.

강제관할권을 인정하는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게 강제관할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만에 하나 이를 한국정부가 인정하더라도 일본이 강제관할권을 인정한 날짜 이전의 문제에 대해서는 강제관할권의 적용을 면피했기 때문에 독도문제의 강제관할권 역시 적용이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뭐가 됐든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일방적인 제소는 절대 불가능하다. 일본정부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1.4.2. 승목외교관의 독도영유권 대담


1996년 6월 14일 승목외교관은 당시에는 외무부로 불렸던 부서인 외교부에 근무하던 중, Mr Thierry Mormanne[1]라는 프랑스 국제법 학자와 독도 문제에 대해서 대담을 나눈 적이 있다. 여기서는 독도가 1905년 이전 한국령이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외한 주요 대담만 소개한다. 전문은 직접 보기를 권한다. 블로그 링크

단, 홍승목 전 외교관은 이것은 개인 입장일 뿐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내용을 보면 적절히 역지사지식으로 상대방을 압박하면서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

  • 독도 관련 자료? 그런 거 없다

Mormanne : 일본에서 독도 영유권분쟁을 연구 중이다. 일본 측의 자료는 충분히 연구하여 그 입장을 잘 알고 있으나, 한국 측의 시각은 일본의 자료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입장을 직접 듣고 싶어서 왔다. 학자들과도 대화를 나누었지만, 당신을 만나보라는 권고를 받았는데 시간을 내 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가능하면 영문으로 정리된 자료를 구하고 싶다.

홍승목 : 구하는 영문 자료는 없다. "독도문제는 일본의 주장에 대꾸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외국인을 위한 홍보자료는 만들지 않은 것 같다.

Mormanne : 이해할 수 없다. 아무런 할 말이 없다는 뜻인가? 한국의 입장을 구두로라도 설명해 줄 수 있는가?

홍승목 : 1965년 한ㆍ일 기본협정 체결 회담 이래 지난 30여 년 간 한국 측의 입장은 "국제법적으로, 역사적으로 너무나 당연히 한국의 영토이므로 사소한 트집에 대꾸하지 않는다."는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의문이 나는 사항에 대해 '개인적' 시각으로 답해 줄 수는 있다.

  • 국제사법재판소에 갈 이유? 그런 거 없다

Mormanne : 일본은 독도분쟁을 재판으로 해결하자고 하는데 비해, 한국은 이를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분쟁을 국제재판에 의해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일본의 입장을 한국은 왜 거부하나? 단적으로 한국이 법적으로는 자신이 없다는 증거가 아닌가?

홍승목 : "일본은 재판에 의한 해결을 희망하는데 한국은 이를 반대한다."는 인식은 상당히 왜곡된 것이다. 일본 정부의 홍보를 듣는 기분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본은 제사법재판소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이하 ICJ)에 가자고 했고 한국은 이를 거부했을 뿐이다. 즉, ICJ라는 특정의 법정에 가는데 대해 이견이 있었을 뿐이다.

Mormanne : 한국은 ICJ에 가는 것을 거부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뜻인가?

홍승목 : 물론이다. 아마도 ICJ에 가더라도 한국이 이길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두 가지 특별한 이유로 ICJ에 가야만 자신에게 약간이나마 승산이 있다고 보아 ICJ를 고집하는 것이고, 한국은 굳이 불공평하다고 느끼면서 ICJ에 갈 이유는 없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우선 일본은 "ICJ에 의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면서 중국과의 '댜오위다오 (釣魚島, 금어도) 분쟁', 즉 일본인들이 말하는 ‘센카쿠 열도 (尖閣列島, 첨각열도) 분쟁’은 ICJ에 가야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 일본의 이중잣대

Mormanne : 실효적으로 일본이 점유하고 있으니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홍승목 : 자기네가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재판에 갈 수 없고, 상대방이 실효적 점유를 하는 경우에만 재판에 가자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비슷한 문제를 두고 일관성이 없는 것이 좀 수상하지 않은가?

Mormanne : 일관성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도 있다고 본다. 상대방이 점유 중인 독도 문제는 ICJ에 가져가지 못하면서,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 (尖閣列島, 첨각열도) 문제만 ICJ에 가져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으니 ICJ에 가지 않으려는 점에서 한국도 일본과 비슷하다고 보는데…

홍승목 :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소위 러시아와의 북방 영토 문제에서는 러시아가 해당 섬들을 점유하고 있으므로 일본은 적극적으로 ICJ에 가자고 해야 할 텐데, 오히려 러시아가 적극적이고 일본은 러시아의 제의를 거부하고 있지 않은가?

Mormanne : 사실이다. 무슨 이유라고 보는가?

홍승목 : 간단하다. 일본은 ICJ에 판사가 있는데 한국은 없으니, 한.일간 문제는 ICJ에 가는 것이 명백히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ICJ에 각각 판사를 두고 있으니 일본이 ICJ에서 아무런 이득을 기대할 수 없고, 이득 없이는 ICJ에 못 가겠다는 것이다.

"ICJ에 가면 불공평하니까 못 가겠다"는 한국과, "이득 없이 공평한 조건으로는 ICJ에 못 가겠다"는 일본이 어떻게 같이 취급될 수 있는가?

Mormanne : 흥미 있는 관점이다. 일본이 ICJ를 고집하는 이유가 두 가지라고 했는데 나머지 한 가지는?

홍승목 : ICJ의 보수적 성격상 ‘구시대의 악법’이라고 할지라도 명백히 무효화되지 않은 이상 그 타당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법’을 엄격하게 적용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독도편입 조치는 제국주의.식민주의의 일환이며, 이는 당초부터 무효"라는 것이 한국의 입장이다.

그런데 일본은 "독도를 영토로 편입한 조치는 식민주의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내심으로는 보수적인 ICJ가 적어도 1905년 일본의 독도편입 당시에는 식민주의에 의한 조치도 합법이라고 판단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 ICJ가 "식민주의는 법적으로 무효"라는 확인을 받기 위해 독도를 판돈으로 내 걸 생각은 없다.

  •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니까 한국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Mormanne : 조그만 섬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양국간에 독도문제가 돌출되면 일본의 언론은 비교적 냉정을 유지하는데 한국의 언론과 국민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홍승목 : 일본의 언론이나 국민이 냉정할 수 있었던 것은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자기네 정부의 주장이 무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네들이 말하는 소위 북방 영토와 관련하여 유사한 상황이 벌어져도 일본의 언론이나 국민이 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오히려 러시아 국민이 냉정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 때 "러시아 국민은 점잖은데 일본국민은 왜 이렇게 신경질적이냐?"고 물어 볼 것인가? 일본이 3개 영토문제중 독도 문제에 한해서만 재판(ICJ)에 가자고 요구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당초부터 일본의 영토가 아니니까 패소해도 잃을 것은 없고 어쩌다가 이기면 순이익이라는 계산 때문이다. 한국을 식민 지배했으니 자료입증 측면에서도 월등 유리한 입장이고…

그러나 소위 북방 영토센카쿠 열도 (尖閣列島, 첨각열도) 문제에서는 패소하면 낭패라고 생각하여 감히 재판의 위험부담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독도문제에 관한 한, 일본으로서는 일종의 부담없는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이 스스로 주장하듯이 진정으로 "분쟁의 평화적 해결" 정신을 존중한다면 먼저 북방 영토 문제나 센카쿠 열도 문제를 ICJ에 가져가는 것을 보고 싶다. 일본이야말로 ICJ에 가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 이유도 없는데…

Mormanne : 일본은 그렇다고 치고, 그래도 한국의 언론이나 국민이 그렇게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제3자로서 이해하기 어렵다. 솔직히 "자신이 없으니까 과민반응을 보인다"는 외부의 시각이 있는데…

홍승목 : 독도문제를 단순한 영토분쟁으로 인식하면 그런 의아심을 가질 수도 있다고 본다. 하나의 조그마한 무인도의 영유권 문제이니까… 실제로 일본국민 입장에서는 조그만 무인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비교적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고…

그러나 한국국민에게는 독도가 ‘주권과 독립의 상징’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20세기 초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 때 제1단계로 1905년에 독도를 빼앗고, 그 5년 후에 제2단계로 나머지 전국토를 빼앗아 식민지화를 완성하였다.

