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드림콘서트

last modified: 2015-01-22 15:25:42 by Contributors

Dream Concert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환경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열리던 공개 콘서트를 1995년 부터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통칭 연제협이 참여하여 규모를 늘려 매년 개최[1]하는 콘서트이다.

Contents

1. 개요
2. 콘서트의 주제
2.1. 역대 주제
3. 빠심력측정 연례행사
3.1. 광란의 1997년 ~ 2002년
3.2. 조금은 나아진 2003년 ~ 2007년
3.3. 신기원을 연 2008 ~
4. 무료 콘서트에서 기부 콘서트로
4.1. 유료화의 폐해?
5. 왜 3층 센터석은 최고의 자리인가?

1. 개요

1997년 부터 SBS가 1시간 분량으로 편집하여 방송을 하였으며, 2011년부터는 KBS가 녹화해서 방송을 해주고 있다.

2009년까진 무료로 입장가능했으나 2010년부턴 를 통해, 무대효과비와 기본 제반비를 제외한 이익을 기부하는 기부 콘서트로 바뀌었다.

'청소년의 의식각성, 기부 콘서트' 등의 좋은 말로 치장 되어있으나 실제로는 누가누가 얼마나 극성 빠돌이 빠순인지 확인하는는 연례행사이다.

본격적으로 팬클럽들간의 싸움이 벌어지던 1997~2003년사이에 입원자 32명이 나왔으니 더 설명이 必要韓紙? [2]

1995년부터 2008년까지 잠실종합운동장에 개최되었으며, 2009년부터는 암동 서울 월드컵 경기장으로 장소를 옮겼다.

2. 콘서트의 주제

2~3년 안에 회인이 될 10대들의 의식각성을 부르짖고 꿈과 희망을 준다는 슬로건 아래, 대한민국사회에서 화제가 되거나 문제가 된 이슈를 하나 선정, 주제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2002~2006년은 주제의식이나 의식각성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었으며 2007년 부터는 '사랑한다, 대한민국'이란 주제를 내걸어 그냥 높으신 분들의 지원금을 타내기 위한 것으로 변질 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2.1. 역대 주제

  • 1995년 :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 1996년 : 폭력은 싫어요
  • 1997년 : 북한 청소년을 생각하여
  • 1998년 : 아빠 사랑해요
  • 1999년 : 우리는 하나
  • 2000년 : 나의 꿈 나의 미래
  • 2001년 : 비바 코리아
  • 2002년 : 월드컵 성공기원
  • 2003년 ~ 2004년 : F-콘서트(FX, Future is X(미지수))
  • 2005년 ~ 2006년 : I콘서트
  • 2007년 ~ 2013년 : 사랑한다 대한민국
  • 2014년 : 힘내라 대한민국

3. 빠심력측정 연례행사

그냥 놔둬도 서놀이를 하며 우열을 가리는 애들을 공연장 하나에 쑤셔 넣으니 탈이 안날리가...

첫번째, 두번째로 열린 1995,1996년의 콘서트는 유혈사태없이 무사히 넘어갔으나 3회차부턴[3] 대뜸 팬클럽간의 파워를 자랑한다며 적대관계에 잇는 팬클럽을 향해 얼린 생수나 얼린 수박들을 수류탄마냥 하는건 기본옵션이던 시기가 있었으며 유혈사태로 인해 해년마다 서너명은 입원하는 막장의 향연이 벌어졌다.

2000년대 후반들어, 팬덤문화의 진보로 더이상 유혈사태는 전보다 벌어지지 않게 되었으나, 오히려 도가 심해저 같은 소속사내의 집안싸움을 벌이거나 인터넷상의 유언비어등으로 2차전을 벌이는 등, 보다 악질적인 빠심력측정행사가 장이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같다.

3.1. 광란의 1997년 ~ 2002년

이 시기의 드림콘서트는, 상대방을 제거하려고 달려가는 배틀필드가 아니라 너 죽고, 나죽고 다 죽여버리겠다!!식의 그라운드 제로였다.[4]

적대하는 팬클럽을 향해 각종 얼린 시리즈의 투척은 기본이고 참가소개가 있을 때 침묵을 고수하거나 야유를 퍼붓고 시기 적절하게 콘서트 즈음 해 스캔들이 난 그룹들의 팬클럽은 공개처형을 당하는 수준이었다. 대충 어땠냐면 노래소리보다 더 크게 '꺼져라!' 구호가 나왔다고. 흠좀무.
그라운드 제로가 절정에 다다른 시기는 2002년으로, 쟁쟁하던 팬클럽들이 물러나 일종의 전국시대였던지라 평소의 두배이상의 부상자를 배출하게 된다. 그래서 2003년의 드림콘서트는 없을지도 모른단 설이 대두되었고 팬클럽 내 의식개혁이나 적대 팬클럽을 향한 투척을 금하는 분위기가 형성, 막장의 시대는 순식간에 끝나버린다.

