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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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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oid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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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앨범 6집 리패키지 'Humanoids'의 자켓 사진. 좌측부터 최강창민, 유노윤호

이 항목은 동방신기의 국내활동에 대해서 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동방신기의 일본활동은 동방신기/일본활동 항목 참조.

Contents

1. 개관
2. 멤버
3. 마케팅
4. 활동 연혁
4.1. 2004년
4.2. 2005년
4.3. 2006년
4.4. 2007년
4.5. 2008년
4.6. 2009년 ~ 2010년
4.7. 2011년
4.8. 2012년
4.9. 2013년
4.10. 2014년 ~ 2015년
4.11. 일본 활동
5. 멤버들의 역량
5.1. 5인 시절
5.2. 2인조 재편 이후
6. 음반
6.1. 앨범
6.2. 싱글
7. 콘서트
8. 논란
8.1. 기네스북 등재 논란
9. 트리비아

1. 개관

SM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2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 신화가 아이돌 그룹의 생명 연장에 이바지하고,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가 아이돌 그룹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면 동방신기는 이들을 중심으로 우후죽순 생겨난, 그리고 지금도 생겨나고 있는 모든 아이돌 그룹들의 존재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2세대 아이돌의 시초.

지금은 익숙하지만 당시로서는 거창하게 여겨졌던 팀명은 '동방의 신이 일어나다'라는 의미로 팀명을 통해 아시아 음악 시장 제패를 목표로 기획된 팀임을 짐작케 한다. 특히 멤버들의 예명을 4글자로 맞춘 건 중국 시장을 노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지만 이후 BoA의 성공적인 일본 메이저 시장 진출을 기반으로 기존의 중국 음악시장을 타겟으로 삼고자 했던 전략과 다르게 일본 위주의 활동을 펼치게 되어 본래의 기획의도와는 조금 다른 활동 노선을 걷게 된다.

캐치프레이즈는 We Are T!. 2인조 재편 이후이자 데뷔 9년차에 접어들 쯤에서야 고안된 인사법으로 팬들과 함께 진행하는 인사법인 탓에[1][2]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의 인사법에 비해 큰 제약이 있어 단독 콘서트를 비롯한 개인적인 행사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다소 큰 한계가 있지만 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인사법인 면에서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2013년 12월 19일 기준으로 총 12,035,580장의 누적 판매 기록을 가지고 있다.[3] 이로써 국내 아이돌 그룹으로서는 처음으로 앨범 판매량 총 1000만 장의 위업을 달성했다.

2015년을 기점으로 최강창민을 제외한 전·현 멤버 4인이 모두 30대에 입성했다. 아직 만으로는 20대라는 것에 위안을 삼자.

3. 마케팅

토크쇼 출연 시 단골 소재로 써먹힌 탓에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팀 이름 작명과정에서 다양한 이름이 거론되었다고 한다. SM5 3명이나 7명도 나오지 않았을까?, 오장육부, 동방불패, 전.먹.고 (전설을 먹고 사는 고래) 등등 이후 영화 '동방불패'를 보고 영감이 떠오른 이수만의 아이디어로 동방신기로 결정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거추장한 팀명이었던 탓에 당시 썰전에서의 김희철의 증언에 따르면 유노윤호영웅재중이 팀명을 듣고 거의 울상이 되어있었다고 한다.

또한 아시아 음악시장 제패를 목표로 기획된 팀으로서 특히 중국 시장을 어필하기 위한 전략으로 멤버들의 활동 예명을 이름 앞에 예명을 붙인 4글자 이름으로 작명하여 당시 10대 청소년들과 방송가에서 4글자 이름 짓기 열풍이 일기도 했다. 성공했으니까 망정이지 실패했으면 얼마나 큰 웃음거리이겠는가? 각 멤버들의 예명이 지니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유노윤호 (U-Know) : 'You know?'라는 단어를 통해 상대방을 알고 항상 이해하려는 마음과 빛과 소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중의적 표현
  • 영웅재중 (Hero) : 아시아의 영웅이 되겠다는 포부를 담음
  • 믹키유천 (Micky) : '믹기'(秘器)라는 단어와 미국에서 생활할 당시의 이름에서 유래된 중의적 표현으로 팀 내의 숨겨진 비장의 무기임을 뜻함.
  • 시아준수 (Xiah) : 아시아의 별이 되겠다는 의미로 'Asia'에서 유래된 예명
  • 최강창민 (Max) : 아시아의 최강이 되겠다는 포부를 담음

이는 H.O.T.강타, 신화신혜성, 전진을 토대로 만들어진 예명 마케팅의 연장선 상이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사례로 이러한 전략은 향후 EXO의 멤버 별 초능력 마케팅으로 정점을 찍는다.

또한 데뷔 당시 각종 미디어와 언론에서 동방신기를 '제2의 H.O.T.를 겨냥한 팀'이라고 자주 언플하곤 했는데 멤버들의 캐릭터를 자세히 살펴보면 멤버들의 외모와 팀 내 역할 등에서 예전 H.O.T. 멤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음에 기재할 내용은 한 블로거가 정리한 동방신기와 H.O.T.의 각 멤버 별 공통점이다.


보컬과 댄스 두가지 능력을 고루 갖춘 팔방미인 시아준수.
그는 문희준을 닮았고,

춤을 리드하고 남성적인 매력이 풍기지만 가끔 귀여운 모습도 선사하는 유노윤호.
그는 장우혁을,

미국을 살다 왔으며 영어에 능하고 유머 감각이 있고 활달한 컨셉의 믹키유천.
그는 토니안을,

여성스러울 수도 있는 외모에 감성적인 목소리 여린모습에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영웅재중.
그는 강타를,

큰 키를 소유했으며 팀내 막내이고 좋아하게 될수록 매력을 발견하는 최강창민.
그는 이재원을 닮았습니다.


