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두산 베어스

last modified: 2015-11-08 07:05:03 by Contributors

KBO 리그 구단
samsung_lions_s.png
[PNG image (4.93 KB)]
삼성 라이온즈
(Samsung Lions)
nexen_heros_s.png
[PNG image (5.7 KB)]
넥센 히어로즈
(Nexen Heroes)
nc_dinos_s.png
[PNG image (5 KB)]
NC 다이노스
(NC Dinos)
lg_twins_s.png
[PNG image (4.5 KB)]
LG 트윈스
(LG Twins)
sk_wyverns_s.png
[PNG image (5.39 KB)]
SK 와이번스
(SK Wyverns)
doosan_bears_s.png
[PNG image (5.2 KB)]
두산 베어스
(Doosan Bears)
lotte_giants_s.png
[PNG image (4.63 KB)]
롯데 자이언츠
(Lotte Giants)
kia_tigers_s.png
[PNG image (5.28 KB)]
KIA 타이거즈
(KIA Tigers)
hanwha_eagles_s.png
[PNG image (4.9 KB)]
한화 이글스
(Hanwha Eagles)
KT_Wiz_s.png
[PNG image (3.3 KB)]
kt 위즈
(kt wiz)
과거에 참가했던 구단 보기 ▶

doosan_bears.png
[PNG image (92.82 KB)]
bears_mascot.png
[PNG image (113.9 KB)]
팀 엠블럼 팀 마스코트
철웅이
두산 베어스
Doosan Bears
창단 1982년 1월 15일
팀명 변경 1999년 1월 5일
구단 법인명 ㈜두산베어스
영문명칭 DOOSAN BEARS Inc.
업종명 스포츠 클럽 운영업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연고지 서울특별시
구단 연고지 변천 대전광역시 & 충청도 (1982~1984)
서울특별시 (1985~)
구단명 변천 OB 베어스 (1982~1998)
두산 베어스 (1999~)
구단주 박정원[1]
사장 김승영
단장 김태룡
감독 김태형
홈 구장 잠실 야구장
(25,553석)
2군 구장 이천 베어스 파크
(400석)
워드 마크
킷 스폰서 FILA[2]
홈페이지 공식 트위터, 공식 페이스북 팬카페

최종 우승
3회
1982, 1995, 2001, 2015
역대 우승 엠블럼
obbearsks1982.png
[PNG image (26.45 KB)]
obbearsks1995.png
[PNG image (28.76 KB)]
dusanbearsks2001.png
[PNG image (27.23 KB)]
1982년 1995년 2001년

두산그룹 산하 스포츠단
두산 베어스
(야구)
두산 핸드볼[3]

1982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프로야구 출범 OB 베어스 1983-해태 타이거즈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1994-LG 트윈스 OB 베어스 1996-해태 타이거즈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2000-현대 유니콘스 두산 베어스 2002-삼성 라이온즈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2014-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

Contents

1. 개요
2.
3. 시구
4. 팀 컬러
4.1. 유명한 포수 사관 학교
4.2. 외국인 용병이 차지하는 비중
4.3. 왼손 투수 잔혹사
4.4. 화수분 야구
5. 영구 결번
6. 팀의 역사
6.1. 연표
6.1.1. 시즌 1999 ~ 2003 : 팀의 세번째 우승
6.1.2. 시즌 2004 ~ 2010 : 김경문 감독의 취임과 강팀으로의 재 도약
6.1.3. 시즌 2011 : 흔들리는 뚝심과 화수분 야구, 김경문의 몰락
6.1.4. 시즌 2012 : 김진욱 감독 체제에서의 새 시작
6.1.5. 시즌 2013 : 돌아온 미라클 두산, 마지막 불꽃의 복선인가
6.1.6. 시즌 2014 : 송일수 체제의 출범과 1년만의 몰락 일수강점기
6.1.7. 시즌 2015 : 김태형 체제 출범, 뚝심의 두산이 다시 부활 할 것인가?
6.2. 관련 기록
6.2.1. 역대 감독
6.2.2. 역대 성적 (OB 베어스 시절 포함)
6.2.3. 역대 유니폼 변천사
6.3. 사건 사고
6.4. 선수단
6.5. 등번호
7. 두산 베어스 관련 커뮤니티
8. 지역 연고 학교
9. 관련 항목

1. 개요

KBO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서울특별시[4]. 서울을 연고지로 하는 3개 구단 중 하나이다.

한국 원년 프로 야구단 중 하나인 두산 OB 베어스로 창단된 구단으로,[5] 삼성 라이온즈롯데 자이언츠와 같은 프로 야구 원년팀이다. 연고지는 1982년~1984년 대전시, 1985년 동대문운동장. 1986년부터 홈구장은 잠실 야구장. 마스코트는 팀 이름에서 보듯 이다.

역대 우승년도는 1982년 원년과 1995년, 2001년으로 총 3번이며 준우승은 2000년, 2005년, 2007년, 2008년, 2013년으로 5번. 한화 이글스와 함께 삼성 라이온즈 다음으로 준우승 횟수가 많은 구단이다. 콩산 뭔가 2000년대에 많이 모여있다고 느낀다면 기분탓이다(...)

팀 마스코트인 곰에 비유해 뚝심의 야구, 거포사랑김인식 감독 시절엔 거구 타자들이 즐비했던 터라 뚱산 베어스 또는 두산 씨름부라고 불렸지만 김경문 감독 체제하에 급격한 팀 컬러 변화를 겪으며 두산 육상부 등의 별명으로 불린다. 2010년 이후로는 더스틴 니퍼트, 장민익 같은 장신 선수들이 많아지면서 두산 농구부라고 조롱하는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엄밀히 따지면 두산 베어스 소속으로는 이 사람도 있다.

