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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

last modified: 2015-04-13 21:18:51 by Contributors


Contents

1. 董卓
1.1. 미디어 믹스
2. 동으로 만든 종 銅鐸
3. 포켓몬스터동탁군


1. 董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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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93.26 KB)]

사진에 써져있는 글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董賊潛懷廢立圖(동적잠회폐립도) : 동탁이 나쁜마음 먹고 황제를 끌어내리려 하니,
漢家宗社委丘墟(한가종사위구허) : 한나라가 위태롭게 되네.
滿朝臣宰皆囊括(만조신재개낭괄) : 조정의 관리들 동탁의 무리에 가담하는데,
惟有丁公是丈夫(유유정공시장부) : 오로지 정공만이 대장부로다.


후한 말의 군벌, 정치가로 삼국지의 등장인물. 생몰년도 139년? ~ 192년(5월 22일). 는 중영(仲穎). 망탁조의의 멤버 중 하나. 하진과 더불어 삼국지의 첫 단추를 꿰는 주요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저지른 악행을 보면 중국사에서 손꼽히는 인간 쓰레기.

양주(서량 지역) 농서(농군 임조현 출신. 거치고 지략이 있었으며, 덩치가 크고 대단한 완력을 가졌고 궁마술에 능했는데[1] 이 때문인지 그는 활을 두개를 쥐고 자유자재로 쏠 수 있었다고 한다. 즉 태사자, 여포, 노숙, 미축 못지 않은 진정한 명사수가 동탁이였다. 젊어서부터 호방하고 보스 기질이 있어 패거리를 이끌고 다녔고 강족의 유력자들과도 친분을 맺었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강족 무리가 찾아오자 밭갈이 소를 잡아서 연회를 베풀었기에 강족들이 감격했다는 일화도 있다.

환제 말엽에 우림랑으로 천거되어 병주에서 전공을 세워 병주자사가 되고 합향후에 봉해졌다. 그리고 포상으로 받은 전리품들을 모두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인심 장악에 뛰어난 기질을 가졌다.

이후로도 동탁은 북방 이민족 토벌에 자주 전과를 올려 승진을 거듭했으며 하동태수로 재임하던 중 황건의 난이 일어나자 중랑장으로 승진해 토벌을 맡았으나[2] 황건적에게 패배하여 면직되었다. 하지만 한수 등이 양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다시 복직되어 진압을 맡았다.

하지만 이때도 특별히 전공을 세우지 못하고 전황이 지지부진했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사공 장온을 대장으로 삼았고, 장온은 조서를 보내 동탁을 불렀으나 동탁은 늦장을 피우며 한참만에야 도착했다. 특히 상관인 장온을 우습게보아 불손하기 짝이 없게 대하였다. 이때 장온의 부장으로 종군하고 있던 손견은 동탁이 평소 무례하고 윗사람을 가볍게 여기며, 반란 진압을 맡고도 몇년이 지나도록 공을 세우지 못한 데다, 균율을 무시하고도 오히려 뻔뻔하게 행동하니 절대 살려두면 안 된다고 장온에게 진언했지만 장온은 강족과 동탁의 관계를 들어 이를 거부했다.

이 전쟁에서 동탁은 수만 명의 강족에게 포위되어 식량이 떨어지지만 동탁은 물고기를 잡는 척하면서 빠져나가고, 도중에 하천을 막아 연못을 만들었다. 그리고 군대를 통과시키고 나서 제방을 무너뜨렸다. 이에 강족은 물이 깊어 추격하지 못해 동탁은 상처없이 무사히 귀환했다. 이때 조정이 보낸 여섯 군중 다섯 군이 모두 패배했지만 오직 동탁의 군대만 무사했다고 한다. 이 공로로 동탁은 전장군 태향후로 봉해진 뒤 병주목으로 임명되었으나 손견이 장온에게 동탁을 처형하도록 권한 일이 알려지자 모두가 장온이 동탁을 죽이지 않은 것을 한탄했다고 한다. 동탁은 손견과 장온에게 원한을 품어 훗날 정권을 잡자 원술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장온을 무고하여 매질해 죽였다. 이 사실을 삼국지연의에서는 동탁이 문무백관들을 무마시키기 위해 연회를 베푸는 도중 갑자기 장온이 여포에게 뒷덜미를 잡혀 그대로 끌려 나간 후 목만 쟁반에 담겨 돌아오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동탁은 군대를 사병화하며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상관을 무시했으므로 조정에서는 동탁을 두려워했다. 이에 188년에는 동탁을 소부로 삼고 지휘하는 군대를 좌장군 황보숭에게 맡기려고 했으나 당연히 이를 달갑지 않아하던 동탁은 상소를 통해 부하들이 자기를 너무 좋아해 보내주지 않는다며(...) 이를 무시했다. 189년에 조정에선 동탁을 병주목으로 승진시키고 병권을 다시 황보숭에게 내놓게 하였다. 동탁은 이에 자신이 통솔하는 병력을 병주로 데려가겠다는 상소를 올리면서 반발한다.