4. 활동 연혁

4.1. 2004년

2003년 12월 26일, SBS 송년특집으로 방영되었던 BoA & 브리트니 스페셜을 통해 공식적인 첫 무대를 갖는다. 당시 SM의 상황이 H.O.T., S.E.S., 신화의 잇단 해체 혹은 이탈의 영향으로 지금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열악한 상황이었던 지라 BoA가 소녀가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첫 데뷔무대를 가요프로그램이 아닌 특집 방송에서 꾸린 것으로도 SM의 어느정도 적극적인 푸쉬가 이루어 진 셈이다.

이 후 약 2개월 뒤인 2004년 2월 7일, MBC 음악캠프를 통해 공식적인 데뷔 무대를 가졌다.[4][5] 'Hug'를 들으면 딱 알 수 있겠지만 데뷔곡부터가 아카펠라 화음이 들어간 달달한 느낌의 곡이어서 기존 아이돌 그룹들의 댄스 음악을 통한 역동적이고 현란한 인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는 활동 당시 아이돌 그룹의 침체로 인한 댄스 음악의 퇴조와 발라드, R&B 장르의 강세로 크게 힘을 쓰지 못했던 아이돌 시장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여 틈새시장을 공략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데뷔곡 'Hug'를 통해 각종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여 SM 가수로서는 S.E.S.의 'I'm Your Girl' 이후 5년여만에 데뷔 1위곡이라는 기록을 쓰게 되었으며 신인그룹이었던 점이 무색할 만큼 성공적이었던 반응에 힘입어 싱글임에도 불구하고 수록곡인 'My Little Princess'를 통해 후속곡 활동을 이어갔다. 아카펠라 댄스그룹이라는 언플에 대한 책임감이 컸는 지 라이브 시 원곡보다 키를 높여 불렀던 초강수까지 두었다. 정작 립싱크할 때는 원키였다는 게 함정

장장 4개월이라는 유례없는 싱글앨범 활동 종료 후 숨돌릴 틈 없이 두번째 싱글 'The Way U Are'와 2004 SMTOWN 앨범 수록곡 'Drive'로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게 되는 데 이 곡은 동방신기에게 있어 팬덤 고착을 비롯하여 여러모로 큰 전환점이 된 곡임과 동시에 유난히도 다사다난했던 앨범 활동으로 회자되고 있다. 'The Way U Are'는 라틴 유로 팝 스타일의 댄스곡으로 이후 발표되는 SMP 장르로의 음악적 전환을 예견하는 듯 하는 현란한 헤어스타일과 절제된 섹시미를 강조하는 망사 의상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활동 기간 중 믹키유천의 맹장수술과 공교롭게도 같은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사고를 당해 멤버 한 명을 잃는 불운을 겪었던 그룹 원티드와 같은 날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유달리 사건사고가 많았던 앨범 활동 기간이었던 데다 일부 카시오페아들의 원티드의 멤버였던 서재호에 대한 고인드립이 언론을 통해 기사화될 정도로 문제시되어 기성세대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하였고 이로 인해 실력파 그룹으로 인정받아가던 동방신기의 이미지에도 상당한 타격을 주었다.

싱글 2장을 통한 장장 7개월 간의 앨범 활동을 마친 뒤 불과 1개월 만에 정규 1집 'Tri-Angle'을 발표하여 사실상 동방신기는 2004년을 현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빡빡한 국내 활동으로 채우게 된다. 이 앨범은 당시로선 흔치 않았던 더블 타이틀곡 체제였던 만큼 앨범 자켓 사진에도 'Tri-Angle'의 강렬한 모습과 '믿어요'에서의 발라드 귀공자 컨셉이 같이 공존하는 양면성이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H.O.T.의 '아이야'를 연상케하는 하드코어한 의상과 컨셉이 일반 대중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준 것을 의식한 것인지 활동 기간 가운데 2개월 간은 발라드곡인 '믿어요'로 활동하며 본래의 아카펠라 댄스그룹이라는 기획의도를 유지해 나갔으며 덩달아 크리스마스 시즌과 2004년의 끝자락에 단독 겨울 시즌 앨범까지 발표하여 동방신기는 1년동안 무려 4장의 앨범을 발표하게 되고 타이틀곡이었던 '마법의 성'을 통해 'Tri-Angle'과 더블 후속곡 활동을 이어가게 되었고[6] 동방신기는 그 해 각종 시상식에서 신인상과 동시에 본상을 수상한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두 번째 가수로서 이름을 알린다.

하지만 활동 막바지에 동방신기와 카시오페아는 또다른 악재와 마주하게 되는 데 이는 동방신기의 싱글 2집 'The Way U Are'의 한정판 스토리북에서 언급된 바 있는 멤버교체설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 팬들을 카오스에 몰아놓은 바 있었지만 SM 본사 앞에서 가졌던 간담회를 통해 동방신기가 중국 활동에 한해서만 중국인 멤버를 포함한 6인조로 활동할 것이라고 공표하며 멤버교체설은 일단락된다. 하지만 이는 이후 일본 현지화 활동 계획으로 인해 무산된 전략인 듯 하다.

4.2. 2005년

동방신기는 2005년 1월 2일과 15일. 각각 SBS 인기가요MBC 음악캠프를 끝으로 장장 10개월 간의 국내 앨범활동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일본 데뷔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일본 활동에 전념하던 중 2005년 6월 동방신기는 'Hi Ya Ya 여름날'로 한국 활동을 했다.