근성있는 강팀, 시즌초 기대를 언제나 저버리고 기어 올라오는 무서운 강팀.[6] 역대 통산 역전승이 가장 많은 팀이고, 프로야구 역사에서 기억될만한 순위 뒤집기[7]나 업셋[8], 극적인 역전승[9]도 있었으며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전패로 준우승을 할 뻔한 위기에서 7차전까지 가기도 했다.[10] 두산팬들은 이를 미라클 두산이라고 칭한다. 다만 그 별명답게 미라클하게 시리즈를 내준 경우도 의외로 많았다는 게 함정(...)[11]

또한 FA를 잘 안 잡는데도 불구하고 성적이 잘 나오는 희한한 팀. 2012년 기준, 지난 11년간 FA를 잡는데 36억 밖에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초반 우승 1회 준우승 4회를 보면 강훈련과 무한경쟁을 바탕으로 한 유망주 팜과 용병 농사 성공, 그리고 잘 짜여진 팀 조직력으로 강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반면 한화 이글스는.. 2012년에는 김승영 사장, 김태룡 단장 체제로 조직을 개편하며, 당해 FA로 풀렸던 외야수 임재철, 투수 정재훈, 그리고 두목곰 김동주를 넉넉한 조건으로 잡는 이례적 모습을 보여주었지만우리 두산이 달라졌어요 이러한 움직임이 계속될지는 앞으로 두고봐야할 일.

거의 매년 투수진이 불안하다. 특히 고질적인 좌완투수 부족으로 신인지명시 좌완이면 억대 계약금에 모셔오기부터하는 좌완성애구단. 불펜진은 선발보다는 사정이 양호해 2009년까지는 KILL라인[12]고도 불렸지만, 선수들이 각각 부상, 재활, 보직전환 그리고 그 사건 등의 풍파를 겪으며 사실상 해체(...) “신은 베어스에게 좌완투수를 뺏어가고 포수만 잔뜩 주셨다.”라는 푸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前 응원단장 오종학이 꽤 미남인 것으로도 유명. 클릭비 오종혁의 사촌형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 알려진 것으로 가수 오종혁이 라디오에서 해명하기도 했다. 원빈 닮은 꼴로 TV에 출현한 적도 있다. 응원만 잘하면 되는데 그걸 못해...

운영적인 면에 있어서는 큰 돈을 막 푸는 것보다는 유망주 및 트레이드로 쏠쏠하게 실속을 챙기는 편. 구단이 선수 영입에는 정말 돈 안 쓰는 걸로 유명하다. 창단한지 몇 년이 좀 지난 넥센 히어로즈를 제외하면[13][14]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외부 FA를 잡은 적이 없는 유일한 구단이었다. [15] 그런데 2014-15 오프시즌에 장원준을 84억에 FA로 잡아서 더 이상 유일한 구단이 아니다.

그리고 타 구단이 쓰다 내보낸 선수들은 가끔 줍는다. 예를 들면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당한 크리스 니코스키가 두산에서 어느 정도 성공, 줍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2009년 취임한 두산그룹 CEO 박용만과 2012년 취임한 김승영 사장은 쓸 땐 쓰는 면모를 보여주어 팬들로 하여금 돈산이라는 감탄사를 자아냈다. 대신에 돈 써서 선수 데려오면 시망...[16]

창단시에는 의외로 돈을 투자해서 박철순을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데려오기도 했으며, 2011년에는 3개 구단의 감독이 원년에 OB베어스 소속이기도 했다. (투수코치 김성근, 포수 김경문, 조범현) 한대화와 1대 신인왕 박종훈의 경우 원년 OB베어스 소속은 아니지만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 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의 신임감독 양승호도 베어스를 거쳐갔다. 2011년 감독대행을 맡았던 김광수도 팀을 한 번도 떠나지 않은 베어스맨이다.[17]

이천에 있는 이천 베어스 파크는 한국 프로야구계의 대표적인 화수분. 2군 시스템을 일찌감치 도입한 팀답게 2군 육성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사서 쓰기보다 키워쓰는 두산베어스 야구의 특징을 대표한다. 유망주는 한 10년 이상은 묵혀야 빛을 본다는 옆동네 LG 트윈스팬들이 정말 부러워한다. [18] 이걸 본 LG 트윈스가[19] 2012년에 훈련장을 구리에서 이천으로 옮기겠다는 카더라도 있는데, 두산팬들은 이것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빌고 있다.그런데 2014년에 결국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비교적 베어스의 감독들이 두산 베어스 2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각별한데, 김경문 감독 뒤를 이어 취임한 김진욱 감독은 본래 하고 싶던 일이 2군 감독이며 여전히 한 번쯤은 2군 감독으로서 유망주들을 키워보고 싶다고 말할 정도. 그래서인지 팀 내부 분위기는 남들이 뭐라하건비교적 인간적, 가족적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선수 트레이드 때도 상당히 대인배스런 면모를 보여주기도. 다만 심정수 등을 보내버리며[20] 레전드 대우가 거지같부실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였으나 2012년 FA된 김동주가 재계약하며 17년 연속 두산맨으로서 해외진출없이 국내에서만 100억 이상 수입을 보장받아 신인들에게 '야구만 잘하면 레전드 대접 받을 수 있다'는 좋은 선례를 남기나 했다. 하지만 2014년에 김동주 1군 기용 여부를 두고 김동주 본인과 코칭스태프간에 마찰이 생겨 이적 파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역시 두산은 레전드 대우를 거지같이 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김동주의 경우 본인의 자업자득이라는 평이 많다. 자세한건 김동주 항목 참조.

두산 오너가에서 내려오는 말로, 두산 그룹이 망하지 않는 한 프로야구팀은 운영하라는 명언이 있다 카더라... [21] 하지만 용병이라고 사다준 선수가 키워쓰는 용병 세데뇨일 정도로 지원이 눈물났지[22]

여담으로 다른 구단에 비해 충암고 출신 야구선수가 비교적 많다.충암고 따까리 라인업! 이 선수만오면 충암고 풀덱이 완성될 거라 카더라

2.