두 차례나 조서를 무시했지만, 대장군 하진이 환관 제거를 모의하기 위해 지방의 장수들을 소집하였는데, 동탁도 이 거사에 동참하기로 했다.[3] 그러나 동탁이 낙양에 도착하기 전에 환관들(십상시)의 책략에 의해 하진이 주살되고, 이에 분노한 원소 등에게 환관들도 주살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십상시의 난 참조.

이 소동 중 살아남아 도망친 장양 등 일부 환관들에게 연행된 소제와 진류왕의 신변을 동탁군이 확보하였고 환관들은 강에 투신하였다. 동탁은 이때 소제와 대화를 하였는데 소제는 겁에 질려 울고 있었고 제대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진류왕 유협은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막힘없이 대화하였고 또한 동탁은 유협의 보호자가 자신과 같은 동씨인 태황태후 동씨였다는 점을 상기해내고는 크게 기뻐하며 그를 황제로 삼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다고 한다.[4]

비록 황제의 신변을 장악하긴 했지만 동탁의 병사는 3천명 정도로 원소 등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크게 강할 것도 없었던 데다 동탁 본인을 포함해 군사들 대부분이 변방 촌놈들이라 위엄이라곤 전혀 없었고 사람들이 무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동탁이 꾀를 내서 4~5일 간격으로 밤에 네 성문에서 밖으로 군사를 보내 다음날 아침 군기와 북을 가지고 입성시켜 서쪽에서 대군이 계속 도착하는 것 처럼 보이게 했다. 이에 주인이 없던 하진,하묘(何苗)형제의 군사들은 강해 보이는 동탁쪽으로 붙었다. 이로써 수도의 군사 대부분을 장악하는데 성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포를 부추겨 병주자사[5] 집금오 정원(丁原)을 제거[6]하도록 하고 그 군대마저 흡수하자 엄청난 세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원소 등 경쟁자들은 데꿀멍하게 된다.

그리고 가뭄을 이유로 사공 유홍을 면직시키고 대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자마자 태위로 승진한다. 그 뒤 동탁은 한 달도 안되어 소제를 폐위하여 홍농왕으로 강등시킨 뒤 이틀 뒤 곧바로 모후인 하 태후를 함께 시해[7]하고 진류왕을 옹립시켰다.

동탁의 포악함이 극심해진 것은 이 때부터다. 군대를 이끌고 순찰중에 양성에서 주민들이 춘절을 즐기는 것을 보자, 비위가 거슬려 거기에 있던 남자들은 목을 베고 여자는 탈취하여 병사들에게 첩으로 주고 재산을 몰수했다. 심지어 궁녀나 공주에게까지 함부로 폭행을 가하거나 강간까지 했다. 또 하태후가 죽고 영제가 묻힌 문릉에 묻었는데 그 틈을 타서 문릉에 있던 부장품과 보물을 모두 도굴했다. 이와 같은 만행을 참을 수 없어 오부가 동탁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꾸미지만 실패하여 살해되고 만다. 연의에서는 조조(曹操)도 (왕윤의) 칠보도(七寶刀)를 빌려 동탁 암살을 모의하지만 실패하여 달아났다고 한다.[8]

또한 하내태수 왕광도 이에 반발하여 수도 근방에 병력을 배치한 뒤 동탁을 공격할 기회를 노렸다. 이때 동탁은 자신의 병력을 강을 건너는 것으로 눈속임 한 뒤 몰래 정예병을 보내 왕광군의 배후군을 급습하여 대파하여 거의 몰살하였다.