2005년 9월 'Rising Sun'을 타이틀로 하는 한국 정규 2집을 발매하고 크게 히트했다.

막바지 활동 시기와 동시에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그 해 12월에는 당시 신인이자 프로젝트 등용문 그룹이었던 슈퍼주니어와 함께 'Show Me Your Love'라는 컴필레이션 겨울 앨범을 발표하고 일시적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당시 동방신기 인원과 슈퍼주니어 인원을 합치면 무려 17명에 달하는 데 이 때문에 무대가 꽉차서 일부 멤버들이 무대에서 넘어지지나 않을까하는 우려까지 나왔었다. 이 곡은 현재까지도 각 팀의 팬들에게 겨울 시즌마다 자주 회자되는 명곡으로 SM 소속 그룹의 캐롤송 계보는 이후 소녀시대의 '첫눈에 (Snowy Wish)'와 EXO의 '첫 눈'으로 이어진다.

동방신기는 2집 활동을 통해 그 해 MKMF에서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과 SBS 가요대전에서 최고인기상을 수상하며[7] 2집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4.3. 2006년

4일에 걸친 첫번째 단독 콘서트를 마친 뒤 틈틈히 CF 촬영과 SBS '일요일이 좋다 - 동방신기 반전극장'을 통해 한일 활동을 병행하던 중 2006년 4월 7일, 멤버 영웅재중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인터넷 뉴스 창에서 빠와 까들의 댓글전쟁이 벌어진 것은 당연지사로 다음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기재함으로서 한동안 자숙의 시간을 가지는 듯 했지만 2일 뒤 당시 동방신기가 전속 CF 모델로도 나선 바 있는 BBQ에서 주최한 BIG4 콘서트를 통해 관중들 앞에서 정식으로 사과함으로서 일단락되었다.[8] 하지만 살인미수로 간주될 정도로 워낙 중한 물의이다 보니 현재까지도 까들에게 그의 사생팬 폭행 사건과 더불어 까임거리로 가끔 회자되고 있다.

2006년 6월에는 유영진이 작곡을 맡은 2006 독일 월드컵을 겨냥한 응원가 '동방의 투혼'을 발표했다. 하지만 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하여 2002 한일 월드컵 당시의 감흥마저 박살난 데다 한국을 응원하는 취지로 발표된 곡이지만 정작 월드컵이 한창일 당시 동방신기는 일본에서 첫번째 투어를 벌이던 아이러니까지 겹쳐 팬들에게도 자주 회자되는 곡은 아니다. 망했어요...

2006년 9월 정규 3집이 발매되었다. 타이틀 오정반합이 큰 인기를 끌었다.

동방신기는 2006년 연말 가요 시상식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됨으로서 2005년보다 더욱 탄탄하게 입지를 다지게 되고 특히 정규 3집은 2010년 기준으로 40만장을 돌파하여 2006년 음반판매량 1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가서 밑바닥 생활을... 하지만 이 기록이 2005년에도 기록한 바 있는 2집의 음반판매량과 달리 많이 퇴색되었는 데 왜냐하면 현재 슈퍼주니어EXO의 각 멤버별 케이스를 통해 절정을 달하고 있는 SM의 얄팍한 상술의 시초가 이 앨범이기 때문이다. 1~2집과는 달리 3집은 단순히 CD만 수록되어 있는 A버전, CD와 뮤직비디오 촬영현장 및 멤버별 인터뷰가 수록된 DVD가 추가된 B버전, 그리고 동방신기의 극장드라마 'Vacation'과 메이킹이 수록된 C버전, 동방신기 3집 쇼케이스 실황과 1~3집까지의 뮤직비디오가 수록된 D버전 등 총 4가지 종류가 존재한다. 게다가 'Vacation'의 DVD가 별도로 발매되지 않은 점, 그리고 A, B버전과 C, D버전마다 'Get Me Some'[9]과 '풍선 (Balloons)'[10]이 다른 버전으로 수록된 점을 생각하면 노린 것이 분명하다.

4.4. 2007년

3집 활동 마무리 후 9번째 싱글 'Step by Step'을 발표하고 다시 일본활동에 매진하던 동방신기는 2007년 2월 23일부터 25일까지 두번째 콘서트 THE 2ND ASIA TOUR CONCERT "O"를 개최하였다. 단독 콘서트로서는 이례적으로 약 10억원을 웃돌았던 투자비와 동방신기가 각종 연말시상식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되어 그만큼 언론의 관심 또한 뜨거웠던 만큼 tvN을 통해 콘서트 실황을 중계하여 팬들에게 DVD에 대한 갈증을 달래기도 하였다. 하지만 공연 후 일부 관객들이 공연 전 맡긴 소지품을 찾지 못해 밤늦도록 귀가하지 못한 이른바 소지품 대란과 같은 안전사고로 인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콘서트 후 동방신기는 당초 4집 컴백을 2008년 초로 예정을 잡은 채 일본에서도 점차 상승세를 보이는 현지 반응에 힘입어 2007년 한 해를 거의 일본 활동에 매진하면서도 디지털 싱글 '여행기' 발매, 드라마 OST 참여와, 아시아송 페스티벌, Mnet 20's Choice 참석, 그리고 시아준수의 '애니밴드' 프로젝트 참여, 앙코르 콘서트 등을 통한 소소한 활동을 통해 국내 팬들의 갈증을 달랬지만 본래 매년 9월에 동방신기가 컴백해야할 시기에 슈퍼주니어가 앨범활동에 나서는 모습을 보며 아쉬움을 배가시켰다.