3.2. 조금은 나아진 2003년 ~ 2007년

2003~2007년은 일종의 소강시기였다.
우선, 2003년은 2002년의 참사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고규모로 개최 되었음에도 사상자는 예전의 반이하로 줄어들었다. 이는 폐지론이 언급되자, 팬클럽들이 자정작용을 시작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5]아니 무슨 전투 항목도 아니고 콘서트 항목에 사상자가 나와 도대체 얼마나 막장이었으면

하지만, 제일 막강한 동원력을 가진 팬클럽에게 돌아가는 3층 센터[6]를 놓고 인터넷상에서 다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즉, 오프라인상의 충돌이 인터넷상의 키배로 옮겨저 충돌이 줄어든 시기다.

3.3. 신기원을 연 2008 ~

2008년에는 거짐 5년간 멸종상태였던 걸그룹의 팬클럽이 튀어나오고 이에 대립하는 기존 팬클럽들의 충돌이 벌어지며 이 과정에서 소녀시대를 상대로 드림콘서트 침묵 사건이 벌어지며 신기원이 열린다.

재미있는 사실은 90년대의 막장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은 "그거 일상인데 뭐가 문제임?" 이란 식으로 당연하다는 듯 넘겻다는 것이다.[7] 대체 90년대엔 얼마나 막장이었길래...

2009년은 동방신기가 소송 사건으로 참석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끝내 불참했음에도 동방신기의 팬덤인 카시오페아들이 몰려들어 오지도 않은 동방신기를 응원했고, 카아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2010년에도 계획적으로 포미닛, 비스트, f(x) 자리를 차지하고 불참한 동방신기를 응원했다.
이로 인해 카시오페아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정작 카아들은 "원래 카아 자리였다", "돈 주고 빈자리 앉겠다는데 뭐 어떠냐"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10년은 드림콘서트 예매 사태가 발생했다. 그래서 콘서트 당일에 걷잡을 수 없을 사태가 터질 거라는 우려도 있었다. 콘서트가 개최되고, 슈퍼주니어 팬들이 2008년 당시를 재연하듯 소녀시대 무대에서는 침묵했으나, 다른 팬들은 이에 동조하지 않아 사실상 실패했다.


진정한 사태는 2PM 무대에서 터졌다. 관객들은 닉쿤이 부르는 파트를 제외하고 공연 내내 박재범을 연호했다. 박재범 사태에 거의 관련이 없는 타 팬들이 이러한 단결력을 보여주면서 2PM에게 굴욕을 주려는 의도라는 여론들이 많았다.

2011년은 비스트의 팬덤 뷰티의 무한 어그로 [8]덕분에 비스트가 텐미닛을 당할 줄 알았지만 훼이크다 이것들아! 그런 거 없다. 드콘답지 않게 그냥저냥 무사히 끝난듯. 참고로 지금도 네이버에 비스트 텐미닛을 쳐 보면 당시의 살벌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2012년 9월 24일. '경주 2012 드림콘서트'가 다가오고 있다. 마침 유례없이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고있는 걸그룹이 나온다는데 과연 어떤일이 일어날지는... 은 무슨 또 그런 거 없다. 드림콘서트 자체가 과거에 비해 파워를 크게 잃었고, 사건이 터진지 좀 지난 시점이라 "아 쟤네 나오네" 하는 수준이었다.

2013년에는 팬석 지분율 문제로 소원과 샤월 사이에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으나...


정작 당일에는 소원과 샤월은 물론 다른 팬덤들까지 모두 위 아 더 월드가 되어 레전드급 떼창을 만들어냈다.하이라이트는 어마어마한 소리의 나 깜짝 멘붕이야 다들 이 부분 노리고 있던게 분명하다 소리가 너무 커서 방영분에는 MR을 덧씌워버렸다는 후문.