일본이 "다케시마(竹島, 죽도)는 일본영토" 운운하는 것이 한국국민에게는 "너희는 아직 완전히 독립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우리의 식민지이다. 제2단계에서 식민지로 된 땅이 해방된 것은 인정하지만 이에 앞서 식민지가 된 독도를 언제 해방시켜 주었느냐. 아직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모욕을 받고 냉정해질 수 있겠는가?

독일이 지금 와서 프랑스더러 "파리나치 독일의 점령에서 해방된 것은 인정해 주겠지만, 알자스, 로렌은 돌려받아야 하겠어. 파리가 점령되기 전에 이미 독일이 점령한 것이잖아!" 한다면 프랑스 국민이 점잖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재판으로 해결하는 게 좋겠어" 라고 할 수 있을 지 궁금하다.

  • 독도는 무주지(無主地)가 아니었다

Mormanne : 한국은 일본의 ‘1905년 영토편입조치’가 무효라고 주장하지만, 독도가 1905년 이전에 이미 한국의 영토라는 근거는 충분한가?

홍승목 : 한 가지 물어보자. 일본의 주장대로 독도가 1905년까지는 주인 없는 땅이었을 가능성이 정말 있다고 보는가?

Mormanne :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홍승목 : 참으로 식민주의적인 발상이다. 20세기에 와서 태평양의 외떨어진 곳에서 "새로 발견된 땅"이라면 몰라도 한ㆍ일 두 인근국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이미 수 세기 전부터 한ㆍ일 양국 국민이 그 섬의 존재를 잘 알면서 그 부근에서 어업을 해 왔다면 두 나라 중 한 나라의 영토라고 보는 것이 상식 아닐까?

1905년에 정말 무주지였다면 영국이든 러시아든, 아니면 쿠바이디오피아든 아무 나라나 먼저 독도를 자기 영토로 편입할 수 있었다는 논리인데… 타당한가? 만약에 이러한 나라가 20세기에 독도를 무주지라고 선언하면서 ‘영토편입’ 조치를 했으면 과연 일본이 이를 인정하였을까?

Mormanne : 인정하기 어려웠겠다.

홍승목 : 두 나라 입장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일본의 입장은 "1905년에 독도는 ‘임자없는 땅’이었으므로 어느 나라든 선점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한국의 입장은 "1905년에 이미 인근국가인 한․일 양국 가운데 한 나라가 영유권을 확보하였을 것이므로, 양국 중에서 과연 어느 나라의 영토였는지를 확인해 보면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본의 입장은 서구의 식민주의 개념에 따른 것이고, 한국은 식민주의를 거부하는 입장이다.

독도의 지리적 위치와 규모를 감안할 때, 독도에 관한 기록이 한국이나 일본의 영토에 속하는 다른 유사한 섬에 대한 기록의 수준에 이르면 일단 독도는 무주지는 아니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의 경우 영토에 속한 섬은 별도의 이름을 가진 것만 해도 수백 개에 이른다.

그런데 독도는 조그마한 무인도로서 그 자체의 경제적 가치는 거의 없는데도 영유권을 입증할 역사적 기록은 다른 유사한 섬에 비해 비교적 풍부하다. 이것만으로도 무주지의 논리는 당연히 배제되어야 한다. 1905년을 기준하여 일본이 한국보다 더 강하게 영유권을 주장할 근거가 있는지를 한ㆍ일 양국의 자료를 종합 검토하여 판정하면 되는 것이다.

Mormanne : 1905년 일본의 영토편입 조치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뜻인가?

홍승목 : 아니다. 중요한 역사적 사실인데 "전혀 없었던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식민주의에 입각한 영토편입 조치에 대해 "법적 효과"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독도를 무주지라고 선언하여 "그 때까지는 자기네 영토가 아니었던" 점을 명백히 한 것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므로 없었던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Mormanne : "일본에게 유리한 것은 인정할 수 없고 한국에게 유리한 것만 인정해야 한다"는 뜻인가?

홍승목 : 이상한 질문이다. 간단한 비유를 들겠다. 협박이나 사기로 남의 집을 뺏은 경우에 법적으로 소유권 취득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여 당초부터 범죄행위도 없었던 것으로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범죄행위의 동기도 있을 것이고... 요컨대, 불법행위에 대해 법적 효과를 부여하지 않아야 하지만, 불법행위 자체나 그 동기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Mormanne : 결국 한국의 입장은 "독도는 1905년에 이미 일본이나 한국 중에서 한 나라의 영토라고 보아야 하는데, 일본은 무주지라고 하여 자기네 영토가 아니라고 인정했으니까, '반사적으로' 한국영토라야 한다."는 것인가? 1905년에 이미 한국영토였음을 한국이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구체적인 입증 부분은 블로그 링크 참조.

  • 일본의 고유영토설

Mormanne : 일본은 독도가 "1905년 편입조치 이전부터 일본의 고유의 영토이고 1905년에는 시마네 현에 편입시켰을 뿐" 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 '고유영토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홍승목 : 거짓말을 하다가 들키자 더 큰 거짓말을 해서 어려움을 모면하려는 유치한 발상이다. 더욱이 그 거짓말끼리 서로 모순되니…

Mormanne : 매우 강한 어조인데 상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홍승목 : ‘고유영토설’이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과거의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효력에 의문이 생기자 종래의 ‘영토편입설’을 보강하기 위해 갑자기 지어낸 것이다.

이웃사람이 어느 날 "고아를 발견하였기에 내가 데려다 키우기로 했다."고 하다가 나중에 강도유괴 행위가 발각되자 "그 아이는 전부터 내가 키우고 있던 아이"라고 떼를 쓴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어처구니는 없지만, "꼭 그렇다면 "전부터"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인가, 어떻게 입증되는가, 이미 키우고 있었다면서 왜 새로 데려왔다고 했나" 등을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일본이 1905년에는 독도가 '무주지'라고 하면서 영토편입을 했다가 이제 와서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는데, 그러면 '언제부터' 일본 영토라는 말인지, 주장 근거는 무엇인지, 1905년에는 왜 '무주지'라고 선언했는지, 일본에 돌아가면 문의해 보라. 아마 아무런 입장조차 없을 것이다.

독도에 관한 일본측의 최초의 기록은 1667년의 '온슈시초고끼(隱州視聽合紀, 은주시청합기)'인데 "울릉도, 독도는 한국의 영토"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일본측의 사료에 울릉도ㆍ독도가 기록되었으니 자기네 영유권의 근거가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프랑스도 미리부터 조심하는 게 좋겠다. 일본 책에 ‘프랑스의 파리(Paris)’라는 기록이 많을 텐데 언젠가 일본이 "파리가 일본 책에 기록되어 있으니 이는 일본영토라는 증거"라고 우길 때가 올 지 모르니…

Mormanne : 1905년에 분명히 '무주지'라고 하면서 '영토편입' 조치를 했나?

홍승목 : 1905년 일본내각이 독도에 관해 채택한 결정의 요지는 "영토편입을 하라는 어느 개인의 청원을 접수한 것을 계기로 … 검토한 결과 타국의 영토라고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되어 … 국제법에 영토편입으로 인정될 조치를 한다."는 것이다. 자기네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것을 여러 가지로 밝혔다. "영토편입 청원"이라든가 "타국의 영토라는 증거" 운운, 그리고 "국제법상 인정될 조치"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한국의 영토"인줄 너무나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무주지라는 표현조차 차마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던 한국의 영토를 강탈하면서 편법상 무주지 취급을 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정부가 정말로 무주지로 인식하여 영토편입을 하는 경우에는 이해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나라에 사전 통보한 후 편입하거나, 적어도 관보에 게재하여 나중에 문제가 대두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독도에 대해서는 가장 가까운 나라로서 긴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나라인 줄 알면서도 한국에 대해 편입조치를 숨겼고, 한국이 알게 될까 불안하여 관보게재도 피하였다. 도둑이 물건을 훔쳐가면서 주인이 알지 못하도록 조심하는 것과 같다. 편입조치를 한국에 숨기려다 보니 일본국민조차 그 사실을 잘 몰라서 편입조치 후에도 독도를 계속 한국의 영토로 표시한 일본사료가 발견된다.

