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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국

독일 제국
Deutsche Kaiserre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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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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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기간 1871년 ~ 1918년
표어 Gott mit uns
(하느님의 가호와 함께)
국가 그대에게 승리의 왕관을
위치 중부유럽
수도 베를린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국가원수 황제(카이저)
언어 독일어
주요사건 1871년년 통일&건국
1905년 모로코 사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918년 바이마르 공화국 선언
->황제 퇴위
통화 굴덴,마르크
성립 이전 프로이센,북독일 연방,바이에른 왕국 등등
멸망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

Contents

1. 용어의 쓰임
2. 편력
3. 사회
4. 주 일람
5. 평가의 변화
6. 국가
7. 같이 보기

1. 용어의 쓰임

현대에 들어와서 일반적으로 '독일 제국'은 1871년부터 1918년까지 존재하였던 중부 유럽의 국가 정치체(Deutsches Kaiserreich)를 말하지만, 과거의 용례를 들어 볼 때 엄밀히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본 국가의 성립 이전에도 '독일 제국'의 관념은 존재하였으며, 그것은 신성 로마 제국을 가리켰다.

1945년 '대파국' 이전에 '독일 제국'에는 곧 독일 민족 국가라는 함축적 의미가 부여되었다. 따라서 독일인과 큰 연관성을 지녔다고 볼 수 없었던 '신성 로마 제국'은 관념상 독일인에게 귀속되었다. 심지어 불발된 1848년 혁명에서도 자유주의민족주의자들이 주창하였던 민족 국가의 이름도 '독일 제국'이었다. 혁명은 실패하였지만, 1871년의 본 국가도 이러한 신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재밌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 이후, 이른바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군주정이 붕괴되고 나서도 독일은 '공화국(Republik)'이 아니라 제국이라 흔히 번역되는 '라이히(Reich)'이었다. 그렇기에 제3제국이 붕괴할 때까지 독일의 명칭은 '도이치 라이히'가 주욱 유지되었다.

이는 애초에 라이히의 명칭은 제국이라는 단어와는 사실 좀 다른 뉘앙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엄밀히 말해서 라이히는 군주정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역할 때는 Empire라기보단 Realm(연합왕국 혹은 연방왕국)이나 커먼 웰스commonwealth[1]가 적절하는 견해가 있다. 라이히 항목 참조.

2. 편력

독일 제국의 시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비스마르크 시대(1871~1889), 다른 하나는 빌헬름 시대(1889~1918)이다. 이는 외교 정책에서 현실 정치(Realpolitik)와 세계 정치(Weltpolitik)로 구분된다.


3. 사회

독일 제국의 상부 구조는 입헌 국가의 틀을 수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제 국가의 모습을 다분히 띠었다. 황제는 이론상 무한의 권력을 지녔으며, '프로이센 군대'는 정부로부터 독립하여 별도의 권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의회는 양원제로서 제후들로 구성된 연방참의원(상원)과, 보통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제국의회(하원)가 존재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정부의 내각을 구성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것은 아니었고, 군주가 자의적으로 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었으나, 프로이센의 크기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프로이센이 정치를 좌지우지하기 쉬웠다. 후대의 역사학자는 본 국가를 이르러 '사이비 입헌 국가'[2]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복지와 노동정책인면에서는 비스마르크 시절부터 사회복지정책을 부분적이나마 도입을 하였으며 빌헬름 2세 들어서는 비스마르크가 물러나고 사회주의자에 대한 탄압이 크게 줄어들면서 사회주의 정당이 크게 성장하여 주요정당 차리를 차지했고 동시에 노동시간 규제와 사회복지정책의 확충이 이어져 노동자들의 권익도 나아졌다.


4. 주 일람

© ziegelbrenner (cc-by-sa-3.0) from


주도
왕국
프로이센 베를린베를린
오스트프로이센쾨니히스베르크
베스트프로이센단치히
브란덴부르크포츠담
폼메른슈테틴
슐레지엔브레슬라우
포젠포젠
작센마그데부르크
하노버하노버
헤센-나사우카셀
베스트팔렌뮌스터
라인란트코블렌츠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
슐레스비히-홀슈타인슐레스비히
바이에른뮌헨
작센드레스덴
뷔르템베르크슈투트가르트
대공국
바덴카를스루에
헤센다름슈타트
메클렌부르크-슈베린슈베린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노이슈트렐리츠
올덴부르크 올덴부르크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바이마르
공국
안할트데사우
브라운슈바이크브라운슈바이크
작센-알텐부르크알텐부르크
작센-코부르크-고타코부르크
작센-마이닝엔마이닝엔
공령(公領)[3]
리페데트몰트
로이스 윙어러 리니에게라
로이스 앨터러 리니에그라이츠
샤움부르크-리페뷔케부르크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루돌슈타트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존더샤우젠
발덱-퓌르몬트아롤젠
한자 동맹 자유시
브레멘
함부르크
뤼베크
제국령
엘자스-로트링엔슈트라스부르크

5. 평가의 변화

앞서 설명하였듯이, '독일 제국(도이치 라이히)'은 독일 민족 국가를 뜻하였다. 독일 제국 시기 민족주의적 독일인들에게 그들의 국가는 그런 꿈이 실현된 국가였고, 보불전쟁의 승리에 뒤이은 베르사유 궁전에서의 독일 제국 선포는 그런 밝은 미래가 약속한 것처럼 보였다. 반면 독일, 특히 프로이센의 귀족들에게는 유쾌한 일만은 아니었다. 독일 민족의 신화는 귀족들의 것이라기보다는 독일 민중, 정확히는 독일의 중소상공인들의 것이었다. 이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은 매우 주목할만한 것이다.