190년 각지의 제후가 원소(袁紹)를 맹주로 하여 반동탁 연합군을 조직하였다. 동탁은 장안(長安) 천도를 하고자 하였는데 사도 양표, 황완이 반대하자 이들을 면직시키고 강행했다. 이 때 여포를 시켜 후한 역대 황제와 후비들의 능묘를 파서 보물을 도굴했는데 심지어는 공경대부들의 무덤마저 도굴하자 그의 군사들은 백성들의 무덤까지 도굴했다.

동탁은 황제를 데리고 장안으로 도착하여 푸른 덮개에 금 장식을 두른 수레를 탔는데, 위엄이 마치 천자와 같았다. 아우 동민(董旻)을 좌장군으로 삼고, 조카 동황(董璜)을 중군 교위로 삼으니 종족 안팎의 사람들이 모두 조정에 나란히 섰으며, 심지어 시첩(侍妾)의 배 속에 든 아이까지도 제후에 봉해졌다. 자신이 사는 미(郿)에 만세오(萬歲塢)라는 성채를 쌓았는데,[9] 높이와 두께가 무려 7장(丈)으로 장안과 같은 규모의 성을 쌓아 30년 분의 식량과 엄청난 보물들을 비축했다. 동탁은 스스로 "일이 성사되면 천하에 웅거하고, 일이 그르치면 이곳을 지키며 한평생 지낼 수 있다." 라고 말했다.[10]이때 낙양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어버렸는데, 역사계에서는 이를 낙양 대겁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11]

  • 단, 이 미오성 관련 항목의 정사 서술과 관련해서는 우리나라 김운회 교수처럼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도 있다. 오늘날 아파트 단지 건설공사가 대략 2 ~ 3년이 소요되며, 조선 시대 정약용중기 등 최신 장비를 동원하여 쌓은 수원 화성 의 경우 2년 8개월의 공정 끝에 완공되었는데, 역사의 기록대로라면 당시 피폐한 장안 일대의 여력으로는 2, 3년에 불과한 동탁의 치세 동안 그런 대규모 역사를 일으키거나, 30년 분의 식량을 비축한다거나 한다는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정작 그 김운회 교수의 정사 해석도 문제가 많지만...

그 이외에 주연회를 열 때마다 죄인을 끌고와 혀와 팔다리를 자르거나 눈을 도려내기도 하고, 큰 솥에 삶기도 했다. 게다가 자기 마음대로 형벌을 남용하고 사람들이 서로 무고하였기에 억울하게 죽은 자가 수천 명이나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12] 거기에 헌제를 협박해서 상국[13]이라는 어마무시한 관직을 따내버렸다. 이 전설의 관직을 따낸 이후 기록된 동탁의 행보는 말 그대로 눈 앞에 걸릴 것이 없는 기세. 동탁은 장안에서 위세를 떨치며 대신들을 능멸했으며, 아울러 원소의 숙부인 태부 원외(袁畏)와 원술의 형인 태복(太僕) 원기(袁基) 두 집안 사람 50여 명을 잡아 죽였다.

특히 경제 정책에서 큰 실책을 저지르게 되는데, 바로 화폐개혁. 수전을 녹여 조그만 동전으로 주조하지만, 그 크기와 형태가 제각각이고 모양도 형편없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불순물까지 잔뜩 섞여서 이게 돈인지 뭔지조차 모르게 찍힌 개체도 있었다. 너무 돈을 많이 찍은 관계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서 후한의 경제는 혼란에 빠졌고, 화폐경제는 이후 한동안 회복되지 못했다. 오늘날의 각 나라들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항목이 화폐임을 감안할 때, 지나치게 서둘렀다는 점은 학계의 평이 일치하고 있다.

반동탁 연합군은 막상 모여놓고서는 동탁을 치는 것을 꺼려 지지부진했다. 조조, 포신 등이 그나마 동탁을 치러 나가봤지만, 동탁은 에이스 카드 서영을 꺼내어 조조와 포신을 털어버렸다. 한편 손견도 반동탁연합군에 가담하고 원술 휘하로 들어가는 형식을 취해 191년에 하남까지 이르렀으나, 손견도 서영에게 크게 패하고 간신히 군대를 수습하였다. 동탁은 손견을 마저 몰아내기 위해 호진여포를 파견해 손견이 있는 양인성을 공격했으나 호진과 여포 등의 반목으로 인해 실패하고, 오히려 원술의 든든한 물자지원[14]을 등에 업은 손견의 반격을 받아 패하고 도위 화웅 등이 전사했다. 손견과의 화친도 실패하자 동탁은 다시 손견과 싸웠지만 털리고, 여포를 보내봤지만 여포까지 털려 결국 손견이 낙양에 입성하게 된다.