이제 와서 식민주의가 힘을 잃고 1905년의 영토편입 조치로는 통하기 어렵게 되고 오히려 "1905년까지 영유권이 없었다"는 불리한 증거가 되니까 '고유의 영토' 라고 한다. 자기 영토를 왜 새로이 자기 영토로 편입해야 하는지, 자기 영토를 처리하는데 왜 국제법이 거론되는지 도무지 설명을 하지 못한다.

"고유" 라는 것이 언제부터인지도 말 못하고 … 입증할 수가 없으니 말할 수가 없지. 거짓말이 힘을 잃자 새로운 거짓말을 꾸몄는데, 앞의 거짓말과 모순되면 "먼저 한 말은 틀렸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텐데, 뒤에 한 말이 거짓인 줄 드러날 경우에 대비해 "어쩌면 앞에 한 말이 사실일 수도 있고..."라고 한다.

지난 40여 년 간 독도문제에 관해 국제적으로 일본이 자기의 일방적 주장을 하도록 내버려두고 한국은 입다물고 조용하게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워낙 (일본의) 주장이 약하니까 국제적으로 수긍을 받지 못하고 있다.

  • 다케시마와 마쯔시마

Mormanne : 변방 섬의 이름이나 크기, 위치가 정확하지 못한 것은 근세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 '다케시마(竹島)'와 '마쯔시마(松島)'가 가리키는 섬이 중도에 서로 바뀌었다는 이론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홍승목 : "러시아의 지도제작자가 착오로 이름을 서로 바꾸어 붙인 것이 계기가 되어 두 섬의 이름에 혼란이 왔고 궁극적으로는 이름을 서로 바꾸게 되었다."는 주장인데,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물론 독도가 자기네 영토가 아니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고...

Mormanne : 방금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고 설명하지 않았나?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보는데...

홍승목 : 바뀌는 배경이 전혀 다르다. 혹시 자녀가 있나?

Mormanne : 있는데...

홍승목 : 만약 지나가는 사람이 착각하여 당신 아이와 옆집 아이의 이름을 바꾸어 부르면 당신 아이의 이름을 버리고 옆집 아이의 이름을 쓰겠는가?

Mormanne : 아하, 무슨 뜻인지 알겠다. 그러니까 일본이 "유럽의 지도제작자의 실수를 계기로 하여 이름을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는 것은 두 섬이 모두 자기네 섬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뜻이 아닌가?

홍승목 : 백 번 양보하여, 두 섬이 모두 자기네 섬이었다면 그럴 가능성이 아주 약간은 있었다고 하자. 그러나 울릉도가 한국의 섬인 것을 명백히 인식하면서 독도와 그 이름을 서로 바꿔치기 한 것은 확실히 독도도 한국의 영토인 줄 알았거나, 적어도 자기네 영토는 아니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것 아닌가? 자기네 섬의 이름과 외국 섬의 이름이 서로 바뀐 것을 보면 항의하거나 기껏 무시해 버리는 것이 상식일텐데... 일본은 왜 이렇게 "우리 조상들이 몰상식하여서..." 하면서 스스로를 폄하하는지 모르겠다.

Mormanne : 아무래도 일본이 영유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그러나, 서양식 국제법이 도입되기 전에는 영유의식이 없이 한ㆍ일 양국 어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해 온 것으로 보는 것은 어떤가?

홍승목 : 개인이든 민족이든 심지어 야생 짐승도 경쟁자와 만날 때 본능적으로 서로의 영역을 분명하게 하려고 한다. 이렇게 하여서 장차 일어날지도 모를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유독 독도에 대해서만 양국이 명시적인 합의도 없이 영유의식을 기피했다는 가정에는 찬성할 수 없다. 안용복 사건만 해도 영유권 침해를 느끼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의식의 자연적인 발로라고 본다.

Mormanne : 장시간 자세한 설명에 감사드린다. 이제 한국 측의 시각을 상당히 이해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국 측에서 자신의 견해를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글로 발표하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연구를 하다가 의문이 생기면 다시 찾아와도 좋은가?

홍승목 : 솔직히 귀하의 전문성에 대단히 감명받았다. 제 3국의 학자한테서는 기대하지 않던 대단한 수준이다. 어쨌던 개인적으로는 즐거운 대화였다. 오늘처럼 예고없이 찾아오면 시간을 내기 어려울 수도 있으나, 사전에 연락만 해주면 기꺼이 맞겠다. (대담 끝; 기록 - 1996년 6월말)

1.5. 일본인들의 독도 인식




1분 50초부터를 주목하자.

일본 정부의 동북아 광역 어그로 1

주로 일본에 갔다와서 일본인들과 대화한 사람들이 "어, 내가 독도에 대해서 물으니까 일본인들은 그게 뭔지도 모른다던데? 그러니까 공연히 독도 얘기 꺼내지 말고 가만히 있자."라고 인터넷에서 말한 내용이 일반 대중들에게 퍼졌다. 이 말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어느정도 맞는 말이었으나 2015년 현재, 지금은 결코 아니다.

우선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일본인들은 대체로 '조용한 일본인'이란 이미지를 가지고 있긴 하나 어디까지나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일뿐 모르는게 아니다.

일본인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말하고 권리를 주장하는데에 있어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 일본은 전체주의 문화가 발달해 이지매등 '튀는것'에 부정적인 사회가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4.19-부마항쟁-5.18 광주민주화운동등 적극적인 대중의 정치활동으로 민주화혁명을 이룩한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는 피지배계층이 들고 일어나 뭘 제대로 뒤엎은 역사적 경험이 전무하다. 이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정부에 불순종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말하는 한국인들과는 달리, 일본인들은 알고는 있어도 웬만해선 정부에대한 불만이나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말하는 데에 있어 소극적이다.

실제 일본에선 타국에선 흔하다는 시위 같은 것들이 비교적 적고 약하게 일어나곤 한다. 뭐 일본에도 노동조합같은건 있지만 대중의 인식부터가 외국에 비해 부정적인 편. 예전 딴지일보의 한 기자는 "일본인들은 지금 당장 대마도가 한국 땅이 된다고 해도, 자기네들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면 가만히 있을 정도로 영토에 무관심하다."라고 평하기까지 했다지만 이 정도까진 좀 무리일 듯 싶다. 일본인들도 사람따라 다르긴 인구 3만명 거제도 두 배정도의 섬이 타국에 넘어갈 정도라면 어지간해선 뭔가 반응을 보이는게 정상일듯.

즉 일본인 개개인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적/외교적 이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 특유의 사회상 때문이지, 일본인들이 무슨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바보들이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며, 따라서 일본 특유의 조용하고 침착한 사회상의 겉면만 보고, 무작정 일본인들이 독도나 쿠릴열도등 정치/외교적 이슈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건 너무 이르다는 것.

요즘의 일본인들은 독도에 대해서 결코 모르는 게 아니다. 그리고 독도(다케시마)는 엄연히 일본의 고유 영토이며, 한국이 이를 불법 점령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2011년부터 일본의 모든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내용이 들어간다.

일본인들은 죄다 눈 뜬 장님이나 바보들이 아니다. 쓰시마 섬에 한국인 자본이 들어와 토지 몇 곳을 사들이자, 화들짝 놀란 일본 정부는 한국과 중국 자본이 일본의 부동산을 쉽게 사들일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하고 말았다. 일본에 대해서 흐리멍덩하고 안일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가 공연히 뒷통수맞는 일은 없도록 하자.

