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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마라도나


2007년 한창 마약에 찌들었을 때 2010년 국가대표 당시. 수염은 개한테 물린 흉터를 가리느라 길렀다고 한다.

이름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프랑코
(Diego Armando Maradona Franco)
생년월일 1960년 10월 30일
국적 아르헨티나
직책 감독
신체조건 165cm / 70kg
프로입단 1969년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선수시절 소속팀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1969 - 1976)
보카 주니어스(1981 - 1982)
FC 바르셀로나(1982 - 1984)
SSC 나폴리(1984 - 1991)
세비야 FC(1992 - 1993)
뉴웰스 올드 보이스(1993 - 1994)
보카 주니어스(1995 - 1997)
국가대표 91경기 34골
감독 만디유 데 코리엔테스(1994)
라싱 클럽(1995)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2008 - 2010)
알와슬 FC(2011 - 2012)
Diego Armando Maradona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선수이자 현재는 축구 감독.
그리고 마라도나교의 주신(神)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인물이지만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하면 축구황제 펠레와 함께 반드시 거론될 정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를 넘어선 레전드 of 레전드. 한마디로 축구 영웅계의 투톱

사실 현대에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는 현재 진행형 골머신 투톱체제에 적응이 된 요즘 세대들에겐 마라도나가 주는 존재감이 그렇게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를 평가하자면,

신의 손
월드컵을 혼자서 좌지우지했던 사나이
혼자서 그라운드에 있는 나머지 21명을 지배했던 존재
축구사에 다시는 없을 전설적인 미드필더
인류 축구사 역사상 펠레와 동급으로 놓일수 있는 유일한 축구선수
나폴리의 신

다들 어마어마한 표현이다.

SSC 나폴리 영구결번
No.10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2.1. 초창기 자국 리그에서의 활약
2.2. 클럽 커리어
2.2.1. FC 바르셀로나
2.2.2. SSC 나폴리
2.3. 국가대표 커리어
2.3.1. 1982년 스페인 월드컵
2.3.2. 1986년 멕시코 월드컵
2.3.3.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2.3.4. 1994년 미국 월드컵
2.4. 선수시절에 대한 평가
2.5. 마라도나에 대한 전설적인 축구인들의 평가
2.6. 포스트 마라도나 신드롬
2.7. 펠레와의 비교
2.8. 라이벌
2.9. 그외
3. 감독 시절
3.1.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3.1.1. 지역예선
3.1.2. 조별리그 나이지리아전
3.1.3. 조별리그 한국전
3.1.4. 조별리그 그리스전
3.1.5. 16강전 대 멕시코전
3.1.6. 8강전 대 독일전
3.1.7. 그 이후
3.1.8. 그외
4. 대인 관계
5. 그 외
6. 경력
6.1. 대회 기록
6.2. 경기 기록

1. 소개

1960년 10월 30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모두에게 인정받는 초특급 유망주였으며 1976년 10월 20일, 16세의 나이로 Argentinos Juniors 소속으로 데뷔하여 아르헨티나 역대 최연소 출전기록을 경신했다. 후반전 초반에 교체로 투입되자마자 일방적으로 밀리던 경기 양상을 단숨에 반전시켜 다음날 아르헨티나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 그의 실력을 잘 알고 있던 동료들은 오히려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훗날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감독이 되는 네스토르 페케르만은 이 시절 1군 선수들 모두가 일찌감치 훈련을 종료하고 유소년 팀에 놀러가 마라도나를 구경하던 일을 회상했다.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선수가 나타난 것이다.

2. 선수 시절

2.1. 초창기 자국 리그에서의 활약

1976년부터 1981년까지 Argentinos Juniors에서 총 167경기 115골을 기록했다. 특히 1978년 Metropolitian leage에서 22골을 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했고, 1979년과 1980년에는 Metropolitian leage와 national league 두 리그에서 모두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1979년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시키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1981년에는 평소 자신이 뛰고 싶었던, 아르헨티나 최고의 구단이라 일컬어지는 보카 주니어스에서 뛰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2.2. 클럽 커리어

2.2.1. FC 바르셀로나

1982년 월드컵이 끝나고 스페인 명문 클럽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300만 파운드로, 당시 최고 이적료 기록을 경신했다. 이후 82/83, 83/84시즌 두 시즌을 뛰며 58경기 38골 23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했다.

이적한 첫해 리그 20경기에서 11골로 팀 내 득점 1위를 차지하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이적하자마자 간염에 시달려 한바탕 고생을 치른다. 두 번째 시즌인 83/84시즌에는 적응을 완료하고 화려하게 날아다닐 만했는데... 부상. "빌바오의 도살자" 안도니 고이코에체아[1]에게 악질적인 태클을 당해 발목이 아예 날아가 버린다. 이 부상은 마라도나의 선수 생명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어서 아예 아르헨티나로 날아가 재활 치료로 6개월 이상을 소비한다.

한편 마라도나는 이 무렵부터 사생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가 코카인을 흡입하기 시작한 것은 이 시점이었으며, 여자 스캔들도 자주 터졌다. 슬슬 바르사가 그의 기행에 지쳐갈 때쯤, 마라도나는 부상에서 돌아와 다시 화려한 플레이로 팀을 코파 델 레이 결승전까지 끌어올린다. 그런데 하필이면 결승전 상대는 부상을 입혔던 아틀레틱 빌바오. 이 코파 델 레이 결승 경기는 '축구장 패싸움' 영상만 있으면 단골로 나오는 장면이다. 빌바오의 선수들은 또다시 집요하게 마라도나의 발목을 향한 태클을 날려댔고 결국 빡친 마라도나는 상대 팀의 스태프에게 장렬한 샤이닝 위저드(...)를 날려버린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와 빌바오의 선수들은 그대로 패싸움으로 돌입, 서로에게 김갑환이 울고 갈 발기술을 날려댄다. 이 사건으로 마라도나는 출장 정지를 당하고, 바르사의 수뇌부는 계속해서 기행을 저지르는 마라도나를 데리고 있기가 귀찮아졌으며, 마라도나 본인 역시 스페인에서 이렇다 할만한 좋은 기억도 없었으므로 바르셀로나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9초를 보면 발은 동시에 뻗는데 마라도나만 맞는다. 괜히 키 작은 사람이 루저인 게 아니다.

바르사 시절의 마라도나는 화려한 스킬과 드리블, 천재성이 번뜩이는 패싱, 무서운 프리킥 실력으로 이름을 떨쳤었다. 이때의 마라도나와 플레이스타일이 가장 유사한 선수는 호나우지뉴. 위에 쓴 대로, 마라도나의 경기당 스탯은 약 1.0517 정도로 당연히 스탯으로도 최상위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스탯이나 플레이만 보고 바르셀로나 시절의 마라도나가 역대 최고의 선수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많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 당시 들어 올린 트로피가 고작해야 코파 델 레이와 슈퍼 컵뿐이기 때문이다. 즉 대단한 타이틀을 따내지 못했다는 말. 일단 출장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 프로 선수에게 출장 수는 중요한 척도이다. 그러나 출장을 하면 엄청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겨우 두 시즌만 뛰고도 최근에 한 바르셀로나 팬 투표 역대 베스트에 선정될 정도.(히바우두도 떨어졌다!) 경기만 뛰면 수도 없이 라보나, 플립플랩, 마르세유 룰렛 등등을 선보이고 엄청난 센스의 패스들이 튀어나왔으니, 그가 당시 한화 100억 원의 엄청난 기록[2]이 이상할 것은 없다. 결국 몸값만 올리고 갔다. 그리고 마라도나는 신화의 땅 이탈리아로 건너간다.

2.2.2. SSC 나폴리

나폴리 시절 마라도나.

나폴리 시절의 마라도나에 대해 과장이다, 아니다 워낙 말이 많은데, 마라도나 이적 당시 나폴리의 정확한 수준을 이야기하자면 더도 덜도 아닌 딱 중위권 수준이었다. 물론 아주 초약체라 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으나, 내세울 만한 우승 커리어는 전무했다. 지금으로 치면 EPL의 수정궁정도로, 강등권도 왔다갔다 하지만 때로는 중상위도 하는 그런 팀이었다. 그러나 마라도나가 오기 전 즈음부터는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해서, 직전 시즌 세리에 16개팀 중 11위를 기록했다. 즉 현 20개팀 체제에서는 13~14위로, 바로 1점 차이로 강등을 모면했었다.

초 슈퍼스타 마라도나의 영입은 나폴리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미쳤다. (영입료가 100억인데 그다음 마라도나빠들이 와서 시즌권을 다 사버림)1주일만에 그 모든 이적료를 벌어들인 전설 일단 최고의 선수가 이적해 왔으니 이적료따위는 금세 몇배로 돌아왔고[3]구단의 재정이 바닥났다고는 하지만 그 돈을 어디서?? 랭킹이 상승하여, 그 돈으로 다시 좋은 선수들을 사고 또 랭킹이 상승하는 테크를 탄다. 사실상 마라도나의 순수한 축구실력은 제하더라도 나폴리의 성적을 급상승시키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애초에 마라도나의 축구 실력이 별 것 아니었다면 그런 영향력도 없었겠지만...그 후 85년에 이탈리아 대표팀 선수 지오르다노, 87년에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하고 브라질 공격수 카레카를 영입, 나폴리의 공격라인은 유명한 "마-지-카"(이탈리아어 마법사)라인이 결성된다.[4]

그러나 나폴리가 마라도나가 온 이후 많은 포지션을 보강했어도, 아주 대형 이적이라고 부를 만한 이적은 딱 카레카 하나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살바토레 바그니나 디 나폴리, 마시모 크리파, 브라질 선수인 알레망 등 선수들은 잘 쳐주어도 중상위 클래스이거나 신예들이었다. 나폴리 유스에서 올라온 치로 페라라는 당시 수비수들 중 상당한 수준이긴 했으나, 역시 밀란이나 유벤투스의 바레시나 시레아에 비할 수준은 아니었다. 어찌 됐든, 나폴리가 2부리그 팀이었다던가, 강등권이었다던가 하는 수준의 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사실 마라도나가 오기전에도 4, 5위는 했네 할만한 잘난 팀도 아니었고 마라도나가 없었다면 우승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아니 당장 마라도나가 떠난 이후로 컵을 무엇하나 차지하지 못했고, 현재 다시 세리에 상위권으로 올라오기까지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누가 뭐래도 나폴리는 '마라도나의 팀'이었다.

나폴리 이적 후 86-87시즌, 89-90년에는 스쿠데토를 차지했으며, 87-88, 88-89년에는 준우승을 이끌고, 88-89시즌은 팀 역사상 최초로 UEFA컵을 따내고 코파 이탈리아까지 따내며 더블을 달성하여, 나폴리 만, 베수비오 화산과 함께 나폴리 3대 명물로 꼽히는 영광을 안는다. 실제 지금도 나폴리에서 그의 인기는 반인반신 경지에 이르는 수준인데, 아닌게 아니라 당시건 지금이건 밀란이나 인테르, 유벤투스 등 상대적으로 부유한 북부 팀들을[5] 만나면 지는 것이 당연했던 만년 중하위권 팀 나폴리를 거의 자신만의 힘으로 두번이나 리그 우승, 한번의 유럽컵 우승을 시킨(이는 남부 이탈리아를 연고로 한 팀이 스쿠데토를 차지한 전무후무한 사례다. 칼리아리 칼치오가 한번 우승한 경력이 있긴 하나 여긴 섬이다 보니...) 경력 때문이다.


2005년에 같이 뛰었던 수비수 치로 페라라의 은퇴 경기에 나폴리를 방문했다. 말 그대로 신.

