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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예

last modified: 2015-01-14 15:30:57 by Contributors


Contents

1. 東濊
2. 董翳


1. 東濊


동예는 기원전 3세기부터 3세기까지 원산부근의 함경남도 남부에서 강릉까지 이르는 영역에 퍼저 있던 부족국가 집단이다. 북으로는 고구려, 옥저. 남으로는 진한에 접하였다. 고조선 멸망 후 한나라에 의해 세워진 한사군 중 임둔군의 일부가 현도군과 합쳐졌고 이 중 7현을 낙랑군이 담당하였으나, 후에 한사군이 폐지된 뒤 7현이 독립하면서 부조현은 옥저로, 나머지 6현은 동예로 귀속되었다. 한사군에 의한 점령시절 통치제도의 변화가 나타났으며, 고구려의 복속을 받았다가 다시 낙랑군의 영향을 받았다가 최종적으로는 고구려에 흡수되었다.

동해안에 해안을 끼고 위치한 까닭에 해산물이 풍부하며 그 외에도 단궁, 과하마, 반어피 등이 특산물이다. 그리고 산악지형이 대부분인데도 불구하고 토지가 비옥하여 농경이 발달했다고 한다.

제천행사로는 10월의 무천이 있었으며 씨족사회의 유풍인 엄격한 족외혼, 책화 등의 풍속이 존재했다.

민족은 족 또는 예맥족으로, 역사서에는 그냥 '예'라고만 나와있다. 나라 이름을 민족 이름과 구별하기 위해 현대의 역사가들이 '동'자를 붙였고 그게 국사교육에 까지 그대로 적용되었다. 국사 관련 시험에 단골로 등장하고, 때문에 고조선처럼 아예 동예라는 명칭이 명사화된 상황.

2. 董翳

진한교체기 진, 초의 장수. ? ~ 기원전 204년.

진 최후의 명장 장한을 따라 종군했고 항우에게 항복하도록 장한을 설득했으며, 장한이 항우에게 항복한 후에는 신안대학살에서 장한, 사마흔과 함께 살아남았다.

항우가 제후왕을 분봉할 때 적왕으로 봉해져 고노를 도읍으로 했고 옹왕 장한, 새왕 사마흔과 함께 삼진왕으로서 유방을 견제했으나, 한신의 관중토벌 때 색왕 사마흔과 함께 한에 항복했다. 그러나 기원전 205년 팽성대전에서 한이 항우에게 탈탈 털리자, 사마흔과 함께 다시 초에 투항. 그 뒤 대사마 조구, 새왕 사마흔과 함께 성고를 지키다가 항우가 팽월을 털러 간 사이 치고 나온 유방에게 성고를 함락당하고 조구, 사마흔과 함께 자결했다.

신안대학살에서 같이 살아남은 장한, 사마흔과 함께 세트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고, 그 중에서도 3인자라서 그런지 기타 매체에서도 취급이 드물다. 초한전기에서도 자결 전 독백씬을 받는 등 상당한 분량을 받은 사마흔에 비해 거의 출연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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