2012년 현재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이후로 거의 모든 일본인이 독도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물론 대통령 이름도 모르거나, 대서양이 캘리포니아 방면에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 성인들과 같이 정치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물론 과거에는 한일간의 독도에 대한 인식에는 온도차가 다소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점차 일본 우익들의 떡밥 공작이 점차 결실을 거두고 있는 중. 장기 불황과 쇠락에 따른 우경화와 함께 일본인들의 독도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달라져 있다는 점을 유념하자.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지만, 최소한 정신은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 일본 정치권의 입장

보수적인 자민당은 물론이고 아시아 외교를 중시한다는 일본 민주당도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한다. 그나마 일본 내에서 가장 진보적이라는 일본 공산당조차, "독도(다케시마)는 일본의 고유한 영토지만, 한일 우호를 위해서 한국에 양보하자."라고 할 정도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게 대부분의 일본인들의 공통된 믿음이다. 그렇다고 독도가 한국영토라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일부 소수의 시민들과 시민단체들뿐이다.

그리고 최근 일본 민주당의 도이 류이치 중의원이 독도는 한국의 영토라는 한일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가, 일본 내에서 빗발치는 혐한초딩들의 여론의 질타에 못 이겨 결국 사퇴한 일을 보면 지금의 일본인들이 독도에 관심이 없다거나 모른다는 생각은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주한일본대사관 홈페이지엔 다케시마는 일본영토인데 한국이 불법점령했어요 X징징이라고 표기해놨고, 일본어 위키백과 대한민국 항목에도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표시되어 있다.

일본인들이 소위 다케시마 문제에 민감한 이유는 일본에 다케시마라는 이름이 붙은 섬이 여러 개 있기 때문이다. 일본 위키피디아에만 6개가 등재되어 있는데, 크기도 다양해서 독도보다 조금 더 큰 무인도가 있는가 하면 섬이 꽤 커서 주민도 여럿 살고 심지어 놀이 공원도 있는 섬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다케시마는 아이치현 가마고리시 다케시마쵸에 있으며 한국인들도 자주 관광을 가서 그런지 시 홈페이지에 한글 서비스도 된다. 때문에 다짜고짜 다케시마는 한국이라고 하면 오해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지는 것 같으니, 독도라는 섬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를 해주자. "다케시마는 일본땅"이라 말하는 일본 소녀를 칭찬했던 이유

  • 센카쿠 열도와 쿠릴 열도

재미(?)있게도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와 쿠릴 열도에 대한 일본 공산당의 입장은 여느 우익단체 이상으로 강경하다. 특히 북방 영토에 대해서는 이른바 4개 도서 뿐 아니라 쿠릴 열도의 모든 섬을 반환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부를 물러터졌다고 질타할 정도. 그런데도 불구하고 독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건… 자기들도 뭔가 찝찝하다는 생각을 하는 걸까?

실제로 그동안 방송된 일본의 국영 매체인 NHK 라디오 뉴스를 들어 보면, 대만과 논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 열도나 러시아와 논쟁을 벌이고 있는 쿠릴 열도 문제에 비하면 독도 영유권 문제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으로 다뤄 왔었다. 그냥 지나가듯이 한 번 '다케시마'라고 한 마디 언급하는 수준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나마 NHK한국어 뉴스가 좀 더 길게 다룬다 할 수 있는데 그것도 역시 짤막한 단신이었다. 더군다나 프로그램 전체의 길이는 일본어로 제공하는 뉴스 쪽이 더 길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로 존재감 없는 비중이라 할 수 있다.

그도 그럴만한 게 제대로 된 명분도 없고 실제로 얻을 가능성도 없으며, 현실적으로 한국이 실효 지배를 하고 있고 일본이 자국의 영토라고 제시할 만한 근거도 제대로 없는 독도보다는 일본이 실효지배하는 센카쿠 열도같은 쪽이 훨씬 중요한 문제일 수 밖에 없다. 그 막장으로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조차도 독도는 냅두고 센카쿠 열도에 올인하자는 말을 할 정도이니...

더군다나 뉴스 자체에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면, 일본 고딩 사이에서 독도에 대한 인지도가 형편 없이 낮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듯하다. 그래서 산케이 신문에서 이걸 떡밥으로 삼는 것이고, 우익 단체에서 교과서를 통해 홍보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으로 인해 독도가 일본 내에서 큰 이슈로 부상하면서 NHK 뉴스에서 다뤄지는 비중이 좀 더 높아졌다. 물론 전체 뉴스 중의 비중은 얼마 안 되기는 하지만...

1.6. 독도 관련 최근 일본의 행보 (2008~ )


자세한 자료와 진행상황은 위키백과의 항목들을 참고하는 편이 낫다.독도 독도 분쟁

2008년 7월 14일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독도가 자신들의 고유 영토라는 주장을 교과서에 명기하기로 하면서 정부의 대일외교 전략에 뒤통수를 쳤다.

2009년 12월 24일. "일본 정부는 25일 오전 독도 영유권을 명기한 고등학교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하루도 안 돼서 독도 관련 부분을 빼버렸다. 그런데 은근히 말을 돌려서 자기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항목이 있다.

2010년 3월 30일, 일본이 초등학교의 모든 사회과 지도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도록 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링크 4월 8일엔 그 전까지 독도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던 히토야마 총리가, 갑자기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말해 더 큰 논란이 발생할 듯하다.참고

2011년 3월 26일 일본 문부과학성에서는 다음날인 27일 오후 3시에 '교과용도서 검정조사심의회'를 열어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하는데 여기에서 독도는 일본땅 이라는 항목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2011년 3월 30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교과용 도서 검정조사 심의회를 열어 독도 영유권 주장을 기술한 중학교 사회교과서 12종의 검정을 통과시겼다. 그리고 일본의 대재앙으로 간만에 조성되었던 우호적 분위기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11년 3월 31일 일본 외상 마쓰모토 다케아키는 독도가 미사일 공격을 받을 경우 일본 영토가 공격을 받은 것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서경덕 교수의 2011년 4월 9일 미투데이에 따르면 일본 학생들이 트위터와 미투데이를 동원해 '다케시마는 일본 땅' 주장을 더 알리려 한다고 한다.

2011년 4월 일본 극우들은 도호쿠 대지진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여 한국인들의 재해 성금 모금 열기가 식어버린 소식을 접하고는 "독도 실효지배를 강화하려는 한국에 맞서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한국의 일본 대지진 피해 복구 지원을 거부하거나, 권철현 주일 한국대사의 일본정부요인 면담을 거부해야 한다"개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2011년 7월 산케이 신문에서 국경선을 그려보게 하는 조사를 한 결과, 일본 고교생의 9.3% 정도 만이 독도와 울릉도 사이에 선을 그었다고 한다.

2011년 8월 1일, 일본 자민당 의원들이 독도가 일본 영토라면서 입국을 시도했지만, 정부에서는 당연히 입국불허. 일본 정부에서는 입국불허 조치에 대해 앞으로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식의 개소리를 했다.

2011년 8월 2일 일본은 방위백서에서 독도를 일본영토로 명기하고 관할하는 자위대는 해상자위대의 마이즈루 지방대라고 명시하였다. 이놈들이 진짜

2011년 8월 2일, 독도를 일본땅으로 표기하며 역사왜곡을 일삼던 일본 자유사의 역사교과서가 다른 교과서의 연표를 표절했음이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참고로 이 교과서는 일본 정부의 검정을 통과했다. 교과서 검정을 발로 하나 보다

2011년 니코니코 동화日本の高校生が作った竹島問題検証動画が凄すぎる, 일본 고교생이 만든 다케시마 문제 검증 동영상이 굉장하다라는 영상이 정치 카테고리 1위를 달성했다. 물론 그 실체는 철저히 혐한적인 시각으로 작성된 넷 우익개드립.


2011년 대한항공A380 정식 투입에 앞서 독도에 시범비행을 했는데, 일본이 비난을 하면서 희대의 외교분쟁이 시작되었다. 이건 따로 항목을 만들 정도로 내용이 긴 편.

2012년 3월 26일 극우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자 3명이 주일 한국대사관에 몰래 '독도는 일본땅' 이라는 높이 90cm 말뚝을 박고 도망쳤다. 이 말뚝은 바로 뽑아 처분했다지만 이것을 세운 극우단체는 한국 대사관 앞에 '다케시마 비'가 설치됐다면서 사진 등을 인터넷에 유포시켰으며, 이것을 박는 동영상도 자기들이 찍어서 방송사에 보냈다.