OB 베어스 시절에는 팬이 비교적 없었다. MBC 청룡 시절부터 응원하던 서울 팬들이 굳이 OB로 옮길 리가 없었고 충청도 팬들도 어차피 서울로 올라갈 OB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고[23], 빙그레가 창단한 이후 그쪽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물론 팬이 없던 제일 큰 이유는 1994년 LG의 신바람 야구 시절엔 OB가 꼴지를 3번이나 하던 암흑기였기 때문[24]. 이 3번의 꼴찌 중에는 1991년 신생팀 쌍방울 레이더스에게조차 밀리면서 기록한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8위 기록도 있다.(...)그리고 22년 후 대전 연고지를 이어받은 모 팀이 흑역사를 재현한다 오너캐에 옛날 OB 모자를 그려 넣을 정도로 유명한 OB팬인 최의민도 레전드 열전 김용수 편에서 "학교에서 LG 말고 오비 좋아하면 매우매우 아웃사이더 냄새 나는 그런 시절로 기억된다"라고 말했을 정도. 그 대신 팬들의 충성도는 최강이다. 특히 원년부터 1980년대 말 암흑기 전까지 어린이팬들이 많았던 구단 중 하나로, 이때의 어린이팬들이 현재는 장성하여 변함없는 베어스 팬이었음을 자부한다.

2000년대 후반 김경문 감독의 지휘 아래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등 인상적인 성적으로만년 2등 콩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년부터 응원해오던 팬들을 중심으로 얼빠팬들이 늘어 프로야구 인기 절정기인 2008년~2012년에는 홈 구장 관중 동원 순위에서 LG를 앞지르기도 했다.[25] LG가 비밀번호를 끊은 2013년부터는 다시 LG가 앞서고 있지만... 관중동원 순위는 2006년 처음이자 유일하게 1위를 기록한 이후 콩산답게 2007년부터 8년 연속 2위를 찍고 있다.[26]

또 다른 구단에 비해 여성 팬들과 외국인 팬들의 비중이 가장 많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얘기하길, 보통 야구를 보러 오는 여성팬 비중이 약 40%라고 했는데 두산은 남녀팬 비중이 거의 50:50, 심지어 남자 45~49 : 여자 51~55라는 설도 있다. 잠깐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관중 수가 적은 평일에는 여자팬이 남자팬보다 많은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이 선수의 응원곡을 들으면 확실히 인원수 파악이 가능하다. 원정 팬도 거의 여자가 남자보다 많은편. 실제로 2008년 이후 응원영상들을 비교해보면 해가 바뀌면서 여자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게 확연하게 드러난다. 홈구장을 같이 쓰는 LG도 타팀에 비해 여성팬이 많다고 볼 수 있지만 두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여성들을 위한 행사들도 많으면서[27] 프런트도 여성 팬서비스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여성팬의 비중이 많다는 것에 불만을 가진 시선들도 꽤 있다. 가령, 자기 팀이 지고 있는데도 아랑곳 없이 상대팀의 파도타기에 호응해준다던가(...), 경기상황은 집중하지도 않으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만 응원한다던가, 야구룰도 제대로 몰라서 풀카운트에서 "삼구삼진"을 외친다던가(...), SK에서 투수코치를 하고 있는 두산 레전드 김상진을 씹솩충이라고 부른다던가(...) 양의지, 정수빈 응원가처럼 KBO에서 유일하게 남/녀 파트가 따로 있는 선수 응원가가 있는 구단이기도 하다. 원래는 일반적인 응원가였다가 점차 여성 팬 전용으로 특화되자 나중에 남/녀 파트를 나눴다. 대신 두산이 못할 때는 여성팬들도 잠실아지매가 된다

그런데 이건 여자팬 많아서가 아니라 매년 꾸준히 '야구팬'으로서 두산을 응원하는 민간인(..)들이 많기 때문. 야구 전체 인기상승+서울연고라는 접근성 용이+폭망해도 어쨌든 가을야구는 하는 성적=매년 두산경기 찾아오는 민간인 증가. 두산야구 오래 본 소위 오비아재들은 경기장에 와도 조용하게 보고 가시거나 집관하는 편. 직관 오는 관람층이 젊은 신생 야구팬들로 형성되며 응원결집력 미비, 야구장 매너 및 규칙 낯가림은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같은 잠실팀 LG트윈스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명확하다. 두산과 비교하여 신생팬 유입이 적어 LG트윈스 야구를 오래 본 올드비들의 결집력은 두산의 응원석과 상당히 비교된다. 다만 마지막으로 상기 소개된 파도호응, 풀카에 삼구삼진은 베이징 여파가 남아있던 김경문 전 감독 시절 이야기다. 벌써 감독대행 시기를 거치면서 김진욱 2년차를 맞이했고 베이징 때부터 야구본 얼빠도 최소 5년차 야빠라는(..) 다년간 훈련된 호구본능과 인터넷의 발달로 야구정보에 발빠르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결과 이러한 민망함은 많이 감소한 추세다. 물론, 아직도 팀에 아랑곳없이 좋아하는 선수만 응원하는 선수애미 악의 축 얼빠들은 존재한다.


3. 시구

여자 연예인 시구가 많은 편이다. 여자 연예인 중 절반 이상은 이 팀 홈경기에서 할 정도. 야구인기 증가로 야구장 시구가 효과적인 프로모션 수단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연예인 시구가 전체 구단 사이에 증가하였는데, 두산은 특히 그 시구자 라인업이 화려하다. 연예인들이 지방까지 시구하러 가는 일은, 그(또는 그녀)가 해당팀의 팬이 아닌 이상 드물기 때문에 두산 베어스 홍보팀에 항상 시구를 희망하는 제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개념시구로 이름높은[30] 홍드로 홍수아. 하지만 홍드로는 시구가 아니라 등판이잖아[31] 근래에는 비교적 자주 오는 소녀시대, 2011년 잠실에서 개막식 시구를 한 시크릿의 전효성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여자 연예인이 시구를 하면 이긴다는 징크스가 있고 JYP 소속 연예인이 시구를 하면 진다는 징크스가 있다.그런데 2014년 에는 AOA 초아가 시구했는데 졌다[32] 2013년 승리의 여신(&남신) 라인업은 조정석, 신수지, 미란다 커 등이다.

