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드래프트

last modified: 2015-04-10 16:59:18 by Contributors

Contents

1. 영어단어 draft
2. 스포츠 용어
2.1. 개요
2.2. 특징
2.3. 이야기거리
2.4. 한국의 드래프트
2.4.1. 한국프로야구
2.4.2. K리그
2.4.3. KBL
2.4.4. V-리그
2.4.5. e-sports
2.4.6. 프로바둑
2.5. 특별 드래프트 사례
2.6. 괴담
2.7. 기타

1. 영어단어 draft

명)초안 동)초안을 짜다
명)선발 동)선발하다

'징병하다'라는 뜻도 갖고 있어서 징집병으로 입대한 경력이 있는 군필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경우 영문 의미상으로는 드래프트를 여러번 겪은 것이 된다(...)

2. 스포츠 용어

2.1. 개요

드래프트는 스포츠에서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로 전환할 때 거치는 일반적인 선수 지명 방식 중 하나로 일반적인 자유계약제의 문제점인 돈 많은 팀이 유망주를 싹쓸이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해 프로 계약을 원하는 모든 선수를 드래프트 대상으로 지정한 뒤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정해진 인원을 선발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진행 방식은 모든 선수를 대상으로 팀당 일정 횟수의 기회를 주고 팀별로 돌아가면서 선수를 지명하는 것이다. 신인 선수만이 아니라 리그의 특정한 상황에 따라서 기존 선수를 대상으로 드래프트를 쓰기도 한다. 가령 리그에 신생팀이 들어온 상황에서 신생팀 선수 수급을 위한 확장 드래프트 혹은 KBO의 해외진출선수 특별지명 따위가 이 같은 경우.

드래프트제는 헌법에서 명시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에 프로와 아마추어간 협약과 선수의 신분에 대해 당사자가 모두 합의를 거치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 때문에 이런 규정이 없는 유럽 스포츠리그에는 드래프트가 없으며, 주로 미국식 폐쇄적 단일 리그 체제에서 사용한다. 따라서, 아마추어 선수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드래프트를 거부할 권리를 갖는데[1] 이 경우는 그 리그에 들어오지 못하는 제재를 받게 된다. 물론 타 리그에서 뛰는 걸 막진 못한다.

2.2. 특징

드래프트의 장점이자 주요 목적은 기본적인 선수자원 보호 및 위에 언급한 돈 많은 팀의 유망주 싹쓸이 방지, 역으로 아마추어 선수의 몸값 조정 등이다. 드래프트의 중요한 순기능 중 하나는 하위팀의 전력보강기회 제공이다. 이 때문에 드래프트 순위는 주로 성적의 역순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2]

반면 드래프트의 문제점은 매년 들어오는 아마추어 선수들의 재능이 일정치 않다는 것. 가끔 별볼일 없는 신인들만 오게될 때도 있지만, 어느 해에는 압도적인 신인이 나올 수도 있다. 따라서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선수가 드래프트 대상으로 나올 경우 몇몇 하위팀이 그 선수를 얻기 위해 노골적인 탱킹(tanking)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NBA의 르브론 제임스나 한국 여자배구의 김연경, 김민지, MLB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브라이스 하퍼 같은 초특급 유망주가 나올 경우. 이들은 모두 소속팀이 전 시즌에 탱킹해서 쟁취한(...) 선수들이다.

또한 피지명되는 선수 입장에서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 받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지 않는 팀으로 가기 싫어서 징징을 시전해서 계약에 난항을 겪거나 아예 입단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존 엘웨이, 일라이 매닝. 야구에서는 前 보스턴 레드삭스 외야수 J.D. 드루의 경우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지명받았다가 지명을 거부하고 독립리그에 입단했다가 1년뒤 드래프트를 재수하는 당시로써는 충공깽스런 선택을 했으며 그 결과 은퇴할때까지도 필라델피아 원정만 오면 무시무시한 야유를 받는다.