2012년 4월 12일 일본 도쿄에서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집회가 열렸고 그 곳에는 일본 유력인사들이 참여를 해서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생떼를 쓰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한국과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발언했다. 아무래도 다시 전범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전쟁을 안 해서 몸이 근질거리는 건가?


그리고 2013년 2월 22일, 그 동안 시마네현 독립 행사였던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시마지리 아이코 해양정책·영토문제 담당 내각부 정무관을 참석시켜 국가 차원으로 인정한 공식 행사(국경일)로 격상함과 동시에 국가적 영토분쟁으로서 정부와 국민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 하여 한일간 독도 관련 외교분쟁이 재개되었다. 그만해 미친놈들아!

2013년 5월 21일, '다케시마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모임' 소속의 일본 학자들이 부산에서 회견을 갖고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독도 방문을 허가받았으나, 정확히 이틀 후인 23일에 울릉도 시동항 여객선대합실에서 이들 중 한 명이었던 카모토 유이치라는 자가 갑자기 "독도는 한국땅이 아니다. 연구가 필요한 분쟁지역"이라고 개소리 발언했다가 경찰에 잡혔다. 사서 고생한다.

2013년 7월 일본 정부에서 독도에 관한 대국민 여론조사를 처음으로 실시하였다. 9할이 넘는 사람이 "독도를 알고 있다"고 답했고, 이들 중 6할이 넘는 사람이 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로 인식하고 있다고 답했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2014년 1월 이젠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본격적으로 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로 가르치시겠단다. 교과서 지침으로 명기하신단다.

2014년 6월에는 사격훈련 해역에 독도 주변의 일본 영해가 포함됐다며 외교 루트를 통해 한국에 훈련 중지를 요구했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의 요구를 상큼하게 씹어 주었다.

2014년 8월 24일, 일본 우익이 독도가 일본령이라는 증거를 발견했다!....는 페이크고 사실 알고보니 일본영역참고도라는 일본 정부가 독도가 한국 땅임을 인정하는 지도일본 우익이 알아서 발견해놓은 것. 이 지도에서 한국 땅이라고 명백히 표시해놓은 부분을 가지고 눈에 뭐가 씌였는지 일본땅이라고 하는 증거랍시고 내놓았다가 한국측 증거로 입수. 쉽게 말해 자폭했다.


1.7. 세계인들의 독도 인식

외국인들은 보통 "한국이랑 일본 사이에 무슨 섬이 있는데, 둘이 싸운다더라"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은 이 문제에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며, 영토 분쟁 문제가 얽혀 있는 중국, 대만, 러시아 정도만이 암암리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CIA에서 발간하는 월드 팩트 북에서 독도는 '리앙쿠르 락스'로 실려 있으며, 한국에서 1954년부터 점유한 이래 영토 분쟁중이라고 적혀있다.

한국 측 입장에서 감정적인 대응은 전혀 불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독도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외국인들에게 알릴 필요도 분명히 있다.

한국은 보안상 이유로 서버가 국내에 있는 회사에만 지리 정보를 제공할 뿐 해외로는 지도 데이터를 반출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막고 있다. 이에 따라 구글, 애플 등의 외국 지도 제작회사들이 일본이나 중국의 지도 데이터를 따르기 때문에 동해일본해로, 독도다케시마로 표기하는 일이 생긴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러한 부분은 미흡한 부분으로써 하루 속히 손질을 해야할 부분이다.

2008년 7월 14일 미국에서는 독도를 한국 영토에서 분쟁지역으로 표기를 바꾸었다. 이에 따라 표기를 리앙쿠르 암으로 바꾸려 했다. 사서 참고. 다행히 7월 31일, 놀랍게도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이 직접 지시해 1주일 만에 독도를 한국 영토로 독도를 교정했다. 그 전까지 한국과의 외교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졌던 거에 비해 너무 쉽게 해결되었고,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그리 나서서 일처리가 된 건 드물다고 한다. 저 건이 진행중일 때 한 개인이 나서서 움직이는데 정부는 뭐했냐며 크게 비난받았고, 해외에 자국을 알리는데 정부가 크게 원조를 하지 않는 부분도 비판받았다. 2ch인조이재팬혐한초딩들은 미국의 이 결정에 열폭.

다만 조지 워커 부시 전 대통령이 독도분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을 확률은 매우 낮다(...). 본인이 치르는 들도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르는 판국에…. 사실 이런 류의 국제분쟁은 세계적으로 많고 아무리 천조국의 대통령이라도 다 알기에는 무리가 있다. 2008년 8월에 FTA관련으로 한국에 방한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과의 관계가 중요한 상황이라 지시한 것을 가능성이 크다.


2012년 3월 22일 NYT(뉴욕타임즈)에서는 독도와 관련된 광고를 싣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이에 김장훈"암튼 그럼, 독도는 WP(워싱턴포스트)랑 WSJ(월스트리트저널)에, NYT에는 위안부로 가면 된다""뭐 더 아파질 텐데, 미리 알려 드린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못 가리는데 일본 계속 무리수를…"이라고 적었다. 그는 "아직 우리가 힘이 좀 부족한 듯 한데 더 열심히 잘 살자. 나라만 강하면 걱정 없을 것"이라며 "감정적으로 가지 말자. 우린 선진 국민이니까"라고 발언했다.

미 국립지리원은 독도에 대해서 한국 영토임을 표시하고 있으며 독도를 부르는 다양한 표기(리앙쿠르 락스, 다케시마 등)에 대해서도 한국 영토를 가리키는 표현임을 명시하였다. #

1.8. 한국 정부의 대응


1.8.1. 현 대한민국 정부의 기본 입장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독도는 외교교섭이나 사법적 해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한 확고한 영토주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한 어떠한 도발도 엄중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독도에 대한 우리의 주권을 수호에 나가겠습니다.

이 부분은 주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독도 관련 발언 내용을 다루고 있다.

1.8.2. 노무현 정권기 (2003~2008)



2011년에 뒤늦게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2006년 4월 "만약 일본 탐사선이 독도에 접근하게 되면 바로 공격하여 당파[2]시켜라!"라고 해양경찰청에 비밀지령을 내렸던 사실이 알려졌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사실상 전군을 지휘하는 통수권자이자 국토관리를 지휘하는 통수권자이니만큼 당시 현직 대통령이 이러한 비밀지령을 내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이에 해양경찰청도 비밀리에 이를 대비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청와대 및 각종 정부부처는 초긴장 사태였으며, 사고 직후 바로 구조를 위해 해양경비정을 보냈다고 한다. 또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우리 어선과 경비정 그리고 일본측 쌍끌이어선과 경비정이 서로 배를 부딪히며 대치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노무현재단에서 2006년 노무현 재임 당시 어록상에서 확인하였던 결과이며 당시 청와대 김병준 정책실장이 이같은 증언을 하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노무현의 단호하고도 공격적인 입장에 일본 탐사선은 출발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한국령임을 확실히 했다, 독도 수호의 강경한 기조를 보여주었다며 호의적으로 보는 의견이 주류였으나, 일부는 대통령이 사적이 아닌 공적으로 그런 공격적인 발언을 하여서 외교관계에 마찰을 불러 일으킬 우려가 있다, 잘못하다간 양국간의 전면전으로 불똥이 튈 위험도 있었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또한 2006년 7월 5일에 한국 정부가 독도 주변 해류 조사를 감행한 것이 한일 양국의 체면 살리기용 물밑외교였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2011년 위키리크스에서 공개된 주한 미국대사관발 전문에 그 당시 외교부장관이었던 반기문과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간의 대화가 나와 있다.