4.5. 2008년

그러던 중 2008년 2월 중하순, 동방신기의 일본 16번째 싱글 'Purple Line'이 처음으로 오리콘 위클리 차트 1위에 이름을 올렸다는 희소식과 동시에 SBS 인기가요KBS2 뮤직뱅크를 통한 스페셜 활동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본래 이 곡은 작곡가가 유영진인 점과, 뮤직비디오도 한국에서 촬영이 이루어진 점, 그리고 본래 2008년 초를 4집 컴백시기로 예정하였던 점을 들어 이 곡을 통한 일시적 국내 활동을 어느 정도 예견하는 팬들도 있었는 데 공교롭게도 오리콘 위클리 1위까지 달성하게 되면서 자축의 의미도 부여된 스페셜 활동을 벌이게 된 셈. 이 곡을 통해 가요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한 일시적 활동을 벌인 뒤 동방신기는 일본에서도 3연속 오리콘 위클리 차트 1위 행진을 이어가며 한일 양국에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9월, 마침내 동방신기의 정규 4집 '주문-MIROTIC'의 발표가 확정되었다. 본래 2008년 초로 잡혀있던 컴백 시기가 일본에서의 뜻밖의 상승세로 인해 하반기로 연기되어 장장 2년여만에 국내 컴백이 성사된 셈. 타이틀곡 '주문-MIROTIC'은 리버스 비트 장르의 곡으로 한번 들으면 헤어날 수 없다는 가사의 내용과 영웅재중이 작명한 부제목을 통해 기존의 SMP 장르의 곡과 차별화를 두었다. 2007년에 속속들이 등장하여 승승장구하기 시작한 후배들의 영향 때문인지 전작들에 비해서 절제된 비트와 후크송 열풍에 편승한 듯한 곡 구성, 그리고 파인 의상을 통한 섹시미를 내세운 전략이 통했는 지 음반 뿐 아니라 음원차트에서도 전작인 'Tri-Angle', 'Rising Sun', '"O"-正.反.合.'에 비해 상당기간 롱런하면서 'Hug' 이후의 동방신기 순수 히트곡이 탄생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간 매 앨범마다 지향해왔던 SMP 퍼포먼스에 가려진 가창력 또한 오랜 일본활동을 통해 숙달되면서 데뷔 초기 이후 가려져왔던 아카펠라 댄스그룹이라는 슬로건이 빛을 발하게 되어 비로소 완전체 그룹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대중들에게도 호평을 받게 되었다.

또한 정규 4집 앨범이 2008년 음반판매량 집계 결과 50만장을 돌파하게 되어 서태지 7집 이후로 하프 밀리언셀러를 달성하여 골든디스크 음반 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10년 기준으로 60만장을 돌파하였다고 한다. 물론 단일판매량은 아니다.

다만 타이틀곡 '주문-MIROTIC' 가사 중 'Under My Skin'과 'Crystal'이라는 구절이 각각 스킨십과 정자를 빗댄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이유로 청소년보호위원회로부터 수정조치를 받은 바 있었는 데 이후 청소년유해 매체물 결정을 취소하라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해제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방송 상으로는 5인 체제의 마지막 무대였던 2008 SBS 가요대전에서만큼은 원 가사로 불렀는 데 이는 방송시간이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기에 가능했었다고 한다. 또한 단독 콘서트에서 수정된 클린버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팬들의 원곡 가사 떼창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실상 이 앨범은 동방신기의 리즈시절을 맞이한 마지막 앨범이 되고 만다.

4.6. 2009년 ~ 2010년

일본 도쿄 돔 단독 콘서트 개최라는 위엄을 달성하게 되며 한일 양국에서 승승장구하던 중, 2009년 7월 31일, 멤버 시아준수, 믹키유천영웅재중이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사건이 팬들을 카오스에 몰아놓은 이유는 당시 법원에서도 이들의 편을 들어줄 정도로 공공연하게 알려진 불공정계약 또한 상당한 영향을 끼쳤지만 멤버 전원이 한 뜻을 모으지 못한 데에 있었다. 하지만 언론 보도 이후 3개월간은 SM과 에이벡스 측에서 빠른 진화에 나서면서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고, 팬들 또한 평소 멤버들이 대외적으로 보여준 끈끈한 정을 생각했을 때 그럴 일은 없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러나 연말에 들어서면서 위의 소문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고, 예상외로 법정 싸움이 장기화됨에 따라 그룹 활동 역시 중단 위기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소송을 제기한 세 멤버들과 나머지 두 멤버들끼리 서로 다른 방을 쓰고, 스케줄 사이에 이동을 할 때 다른 차를 타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비행기에서도 서로 멀리 떨어져서 앉는 등, 이미 멤버들 간의 사이도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2010년 초에 계획되었었던 한국 5집 컴백은 백지화되었고, 그룹은 대외적으로는 2009년 열렸던 NHK 홍백가합전을 끝으로, 그리고 2010년 3월에 발매된 30번째 일본 싱글 시간을 멈춰서 이후로 공식적인 활동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후 소송을 제기한 세 멤버는 2010년 6월 그룹 JYJ를 결성하여 활동 중이고, 일련의 사태로 인해 그룹 자체의 비전이 불투명해져 향후 활동 방향마저 백지 상태가 되버린 유노윤호최강창민은 각각 뮤지컬 활동과 연기자 활동을 통해 향후 활동 방향을 모색하게 된다.