그래서 NBA나 NHL같은 리그는 위의 탱킹을 방지하기 위해 드래프트 로터리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전년도 성적 역순으로 자동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년도 성적을 기준으로 일정 수의 팀에 전체 1번 픽의 확률을 차등으로 부여하고, 드래프트 전에 추첨을 통해 1, 2, 3순위를 뽑아서 순위를 재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꼴찌를 하기 위해 져주기 게임을 하는 의미가 없어진다. NBA에서는 1985년 드래프트에 최초로 시행이 되는데, 이 제도를 통해 특급 유망주들이 간혹 처음부터 빅마켓 팀에 가는 경우가 나오곤 한다. 예를 들자면 패트릭 유잉뉴욕 닉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2008년에는 1.17%라는 낮은 확률을 뚫고 시카고 불스가 1순위를 따내서 데릭 로즈를 얻게 됐다.

그렇다고 해도 확률이 차등이기 때문에 대부분 NBA 전문가들은 로터리 1위 경쟁팀이 되면 자기동네 응원팀이라도 그냥 연패해서 로터리 확률이나 높여라 할 정도다. 문제는 그럼에도 이 로터리에 대해 뒷담화나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 NBA가 특급 신인을 빅 마켓에 보내 (프랜차이즈) 스타로 만들려고[3] 로터리 추첨을 조작한다는 것인데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근거는 전혀 없다.

2.3. 이야기거리

몇몇 해들은 정말 뛰어난 재능들이 몰리기도 하고[4] 몇몇 해는 그야말로 흉작으로 꼽히기도 하는 등 희비가 엇갈리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는데, 그중에서도 특정 몇년은 이름이 붙을 정도로 특이한 경향성이 보이기도 한다.

특히 이런거 잘하는 것이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이다. 1999년 드래프트는 일명 조시 드래프트라고 불리는데 조시 베켓조시 해밀턴이 그 해 투타 최대의 유망주였기 때문인데, 3년 만인 2001년 드래프트는 다시 마크 드래프트라고 해서 마크 프라이어마크 테세이라가 투타 최대의 유망주였다. 하지만 전체 1순위는 조 마우어였다는게 함정. 2002년 드래프트는 잭 그레인키, 프린스 필더 등 재능이 넘치는 선수들이 많은 해였지만 그런거 없이 빌리 빈이 자신의 방식으로 선수를 영입한 일명 머니볼 드래프트로 유명하다. 이런 것은 드래프트 단계부터 유망주 선수들의 홍보를 하는 수단이기도 해서, 각종 스포츠 팬들은 이런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고 아우성이지만...

NBA의 경우 농구라는 종목 특성상 드래프트 상위픽이 슈퍼스타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서[5], MLB 이상으로 드래프트를 포장하고 특히 각 해의 1번픽 예상 선수들은 근 1년 전부터 언론과 전문가들이 금칠을 해주는데, 이 포장질의 절정이 고 1때 부터 무려 3년간 포장을 해줬던 르브론 제임스. 그러나 르브론이 데뷔했던 2003년은 1984년, 1996년과 함께 느바 역사상 3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드래프트로 꼽히는 해라 무턱대고 르브론만 띄워 줬던 것은 아니고 다른 선수들도 굉장히 주목을 받았다. 1번픽 외에는 볼 것 없어서 대놓고 선수 이름 드래프트로 꼽혔던 케이스 중 대표적인 것이 1997년의 팀 던컨 드래프트.

2.4. 한국의 드래프트

2.4.2. K리그

1988년부터 드래프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월드컵등을 통해 해외리그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고, 자유로운 시장계약방식으로 돌아가는 해외리그에 선수 유출이 시작되면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중단되기도 했었다. 김동현, 박주영 계약파동으로 2006년부터 드래프트가 재개되었지만 위의 이유로 야구에 비하면 드래프트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거센편.게다가 소위 루키라 불리는 어린 신인의 데뷔를 막는 제도이기도 하다. 유럽권에서는 실력만 인정 받으면 고등학생의 나이에도 데뷔전을 치르며 경험치를 쌓을 수 있지만 K리그는 드래프트 제도로 인해 어린 선수들의 계약이 막히는 경우가 발생한다(그런데 이는 드래프트나 노동법의 문제가 아니라 학원축구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2014년 12월을 화끈하게 달궜던 황희찬사태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 프로축구연맹도 장기적으로 드래프트를 폐지한다고 한다.