한편 2011년 9월 2일 위키리크스에서 미국외교문서가 공개되었는데, 2006년 4월20일 미국부 극비문서에서 밝혀진 미일 외교관 면담 내용에 따르면 미국 주일 미대사 시퍼는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외무성 사무차관 아래와 같은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일본은 국제법의 허용범위 내에서 권리행사(독도 영유권 주장)를 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 비합리적(irrational)으로 행동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미친 짓(do something crazy)을 하거나 중대한 문제를 일으킬까 우려하고 있다"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양측이 한발씩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2006년 7월 3일자 전문에서 일본의 독도문제에 대해 미국이 개입해주기를 원한다는 요구가 묵살당한 것도 드러났다. 일본 외무성의 겐이치로 국장이 한국과 일본의 독도 갈등에 대해 미국이 중립적인 것에 실망했다고 하며, 미국 정부가 나서서 한국을 설득해 독도 주변 해양조사를 단념케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 요청은 무시당했다.

오히려 당시 주일 미국 대사관은 일본 외무성에 자제력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참고로, 위의 글은 미국 대사 개인의 발언이며 아래쪽은 미국 대사관의 공식적인 입장.

2007년에 건조된 대한민국 해군의 신형 습 상륙함의 1호함이 이 섬의 이름을 따서 독도함으로 명명되었다. 이때 일본에서 항의했으나 당연히 한국은 상큼하게 씹었다.

1.8.3. 이명박 정권기 (2008~2013)


일본 정부의 다케시마 교과서 명기 발표가 있은 지 하루 뒤인 2008년 7월 15일에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당시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후쿠다 총리가 "다케시마(독도)를 (교과서 해설서)에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답변했다는 기사가 요미우리 신문에 실렸다. 그러나 청와대와 일본 외무성은 이 보도가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했다.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은 후쿠다 총리에게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만들어나가는데 그런 일[3]은 벌어져선 안되며,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청와대 측은 독도 문제가 국제영토분쟁 문제로 비화할 것을 우려해 요미우리 신문에 대한 법적 조치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일본 외무성은 두 정상이 요미우리 보도 내용과 같은 대화를 나눈적이 없으며, 다케시마 명기 문제는 요미우리가 보도한 9일(회담일)에 결정되지 않았으며, 15일날에 와서야 결정됐다고 요미우리 보도를 부정했다.

2009년 한국 시민 소송단 나라사랑 시민모임은 이에 요미우리 신문을 상대로 허위 사실 보도에 의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당시 아사히 신문에서도 비슷한 보도가 있었음을 들며 당시 보도 내용이 사실임을 주장하는 서면을 2010년 3월 법원에 제출했다. 이 서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후 네티즌들의 반응. 요미우리의 기사 원문과 이 기사의 신뢰성에 대한 자세한 해설.

이 소송은 원고인 시민단이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로 법적인 피해를 받은 사실이 없기 때문에 손해배상 청구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에 2010년 4월 7일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또한 재판부는 청와대와 일본 정부의 발표를 근거로 이명박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소송단은 행정 소송을 포함한 추가적인 수단들을 강구해서 계속 보도의 진위 여부를 캐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2010년 10월 6일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국민 개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라 볼 수 없기 때문에 항소를 기각했다. 또, 재판부는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가 허위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인정했다.

이 보도가 논란이 되었던 당시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앞 글자만 딴 지곤조기가 인터넷 상에서 유행어처럼 번져나갔다. 인터넷 쇼핑몰에 등장한 지곤조기 머그컵 초창기에는 反 MB정서나 민감한 독도 문제 때문에 논란거리로서 퍼졌지만, 사건이 발생된 후에는 어떤 상황에서든 적절하게 쓰일 수 있는 어감 때문에 널리 퍼진 듯하다.

이 문제는 2012년 2월 19일 경향신문은 위키리크스에서 공개된 미국외교문서를 통해 지곤조기 드립이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그 내용은 2008년 7월16일 강영훈 당시 주일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은 교과서 문제에 대해 이 대통령이 후쿠다 총리에게 hold back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또 2008년 한·일 정상회담 직후 외교전문을 인용해 주한 일본대사관의 정치참사관이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보다 '두꺼운 피부'를 가져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소한 트러블[4]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위키리크스 원문
위키리크스 한글 - hold back 부분은 원문과 병기했다.

(C) On July 16, ROK Embassy First Secretary Kang Young-hoon told Embassy Tokyo political officer that Tokyo's July 14 decision to include its claim to the disputed Liancourt Rocks (named Takeshima by Japan and Dokto by South Korea) in an educational manual used by junior high school students was "very, very serious," "enormous," and "explosive." Following efforts made by new ROK President Lee Myung-bak to put aside the contentious historical differences that have plagued ROK-Japan relations, Kang said Seoul officials felt a sense of "betrayal," particularly after Lee directly appealed to PM Fukuda to "hold back" on the textbook issue at their bilateral summit on the margins of the Hokkaido Lake Toya G8 meeting.

(기밀) 7월 16일 주일 한국 대사관 강영훈 1등 서기관은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상에 분쟁이 있는 리앙쿠르 바위[5]를(일본은 다케시마로 칭하고, 남한은 독도라 부른다) 일본의 영유권으로 포함 시킨 일본 정부의 7월 14일 결정은 “매우, 매우 심각하며,” “엄청나고,” 또한 “폭발력”있다고 주일 미국 정치 담당관에게 말했다. 한·일 관계를 괴롭히던 논쟁있는 역사 인식의 차이를 제쳐놓으려는 한국의 새 대통령인 이명박의 노력이 이어진 후라, 한국 정부 관리들이 “배신감”을 느꼈다고 강 서기관은 말하면서, 특히 홋카이도(北海道) 도야코(洞爺湖) G8 정상회의 한켠에서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교과서 문제에 대해서 후쿠다 야스오 총리에게 “hold back”해달라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부탁을 한 이후라 더 그렇다.


그러나 '기다려 달라'의 원문 표현인 hold back자제해 달라, 그만둬 달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기에 오히려 과거 논란을 잠재우는 결과를 낳았다. 공개된 문서 상으로 볼 때, 이명박 대통령이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진행하고 'hold back'해달라고 발언했음에도 일본이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등재하기로 하여 한국 정부 관리들이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이 주요 내용. 2008년 이명박 정권은 대북 압박을 강화하기 위해 '실용 외교'를 제시하는 한편, 한-미-일의 공조에 더 노력하였다. 그러한 온풍 기조를 말하는 듯. 하지만 4 ~ 5월에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방침을 놓고 이미 독도 문제가 대두되고 있기도 했다. 경향신문 등의 보도와는 달리, '자제하다'로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

"지금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독도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이 부적절하니 뒤로 미뤄달라"는 발언이었다고 본다면 이전의 '지곤조기' 논란과 같은 수위의 도마에 올릴 수 있겠지만,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다면 독도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강경해지는 한일 정부의 입장을 볼 때 이 해석은 무리수에 가깝다.

일본의 독도 망언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한국 정부의 정책 기조, 국민 교육, 국민적 감정 등이 강경해지는 것은 말 안 해도 잘 알 만한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은 2008년 4 ~ 5월 이미 독도 교과서 문제를 터뜨리기 시작해 논란이 되었고, 6월에는 센카쿠 열도 문제가 터지면서 간접적으로 외교적인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이었다. 동기상으로 볼 때 한국 정부는 당연히 일본 정부에 하지 말라는 의사를 전달했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이 친일적이다'라는 이유로 '기다려 달라'라는 발언이었다고 추정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국의 대통령이 개인적 성향 때문에 양국간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를 땡처리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애초에 '지곤조기' 발언이 퍼진 것도 '다른 건 몰라도 독도 문제만큼은 계속해서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발언했다'는 것 때문이었음을 생각해보라. 즉 한국 정부의 입장과 국민적 정서가 독도 문제에 대해 굉장히 민감했고 강경 대응을 원했음을 생각해보면 자제하라라고 말했을 동기가 훨씬 강하다.

게다가 원문에는 Lee directly appealed to PM Fukuda to "hold back", 즉 직접적으로 hold back해달라는 의사를 표현했다고 나와 있다.

만약 hold back이 "기다려 달라"의 뜻이라면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은 사정상 안 되겠으니까 터뜨리더라도 나중에 터뜨려 달라"라는 의미로 "기다려 달라" 고 강하게 요구했다는 뜻이 된다. 한국 대통령이 일본 수상에게 독도 문제에 대해서 뭐가 불리하길래 공식 외교석상에서 이렇게까지 발언했겠는가?