과반수 멤버들의 이탈로 인해 당시 새 멤버 영입까지(...) 고려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던 동방신기는 그룹 존속 위기를 맞게 되고 탈퇴 멤버들의 소송 장기화와 팬덤 분열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SM 측은 결국 5인을 함께 끌고 나가고자 했던 기존의 방침을 철회하고 회사에 남기로 한 최강창민유노윤호, 두 멤버들만으로 동방신기 활동을 재개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이후 2인조 동방신기는 2010년 8월 SMTOWN 라이브 투어릁 통해 당초 5인조 동방신기의 5집 타이틀곡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곡인 'Maximum'을 통해 첫 선을 보였다. 게다가 오프닝 멘트에서 자신들을 동방신기라고 소개하면서 사실상의 동방신기로의 컴백을 예견하기도 했다. 동방신기는 이를 기점으로 정규 5집 컴백 준비와 동시에 그룹 활동 재개를 위한 워밍업에 들어갔다.

여담으로 이 사태의 여파에 따른 팬덤 분열로 인한 각 팬덤간의 수정 전쟁을 의식한 탓인지 항목의 내용 또한 같은 소속사 후배 그룹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실했고 급기야 비회원 수정 차단 조치까지 내려진 바 있다.

4.7. 2011년

그리고 2010년 12월, 동방신기의 2인조 컴백이 확정되었다. 사실 이는 2인조 동방신기의 실험 개념의 첫 공식 무대였던 SM타운 2010 합동 공연을 통해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지만 이로서 동방신기라는 이름을 추억으로 돌린 채 새로운 이름으로의 듀엣 결성, 혹은 유노윤호, 최강창민 멤버 각자의 같은 소속사 안에서의 독립적인 활동을 통해 과거 H.O.T의 전례를 그대로 이어가지 않을까하는 모두의 예상은 단박에 빗겨갔다.

이러한 결정은 물론 멤버들의 의지도 많이 반영이 되었겠지만 SM 입장에서도 동방신기가 6년간 활동해오면서 쌓아온 커리어와 팀 자체의 네임벨류가 SM의 브랜드벨류에 상당한 버팀목이 되어주기 때문에 동방신기라는 이름 자체를 버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SM과 멤버들의 결정을 통해 '동방신기를 지켜줘서 고마워요'라며 안도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이들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일부 팬들은 동방신기라는 이름이 더 이상 5인조 실력파 아카펠라 아이돌로서의 의미가 아닌 그저 SM의 브랜드벨류 지탱을 위한 도구로 전락되어 버리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과반수 이상의 멤버 이탈로 인해 컴백한다고 해도 음악 스타일 전환이 사실상 불가피하기 때문에 2인조 동방신기를 여전히 동방신기로서 대해줘야 할까라는 딜레마를 동시에 호소했다.

2010년 12월을 전후하여 동방신기의 2인조 컴백에 대한 윤곽이 잡히더니 SM 소속 가수로서는 이례적으로 TV 광고를 통해 동방신기의 컴백을 알리는 등 홍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2011년 1월 3일, 동방신기의 5집 타이틀곡 '왜 (Keep Your Head Down)'을 통해 컴백한다.

4.8. 2012년

2012년 2인조 동방신기는 'catch me'를 타이틀로 하는 정규 6집을 발매했고 리패키지는 '휴머노이드'가 타이틀이 되었다.

2012년 11월 28일 SM은 3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JYJ와 조정에 합의, "향후 서로 간 관련될 일이 없어 상호 간섭하지 않기로 해 금일 조정을 통해 재판을 마무리하게 됐다"고 밝혔다. 팬들 중 아무도 가능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이것으로 동방신기는 JYJ와 완전히 결별하여 2인조 그룹으로 확정되게 되었고 각종 포털사이트의 프로필 상에서도 탈퇴 멤버들의 이름이 삭제되었다.

4.9. 2013년

그야말로 대중적 참패를 당하고 만 6집 활동 마무리 후 동방신기는 일본 위주의 활동을 벌이면서도 각각 '우리동네 예체능' MC와 드라마 '야왕'을 통한 연기 활동을 통해 국내 팬들을 심심하지 않게 하였고 일본에서 7만명 규모의 닛산 스타디움 입성이라는 희소식과 동시에 동방신기는 어느덧 데뷔 10주년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데뷔 10주년을 목전에 두었던 2013년 10월에는 2008년 가졌던 5주년 팬미팅 이후 약 5년만에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카시오페아 3기 팬미팅을 가지기도 했다.

일본 위주의 활동을 벌이는 것이 하루이틀 있는 일이 아닌 데다 6집 활동이 워낙 부진했던 탓에 SM에서 버린 카드가 되버렸다는 추측마저 오갈 즈음인 2013년 11월, 데뷔 10주년을 기념한 정규 7집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는 소식과 동시에 SMTOWN WEEK를 통한 10주년 기념 콘서트 일정이 발표되어 국내 팬들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데뷔 만 10주년을 맞이했던 2013년 12월 26일과 27일 양일간 열렸던 SMTOWN WEEK의 일환으로 개최된 'Time Slip' 공연을 통해 동방신기는 그간 자주 부르지 않았던 'Hug'를 비롯한 초창기 시절의 곡들을 다수 부름으로서 팬들에게 아련함을 배가시키기도 하였고 당일 정규 7집의 티저 CF 또한 공개됨으로서 팬들에게 기대감과 안도감(...)을 사기도 했다.