지명순위별로 연봉 상한선과 의무 계약 기간이 존재하는데 연봉 상한선도 낮은편인데다가 의무 계약도 4년이었고, 계약금도 없었기 때문에[6] 많은 유망주들이 낮은 연봉으로 인해 일본 J리그나 J2리그로 나가게 하는 결정적인 빌미가 되고 있다.(그리고 그 결과로 많은 유망주가 망가진다.) 그때문에 계약금에서 일부 금액을 지급받는, 일명 선수장사를 하는 대학팀 감독들이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7]그리고 드래프트를 반대하는 축구팬들조차 이들은 까임의 대상이다. 거기다 김종부 파동+김동현 파동+박주영 파동. 드래프트 부활에는 대학팀(고려대)이 가장 큰 공헌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06년 드래프트 재개에 큰 목소리를 낸 시민 구단들 역시 최근에는 드래프트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배기종이나 염기훈과 같이 팀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실력있는 선수는 결국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보니, 아직 쓸만하지만 수도권팀들이 재계약을 하지 않은 베테랑과 조금 실력이 떨어져도 꾸준하고 충성심이 있는 유망주와 선수들, 그리고 용병대박위주의 운영을 많이 고려하고 있다.

다른 종목에서 멀쩡하게 돌아가는 드래프트가 축구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건 다른 국가의 리그와의 선수 이적이 적거나 거의 없다시피한 다른 종목들과는 달리 축구는 다른 국가의 리그들과 치열한 경쟁체제에 있다는 점이 크다. 한국에서 좋은 신인이 나오면 한국 축구팀들만 그 신인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일본, 중국 더 넓게는 중동이나 유럽에서까지 관심을 보이니 드래프트와 같은 선수에게 불리한 제도를 제시할 경우 선수들의 해외 유출을 막기가 힘들다. 선수 입장에서는 해외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데 연봉도 적고 자신이 원하는 팀을 정할 수도 없는 드래프트는 당연히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드래프트라는 방식은 위에도 서술되어있듯 폐쇄적인 미국식 스포츠 리그에 적합한 방식이며 전세계적으로 활발한 선수 이동이 일어나는 축구에는 적합하지 않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전년도 성적에 따라 지명권을 주는 드래프트 방식으로는 1부리그에서도 충분히 활약할 만한 선수가 2부리그에서 가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본적인 고찰만 해도 신인선수들에게 얼마나 불합리하게 다가올 지는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때문에 2012년 승강제 도입에 맞춰 매년 자유선발 선수를 1명씩 점진적으로 늘리되, 2016년에는 드래프트를 완전히 폐지하기로 하였다. 우선지명 방식을 병행하여 운영하는 기존의 방침에 2013 K리그부터 드래프트에 앞서 자유선발 방식을 도입한 것. 자유선발 인원은 2013년도에는 자유선발로 각 구단이 한명씩 계약할 수 있으며, 2014년도에는 둘, 2015년에는 셋, 2016년도에는 모든 신인을 자유선발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단, 2016년 이전에 프로리그에 합류하는 신생구단은 자유선발 선수 제한이 2015년까지 5명씩 할 수 있도록 하여 구단경쟁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리고 2016년부터는 완전 자유선발로 전환하도록 되어 있다.

2.4.3. KBL

1996년부터 드래프트를 실시했다. 역대 국내선수 드래프트 현황은 당 사이트를 참조하길 바란다.

프로농구는 발족서부터 여러가지 이유로 드래프트를 여러번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였다. 외국인 선수를 자유계약할 경우 생기는 이른바 뒷돈문제를 고려해 초기에는 외국인 선수를 드래프트로 선발했다가 잠깐 자유계약으로 전환했더니 예상대로 뒷돈문제가 터지면서 드래프트제로 환원. 그 외에도 귀화선수 특별 드래프트등 드래프트가 자주 열린다.