마라도나는 나폴리 시절에 역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등극한다. 이전의 바르셀로나 시절은 화려한 드리블 위주에 천재성이 보이는 패스로 게임을 풀어나가는 포워드였다면, 이때는 화려한 플레이는 상당히 자제하는 한편 팀 플레이와 플레이메이킹 위주로 게임을 풀어나간다. 물론 그렇다고 개인 플레이는 수준이 떨어졌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마라도나의 잉글랜드전 단독 드리블은 나폴리 시절이다. 그야말로 축구 치트키 시절.

2.3. 국가대표 커리어

2.3.1.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마라도나는 1982년, FC 바르셀로나에 영입되었다. 그러나 스페인에 온 마라도나에게 주어진 첫번째 과제는 바르셀로나 경기가 아닌 스페인 월드컵이었고, 펠레를 잇는 천재로 일컬어진 이 선수는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6] 게다가 아르헨티나에는 마라도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기대회 우승을 이끈 주역인 마리오 켐페스까지 포함되어 있는 상태였으므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서 엄청난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다.

그런데 사실 이때 아르헨티나는 정상적인 경기를 펼치기에는 너무 상태가 좋지 않았다. 월드컵이 바로 포클랜드 전쟁과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르헨티나 정부는 포클랜드 전쟁 당시 거짓부렁을 일삼으며 콩알만한 섬나라 놈들 우리에게 개기다가 박살염 ㅇㅇ, 무찔렀다 대영제국! 따위의 슬로건으로 국내 신문지상을 폭격하다시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스페인에 전초 기지를 차린 5월 중순부터 아르헨티나는 개박살나기 시작했으며 그 꼴은 아르헨티나에서와 달리 생생히 유럽에서 아르헨티나 대표 선수들에게 전달되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일종의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서 훈련을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나가기만 하면 포클랜드 전쟁에 대한 소견을 묻는 기자단에 둘러싸였으며 조국이 전쟁에 털리는 꼴을 생방으로 보고있으니 오죽하면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문 잠그고 하루종일 울기만 했다고...그래봐야 선빵은 아르헨티나가 갈긴 전쟁이다 보니 결국 자승자박인 셈.

곧이어 첫 번째 매치인 아르헨티나와 벨기에의 경기는 벨기에의 1-0 승리로 끝나며 마라도나는 집중 마크와 반칙에 고전하며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당시 아르헨티나는 명색이 디팬딩 챔피언인지라 이후 엘살바도르를 10:1로 이기고 온 한때 최고의 강호였던 헝가리를 상대로 아르헨티나가 4:1로 대승한 뒤 그 약체 엘살바도르를 2-0으로 깨버리며 SECOND ROUND에 합류했다.

허나 불행하게도 아르헨티나는 벨기에전 패배로 인해 죽음의 조에 합류하게 된다. SECOND ROUND GROUP C조에서 대회 득점왕으로 선정될 파올로 로시가 이끄는 이탈리아와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과 같은 조가 되면서 그 두 국가에게 패배하며 월드컵 우승의 꿈을 접은 채 탈락하게 된다. 세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마라도나로서는 탈락한 것도 굴욕이었거니와 브라질 전에서는 브라질 선수 바티스타를 걷어 차버리고 퇴장당하는 추태까지 보인다. 사실 이게 원인이 되어 아르헨티나는 패배하고 탈락했다. 그리고 똑같이 SECOND ROUND에서 탈락했어도 아르헨티나가 워낙 나쁜 성적으로 탈락한 탓에 현재의 기준으로 봤을 때 분류상 16강(정확히는 11등)이 돼버리고 말았다. 같은 SECOND ROUND 탈락팀인 소련(7등)과 오스트리아(8등)이 8강으로 분류되는 것과 비교해보면 많은 차이가 난다.

사실 마라도나에게 82년 월드컵은 실패한 대회다. 대회 전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나 그것에 충족하는 활약도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퇴장까지 당하는 것 때문에 '건방진 천재'라는 비아냥을 사게 된다. 굳이 얻은 것이 있다면 이 사진 정도.


무려 6명이 견제를 하러 오는 마라도나의 위엄. 후덜덜[7]
여담으로 메시가 남아공 월드컵에서 실패한 것을 스페인 월드컵과 평행이론이라고 생각하는 아르헨티나 국민들도 있다고 카더라...


마라도나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월드컵이었다고 볼 수 있다.

2.3.2.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6년 월드컵은 "마라도나 월드컵"이라 불릴만큼 역대 월드컵을 중 가장 단 한명에게 주목이 쏠린 월드컵이었다. 사실 마라도나는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슈퍼스타의 자리에 올라 있었고, 브라질의 지쿠, 프랑스의 미셸 플라티니와 함께 월드컵을 빛낼 것이라 주목받은 3인방 중에서도 최고수로 여겨지고 있었으며 당연히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다.

월드컵이 시작되자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 불가리아, 대한민국과 함께 A조에 편성되었다. 이 조는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의 조 수위 싸움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는데, 만일 2위로 16강에 진출할 경우 16강전에서 프랑스, 8강전에서 브라질, 4강전에서 서독과 맞붙어야 하는 대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조는 특이하게도 당시 기준으로 최근 두 대회의 월드컵 우승국이 같이 묶여서 죽음의 조이다 못해 아예 지옥의 조였다.[8] 그리고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불가리아를 상대로 삐끗해서 무승부를 하게 된 반면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의 3어시스트로 대한민국을 농락하며 3-1의 승리를 거둔다.[9] 이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1골을 추가하여 무승부를 만들고, 불가리아를 상대로 어시스트를 추가하며 2-0 승리를 이끌어내고 아르헨티나는 조 1위로 16강전에 진출.

그렇게 16강은 조 3위로 올라온 우루과이를 만나 쉽게 이기고 8강에 올랐다.

토너먼트 8강전에서 잉글랜드와의 경기는 매우 드라마틱한 것으로 유명하다. 후반 6분, 센터링이 올라오자 마라도나와 잉글랜드의 골키퍼는 동시에 점프를 했는데, 이때 교묘하게 마라도나는 이마가 아닌 손으로 공을 쳐 골인을 시킨다. 자세히 본다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명백한 핸들링이었지만[10], 심판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인정을 하여 1:0이 된다. 잉글랜드 팬들은 분노하고 야유했지만, 곧바로 축구 역사상 가장 멋있는 골로 기록된, 중앙선에서부터 드리블로 골키퍼 포함 수비수 9명토탈방어?을 제치고 골을 넣으며 잉글랜드 팬들을 넋나가게 만들었다.


이 골을 본 아르헨티나의 해설자는 "축구는 혼자 하는게 아니라 11명이 하는 팀 스포츠입니다. 우리는 지금 축구의 개념을 벗어난 최초의 선수를 보고 있습니다."라 이야기했고, 적국 잉글랜드의 해설자도 "왜 그가 사상 최고의 선수인지를 증명하는 골입니다. 슬프지만 우리 선수들은 그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선수입니다."라고 말하였다. 피터 쉴턴은 잉글랜드 대표로 A매치 125경기 출장에 빛나는 최고의 골키퍼중 하나였다. 당시 마라도나의 첫 번째 골을 스포츠맨쉽에 어긋난 행위라고 크게 비난했으며 유명 축구선수들을 초청해 성대하게 치러진 자신의 은퇴경기에 당대 최고의 스타인 마라도나를 끝내 초청하지 않았다.

한편 경기 후 인터뷰에서 첫번째 손으로 넣은 골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나의 손이 아닌 신의 손이 공을 때렸고, 그 순간 공은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는 애매한 답을 해서,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11] 당시 아르헨티나와 영국은 포클랜드 전쟁 이후 굉장히 사이가 나빠진 상태였고[12] 아르헨티나는 경제가 파탄 나 국민들은 이래저래 우울해진 상태였다. 이때 마라도나가 시원하게 잉글랜드를 꺾어주었고, 특히 그 형태가 한 골은 명백한 반칙으로 적국 잉글랜드에게 엿을 먹이는 행위였고 한 골은 가장 완벽한 골이었기에 더욱 더 그는 국민 영웅 이미지를 굳혔다. 하지만 16년 후, 어떤 아카데미 주연상급 연기력을 가진 잉글랜드 선수에게 희대의 헐리우드 액션을 당하여 아르헨티나는 거짓말처럼 광탈하게 되었고 잉글랜드는 기뻐하였다. 그 후 당시 축구강국이었던[13] 시포가 이끄는 벨기에를 상대로 2골을 넣으며 침몰시키고 마테우스가 이끄는 서독을 3:2로 대파하며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는 8년만에 정상을 차지했다.

사실 86년 월드컵의 멤버들이 형편없었는데 혼자 힘으로 우승시켰다는 것은 어느정도 과장이다. 당시 아르헨티나 감독 빌라르도는 신예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자기 전술에 맞춰서 뽑아서 비판을 많이 받기는 했으나[14] 그래도 다들 어느정도 클래스는 있는 선수들이기는 하였다.(멤버가 받쳐주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끌고가다시피 했다는 말은 오히려 90년 월드컵이 적합하다. 90년의 에이스는 마라도나와 골키퍼인 고이코에체아뿐이었다. 실제로 고이코에체아는 90년 월드컵에서 연속 두 경기를 승부차기까지 끌고 가서 진출시켰다.) 실제로 1986년 월드컵 당시에 마라도나와 같이 뛴 스트라이커 호르헤 발다노는 이미 레알 마드리드의 중심이 되는 선수어라?였으며 중앙 미드필더인 세 부루차가 역시 나름대로 명성이 자자했던 선수였다.어라? 이전 문서에는 부루차가가 윙어로 설명되어 있었는데 빌라르도는 부르차가를 윙어로 쓴적이 없다. 3-5-2 전형에서 중앙미드필더로 활용함. 수비수였던 세르히오 바티스타 역시 못하는 선수는 아니였으며, 주장이었던 파사레야는 이미 월드컵 우승을 한 번 차지한 베테랑으로 아르헨티나 역대 최고의 수비수라 할 만한 인물이었다.[15]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86년 월드컵 예선 과정은 마치 2010 월드컵 예선처럼 좌충우돌하며 힘겹게 올라갔고 예선 기간중에 심지어 중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1:0 패배까지 한 적이 있을만큼 형편없는 플레이를 하기도 했다.역시 축구의 발상지 그런 이유때문에 아르헨티나에 대한 인식은 강팀이긴 하나 강력한 우승후보는 아니고, 다만 마라도나 하나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정도였다.

그러나 본선에서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며 우승컵까지 들었고, 확실한 것은 당시의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가 아니었다면 지쿠미셸 플라티니, 혹은 최근의 지단이나 메시등 그 자리에서 뛰는 어떤 슈퍼스타를 데려온다 하더라도 우승하기 힘들고, 설사 우승을 한다치더라도 그 팀에서 마라도나만큼의 활약을 할 수는 없는것이 확실하다. 지쿠는 80년대 브라질 대표팀의 중심에 있던 선수였으나 우승과 인연이 없었고, 플라티니는 82 월드컵 4강에 오른데다 유로84를 혼자 쓸다시피하는 엄청난 포스를 내뿜었음에도 마라도나의 86년 퍼포먼스에 가려졌을 정도다. 메시 또한 2014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하드캐리했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에 한발짝이 모자라 우승을 이루지 못했다. 그나마 지단이 월드컵 우승 1번, 준우승 1번으로 마라도나의 월드컵 커리어와 견줘볼 수 있을 뿐인데, 86년의 마라도나와 달리 98년의 지단은 조별리그에서의 퇴장 때문에 2경기 출장정지로 손해를 본 걸 감안하면 팀 내에 미친 존재감과 영향력면에서 마라도나에 비해 약간 부족한 느낌이 있다. 물론 그때의 지단이 별 존재감이 없었다는 소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마라도나에 비해 약간 부족하다는 거지 당시의 지단도 사기캐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도 월드컵은 각국의 간판이나 다름없는 슈퍼스타들 모두가 본래의 200% 가까운 기량(집중력이나 창의성까지 포함)으로 임한다는 점에서 마라도나의 월드컵 우승은 더더욱 의미있는 것이다.