하지만 이미 "지곤조기"는 퍼질대로 퍼져버렸고, 다음에서는 국민일보의 "지곤조기"보도 기사에 무려 39만 6천개의 댓글이 달리기까지 했다. 자세한건 문예춘추참고.



2010년, 정부는 독도 영유권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 2007년 작고한 백충현 교수, 그리고 서면 석좌 교수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한편 임기 말년에 2012년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이 이루어졌다.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울릉도를 방문할 것이며, 날씨가 좋으면 독도에 간다고 정부 관계자가 밝혔으며, 이날 오후 2시에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방문했다.

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는 의견은 유용한 외교 카드를 필요하지 않은 때 쓴 포퓰리즘적 사업, 이명박 대통령이 친일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치적을 남기려 한 무리한 시도, 외교 분쟁화가 우려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은 한국 대통령으로서 한국령 방문은 당연한 것, 독도가 우리 땅임을 명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 대통령 개인의 성향에 대해 근거 없는 추측으로 대일 외교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2012년 이명박 대통령 일왕 사과 발언광복절 축사의 위안부 문제 언급 등으로 한일 관계가 경색되자, 말은 맞는 말이긴 한데 지나친 공세가 아니냐는 지적도 많이 나왔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국내 보도에 앞서 방문 전날밤 일본 신문에서 일제히 보도되었는데, 마치 엠바고가 풀린 것처럼 일제히 같은 시각에 게재되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에서는 사전에 일본측에 통지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대외 통지한 적이 없는 대통령의 동선이 새어나간 안사고가 일어난 것이 된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 말기인 2013년 1월 3일, 독도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당연히 이뭐병.

1.8.4. 박근혜 정권기 (2013~2018)


2014년 11월에 2008년부터 계획중이던 독도 시설물 설치 계획을 일본과의 마찰 우려로 전면 백지화하기로 결정했다.

1.9. 민간 차원의 대응


  • 동해명칭 병기와의 역시너지??

동해/일본해 병기를 위한 노력이 2014년 초에 접어들어 버지니아 주를 시작으로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이 역으로 독도의 표기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바다 이름을 병기하고 있으니 독도도 병기해야 한다는 논리. 이미 2013년에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가 '독도'와 '다케시마'를 병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 보기

1.10. 일본과의 군사분쟁 가능성


군사력 비교,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등은 한국군 vs 자위대 참조.

결론부터 먼저 내자면 진짜 일본이 이런 일을 벌인다면 전쟁이 안 날 수가 없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일본은 전쟁을 절대 먼저 일으킬 수 없다.

일본이 독도에 침공하면 어찌하냐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자위대가 독도를 공격해야 한다는 극우 세력의 주장이 있다. "평화헌법상 해외 파병은 금지되어 있지만, 다케시마는 자국 영토이므로 상관없다."는 논리. 이를 반영하여 각종 한일전쟁 소설에서 독도는 항상 전쟁의 스타트를 끊는 곳이다. 그와 더불어 독도경비대원들은 항상 전멸하는 걸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일본 우익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자기방위를 위해서 다른 나라가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영토를 점령한다는 논리는 타국을 침략할때 자주 쓰인 변명이다. 게다가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를 일으킨 전범국가고, 대한민국을 식민통치한 역사가 있는 나라다.

역사적으로 이런 영토분쟁이 전쟁으로 발전하는 예는 많았다. 하지만 포클랜드 전쟁에서 강제로 점거했다가 국제적으로 소외되고 쪽박 찬 아르헨티나처럼, 일본이 국제적 지지를 받을 확률은 낮다. 일본이 겨우 바위 덩어리 섬 하나, 극우 세력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군사 활동을 벌여 독도를 점령한다면 이익보다 피해가 몇 백 배 더 많다.

당장 수십 년 동안 벗으려고 애썼고 아무튼 세월이 지나서 좀 흐려지기는 한 침략 국가의 이미지를 다시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이 문제 때문에 군대 대신 자위대를 운용할 정도로 군사 활동이 제한되어 있는데 이런 대규모 군사행동을 일으키면 당시 일본과 싸웠던 다른 나라에서 가만히 있을까? 게다가 센카쿠 열도쿠릴 열도 분쟁 등 비슷한 분쟁이 주변에 깔려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미국 입장에서 동아시아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서로 싸우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잠재적인 라이벌인 중국을 견제하는 상황에서 동맹국끼리 싸우면 미국의 힘을 깎아먹는 일이 될 뿐이며, 둘다 상호 방위조약을 맺고 있어서 미국 입장에선 둘이 서로 전쟁을 벌이는 걸 가만히 놔둘수 없을 것이다.

전술적으로 생각해보면, 물론 일본이 정말 마음먹고 자위대로 대거 기습 공격을 한다면 독도를 수비하는 소수의 독도경비대가 독도를 지켜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참고로 독도경비대는 해경이 아니라 육경이다. 의경 중 독도경비대로 따로 선발한다.

어쨌거나 한국군 vs 자위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국민 감정상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고 한국의 피해도 물론 크겠으나 결과적으로 일본이 얻을 만한 건수가 그다지 없다. 결론적으로 전쟁내봤자 좋을 게 없다는 것.

김경진, 윤민혁 공저의 독도왜란이라는 소설이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항목 참고.

1.11. 대중매체에서의 독도


  • 김진명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는 독도경비대원들이 일본의 침략에 맞서다가 산화한다.

  • 김경진독도왜란에선 한일전쟁 소설에서 독도경비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클리셰를 정면으로 깨고 오히려 일본 특수부대원들을 쳐발랐다. 본문에서 실제로 사망 플래그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 플래시 게임 '이순신 장군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이순신을 조종해 독도를 노리는 친일파와 일본인들을 무찌르는 스토리이다. 이때 적들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만원, 승조 외 다수.

  • 온라인 게임 세컨드 라이프에는 한국땅으로 되어있는 독도가 존재한다. 그리고 거기에 불만을 품은 일본 유저가 독도에 폭탄을 떨구는 바람에 일본유저 상당수가 밴 먹은 사건이 있다.

  • 넷 우익들에 의하면 독도가 한국땅이라고 생각하면 반일이라고 한다. 니코동 같은 곳에 일본에 진출한 한국인 연예인들이 독도관련 얘기를 하는 동영상을 올려서 반일이라고 까는 경우다.


  • 2014년 1월에는 일본 프라모델 메이커 아오시마에서 해상자위대 아키즈키급 구축함 모형을 발매하면서 박스아트에 독도를 침공하는 해자대를 묘사하여 국내 프라모델러들의 어그로를 한몸에 받고 있다.

  • 2013년 부터 김단우 감독, 원기준,이원종 주연의 '놈이 온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제작중이다. 내용은 '독도를 무단 점거하는 일본 극우파에 맞서 싸우는 것'이라고. 독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 그런지 독도 관련 단체들의 지원을 받는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가끔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나 쌈마이스러운 영화 포스터 부터 해서, 무엇보다 감독의 정체가 한국 최악의 영화 주글래 살래클레멘타인을 찍은 김두영인지라 영화의 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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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국도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6] 물론 믿으면 골룸

1.12. 유사한 분쟁 지역


독도와 비슷해 보이는 문제가 있는 곳으로 간도가 있지만, 논란의 여지는 있어도 되찾을 확률이나 찾아서 얻는 득도 거진 없는 거나 마찬가지. 녹둔도가 비슷하다면 좀 비슷하긴 하다.

독도 운운하는거에 빡친 일부 한국인들은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며 역드립을 치기도 한다. 물론 진심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순수하게 맞불 용도. 이쪽도 간도와 마찬가지로 별 근거나 이득은 없다. 자세한 것은 대마도 항목, 쓰시마 섬 항목 참고.