2.4.4. V-리그

배구리그의 팀간 계약관행과 여러 이권다툼으로 드래프트 관련해 가장 파행이 잦았던 리그중 하나다. 실질적 드래프트는 2000년부터 시작되었고 중간에 한양대학교 소속 이경수 선수 스카우트 파동으로 중단된 적도 있다. 여자배구리그에서는 1순위 선수를 위한 고의 져주기까지 발생한데다 대한배구협회와 KOVO의 갈등으로 인해 몇번이나 파행운영을 겪는등 드래프트가 아직도 제대로 자리 못잡은 리그. 지난 2009년 드래프트에서도 대학 3학년 마치고 얼리엔트리로 프로에 참가하려던 한양대학교의 거포 박준범[8]을 우리캐피탈의 유망주 싹쓸이를 이유로 나머지 구단이 반대해 드래프트가 파행을 겪는등 좀처럼 구단과 협회, 선수간의 알력싸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2.4.5. e-sports

2005년부터 실시되었다.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 참가하는 10개팀이 커리지 매치를 통과해 프로게이머 자격을 갖춘 선수를 지명해 계약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10개팀이 각각 아마추어, 준프로 선수들의 풀이 별개로 존재하고 굳이 남의 팀 연습생을 빼갈 정도로 연습생 확보 경쟁이 이뤄지는 곳이 아닌지라(이영호가 유일하게 문제가 됐던 케이스) 드래프트가 크게 전력강화의 목적이 아니다.

2.4.6. 프로바둑

2004년 한국바둑리그가 출범한 이후 드래프트를 시작한다. 한국바둑리그의 특이한 점은 스폰서팀만 고정이고 나머지 연고지와 선수는 매년 드래프트로 정한다는 것. 따라서 한 선수가 한 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년 소속팀과 연고가 바뀔 수 있다. 매년 선수가 바뀌지만, 2007년부터 최규병 감독이 이끄는 영남일보팀이 3년 연속 한국바둑리그 우승을 달성했으며 3년 연속 영남일보팀에 뽑힌 김지석 6단이 MVP를 2회 수상하는 등 한국바둑리그의 에이스로 군림하고 있다.

2.6. 괴담

드래프트가 활성화된 미국에서는 그동안 발생했던 수많은 사건때문에 드래프트에 대한 이런저런 뒷이야기들이 많으며, 일부는 괴담을 넘어 징크스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 NBA의 2, 3번픽 징크스 : 1984년 드래프트에서 일어난 샘 보위와 마이클 조던의 사례로 너무나도 유명한 케이스. 유독 2번픽 선수가 3번픽 선수에 비해 실패확률이 높은 징크스를 말한다. 그리고 이는 2003년 다르코 밀리시치와 카멜로 앤써니를 통해서 재현된다. 이는 이후로도 드래프트때마다 선수의 전체적 재능과 팀의 필요(특히 포지션 문제)가 충돌할때 어떤 쪽을 택하는 것이 정답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도 쓰인다. 대부분 2번픽 선수가 실패하는 이유가 드래프트 당시 팀의 필요를 우선시[9][10] 하면서 재능이 떨어지는 선수를 뽑아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심지어 1, 2번픽에서도 발생한다. 24년이 지난 뒤 또 센터가 필요했던 포틀랜드가 케빈 듀란트대신 희대의 유리몸 그렉 오든을 전체 1번으로 뽑으면서.(…)

  • NBA의 6번픽 필패 징크스 : 1978년 래리 버드가 전체 6번픽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뒤[11] 그 이후 NBA에서 전체 6번으로 입단한 선수들이 하나같이 망했다. 그보다 높은 픽의 선수들도 망할수 있는게 거친 프로세계지만 1988년 6번 허시 호킨스, 2001년 6번 셰인 베티에같이 괜찮은 선수정도로 남은 것이 그나마 선방이고 드라마틱하게 망한 선수가 한둘이 아니다. 심각한 유리몸으로 전락하거나 반쪽 주전, 심지어는 잘 뛰다가 멘탈이 망가지면서 훅가는 선수(ex:앤트완 워커) 등 유독 안좋게 망하는 사례가 잦아서 거의 징크스 수준까지 올라갔다. 거기다 2006년 전체 6번픽으로 지명된 후 신인상 수상 및 3년 연속 올스타에 뽑히며 맹활약해 6번픽 징크스를 깨줄거라 믿었던 포틀랜드의 브랜든 로이도 무릎 부상때문에 조기은퇴 크리를 맞고 6번픽 징크스는 현재진행형이 되고 있다. 그리고 포틀랜드의 2012년 6번픽 데미안 릴라드가 13년 신인상을 수상하는데... 아까부터 유난히 포틀랜드가 많이보이는데 기분탓이겠지