2.3.3.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90년 월드컵에서도 마라도나는 팀을 정상으로 이끌며, 결승까지 올리지만 집중 마크를 당하며 우승컵을 서독에게 1점 차이로 내주고 만다. 당시 공만 잡으면 거친 태클이 들어와 흡사 미식축구 경기와 비슷한 분위기였는데, 그런 것마저도 능수능란하게 이용하며 빈공에 시달리는 팀을 준우승까지 이끈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마약스캔들로 인하여 끊임없는 언론의 집중 포격을 받았다.

유명한 경기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16강전으로, 아르헨티나는 경기 내내 브라질에게 얻어터지다시피 하다가 후반 35분 경 마라도나가 40미터 가까이 질주한뒤 카니히아에게 킬패스를 꽂아줘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결승골 영상.아 마라도나 딸딸딸딸딸딸딸딸딸딸↗똘똘똘똘똘똘똘똘 오죽하면 이 경기를 1950년의 미국 대 잉글랜드와 비교할 정도였다. 브라질은 그저 데꿀멍.1998333129 #

그 이후는 골키퍼인 고이코에체아가 완전히 야신모드로 변신해서 결승까지 끌어올라갔다. 계속되는 유효슈팅 속에 8강과 준결승 두 경기 연속 승부차기까지 가서 승부차기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4강전 이탈리아전은 경기 외적인 요소로 유명하다. 하필이면 구장이 마라도나의 홈 구장인 나폴리의 산 파올로였고 그는 당시 그 곳의 신이었다. 그리고 마라도나는 "이탈리아인 취급도 못받는 나폴리 시민들이여, 차라리 나를 응원하라"라고 심리전을 걸어버린다. 당시 나폴리 시민들은 반쯤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이탈리아를 응원한다.[16]그리고 마라도나는 이것때문에 삐졌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의 대진 상대국중 편파적인 응원에 시달리지 않은 유일한 팀이었다. 나폴리 시민들은 마라도나에게 차마 야유를 퍼붓지 못했고 이탈리아가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웅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문제는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야 영웅이었지만 결승은 족보도 없던(?) 나폴리의 도전이 영 탐탁찮았던 두 개의 밀란팀의 홈이었던 밀라노에서 열렸다는 것.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마라도나는 완전한 역적이 되어 독일은 밀라노 팬들로부터 거의 홈 팀 수준의 응원을 받았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두 명이 퇴장당하고 석연치 않은 페널티킥 판정등 편파 판정에 시달렸다. 게다가 독일의 수비는 완벽하게 마라도나를 틀어막아서 정말로 마라도나는 이 경기에서 아무것도 못했다. 경기가 끝나고 마라도나는 시상대에서까지 눈물을 흘리며 90년 월드컵을 끝냈다.

2.3.4. 1994년 미국 월드컵

축구계를 은퇴한 것만 같았던 마라도나는 34살의 나이로, 94년 미국 월드컵에 출전한다. 이는 사실 자의반 타의반 떠밀려 나온거나 다름없는데, 마라도나가 은퇴한 아르헨티나는 지역예선 콜롬비아에게 무려 홈에서 5:0으로 깨지는 등 졸전을 거듭하다 지역예선에서조차 탈락할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남미예선에서 브라질, 콜롬비아, 볼리비아에 밀려 호주와의 플레이오프까지 몰리게되고 결국 여론은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마라도나를 다시 대표팀에 소집해야한다는 데에 이른다. 결국 호주와의 플레이오프 직전 마라도나는 대표팀 복귀를 선언, 호주를 플레이오프에서 1승 1무(1무는 0:0 1승은 1:0 그나마도 그 골은 마라도나 어시스트)로 꺾고 본선에 진출하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이후 이 대회 본선에서 마라도나는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아르헨티나팀을 지휘하며 천재적인 축구 감각을 과시했다. 아르헨티나는 초반 두경기에서 6득점 무실점을 기록하며 브라질과 함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고 마라도나 본인도 그리스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한 단 두경기에서 1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이끈다.(특히 나이지리아와의 두번째 경기에서 두골을 모두 어시스트한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두번째 경기 이후 금지약물인 에페드린 양성 반응으로 미국을 떠나야만 했고 마라도나가 빠진 아르헨티나는 강자의 면모를 상실한 채 이 대회에서 이전까지 나이지리아에 3:0으로 지는 등 아르헨티나보다 당연히 한수 아래라 여겨지던 불가리아한테 졸전끝에 2:0으로 패배하여 조 3위로 떨어지고 간신히 16강에 안착하는 한심한 상황이 연출되었고[17] 16강전에서도 루마니아와 난타전을 벌인 끝에 패하여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2.4. 선수시절에 대한 평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 이래 최고의 선수이자, 펠레와 더불어 전 인류 역사 이래 1, 2위를 다투는 세계 최고의 선수. 신문지상에서 간혹 90년대 말의 선수들에게 혼자의 힘으로 경기를 바꿀 수 있는 선수라는 과장된 수식어를 쓰는데, 그렇다면 그에게는 "혼자 힘으로 90분을, 21명을 지배할 수 있던 마지막 선수"라는 이름이 붙여질 만하다.

그가 전성기 시절, 우승컵을 들었던 팀인 나폴리아르헨티나의 다른 멤버들을 감안해 볼 때, "축구에서 한 선수가 한 팀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가?"의 한계 사례를 보여준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중하위권 수준인 나폴리를 UEFA컵 우승으로 이끌고 간 것은 다름아닌 마라도나 혼자만의 능력이다. 다소 과장이지만, 그가 당대의 수비 시스템을 붕괴시켜버려 새로운 전술인 압박 수비를 창조했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을 정도이니 더 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

그러나, 축구 선수가 아닌 인간적인 면에서 마라도나는 문제가 많다. 혼외정사로 아들까지 낳고 이를 부정하여 DNA 검사까지 해서 친자 판정이 나왔지만,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히 큰 과오이다. 또한, 프로선수 임에도 불구하고 마약이라는 치명적인 실책을 범했고 클럽을 떠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소음을 일으키는 것도 모범적인 사례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기자들에게 공기총을 발사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다만, 마라도나의 입장에서 보면 쉴드를 쳐주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 전까지도 축구 선수가 영웅이 되긴 했지만, 축구의 상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축구선수에게 수많은 파파라치와 기자들과 황색언론들이 달라붙기 시작한 최초의 세대였다. 지금의 메시호날두처럼 어릴 때부터 축구선수는 스타로 인식하는 것이 당연한 세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과도한 사생활 침해와 그에게 가해지는 엄청난 관심은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같은 시대의 지쿠같은 좋은 인격을 가진 스타는 그렇지는 않았으니 마라도나의 잘못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탈세니 선수를 발로 찼느니 하는 얘기가 있는데, 잘못은 맞지만 그런 축구 선수들이 한 두명이 아니었기 때문에 딱히 이 양반만 망나니라고 부를 수는 없다. 특히, 경기 중에 빡쳐서 발로 차는 거...

마라도나는, 전 인류 역사상 최고의 크랙[18]이라고 불리는 숙명처럼 매번 시합에서 기본으로 2명, 3명, 많게는 5명 이상이 따라붙으면서 온갖 거친 플레이를 받으면서 발로 걷어차고, 유니폼을 잡아당기고, 공이 아닌 발목을 향한 살인태클의 위협에 시달렸으니 인격자가 아닌 이상 화가 머리 끝까지 날 만도 했다. 이런 상황이니, 필연적으로 "매춘부"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시뮬레이티드 액션의 달인이 되었을 수 밖에 없다.

2.5. 마라도나에 대한 전설적인 축구인들의 평가


"내가 펠레보다 못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다르다. 내가 축구공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는 오렌지로도 할 수 있다." - 미셸 플라티니

"축구에서 한 사람의 힘으로 경기를 승리로 만들어 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직 그것이 가능한 선수는 마라도나뿐이다." - 안드리 셰브첸코

"내가 마라도나에 근접했다고? 그의 수준에 다가갔다거나 어깨를 나란히 했다 같은 비교를 넘어선 지평에 마라도나가 있다. 그는 축구 그 자체이다." -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내 프리킥 실력이 그의 발 밑 정도에 근접했을지 모른다. 아니, 그렇게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 지안프랑코 졸라

"내가 브라질 사람이기 때문에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의 우상은 디에고다. 물론 펠레도 늘 영웅이었지만, 나는 디에고의 플레이에 언제나 경악했다." - 호베르투 카를로스

"나와 로베르토 바조가 스타이긴 하지만, 슈퍼스타의 존재는 아니다. 현대 축구에서 슈퍼스타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마라도나뿐이다." - 호마리우

"난 축구 역사상 3번째로 뛰어난 선수다. 1위와 2위는 당연히 펠레마라도나다." - 호마리우

"나와 마라도나를 비교하는 것은 실례다." - 지쿠

"그와 비교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는 외계인이기 때문에..." - 지네딘 지단

"내가 배구공으로 간신히 할 수 있는 볼키핑을 마라도나는 탁구공으로 하고 있다." - 지네딘 지단

"마라도나가 페널티 지점에서 볼을 차서 크로스바에 맞추고, 튕겨나온 볼을 다시 크로스바에 맞추면서 놀고 있던 그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런 일은 나로선 해낼 도리가 없다." 근데 얘도 하던데? - 지네딘 지단

"로베르토 바지오, 루드 굴리트, 레이카르트, 프랑코바레시 등등 많은선수들이 있었지만 반바스텐이 내가 맡은 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던 선수이다. 그리고 지금껏 봐 온 선수 중에서 가장 대단했던 선수는 마라도나다. 그는 위대한 선수였다. 그를 영입하려 했지만, 그는 나폴리의 신이 되어 있었다. 두 명의 마라도나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네덜란드 삼총사를 부른 것은, 한 명의 선수로 팀의 승패를 좌우 할 수 있는것은 마라도나 이외엔 없기 때문이다." - 아리고 사키

"압박축구를 고안해낸 것은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서이다." - 아리고 사키

"오렌지 삼총사의 3명이 각기 실력을 발휘하고 나서 그와 처음 동등해진다." - 아리고 사키

"나는 천재가 아니다. 천재라는 것은 아마 마라도나 같은 선수의 그것을 가리키겠지." - 마르코 반 바스텐

"녀석(마라도나)에겐 선수로서 전혀 대적 할 수 없다." - 요한 크루이프[19]

"현재 전세계의 모든 현역선수는 마라도나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를 제외한 세계 최고의 선수는 로베르토 바지오라고 생각한다." - 요한 크루이프

"마라도나만큼은 나보다 위. 그는 격이 다르다." - 요한 크루이프

"마라도나는 반 바스텐보다 위. 예를 들어 지금의 시대에서 활약 할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 프랑코 바레시

"마라도나에게는 언제나 당하고 있었다. 당시의 그는 최고로 빛나고 있었다. 최근의 은퇴시합의 그를 보면서 왠지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 프랑코 바레시

