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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last modified: 2015-03-13 01:33:00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관련 항목


1. 개요

딸기(Strawberry)는 쌍떡잎식물의 이판화군 장미목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 혹은 그 열매다. 딸기에 대해 많이 착각하는 사실로, 과육 부분이 아니라 씨 부분이 딸기의 진짜 열매다. 딸기 과육은 열매가 아니라 꽃받침 부분이 크게 자라난 것.

나라에 따라 과일인지 채소인지 이견이 있다. 기본적으로 미국[1]과 일본, 한국 등지에서는 채소로 본다. 한국의 경우 채소의 하위 항목인 '과일채소(과채류)'로 분류하는 중.[2]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법적으로 목본식물(=나무)의 열매를 과일로 취급하는데, 딸기는 목본식물도 아니고 엄밀한 의미의 열매도 아니다. 그래서 수박, 참외 등과 더불어 채소로 구분하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보통 '맛'과 '용도'로 구별을 하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과일 맞다.[3]

특유의 단맛과 상큼함, 부드러움의 조화가 좋아서 이걸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은 편으로, 100g당 비타민C 함유량이 62mg으로 레몬보다 높다.

단점이라면 (냉동 보존이 아닌 한) 오래 보존하기 어렵다는 것과, 철을 잘 타기 때문에 바나나처럼 자주 먹기 어렵다는 점. 장기간 보존하게 되면 당도가 점점 떨어져서 2~3일만 지나도 거의 맛이 밋밋해지고, 일주일 정도 지난다면 단맛 따위는 느낄 수 없을 정도가 된다. 급식으로 나오는 딸기도 이러한 이유로 별로 맛이 없는 듯. 여태 채소들이 그렇듯이 따자마자 먹는 게 당도도 제일 높고 맛있다. 물론 상온에서는 이 정도 보관하기도 힘들겠지만, 이 경우는 그냥 설탕을 첨가해 딸기 주스나 딸기 우유를 만들어 먹는 게 최선책. 또한 온실 딸기가 나오긴 하지만 제철에 비하면 비싸다. 본래 노지에서의 제철은 6월인데 3~4월의 온실에서 재배한 딸기가 더 많이 나오고 더 맛있다. 딸기를 구하기 힘든 철에는 임신부들이 주로 가는 커뮤니티 게시판에 흔히 올라오는 질문 중 하나가 '딸기 먹고 싶은데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다. 물론 다른 과일도 마찬가지지만 딸기가 더 많다.

케이크 위에 올려진 딸기는 케이크의 꽃으로 불리며, 쇼트케이크 한 조각에 딸기 한 개가 올려져 있는 것은 창작물과 현실 공통의 불문율이다. 이 딸기는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고 이걸 빼앗아 먹으면 비난을 받게 된다. 사례는 케이크 항목을 참조.

겉에 약 200개 정도의 어마어마하게 많은 씨앗이 붙어있지만 정작 씨가 싹틀 확률이 낮아서 어미 나무에서 새끼치기로 키운다. 씨에서 난 딸기는 개량된 품종의 큼지막한 딸기가 아니라 원래의 왜소한 딸기가 열리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산딸기와는 많이 다르다. 딸기(strawberry)는 장미과 딸기속(Fragaria)에 속하며, 산딸기(Raspberry)는 장미과 산딸기속(Rubus)에 속한다. 가장 비슷한 것으로 뱀딸기(Potentilla indica)가 있는데 딸기와는 달리 노란 꽃이 피며 작은 열매가 열리는데 못 먹는 건 아니지만 맛이 없다. 시큼한 것도 아니고 떫은 것도, 단 것도 아닌, 그냥 물에 축인 스펀지를 씹는 맛이 난다. 서양권에서는 Mock strawberry(가짜딸기)라고 불린다. 식용이 아닌 관상용으로 간혹 재배되는 수준.

오래 보존하기 어렵기 때문에 등을 만들어 먹는 편이다. 요즘은 끝물로 을 만들기도 한다.

예쁜 색깔에다 유치하면서도 깜찍한 느낌이 드는 탓인지 여성성의 상징처럼 사용되는 일이 잦다.

논산의 모 국가시설에 있는 많은 젊은이들을 냄새로 고문하는 존재라 카더라. 참고로 논산시는 시의 마스코트가 딸기일 정도로 딸기를 많이 재배한다.