비록 반동탁 연합군은 오래가지 못하고 자연스레 해체되었지만 동탁의 전횡 역시 오래 가지 못했다. 192년 4월 사도 왕윤은 동탁의 시녀와 밀통했다가 뽀록날까봐 떨고 있던 동탁의 심복 여포를 꾀어내어 동탁 살해를 모의했다.[15] 이리하여 동탁은 회의에 참석하라는 전갈을 받고 궁궐에 들어갔다. 그 때 호위병에게 제지당하고, 이숙[16]이 먼저 칼로 동탁을 베려 했으나 조복 밑에 갑옷을 입고 있어 팔만 베어낸다. 동탁은 부상을 당한채로 여포를 불렀으나 그 여포한테 찔려 죽고 말았다. 생각지 못한 배신에 "개같은 놈,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으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자치통감). 동탁의 머리와 사체는 저잣거리에 내걸렸는데, 뚱뚱한 몸의 배꼽에 불을 놓자 며칠씩이나 계속 탔다고 한다.[17] 이 때문에 살아서는 장안을 통치하던 동탁이 죽어서는 장안의 등불이 되어 며칠 동안 장안의 불을 밝혔다고 하는 농담이 있다. 동탁의 죽음에 있어 사람들이 동탁의 이름을 파자한 노래를 부르고 다녔는데 천리초 십일상(千里草(千+里+草=董) 十日上(十+日+上=卓).)이라 하면서 "온 천지에 난 풀은 열흘을 못넘긴다"라며 동탁의 이름을 파자한 노래였다.

여담이지만 동탁 모살 사건은 훗날 북위의 효장제와 그 측근들이 연구하여 이주영을 죽이는데 이용되었다.

제갈량노숙등의 천하삼분지계를 보면 동탁이 워낙에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언급이 나오는 걸로 보아 당대에 동탁은 이미 악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동탁이 해놓은 짓을 요약하자면

1. 황제를 갈아치움으로서 정통성 붕괴,
2. 이유야 어쨌건 군벌과 대치중 수도를 옮김으로서 중앙이 허술해짐을 신호하였고(즉, 중앙 권력 붕괴),
3. 화폐를 마구 찍어내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경제를 붕괴시켰는데 그나마도 제대로 찍지 못해서 정규화폐가 위조화폐보다도 더 조잡한 상황이 되어 위조화폐가 난립하게 되었으며,
4. 본인의 계급장을 본인 맘대로 마구 달고 그걸로 전횡을 부린 탓에 중앙 관직의 권위를 붕괴시켰다.(이는 원술의 칭제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원술 왈 : 동탁같은 등신도 다는 계급장, 나는 더 좋은 걸로 달아보자).
5. 이외에도 셀수 없는 악행을 저질렀다.

동탁이 이런 짓거리를 저지르자 원소는 헌제가 황제라는 것을 부정하면서 한 황실에서 대인배로 이름높은 유우를 옹립하려 시도했고 원술과 유표는 아예 칭제했다. 다만 원술이 대놓고 칭제한 반면 유표는 은근슬쩍 칭제했다는 차이.[18]유표 왈 : "똑같이 칭제헸어도 나는 황족이니까 별 탈이 없을 거야. 에헴..."[19] 동탁 때문에 이 정도로 황실이 개무시당했다.

그야말로 후한을 박살낸 주 원인중 하나라 봐도 무방하다.사실 이 이후 위진남북조는 동탁이 싸질러 놓은 걸 기반으로 이 놈도 싸고 저 놈도 싸고 다른 놈은 정리하는 척 하면서 싸고 어떤 놈들은 정리하는가 했더니 아들이나 부하가 싸고...

젊어서는 이민족들과 친분을 맺는 정도의 사내였지만 지위를 확립한 이후는 악인이 되었으니 권력을 잡자 타락한 케이스라고 볼 수도 있겠다. 혹은 애초부터 간사한 악인이었다고 보는 경우도 있지만.