(당신이 대전했던 선수중 누가 가장 대단했나?라는 질문에) "가장 대단했던것은 디에고다. 그는 특별하다. 그 다음은 반 바스텐. 그리고 조금 더 내려와서 플라티니다." - 로타어 마테우스

(호나우두는 어떤가라는 질문에) "그도 역시 대단하지만, 지금부터 특별한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 - 로타어 마테우스

"옛날, 바르셀로나 시절의 호나우도가 5, 6인을 제치고 득점하는 것을 보았다. 방금전에도 말한 것처럼 그는 경이적이었다. 호마리오도 발군이었지만, 전성기의 마라도나가 내가 본 중 최고였지. 초일류의 선수다. 그리고 호나우도가 조금의 차이로 2위(웃음)." - 바비 롭슨

"그를 마크하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그와 같은 선수는 이제다시 나타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 파올로 말디니

"나의 커리어에서 마라도나만큼 대단한선수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는 두 눈을 볼에 고정시키지 않고도 룰렛이나 라보나 킥같은 고난이도 기술을 사용했고, 두 눈으로는 그를 향해 날아오는 백태클을 피하는데에 사용했다. 그 다음은 인테르 시절의 호나우도.. 그는 마라도나와 근접해있었다. 대단한 기백을 보여주었다. 지금의 호나우지뉴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 파올로 말디니

(연습 도중 안토니오 카사노에게) "백힐 패스를 계속하지 마라. 너는 마라도나가 아냐." - 파비오 카펠로

"그는 어린 선수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아냐." - 펠레


"그는 대단한 선수였어. 나쁜 본보기의 대단한 선수." - 펠레 꼭 좋은 말 하다가 초를 친다. 왜 하필 마지막에 저런... 펠레한테 좋은 말 들어서 좋을 게 없을텐데..?

2.6. 포스트 마라도나 신드롬

아리엘 오르테가, 후안 로만 리켈메, 하비에르 사비올라, 파블로 아이마르, 카를로스 테베스, 세르히오 아구에로 등등 아르헨티나의 수많은 축구신동들은 이후 '포스트 마라도나'라는 기대를 받았으나, 대부분은 마라도나와 축구 포지션 및 스타일도 달랐으며[20],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이후부터 2012년 현재까지 이르러서는 리오넬 메시가 '마라도나의 재림'이라는 칭호를 받는 등, 지금까지의 아르헨티나 축구신동 중에서 포스트 마라도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로 기대받고 있다. 마라도나 역시도 "그동안 새로운 마라도나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수십번 반복되었다. 그러나 메시만이 내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믿을 수 없는 재능을 갖고 있는 선수다." 라고 하며 메시를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었고 나의 마라도나는 메시라고 할 정도로, 실제로도 메시를 무척 아낀다. 월드컵 시즌 감독을 맡은 당시에도 팀의 에이스인 메시를 무척 싸고 돌았고 그후로도 계속 조언과 격려를 해주고 있다.

일단 메시와 마라도나는 둘은 스타일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마라도나가 돌파, 조율, 패스가 모두 가능한 만능형이라면 메시는 측면 돌파에 특화된 윙 포워드였지만 이제 진화한지 오래다. 스타일로 따진다면 차라리 앙헬 디 마리아가 마라도나에 더 가까웠지만 펩 과르디올라FC 바르셀로나 감독부임 이후 메시는 프리롤로서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2009년 이후 메시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들과 스트라이커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윙포워드 역할은 다비드 비야드로가 맡는 중.

그동안 메시는 환상적인 개인기에 비해 슈팅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2009/10시즌의 맹활약으로 이런 평가를 불식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는 마라도나에 버금가는 초특급 드리블러이며 동료 선수와의 재빠른 연계플레이로 상대 수비진을 돌파하는 능력은 당대 최고급이다. 특히 메시의 09/10 시즌 이후 3년간 이어가는 가공할만한 득점행진은 미드필더였던 마라도나는 물론 호나우두, 호마리우 등 최고의 공격수들의 기록조차 빛을 바래게 하고 있으며 2012년은 게르트 뮐러의 기록을 넘은 91골을 기록, 역사를 다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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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메시에게는 마라도나의 불꽃 프리킥, 아름다운 경기 조율능력은 부족하다. 그래도 부족하나마 프리킥도 정착해나갔다. 하지만 메시는 마라도나의 조율능력은 부족하다. 이전 버전에서 메시의 조율 능력이 역대급이라고 이야기하였으나 조율은 단순히 킬패스를 날리는 능력 뿐만 아니라 경기 리딩이나 완급 조절, 수비시와 공격시를 적절히 배분하는 능력 등을 모두 포함한다. 메시는 FC 바르셀로나에서 그러한 역할을 맡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 역할까지 한다면 메시가 막혔을때 바르셀로나는 답이 없어지는 원맨팀이 된다. 과거 메시가 마라도나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받던 날카로운 패싱[21], 혼자 힘으로 경기를 뒤집는 번뜩이는 천재성, 넓은 시야 등은 2012년 현재의 메시도 손에 넣었지만 완급 조절은 아직 마라도나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 물론 메시에게는 밀집 수비진을 파괴시키는 드리블[22][23], 득점력 등 마라도나에 비해 우위를 보이는 분야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메시의 실력이 펠레나 마라도나와 같은 경지에 올랐다쳐도, 마라도나가 손에 넣었던 월드컵 타이틀이 없다면 메시가 마라도나의 후계자를 넘어 그와 같은 위상에 오르는 것은 요원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메시가 마라도나에 비해 더 고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이 클럽 활약상이라면, 마라도나가 메시에 비해 고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은 바로 86 월드컵이다. 2014년 메시도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그래도 86년의 마라도나 까지는 아니다. 물론 14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86년 아르헨티나와 달리 팀 전체가 많이 부진한 모습이 있던것이 사실이고, 메시 개인 능력으로 반전의 기회를 만든 것이 사실이다.[24] 하지만 마라도나는 경기 자체를 충격적일 정도로 자기 흐름으로 돌려버렸다. 당장 8강, 4강전에서 메시는 물론 짧게라도 찾아온 기회에 자신을 증명했으나 경기 전체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포스를 내뿜지는 않았다. 마라도나는 8강, 4강에서 두 골씩 꽂아넣은 것은 물론이고 독일을 상대로 리드하는 경기에서 두방의 헤딩으로 추격을 허용하고도 끝까지 어시스트를 해내는 능력을 보여줬다. 즉 8강, 4강 무대에서 메시 개인의 지배력이 가장 빛났던 나이지리아전 만큼의 활약을 했다는 이야기.인간이냐 하기야 메시도 인간은 아니지 바로 여기서 마라도나를 옹호하는 논점이 출발한다.사실 메시는 월드컵 없이 이대로만 가도 급까지는 무난하다는게 중론. 문제는 급에 오르냐 마느냐

또한 마라도나 뛰던 시절은 에이스 킬러라고 해서 수비수들이 상대팀의 에이스들을 무차별적 파울로 공격하고 부상 입히는게 훈장으로 취급되는 시절이었다. 이 때문에 반 바스텐은 일찍 은퇴했고 마라도나도 스페인 시절 빌바오의 고이코체아에게 당한 태클로 선수 생명이 끝날뻔한 적이 있었다. 마라도나가 이러한 압박에 맞서 팀을 승리로 이끈 방법은 유려한 드리블 돌파및 빠른 패스웍, 압박시에 생기는 뒷공간을 활용해 동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전술적 시야였다. 이는 압박축구를 효과적으로 분쇄하는 방법 중 하나로 지금도 유력하게 자리잡고 있고 방법이고 마라도나는 여기에서 선구자적인 면모를 보였다.

위닝 시리즈에 등장하는 아르헨티나 클래식 팀에서 마라도나는 완전 개사기캐릭터화 되어 있다.[25] 그냥 전술이고 뭐고 싹 다 무시하고 공을 일자로만 끌고가도 상대 수비수들이 볼을 빼앗지 못한다는 점이다. 위닝에서 이런 선수는 모든 선수들 중에 마라도나가 유일하다. 펠레도 이정도까지 개사기캐릭터는 아니다.

메시는 이런 비교에 대해 "펠레, 마라도나와 비교되는 것은 정말 영광이지만 그들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다. 그저 팀과 나의 발전을 위해 축구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으며 아르헨티나 출신답게 가장 존경하는 선수 역시 마라도나. 물론 역대최고 역시도 당연히 마라도나라며 존경심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마라도나는 "누군가 나를 능가하게 된다면, 그것은 아르헨티나인이기를 바란다. 그 인물이 메시라면 기꺼이 환영할 것이다"라고 말한바 있으며 "나의 커리어는 이미 끝났지만 메시는 현재 진행형이다, 결국에는 펠레와 나의 반열에 오르게될 것이고 우리는 훗날 역대 최고의 자리를 놓고 서로 비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도 말한 적 있다.

장지현 위원은 두 선수를 사실상 비교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는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80년대의 축구와 현대 축구가 사실상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파고들자면, 80년대 축구는 그 어느 시기보다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이 두드러지던 시대였다.

마라도나는 개인적인 플레이메이킹 뿐 아니라 수비진 흔들기, 경기 내의 템포 조절, 직접적인 득점력, 강력한 수비 가담까지 모든 부분에서 단 한 명의 클래식 공격형 미드필더가 책임을 지는 시대에 나타난 선수였다. 압박이 등장하고 1인 공격형 미드필더가 더 이상 모든 부분을 책임질 수 있는 시대가 지나면서, 플레이메이킹은 후방 플레이메이커와 전방 플레이메이커로 이원화된다. 이러한 후방 플레이메이커의 대표적인 선수는 호셉 과르디올라,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르난도 레돈도등이었다. 한편, 후위에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좌한 플레이메이커도 태동되었는데 이러한 선수의 유형의 대표선수는 지네딘 지단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전방의 플레이메이커도 공격시에 직접적인 득점과 더불어 스트라이커를 지원해주는 부분은 데니스 베르캄프 등 위대한 쉐도우 스트라이커 유형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그 역할을 가져가게 되었다. 이후 메시는 카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더불어 수비진을 흔드는 유형의 선수로 등장했으나,[26] 측면 포지션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며 바르셀로나 제로톱의 상징적인 선수로 최전방 약간 아래에서 수비진 흔들기와 더불어 공격시 선봉장의 자리에서 창조성을 불어넣고, 또 직접적인 침투도 가능한 선수로 성장했다.

결국 축구 전술의 변화를 전혀 살펴보지 않고 메시와 마라도나를 1대1로 득점력이나 패싱력을 비교하며 누가 더 낫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답이 나올 수 없다. 마라도나와 메시를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은 그 위상에 있어서만 가능한데, 그렇다 하더라도 누구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한 장지현위원은 사실상 두 선수의 위상은 비슷하다고 이야기하였다.

요한 크루이프 역시 두 선수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한 바 있다.

2.7. 펠레와의 비교

축구황제 펠레에게 축구실력으로 도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보니 쌍방간의 비교 떡밥이 상당히 흥했다.

