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드레드노트급

last modified: 2015-02-07 17:15:10 by Contributors


사진은 네임쉽인 드레드노트.
(ɔ) Self-made photo by Jacobst from

미해군의 USS Texas(BB-35)

Contents

1. 개요
2. 드레드노트의 배수량별 목록
2.1. 프리 드레드노트(전노급)
2.2. 세미 드레드노트(준노급)
2.3. 드레드노트(노급)
3. 관련 항목


1. 개요

Channel4.The.Battleships.2Aof4.Clash.of.the.Dreadnoughts

Dreadnought-class Battleship. 거함거포주의로 20세기부터 개발된 전함 함급. 영국에서 개발되었으며, 이전에 비해 여러가지 면에서 혁신적인 함급이다. 훗날 이 이름은 1963년에 취역한 영국 해군 최초의 원자력잠수함에도 계승되었다.

19세기 이후 범선에서 철갑선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에 수많은 실험적인 형태의 함선이 등장했다. 이후 함포의 사정거리 증가와 함선의 속도증가에 비해 사격 및 조준문제가 대두되었으므로 결국 주포를 2연장 포탑 2기 정도로 제한하고, 다수의 부포를 두는 드레드노트 이전급 전함으로 완성되었다.

일단 드레드노트 이전급 전함은 영국을 포함한 각국 해군의 입맛과 요청에 부응했기 때문에 그 이후 한동안 뚜렷한 설계 컨셉이 없이, 기존의 설계 방식에 따라 그대로 제작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경향을 깬 것이 드레드노트다.

드레드노트는 우선 배수량이 17,000톤이 넘어간다. 그러면서 속도도 21노트로 당시 기준으론 빠른데다, 정해진 배수량을 '최대한 전투에 효율적인 방향으로' 설계하려는 시도의 정점에 달한 최초의 함선이다.

  • 이전의 함선들은 포를 다양하게 장착해 '주포'와 '부포'개념으로 나눈 반면, 주력 함선의 화기관제장치는 갈수록 향상되어 포격전 거리가 증가하자 사거리가 짧은 부포는 주력함 간의 포격전에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므로 결국 전함의 배수량만 낭비할 뿐이라는 개념하에, 배수량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동일한 구경과 성능의 주포를 최대한 많이 싣는다(all-big-gun)

  • 각 포의 각자 조준-각자 발사 대신, 전투함교의 명령에 따라 동일한 사격 제원으로 명령에 따라 주포를 발사한다. (협차Straddle 개념이 등장한다.) 동일한 구경과 성능의 주포이므로, 이론상 발사된 포탄은 거의 비슷한 착탄점을 갖게 된다. 이제 전함의 사격은 각 포가 개별 조준해 쏘는 방식이 아닌, 중앙 지휘소가 계산한 확률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 어차피 전함 혼자 돌아다니지 않으므로 접근해올 수 있는 소형 고속함은 호위함대 (순양함이나 구축함)가 처리한다. 전함은 오직 전함과만 싸운다.

  • 상대하는 적 전함은 나와 동등하다고 간주하고, 적의 공격을 버티고 싸울 수 있을 정도의 중장갑(대응방어개념)과 방수 구획을 설치한다.

  • 보다 고속을 낼 수 있도록, 왕복식 증기기관 대신 증기터빈을 사용한다. 여기에 화력이 좋은 중유보일러를 사용하려는 계획도 세웠지만, 당시 기술적 문제 및 여러가지 사정으로 석탄보일러가 탑재되었다.

당시로선 주포를 2~4문 장착하는 함선이 많던 시점에 2연장 12인치 주포 포탑을 5개 장착하여 새로 도입된 일제사격시 다른 나라 함선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물론 신기술의 집대성인 프로토타입 성격을 가지므로 후대의 전함들처럼 모든 포탑을 중심선상에 배치한 것이 아니라 3개만 선체 중심선에 배치하고 2개는 양 뱃전에 달았기 때문에 모든 포탑을 단일 목표에 지향할 수는 없었다. 동일 목표에 대한 조준은 포탑 4개 8문이 한계라는 약점을 지닌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야말로 모든 점에서 '두려운 게 없는(Dread(두려워하다) + Nought(nothing, none)' 함선이었고, 다른 나라들에는 '공포의 존재'로 자리매김 한다. 그 이후 모든 국가들의 함선 표준규격으로 취급되어 항공기의 성능이 함선을 압도할 때까지 그 뒤를 이은 수 많은 함선들이 탄생했다.