  • 주사위 징크스 - 드래프트 순위와 직접 연관이 있는건 아니지만, 프로야구의 1차지명이라는 것이 존재하던 시절 OB 베어스에 존재했던 안습의 징크스. OB와 LG 트윈스는 연고가 서울로 같기 때문에 1차 지명할 유망주가 서로 겹칠경우 주사위로 우선순위를 정했었다. 1991년부터는 1차 지명이 팀당 1명으로 줄었기 때문에 서울에 대어급 선수가 나오면 필연적으로 주사위승부를 해야했다. 그리고...두산은 주사위게임에서 매년 졌다. 이때문에 두산이 원하는 선수를 LG에게 줄줄이 뺏긴 안습의 역사가 있다. 일단 OB가 MBC/LG한테 뺏긴 선수만 나열해봐도 김동수, 송구홍, 임선동, 이상훈, 심재학...당시 OB가 이들을 놓치고 울며 겨자먹기로 뽑은 선수들이 임형석, 황일권, 손경수, 추성건, 송재용...아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참고로 유지현의 경우 주사위로 뽑은 게 아니라 두 팀의 1차지명이 유지현, 류택현으로 갈려서 주사위를 굴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류택현이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를 생각하면, 이것도 안습[12] 하지만 1차지명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을 때도 88년처럼 김기범을 거르고 이진을 찍은 안습행보를 보였다. OB가 주사위에서 이겨 얻은 유일하게 제대로 된 1차 지명 선수는... 다름아닌 98년 김동주.[13]

2.7. 기타

2014년 NFL의 신인드래프트를 소재로 한 영화 '드래프트 데이'가 개봉하였다. 주연은 케빈 코스트너.