음흉한 늙은 뚱보의 모습으로 주로 나오긴 하지만, 앞서 언급되었듯 기본이 무인이라 궁술에도 뛰어났고 힘이 세서 초인적인 완력이 있었다고 한다.[20] 연의에서도 힘이 굉장해 자기를 암살하려고 칼로 찌르려는 오부의 팔을 잡아 꼼짝 못하게 하여 역관광시키는 모습이 나온다. 다만 동탁이 죽고 시체가 효시되었을 때 더운 여름에 뚱뚱한 몸에서 기름이 흘러나와 끓었다는 기록이나 배에다 심지를 박자 며칠 동안 타올랐다는 기록 등을 봤을때 체구가 비대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삼국지 연의에서도 조조왕윤의 칠성보도를 받아 암살하려고 할때 동탁의 힘을 두려워하여 동탁이 침대에서 뒤로 돌아누웠을때를 노린것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침대 반대쪽의 거울에 조조가 칼을 뽑아드는 모습이 비쳐 동탁이 그걸보고 놀라면서 암살이 실패하게 되지만(...)

흔히 동탁을 가리켜 그저 악당 괴수급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대반수이지만 실제로 따지고 본다면 그는 서량지역의 변방 장수 출신 답지 않게 의외로 중앙조정의 권위와 힘을 알고 이것을 이용할줄 아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점은 권력을 잡는 시점에서 끝나고 만다.

혹자는 그가 시골 촌놈 답지 않게 정치적 센스가 굉장히 뛰어났기 때문에 조조의 선배격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집권과정만 비슷할 뿐, 그 이후는 전혀 보지 못한 단견이다. 일단 조조는 동탁과 비슷한 경로로 협천자 령제후를 하긴 했지만, 적어도 자기의 영역에서는 확실히 질서를 잡고 치국을 실시했다. 하지만 동탁은 정권을 잡는 순간 폭정을 다해 국치를 문란하게 했고, 그것으로 자신의 몰락도 재촉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권력을 즐길줄만 알았지,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도 비참하게 몰랐한 것이다. 차라리 자신이 천하를 다스리려는 비전(역심이겠지만..) 이라도 있었다면 민심을 휘어잡을 어진정치를 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동탁은 정치적 안목이 없는 일개 무부가 운좋게 정권을 잡았을 때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1. 미디어 믹스

2. 동으로 만든 종 銅鐸

강철신 지그에선 지그의 동력원으로 나온다. 포켓몬 중 하나인 동탁군의 모티브이기도 하다.에밀레종 아니었어?!

소년탐정 김전일에서는 작품이 작품인지라 흉기로 등장(…).
여담이지만 1의 동탁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런 개그가 있다. 동탁으로 만든 종 어째선지 갑동탁이 더 단단한다.