축구사에 영원히 남을 이 떡밥에서 마라도나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은 마라도나는 펠레와 달리 월드컵 뿐 아니라 유럽리그에서마저 독보적인 업적을 쌓았다는 점, 아울러 펠레는 스트라이커라 공격을 책임지지만,[27] 마라도나는 미드필더라서 경기 전체를 책임진다며 그의 비교우위를 주장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펠레와 같이 뛴 브라질의 축구대표팀 멤버 역시 호화찬란하기 그지 없는 데에 비해 마라도나와 같이 뛴 아르헨티나의 축구대표팀 멤버들의 경우는 거의 마라도나에게 의존한다는 점 역시 강조되고 있으며 중하위권 수준인 나폴리를 UEFA컵 우승을 하게 만든 것 역시 마라도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펠레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의 압도적인 골기록, 17세의 나이에 월드컵 4강에서 해트트릭, 결승에서 2골 기록, 월드컵에서 3번씩이나 우승하게 만든 업적 등 월드컵에서의 맹활약 등을 들어 그가 더 낫다고 한다. 그리고 펠레가 현역이던 시절은 유럽과 남미의 리그 수준이 차이가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는 점도 감안해야된다. 실제로 펠레가 속했던 산토스팀은 숱하게 유럽의 강호들에게 초청되어 투어를 벌였는데 차이는 커녕 그냥 거의 대부분 이겼다.

하지만 두 사람은 활동한 시기도 포지션도 다를 뿐더러 누구 한명을 억지로 추켜세워야만 두 사람의 위대함이 부각되는 것은 아니니 건전한 네티즌이라면 심심풀이로 비교해보는 수준에서 그치는게 좋을 것이다. 한마디로 펠레는 펠레고 마라도나는 마라도나일 뿐이다. 그런데 전성기의 펠레와 전성기인 마라도나가 같은 팀에 소속되면 다른 멤버가 아무리 듣보잡이라 해도 팀 자체가 개사기팀이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펠레도 그렇고 마라도나도 그렇고 둘 다 팀을 개사기급 성능을 가진 초강력한 팀으로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것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펠레와 마라도나 둘은 경쟁 의식이 있는지 틈만 나면 서로를 디스한다. 펠레는 "그딴 약쟁이가 내 라이벌? 내 다음은 크루이프지"라고 까고[28] 마라도나는 "아이고ㅋㅋㅋㅋ 그 영감님 아직도 박물관 안 가셨음?"이라고 깐다. 축구계의 송대관-태진아 펠레가 메시를 평가할 때도 "메시는 아직 크루이프, 플라티니, 디 스테파뇨 등 예전 스타들을 따라잡지 못했다"라고 하면서 마라도나를 쏙 빼놓을 정도. 이제 메시가 저 셋 다 따라잡겠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유치전 당시 한국을 지지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펠레가 브라질의 우방국인 일본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덕택에 95년 한국의 월드컵 유치 홍보 계획의 일환으로 열린 한국과 보카 후니오르스와의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서 약물 복용으로 출장정지 징계를 받은 후 나선 첫 공식전이었기에 세계적인 관심을 끌기도 했다.

2011년 6월 들어서부터 두 어르신들께서는 서로의 후계자를 두고 싸우기 시작하셨다. 마라도나는 네이마르를, 펠레는 리오넬 메시를 까면서 서로를 디스한다. 마라도나 : 계획대로 펠레가 먼저 유망주 네이마르가 메시보다 낫다는 희대의 개드립을 시전하자 마라도나 역시 가만히 있지 않고 "그 영감이 약을 잘못 먹었나ㅋ 어지러워서 지가 뭔 말하는지도 모르나봄ㅋ 약이나 잘 먹으셈"이라고 어퍼컷을 날리며 서서히 발동걸린 이 라이벌 디스대전은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죄없는 본인들 후계자들만 희생시키고 있다는 반응이다. 메시는 유망주와 비교당해 어이털리고 네이마르는 죄없이 거품이라고 폭풍 까이고... 그리고 펠레의 저주[29]

사실 펠레가 마라도나를 칭찬하면 반대로 펠레가 뛰어나지기 때문에 펠레가 더 강하다고 한다. 그런데 펠레는 마라도나를 까잖아? 안될거야 아마...

2.8. 라이벌


호사가들이나 대다수 해축팬들이 꼽는 마라도나의 라이벌은 펠레지만 현역시절 마라도나의 라이벌로 꼽힌 선수는 프랑스의 마에스트로 미셸 플라티니, 브라질의 하얀 펠레 지쿠, 네덜란드의 검은 튤립 루드 굴리트, 그리고 월드컵과 세리에에서 심심하면 만나댄 로타르 마테우스가 있다.[30][31] 이 중 본인이 최대 라이벌로 꼽았던 건 마지막 로타르 마테우스

2.9. 그외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주로 나폴리 주변의 남부지방)에는 마라도나를 신으로 섬기는 종교도 있다고 한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 '축구의 신: 마라도나(Maradona By Kusturica)'에서 그 전모(...)를 감상할 수 있다. 진짜로.

명성이 워낙 대단하다보니 '레몬으로 트레핑 연습'을 한다던가 '일부러 골대만 맞추면서 논다'는 등의 이야기도 널리 퍼져있다.

심지어는 지네딘 지단조차도 마라도나의 축구실력에 경의를 표하는데 지단이 직접 한 말에 의하면 "내가 배구공으로 간신히 할 수 있는 볼키핑을 마라도나는 탁구공으로 하고 있다."라고 극찬을 하는 정도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거지만, 그의 주포지션은 공격수가 아니라 미드필더이다. 공격력이 매우 뛰어나서 스트라이커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선수였다. 그의 골기록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

호마리우가 등장하기 전까진 세계제일의 "악동" 선수로 명성이 자자했던지라 호마리우처럼 실력만 좋고 멘탈은 썩었다고 생각하는 젊은세대들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았다. 기자들에게 새총을 쏘는 등의 기행이 있었긴 했어도[32] 선은 지켰고 나름대로 선행도 많이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었다. 그리고 축구협회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마라도나는 언제나 선수들의 편이었고 절대 축구협회 회장에게 빌붙지 않았다. 나폴리에서 나폴리의 마피아인 카모라들과 사이가 나빴으며, 그들에게 대놓고 비난했던 유일한 인물. 당시 카모라들에게 대든다는것은 정말 죽을 각오를 했어야 했다.

또한 서방언론 특히 미국계 언론과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다. 일단 그 인생사, 물고 뜯을 게 많기 때문에 좋은 먹잇감이기도 하지만 남미인으로서 아르헨티나인으로서 주관이 뚜렷한 인물이다. 즉 미국을 몹시 싫어하고 신나게 깐다. 그리고 하고 싶은말 참지않고 바로바로 내뱉는 성격이다.[33] 체 게바라랑 카스트로를 좋아하는 것이 그 반증. 언론 역시 네 그러세요? 하며 신나게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마약도 하니 뭐 카모라들이랑 한통속이라는 음모론도 있지만 완전 헛소리다. 당시 카모라의 아이들이랑 찍었다는 사진이 있는데 사실은 카모라들에게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찍은것을 카모라들이 그렇게 퍼트린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위하여 재단을 만들어 기부한것도 유명한 일. 괜히 나폴리에서 저렇게 떠받드는 게 아니다.

한번은 친구의 딸이 병에 걸려서 비싼 수술비를 내기 난감했는데, 그 막대한 수술비를 내준 적도 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아들이 바로 디에고 포를란으로, 병에 걸렸던 여성은 포를란의 친누나인 알레한드라 포를란이다. 원래 테니스 선수였던 디에고 포를란은 마라도나의 극진한 애정에 감명받아 자신의 진로를 축구선수로 전향했다.그리고 2011년마라도나의 조국을 엿먹이게 된다.

이런 모습은 필드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재능만 믿고 혼자서 다 하려드는 우를 범하지 않았고 항상 동료들을 연계를 잘 활용하며 팀을 위한 플레이를 펼쳤다. 그의 주장완장은 결코 실력만으로 얻어진게 아니다.[34][35]

마라도나는 역으로 감독으로서는 동정심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도 있다. 빈민촌 출신이며 없는 자인 테베즈를 자르지 못했는데 후임인 사베야는 테베즈를 잘라내고 승승장구했다는것이 그 근거. 그러나 사베야 재임기의 테베즈는 맨시티에서 트러블을 일으켜 경기도 못 뛰고 있었으니 잘라내는게 당연한 얘기이고, 마라도나 재임기의 테베즈는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며 공격전개, 돌파, 연계까지 완벽하게 수행해 당시 미드필더진(나이젤 데용, 가레스 배리, 야야 투레)의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맨시티를 이끌고 있었다.

그외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할 당시 탈세를 심하게 하는 바람에 지금도 그가 이탈리아로 여행가면 각종 귀중품을 빼앗긴다. 마라도나가 탈세한 액수가 모두 채워질 때까지 이 짓은 계속 반복된다고 한다. 2009년에는 귀걸이를 빼앗겼다.[36] 이게 원인이 되어 나중에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감독이 되어서도 이탈리아에 가질 못하기 때문에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가 없었다. 막말로 (마라도나가 받는 감독으로서의 급여)보다 배꼽(이탈리아에 가기만 하면 빼앗기는 세금)이 더 크니 이게 마라도나가 선수관리를 하는 데에 큰 애로사항으로 돌아오게 된다.

파파라치에게는 아주 쿨하게 대응했다. 아무 소리 안하고 그냥 공기총으로 위협사격을 했다. 이로서 가장 터프하게 파파라치를 상대한 유명인사가 되었다.[37] 이 때문에 지금도 파파라치가 마라도나에게 접근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3. 감독 시절

마라도나의 감독 시절에 대해선 본 항목 내에서 워낙 의견이 분분하고 반론에 반론이 이어지는데 했던 말 또하고 또해서 어지러우며 논쟁의 주요 원인인 별 상관없는 예시 등이 난무하므로 가독성을 위해 한꺼번에 정리합니다. 차후 수정시도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3.1.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3.1.1. 지역예선

2010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쾌조의 3연승을 거두며 출발하나, 이후 이어지는 7경기에서 단 1승만을 거두게 된다. 이 당시 진출기준은 10팀 중 4위까지 본선직행, 5위가 북중미 팀과 플레이오프 단판을 겨루어 승리하는 방식인데, 10라운드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성적은 칠레와 승점은 같지만 득실에서 앞서는 3위였다. 허나 10라운드에서 칠레에게 패배하며 3위도 간당간당했으며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기에 아르헨티나 측에선 비장의 카드로 마라도나를 꺼내든다. 마라도나는 한때 볼리비아에게 1-6으로 양반학살을 당하고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는 홈을 로사리오로 해야 한다는 병크를 저지른 끝에 예선 탈락의 위기에 내몰렸지만 결국 마지막에 2연승을 거두어서 4위로 아르헨티나는 본선 직행 티켓을 얻는다.

3.1.2. 조별리그 나이지리아전

사실상 마라도나가 본래 세웠던 계획대로 하고 싶던 걸 마음껏 해본 유일한 경기. 그러나 마라도나가 본래에 세웠던 그 계획은 수비를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약하게 만드는 단점이 있었다. 이게 지역예선에서는 볼리비아전, 브라질 전 등에서 드러났으며 이후에도 독일전에서 명확히 드러나게 된다.

월터 사무엘과 마르틴 데미첼리스의 중앙수비를 바탕으로 마스체라노가 수미로 저지선을 형성하고, 저지선 앞에 선 베론이 여유 있게 팀을 조율했다. 최전방의 이과인이 좌우로 쫙쫙 벌려주는 가운데 메시는 중앙에서 프리 롤을 맡아 좌우 중앙 어느 쪽이던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테베즈가 적진 깊숙한 곳 우측에서 중앙으로 끊임없이 전개해 들어갔다.

미드필드 라인에선 디 마리아가 왼쪽 앞뒤로 오가며 공을 전개했고, 에인셰가 뒤를 단단하게 맡았다. 오른쪽 풀백을 맡은 구티에레스는 에인셰보다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며 오른쪽 라인을 책임졌다.