해외의 예를 들어보자면,

  • 중국 + 대만과 일본 간의 센카쿠 열도, 중국명 댜오위다오, 조어도 분쟁 일본 정부의 동북아 광역 어그로 2 : 일본측이 실효지배를 하면서, 국제 재판소에 가길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 독도와 비슷하다. 국제 재판이 '실효 지배하는 측이 끌고 가야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만이 제사법재판소의 선택조항을 받아들인 상태이므로 ICJ에서 이 문제가 다뤄지려면 중국 역시 일본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게다가 우리와는 달리 중국과 일본은 재판관을 각각 두고 있으므로, 이 현실적인 문제에서도 중국이 유리할 것이 많지 않다는 전략적 판단을 한 것일 수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ICJ 재판관이 없는데, 독도 문제가 ICJ에 만약 제소된다면 임시재판관(ad hoc judge)이 한 명 선임된다. 물론 재판소에 제소될 확률은 거의 없지만

    다만 일본은 국제 재판소 선택 조항을 채택하여 중국이 ICJ에 기소할 경우 재판을 받아야 할 의무가 발생하기 때문에 '실효 지배하는 측이 끌고 가야 성립'하는 경우는 아니다. 단지 왜 중국이 기소 안하는 것을 따지지 않으면서 한국에게는 기소하는 것을 따지냐고 묻는게 옳다. 이러한 오해는 선택 조항이 '강제'관할권을 '무조건' 성립시킨다고 보는 것에 기인하는 것 같다.

  • 러시아과 일본 간의 쿠릴 열도 분쟁 일본 정부의 동북아 광역 어그로 3 : 쿠릴 열도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서 소련, 즉 러시아에 반환된 땅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언급이 안 된 섬들이라는 점에서 독도와 비슷하다. 사실은 일본 남쪽의 두 섬들도 쿠릴열도의 일부라 인정했는데 나중에 이걸 뒤집어 홋카이도의 일부라 주장한 경우.

    1956년 일소공동선언에서 소련은 일본과 관계개선을 위해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언급이 안 된 남쿠릴의 섬 두 개(독도와 비슷한 경우)의 반환을 일본에게 제의했으나, 1960년 미일안보조약이 체결되자 빡쳐서 반환계획 자체를 취소했다. 일본은 이에 남쪽의 두 섬들만이 아니라 4개 섬을 다 달라고 배짱을 부렸다. 당연히 소련은 거절했고, 지금도 일본이 줄기차게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때 이미 서방에서는 공산진영과 싸울 걸 염두에 두고, 일본을 끌여들이기 위해서 일본에게 비교적 후하게 조약을 맺었다. 중국은 둘로 티격태격하고 있어서 어느쪽도 중국의 대표로 참가를 할 수 없었으며, 소련은 불만을 표시하면서 조약에 싸인하길 거부했다. 물론 한국은 초청도 못 받고, 참가도 못 하고, 싸인도 못 하고, 그냥 강대국들끼리 주물럭거리는 걸 바라만 봐야 했다. 이렇게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정작 당사자들이 배제됐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고, 그게 오늘날 영토분쟁의 시작이다.

  • 싱가포르-말레이시아 간의 페드라 브랑카 분쟁

  • 스페인과 영국의 지브롤터 분쟁 : 원래는 스페인이 아프리카로 가는 관문으로써 중세시대에는 무슬림들이 여기를 거점으로 아베리아 반도를 침공했었다. 스페인이 간절히 원했던 곳이지만 점령이 미뤄지고 있는 와중에 영국이 1704년, 스페인 왕위전쟁 도중에 낼름해버렸다.

    그 이후로 말이 많았지만, 일단 주민들이 영국으로 남는 쪽을 선택해서 일단락됐다. 그래도 스페인이 끈질기게 영토주장을 하는 곳이다. 그러나 스페인이 주장하는 우리 땅 안에 있는 땅이니 돌려달라는 것에 대하여 영국은 세우타와 멜리야가 모로코 땅 안에 있는데도 지들이 차지하는 건 당연하고 남이 지들 땅 차지하는 건 안 되느냐며 비웃는다.

    결국 몇 차례 분쟁 끝에 지브롤터를 대상으로 스페인이 프랑코 독재 정권 시기이던 1960년대 후반 국경봉쇄를 발동시킨 적이 있었다. 일본이 한다는 그 해상봉쇄와 비슷한 성격의 이 봉쇄는 스페인이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해서 풀었고, 완전히 푼 건 80년대다. 하지만 이러한 스페인의 국경봉쇄는 아무리 해가 저물었다고 해도 핵무장국에 영연방을 필두로 무시 못할 강대국인 영국은 그다지 개의치도 않았고, 스페인으로서도 영국에게 크게 대들지 못했기에 사실상 효과도 별로 없었다.

  • 카타르바레인와르 제도 분쟁 : 지리적으로 보면 바로 카타르 앞마당인 하와르 제도를 바레인이 선수를 쳐서 점유해버렸다. 경제적으로도 국방력으로도 더 앞선 카타르가 이의를 제기했으나 바레인은 일절 대응하지 않고 아예 하와르 제도에 다국적 관광시설을 만들어 해외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버려서 카타르는 함부로 무력을 행할 수도 없게 되었다. 카타르 알 자지라만 봐도 하와르 제도는 카타르 땅인데 바레인이 불법점거한다면서 비난할 정도이다.

  • 스페인과 모로코의 해상영토 분쟁 :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나, 분쟁 지역 무인도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이 지역에서 모로코 어선이 사고를 당하자 양 측이 구조선을 보내면서 서로가 자신들의 땅에서 사고를 당했으니 우리가 구해주는 게 당연하다며 서로 욕하고 싸우는 일까지 벌어졌는데 경제적으로 앞서는 스페인이 유리하지만 모로코도 필사적이어서 국제 사법재판소나 여러 기관도 유보한 채로 계속 갈등 중이다.

2. 판타지 마스터즈에 나오는 특수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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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32.82 KB)]

지형 카드
등장 에피소드 : 에피소드 8
카드 속성 : 빛
덱 수량제한 : 1U
카드 희귀도 : 이벤트
구매 GP : 100
구매 SP : 10000(구매 불가)
구매등급 : 폰
카드 발매일 : 2005-03-23

보면 알겠지만 지형주제에 무소울2(렙2).

레벨 : 2(무소울 2)
생성 유소울 : 0
생성 무소울 : 1
LP : 0

올리는데 2소울이나 드는데 생성 무소울은 1이라 괴이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이 카드의 장점은 올리는데 드는 LP가 0이라는 것이다. 즉, 초반에 이 카드를 올려서 상대보다 빠르게 테크를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극후반 가서야 패에 잡히면 정말 쓸데없는 카드(60장전 했는데 후반에 이게 복사돼서 한 3장쯤 나와주면 암울해진다).

그리고, 카드 텍스트의 왼쪽 앞글자만을 세로로 읽으면 독도는 우리땅이 된다.

그런데 달토끼의 특능 때문에 달토끼를 그냥 때려잡으면 백필드에 올린 독도가 파괴된다. 그래서 달토끼는 까인다(…).

3. 학교대사전에 나온 내용


학교대사전에서는 독도를 본래의 독도 항목과 함께, 수업 태도가 불량하다는 등의 이유로 선생이 홀로 떨어뜨려 놓은 자리를 본래의 독도에 비유해서 표현했다.

4. 카타나가타리에 등장하는 완성형 변체도 독도 멧키


이쪽은 毒刀다.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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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여담으로 타카다 마코토하고 아래의 대담을 했는데... 이 인간이 하도 아래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는 등 설득력 없는 설득을 엄청나게 남발하자, "내가 사람이랑 말하는지, 돼지새끼랑 말하는 지 모르겠다."라고 비아냥댔다.
  • [2] 배로 밀어 깨뜨리는 것
  • [3]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명기
  • [4] 한·일 간 마찰
  • [5] 위키리크스 번역에는 '리앙크루 암도'라고 되어 있는데, 보편적인 독음은 '리앙쿠르'이며, '암도(島)'라는 표현과 달리 'Rocks'는 섬이 아님을 더 강조하는 표현이므로 일부 수정하였다.
  • [6] 제 11회 주한미군 웅변대회 1위 수상자인 마이클 패레스 상병으로, 북한의 은하 2호 발사실패 당시 페이스북에 찰진 한국어를 보여줄 정도로 한국어 실력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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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6 20: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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