3. 포켓몬스터동탁군

동탁군 항목 참고. 사실은 2의 동탁을 모티브로 한 포켓몬이지만 1의 동탁과 연결시켜 드립을 치기도 한다. 삼국지 시리즈의 동탁 이미지와 합성한 그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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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래서인지 삼국지 5에서 난사, 원시을 있고, 삼국지 9에서는 궁기병법 최강인 비사을 가지고 있다.
  • [2] 연의에서는 본래 중랑장은 노식이었는데, 동탁이 싸바싸바(…)를 잘 하여 그를 밀어내고 중랑장에 앉았다고 한다. 과연 치군인 답다.
  • [3] 연의에서는 조조가 그 계획을 엿듣고 "외부의 군사를 불러들이면 조정의 상황을 그대로 발설해 버리는 것, 앞으로 그 화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 [4] 당시 하태후와 하진의 잔류세력들이 보호자로 있던 소제와 달리 유협에게는 아무런 배경이 없었기 때문에 동탁이 마음데로 권력을 휘두르기에 훨씬 용이했으며, 사실 동탁과 동태후는 별 상관 없는 사람이지만 아무튼 같은 성씨라는 것은 지금과 달리 그 의미가 굉장히 컸기 때문에 자신이 전권을 틀어지는데 약간이나마 명분을 세울 수가 있었다.
  • [5] 연의에서는 형주자사
  • [6] 연의에서는 이 제거를 사주하는 역할을 이숙이 맡았다. 그리고 여기서 여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전해진 선물이 바로 적토마.
  • [7] 연의에서는 그 이유가 유폐된 이후 '날 구해줄 충신 어디 없나'라는 의미의 시를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홍농왕과 하 태후, 당비(홍농왕의 부인?)를 죽이러 달려오는 사람이 이유였다.
  • [8]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조조가 왕윤에게서 칠보도(여기서는 칠성검)를 얻는 이벤트로 되었다.
  • [9] 당대 사람들이 흔히 미오(郿塢)라고 불렀다고 한다.
  • [10] 오(塢)는 거점 요새의 개념에 가까운데 유사한 군사거점인 진(鎭)과의 차이는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만세오는 미 땅에 세운 요새 또는 성채라는 의미로 훗날 위와 오가 대립하는 유수에 새워진 유수오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런 점에서 미오성이란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다. 사실 동탁의 이 장면은 동시대 인물의 훨씬 유명한 행동과 사실상 근본적 형태가 같은데 바로 공손찬역경루이다.
  • [11] 덕분에 약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낙양에 사는 주민들은 동씨를 싫어한다.
  • [12] 황의백 저서인 "삼국지의 지혜"에서는 이런 새디즘을 보인 이유가 정서불안이었거나, 대신들에게 경고하기 위함으로써라고 평하고 있다.
  • [13] 相國. 승상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수 있는 관직으로 전설의 관직이다. 상국은 왕보다도 높고 심지어는 황제 바로 아래에 해당되는 관직으로 황태자와 동급인 관직이다. 특히 천자앞에서 무장을 할수 있는 특권을 가진다. 워낙 엄청난 관직이다 보니 한 황조 400년 전체를 통털어도 동탁이 헌제한테 협박해서 빼앗아내기 직전까지 이 관직에 오른 사람이 한의 개국공신 중 한명인 소하, 그 뒤를 이은 조참, 여씨 일족의 빽으로 그 자리를 차지해낸 여산(呂産), 촉한제갈량 정도에 불과했다. 제갈량이 상국이 되었다는 말은 의외로 알려진 건 아니지만 진수정사 삼국지에 나오는데 이는 유비유언에 따르는 것이다.
  • [14] 당시 원술이 웅거한 남양군은 광무제가 그곳에서 거병한 이래, 성세에는 36개현 약 36만호 194만명의 인구를 거느린 거대 권역이었다. 낙양이 있는 수도권 하남군이 성시에 22개현 약 28만호 174만명이었으며, 당시 인구가 집중된 연주, 예주, 기주 주요 군국 인구가 최대 70만 ~ 120만명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웬만한 군국 2 ~ 3곳이 합쳐진 셈. 훗날 조조가 형주를 정벌한 후 현을 포함한 남양군의 몇몇 현을 분리해 단위의 행정구역을 신설하였다.
  • [15] 뒷날 잡극에서 여포가 동탁의 시녀와 밀통했다는 소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창작했고 삼국지연의에서 왕윤이 양녀 초선(貂蟬)을 이용하여 '연환지계(連環之計)'로 동탁과 여포 사이를 갈라놓았다는 형태로 완성된다. 이 연환지계의 전개에 대해선 초선 항목 참고.
  • [16] 동탁 입장에서 보자면 여포를 데려온 1등 공신이었지만 어느새 잉여가 되어 있었다. 특히 동탁이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여포가 왕윤(및 황완 등)에게서 "동탁을 꾀어낼 인물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듣자 곧바로 이숙을 추천한다. 물론 이숙은 그의 계획에 찬동, 동탁이 궁궐로 올 때 생기는 숱한 불길한 징조(수레바퀴가 부서진다든지, 먹구름이 낀다든지. 이 중에는 동탁이 오래 못 살거나 여포에게 죽는다는 것도 있었다.)에 대해 거짓말로 일관하기까지 한다. 연의에서 나오는 걸로 유명하지만 사실 정사 삼국지 주석으로 인용된 영웅기에 나온다.
  • [17] 《삼국지》동탁전에는 없고《후한서》동탁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 [18] 정사 삼국지 위서 유표전에 이르기를 유표는 후한 황실 조정에 대한 조공을 끊고 황제와 복식을 동일하게 하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 [19] 이 때문에 정사에 주석을 단 배송지는 동탁=원소=원술=유표라는 평가를 내렸다. 고우영 역시 이로 인하여 원소와 원술을 아예 도둑놈 형제라 칭했다.
  • [20] 전근대시대에서는 장군이 되려면 최소 기본 무예는 있어야 될수 있다. 동탁이 전략에서는 무능하지 무인으로서의 기본 실력은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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