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독일 국방군

last modified: 2015-04-11 14:06:48 by Contributors


© Uploaded by Sheriff001 from Wikia

3군 공용으로 쓰인 군기인 전투 깃발.

Contents

1. 정의
2. 깨끗한 국방군?


1. 정의

1935년부터 1945년까지 존재하였던 나치 독일의 군대. 국방군이라는 명칭은 번역어로, 원어인 독일어로는 베어마흐트(Wehrmacht)라고 부른다. 이를 영어로 번역한 디펜스 포스(defense force)를 직역하여 국방군이라고 부르는 것. 국방군에는 국군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한국군은 그냥 국군이라 부르는 경우가 더 많기에 한국에서 '국방군'이라는 명칭을 호칭할때는 독일 국방군(國防軍)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 심지어 밀덕들조차 '국방군=육군'으로 잘못 알고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들 많이 사용하나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독일군은 국방군, 해군, 공군, 무장친위대(Waffen-SS)로 구성되어 있다," 라는 식의 말도 안되는 표현이 된다. 엄연히 국방군은 육군(Heer), 전쟁해군(Kriegsmarine), 공군(Luftwaffe)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게다가 크릭스마리네나 루프트바페가 별개의 명칭으로 구별되어 불리는 것과는 달리 미디어 매체에서는 육군을 싸잡아서 베어마흐트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기 떄문에 혼동이 된 듯 싶다.[1]

제2차 세계대전독일군이라고 하면 보통 이쪽을 말하며, 아돌프 히틀러나치당의 사설 무장 조직인 무장친위대와는 달리 이쪽은 제대로 된 정규 군사조직이다. 슈츠슈타펠은 친위대라는 말에 걸맞게 나치 이념에 충실한 자들의 모병으로 이루어졌지만[2], 국방군, 그 가운데 육군은 통상의 군대가 그렇듯 거의 병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차이점. 슈츠슈타펠이 숱한 전쟁범죄를 일으킨 주범으로 지목되는 악의 조직이다보니 국방군은 '상대적으로' 나은 평가를 받는다.

2. 깨끗한 국방군?


이러한 점 때문에 독일군을 좋아하는 일부 밀리터리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제3제국 휘하 군대가 벌인 막장 전쟁범죄는 '사악한 나치당의 사병'인 슈츠슈타펠의 책임으로 전부 몰아가고, 국방군은 그저 나라를 위한 전쟁을 수행했을 뿐인 '군대'였음을 강조하며 국방군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퍼진 통념과는 달리 현실은 시궁창. 특히 독소전쟁때는 국방군은 무장친위대와 다를바 없이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국방군소속 발터 폰 라이헤나우 원수는 "독소전쟁에서 독일군은 유대인-볼셰비즘을 말살하는 전사로 싸워야하며, 이는 통상적인 전쟁방식을 벗어나도 무방하다.(즉 학살을 저질러도 무방하다.)" 는 소위 "강조명령"을 내렸으며, 이를 독일 전군에 회람시켰는데,페도르 폰 보크 원수나 빌헬름 리터 폰 레프 원수 같은 일부 지휘관들은 여기에 반대를 표명하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적극찬동을 얻어 (룬트슈테트만슈타인은 여기에 지지성명을 냈다.) 크게 실시된다. 그리하여 바르바로사 작전때의 여러 포로학살은 모두 국방군이 저지른 것이며 [3], 국방군이 직접 학살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국방군 점령지 하에서 벌어진 SS소속의 아인자츠그루페 학살 방조행위도 엄밀히 말하면 살인방조행위에 해당하는 전쟁범죄이다. 무엇보다도 독일판 신멸작전 혹은 난징 대학살이라 불리는 대규모 제노사이드인 벨라루스 초토화작전을 저지른 것이 국방군이였다.

실제로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국방군 옹호론이 널리 퍼졌던 것은 이러한 해석이 아마추어들의 팬심에 의한 분석이 아닌 전문적인 학계의 학설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꽤나 최근까지도 학계에서는 '더러운 SS, 깨끗한 국방군'이라는 통념이 대세였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학계의 문제가 아니라 종전 직후의 국제정세에서 기인한 문제였다. 냉전 당시에는 독일의 전범행위 반성여부와 관련없이 서독의 재무장이 필요했고[4] 사실 독일의 종전 직후 사회분위기 자체가 공산주의와 나치당에 책임을 돌리는 풍조가 강했고, 이에 따라 독일이라는 국가의 오점은 최소화하고 나치당의 전범행각을 부각하는 학계의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런 입장은 2차 세계대전 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는 7~80년대[5]가 되어서야 변화를 보였고, 보수적일수밖에 없는 독일군이 깨끗한 국방군 이론을 내려놓는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6]

최근까지 유명했던 통념과는 다르게, 국방군이 그저 전쟁만 수행한 깨끗한 군대였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이 독일에서 그렇게 기세등등할 수 있었던 것에서 보이듯이, 당시 독일 국민의 상당수는 친위대만큼은 아니더라도 나치 이념에 동조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고, 당연한 원리로 징집병인 국방군 역시도 나치 신봉자 비율이 상당했다. 슈츠슈타펠 포로, 민간인 학살을 비롯한 전쟁범죄를 도맡아 한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국방군 역시도 크거나 작게 동부전선에서 전쟁범죄에 가담하였다. 제3제국 휘하 군대가 벌인 각종 전쟁범죄는 나치당과 슈츠슈타펠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 역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국방군이 나치당에게 이끌려 어쩔 수 없이 전쟁범죄를 벌인 피해자라는 소리는 어불성설. 결국 이들도 전쟁범죄를 일으킨 가해자였다는 소리이다.