All-big-gun은 단지 큰 대포를 많이 달아서 화력이 강하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대구경 화포는 적에게 더 장거리에서 큰 타격을 가할 수 있지만 단거리에서는 적합하지 않았고, 당시에는 각각의 포탑에서 자기 대포에서 쏜 포탄이 어디로 날아가는지를 눈으로 보면서 조준해 가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장거리에서의 명중률은 극히 낮았다.
실제로 영국 해군에서도 장거리 포격 시험 이후 장거리 포격은 전혀 쓸모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다만 이 결론을 평가하려면 넬슨 이래로 육박전을 전통으로 하는 영국 해군의 성향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장거리 포격에서는 내 포탄이 어디쯤 떨어졌는지를 알기 위해서만도 특별한 관측기구가 필요하고, 설령 그런 관측기구를 갖춘다고 해도 어떤 착탄흔적이 어느 포탑에서 발사한 포탄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또한 각 포탑마다 이러한 기구를 갖추거나 포탑의 인원들이 그러한 기구를 다루고 포탄의 궤도를 계산할 전문지식을 갖추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각 전함들은 장거리용 주포 이외에도 단거리에서 대응할 수 있는 소구경 부포 등 여러 종류의 대포를 갖추고 있었고, 대구경 화포는 2-4문에 불과하여 근거리에서 치명타를 먹이는 역할을 담당하는 등 비중이 낮은 편이었다.

그런데 영국 해군의 피셔 제독은 뜻밖에도 일본군으로부터 이 상황을 타개할 영감을 받는다. 러일 전쟁 당시 일본군은 함교의 지휘에 따라서 전 포탑이 일제 사격을 하는 방식을 채택했는데, 사실 이 자체는 완전한 삽질이었다. 어차피 개별 포탑에서 각각 조준하고 사격하는 이상 포탑마다 가능한 최대의 속도로 발사하는 편이 효율적이지 함교의 발사 신호를 기다릴 이유가 없고, 동시에 사격하면 어느 착탄흔적이 어느 포탑의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질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셔 제독은 이 사례로부터 사격 지휘 전체를 함교에서 맡는 방식을 착안해 낸다. 개별 포탑이 각자 조준해서 사격하고 착탄흔적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함교에서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장교들이 조준/발사 명령을 포탑들에 하달하는 것이다. 함선 전체 단위로 관측기구를 갖추고 함교의 전문적인 장교들이 관측과 계산을 실시해서 조준함으로써 이전보다 훨씬 장거리에서 적을 명중시키는 것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장거리에서 조준해서 명중시킬 수 있다면 다양한 전투거리를 위한 여러 구경의 대포들을 갖출 필요도 없어지고, 모든 포탑의 화포를 동일한 종류로 통일하는 편이 함교에서 지시한 조준이 포탑에 동일하게 적용되도록 하기에도 더 적합하다. 게다가 모든 포탑들이 동질적이라면 포탑간의 탄착점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므로 훨씬 장거리에서 쉽게 탄착점을 찾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1] 이에 따라 모든 포탑의 화포를 동일한 대구경 화포로 통일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모든 포탑에 동일한 대구경 화포를 장착하고 대응방어와 증기터빈을 도입한 드레드노트가 만들어졌고, 그 결과 지금까지의 다른 전함들보다 1.사정거리, 2.명중률, 3.화력, 4.방어력, 5.기동성까지 뛰어난 신개념 전함이 탄생한 셈이었다. 따라서 드레드노트급이 만들어진 후 그 때까지 건조/운용되던 모든 전함들의 군사적 가치와 위상은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를 두고 국내의 모 경제신문 편집 위원은 돈을 처바른 그녀의 등장으로 최신 유행이 하루 아침에 구식으로 전락했다라는 재치있는 말로 표현했다.기사밀리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경제신문 편집위원이 쓴 글치고는 너무 정확하다. 밀덕후 인증

다만 안 그래도 비쌌던 전함의 건조비가 더욱 비싸져서, 대량으로 건조할시 국가 재정의 파탄이 우려될 정도가 되어갔다. 처음에 영국에서 드레드노트를 만들 때는 "드레드노트급이 있으면 이제 전함 숫자가 좀 적어도 다른 나라를 압도할 수 있을 테니 돈 좀 아낄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이었지만, 다른 나라들도 속속 드레드노트를 따라한 새로운 전함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오히려 전함 건조비용만 엄청나게 높아지는 결과가 되었다. 사실 영국에서 드레드노트가 처음 건조될 때도 같은 우려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군사적 가치를 잃은 '드레드노트 이전의 전함'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던 나라는 다름아닌 영국이었으니...[2]