2. 역사

지금 우리가 먹는 딸기 종자는 세상에 나온 지 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의 딸기는 쉽게 말해 자연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1712년,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남미 칠레의 해안가 숲에서 프랑스의 식물학자가 야생 딸기를 관찰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쉬지 않고 해안가를 뒤지며 야생 딸기 종자를 채집하며 기록했다. 그 프랑스 식물학자의 이름은 '아메데 프랑수와 프레지에(Amédée-François Frézier)'였다.

지금 우리가 먹는 딸기가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이었는데, 사실 그의 직업은 교수나 학자가 아니었다. 프랑스 육군 정보국 소속 현역 중령, 즉 스파이였다. 그가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칠레의 야생 딸기 관련 기록은, 딸기에 관한 기록인 동시에 군사정보를 적은 암호였다. 칠레 해안가에 설치된 요새와 주둔 병력, 대포의 수와 병참공급 현황 같은 군사정보는 물론이고, 독립 전 칠레를 통치했던 스페인 총독의 근황과 원주민의 움직임까지 정치, 경제, 사회와 관련한 모든 정보가 함께 적혀 있었다.

엔지니어이자 수학자이며 현역 군인인 프레지에 중령을 남미에 파견한 사람은 당시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였다. 프랑스가 멀리 떨어진 남미에 간첩을 보낸 것은 유럽의 국제정치 판도 때문이다. 이때의 스페인 국왕 필리페 5세는 루이 14세의 손자로, 필리페 5세의 왕권을 유지하고 스페인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스페인과 식민지의 정보를 수집했던 것이다. 반대파들이 필리페 5세를 몰아내려고 할 경우 즉각적인 무력개입을 하려는 의도였다.

그 때문에 멀리 페루와 칠레까지 간첩을 보내 군사정보를 수집했던 것인데, 프레지에 중령이 야생 딸기 종자를 관찰하고 채집한 것은 스파이 활동을 들키지 않기 위한 위장이었다. 프레지에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후 1714년 프랑스로 귀국했다. 그리고 칠레의 해안가 방어진지를 포함한 군사정보가 담긴 지도를 제작해 루이 14세에게 제출했다. 프레지에 중령에게 금화 1,000냥을 상금으로 내린 것을 보면 그가 그린 군사지도에 루이 14세가 아주 만족했던 모양이다.

스파이 활동을 완수한 프레지에 중령은, 그동안 칠레에서 꼼꼼히 관찰하고 스케치한 바닷가의 토종 딸기에 관련한 책을 파리에서 출판한다. 그리고 귀국할 때 함께 가져온 토종 딸기 종자를 파리에 심었다. 토종 칠레 딸기는 빨갛고 예쁜 계란 크기의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지만, 먹을 수는 없는 종자였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풍토가 맞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예 열매조차 맺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프레지에를 포함한 유럽의 여러 식물학자가 칠레 딸기와 다른 야생 딸기 종자를 교배시켜 열매를 맺게 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는데, 마침내 영국의 필립 밀러가 남미 칠레의 야생 딸기와 북미 버지니아의 야생 딸기를 교배시켜 새로운 종자를 얻는 데 성공한다. 이 딸기가 지금 우리가 먹는 재배용 딸기의 원조다. 그리고 품종이 우수한 묘목을 선별해 대량으로 재배를 시작한 것이 1806년 전후다. 그러니 자연에서 자라는 산딸기가 아닌 재배해서 먹는 딸기의 역사는 기껏해야 200년에 불과하다.

인공적으로 만든 품종인 서양 딸기, 즉 양딸기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1920~30년대 무렵으로 추정된다. 딸기가 처음으로 동양에 전해진 것은 19세기 말, 네덜란드를 통해 일본에 관상용으로 처음 전해졌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딸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이다.

3.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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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미국에서 딸기를 채소로 지정한 것은 관세 문제가 얽혀 있다.
  • [2] 농촌진흥청 홈페이지 참조. http://www.rda.go.kr/board/board.do?mode=html&prgId=arg_cropfarmskillEntry
  • [3] 반대로 아보카도 같은 경우는 유럽에서 채소로 구분된다. 단맛이 없고 메인 요리나 애피타이저로 쓰이므로... 사실 이는 '과일'과 'fruit'처럼 언어의 차이일 수도 있다. 'fruit'는 '과일'보다 좀 더 넓은, 모든 '열매'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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