4. 팀 컬러

4.1. 유명한 포수 사관 학교

두산은 원년서부터 쟁쟁한 포수들이 많았기 때문에 포수 사관학교, 포수왕국, 또는 포수덕후구단이라고 불리우기도 했다. 아래는 두산 주전포수 일대기.

김경문 & 조범현김태형 & 이도형진갑용 & 최기문홍성흔채상병최승환 & 용덕한양의지 & 최재훈
물론 이외에도 많다.

1982년 OB 베어스 원년에 1977년 공주고의 대통령배 우승 주역인 고려대 출신의 김경문, 역시 77년 충암고의 봉황대기 우승 주역인 조범현, 1976년 선린상고에서 봉황대기와 황금사자기 우승을 이끈 정종현이 그 대표 인물들이라 할수 있겠다. 당시 김경문과 조범현은 포수 수비에서, 정종현은 타격에서 각각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33]
1990년대 초, 팀에 암흑기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주전 이도형김태형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도형은 장타력에서, 김태형은 수준급 수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 후, 1996년 최기문, 1997년 진갑용, 1999년 홍성흔이 열을 맞춰 입단했다. 이때에는 팀내 포수경쟁이 가장 치열했다고 한다.[34]

하지만 홍성흔이 0.258의 타율에 16홈런,63타점을 기록하면서 갑툭튀하면서 1999년 그 해 역대 포수로서는 두 번째로 신인왕을 수상하며 주전경쟁에서 승리하면서 최기문롯데 자이언츠로, 진갑용삼성 라이온즈로 보내버렸다. 그러면서 2007년까지 주전포수로 군림했다.

2008년 이후 홍성흔이 완전히 지명타자로 전향하면서, 채상병이 포수주전을 꿰찼다. 하지만 2009년 시즌에 접어들어서는 LG 트윈스에서 트레이드되온 최승환용덕한 등의 팀내 다른 포수들의 경쟁에 밀려 1군 경기보다는 2군 경기에서의 출전이 잦아지게 되었고 2009년 7월 16일 삼성 라이온즈의 좌완 투수인 지승민을 상대로 한 1:1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였다.

2010년 양의지가 타율 2할6푼7리, 20홈런, 68타점으로 신인왕에 등극하면서 최승환용덕한을 밀어내고 주전자리를 확실히 굳히면서 팀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잡았다. 이는 2011년 상무에서 복귀한 김재환이 수비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부상때문에 2군에 내려가 있어서 그런 것도 있고 최승환용덕한같은 백업포수들이 양의지의 기량에 못미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랬었을 수도 있다. 특히 용덕한이 때부터 안 좋게 찍힌 것도 있지만..[35] 그리고 김재환이 각성해서 수비를 올린다는 가정하에... 근데 점점 이천본즈라 불리우는 이 분을 닮아간다는 얘기가 있다. 안돼! 그리고 2011년 최승환이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한화로 트레이드되었다.

2012년 최재훈이 군에서 복귀 후 수비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양의지에 이은 새로운 포수 유망주로 떠올랐다. 타격은 아직 부족하지만, 뛰어난 송구 능력에 힘입은 도루 저지 능력이 돋보인다. 거기다가 박세혁까지 등장. 정말 마를 날 없는 두산 포수진이다.

하지만 포수왕국이다보니 김영신이라는 포수가 경쟁에서 밀려나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 이후 그의 배번은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끊임없이 주전포수감이 발굴되는 탓에 OB-두산 소속이었던 이도형, 진갑용, 최기문, 채상병, 최승환 그리고 홍성흔용덕한까지도 두산에서 오래 있지 못하고 타팀으로 이적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홍성흔은 돌아왔다 양의지도 안심할 수 없다[36]

두산의 포수 왕국 팀컬러가 사실은 두산 투수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개드립이 있다(...) 한 놈은 공을 땅에 심고 다른 놈은 공을 하늘에 뿌리고 덕아웃에도 뿌리고 타자에게도 뿌린다

4.2. 외국인 용병이 차지하는 비중

팀에서 용병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나 높았기 때문에[37] 의외로 변수가 많다.

다른 구단에 비해 용병 농사를 잘 짓는 편이지만 용병들이 몇 해 맹활약하다 몸값을 불린 뒤 일본프로야구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서 일본프로야구의 팜 아니냐는 자조섞인 말이 나돈다. 이러한 연유로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 용병들이 많은데, 그 예로 타이론 우즈, 리 레스, 다니엘 리오스, 켈빈 히메네스가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히메네스와 우즈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일본 리그에서 실패해서 한국으로 다시 유턴하거나 똥망. 두산의 저주? [38] 참고로 더스틴 니퍼트는 2011년 영입 당시 인터뷰에서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일본에서 뛸 자신은 없다"라고 언급했다. 오오 니느님

4.3. 왼손 투수 잔혹사

해태 타이거즈 못지 않게 왼손잡이와는 지독할 정도로 인연이 없는 팀이다. 단, 이는 투수 한정으로 야수의 경우 빼어난 왼손 타자들이 어느 정도 있었고 또 있는 편이다. 잠깐 거쳐갔지만 전설의 우동학 트리오를 결성한 심재학이 있었고, 현재 주전급 야수로는 김현수. 오재원 등이 있으니 양호한 편이지만...

정작 문제는 그놈의 왼손잡이 투수. 이는 OB 베어스 시절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88년 신인 지명때 두산(당시는 OB)는 국가대표 좌완 에이스였던 김기범거르고 비교적 무명이었던 이진을 지명했는데, 뽑은 이유가 "현재 실적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였다. 그리고 김기범은 LG(MBC 청룡)에 입단했고, 그 후로 김기범은 LG의 에이스가 되면서 특히 OB에게 가장 강한 면모를 보였고, 그에 반해 이진은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그대로 증발하여 이 선택은 OB에 있어서 최악의 삽질이자 희대의 병크로 남고 말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는 것.