이후로는 1910년 HMS 오라이언의 진수 당시 오라이언의 정보를 입수한 영국 기자가 드레드노트를 뛰어넘는(주로 주포 구경이) 배라는 의미로 사용한 '슈퍼 드레드노트급'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초노급(超弩級)'이라고도 불렀으며, 대부분의 드레드노트급들은 1차대전과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을 거치는 과정에서 폐기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활약한 전함들은 모두 슈퍼 드레드노트급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드레드노트급을 노(弩)급[3] - 노의 독음이 도(ド)라 - 함정이라고 부르며, 드레드노트급의 크기 때문에 이에서 여러 단어가 파생되었다.
어원이 레드노트다 보니, 한국에서는 초노급 등을 초급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4] 사실 제대로 번역하려면 노급은 드레드노트급, 초노급은 슈퍼드레드노트급이라고 번역하는게 맞긴 하다만... 만화책 번역의 경우에는 말풍선의 제약도 있으므로 힘든 이야기긴 하다. 한글 위키백과에는 '프리드레드노트=전(前)노급전(戰)함, 드레드노트=노급전함, 슈퍼드레드노트=초노급전함'이라는 분류법으로 항목이 작성되어있다. 이 구분법의 출처는 두산 엔싸이버백과사전. 하지만 접두어 '도'는 칸사이 지역에서 1906년 이전에도 쓰였다는 예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드레드노트에서 유래한다고 볼 수 없다.[5]


2. 드레드노트의 배수량별 목록

2.1. 프리 드레드노트(전노급)

제조/운용국 함급 만재(전투)배수량 기준 배수량 취역
독일 란덴부르크급 전함[6](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 10,013톤 1893년 10월 31일
러시아 바린 전함[7](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 10,370톤 1896년 6월
미국 어사지급 전함[8](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9] 10,470톤 1900년 2월 20일
러시아 스티슬라브급 전함[10](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 10,689톤 1900년 3월
독일 이저 프리드리히3세급 전함[11](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 11,599톤 10,790톤 1898년 10월 7일
러시아 페트로파블로프스크급 전함[12](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 11,536톤 ~ 12,032톤 1897년
독일 텔스바흐급 전함[13](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 12,798톤 1902년 10월 1일
러시아 레트비잔 전함[14](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 12,912톤 1902년
러시아 에프스타피급 전함[15](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 12,942톤 1911년 4월 1일
러시아 체사레비치 전함[16](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 13,105톤 1903년
러시아 포템킨 전함[17](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 13,107톤 1905년
러시아 리 스비아티테리아 전함[18](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 13,532톤 1896년 중반
독일 도이칠란트급 전함[19](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 14,218톤 13,200톤 1906년 8월 3일
독일 라운슈바이크급 전함[20](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 14,394톤 1904년 10월 15일
러시아 페레스베트급 전함[21](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 13,534톤 ~ 14,639톤 1901년
러시아 보로디노급 전함[22](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 14,317톤 ~ 14,646톤 1904년
미국 지니아급 전함[23](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 14,980톤 1906년 2월 19일
미국 네티컷급 전함[24](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 16,000톤 1906년 6월 2일
러시아 드레이 페르보즈반니급 전함[25](프리 드레드노트: 노급전함) 17,600톤 18,880톤 1911년

2.2. 세미 드레드노트(준노급)

제조/운용국 함급 만재(전투)배수량 기준 배수량 취역
일본 사쓰마급 전함[26](세미 드레드노트: 준노급) 19,683톤 1910년 3월 25일

2.3. 드레드노트(노급)

제조/운용국 함급 만재(전투)배수량 기준 배수량 취역
독일 싸우급 전함[27](드레드노트: 노급) 21,000톤 1909년 10월 1일
영국 레로폰급 전함[28](드레드노트: 노급) 22,102톤 18,800톤 1909년 2월 20일
영국 인트 빈센트급 전함[29](드레드노트: 노급) 23,030톤 19,560톤 1910년
독일 골란트급 전함[30](드레드노트: 노급) 24,700톤 1911년 8월 1일
러시아 제국 강구트급 전함[31](드레드노트: 노급) 27,300톤 24,800톤 1915년 1월 11일

----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2-07 17:15:10
Processing time 0.0907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