당시 독일인들의 인식도 어느정도 영향을 끼친 것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영국/미국에 대한 적의가 크게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소련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이었는데, 당시 독일 사회에 횡횡했던 유대ㅡ공산주의의 본산인 소련이 독일인의 삶의 터전을 위협할 것이라는 생각이 독일인들 사이에 만연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소련과의 전쟁은 생존영역을 두고 싸우는 혈투지만, 영미 연합군과의 전쟁은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7] 이 때문에 국방군은 서부전선에서는 대체적으로 신사적으로 전투에 임했고 이것이 깨끗한 국방군 이론에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다. 물론 동부전선에 비해서 적을 뿐이지 서부전선에서도 엄연히 국방군의 의한 전쟁범죄가 있었다.

이러한 실태와 달리 깨끗한 국방군론이 퍼질 수 있게 된 원인은 종전 직후의 국제정세에서 기인한 문제였다. 종전 이후 독일은 군을 완전히 해체당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의 낙인을 받고 군대를 조직할 수 없게 되었지만, 당장 미국으로써는 전범국이고 뭐고 간에 소련의 팽창을 막을 방패막이로써의 독일군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는 '독일군'의 재건이 필요했고, 이를 위한 과정에서 국방군의 전쟁범죄는 대부분 슈츠슈타펠에게 뒤집어 씌워지게 된 것이다. 슈츠슈타펠이 옹호할만한 조직은 결코 아니지만, 어찌 보면 남이 한 일도 덤탱이 쓴 격이나 다름없다고 하겠다. 물론 무장친위대는 그래도 싼 놈들이긴 하지만...

전후에 살아남은 국방군 복무자나 장성들 역시도 회고록을 비롯한 서적들을 집필하면서 모든 책임을 히틀러와 나치당, 슈츠슈타펠에게 돌리는 책임전가자기합리화의 진수를 시전했는데, 이들의 의견 역시도 깨끗한 국방군 이미지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물론 이들 가운데 오직 나라를 위해 복무한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들도 본의든 아니든 결국 침략전쟁을 수행한 일원임에는 분명하며, 독일군의 전쟁범죄는 이러한 '깨끗한 일부'로 가리기엔 역부족이었다는 점이다.

국방군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연방군(서독군) 자신들이야말로 이런 "국방군 무죄설"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국방군의 모든 것들을 흑역사로 간주하고, 자신들의 전통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그리하여 2차대전 당시 개별 병사의 전공은 인정해주었지만, 국방군으로부터 내려오는 군복, 군기, 부대, 조직의 전통은 깡그리 부정하고 전후 새롭게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8]

이러한 '깨끗한 국방군'을 까는 서적으로는 볼프랑 베테가 쓴 독일 국방군이 있다. 국내에서도 번역되어 출판되어 있다.

일본군에는 비슷하게 해군선옥론이 있다.


----
  • [1] 영화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에서는 적군으로써 독일 해군이나 공군보다는 지상군쪽이 더 비중이 높은데, 이때 지상군을 쌈박하게(...) 무장친위대 아니면 국방군으로만 구분해버리니 더더욱 오해를 사게 되었다.
  • [2] 1943년부터는 무장SS도 징병권을 행사했다. 때문에 전후 전범재판에서 하사 이상의 SS 장병은 총원 기소 대상이었지만, 1943년 이후 징병으로 인한 입대자들과 강제로 전군된 인원은 개인별로 확인된 전쟁범죄 혐의가 없으면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 [3] 대표적으로 키에프 포로학살이 있는데, 포로중 유대인이나 공산당원으로 판명된 자들은 즉각 사살되었다. 이는 국제법상 명백한 전쟁범죄이다.
  • [4] 사실 이건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평화헌법이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존재했기에 일본은 군을 부활시키는 대신 명목상 자위대를 조직했고, 미국 등은 이를 실질적인(de facto) 군대인 상태로 존재하도록 묵인했다. 물론 소련이 홋카이도를 공격한다같은 시나리오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졌기에 이런 것이 가능했던 것.
  • [5]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는 전후 서독 연방군 재건 자문을 맡았고, 에르빈 롬멜 원수의 참모장이었던 한스 슈파이델 대장이나 제7군 참모장 막스요제프 요한 펨젤 중장 등은 연방군 고위직에 올랐다.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프란츠 할더 상급대장은 미군 전사연구관으로 일하며 공로훈장을 받았다. 이들 구 국방군 고위층이 현직에서 물러나거나 세상을 떠나고서야 국방군을 다시 보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
  • [6] 물론 지금은 그 노력이 결실을 봐서 독일은 결과적으로 대전기의 잔재를 청산해내는데 성공했으므로 독일이 전쟁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은 맞지 않다.
  • [7] 당장에 전차 에이스인 오토 카리우스만 해도 '연합군이 우리와 힘을 합쳐 소련군을 몰아내주겠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일반인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 [8] 하지만 서독군(독일연방군)의 초기 지휘관들은 대부분 국방군출신이었다. 이는 사실 소련군이 재건한 동독군도 마찬가지.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11 14:06:48
Processing time 0.1796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