1993년 신인 지명에도 LG에게 주사위 싸움에서 완패해 당시 서울 팜의 최대어인 야생마이상훈을 빼앗겼으며, 1994년 신인지명도 야수 최대어인 유지현을 거르고 좌완투수 류택현을 지명했다. 그러나 류택현은 OB에서 별 활약이 없었고 얼마 안 지나서 LG로 트레이드되었지만, 그 류택현김성근 감독을 만나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로 각성하여 2014년까지 리그 최고참급 투수로 901경기에 등판한 뒤 은퇴했다.

그나마 현재 OB-두산 베어스에서 좌완투수로 가장 성공한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핵폐기물로 욕을 먹고 있는 이혜천. 정말 믿기지 않겠지만 베어스 통산 역대 좌완 투수 승리 1위다. 2012년 기준으로 통산 55승(...)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그나마도 이혜천은 커리어 내내 한 번도 10승을 못해봤다. 베어스 역사 내내 좌완 투수가 얼마나 씨가 말랐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케이스. 또한 두산에서 그나마 활약한 좌완투수로 차명주가 있는데 롯데에서 트레이드된 후 김인식 체제에서 좌완 불펜요원으로 쏠쏠하게 활약했지만, 킬인식이 너무 굴려서 퍼지고 말았고,(...) 2004년에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게 된다. 그런데 그 한화 감독도 하필 킬인식(...)이었으며, 거기서도 혹사당하다가 2006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얼마나 좌완 투수에 목이 말랐는지 타 구단(롯데)에서 지명권을 포기한 선수(강관식)를 데려오기까지 했고 근래에도 진야곱 등 재능 있는 좌완투수를 지명했을 뿐더러 넥센 히어로즈에서 반짝에이스로 각성한 이현승도 데려왔다. 하지만 모두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안습.

2013년 들어 2009년에 입단한 유희왕유희관이 그나마 좌완 선발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1988년에 윤석환 이후로 25년만의 베어스 토종 좌완 10승을 달성했고, 2013년 포스트시즌에서도 괜찮은 활약을 했다. 좌완 선발로 자리잡아 롱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쓸만한 좌완 불펜이 없는 점은 아직 진행형이다.[39]

2014년 시즌, 25년만에 베어스 토종 좌완 선발투수 10승을 올린 유희관은 중간에 2년차 징크스를 겪으며 심하게 부침을 겪긴 했지만 어쨌든 베어스 최초로 2년 연속 토종 좌완 선발투수 두자릿수 승수의 기록을 세웠고, 수술 후 돌아온 이현승이 승리조 불펜으로 활약 하면서 꿈에 그리던 좌완 선발과 더불어 승리조 좌완 계투까지 장착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현승은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로써, 접전 상황에서 상대 좌타라인을 봉쇄하기 위해 표적등판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상황에 맞게 0.1 ~ 2이닝을 먹어주면서 두산의 허리를 책임지고 있다. 이후 이현승은 시즌 말미에 선발로도 등판하여 선발 전환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또한 선발 전환에 실패한 홍상삼의 뒤를 이어 정대현이 선발로 등판, 5월 14일 SK전에서 프로데뷔 후 첫 선발승을 따내면서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나, 20인외 특별지명으로 KT로 이적했다. 두산의 투수코치와 2군 감독이였던 kt의 정명원 코치와 황병일 2군 감독이 정대현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일지도 모른다.kt가서 터지면 이재학 시즌2 되는데 왠지 불안하다.
2013년 입단한 신인 함덕주는 평속 130km대에 불과했지만 가득염 코치의 지도로 최고 구속 146km까지 끌어올리고 신인답지않은 배짱있는 투구를 보여주며 팬들의 기대를 샀고, 프로야구 최장신 투수인 장민익은 최고 구속 151km을 선보이며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그리고.. 좌완투수에 대한 갈증이 심했는지 역대 투수 FA 최고액으로 장원준을 영입했다! 4년 84억.

4.4. 화수분 야구

두산 베어스 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단어가 바로 화수분인데, 이는 선수가 부족할 때가 되면 꼭 어디선가 아마도 이천 계속해서 필요한 선수들이 튀어나온다는 의미이다. 두산이 본격적으로 화수분의 이미지를 가지게 된 건 대체로 김경문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난 이후부터로 본다. 대체로 투수 쪽보다는 야수 쪽에서 더 많은 선수 자원이 발굴되는데, 고영민, 김재호, 박건우, 김동한, 최재훈, 양의지, 정수빈 등의 선수들이 대표적이다. 투수 쪽에는 노경은, 유희관, 고창성, 홍상삼, 금지어 등이 있다.

이렇게 선수 자원이 꾸준히 발굴되고 있기 때문에, 두산은 상대적으로 선수 공백에 대한 문제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또 두산이 항상 상위권의 성적을 찍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허나 단점이 없는 것도 아닌데, 구단 입장에서는 무한 경쟁을 통해 팀의 전력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좋겠지만 선수들 입장에서는 좀만 부진하거나 다쳐서 못 나오게 되면 다른 사람이 자기 자리를 빼앗아갈지도 모르기 때문에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또 2차 드래프트와 같이 타 팀에 자유이용권이 주어질 때 뻑하면 주전급 선수들이 털린다.(...) 실제로 2차 드래프트가 열릴 때마다 삼성 라이온즈와 함께 계속 선수가 유출되고 있다.

사실 이 화수분 야구라는게 좋은 의미만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신인 선수들이 끊임없이 발굴되어 나온다는건, 바꿔 말하면 베테랑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그만큼 적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두산 베어스는 유난히 베테랑을 홀대하는 구단으로 악명이 높고, 외부 FA는 물론이요 내부 FA조차 잘 잡지 않는다. FA 굳이 안잡아도 신예 선수 키워다가 빈자리 메우면 되니까. 이러한 베테랑 선수 홀대는 두산이 4강은 가도 우승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14시즌 스토브 리그에서 선수 대량 방출로 선수층이 얇아지면서, 두산표 화수분 야구도 한계에 봉착한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5. 영구 결번

두산 베어스 영구결번
No.21 박철순[40]

두산 베어스 영구결번
No.54 김영신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최초의 영구결번은 바로 두산 베어스의 전신 OB 베어스에서 나왔다. 현재 베어스의 영구결번은 총 2명인데, 1986년 사망한 포수 故 김영신 선수의 54번과 불사조 박철순 선수의 21번.