독일 민족주의자들이 보기에, 그간 귀족들은 그들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것은 우크스부르크 화의베스트팔렌 조약에서 신성 로마 제국이 영방 국가의 집합체로 판결났을 때 정해진 것이었다. 제국은 어디까지나 '민중(신흥계급)의 신화'였고, '독일 제국'이 건설되었다는 사실은 귀족들이 민족주의자에게 항복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아무리 1848년 혁명에서 귀족들이 정치적으로는 승리했고,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그들의 꿈을 배신하긴 했지만, 결국 독일 제국은 이루어졌고, 부분적으로나마 헌군주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제국이 주는 확고한 신념 하에 보수주의는 민족주의와 차차 결합하는 길로 나아갔고, 중소루주아들은 관료, 군부, 기존 귀족과 결탁했다.

이렇게 안정된 체제를 오래 누리다보니, 제1차 세계대전의 붕괴는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을 수 밖에. 그렇기에 오랜 전제 정치에 익숙해있던 독일 중산층들에게 민주주의란,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전승국들이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강요한 것, 독일의 민족성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졌다. 그러면서 바이마르 시대에는 독일 제국 시대가 돌아가야할 이상향이 되었다. 애초에 바이마르 공화국은 항목에서 보듯 황제 + 군부와 중산층 이하 독일 국민들이 아직 힘을 가지지 못한 권력의 공백 속에서 공화국에 대한 희망을 품은[4] 독일 사회민주당이 후딱 세워버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민주주의는 침략의 상징이었고, 따라서 그에 기반을 둔 바이마르 공화국도 부정되었다. 독일인들은 민주주의와 같은 '서구의 특성'들을 이용하지 않고 근대를 일구어낸 독일 제국을 민족성을 들먹이며 자랑스럽게 여기었다. 독일식 민주주의! 그것은 독일인들만이 지니고 있는 '특수노정'으로 여겨졌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철혈로 독일 제국을 탄생시킨 비스마르크는 민족의 영웅으로 우상화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나치 독일, 이른바 '제3제국'에서 더욱 심해졌다.[5]

나치 독일이 패망한 직후에도 당분간 독일 제국 신화는 계속되었다. 독일인들에게 부정해야 할 대상은 어디까지나 히틀러의 제국이었지 '독일 제국' 자체가 아니었다. 나치 독일 제국은 어디까지나 잠시 존재한 이탈이었다.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하였다. 이들이 집권하는 데 필요한 대중 동원력이 바로 그 민주주의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여겨졌다. 그러니까 제3제국이 나온 것도 결국 민주주의 때문이었다는 소리다!/민주주의 개XX 해봐 그러면서 독일 제국이 지니고 있었다는 민족성-복종과 충성과 같은 특성에 대한 숭배가 이루어졌다. 보는 대로, 전후에도 정신 못 차리는 건 사실 독일이나 일본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독일 제국'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68혁명기와 맞물린 1960년대, 1970년대였다. 주로 마르크스 학자로 구성된 사회사가들은 '독일 제국'의 신화를 깨트리려고 하였다. 그들은 '특수노정'이 지니고 있던 긍정적인 의미를 부정적으로 재해석 하기 시작했다.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국가들은 정상 궤도 상의 근대 국가로 여기어졌고, 독일 근대 국가는 그에서 이탈한 것으로 여겨졌다. 혁명이 없이 탄생해버린 독일 제국의 체제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것으로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또, 나치 독일의 가능성은 이미 독일 제국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으로 여기었다. 두 체제의 동질성이 강조된 것이었다. (리그베다위키의 바이마르 공화국 항목에도 이 관점이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다.)

다시 1970년대 후반부터는 다시 독일 제국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주로 영국의 신좌파로서, 그들은 사회사학자들의 독일 제국 비판 자체가 신화라고 보았다. 그들에게는 영국도 완전한 근대 국가가 아니었다. 그들의 연구 결과로서 영국은 여전히 전통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였고, 억압성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영국이나 프랑스가 이상적인 국가 롤 모델이고 '정상적'이라는 관점이 탈피되었다. 이를 통해 단방향적인 역사 발전 모델은 부정되고, 복수의 근대 모델이 제시되었다. 독일 제국도 서구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역동적으로 발전을 이루어 나가면서 사회 모순을 점진적으로 해소하려는 국가로 그려졌다.

6. 국가

Heil dir im Siegerkranz(그대에게 승리의 왕관을)이다. 해당 항목 참조.

7.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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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어원이 영어의 rich와 같다는 점에서
  • [2] 학술문헌에서는 '외견적 입헌군주제'라는 용어가 주로 사용된다. 즉 겉만 입헌군주제라는 것.
  • [3] 본래 Fürstentüm으로서 후국으로 알고 있지만 엄밀히 후국은 아니며 영어로 번역한다면 Prince가 된다.
  • [4] 물론 전쟁시기에는 당령을 어겨가며 전쟁에 찬동하기는 했지만
  • [5] 바로 이런 특성, 즉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후발국들의 반감과 "우리식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는 매우 전형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고, 한국일본 등의 동아시아 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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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11 11: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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