나이지리아가 간간이 반격도 해 봤지만 베론의 완급조절과 그 조절을 따라가고 풀어가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기량이 빛나 결과는 아르헨티나의 1:0 승리, 경기내용은 압도적이었다.

다만 이 경기 이후 베론이 부상당하며 마라도나는 더 이상 하고 싶은 걸 못하고, 플랜 2는 빨리도 등장하게 된다.

3.1.3. 조별리그 한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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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현역 선수였던 허정무에게 허벅지를 정통으로 걷어차인 적이 있다.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일간지 스포츠면에 게재되기도했다.

그 당시 기억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월드컵 조편성 추첨전에 마라도나가 직접 한국 축구협회에 친선경기를 제안했다. 알다시피 2009년 현재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은 허정무. 그러나 그 제안은 한국과 아르헨티나가 2010 월드컵에서 같은 조에 편성되면서 사실상 자동 철회되었다. 마라도나 본인도 그 사건은 잊지 못하고 있다. 허정무 감독에게 그 때 한국 선수들은 축구가 아니라 태권도를 했다고 도발을 시전,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뭐 실제로 당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특히 마라도나를 전담했던 허정무가 실력이 안되니 그냥 사정없이 상대를 두들켜 팬 것은 사실이지만.[38] 하지만 허정무는 마라도나의 도발에 "태권도 한 적 없다."라고 응수. 역시 때린 사람은 기억 못하지만 맞은 사람은 기억한다.

당시 허정무와 대한민국 대표팀이 아르헨티나, 특히 마라도나를 상대로 한 이른바 태권축구는 당시 축구팬들 사이에서 유명한 사건이었고, 특히 마라도나를 국보 취급 했던 아르헨티나는 그 사건을 대한민국 이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월드컵 한참 전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에서 토크쇼를 진행할 때 허정무를 초청하기도 했었다. 당시 허정무도 참석하려 했으나 스케쥴상 참석하지 못했다고...

이런 악연이 객관적인 전력으론 한국이 열세라는 일반적인 평가와 달리 한국과 아르헨티나전의 분위기는 달아올랐었다(물론 호각이라는 분위기는 한국에서만). 한국 언론과 네티즌들은 마라도나가 감정적인 사건에 냉정하게 대처하기는 커녕 자기가 먼저 빡돌아 나가 떨어지는 타입이라며 은근히 이를 반겼으나 나가떨어지긴 개뿔, 모든건 한국의 일방적인 설레발에 불과했고 선수 개개인의 실력은 물론 감독간 지략대결에서도 승리하며 아르헨티나가 4:1로 한국을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4년이 흐른 후, 만만하다고 평가되던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게 무려 4:2로 대패한다.
여담으로 한때 축구천재라고 불리던 대한민국의 한 선수가 이 경기에서 월드컵 데뷔골을 넣었으며 무려 자책골이다.
그걸 또 그대로 보고만 있던 자동문은 덤.
천재적인 플레이에 감탄하여 넋을 잃었다 카더라
나라잃은 표정
역시 축구천재답다
1따봉 1미안
퐈이야!!

아르헨티나는 베론의 부재로 인해 다이아몬드 미드필더를 사용한다. 메시가 꼭지점 플레이메이커 역할로 한국 수비를 흔들게 하고 공의 운반은 다이아몬드 중앙의 디 마리아와 막시 두 명에게 맡기고, 측면은 디 마리아를 조금 왼쪽으로 치우치게 배치한 다음 오른쪽은 구티에레즈의 전진으로 해결을 본다.

한국은 불의의 자살골을 먹고 어쩔 수 없이 뒷공간을 열고 공격에 나설 수밖에 없었으나 공은 아르헨티나 페이스였고 어떻게 공을 잡아내고 공격하려 해도 여전히 시간이 많이 남았고 아르헨티나는 무서웠기 때문에 지고 있는 팀 치고 전방 공격자원의 숫자가 모자랐고, 배치가 깊숙하지 않았다. 기성용과 박지성은 마스체라노에 거의 녹아났고, 염기훈의 움직임은 나쁘지 않았지만 마무리가 실망스러웠고, 이청용의 마무리는 좋았지만 수비 위치가 나빠 실점의 단초를 제공했다. 박주영은 미드필드가 끊겨서 열심히 헤딩하고 마스체라노 및 아르헨티나 수비진과 대결을 벌이려 했지만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결국 경기 내내 중앙의 테베즈와 곤살로 이과인, 중원에서 쳐들어오는 디 마리아와 막시 로드리게스를 저지하느라 녹초가 된 한국 대표팀은 후반 12분경 최후의 반격이 무위로 돌아간 후 교체투입된 아게로와 본격적으로 좌우 측면을 공략하기 시작한 메시에게 너무나 쉽게 녹아내렸다. 스코어에서 뒤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비적으로 잠굴 수도 없었다.

3.1.4. 조별리그 그리스전

마라도나는 본선진출을 위해 많은 주력선수들에게 휴식을 주었다. 마스체라노, 이과인, 테베스를 쉬게 하고 메시는 투입했다. 마라도나는 메시를 자신의 재림으로 전술의 중추로 굳게 확신하고 있던 바, 그리고 메시의 생일이라 메시에게 주장 완장을 씌워줬다. 이로서 2010년 월드컵 전 경기를 통해 가장 어린 주장이 배출됐다.

그런데 메시는 자신조차 주장으로서 출전한 게 이 경기가 처음이었으나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우리도 이기면 16강 진출이다.라고 외치며 거세게 저항하는 그리스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파나티나이코스 FC가 통짜로 월드컵에 출전한 그리스팀은 물당번이 인터밀란, 주전이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FC인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 뭐 비록 요번 경기에는 물당번 격인 인터밀란의 밀리토가 선발출장했지만 어쨌든 전반전을 0-0으로 끝냈고 그리스로서는 초강력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이렇게 물고 늘어진 것이 대성공이었다. 파나티나이코스...아니 그리스는 이제 아르헨티나를 무승부로 막고 나이지리아가 대한민국을 이겨주길 바랬다.

사실 그리스의 파이브백을 뚫기에는 다이아몬드로는 조금 힘에 부치는 바가 있었다. 중앙 대 중앙으로 맞붙어 봤자 사람만 바글바글하지 공간이 나지를 않는 것이다. 중원에서 메시가 중앙으로 침투한들, 밀리토가 특유의 오프사이드 뚫기라든가 2:1을 시도하려 한들, 아게로가 드리블로 어떻게 풀어보려 한들 중앙에서 중앙으로는 물고늘어지는 파이브백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오타멘디와 로드리게스가 오버래핑 해 봤자 한계가 있었다.

같은 시각 대한민국과 나이지리아가 박빙의 승부를 연출하고 있을 때 마라도나는 경기가 안 풀리는 것을 보고 막시를 빼고 디 마리아를 투입하여 디 마리아를 왼쪽에, 메시를 오른쪽에, 최전방은 밀리토로 그 후방은 아구에로로 두어 포메이션을 4231로 바꾼다. 활발하게 측면을 사용하며 중앙으로 들어오고 측면으로 빠지고 하며 아르헨티나의 공격이 살아나는데, 그리스도 가만히 있진 않아 사마라스가 롱볼로 그리스 최고 최초 최후의 찬스를 잡으나 놓쳐버리고 만다. 마르틴 데미첼리스가 코너킥을 머리에 갖다댄 게 밀리토의 팔에 맞고 다시 본인 앞에 떨어진 것을 주워먹는 좀 논란성 골이 터지고, 뒤이어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침투하는 메시의 슛이 튕긴 걸 주워먹은 마르틴 팔레르모의 골로 아르헨티나는 그리스를 제압했다. 이 때 대한민국과 나이지리아는 비겼다. 대한민국 축구팀은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제압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골득실에 상관없이 조 2위, 16강 진출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직전 홍명보는 article|default 차라리 아르헨티나가 전승하는 것이 대한민국에게는 유리하게 돌아간다. 이길 팀이 확실히 이겨야지 혼전양상으로 가는것이 상당히 불리한 거다.라고 말한 바 있다.[39] 그런데 진짜로 아르헨티나가 전승을 기록했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마라도나 츤데레...츤데레...대충뛰어도 16강 가는 그리스를 상대로 기어이 이겨줬다.

3.1.5. 16강전 대 멕시코전



아르헨티나가 프랑스를 격파하고 A조 2위로 올라온 멕시코에 3:1로 완승을 거두었다. 멕시코는 치차리토의 체면살리는 한골이 전부였다. 참고로 2006 독일월드컵 16강전에서도 아르헨티나는 멕시코를 이기고 8강에 올라갔다.

3.1.6. 8강전 대 독일전

독일과의 8강전에서 4:0이라는 초유의 스코어로 쳐발리며 아르헨티나의 치욕의 축구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다. 선수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며 독려하던 예전의 모습과는 달리 경기가 많이 기울어지자 그저 머리만 감싸쥐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

독일은 메시에게 향하는 모든 패스를 차단하고 메시의 드리블 패턴이나 개인기를 완벽하게 숙지하여 앞에서 두명, 뒤에서 한명이 에워싸고 역습으로 공격을 전개하여 카운터 펀치를 날리면서 쓰리백으로 전환하고 수비라인을 끌어올린 마라도나 감독을 떡실신시켰다. 전반의 메시는 독일 수비진 사이로 어떻게든 골키핑에 성공해서 패스를 이어주거나 스루패스를 찌르는 등 공을 뺏긴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골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도와줄 선수가 전혀 없었다.

메시가 공격수로서만 아니라 경기를 풀어나가는 미드필더로서의 재능도 확실하고, 이는 훗날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경기를 풀어나가는 역할로서는 공격수로서의 메시에 비해 부족한 면이 있었고, 그렇기에 경기를 풀어나가는 메시는 어디까지나 마라도나가 생각한 플랜 A에서만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었으며 후방에서 볼을 풀어줄 베론이 없이는 상당히 갑갑해지는 면이 있었다.[40] 여기에 곤살로 이과인, 테베즈, 막시 로드리게스 등 메시를 돕고 독일의 압박을 일차적으로 저지해줘야 할 선수들이 모두 중앙에서 횡으로 늘어서서 움직여 주지 않으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메시와 후방에 위치한 마스체라노의 부담이 커져갔다.

1선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취해주지 않으니 수비진에서 공격을 만드는 작업도 제대로 될리 없고 급기야 답답해진 메시가 전반 초중반부터 아예 하프라인 아래로 내려와서 공을 받고 드리블로 공격진영까지 전진하면서 볼배급을 맡는 모습을 자주 나타났다.

오른쪽 풀백 자리에서 부진하던 오타멘디를 빼고 후반전에 파스토레를 투입함으로 수비수를 한명 빼고 쓰리백으로 전환하며 수비라인을 끌어올린 이 조치는 독일의 막강한 역습의 희생양이 되어 오른쪽이 아예 구멍이 나버리며 더욱 참혹한 스코어를 불러오게 되었다. 나름대로 전술적 변화를 통하여 상황에 대응하려 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너무나 나빴다.[41] 결국 이것 때문에 캄비아소와 사네티를 국대에 선발하지 않은 것이 또다시 도마에 오르며 끝끝내 문제가 되었다. 물론 당시 경기 흐름에 있어 선수 한명이 더 있었다고 결과가 바뀔 수 있겠냐는 의문은 있을 수 있겠지만, 해당 포지션에서 전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선출하지 않았고, 그 포지션이 월드컵 기간 내내 아르헨티나의 가장 큰 구멍이었으며, 8강전에서의 대패의 빌미가 되었던 것으로 볼 때, 사네티의 빈자리에 대해 아쉬워하는 축구팬들이 많았다.