6. 팀의 역사

팀 이름이 OB 베어스였을 때의 시즌은 OB 베어스 항목 참조.

6.1. 연표

6.1.1. 시즌 1999 ~ 2003 : 팀의 세번째 우승


1999년 1월 5일, 구단 명칭을 현재의 두산 베어스로 바꾼다. 이 해 우즈의 활약과 3할 20홈런의 김동주, 김동주는 1998년에 데뷔, 즉 OB베어스 마지막 년도에 데뷔. 3할3푼5리의 타율에 31홈런을 친 심정수(일명 우동수)의 활약으로 드림리그/전체 승률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한화에 4연패로 탈락한다. 2000년, 우동수 트리오는 99홈런 308타점을 기록했으나 현대의 91승에 밀려 드림리그 성적은 2위. 플레이오프에서 LG에게 4승 2패로 승리하고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고, 한국 시리즈에서는 1~3차전을 통틀어 3점 밖에 내지 못했으나 4~6차전을 모두 쓸어 담는다.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한국시리즈 리버스 스윕이 일어날 뻔 했으나 결국 7차전에서 톰 퀸란에게 연타석 홈런을 맞고 패배.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 당시 두산의 준우승에 대한 반향은 상당해서 많은 야구팬들이 베어스의 플레이를 일컬어 미라클 두산으로 부르는 계기가 되었다.

2001년 심정수가 선수협 사태로 심재학과 트레이드 되었으나 심재학은 그해 3할4푼4리에 24홈런 88타점으로 대폭발하면서 심정수의 빈틈을 메운다. 페넌트레이스 3위를 기록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는 한화 이글스를 2승으로 가볍게 제친데 이어 플레이오프에서 현대 유니콘스와 한국 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연달아 꺾고 팀의 세번째 우승을 이룩한다. 이것은 92년 롯데 자이언츠와 함께 시즌 3위 팀이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한국시리즈를 전부 승리하고 우승한 두번째 사례이며 .508[41]의 승률은 역대 한국시리즈 우승팀 가운데 최저승률 기록이기도 하다.[42]

김인식 감독이 한때 두산의 종신 감독 보장설까지 있었으나 당시 자금난에 시달리던 구단이 연달아 주력선수를 FA, 트레이드로 내보낸데 이어 외국인선수 타이론 우즈마저 구단의 섭섭한 대우에 계약을 거부하고 일본에 진출. 결국 2002년 5위, 2003년에는 7위로 추락한데다 당시 지도자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선동열에 대한 각 구단의 영입 전쟁에 말려들어 9년간 이끈 두산 베어스 감독을 사임했다.

6.1.2. 시즌 2004 ~ 2010 : 김경문 감독의 취임과 강팀으로의 재 도약


2003년 말 김인식 감독이 물러난 이후, 두산은 원래 일본에서 코치 연수를 받던 선동열을 감독으로 영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영입에 실패하면서 그 대안으로 김경문을 감독으로 영입했다. 2004년, 두산은 정규 시즌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 기아에 2연승하고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1승 3패로 탈락한다. 2005년에는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해 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 3연승하여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지만 삼성에게 내리 4연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머문다. 이때부터 콩산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2007년 두산은 22승을 거둔 약쟁이 외쿡인 노예 다니엘 리오스와 12승을 거둔 맷 랜들의 원투펀치로 정규시즌 2위로 한화와의 플레이오프를 3연승으로 가볍게 이기고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SK 와이번스에게 2연승 뒤 4연패로 준우승, 다음 해 두산은 일본으로 리오스를 떠나 보내고 선발진에 약점을 드러냈고 정규 시즌 2위로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1승 뒤 4연패로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면서, 한때 콩산 베어스, 콩돡, 豆산이라고 불리기도... 삼성팬: 겨우 그정도 준우승 가지고? 요즘애들은 물러터졌네

2010년 두산은 켈빈 히메네스김선우의 원투펀치와 토종 타자 20홈런 5명으로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했고,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2패뒤 3연승으로 이기고, 플레이오프에서 삼성과 맞붙었다. 1차전에서 박한이의 역전 홈런으로 패했으나 2차전에서 임태훈이 경기를 마무리하면서 1승 1패로 가져갔다. 3차전, 양팀은 역전과 재역전을 반복했으나 결국 임재철의 동점타와 손시헌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했다. 4차전은 타격전으로 삼성이 승리했다. 5차전에서는 손시헌의 끝내기 실책 박석민의 끝내기 안타로 두산은 결국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서울 라이벌 LG 트윈스를 제치고 수도권 인기 구단으로 급성장했고 시장 규모도 상당히 커졌다. 관중수에서도 앞서는 등 두 팀의 상황이 슬슬 역전되는 분위기. 이제 두 팀의 인기는 적어도 동급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인기가 많아진 편이였다. 다만 2013년 시즌 LG가 호성적을 올리면서 이제는 서로 부딪히는 중.

6.2. 관련 기록

6.2.1. 역대 감독

두산 베어스의 역대 감독으로는 초대 김영덕부터 현 10대 감독인 김태형감독까지 총 10명의 감독들이 있다.

역대 이름 재임기간 성적
초대 김영덕 1982 ~ 1983 180전 100승 79패 1무
2대 김성근 1984 ~ 1988 534전 274승 250패 10무
3대 이광환 1989 ~ 1990 166전 69승 93패 4무
감독대행 이재우 1990
4대 이재우 1991 153전 45승 103패 5무
감독대행 윤동균 1991
5대 윤동균 1992 ~ 1994
감독대행 주억 1994
6대 김인식 1995 ~ 2003 1168전 579승 556패 33무
7대 김경문 2004 ~ 2011 960전 512승 432패 16무
감독대행 김광수 2011 76전 38승 38패
8대 김진욱 2012 ~ 2013 261전 139승 116패 6무
9대 송일수 2014 128전 59승 68패 1무
10대 김태형 2015 ~

여담이지만 역대 감독들중에 김씨 성을 가진 감독[43]은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 경력이 있는 반면, 김씨 성을 가지지 않은 감독들이 있었던 시즌에서 두산은 단 한 번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44] 거짓말 안하고 이광환, 이재우, 윤동균, 주억, 송금지어 이들 모두가 김씨가 아니다.