2014년도 이렇다할 트러블 없이 평화롭게 지나갔다.조금만 늦게 개최됐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4. 무료 콘서트에서 기부 콘서트로

경 콘서트라는 자유 콘서트에서, 1995년 드림 콘서트로 이름을 바꾼 후 무료 콘서트로 유지되어왔다. 하지만 2010년부턴 좌석 예매를 통해 수익금 중, 무대설치비와 효과비를 제외한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는 기부콘서트로 바뀌었다. 이것이 재앙의 씨앗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4.1. 유료화의 폐해?

2010년, 유료화가 이루어져 좌석을 사게 되자, 한구역에 밀집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냥 작정하고 예약을 하면 되지만 구멍은 생기기 마련.

2010년 콘서트 예약을 앞두고 예전처럼 하나의 색으로 뭉치는게 불가능해진다는 이야기가 거론되었고 팬클럽들이 기존의 룰을 지킨다면 별문제 없을 것이란 안이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드림콘서트 예매 사태로 이어진다.

관여된 여러 팬클럽들이 치고 박았는데, 이거 생각해보면 유료화를 선언하고도 엉망진창으로 진행한 SM엔터테인먼트의 잘못으로 일어난 상황이다.

5. 왜 3층 센터석은 최고의 자리인가?

2009년까지의 드림콘서트는, 제협이 팬클럽의 규모를 측정하여 좌석을 지정해왔다.

굳이 3층 센터라고 해서 특별할건 없었는데 1995년 1회 드림콘서트의 참가 가수 중 서태지와 아이들은 리더인 서태지가 "공식 팬클럽 같은거 인정하면, 공식 팬클럽 아닌 사람은 팬도 아니란거냐?" 라는 말과 함께 공식팬클럽을 해체한 상태라 공식적인 규모를 가늠할수가 없어서 일단 인터넷상의 팬클럽 참가의사를 체크해 3층의 하프센터를 준다. 그런데 당일 동원된 인원수가 워낙 많아, 그냥 3층 센터 전체를 차지하게 되어버렸다.

즉, 이 시기에 3층 센터는 다른 팬클럽에게 주려고 한 자리를 먹어치웠다는 이미지가 조성되었고 2년뒤인 1997년엔 당시 최고 주가를 자랑하던 H.O.T.가 차지, 최고팬클럽을 위한 자리란 이미지가 생겨난 것이다.

참고로, 3층 센터는 공연을 관람할 목적으론 가면 후회할 정도로 전망이 나쁘다.면봉드립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다


----
  • [1] 이례적으로 2002년엔 월드컵 응원을 목적으로 2번 열렸다
  • [2] 흥분으로 인한 실신은 제외 된 수치라한다.
  • [3] H.O.T. 데뷔 이후.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한 직후인 1996년 2월부터 H.O.T.가 본격적으로 스타덤에 오르기 직전인 1996년 11월까지의 가요계는 카오스 그 자체였다. 1996년에 발매된 곡들 중 1996년에 골든컵을 차지한 건 클론의 쿵따리 샤바라밖에 없으니까.(1996년 2월 7일 골든컵을 차지한 김정민의 슬픈 언약식은 1995년 9월에 발매되었다.) 그리고 본격 전투종족 빠순이들을 잔뜩 생산해낸 그룹이 H.O.T.가 시작이기도 하고..
  • [4] 수정 전엔 1996년부터라고 나와있는데. 1996년 드콘에서는 지금의 1세대 아이돌이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고? 1996년 드콘은 1996년 6월에 있었으며, H.O.T.가 데뷔한건 1996년 9월, 본격 스타덤에 오른 건 1996년 11월경이다. 그리고 쵸티vs젝키 구도는 젝키가 스타덤에 진입한 1997년 여름 이후로 본격화되었다. 젝키 빠순이들은 이걸 보고 왜 쵸티가 앞이냐고 뭐라 하겠지
  • [5] 참가 가수의 수가 많아 예전만큼 뭉칠수 없어서란 설도 존재한다.
  • [6] 1회 콘서트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클럽이 얻은 후, 내부심사를 통해 최대규모의 참가가 예상되는 그룹의 팬클럽에 돌아가게 된 자리. 일종의 1위 상징이다.
  • [7] 참가소개시 야유를 퍼붓는게 기본이라나 뭐라나
  • [8] 빅뱅 동방신기 샤이니 소녀시대를 비롯한 거물급 그룹들과 그 팬들을 한결같이 디스 한 것 뿐만 아니라 아이유 미니홈피 테러 사건 덕분에 디씨의 어그로까지 한몸에 받았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1-22 15:25:42
Processing time 0.0994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