참고로 사실 경기 이전부터 파울이 독일의 승리를 예언했었고, 그게 실제로 들이맞았다.

그래서 훗날 파울 사망 이후 마라도나는 "너 때문에 우리가 독일에게 관광당했으니 잘 죽었다."문어드립을 쳤다(...).

3.1.7. 그 이후

마라도나는 월드컵이 끝나고 난 직후 아르헨티나로 귀국했다. 원래 마라도나는 연임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에서는 마라도나만 연임할 뿐 나머지 코칭스텝들을 전원 경질시키기로 확정했다. 이에 마라도나는 크게 열받아서 "이 코칭스텝들과 함께하지 않을 거면 나도 감독 안하겠다."고 선언. 결국 물러났다.

총평을 하자면 언론에서 과장되게 떠들어대던 것처럼 감독으로서 문외한은 아니었다. 월드컵 시작무렵에는 상당히 안정된 전술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아르헨티나 국대 한정이긴 하지만 거의 신적 존재였기 때문에 선수단 통솔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경험과 그에 따른 임기응변 능력이 몹시 미숙했다. 플랜 A는 꽤 잘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지만 조별 예선에서 베론 한 명 빠지고난 후 플랜 A는 붕괴하고 말았고 이에 따라 선보인 플랜 B는 일시적으로, 혹은 상대에 따라 먹히는 깜짝카드 이상으로 기능하지 못했다. 이런 맥락에서 전술적으로 안정성이나 다양성을 가져다 줄 캄비아소나 자네티 같은 선수들의 엔트리 탈락이 문제가 됐다. 거기에 경기중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서 임기응변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실패했다. 깜짝 발탁된 선수들도 플랜 A에서는 비교적 유기적으로 조합이 되는 모습이었으나 균형이 어그러지자 금세 엇박자가 났고 이를 교정하는데도 실패했다.

이후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코칭 스텝들이 대거 물갈이가 되었고 마라도나의 후임으로 같이 1986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일구었으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감독으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도록 한 세르히오 바티스타를 임시감독으로 삼고 다른 감독을 물색하고 있었느나 선수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그냥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다. 당초 2014년 월드컵까지는 계속 감독을 하게 되어 있었으나 파 아메리카 2011에서 카를로스 테베스가 터뜨린 병크를 뒤집어쓰고 경질되었다. 뒤를 이은 감독이 인디펜디엔테를 2009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우승시킨 알레한드로 사베야. 이 경력을 인정받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감독이 되었는데 사베야는 아예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축구팀을 처음부터 다 뜯어고쳤다. 그 결과 메시가 살아나면서 아르헨티나는 승승장구로 일관하더니 결국 2012년 11월 FIFA랭킹에서 3등까지 치솟아올랐다. 그 위로는 스페인과 독일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히 본좌급. 심지어는 언론에서 이제서야 아르헨티나가 메시의 사용법을 알아냈다.고 극찬할 지경이다.[42]

한편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집에서 놀다가 2011년이 되자 아랍에메레이트의 리그팀인 알 와슬 FC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1년 코파 아메리카 기간 동안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으나 다행히 무사했다.

3.1.8. 그외

2010년에도 현역시절 발재간은 아직 살아있어서 공이 날아오자 발재간으로 가볍게 툭 받아서 경기장에 돌려주는 센스를 보여줘서 관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외에 훈련동영상이 공개된 적이 있는데, 스핀이 잘안들어가고 반발력이 심해서 유럽 일류선수들도 적응하는데 애먹었던 자블라니를 너무나 쉽게 가지고 놀면서 골대에 집어넣었다. 역시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 법이다.

오오 마느님 오오

2014 브라질 월드컵 준비에 여념없는 마훈아 선생

덕택에 2ch에서는 이런 유머까지 나돌았다.

연습장에서 훈련중인 아르헨티나 선수들.
마라도나: 자, 다음 경기를 준비해보자. 이렇게 공을 잡고 3명을 제치면 되는거야. 어때, 참 쉽지? (묘기를 부리며 3명을 제친다.)
메시: 아, 정말이네. 쉽다-! (다른 선수들도 묘기를 부리며 3명을 제친다.)
마라도나: 그래, 그럼 준비 끝. 남은 시간은 수영장에서 놀자구-! 농담이 아닌것 처럼 들린다.

4. 대인 관계

마라도나는 정치적으로도 상당부분 엮인 인물이다. 베네수엘라의 전 대통령인 우고 차베스와는 이미 절친이며 쿠바피델 카스트로와도 절친이다. 그런데 조지 부시 부자에 대해서는 BU卐H라고 대놓고 부르며 히틀러와 동급으로 취급해 버렸다. 그러던 와중에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자 대놓고 쌍수를 들며 환영하면서 "나는 부시집안이 망쳐놓은 미국에 대해 오바마가 원상복구 시켜줄 것을 강력하게 확신한다."라고 말하며 오바마를 지지했다. 하지만 마라도나의 정치적 성향이 성향이라 그가 과연 오바마를 좋게 봤을지는 의문

슬하에는 두 딸과 아들 하나가 있고, 두딸 중 차녀는 아르헨티나의 신성 세르히오 아구에로와 결혼한 사이다. 조석은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장인, 장인의 재림, 사위라는 훈훈한 가족(...)으로 묘사한 바 있다.

그리고 2013년 2월 13일 득남하여 늦둥이 아들이 하나 더 늘었다. 한마디로 아게로의 아들이자 마라도나 외손주인 벤하민은 자기보다 4살이나 어린 외삼촌을 갖게 된셈. 이 무슨 막장드라마 36살의(!!) 애인 베로니카 오헤다가 어머니라고...이름은 디에고 페르난도라고 한다. 늦둥이 아들이 외손주 벤하민과 메시의 아들 티아고와 함께 대표팀에서 뛰기를 바라고 있다고 한다. 메시의 아들인 티아고가 축구를 가장 잘 할 것 같고 벤하민이 스트라이커, 그 뒤를 티아고와 페르난도가 받쳐주면 좋을거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장인, 장인의 재림, 사위에 이어 2세대마저 가족축구단될 기세;;

그러나 아구에로는 2014년 현재 마라도나의 딸 지아니나와 별거 상태에 들어갔고 이혼을 준비중이다. 마라도나는 아구에로를 비난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브라질 월드컵에까지 딸과 함께 가서 재결합을 위해 아구에로를 설득하는 부정을 보이기도 했다.

5. 그 외

은퇴한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전세계 년간 유니폼 판매량에서 꼬박꼬박 10위권 안에 개근 중.

그를 신으로 숭배하는 종교가 실제로 있다. 변종 천주교 라도나교라는, 실제 존재하는 종교가 그것이다. 종교의 우두머리격(?)인 인물들부터 전통적으로 믿는 신은 천주교지만, 마음의 신은 마라도나라는 신앙고백(?!?)을 할 정도. 이단이다! 참고로 이 종교의 오순절(성령강림대축일)은 위에 나온 멕시코 월드컵 당시의 '신의 손' 사건이 있었던 날이다.(...)

2010년 12월, 고작 22개월된 외손주 벤하민 아구에로가 범상치 않은 포스를 발휘하며 킥을 하는 영상이 올라오면서 20년 후를 책임질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다. 외할아버지는 마라도나에 아버지는 아구에로라 과연 어떤 굇수가 탄생할지 설레발이 오가는 중.

참고로 벤하민 아게로의 풀 네임은[43] 벤하민 리오넬 아구에로 마라도나. 이름은 벌써 축구신[44]

앞의 일화들을 보면 마라도나는 나름의 의리는 있는 사람이다. 월드컵에 끝나고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에서 마라도나는 그냥 연임시키고 코칭스텝만 경질한다고 하자 그 코칭스텝들의 편에 서서 그래도 안되니까 그들과 운명을 함께 했다. 마라도나는 체 게바라를 존경하며 그의 의지를 본받으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인다. 정치적으로 반미 성향이 너무 강하고 사생활이 좀 허술해서 그렇지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다. 당장 디에고 포를란의 누나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참고로 남아공 월드컵 때 아르헨티나 경기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경기 시작 전에 선수들 한명 한명한테 볼에다 찐하게 뽀뽀를 해준다. 특히 국대내 에이스이자 본인 후계자인 메시에게 경기후 격한 애정표현을 퍼붓는 사진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화권이 다른 우리가 보기엔 뜨악스럽지만 선수들은 굉장히 영광스럽게 여긴다나.

2013년 10월 14일 U-17 청소년 축구대회가 개최되자 마라도나는 여기서 굉장한 병크를 터뜨리고 만다.

"난 아르헨티나가 아니라 아랍에미리트를 응원하겠다. 이제 아르헨티나는 더 이상 내 조국이 아니다."#

이 마라도나의 발언 한 마디 때문에 온 아르헨티나가 뒤집어졌다.

2014년 2월 21일,데일리미러를 비롯한 영국매체들은 마라도나가 54세에 아르헨티나 5부리그소속인 데포르티보 리에스트에서 현역선수로 복귀한다고 전했다.
마라도나 또한 데포르티보 리에스트의 영입 제의에 동의했고,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에 선수 등록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신청서가 통과될 경우, 마라도나는 오는 3월 23일 산 로렌조와의 경기에 데뷔한다.

여담으로, 세이부 컵 축구에서 아르헨티나의 주장 모델로 나오기도 했다.

6. 경력

6.1. 대회 기록


  •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1969 - 1980)
  • 보카 주니어스 (1981, 1995/96 - 1997/98)
    • Argentine Primera División Metropolitano[45] 1981 : Runner-up
    • Argentine Primera División Apertura[46] 1996/97 : Winner

  • FC 바르셀로나 (1982/83 - 1983/84)
    • Copa del Rey (1) : 1982/83
    • Copa de la Liga[47] (1) : 1982/83
    • Supercopa de España (1) : 1983

  • SSC 나폴리(1984/85 - 1990/91)
    • Serie A (2) : 1986/87, 1989/90 ; Runner-up (2) : 1987/88, 1988/89
    • Coppa Italia (1) : 1986/87 ; Runne-up (1) : 1988/89
    • Supercoppa Italiana (1) : 1990
    • UEFA Cup (1) : 1988/89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 1979 FIFA World Youth Championship : Winner
    • 1979 75th anniversary FIFA Cup : Winner
    • 1979 South American Youth Championship : Runner-up
    • 1986 FIFA World Cup : Winner
    • 1990 FIFA World Cup : Runner-up
    • 1993 Artemio Franchi Trophy[48] : Winner