6.2.2. 역대 성적 (OB 베어스 시절 포함)

드 = 드림리그, 매 = 매직리그
연도순위/팀숫자팀이름경기수승률
19821/6OB80562400.700
19835/6100445510.444
19843/6100584110.586
19854/6110515720.472
19864/7108564840.538
19874/7108555210.514
19885/7108545220.509
19895/7120546330.463
19907/7120358050.313
19918/8126517320.413
19925/8126566640.460
19933/8126665550.544
19947/8126537210.425
19951/8126744750.607
19968/8126477360.397
19975/8126576450.472
19984/8126616230.496
1999드2/4두산132765150.598
2000드2/4133765700.571
20011/8133656350.508
20025/8133666520.504
20037/8133577420.435
20043/8133706210.530
20052/8126725130.585
20065/8126636030.512
20072/8126705420.565
20082/8126705600.556
20093/8133716020.534
20103/8133735730.549
20115/8133617020.466
20123/8133686230.523
20132/9128715430.568
20146/9128596810.465
20151/10144796500.549

그외 사항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항목 참조.

6.2.3. 역대 유니폼 변천사

7. 두산 베어스 관련 커뮤니티

9. 관련 항목

----
  • [1] 두산그룹의 지주회장. 차기 CEO 1순위로 지목되는 인물이며, 참고로 야구를 굉장히 좋아해서 LG트윈스와의 잠실시리즈 경기는 시간이 날때마다 챙겨본다고. 박용만의 조카이자 박용곤의 아들. 창립자 박승직의 증손자.
  • [2] 1994년부터 킷 스폰서로 두산 베어스와 인연을 맺고 있다. 이는 한국의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긴 킷 스폰서 계약기간이다.
  • [3] 참고로 모기업이 장부상으로는 두산 베어스가 맡고 있다.
  • [4] 원년에는 충청 지방을 연고로 했다가 1985년에 서울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5] 베어스는 삼성과 롯데와 마찬가지로 창단 이래 계속 두산그룹 산하에 있다. 현재의 팀명으로의 변경은 1999년에, 두산의 OB맥주 매각은 2003년에 있었다.
  • [6] 다만 항상 잘했던 건 아니고 90년대 초에 비밀번호 찍던 시절도 있었고, 최근에는 비교적 꾸준하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편이지만 꼭 몇년동안은 가을야구 하다가 한번씩 버로우를 타기도 한다. 2002~2003년이라든가, 2006년, 2011년, 2014년이 그 예.
  • [7] 대표적인 경우가 1995년으로 이 해 8월 하순까지 1위 LG와 6게임 차로 벌어져 있던 게임차를 9월 한달동안 .750이라는 경이적인 승률로 뒤집고 시즌 1위를 차지했다.
  • [8] 2001년 포스트시즌에서 정규시즌 3위로 시작,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모두 통과하고 한국시리즈에서 당연히 우승이라고 아무도 믿어 의심치 않는 삼성을 4승 2패로 꺾었다.미라클! 하지만 뒤의 것은 더하다.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4위로 시작,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아쉽게도 3승 4패로 준우승.
  • [9] 2000년의 507대첩, 1986년 최종전의 '김형석의 운명의 한 방' 등.
  • [10] 하지만 7차전에서는 현대의 용병 퀸란의 원맨쇼로 아깝게 준우승에 머무른다.
  • [11] 앞서 언급한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3패 뒤 3연승으로 리버스 스윕 직전까지 갔다가 마지막에 무릎 꿇는다던지,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SK에게 2승 후 4연패를 당하지 않나(...) 2009년 플레이오프때도 그 SK에게 2승 후 3연패라는 리버스 스윕도 당하고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도 3승 1패 뒤에 3연패로 우승 내주는 등(...) 여러 의미에서 미라클 두산 답다 미라클이 팀의 종특일지도 그런데 이쯤되면 테러블 두산인데(...)
  • [12] 고창성, 임태훈, 이재우, 이용찬의 이니셜을 따서 만든 명칭
  • [13] 2011시즌이 종료된 후 FA로이택근을 영입했다.
  • [14] 현대 유니콘스시절 합쳐도 FA 외부영입은 없었다. 의외로 잘 모르는 사실
  • [15] 2012년 시즌이 끝나고 구단 최초로 FA를 선언한 홍성흔을 롯데에서 영입했지만 엄연히 두산에서 데뷔했던 선수이므로 FA라 치지 않는 시선이 강하다.
  • [16] 그 대표적인 예가 금민철+10억을 주고 데려온 이현승. 이현승이 워낙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까닭에 두산팬들은 그를 현퀴라고 부르고 있다.
  • [17] 1997~98년에 KBS 해설위원으로 잠시 활동했으나 선수-코치 생활을 한 팀에서 계속 이어오고 있다. 2011년 시즌이 끝나자 감독대행직을 내려놓고 2012년 고양 원더스를 거쳐 2015년 한화에 둥지를 틀었다.
  • [18] 대표적으로 김현수,손시헌 등은 신고선수 출신으로 2군에서 올라와 1군에서 대성공한 사례 중 하나이다.
  • [19] LG 트윈스는 2012년 1월경에 축구장으로 써야 할 부지를 20년 동안 야구장으로 써온 게 발각되어 조만간 훈련장을 옮겨야 하는데, 그 후보 중 하나가 이천이다.
  • [20] 상술돼 있지만, 선수협 활동으로 인한 괘씸죄가 크다. 하긴 강병규도 이거 때문에 방출시킨 거니까.
  • [21] 실제로 박용곤 전 회장은 프로야구 창단에 깊숙히 참여했다. 프로야구 탄생비화 참고
  • [22] 이 때가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구단주를 맡은 시절이었는데, 바깥일에 치중하느라 구단 지원은 잘 안 했다.
  • [23] 그나마 프로 원년에는 강팀이어서 좋아하는 팬들이 좀 있었다.
  • [24] 아이러니하게도 OB는 1995년도에 우승한다.