콘서트를 전후하여 7집 컴백의 윤곽이 점차 잡히더니 이듬해인 2014년 1월 첫째주 컴백이 확정되면서 동방신기는 2013년의 끝자락과 2014년의 시작선상에서 맞이하게 된 데뷔 10주년 기념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4.10. 2014년 ~ 2015년

그리고 2014년 1월 4일, KBS2 뮤직뱅크를 통해 컴백했다. SM이 후배 그룹 EXO의 '늑대와 미녀 (Wolf)'부터 시행해왔던 선음방 후음원이라는 다소 팬덤 화력 발휘에 있어 난감할 수 있는 프로모션을 통해 팬들을 충공깽에 몰아놓기도 했다. 그 후 1월 7일에 정규 7집 'TENSE'의 음원이 공개되었다. 동방신기 역대 정규앨범 사상 최초로 앨범 고유의 타이틀이 명명된 앨범으로 데뷔 10주년을 뜻하는 '10th'와 긴장된이라는 의미의 영단어 'TENSE'의 중의적 표현. 수록곡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곡들로 데뷔 10주년을 헌정하는 느낌의 인트로곡인 'Ten (10 Years)'과 SMTOWN WEEK 콘서트에서 앞서 공개된 팬송인 '항상 곁에 있을게 (Always With You)'가 꼽히고 있다. 타이틀곡인 'Something'은 유영진 작곡이기는 하지만 기존의 강렬한 SMP 장르 및 컨셉과 많이 상반되는 스윙 재즈 장르와 정장 차림을 통해 10년차 가수로서의 부드럽고 중후한 이미지를 한껏 살렸다. 항간에는 이제 과격한 안무하기에는 나이가 찼다며 까는 이들도 있는 데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과격하지 않은 중후하고 고급진 컨셉이 먹힌 건지 음원차트에서도 전작인 'Catch Me'에 비하면 상당히 선전하였고 때마침 걸스데이도 동명의 곡을 발표하여 한동안 음원차트에 두 'Something'이 나란히 공존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가요프로그램에서도 상당횟수 1위를 차지하여 6집의 부진을 어느 정도는 만회한 셈. 하지만 활동 기간 동안에도 일본 앨범 프로모션 및 뮤직비디오 촬영 때문이었는 지 방송 출연이 6집에 비해 많이 뜸한 편이어서 팬들의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근데 이제는 뭐 놀라울 것도 없다. 1개월 정도의 텀을 가진 뒤 후속곡인 '수리수리 (Spellbound)'를 발표하여 활동을 이어갔다. '수리수리 (Spellbound)'는 'Something'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고급진 비트에 셔플 사운드가 어우러진 댄스곡으로 여자 백댄서와의 스킨십은 덤 소녀시대2NE1의 음원 강세로 크게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지만 'Something'과 마찬가지로 과격하지 않고 무난하기 들을 수 있는 곡. 하지만 이 역시 유노윤호의 발목 부상으로 인해 활동 기간이 한달도 채 되지 않았던 점이 악재였다. 유노윤호의 부상 회복 이후 동방신기는 이후 2개월에 걸친 7번째 일본 투어에 돌입하게 된다.

투어 종료 후 유노윤호는 드라마 '경꾼일지'를 통한 연기 활동을 최강창민은 한동안 휴식기에 들어갔다. 7집 콘서트에 관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 팬들의 목이 빠져가고 있을 즈음 2014년 10월, 동방신기의 5번째 콘서트 SPECIAL LIVE TOUR "T1ST0RY"의 일정이 공개되었다. 억지로 짜맞춘 듯한 콘서트 제목은 동방신기의 영어권 앞글자 이니셜인 'T'와 'HISTORY', 그리고 숫자 1과 0을 조합한 단어로 동방신기의 10년사를 다루는 취지의 공연임을 공표한 셈. 콘서트 개최가 앨범 발표에 비해 너무 늦은 게 아니냐는 불만도 있었는 데 이에 대한 불만은 공연 2일 차였던 2014년 12월 7일이 동방신기 데뷔 4000일이 되는 날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종식되었다. 콘서트의 내용은 'Time Slip' 콘서트에 비해 초창기 히트곡들의 비중이 그리 많지 않아 제목과는 취지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만큼 신선했다는 평도 상당수였는 데 추억팔이는 'Time Slip'에서 했으면 됐다라고 생각한 듯 하다. 다른 거 다 떠나서 팬들에게 가장 각인된 건 최강창민의 상의 탈의였다. 본인들도 자신감이 불타올랐는 지 'Somebody to Love'의 한국어 버전을 부르던 중 팬들에게 카메라를 들고 사진찍는 것을 허락하기도 했다.

2015년을 기하여 30살을 맞은 유노윤호가 입대를 앞두고 있는 상황인데 이에 앞서 전 멤버인 김재중이 입대하였고 다른 전현직 멤버들도 줄줄이 입대를 앞두고 있어 한동안 동방신기의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다. SM 측에서 유노윤호의 입대 전 마지막 공연을 꾸미려는 계획인지 T1ST0RY 앙코르 콘서트가 확정 단계에 있다는 팬들 사이에 썰이 나돌고 있다.

4.11. 일본 활동

5. 멤버들의 역량

5.1. 5인 시절

1990년대 중반 댄스 음악의 강세와 아이돌의 등장으로 인해 가요프로에서도 립싱크가 주를 이뤄 아이돌 그룹과 댄스 가수들의 가창력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게 되고 이는 자연스레 아이돌 그룹의 한계와 편견으로 굳어져 갔는 데 동방신기도 이러한 논란에서 마냥 자유로울 순 없었다. 'Hug' 활동 당시에는 멤버들의 앳된 목소리와 댄스곡이지만 강도가 세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커버가 되었지만 'The Way U Are'를 기점으로 전통 댄스곡 위주의 활동을 벌이게 되면서 가창력 논란은 점차 불거지기 시작했다.[11]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사례로 2004년 정규 1집 활동 당시 SBS와 케이블 채널에서는 후속곡을 'Tri-Angle'로 활동했던 반면 립싱크가 불가능했던 KBS와 MBC에서는 스페셜 캐롤 앨범 타이틀곡인 '마법의 성'으로 활동한 점과 2집 활동 당시 MBC 쇼 음악중심 출연 클립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는 동방신기도 본래 H.O.T.신화의 계보를 잇는 SMP의 적장자로서 기획된 팀이자 'Hug'를 데뷔곡으로 채택한 것은 동방신기의 자리매김을 위한 일시적인 전략이었음을 시사하는 바이기도 하다.