스포츠가 아닌 분야에서는 일본의 아이돌그룹 AKB48이 드래프트를 실시한다. 자세한 것은 AKB48/드래프트항목 참조.
----
  • [1] 한국 리그는 아마추어선수층이 얇다는 이유로 졸업생 전원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드래프트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사정상 그냥 눈감아주고는 있지만 문성민등의 사례때문에 이미 여러번 문제가 된 적이 있다.
  • [2] 최초 도입은 미국 미식축구 NFL이다. 1950년대 각 구단별 재정의 불균형 때문에 불과 10여년 사이에 50여개 팀이 사라지는 막장사태를 경험하고 나서 팀간 전력평준화를 위해서 성적역순에 따른 드래프트 제도를 도입하였다. 동시에 도입한게 엄격한 하드샐러리캡(연봉총액제한)과 이익공유제(모든 구단 수입의 40%를 리그 사무국이 일괄 징수해서 전 구단에 균등하게 분배). 이 3가지 제도로 NFL은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는 치열한 경쟁으로 전 구단 흑자라는 전대미문의 업적을 달성했다. 이는 전세계 프로스포츠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사례
  • [3] 실제로 NBA는 스타 선수에게 원소속팀이 다른 팀보다 유리한 계약 조건을 제시할수 있는 규정이 있다. 일명 designated player rule.
  • [4] 대표적으로 NBA의 1984년 드래프트 1라운드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입이 쩍 벌어지는 신인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일단 대표적으로 아직까지도 농구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릴 정도인 슈퍼스타인 마이클 조던을 포함하여 하킴 올라주원, 찰스 바클리, 존 스탁턴 등이 쏱아져 나왔으며, 그리고 이 선수들은 지금 모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있는 레전드 선수들이 되어있다. 그 외에 NFL의 1983년 드래프트 1라운드나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써니 등이 등장한 2003년 NBA드래프트가 손꼽히는 대형 드래프트.
  • [5] 농구는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의 영향이 거의 절대적인 스포츠로 뽑힌다. 반면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의 영향이 보다 적은 야구의 경우 1라운더 조차 메이저로 콜업될 확률이 절반도 안될 정도.
  • [6] 2012년도 리그가 종료된 이후부터는 드래프트와 우선지명에 한해 3년부터 5년사이에서 선수와 구단간에 조정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계약금에 대해서도 '계약금 우선지명 선수'와 '자유선발 선수'는 계약금을 설정하도록 되어 있다.
  • [7] 선수가 유스시절 이미 계약한 계약서의 우선협상권을 씹어버리고 자기가 보내고 싶은 구단으로 보낸게 한두번이 아니다. 대표적인 피해팀은 모두가 예상 가능하듯이 포항.
  • [8] 2012년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에 가담하여 영구제명당했다.
  • [9] 그 문제의 1984년 드래프트때 하킴 올라주원은 전체 1위 지명이 확실했고, 센터보강이 절실했던 2순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가 누구를 지명해야 되느냐라고 논란이 일었을때 일부 전문가들은 이렇게 답했다. 마이클 조던을 지명해 센터로 써라. 포틀랜드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대학스타들이 모두 얼리엔트리를 신청했으나 전체 1번픽이 대놓고 확정이었던 초대형 센터가 대학 4년을 모두 마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그 선수와 하킴을 제외한 최고의 센터를 지명했던 거지만....
  • [10] 앞서 언급된 다르코 밀리시치와 카멜로 앤써니의 경우에도 84년과 거의 똑같은데, 다만 이 땐 2번픽을 가졌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파이널 우승을 노릴법했고 실제로 우승을 차지한 초 강팀이었음에도 트레이드를 잘해서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2번픽을 가져왔기 때문에 이미 완성된 팀에 굳이 옵션을 하나 더 추가하느니 상대적으로 높이도 낮고 나이도 있는 인사이드진에 유망주를 추가해서 그 선수가 보고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하고자 하는 구단의 의도가 있었다. 물론 망했지만... 2009년 드래프트 전체 2번픽인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하심 타빗도 당시 잭 랜돌프라는 에이스 파워 포워드와, 마이클 콘리,O.J 메요,루디 게이라는 젊고 유망해보였던 1,2,3번 유망주를 보유했기 때문에 유일한 약점이었던 센터 자리를 보강하기 위해 지명한 프로젝트형 빅맨이었는데 정말 역대 최악의 2픽 수준으로 폭망하고, 3번픽이었던 제임스 하든이 올스타 가드로 성장하면서, 최근엔 팀 사정보고 키우지 말고 그냥 잘하는 놈 뽑아 쓰자는 분위기가 대세.
  • [11] 참고로 래리 버드는 애초에 78년 드래프트에 참가할지, 대학 4학년을 다닐지 선택을 못한 상태여서 다른 팀들이 계속 넘기다가 보스턴 셀틱스가 버드 정도의 재능이라면 당장 합류 안해도 1년 정도 기다릴 수 있다며 그냥 무대뽀로 지명한 케이스다. 버드는 결국 4학년을 마치고 셀틱스에 합류했는데 만약 버드가 드래프트에 참가하겠다고 했다면 78년 1번픽은 버드였을 것이고 4학년을 마치겠다고 했다면 79년 드래프트에서 평생의 라이벌 매직 존슨과 1,2픽을 나눠가졌을 것이다.
  • [12] 참고로 93년에 이상훈을 뺏기자 OB측이 주사위를 먼저 굴려서 우선권을 가져가지 말고 일단 양 팀이 1차지명 선수를 적어서 밀봉한 다음 개봉해서 두 팀의 선택이 같을 경우에만 주사위를 굴리자고 강력하게 요청하여 LG가 이를 수락했다. 그 바로 직후의 드래프트에서는 두 팀의 선택이 갈려서 주사위를 굴리지 않았으나 그 이듬해에 또다시 두 팀의 선택이 심재학으로 겹치면서 또 주사위를 굴려야 했고 결과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13] 이것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은 카더라가 굉장히 많이 있다. 설에 따르면 97년 1차지명 주사위에서 승리한 대가로 이병규를 양보한 대신 김동주를 가져가는 양팀간 협약이 있었다는 카더라도 있으며(이 때 애초에 이병규, 김동주는 각 팀과 사전 밀약이 되어 있었다는 카더라도 있다.) 애초에 주사위 없이 97년부터 OB측의 강력한 요청으로 격년으로 우선권을 주고 받는 제도로 변경됐었다는 등 여러가지 설이 있다. 어쨌든 두산과 1차지명 주사위 승리는 김동주의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 정도만 명확한 사실이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10 16:59:18
Processing time 0.1188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