  • [25] 처음 관중 동원에서 LG를 이긴 건 LG가 사상 처음으로 최하위를 찍었던 2006년이다.
  • [26] 2007, 2013~2014년은 LG가, 2008~2012년은 롯데가 1위.
  • [27] 퀸즈데이. 2009년부터 시작. 본래 특정달 목요일에 감독 이하 선수 전원이 핑크색 유니폼을 입고 나와 경기했으나 그러고서 이긴 경기가 하나도 없는데다 팬들의 반응도 그리 좋지않아 현재 유니폼 입고 경기하는 이벤트는 사라진 상태다.
  • [28] 2015년 개막전까지 포함해 잠실 직관승률 10전 전승을 자랑한다 ㅎㄷㄷ
  • [29] 실제로도 두산 경기에 자주 직관을 가는 편이다. 다음에서 두산 팬으로 유명한 모 네티즌의 직관 후기에서도 종종 등장하곤 한다.123
  • [30] 하지만 요즘에 와선 대다수 남자팬들의 원성을 사고있다. 유니폼에 운동화! 색기가 부족하잖아
  • [31] 그러나 홍수아가 본업보다 야구 및 두산 베어스를 통해 언론에 노출되는 경향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강해지며 전처럼은 그녀를 반기지않는 두산팬도 늘고 있다.
  • [32] 초아는 2015년 개막전에도 시구했는데, 이 날은 이겼다.
  • [33] 특히 김경문과 조범현의 주전포수경쟁은 상상을 뛰어넘을만큼 치열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김경문이 먼저 치고 나가면, 다음에는 부상을 틈타 조범현이 주전으로 올라서고, 나중에는 다시 김경문이 자리를 되찾는 식이었다고. 김경문이 1990년 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되며 끝나는 것처럼 보였던 이 싸움은 2000년대 후반 두산과 KIA의 대결을 통해 이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김경문과 조범현은 고교 시절부터 라이벌 관계로 유명했고, 이들의 경쟁은 곧 팀내 코치인 이광환(김경문의 대학 선배)과 김성근(조범현의 고교시절 감독)의 자존심 싸움이기도 했다고.
  • [34] 이미 김태형이도형이 주전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뒤로 최기문, 진갑용, 홍성흔이 들어오면서 경쟁은 심해졌다. 게다가 위 3명의 지금 네임밸류만 보더라도...ㅎㄷㄷ
  • [35] 최승환과 용덕한 같은 경우에는 투수리드나 수비면에서는 양의지보다 다소 앞서지만 공격력에서 상당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 [36] 하지만 적극적인 트레이드로 팀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선수 개인에게도 앞길을 터 주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무조건 나쁜 사례라고만 보기는 힘들다. 즉 트레이드한 선수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트레이드로 얻게 될 실리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 [37] 용병제도 도입 이후로 전통적으로 용병덕을 많이 본 팀. 예를 들면 타이론 우즈(타자), 외국인 노예다니엘 리오스, 맷 랜들, 캘빈 히메네스 등 다만 이것만 보고 두산 프런트가 용병보는 눈이 좋다고 오해하면 안된다. 우즈는 트라이 아웃으로 뽑았고 리오스, 레스, 키퍼는 이미 다른 팀하필 다 한 팀에서 검증을 마친 선수들, 랜들은 레스의 추천선수였다. 두산은 해외에 스카우터도 파견하지 않고 스탯과 현지에서 보내준 자료만 보고 뽑는 막장 짠돌이 구단으로 유명하다. 근데 돈 안 쓰기로 유명한 건 이 구단이 있잖아. 안될거야...
  • [38] 레스는 2003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지만, 1년 만에 방출. 리오스는 일본 첫해 2승 7패로 부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5월 21일 도핑 테스트 결과, 금지 약물인 스테로이드계 약물 복용 사실이 밝혀지면서 방출을 통보받았다. 또한 우즈도 2년 연속 홈런왕을 거머쥐는 등 대체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2005년 5월 5일 나고야 돔에서 열린 야쿠르트와의 시즌 6차전 경기 중 5회말 타석 때 후지이 슈고(현 요미우리)의 몸쪽 위협구에 분노, 그의 오른쪽 뺨을 구타하여 10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50만 엔의 중징계를 받았던 적이 있다. 그리고 히메네스는 감독과의 불화와 도호쿠 대지진때문에 지금은 자신의 고향인 도미니카에서 개인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한국 복귀설이 떡밥으로 나돈적이 있었고. 현재 2군 로스터에 포함되어 있긴하지만 여전히 슬럼프인 듯. 역시 히메네스도 두산의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 [39]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에게 우승을 넘겨 준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 좌완 계투의 부재도 한몫을 했다. 5차전부터 삼성 좌타진의 타격감이 상승하면서 좌타에게 계속 맞아나가기 시작했고, 그것이 3승 1패 후 3연패로 귀결되었다는 시각이 많다. 그전에 준플, 플옵을 연달아 치룬 체력 소모가 가장 컸지만 사실 선수풀이 좁은 한국 사정상 제대로 된 좌완 불펜이 리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인 건 사실이긴 하지만, 두산은 그나마 좀 뎁스가 두텁다는 서울팜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고질적으로 좌완 불펜 문제로 시달리는 게 일상이다.
  • [40] 잠실 야구장 두산 홈 경기시 우측 외야 가운데 깃대에 박철순의 등번호 21을 상징하는 깃발이 올라간다.
  • [41] .608가 아니다!
  • [42] 덤으로 10승 이상의 투수가 한 명도 없는 팀의 유일한 우승이기도 하다. 그 해 두산의 최다승 투수는 마무리투수인 진필중의 9승.
  • [43] 물론 이제 첫 시즌 시작인 현직 김태형 감독은 제외.
  • [44] 1993년 윤동균 감독 시절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11-08 07:05:03
Processing time 0.5234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