또한 상대적으로 보컬 능력에 한계가 많은 유노윤호믹키유천은 정규 1집을 기점으로 점차 랩을 병행하게 되는 데 이들의 보컬과 랩 파트 병행은 '랩퍼들도 노래 가끔씩은 해줘야 어필할 수 있다'라는 2세대 아이돌의 기본 공식을 만들었다.[12]

하지만 한국보다 립싱크에 대한 규제가 강력한 일본 현지의 방송 및 공연 문화와 엄청난 횟수의 일본 투어 강행군을 통해 3집 활동을 기점으로 댄스곡을 부르면서도 라이브 또한 점차 안정적으로 소화해나가기 시작했고 4집 활동에 들어서는 점차 대중들에게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5.2. 2인조 재편 이후

이전의 동방신기가 아카펠라를 구사하는 화음 위주의 팀이었던 데 비해 화음보다는 두 멤버가 교대로 자신의 파트를 노래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또한 저음 담당이던 유노윤호가 중간파트, 때로는 고음 파트까지도 올라가고 고음 담당이던 최강창민 역시 중간 파트와 저음까지도 커버하게 된 것이다. 노래뿐만 아니라 춤 역시 노래에 맞춰 두 멤버의 단독 퍼포먼스를 교대로 연출하는 방식으로 변화되었다. 5인 시절 각자 맡아왔던 각각의 베이스, 하이 포지션도 무의미해진 셈.

메인보컬과 리드보컬를 맡던 핵심인 시아준수영웅재중이 그룹에서 나가면서 보컬의 균형이 급격히 붕괴했다. 애초에 유노윤호는 래퍼나 마찬가지인 포지션이었고, 창민도 치고 빠지면서 포인트를 주는 역할에 적합하지 곡 전체를 리드하기엔 한계점이 너무나 많았다. 연습으로 실력은 나아졌지만, 잘 하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과 못하는 것도 커버하는 데엔 분명 큰 벽이 있다. 퍼포먼스는 어떻게 커버한다 해도 무너진 보컬밸런스는 어쩔 수 없는 듯하다.[13] 애초에 동방신기는 처음부터 2인 구성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Fly To The Sky가 아니었으니 예정된 수순인 셈.

이러한 한계점은 뮤직뱅크 600회 기념 특별 무대에서 부른 'Rising Sun'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오리지널인 5인 구성에서 빠진 세명이 맡던 메인과 리드를 포인트이던 두사람이 맡게 되면서 곡의 긴장은 높아졌으나 '긴장만'유지되고 안정성은 떨어졌다. JYJ든, 남은 두 명이든, 자신들만으로 5인조 시절 곡을 재현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고, 그저 남은 사람들끼리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 커버하는게 한계다.

6. 음반

한국음반산업협회기준
골든 디스크연간 판매량 1위

6.1. 앨범

발매일제목순위[14]판매량[15]비고
2004.10.11TRI-ANGLE8위 311,321장
2005.09.12Rising Sun4위 297,000장
2006.09.29O”-正.反.合.1위 543,148장
2008.09.25MIROTIC1위 614,491장
2011.01.05왜 (Keep Your Head Down)3위 417,375장
2012.09.26Catch Me3위 409,020장
2014.01.06TENSETBA 359,276장

6.2. 싱글

발매일제목순위[16]판매량[17]비고
2004.01.14Hug14위 242,890장
2004.06.24The Way U Are9위 300,558장
2004.12.06The Christmas Gift from 東方神起?위 109,271장
2005.06.22Hi Ya Ya 여름날?위 86,591장
2005.12.16Show Me Your Love?위 67,000장 [18]
2006.06.02방의 투혼?위 36,516장
2006.07.28Vacation?위 26,488장

7. 콘서트

개최일콘서트명장소관객 수비고
2006.02.10~2006.07.15THE 1ST ASIA TOUR CONCERT "Rising Sun"대한민국, 태국, 말레이시아 81,000명첫 단독 콘서트 및 투어
2007.02.23~2008.06.12THE 2ND ASIA TOUR CONCERT "O"아시아 5개국[19]193,000명
2009.02.20~2009.10.02THE 3RD ASIA TOUR CONCERT "MIROTIC"대한민국, 중국, 태국151,000명
2012.11.17~2013.07.20TVXQ! LIVE WORLD TOUR "Catch Me"전세계 6개국[20] 76,000명첫 월드 투어
2014.12.06~2015.01.24TVXQ! SPECIAL LIVE TOUR "T1STORY"아시아 3개국[21] 24,000명+10주년 기념 투어

8. 논란

8.1. 기네스북 등재 논란

때는 2008년, 동방신기가 한참 인기를 누리고 있을 쯤, 동방신기가 팬클럽 회원 수로 기네스 북에 등재되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논란은 팬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졌고, 확실한 증거가 없었음에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졌다. 논란이 된 글에는 공식집계된 팬들이 80만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다음공식카페 회원에서 유래된 숫자이며 그러한 팬클럽은 공식으로 집계될 수도 없으나 기네스 등재를 주장하는 글이 영어로 써져 있어서 그런 것인지 혹은 맹목적인 팬심 덕분인지 특별한 증거 없이도 아무도 사실여부를 의심하지 않았고, 현재에도 국내 연예기사에 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한다.