6.2. 경기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76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11 2 0 0 0 0
1977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49 19 0 0 0 0
1978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5 26 0 0 0 0
1979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6 26 0 0 0 0
1980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45 43 0 0 0 0
1981 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0 28 0 0 0 0
1982/83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20 11 5 3 4 5
1983/84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16 11 4 1 3 3
1984/85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30 14 6 3 - -
1985/86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29 11 2 2 - -
1986/87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29 10 10 7 2 0
1987/88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28 15 9 6 2 0
1988/89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26 9 12 7 12 3
1989/90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28 16 3 2 5 0
1990/91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18 6 3 2 4 2
1992/93 세비야 FC 스페인 라 리가 26 5 3 3 - -
1993/94 뉴웰스 올드 보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5 0 0 0 0 0
1994/95 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4 5 0 0 0 0
1995/96 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1 0 0 0 0 0
1996/97 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5 2 0 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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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타임즈에서 선정한 역대 가장 악명높은 수비수 1위에 선정된 선수. 절대로 "공을 향한 태클"은 하지 않는 선수로 이름을 떨쳐 마라도나 이외에도 수많은 선수들의 무릎과 발목을 아작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한국전에서 두 번째 골을 넣은 스페인 선수와는 동명이인이다.
  • [2] 당시 이적료 2위였던 위르겐 클린스만보다 2배 이상 많다.
  • [3] 마라도나의 이적료와 연봉으로 구단의 재정이 완전히 바닥나버렸지만, SSC나폴리의 회원권 가격이 폭등했고 시청률, 관중수도 급상승했다.
  • [4] 그러나 이 마-지-카 라인은 단 한 시즌, 87/88 시즌만 빛을 본다. 이미 지오르다노는 나폴리로 오기 시작할때 나이가 어느정도 있었으며 다음 시즌인 88/89 시즌에는 노쇠화가 급격히 진행되어 나폴리를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실제 카레카의 파트너로 뛰었던 선수는 안드레아 카르네발레이다.
  • [5] 당시 밀란엔 오렌지 3총사가 에이스였으며, 인테르엔 악명높은 마테우스와 클린스만이 앞장서고있었다.
  • [6] 이전 버전에서 마라도나가 이 대회의 활약으로 바르셀로나에 입단하게 되었다고 표현하였으나 사실이 아니다. 이미 바르셀로나에 영입이 된 상태에서 스페인 월드컵을 치루기 위해 스페인에 온 것이었다.
  • [7] 실제로는 프리킥 상황에서 아르헨티나 선수가 공을 마라도나에게 밀어줬고 벽을 쌓았던 벨기에 선수들이 달려드는 모습이 찍힌거다.실제 해당 경기 장면
  • [8] 1978년에 아르헨티나가, 1982년에 이탈리아가 우승했는데도 1986년에 이런 두 팀이 같은조로 묶였다.
  • [9] 바로 전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허정무의 태권도 축구(라고 쓰고 일방적인 구타라고 읽는다.)가 작렬한 그 경기다. 이렇게까지 해서 간신히 막은게 3실점. 한국이 워낙에 실력이 차이가 나서 했지만 이 시절 다른 팀들도 심판만 안보이면 마라도나를 일방적으로 때렸다. 그리고 허정무의 경우는 "공을 걷어내려다 그렇게 된 것"이라 어필했고 이것이 인정되어 퇴장을 피할 수 있었다.
  • [10] 배구의 강스파이크와도 같은 동작이었다.
  • [11] 그리고 이 때문에 마라도나를 신으로 섬기는 종교의 순절(성령이 강림한 날)이 이 날이다.(...)
  • [12] 실제로 경기 당일 오전에 멕시코 도심지 한복판에서 양국의 훌리건들이 만나서 대규모의 패싸움을 벌였다. 사상자가 장난이 아니게 많이 나와서 멕시코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기겁할 정도였다.
  • [13] 그러나 벨기에가 준결승까지 올라오는 과정은 그야말로 눈물겨웠다. 지역예선부터 플레이오프로 밀려서 간신히 올라온 뒤 조별리그에서도 멕시코와 파라과이에게 밀려서 조 3위로 올라왔을 정도로 기구한 운명이었다.
  • [14] 사실 이런 스쿼드로 본인은 우승했기 때문에 마라도나는 후일 감독이 되고 나서도 자신의 선수 선발방식에 똥고집을 부렸다는 설도 있다.
  • [15] 하지만 파사레야는 장출혈 증세로 인해 86년 월드컵 경기에 단 한번도 나서지 못했다. 그래도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함으로서 파사레야는 아르헨티나 유일이자 전세계를 뒤져봐도 20명 밖에 없는 월드컵 2회 우승자라는 대기록을 갖게 된다. 만약 파사레야가 제 컨디션으로 나왔더라면 아르헨티나의 우승은 조금 더 쉬웠을 것이고 역대 월드컵 최다 출전 주장의 기록은 마라도나가 아닌 파사레야의 차지였을 것이다.
  • [16] 이때 경기장에 걸린 현수막이 걸작이다. "마라도나,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우리의 조국입니다."
  • [17] 그리스만 3패고 나머지 팀이 모조리 2승 1패를 기록한 상태였고 아르헨티나는 득실차로 인해 3위로 밀렸다.
  • [18] 스페인어로 경기의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에이스를 뜻하는 축구용어.
  • [19] 크루이프는 축구에 대한 이해도는 역사상 따라올 사람이 없고,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내가 짱임'이라는 마인드로 유명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흠좀무한 평가다.
  • [20] 저 중 오르테가가 포지션이나 플레이 스타일 면에서 그나마 비슷했다고 평가받는다.
  • [21] 물론 메시도 현재 갈수록 패싱과 플레이메이킹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이미 20대 초반에 톱클래스 플레이메이커가 되었고, 절정기에는 그야말로 충공깽한 패스들을 경기 내내 뿌리던 선수였다. 그래도 메시도 20대 초반에 갖추게 되었다.
  • [22] 마라도나는 한 경기당 공을 잡는 시간은 2분이 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공을 혼자 잡고 플레이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공간이 트여 있을 때는 환상적인 드리블러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밀집 수비를 드리블로 깨려는 시도는 자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물론 바르셀로나 미드필더진이 곧바로 공을 탈취할 능력이 있으니 메시가 그러한 시도를 자주하는 것이고, 마라도나도 그런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메시만큼 자주 보여주지는 못했다고...
  • [23] 이 부분에 있어서 굳이 비교를 하자면, 마라도나는 역대급 드리블을 가진 패서, 메시는 역대급 킬패스 능력을 갖춘 드리블러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 [24] 86 아르헨티나는 14 아르헨티나에 비해서 선수 개인의 네임밸류로는 떨어지지만, 팀플레이로서는 훨씬 뛰어났다. 특히 공격시에 완전 답없을 정도로 메시에 올인때리는 2014 아르헨티나에 비해 86년의 아르헨티나는 적어도 마라도나가 원활하게 볼은 잡았고 퍼주는 것도 잘 먹었다.
  • [25] 능력치의 최대값이 99인데 마라도나는 거의 대부분 능력치가 90이 넘는다.
  • [26] 물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역시 레알마드리드 이후에서는 직접적인 스코어러로 변신한 것이 사실이다.
  • [27] 산토스에서나 브라질에서나 펠레는 최전방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맡은적이 그다지 많지가 않다. 4-2-4 라인의 최종 공격수 2명 뒤에 위치했는데, 이를 현대적 관점으로 치환한다면 쉐도우 스트라이커라고도 할 수 있을까,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할 수 있을까...
  • [28] 그런데 크루이프는 막상 "그 녀석(마라도나)은 선수로서 나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한다.
  • [29] 그런데 펠레는 아르헨티나 신문을 통해 '마라도나는 자신을 매우 사랑하고있으며 우린 서로 매우 아끼고 이건 그냥 말장난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둘이 주고 받는 말을 들어보면 절대로 애정표현이나 말장난은 아닌것 같다만...싸우다 든 정이 무섭다더니...
  • [30] 네명 전부 전성기 시절 세리에 A에서 뛰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굴리트는 지쿠, 플라티니와 같은 세대가 아니라 공교롭게도 리그에서 부딪힌적이 단 한번도 없다. 사실 플라타니와 마주칠 수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헤이젤 참사 때 큰 충격을 받은 플라티니가 축구에 열정을 잃어버려 조기 은퇴한다. 훗날 인터뷰에서 헤이젤 참사 이후 축구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렸다고...
  • [31] 86월드컵 개최전에는 플라티니를 우위로 두는 평가였다. 마라도나의 맞수로 치는 선수는 세리에에서 피터지게 우승경쟁을 했던 루드 굴리트...라는 건 딱 87-88 딱 한시즌 이야기. 이후 굴리트는 부상으로 전성기가 끝났다.
  • [32] 그러나 이것 역시 파파라치나 기자들에게 자신을 보호하는 행동 중의 하나이다. 당장 영국의 다이애나 스펜서가 어떻게 죽었나를 보면 답은 뻔하다.
  • [33] 펠레는 저주로 유명해서 그렇지 인터뷰는 립서비스를 많이 곁들여서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애시당초 펠레의 저주 자체도 펠레의 엄청난 유명세와 립서비스가 결합되어 나온 만들어낸 속설이다.)
  • [34] 참고로 마라도나는 월드컵 역사상 주장완장을 가장 오래 착용한 선수로도 유명하다.
  • [35] 2010년 월드컵 당시 이미 2승을 거둬서 여유있게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하게 되자 마라도나는 메시를 주장으로 임명했다. 그게 메시의 생일 선물이기도 했다.
  • [36] 경매로 넘어간 귀걸이는 최종적으로 이탈리아/팔레르모 소속의 파브리치오 미콜리에게 한화 4500만원 가량에 낙찰되었다. 미콜리 본인은 귀걸이를 돌려주고 싶다며 마라도나를 만나고 싶어하지만 마라도나는 별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지금은 가끔 미콜리가 하고 다니는 듯. 경기 중에도 마라도나의 귀걸이를 하고 나오는 모습이 간간히 보인다.
  • [37] 유럽의 파파라치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다이애나 스펜서가 파파라치를 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고, 당시 파파라치들이 죽어가는 다이애나를 구할 생각은 않고 사진만 찍고있던 사건을 생각하면 마라도나만 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 [38] 단, 허정무는 1980년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의 명문 클럽인 PSV 아인트호벤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세 시즌간 총 77경기에 출전, 15골을 기록했던 기록도 있을 만큼 축구실력은 상당했다. 마라도나가 너무 넘사벽이라서 실력이 밀린 것 뿐...
  • [39] 만약 2006년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스위스를 이겼더라면 대한민국이 같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2006년과 2010년에 대한민국은 똑같이 1승1무1패를 했으나 2006년에는 탈락한 반면 2010년에는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 [40] 그래서 측면까지 넓게 커버해주는 막시 로드리게스와 디 마리아, 메시의 전방에서 일차적으로 상대방의 압박을 저지하는 테베즈의 역할이 중요했는데 3명 모두 독일전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막시와 디 마리아의 부진이 치명적이었는데 베론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전방과 후방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위해서 이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꼭 필요했는데...만능 미드필더 캄비아소의 부재가 아쉬워지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게다가 이 경기에서 디마리아는 다른 포지션을 받아서 완전 개고생을 했다.
  • [41] 센터백 출신 오타멘디를 기용한 것은 수비를 우선한 선택이었는데 수비에서도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 [42] 하지만 누구도 2010년의 메시와 2011년의 메시, 2012년의 메시가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10년까지만 해도 마라도나가 맡겼던 중앙 플레이메이커 롤은 대표팀에서나 하던 생소한 역할이었지만, 어느덧 대표팀에서도 익숙해졌고 바르셀로나에서도 측면에서 중앙으로 옮겼다. 뭣보다 실력이 늘었다. 안 늘은 것 같아도.
  • [43] 세르히오 쿤 아게로와 리오넬 메시가 절친이기도 해서 리오넬을 이름에 붙였다고 한다.
  • [44] 스페인어 사용지역의 정식 이름은 1st name- 2nd name - 아버지쪽 성 - 어머니쪽 성 방식을 따른다.
  • [45] 1981 시즌 당시 아르헨티나 리그 이름
  • [46] 1996/97 시즌 당시 아르헨티나 리그 이름
  • [47] 1982년부터 86년까지 존재했던 라 리가 리그컵
  • [48] 1985년과 1993년에 열렸던 유로 우승자와 코파 아메리카 우승자의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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