허나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는 주장은 팬덤에서 나왔을 뿐 실제로 동방신기 측은 한번도 기네스북 등재를 인정한적도, 인증한적도 없다. 기네스북 홈페이지에 기제되어 있지도 않으며 기네스북 공식 이메일로 질문해도 'We don’t currently have a record for the singer with the most amount of fans.' 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기네스북 공식 이메일주소에 이메일을 받으면 답변 받을 수 있다.

Exampl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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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트리비아

  • 2004년 MBC에서 방영되었던 '코미디하우스'의 '10분 토론'이라는 코너에서 김현철을 주축으로 한 다섯 개그맨들이 동방신기를 서방신기(...)라는 이름으로 패러디하여 카시오페아들의 눈총을 샀다. 게다가 일회성 출연이 아니라 상당기간 고정출연이었던 만큼 후폭풍도 거셌으며 한 번은 동방신기 멤버들이 직접 출연하여 정규 1집 수록곡 'Thanks To'를 발표에 앞서 선공개하기도 했다.
  • Mnet 재용이의 순결한 19의 코너 가운데 하나였던 '우리들의 불결한 차트'에서 '가창력이 정재용보다 딸린(...) 연예인' Best 7에 4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이 코너는 작성자가 직접 매긴 순위를 채택하는 내용의 코너였던 점을 감안할 때 그저 동방신기를 싫어했던 모양이다.
  • 현재 Superstar SMTOWN에서 서비스화 되고 있는 5인 시절의 동방신기의 곡들은 '주문-MIROTIC'과 'Rising Sun' 등 2곡으로 이마저도 현재로서 소송의 여파로 볼드모트화되어버린 JYJ 멤버들을 자체 검열처리하고자 Catch Me 투어에서의 라이브앨범 음원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게임 런칭 이후 볼드모트화된 크리스, 루한, 제시카와 달리 애당초부터 카드슬롯이 제작되지 않은 것은 당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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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동방신기가 'We Are'라고 외치면 팬들이 야광봉 2개로 T자를 만들면서 T라고 외친다. 은근한 상술을 염두해둔 인사법
  • [2] 원래는 멤버들이 다같이 허리를 숙이면서 '안녕하세요 동방신기입니다.'
  • [3] 한국 4,320,519장 일본 7,715,061장
  • [4]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동방신기도 텀이 조금 짧았을 뿐이지 뒤늦게 빛을 본 케이스라고 하지만 이는 큰 오해이다. 애시당초 BoA & 브리트니 스페셜 무대는 정식 데뷔무대가 아니었고 데뷔 싱글 음반도 한 달 뒤에 발매가 되었으며 음악캠프에서 정식 데뷔무대를 갖기 전까지 SM에서 소극적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야 동방신기가 데뷔하자마자 자리매김하게 된 셈이다.
  • [5] 여담으로 천상지희 팬들도 천상지희가 예상만큼 크게 터지지 않아 안타까워 할 때 앞에서 말한 대로 '동방신기도 조금 나중에 떳잖아'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크게 대성할 날만을 기다려왔다고 한다. 하지만 끝내 흑역사화...
  • [6] 당시 립싱크가 불가능했던 KBSMBC에 한해서만 '마법의 성'으로 활동했다. 그래서인지 활동하는 곡마다 헤어스타일과 분장을 따로 해야되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후문도 있다.
  • [7] 아는 이들은 다 알겠지만 대상은 '사랑스러워'의 대히트와 예능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 지상파 3사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김종국이었다.
  • [8] 발라드 무대에서는 같이 했지만 'The Way U Are'와 'Rising Sun'과 같은 퍼포먼스 무대에는 가면 백댄서가 안무 대열 보조에 나섰다.
  • [9] New 버전에는 후렴 첫 소절의 음계가 더 높다.
  • [10] New 버전에는 원곡에서의 '노란 풍선'이 '빨간 풍선'으로 개사되었다. 분명 동방신기의 풍선색이 빨간색임을 감안해서 애당초부터 '빨간 풍선'으로 개사하여 발매해야 했을 일이었는 데 이를 노린 것이 분명하다.
  • [11] 당시 MBC와 KBS에서는 100% 라이브를 원칙으로 했으며 AR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 [12] 당장 같은 소속사 후배 그룹 슈퍼주니어샤이니를 보더라도 그렇다. 슈퍼주니어의 메인랩퍼인 신동은혁도 앨범마다 보컬을 전담하는 수록곡을 2~3곡씩 찾아볼 수 있으며 샤이니민호의 경우도 메인랩퍼라는 포지션에도 불구하고 랩 실력마저 서브랩퍼인 와 비교되며 자주 까인 전력이 있어 셜록 앨범 수록곡을 기점으로 보컬 비중을 점차 늘리고 있다.
  • [13] 이 점은 JYJ 쪽도 마찬가지, 포인트가 부족해 5인 시절보다 심심해지고 파트 분배에서도 이러한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SM이 창민에게 과도한 고음부를 강요했던 탓도 있다. '왜 (Keep Your Head Down)'만 해도 거의 한계음역인지 클라이막스에서 음이 마구잡이로 찢어진다. 애초에 보이스컬러와 발성부터 리드보컬 타입이 아닌데 무리하게 끌고가는 듯.
  • [14] 발매 당해년도 순위
  • [15] 누적 판매량
  • [16] 발매 당해년도 순위
  • [17] 누적 판매량
  • [18] 슈퍼주니어와 함께 참여한 스페셜 싱글이다.
  • [19] 대한민국, 중국,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 [20] 대한민국,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미국, 칠레
  • [21] 대한민국, 중국,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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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5 2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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